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원하는 디자인을 보여달라고요?”전예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아니 어떻게 당신은 일을 이렇게 쉽게 하려고 해요? 지금 남의 디자인을 베끼자는 거예요? 너무 쉽게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예선은 전예진이 고의로 자신의 말을 왜곡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침착하게 설명했다.“고객님, 원하는 디자인을 보여달라고 한 것은 고객님이 어떤 디자인 스타일과 취향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서에요.”“아, 그런 뜻이었구나.”전예진은 그제야 예선의 말뜻을 이해하였고 입가에 여전히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이제부턴 내 친한 동생인 내문이와 얘기하세요. 이 집은 내가 사서 내문이한테 주는 거니까 내문이가 좋아하는 대로 꾸미게 해 주세요. 어서 내문이 의견 들어보세요.”예선이 아무 눈치도 없는 바보도 아니고 이쯤 되자 영내문이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음을 확실하게 깨달았다.영내문은 거만한 눈빛으로 예선을 흘겨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골탕을 먹여 볼까 하는 표정이 얼굴 가득 들어차 있었다.그녀는 예선의 엄마가 Y국 최고 갑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재정적인 면에서는 자신과 비교할 수도 없는 경지이며 소군연이 지금 예선을 얼마나 총애하고 사랑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이 모든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하지만 약혼식에서 호되게 구긴 체면과 억울함을 이번 기회에 꼭 예선에게 돌려주고야 말 것이다!예선은 자신의 일을 방해하려는 그들의 수작에 걸려들었음을 알고도 여전히 전문가다운 텐션을 유지하며 영내문에게 실내 디자인에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영내문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아서 예선이 몇 마디 하자마자 바로 그녀의 말을 끊고 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하며 예선을 계속 골탕 먹였다.그러나 예선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 하나 없었고 시종일관 침착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할 뿐이었다.일 얘기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이어졌고 영내문은 피곤한지 사람을 시켜 커피와 간식거리를 좀 사 오라고 했다.예선은
예선은 말을 마치자마자 재빨리 손을 뻗어 전예진이 들고 있던 커피를 빼앗아 주저 없이 영내문의 몸에 뿌렸다.영내문은 바로 비명을 질렀다.“앗!”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하며 황급히 뒤로 두어 걸음 뒷걸음질쳤다.하지만 입가에는 예선을 조롱하는 듯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예선! 당신 미쳤어요! 어떻게 내문이한테 커피를 뿌릴 수가 있어요!”전예진은 영내문을 살피며 예선을 향해 역정을 내었다.“어쩜 이렇게 심보가 고약해요. 엄마가 Y국 갑부면 이래도 되는 거예요? 그렇게 대단해요?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괴롭힐 수가 있어요? 저번에는 내문이의 약혼자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빼앗더니 오늘은 이런 식으로 내문이를 골탕 먹이다니. 내문이가 성격이 너무 착해서 당신이 자꾸 내문이를 이렇게 무시하는 거예요?”정의의 사도처럼 말하는 전예진의 말에 영내문은 더욱 애처롭고 상처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됐어요. 예진 언니. 그만하세요. 우리 엄마 아빠가 아직 예선의 엄마와 사업을 하고 있어요. 나 때문에 아빠 사업이 잘 안 되면 너무 미안하잖아요.”영내문은 여리디여린 여자처럼 힘없이 말하며 가련한 척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예선은 이 말을 듣고 너무나 가소롭게 느껴져서 손에 들고 있던 빈 커피잔을 영내문의 발에 던졌다.예선은 역겨워하는 눈빛으로 위선적인 영내문을 바라보며 말했다.“맞아요. 잘 기억하세요. 우리 엄마는 Y국 갑부예요. 당신 아버지 사업이 잘 성사되길 원한다면 날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당신은 더 곤란해질 거예요.”“예선. 당신 정말 대단하군요. 감히 어떻게 우리 내문이를 협박할 수가 있어요? 정말로 당신 엄마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갑부면 다예요? 갑부의 딸이면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도 된답니까? 예선, 스스로를 너무 대단하게 여기는 거 아니에요?”전예진은 계속해서 영내문을 옹호하며 감쌌다.예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냉소를 날렸다.“맞아요. 난 아주 대단한 사람이
영내문과 전예진 두 사람은 예선이 문을 나서자 갑자기 음흉한 웃음을 터뜨렸다.예선은 차를 몰고 떠났다.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영내문의 행실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도 자신이 조금 흥분한 나머지 충동적으로 반격을 가했다는 걸 알고 있다.하지만 사실 오랜 세월 동안 그녀의 성격은 그랬었다.다만 소군연을 만나 많이 수그러들었던 것이다.예전에 소만리가 기모진 때문에 힘들어했을 때 예선은 한 번도 기모진을 나무라는데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줄곧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았고 마음속에 화가 나는 것을 억지로 참지 않았다.이번에 영내문과 전예진이 미리 계략을 짜고 그녀에게 디자인을 맡긴 것은 분명 그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이다.회사에 돌아온 후에도 예선은 이 사실을 소군연을 비롯한 다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온 담당 매니저가 예선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매니저는 방금 전예진의 전화를 받았는데 고객이 완전히 화가 나서 예선을 고소하고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게다가 회사는 반드시 그들에게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했다.매니저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선에게 물었다.예선은 아침에 일어난 일을 매니저에게 상세하게 보고했다.전예진의 친구인 영내문은 자신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고 이런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이 계약을 철회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전예진이 요구한 보상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라고 예선은 말했다.매니저는 예선의 말을 믿어 주었고 자신이 직접 전예진과 소통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는 예선의 이름이 각종 사이트 상단에 인기 검색어로 올랐다.예선도 이 소식을 나다희에게서 전해 듣고 직접 인터넷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역시나 자신이 그들과 충돌한 동영상이 떠 있었다.영상 속 예선은 카메라를 향해 커피를 들고 영내문을 향해 뿌리는가 하면 오만하
나다희는 구체적인 정황을 알고 나서 예선을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예선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예선은 원래 소만리에게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꺼냈는데 마침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자마자 저쪽에서 걱정 가득한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너 지금 어디야? 내가 거기로 갈게.”“소만리, 인터넷에서 동영상 봤어?”예선은 소만리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알아차렸다.“모진이 알려줘서 알게 되었어.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할 수가 있어?”소만리가 애가 타는 목소리로 말했다.“너 어디야? 내가 너 있는 쪽으로 갈게.”예선은 이 일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안 그래도 소만리에게 도움을 청하려던 참이어서 거절하지 않았다.십여 분 후 소만리는 예선의 회사 아래층에 도착했다.예선은 새로 온 상사에게 휴가계를 내고 소만리를 만나러 내려갔다.나다희는 예선이 걱정되어 슬그머니 그녀의 뒤를 따라왔고 예선과 소만리가 회사 옆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슬그머니 들어가 자리를 찾아 앉았다.나다희는 멀리서 예선과 소만리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했다.“예선 언니랑 같이 있는 저 사람,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나다희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그녀는 저 예쁜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하다가 예선과 시선을 마주치고 말았다.커피잔을 움켜쥔 나다희는 자신이 들키자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나다희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예선을 향해 걸어갔다.“다희 씨, 어떻게 여기 왔어요?”예선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날 따라온 거예요?”“언니가 걱정되어서 따라왔어요.”나다희의 대답을 듣고 예선과 소만리 모두 마음이 따뜻해졌다.소만리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서 자신을 소개했다.“안녕하세요. 전 예선이 친구 소만리예요. 예선이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정말 요즘 보기 드물게
나다희는 화가 나서 애꿎은 커피잔을 꽉 움켜쥐었다.이런 소인배 같은 사람의 지질한 행동에 격분했다니!“예선 언니, 소만리 언니. 이 일은 해결하려고 들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동영상 전체 내용만 구하면 예선 언니가 결백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요.”나다희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예선 언니, 아까 말했을 때 커피를 사다 준 하인이 있었다고 했었죠? 그 하인을 찾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소만리와 예선도 이 방법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이런 동영상을 찍어서 예선을 모함하는 데 동참한 하인이라면 얼마든지 돈으로 매수할 수 있을 것이다.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이런 심보 고약한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소만리, 이 일은 너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겠어. 난 소군연 선배가 이 일로 날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리고 영내문과의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회사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도 원치 않아. 우선 실시간 검색어와 동영상을 삭제해 주는 것부터 좀 도와주면 좋겠어, 소만리.”예선이 소만리를 찾은 것은 이런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소만리는 예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진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인터넷에서 이러쿵저러쿵 키보드나 두들기는 불나방 같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예선을 공격하는 꼴을 소만리부터가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게다가 그 전예진이라는 여자는 인플루언서였고 그녀를 따르는 팔로워들이 수백만이었다.그녀가 이렇게 선동하고 있었으니 예선은 지금 풍랑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네티즌들은 익명의 이름 뒤에 숨어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나다희는 실검을 없애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마음속에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안 돼요, 예선 언니. 실검을 삭제하면 안 될 것 같아요.”나다희가 반대하고 나섰고 그녀의 건의는 소만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과 일치했다.하지만 소만리는 예선이 네티즌들에게 마구잡이로 욕을 먹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영내문은 이 말을 하면서 이를 악물었다.옆에 있던 전예진은 어떻게 하면 인터넷을 더 뜨겁게 달굴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생각했다.이 기회로 자신의 유명세를 더 폭발적으로 끌어올릴 심산이었다.그야말로 그녀는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었다.영상 아래 댓글들이 모두 예선에게 퍼붓는 욕설 일색인 것을 본 전예진은 억울하다는 취지로 댓글을 달았다.거의 모든 네티즌들은 지금 영내문을 옹호하는 한편 예선의 행동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그리고 예선은 진상을 알지 못하는 네티즌들에 의해 돈 좀 있다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다른 사람의 약혼자를 빼앗고 괴롭히는 몹쓸 여자로 매도되고 있었다.여기에 더해 전예진은 예선의 개인 신상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해 버렸다.예선이 예전에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 지금 어디서 일을 하고 있는지 심지어는 지금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까지 모든 것이 다 훤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전예진은 자신이 폭로한 것으로도 아주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보다 더 집요한 네티즌들이 예선의 예전 학창 시절 정보까지 모조리 다 폭로할 줄은 몰랐다.예선이 소만리와 대학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었고 경도 귀족 태자의 아내와 절친한 사이라고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이 사람들은 네티즌들이 계속 이렇게 예선을 폭로하면 아예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며 조롱하듯 말했다.이 댓글을 본 다른 네티즌들은 실시간 검색어에서 예선이 사라진다면 그녀가 비열하고 악독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욱 확실시되는 것이라고 했다.혹자는 소만리도 같이 싸잡아서 욕했다.소만리는 예선을 자신의 부모님 집으로 데려갔다.예선은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지만 그래도 깊이 담아 두지 않았다. 영내문이 자신에게 놓아둔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이런 상황을 깊이 담아 둔다면 그녀는 질 것이 분명했고 그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님을 무엇보다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진실이 밝혀지면 그녀를 매도하고 욕하는 네티즌
기모진은 원래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예선이 진지하게 말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밤 소만리와 같이 잘 거야?”“네, 그러려구요.”예선은 정색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보셨죠? 지금 네티즌들이 내 개인적인 신상 정보를 다 폭로해 버린 거요? 어떤 사람들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나를 보겠다고 진을 치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어떻게 집에 들어가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소만리를 꼭 껴안고 자려고 했죠.”“...”기모진은 잠시 할 말이 없었지만 이내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다.“소군연은 왜 널 찾으러 오지 않는 거야? 명색이 남자친구라면서. 지금 남자친구 역할을 톡톡히 해야 할 때잖아.”“난 남자친구한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요. 안 그랬으면 내가 소만리를 따라 여기 왔겠어요?”예선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기모진은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어려운 상황에 있는 친구 옆에 소만리가 있어 주는 건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기모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련한 눈빛으로 소만리를 쳐다보았다.그 모습에 예선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예전에 그녀가 알던 그 기모진 맞아?분명히 아니었다.예선이 웃는 것을 보고 기모진은 자신이 속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눈치챘지만 그의 기분은 오히려 좋아졌다.보아하니 오늘 밤 홀로 텅 빈 소만리의 자리를 바라보지 않아도 될 모양이었다.예선은 기모진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를 짐작하고는 소만리를 놀렸다.“소만리, 네 남편 좀 봐. 오늘 밤 너를 못 안고 잘까 봐 얼마나 걱정하는지 말이야. 내가 어떻게 널 사이에 두고 네 남편과 라이벌이 될 수 있겠니?”소만리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고 기모진은 무안한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애들은 잘 준비를 잘 하고 있나, 나 좀 보고 올게. 사이좋은 자매님들 계속 얘기 나누십시오. 혹시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기모진은 소만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후 바로 돌아섰다.예선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
소군연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했고 애가 타는 말투에는 예선이 자신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원망이 섞여 있었다.그는 그녀의 약혼자이고 현재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그는 예선이 도움이 필요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고 싶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마음을 알아차린 후 황급히 해명했다.“군연, 난 당신한테 먼저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이 요즘 프로젝트 때문에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일로 당신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선 소만리와 함께 일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서 나중에 당신한테 말할 생각이었어요.”소군연은 예선의 해명을 듣고 어느 정도 마음이 풀렸는지 바로 소만리에게 고개를 돌렸다.“그럼 지금 어떤 상황인 거야? 해결된 거야? 내가 오기 전에 잠깐 인터넷 봤는데 아직도 예선을 욕하는 글이 점점 더 쏟아지고 있었어.”“걱정하지 마세요. 악플에는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나쁜 의도를 품은 사람들이 떠드는 헛소문은 조만간 진실이 밝혀질 거니까요.”예선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소군연이 자신을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게다가 소만리와 의논한 끝에 이 일을 좀 더 키워 보기로 했어요.”“키운다고?”소군연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어떻게 키운다는 거야?”“상대방이 놀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함께 놀아 줄 거예요. 지금 예선이를 욕하는 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까요. 이 일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어요.”기모진의 목소리가 계단 입구에서 들려왔고 그는 어린 막내를 안고 천천히 걸어왔다.소군연은 고개를 돌아보았고 기모진의 두 눈을 마주하는 순간 두 사람의 눈에는 어떤 적개심도 없이 평온한 빛이 감돌았다.소군연도 기모진이 말한 뜻을 이해했다.배후의 인물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떠들 대로 떠들라고 판을 벌인 것이다.소군연은 아직 이 사건의 경위를 잘 몰랐지만 예선을 믿고 기꺼이 그녀의 편에 서 주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