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1687장

작가: 십육인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05-02 16:30:12
기모진은 자신의 성격이 원래 침착한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순간 전혀 침착할 수가 없었다.

기묵비의 자포자기가 조카인 기모진을 초조하고 애타게 만들었다.

그는 기묵비가 원한다면 사형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기묵비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했다.

기모진은 기묵비가 초요를 만나고 자신에게 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반드시 살고 싶다고 생각할 줄 알았지만 기묵비는 오히려 죽음을 향한 결심을 더욱 굳건히 한 것 같았다.

“숙부님, 정말 결심하신 거예요?”

기모진은 거듭 확인하며 물었다.

“목숨은 단 한 번뿐이에요.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다구요.”

기모진의 간절한 설득을 듣고 기묵비는 잠시 무슨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한참 후 기묵비는 온화하고 깊은 눈을 들어 올렸다.

“모진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와줘.”

“말씀하세요.”

“앞으로 초요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녀가 원하는 행복, 숙부님이 주실 수 있어요.”

기묵비는 기모진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구부리며 가볍게 웃었다.

“그녀가 행복해지기 위한 전제조건은 나란 사람이 그녀의 삶에서 완전히 멀어지는 거야.”

이 말을 듣고 기모진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어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묵비는 신비로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모진아, 네 능력이면 이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거야. 난 믿어.”

기모진은 웃고 있는 기묵비의 얼굴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기모진은 기묵비가 부탁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점차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기묵비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초요를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기모진은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이럴 수밖에 없는 기묵비도 너무 안쓰러웠다.

기묵비도 후회했지만 후회해 본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기묵비가 느끼는 회한을 기모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에 기모진은 다시 소만리에게 돌아갈 길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지금 기묵비와 초요는...

...

사월산의 바닷가.

소만리는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688장

    이 순간 소만리는 자신이 초요를 위로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30분 후 기모진은 차를 몰고 사월산 바닷가로 다시 돌아왔다.기모진을 보자마자 초요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물었다.“모진 오빠, 그 사람 만났어요?”기모진은 기대에 찬 초요의 표정을 보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이 뭐라고 하던가요?”기모진은 떠나기 전 기묵비가 한 부탁을 떠올리며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네가 행복하기만을 바란다고 했어.”이 짧은 한 마디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초요의 가슴을 헤집었다.그녀의 눈속을 가득 채웠던 실낱같은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마지막까지 품었던 희망의 끈은 불어오는 바람이 몰고 가 버린 듯 그녀의 눈동자는 휑한 빛을 띠었다.초요를 집으로 돌려보낸 후 기모진은 소만리를 데리고 남사택의 집으로 갔다.남사택은 잠시 진찰하러 병원에 가고 집에 없었다.기모진이 기묵비를 만나고 온 뒤 소만리는 기모진이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좀 전까지 초요가 차에 함께 타고 있어서 물어보지 못하다가 그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모진, 숙부님 만나러 갔을 때 무슨 일 있었어? 당신이 초요한테 말한 게 다가 아니지? 그렇게 간단할 리 없잖아.”그렇지 않아도 기모진은 소만리에게 사실을 말하려고 했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빨리 눈치챌 줄은 몰랐다.“소만리, 당신 날 너무 잘 아는 것 같아.”기모진은 감탄해 마지않는 듯 소만리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그 얘기만 한 건 아니야.”“그럼 또 무슨 얘기가 있었어?”“나한테 부탁한 게 있어.”“무슨 일인데? 초요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거야?”“응. 다른 사람은 다 알아도 되지만 초요만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야.”기모진은 얼굴빛이 약간 굳어지며 말했다.기모진의 표정을 보니 소만리의 마음속에 더욱 호기심과 궁금증이 일었다.그만큼 이 일이 중요한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그녀가 추궁했다.

    최신 업데이트 : 2023-05-02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689장

    남연풍은 달력을 몇 번 쳐다보다가 싸늘한 낯빛으로 돌아섰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동시에 달력에 시선을 옮겼다.이날?남연풍이 말하는 이날은 무슨 날일까?교외의 한 공동묘지.남사택은 오후 내내 합장된 묘비 앞에 앉아 있었다.원래 오늘 오후에 그는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어야 했지만 오늘은 너무나 특별한 날이었다.남사택은 묘비 앞 난간 가장자리에 홀로 앉아 눈앞의 묘비를 가만히 주시하며 미소를 띤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또 1년이 지났어요. 세월 참 빠르네요. 일찍 오려고 했는데 친구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좀 늦었어요.”남사택은 묘비를 바라보며 말했다.“실망하셨죠? 올해도 저 혼자만 와서. 누나가...”“나 지금 왔잖아.”남사택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뚫고 난데없는 목소리가 남사택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그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으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남연풍이 우아한 코트를 입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탈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여유로운 자태로 묘비 앞으로 다가온 남연풍은 묘비 앞에 놓여진 하얀 국화를 보다가 하얀 연기를 피워 내고 있는 향초로 시선을 돌렸다.이윽고 그녀는 눈앞의 묘비 위에 쓰여진 글씨에 눈을 고정시켰다가 바로 눈썹을 찌푸리더니 안색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언제 돌아왔어?”얼마 전 그들이 전화로 통화했을 때 남연풍의 쌀쌀한 태도를 아직도 남사택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십수 년 동안 부모님께 인사 한 마디 드리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여기 나타나리라고는 남사택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남연풍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내가 언제 돌아왔느냐가 중요해?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중요한 날 여기 있다는 거지, 안 그래?”남사택은 얼굴을 찡그렸다.남연풍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딘가 좀 불편했다.그러나 오늘은 부모님의 기일이고 남연풍이 와서 같이 추모하는 것이

    최신 업데이트 : 2023-05-02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690장

    남사택은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남연풍, 난 당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참 어리석기 짝이 없군! 당신은 항상 엄마 아빠가 당신을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한다고 생각했어. 심지어 당신을 산비아에 연수를 보냈을 때도 부모님들이 당신을 버리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어. 남연풍, 당신은 스스로 너무 자격지심이 강해!”“입 다물어!”남연풍은 화가 나서 큰소리로 남사택을 제지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훈계야! 남사택, 내가 경고하는데, 나와 소만리, 기모진 사이의 일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마. 만약 네가 감히 그들을 위해서 해독제를 만들어 준다면 그건 너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란 걸 알아 둬!”“뭐? 스스로 무덤을 판다고? 당신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고승겸 때문이야? 다 그 사람이 시킨 거 맞지?”남사택이 고승겸을 언급하자 남연풍의 얼굴빛이 급변했다.남연풍의 표정이 확 변하는 모습을 보니 남사택의 마음이 더욱 아팠다.“당신 그 사람 사랑하는 거야?”남사택이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남연풍은 아무 말이 없었다.남사택은 미간에 더욱 깊은 주름을 지으며 말했다.“남연풍, 그 남자에게서 당장 멀어져.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야.”그는 말을 마치고 작은 수첩 하나를 외투 주머니에서 꺼냈다.“알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당신 안 믿을 거라는 거. 그럼 가서 당신 스스로 진실을 밝혀봐.”그는 작은 수첩을 남연풍 앞에 내밀었다. 남연풍은 눈을 내리깔고 수첩을 유심히 보았다.이윽고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이내 움츠러들었다.낡고 오래된 듯한 작은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도 알고 있던 수첩이었다.너무 잘 알고 있어서 겉표지에 묻은 갈색 얼룩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할 정도였다.“아빠의 메모장이야, 잘 알고 있겠지만. 아빠 글씨도 잘 알 거야.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후 유품에서 발견하고는 내가 보관하고 있었어. 아빠가 쓴 걸 잘 읽어봐. 그들이 얼마나 당신을

    최신 업데이트 : 2023-05-02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691장

    수첩을 쥔 남연풍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낯익은 글씨체를 보자 매서운 찬바람에도 그녀의 눈가는 순식간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얼마나 지났을까.남연풍은 빨간 입술을 깨물고 작은 수첩 한 귀퉁이를 움켜쥐며 싸늘한 표정으로 일어섰다.눈가에 자욱하게 드리운 안개가 그녀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눈앞의 묘비에 새겨진 글씨를 한없이 바라보다가 마침내 돌아섰다.며칠 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소식이 빠르게 퍼졌다.기묵비가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소식이었다.기묵비의 사진, 학력, 배경, 모든 신상 자료가 노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사형을 두고 쾌재를 불렀다.죄를 지은 사람은 동정과 안타까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초요도 그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 소식을 본 순간 그녀는 온몸이 얼음 저장고에 고립된 사람처럼 차갑게 굳어 버렸다.역시나 그는 항소하지 않고 기꺼이 사형을 받아들였다.사형 집행 날짜도 앞당겨졌다.초요는 거실에서 도우미와 놀고 있는 두 아이를 보고 생각 끝에 외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그녀가 현관에 이르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매달렸다.“엄마, 어디 가?”어린 녀석이 천진난만한 눈망울에 호기심을 가득 채운 채 초요를 바라보았다.초요는 몸을 구부리고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엄마 지금 아저씨 잠깐 보러 갔다 올게.”“아저씨? 그때 나 풍선 주워 준 잘생긴 아저씨 아니야?”아이가 작은 입을 열심히 움직이며 물었다. 비록 말이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초요는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녀는 아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나도 가고 싶어.”아이가 작고 귀여운 손을 흔들었다. 초요는 잠시 망설인 뒤 아이에게 되물었다.“서일이도 정말 가고 싶어?”“응!”아이는 단번에 대답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초요는 잠시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서일이도 같이 가

    최신 업데이트 : 2023-05-03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692장

    초요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감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손을 맞잡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조금도 따스함을 가져다주지 못했다.초요가 들어간 후 교도관에게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지금 기묵비의 상황이 특수한 관계로 교도관은 초요에게 밖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기다리는 동안 초요의 마음은 타들어갔다.그녀는 대기실을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한 표정으로 교도관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관이 다시 돌아왔지만 초요의 마음을 차갑게 하는 답을 가져왔다.“기묵비는 지금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당신은 더더욱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초요가 놀라서 멍하니 교도관을 바라보았다.당신이 지금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였군요.그녀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고맙습니다.”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초요는 바로 돌아섰지만 두 걸음 걷다가 다시 돌아섰다.“그 사람, 정말 곧 사형 집행되나요?”교도관은 초요의 두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교도관의 눈빛을 마주한 초요는 눈앞이 그야말로 캄캄해졌고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타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계속 밖에서 초요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히려 더욱 오래 기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초요가 기묵비를 만났다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결국 초요의 모습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정말 숙부님이 결심을 하신 모양이야.”소만리와 기모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숙부님도 많이 고심하시고 한 결정일 거야.”“그럼 숙부님의 뜻을 존중해 드리자고. 마지막 소원이시라면 들어드려야지.”“그래.”소만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갑자기 차가운 겨울 햇살에 한 줄기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초요는 아무런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을 줄곧 넋을 잃고 집에 틀어박혔다.외출도

    최신 업데이트 : 2023-05-03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693장

    몇 마디 되지 않는 기모진의 말이 초요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그가 떠났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초요는 바로 알 수 있었다.“초요, 듣고 있어?”기모진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초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듣고 있어요.”감정을 자제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그녀의 목소리 속에 떨림은 감출 수가 없었다.“고마워요. 모진 오빠. 다른 할 말이 없으면 전화 이만 끊을게요.”이 말과 거의 동시에 초요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무슨 말을 할 용기도 나지 않아서 잠자코 듣기만 했지만 다른 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눈앞의 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거세게 내리는 비는 마치 그녀의 심장을 적셔버리겠다고 마음먹은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내리쳤다.품에 안긴 노란 장미도 한순간에 본래의 빛을 잃은 듯했다.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그녀의 시야에는 흐릿하게 흔들리는 모습들뿐이었다.기묵비, 다음 생에 우리가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생에 당신과 다시 만날 날은 없겠군요....그날 독소가 발작한 후 소만리도 기 씨 본가로 거처를 옮겼다.원래는 소만리의 몸속에 독소가 발작을 일으키면 그 틈을 타 남연풍이 준 시약을 열어 샘플을 채취하려고 했었지만 당시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서 남사택은 결국 시약 샘플을 채취하지 못했다.이 점에 대해 남사택은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소만리를 이사 오게 한 목적이 샘플을 채취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그러나 남사택은 여기서 낙담하지 않고 남연풍이 개발한 독소를 다각도에서 연구하기 시작했다.소만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기모진은 더욱 걱정이 되었다.그는 남연풍이 소만리에게 어떤 독소를 썼는지 또 소만리의 다음 발작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전혀 알지 못했다.그는 자신의 몸에서 독소가 발작을 일으켰을 때를 떠올렸다.자신이 겪은 고통보다 몇 배나 더 깊은 고통을 소만리가 겪을 생각을 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런 걱정을

    최신 업데이트 : 2023-05-03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694장

    ”그래.”소만리는 강자풍을 꼭 만나고 싶었다.결정을 내리자마자 소만리의 핸드폰이 울렸다.초요에게서 온 전화임을 알고 소만리는 기모진을 보았다.“소만리, 숙부님이 마지막으로 당부한 일을 잊지 마.”“알고 있어.”소만리는 다짐을 하고서야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에서 초요의 목소리 대신 추적추적 빗소리만이 들렸다.“초요.”소만리가 정적을 깨뜨리고 초요를 불렀다. 초요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저예요, 소만리 언니.”초요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소만리 언니, 그 사람 어디에 묻혔는지 알고 싶어요.”소만리는 기모진과 눈을 마주치고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보러 가려고?”“그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날 보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이제는 내가 직접 마지막으로 그 사람 한 번 보고 싶어요.”초요는 애써 감정을 억누른 채 말을 했지만 그녀의 말속에 묻어나는 침통한 심정은 너무도 잘 알 수 있었다.소만리도 많은 말은 접어두고 간결하게 말했다.“이따가 주소 보내줄게.”“고마워요, 소만리 언니. 그럼 이만 끊을게요.”“초요.”소만리가 초요를 불러 세웠다.“아직도 숙부님이 원망스러워?”이 말이 떨어지자 전화기 너머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소만리도 대충 초요의 대답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다시 묻지 않았다.“주소 보내줄게. 비가 좀 그친 뒤에 가. 비 오는 날은 좀 불편해.”“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소만리 언니. 잘 지낼게요.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게요.”“그래, 그럼 좋겠어.”소만리는 마음을 놓으며 전화를 끊었지만 자신이 초요에게 주소를 알려주면 바로 지금 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소만리의 예상대로 주소를 받은 초요는 바로 우산을 쓴 채 외출했다.찬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는 겨울 아침.묘지 안에서 부는 비바람 소리는 세상의 모든 고요를 다 불러 모은 듯 유난히 고요하게 들렸다.초요는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며 그의 이름

    최신 업데이트 : 2023-05-03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695장

    초요는 경계하며 뒤로 두어 발짝 물러섰다.전에 기묵비를 괴롭혔던 건달들이 아닐까 짐작했지만 보아하니 행세가 건달들같지는 않았다.“당신들 누구세요?”그녀는 다시 추궁하면서 슬그머니 핸드폰을 꺼내 긴급 전화를 걸려고 했다.“초요 아가씨, 겁내지 마. 악의는 없어. 다만 우리 선생님이 당신한테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을 뿐이야.”“당신이 말하는 선생님이 누구예요?”초요는 건달들에게 물어보며 한 손으로는 비상연락처를 눌렀다.“가보면 누군지 알 수 있을 테니 우리가 야만적으로 당신을 차에 끌어다 태우지 않도록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건달들 중 점잖게 보이는 남자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초요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그러나 그녀가 전화기에 대고 뭐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경호원 몇 명이 그녀에게 달려왔다.“초요 아가씨, 순순히 따르시죠.”경호원들과 건달들의 행동을 보고 초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당신들이 말하는 그 선생이 누구예요? 뭣 때문에 날 이렇게 끌고 가려는 거예요?”남자는 초요가 협조적이지 않자 마지못해 한숨을 내쉬었다.“초요 아가씨가 협조하지 않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우리 방식으로 당신을 차에 태울 수밖에 없어.”남자는 말하면서 주변에 있던 경호원에게 눈짓을 했다.두 경호원은 초요의 양쪽으로 가서 그녀의 팔을 꽉 잡아 제압했다.“뭐하는 거야! 이거 놔!”초요는 있는 힘껏 발버둥쳤지만 건장한 두 남자에게 제압당해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강제로 차에 태워졌다. 차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이런 상황에서 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려는 것도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초요는 그들이 끌고 가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남사택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끝나고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조금 전 초요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가 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초요의 핸드폰은 이

    최신 업데이트 : 2023-05-04

최신 챕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9장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8장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7장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6장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5장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4장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3장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2장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1장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