”기왕 날 취재하러 오셨으니 시원하게 말씀드릴게요. 잘 들으세요.”예선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첫째, 나 예선은 결코 선을 기만하고 악을 추종한 적이 없으며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한 적이 없어요. 내가 그날 뜨거운 커피를 영내문에게 뿌렸다고 했는데 그전에 사실 영내문이 먼저 나한테 뜨거운 커피를 뿌렸어요.”“둘째, 사영인은 내 친엄마가 맞지만 난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녀가 번 돈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난 내가 가진 돈을 등에 업고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셋째, 난 누구의 남자친구를 빼앗은 적이 없어요. 소군연과는 지금까지 계속 연인으로 사귀어 오고 있었어요. 약혼식 날 일은 영내문이 내 남자친구 할아버지의 심신 안정을 위해 일단 가짜 약혼식을 올리자고 내 남자친구에게 제안을 했던 거예요. 사실 영내문은 이 명분을 빌려 진짜 약혼식으로 삼을 계략을 꾸몄구요.”“마지막으로 이 말을 빌려 내 진심을 말하고 싶군요. 진실은 천천히 올지 모르나 끝끝내 도달한다. 이상이 여러분께 드리는 내 답변입니다. 본인이 정의로운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다시는 날 괴롭히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밟아 그 죄를 추궁할 것입니다.”예선은 청산유수로 말을 하고 난 뒤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고는 소군연의 손을 잡고 사람들을 헤치고 성큼성큼 회사 안으로 들어섰다.여유롭게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영내문은 라이브 방송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라서 손에 든 커피잔을 바닥에 내리쳤다.옆에 있던 하인은 뜨거운 커피가 자신의 발에 튀는 바람에 끙끙거리며 괴로워했다.“뭐해요! 빨리 치우지 않고!”영내문은 버럭 하고 성질을 부렸다.하인은 깜짝 놀라 벌벌 떨며 얼른 주저앉아 바닥을 치웠다.“아유, 내문아, 왜 그렇게 화를 내?”영내문의 모친이 다가와 타일렀다.“네티즌들이 모두 예선이 그 여자를 욕하고 있잖아? 감히 널 건드리다니
예선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눈을 반짝였다.“소만리, 지금 어디야?”“나 지금 전예진이 너한테 의뢰한 집 쪽에 있어.”소만리가 대답했고 예선은 바로 그쪽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가 끊길 때쯤 예선은 소만리가 옆의 누군가에게 말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소군연은 예선이 소만리를 만나러 간다는 걸 알고 안심했다.예선은 소군연에게 자신의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하러 가라고 말했고 소군연도 순순히 그 말을 들었다.그런데 소군연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전예진한테서 전화가 왔다.전예진은 거만한 투로 말했다.“예선, 오늘은 왜 일하러 안 왔어요? 개인적인 일로 일하러 안 온다면 그건 너무 업무 태만인데요. 만약 오늘 일하러 오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당신 상사한테 이르겠어요.”“당신이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어요. 상사한테 이르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예선은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전예진의 도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쯧쯧, 갑부 엄마가 있는 사람은 다르긴 다르군요. 말버릇이 정말 거침이 없네.”전예진은 협박조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언론 앞에서 엄마의 돈과 당신은 관련이 없다며 당당하게 말하는 걸 들었어요. 아니 그럼 오늘 일하러 안 오면 그 많은 위약금은 어떻게 마련하려고 그래요?”전예진은 또다시 위약금 운운하며 예선에게 경고했다.예선은 나쁜 마음을 품고 자신에게 접근한 전예진을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소만리가 지금 그쪽 동네에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어차피 언젠가는 그 추잡스러운 얼굴을 마주하긴 해야 했다.예선은 전예진에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전예진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예선은 그녀의 전화를 무시하고 꺼 버렸다.십여 분 후 예선은 차를 타고 고급 단지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만리의 차가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차에 타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욕하고 헐뜯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낙관적인 정서를 유지하며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그럼 나도 같이 올라갈래.”소만리는 돌아서서 차 안에 있던 태블릿PC를 꺼내더니 예선의 손을 잡고 곧장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소만리, 너까지 이런 일에 연루되어 같이 욕먹으면 어떡해? 너 겁 안 나?”예선도 감탄해하는 눈빛으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소만리의 태도도 매우 담담하고 흔들림이 없었다.“그들이 감히 욕을 하면 같이 욕을 해 줄 거야. 아마도 모진이 직접 그 사람들한테 변호사 서한을 보낼 거니까.”“아유, 남편이 있는 사람은 다르긴 달라.”예선이 농담했다.“너도 있잖아. 너의 모든 걸 걱정하며 아끼는 네 약혼자 말이야.”소만리도 농담으로 예선을 놀리는 듯하면서 그녀를 떠보았다.“사실 또 한 사람이 더 있긴 하지. 그녀도 널 엄청 아끼고 걱정하시지.”“소만리, 너 지금 내 친엄마 말하는 거지?”예선은 웃으며 되물었다. 사실 예선도 마음속으로 다 알면서 되물은 것이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친엄마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소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사실 그 대답을 굳이 듣지 않아도 서로 마음으로 잘 알고 있었다.영내문은 지금 전예진과 함께 아파트에서 예선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들은 기자들이 바깥에서 잠복해 있다는 것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영내문은 다소 확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예선이 정말 올까요?”“성질이 불같은 여자잖아. 아마 꼭 올 거야.”전예진은 일찌감치 예선의 성격을 간파한 모양이었다.예선은 가식 없이 행동하고 뒤끝 없는 성격이어서 억울함을 계속 안고 화를 속으로 삭히는 타입은 아니었다.영내문이 예선이 정말 올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그녀는 밖에서 한바탕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영내문과 전예진은 얼른 문쪽으로 가서 귀를 쫑긋 세우고 바깥에서 나는 소
전예진은 의분에 가득 찬 척하며 잔뜩 화가 나서 예선을 노려보았다가 카메라를 쳐다보았다.“여러분 보셨죠. 예선이라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에요. 이 여자는 오늘 또 내문이를 찾아왔어요.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악랄한 여자가 또 있을까요? 한번 사람을 괴롭히고도 또 찾아오다니 그것도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고 말이죠. 엄마가 돈 좀 있으면 이렇게 원하는 대로 막 해도 되는 건가요!”전예진은 고개를 돌려 영내문을 곁으로 끌어당겼다.“내문아, 이 여우 같은 여자가 네 약혼자를 어떻게 빼앗았고 너한테 그 뜨거운 커피를 어떻게 뿌렸는지 낱낱이 알려줘. 네가 이 여자의 행실을 낱낱이 폭로하면 이 여자는 불같이 화를 퍼부을 거야!”전예진의 말이 끝나자 영내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됐어요. 언니, 이 일은 이제 그만둬요. 모두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군연 오빠는 더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고요. 난 단지 예선 씨가 정말로 군연 오빠를 사랑하고 아끼길 바랄 뿐이에요. 더 이상 아무것도 다투고 싶지 않아요. 언니, 이제 그만 들어가요.”영내문은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정도로 상심한 모습을 보여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안타깝게 여기게 만들었다.인터넷에서는 제대로 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한바탕 예선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하지만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감정 동요 없이 침착한 표정으로 전예진과 영내문 두 사람의 연극을 가만히 지켜보았다.전예진은 예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영내문을 쳐다보았다.그러나 전예진의 마음속에서는 왠지 언짢은 기분이 들었고 덩달아 조급함도 느껴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그날처럼 예선을 화나게 한 다음 예선의 과격한 행동을 보고 싶었다.그날 보았던 예선은 확실히 억울함을 참지 않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오늘 예선은 너무나 침착했다.“언니, 이제 들어가요. 인터넷에 이런 일이 자꾸 노출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영내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
”당신 말이 맞아요. 인터넷에서 네티즌들도 욕을 하고 있죠. 다른 사람의 약혼자를 빼앗고 뜨거운 커피를 사람 몸에 뿌리는 사람은 정말 동정할 가치가 없어요. 인터넷에 폭로되어도 마땅하죠.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은 내 친구 예선이 아니라 당신 전예진의 친동생 같은 영내문이라는 거죠.”소만리는 갑자기 날카롭게 반짝이는 시선을 들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영내문의 얼굴에 떨어뜨리며 말했다.영내문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뭔가 잘못 말해서 소만리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어쩔 줄을 모르며 억울한 척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만리 씨, 난 지금 당신이 말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어요. 나와 군연 오빠는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지냈어요. 줄곧 사이도 아주 좋았고 군연 오빠 집안에서는 나와 군연 오빠가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열렬히 지지해 주셨죠. 군연 오빠 할아버지가 일부러 꾀병을 부렸다는 말은 사실인지 아닌지 난 잘 모르겠어요. 나도 나중에 들었거든요.”영내문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고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 촉촉해지기 시작했다.“커피를 뿌린 일 말이에요. 아마 당신도 인터넷으로 봤을 거예요. 그 동영상 내용은 모두 사실이에요. 편집이나 조작된 일은 없어요. 믿지 못하겠다면 전문가에게 검증을 받아보면 돼요. 나 영내문은 결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행동을 하지 않았어요.”영내문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표정으로 맹세했다.정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깜빡 속게 만들 정도로 조금도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옆에 있던 전예진도 거들고 나섰다.“소만리 씨, 당신이 친구를 위해서 이렇게 발 벗고 도와주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우리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고 증거도 다 있는 일이에요. 그 커피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아요? 100도는 안 되어도 90도 정도는 되었을 거예요. 그렇게 뜨거운 커피를 사람 몸에 뿌리다니. 내문이가 그때 화상을 입어서
소만리가 한 말에 전예진과 영내문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갑자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소만리 씨, 그날 커피를 뿌린 사건 전체 영상이 있다고 하셨습니까?”기자 중 한 면이 추궁했다.전예진과 영내문은 눈을 크게 뜨고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소만리는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네, 그래요. 이 사건의 전말을 알려줄 동영상이 있어요.”소만리의 대답에 영내문과 전예진의 안색이 또 한 번 돌변했다.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는 온통 불안과 긴장뿐이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그날 현장에 있었던 것은 그녀들과 심부름을 한 하인뿐이었다.동영상을 찍은 사람은 하인이었다. 그럼 그 하인이 설마 소만리에게 영상을 준 것일까?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당시 촬영이 끝나자마자 영내문은 핸드폰을 가장 먼저 회수했기 때문에 하인이 손쓸 시간이 없었다.소만리가 속임수를 쓴 게 틀림없을 것이라고 영내문은 생각했다.마음속으로 얼른 뭔가를 궁리한 영내문은 다시 안정을 찾았고 긴장한 빛이 역력하던 얼굴도 다시 평온해졌다.“소만리 씨,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동영상의 내용이 길다고 해도 있는 사실을 조작할 수는 없어요.”“영내문 말이 맞아요!”전예진도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하지만 마음은 영내문만큼 침착하지 못했다.결국 사실이 어떤 것인지는 그녀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예선, 당신의 부잣집 친구가 이렇게 몇 마디 거들어 준다고 해서 당신의 악행이 없는 것처럼 씻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어디 해 볼 수 있으면 동영상 내용 공개해 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함부로 사람 속일 생각하지 마세요!”예선은 말없이 입꼬리를 찡긋하며 말했다.“이렇게 보고 싶다고 하니 내가 당신들 소원대로 해 주죠.”그녀는 고개를 돌려 소만리와 눈빛을 교환했다.“소만리, 그럼 이 불쌍한
”영내문, 당신이 진실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에요.”소만리의 침착한 목소리가 영내문의 귓가에 담담하게 들려왔다.영내문은 피곤한 척하던 얼굴을 번쩍 들어 올렸다.방금까지 핏기 없던 얼굴에 점점 더 흉측한 표정이 피어올랐다.“영내문, 당신은 이 영상을 지금 마주하지 않아도 돼요. 그렇지만 당신이 보건 보지 않건 난 동영상을 지금 공개할 수 있어요. 공개하고 나면 모든 네티즌들이 다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저마다 여기저기 퍼다 나르겠죠. 내가 이렇게 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영내문과 전예진의 발걸음이 동시에 그 자리에 멈췄다.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뒤를 돌아보니 태블릿PC에서 여자의 야박하고 도발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이 목소리는 영내문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목소리였다.바로 자신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어머...”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기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냈다.“아니, 알고 보니 영내문이 먼저 도발한 거였잖아.”“만약 내가 예선이라면 절대 가만히 안 뒀을 거야! 누가 먼저 커피를 뿌리래!”“쯧, 역시나 영상을 찍은 사람은 뭔가 의도를 가지고 찍은 거였어. 그때 어떻게 하필이면 예선이 영내문을 괴롭히는 장면만 딱 찍었겠어? 역시 영내문과 전예진이 일부러 도발한 거였어.”“네티즌들이 날뛰고 달아올라 사람을 헐뜯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결국 저 사람들 연극에 속은 거였어.”뒤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듣고 영내문은 더 이상 참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그녀는 몸을 곧게 펴고 섰다.조금 전까지 보였던 연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그녀는 갑자기 소만리가 들고 있던 테블릿PC를 돌아보았다.소만리는 영내문이 자신 쪽으로 돌아보는 모습을 보고 조금도 놀라지 않고 동영상을 처음으로 되돌려 영내문이 보도록 했다.영내문은 동영상을 보며 깜짝 놀랐다.이 영상은 입구 쪽에서 찍은 것으로 보였고 자신들이 사주한 하인이 찍은 각도와는 완전히 달랐다.그러니까 그때 누군
소만리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오르자 전예진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녀는 소만리가 말하는 그 사람이 자신이 아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전예진은 여전히 그럴 가능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이 동영상은 틀림없이 합성된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말한 그런 사람은 절대 없어요!”전예진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고개를 돌려 초점을 잃은 영내문의 눈을 보았다.그녀는 영내문의 손을 잡아당겼다.“내문아, 가자. 이런 헛소리에 시간 낭비하지 말자구. 저 사람들 다 작정하고 거짓말하는 거야!”영내문은 안 그래도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나 눈앞이 캄캄했는데 전예진이 손을 잡아당기자 이때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들개 같은 기자들이 그들을 놓아줄 리 만무했다.“영내문 씨, 해명하셔야죠. 해명 안 하실 겁니까?”“해명은 무슨 해명이요! 내가 분명히 방금 말했잖아요. 이 동영상은 합성이고 가짜라구요!”전예진은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화를 버럭 내며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하지만 소만리가 그녀들에게 그런 기회를 줄 리 없었다.“당신들 지금 여기서 도망가기만 하면 이 상황을 정말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남을 비방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네티즌들을 선동하여 예선을 공격한 일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소만리는 태산같이 엄정한 목소리로 무겁게 말했다.“당신들이 이런 일을 꾸며 세상 사람들을 선동하는 바람에 예선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어요. 진실이 드러났으니 이제는 당신들 차례죠. 당신들은 곧 인터넷에 공개될 것이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겠죠. 그게 얼마나 불편하고 지옥 같은지 곧 알게 될 거예요.”소만리는 자신이 하는 말이 절대 농담이 아님을 특히 강조하듯 힘주어 말했다.“전예진 씨,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이 동영상은 당신 팬이 우연히 찍은 거예요.”“...”뭐라고!전예진은 두 눈을 번쩍 뜬 채 놀라서 말을 잊지 못했다.이 동영상이 그녀의 팬이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