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풍은 갑자기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는지 기모진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결심과 입장을 밝혔다.기모진은 강자풍의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었지만 강자풍이 자신과 소만리의 과거 일을 예로 들 줄은 몰랐다.그때를 돌이켜보면 강자풍의 말대로 소만리와 기모진은 서로 한 번 가졌던 인연을 오랜 세월 동안 잊지 않았다.하지만.기모진은 생각에 잠긴 듯 강자풍을 바라보았다.“그래서 난 이제 마음 편히 여온이를 잘 돌볼 거예요. 여온이가 날 싫다고 하지 않는 이상 항상 곁에 있을 거구요.”강자풍은 확고한 눈빛으로 결연하게 말했다.“기모진, 여온이가 밝고 건강하게 바라는 건 나나 당신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선을 지키며 살 것이고 여온이를 힘들게 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강자풍의 말을 듣고 기모진은 미소를 지었다.“여온이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 그렇기 때문에 여온이의 감정은 지금 아주 직관적인 거지. 네가 여온이한테 잘 해주면 여온이도 그걸 느낄 것이고 나와 소만리도 느낄 수 있어. 그래서 우리는 여온이를 네 곁에 안심하고 두려는 거야.”“정말요?”강자풍은 마음이 너무나 들떴지만 차분하게 평정심을 찾으려고 애썼다.“그래.”기모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소만리와 난 집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어 이제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려고 해. 여기 모든 상황이 이제 좋아졌으니 우리도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지.”강자풍은 이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고 뿌듯했다.그의 얼굴은 감격스러운 듯 얼굴이 상기되었고 기쁨이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며칠 후 남연풍은 마침내 해독제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기여온은 해독제를 맞은 후 피부에 난 붉은 반점도 점차 사라졌다.이틀 동안 기여온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다른 합병증이 없음을 확인한 소만리와 기모진은 다음날 안심하고 공항으로 향했다.강자풍은 기여온의 손을 잡고 서서 그들을 배웅했다.소만리는 아쉬워하며 기여온 앞에 웅크리고 앉아 아이
위청재는 소만리와 기모진을 원망했다.“그토록 오랫동안 바쁘게 외국을 돌아다니더니 그 결과가 이거냐!”성난 위청재를 보고 소만리는 눈을 들어 기모진과 마주보며 웃었다.그들고 그동안 F국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일체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다.가족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소만리는 활짝 웃으며 자초지종을 조곤조곤 설명했다.“어머니, 걱정 마세요. 여온이 이제 많이 나았어요. 그리고 강자풍이 우리들 중 누구보다도 더 여온이를 잘 돌볼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위청재는 반신반의하며 소만리를 쳐다보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사실인지 아닌지 난 참 믿을 수가 없구나.”“물론 사실이에요.”기모진이 옆에서 소만리의 말을 거들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어머니, 우리 며칠 동안 너무 뛰어다녀서 피곤해요. 우선 방으로 올라가서 좀 쉴게요.”“그래 가라 가.”위청재가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올라가라는 손짓을 했다.그러다가 그녀는 뭔가를 떠올리며 말했다.“참, 이틀 전에 택배가 하나 왔는데 모진이 네 앞으로 온 거야.”위청재는 이렇게 말하며 돌아서서 택배를 기모진에게 주었다.기모진이 받아보니 자신에게 온 건 맞지만 보낸 사람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소만리가 이미 위층으로 올라간 것을 보고 기모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소만리를 따라 방으로 올라온 후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어둠이 깔릴 무렵 위청재가 그들에게 식사를 하라고 부르는 소리에 소만리와 기모진은 나른한 몸으로 겨우 눈을 떴다.아래층으로 내려간 소만리는 그녀의 부모님도 와 계신 것을 보았다.소만리를 바라보는 사화정의 눈빛은 따뜻한 모성애로 가득 차 있었다.계속 분주하게 돌아다닌 소만리가 안쓰러웠는지 사화정은 몇 번이나 음식을 집어 소만리의 그릇에 올리며 더 먹으라고 권했다.소만리는 자신을 향한 사화정의 관심에 무한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었고 자신이 엄마가 된 후에 더욱더 그 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소만리는 자신도 모르게
기모진은 회사 서류 같은 것이 들어 있을 줄 알고 열어보니 서류가 아니었다.안에는 또 다른 봉투가 있었고 기모진은 의심스러운 듯 잠시 보다가 봉투를 열어 보았다.그러나 막상 봉투를 열어 본 기모진의 눈빛이 확 잠겨 버렸다.안에는 소만리의 사진 몇 장만 들어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사진 속 소만리는 기 씨 그룹 로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바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그냥 일상적인 사진일 뿐이었는데 왠지 기모진에게는 불길한 기운이 스쳤다.사진 속 소만리의 얼굴에 크게 X 표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기모진은 소만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재빨리 사진을 접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기모진은 육경에게 전화를 걸어 택배 봉투 위에 써 있는 송장번호를 알려주며 택배의 발송지를 알아보도록 했다.육경에게 지시를 마친 기모진이 전화를 끊고 뒤돌아서 보니 소만리가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소만리?”그는 약간 놀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만리를 보며 말했다.“어머니는? 당신과 얘기하고 있지 않았어?”소만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는 기란군과 막내를 데리고 산책가셨어. 택배로 온 그 봉투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소만리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지 몰랐던 기모진은 머뭇거리며 말했다.“소만리, 당신...”“아까 어머니랑 얘기하면서도 당신을 유심히 봤어. 그 봉투 안에 뭐가 들었길래 그렇게 몰래 전화를 한 거야?”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소만리의 모습을 보고 기모진은 갑자기 좌절감이 느껴졌다.어떻게 그녀의 눈을 속일 수가 있겠는가?기모진은 더 이상 숨길 수도, 숨길 생각도 없어서 서류 봉투를 소만리에게 건넸다.기모진이 염려하던 것과는 달리 소만리는 봉투 안의 사진을 보고는 아주 담담하게 입꼬리를 슬며시 잡아당겼다.무심한 듯 미소를 짓는 소만리의 모습에 기모진은 살짝 걱정이 되었다.“소만
”막내야, 뭐라고 말했어?”기모진도 몸을 웅크리고 앉아 막내에게 물었다.그러자 아이는 천진난만한 눈을 깜빡이며 사뭇 진지하게 기모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빠.”막내는 정확하게 아빠라고 말했다.기모진의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린 듯하면서도 가슴이 찡했다.소만리가 이 아이를 낳았을 때를 생각하면 자신이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지 장말 면목이 없었다.그는 자신이 한번도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을 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세 명의 아이들 중 한 명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막내가 벌써 엄마 아빠라고 부르다니 기란군보다 더 똑똑하겠는데.”위청재가 웃으며 말했다.기란군은 할머니의 말에 입을 삐죽거렸다.“그 나쁜 여자가 우리 엄마가 아니었어서 난 엄마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았어.”기란군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모두들 조금 당황스러웠다.당시 기란군은 소만영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소만리가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게 된 것은 모두 시어머니인 위청재가 옆에서 부추긴 책임이 컸다.기란군의 말에 위청재는 불편함을 느끼며 당혹스러워했고 기모진 또한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다.두 사람의 불편한 마음을 눈치챈 소만리는 얼른 막내를 안아들고 기란군을 향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기란군은 정말 똑똑해. 모두가 엄마를 좋아하지 않았을 때도 기란군은 여전히 엄마 편이었어.”그녀는 웃으며 기란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기란군과 막내 모두 똑똑하고 소중한 엄마 아들이야.”“그럼 엄마는 내가 더 좋아? 막내가 더 좋아?”기란군이 큰 눈을 깜빡이며 세상 모든 엄마에게 가장 어렵다는 질문을 던졌다.소만리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엄마는 너희들 모두 똑같이 사랑해. 기란군, 여온이, 막내 너희들 모두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야.”“어?”기란군은 큰 눈을 깜빡이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럼 아빠는?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 아니야?”소만리는 시치미를 떼고 기모진
기뻐하는 모현의 모습을 보자 소만리는 모현의 마음에 실망을 안길 수 없었다.그녀는 상냥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모현의 옆에 앉아 유쾌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기모진은 회사에 도착해서 회의를 한 후 마음속에 소만리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솟구쳤다.분명 조금밖에 떨어져 있진 않았는데도 그의 마음속에는 소만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기모진은 수중에 있던 서류를 처리한 후 소만리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때 마침 육경이 들어왔고 기모진은 자연스럽게 택배 서류에 관한 일을 떠올렸다.“어제 부탁했던 그 송장번호는 좀 알아봤어? 뭐가 좀 나왔어?”육경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뭔가 이상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사장님 혹시 어제 그 송장번호 잘못된 거 아니죠? 제가 사람을 불러서 확인을 해 보니 말씀하신 그 송장번호는 존재하지도 않고 운송 기록도 없었어요.”이 말을 듣고 기모진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존재하지 않는 송장번호라고?”“네.”육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기모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알았어. 우선 나가 봐.”“네, 알겠습니다.”육경은 들고 있던 택배 봉투를 내려놓고 나갔다.기모진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며 핸드폰을 들고 소만리에게 연락하려고 했다.그때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사장님, 방금 특급 우편물이 도착했습니다.”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문 앞에 서 있었고 손에는 서류 봉투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기모진은 그 서류 봉투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했다.“어서 들고 와.”그가 손짓했다.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얼른 들어와서 서류 봉투를 기모진에게 건네주고는 돌아섰다.기모진이 보낸 사람을 힐끗 보니 역시 어제와 같은 사람이 보낸 것이었다.그는 주저하지 않고 서류 봉투를 열었고 역시나 이번에도 소만리의 사진 몇 장만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폴라로이드 사진이었고 약 30분 전쯤에 찍은 것이었다.기모진은 당연히 오늘 소만리가 입을 옷을 기
”소만리, 꼭 상의해야 할 일이 있어.”소만리는 기모진의 말을 듣자마자 뭔가 눈치챈 듯 바로 물었다.“이렇게 급하게 날 찾아와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는 걸 보니 누군가가 또 당신한테 무슨 이상한 물건 보낸 거지? 그렇지?”기모진은 약간 놀란 얼굴을 하고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소만리, 당신 그거 어떻게 알았어?”“내가 봤기 때문이야.”“봤다고?”“응.”소만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내가 방금 아빠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내가 막 나가서 확인하려고 했는데 마침 아빠가 사무실에 들어오셨어.”이 말을 들으니 기모진은 더욱 걱정이 되었다.그는 조금 전 받은 사진을 그녀에게 건네주었고 소만리는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모진, 걱정하지 마. 짚이는 데가 있어.”“누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나한테 말해 봐.”소만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이 사람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야. 게다가 그 여자는 얼마 전에 우리한테 경고까지 했었잖아.”소만리의 말을 듣고 기모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그 여자?”“음.”소만리는 확신했다.“그 여자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어.”“정말 미치광이군.”기모진은 눈살을 찌푸렸다.“사실의 진상을 그 여자한테 알릴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그 여자가 또 무슨 미친 짓을 할지 몰라.”기모진은 여전히 걱정되었고 근심 어린 눈빛으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소만리, 난 그래도 당신이 너무 걱정돼. 당신은 꼭 내 옆에 붙어 있어야 해.”“응, 당신 옆에 꼭 붙어 있을게. 당신한테 걱정끼치지 않을 거야.”소만리는 시원스레 대답하며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냈다.앞으로 며칠 동안 소만리는 그에게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모진은 계속해서 택배 봉투를 받았고 내용물은 예외 없이 소만리의 일상 사진들이었다
기모진은 원래 소만리가 자신을 설득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소만리의 말을 듣고 있으니 어느새 점점 그녀의 말에 수긍하는 모습이 되어 가고 있었다.소만리는 얼굴이 무거워진 남자에게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어때? 내 생각 괜찮지 않아?”기모진은 눈앞에 있는 소만리의 아름다운 모습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그럼 아내 말에 따를게.”기모진의 대답에 소만리는 흡족한 듯 감미로운 미소로 화답했고 기모진의 뺨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기모진은 갑자기 꽃망울이 터지듯 환한 미소를 지었고 그대로 소만리를 끌어안았다.“소만리, 우리 이제 자러 가자. 푹 자고 일어나서 성가신 일이나 처리하자고.”“좋아.”소만리는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일찍 잔 덕에 다음날 소만리는 개운하게 눈을 떴다.그녀는 일어나자마자 기란군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아이의 가방을 확인한 뒤 기란군 옆에서 앉아 아들이 식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기란군은 소만리의 시선이 계속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자 입을 열었다.“엄마, 왜 나만 계속 쳐다보는 거야? 내 얼굴에 뭐 묻었어?”소만리는 환하게 웃으며 아들의 귀여운 뺨을 살짝 꼬집었다.“기란군이 이렇게 예쁜데 뭐가 묻었겠어? 엄마는 기란군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 쳐다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아니야.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고 엄마는 아빠를 볼 때마다 눈에서 빛이 나.”기란군이 반박했다.소만리는 아들이 자신을 놀리는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맞아. 엄마는 아빠를 좋아해. 그렇지만 엄마는 기란군을 더 좋아해. 왜냐하면 기란군은 엄마의 보물이니까.”기란군은 소만리의 말이 마음에 드는 듯 얼굴에 환한 미소를 떠올렸다.아이가 무슨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겠는가.아이는 단지 엄마 아빠의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을 분이다.기란군이 아침 식사를 마치자 소만리는 기모진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기란군을 데리고 학교에 갔다.학교로 가는 길도 돌아오는 길도 아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기란군은 숨이 멎을 듯 깜짝 놀랐다.소만리가 무의식적으로 기란군을 보호하려고 몸을 돌리려던 찰나 갑자기 칼끝이 그녀의 등 뒤를 향했다.“소만리, 내가 시키는 대로 곧장 차를 몰고 가요.”귀 뒤에서 명령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소만리는 눈을 들어 백미러를 바라보았다.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소만리, 내 말 안 들려요! 운전하려니까!”“왜 우리 엄마한테 소리 질러요! 우리 엄마한테서 그거 치워요!”기란군이 그 여자를 말렸다.“흥, 꼬맹아. 넌 잠자코 있는 게 좋을 거야. 네가 자꾸 말을 하면 너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여자가 협박했다.“지금 바로 운전할 테니까 아이한테는 험악하게 굴지 마.”소만리는 백미러로 기란군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소만리, 누가 지금 당신이랑 협상하러 온 줄 알아요! 수작 부리지 말고 현명하게 처신하는 게 좋을 거예요!”여자의 매서운 경고가 이어졌다.소만리는 눈썹을 찡그렸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지자 그녀는 다시 엑셀을 밟아 여자의 뜻에 따라 잠자코 운전했다.얼마 후 차는 기 씨 그룹 산하의 6성급 호텔 앞에서 멈췄다.“소만리, 옥상으로.”여자가 다시 명령했다. 소만리는 침착하게 말했다.“너와 함께 옥상으로 갈 수는 있지만 내 아들은 여기에 남겨두어야 해. 어른들의 문제에 아이는 끼어 들이지 말자구.”“엄마.”기란군은 귀여운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소만리는 뒤돌아보며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우리 기란군 착하지. 엄마가 곧 데리러 올게.”“소만리, 오늘 우리 사이에 얽힌 원한을 풀지 않으면 아들을 다시 못 볼 줄 알아.”“알았어, 네 뜻대로 오늘 우리의 원한을 다 풀어보자구.”소만리는 빙긋이 웃더니 여자가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스스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거두며 빠른 걸음으로 소만리를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