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지만, 강용에게서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별장 주인은 그들을 안전하게 공항까지 데려다줄 차량을 준비했다.장소월도 알고 있었다. 강용이 그들을 위해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아가씨, 더 지체하면 난기류가 생겨서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습니다.” ... “어떻게 됐어? 그놈이 위치 자백했어?”“주인님! 그놈 도저히 입을 열지 않습니다.”“말을 안 한다고? 그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지켜봐야겠군!” 강지훈이 바로 화제를 바꾸었다. “전연우 쪽 상황은 어때?”“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매일 아이를 돌보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강지훈은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친자식도 아닌데 그렇게 지극정성이라니. 와이프가 도망쳤는데도 마음 편하게 앉아 있는다고? 한 시도 놓치지 말고 주시해.”“예, 주인님!”기사는 하늘에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계속 차를 몰고 있었다.“소월아, 우리 운이 정말 좋다! 오는 길에 나쁜 사람 한 명도 안 만났어.”전연우의 부하들이 몰래 두 사람을 보호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토록 순조로울 수 있었겠는가.이처럼 간단할 리 없다는 생각에 장소월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저 폭풍전야의 고요함 같이 느껴질 뿐이었다.장소월은 소현아의 손을 잡고 불안한 얼굴로 공항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로 내달렸다. 반쯤 달렸을 때, 돌연 등대의 불빛이 그들을 비췄다.이후 수십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그들을 겹겹이 둘러쌌다.파리 한 마리도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빼곡히 박혀 있었다.소현아는 겁에 질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소월아! 들켰어! 흐어엉... 어떡해......”“울지 마. 내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아무도 너 데려가지 못하게 할 거야!”“소월아, 나 저 사람 알아. 그 나쁜 놈 부하야. 분명 날 잡으러 온 걸 거야. 흑흑... 나 돌아가기 싫어. 소월아, 나 꼭 구해줘야 해!”“당신들 뭘 하려는 거예요?”“아가씨, 죄송합니다. 소현아 아가씨만 넘겨주시면
진퇴양난의 상황에 직면하자, 장소월의 마음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실은 그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들은 전연우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을.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소월은 한 번 기적을 기대하고 싶었다.분명 희망은 팔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이 비행기에 타기만 하면 영영 도망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녀는 실패했다. 강용은 강지훈에게 잡혀갔고, 이젠 소현아마저 끌려갈 판이다.결국 그녀 자신 또한 다시 그 감옥에 갇혀야 한다.차 불빛을 등지고 그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전연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와 그의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을 본 순간.그녀는 깨달았다. 서울에서 도망쳤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는지를.이대로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끌려가야 하는 것일까?‘아니... 그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장소월은 평온한 눈빛으로 눈앞으로 다가온 전연우를 바라보았다. 소현아는 울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나쁜 놈, 소월아, 그 나쁜 놈도 왔어!”전연우와 강지훈이 동시에 나타났다.강지훈이 명령했다. “가서 데려와.”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아아아, 오지 마.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마.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야.”소현아는 작은 칼을 들고 자신의 목에 겨누었다. 장소월은 걱정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아야, 어리석은 행동 하지 마.”소현아는 턱을 한껏 쳐들고 거만하게 눈앞의 사람들을 쳐다보며 조용히 장소월에게 말했다. “나 괜찮을 거야.”“소월아, 빨리 가. 현아가 너 지켜줄게.”“이런 용감한 모습은 처음 보네? 한 바퀴 구르고 오더니 배짱이 두둑해졌군!” 강지훈이 소현아의 행동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다가갔다. 그는 단숨에 그녀의 손에서 플라스틱 장난감에 불과한 칼을 빼앗아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어 소현아를 번쩍 안아 올리고는 전연우 앞으로 걸어갔다. “
“사람 잘못 보셨어요.” 장소월은 몸에 걸쳐진 가디건을 홱 뜯어내고는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했다. “엄마...” 분홍색 공주 드레스를 입은 아이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달려왔다. 아이의 머리에 달려 있는 가발을 본 순간 사막에 있던 월이가 떠올랐다. 별이는 머리에 가발을 쓰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 “이건 별이가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엄마가 이걸 보면 우리랑 집에 갈 거라고 아빠가 말했어요.” 장소월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다리를 붙잡고 있는 아이를 떼어냈다. “대체 언제까지 사람 갖고 장난칠 거야!” “사기꾼!” 별이는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전연우에게 부딪혔다. 전연우는 아이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응?”장소월은 새빨개진 눈으로 남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강용도, 현아도 강지훈에게 끌려갔어. 이 모든 거... 네가 계획한 거야?” 전연우는 세상 모든 것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다. “가짜 친자 확인서를 가지고 와서 날 속이려 들어? 날 세 살짜리 애 취급하는 게 재밌어?” “사기꾼!” 별이는 여전히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 “엄마... 별이랑 같이 가요. 별이는 이 사기꾼이랑 같이 살고 싶지 않아요.” “별이는 엄마랑 같이 있을 거예요...” 전연우는 아이를 옆에 있던 여자에게 넘겨주었다. 장소월은 그제야 핫팬츠 가죽 재킷 차림에 글래머러스한 몸매의 이 여자가 바로 ‘손이준’과 이혼하고 그를 빈털터리로 만든 전 부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연우,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난 너랑 돌아가지 않아.” 하지만 전연우는 바로 장소월을 번쩍 안아 들었다. “우리 와이프 다리는 소중하니까 안고 가는 게 좋겠어.” 장소월이 소리쳤다. “전연우, 이 비겁한 자식. 당장 내려놔.”그 시각 밤하늘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도시엔 지난 6년 동안 비가 내린 적이 한 번도
그녀가 쓰던 베개도 여전히 예전 그대로 침대에 놓여 있었다. 전연우는 매일 그 베개를 안고 잠들곤 했다.그의 아내 장소월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단호하고 냉정하고 떠나버렸다.심지어 꿈속에서조차 한 번도 그를 보러 오지 않았을 정도로...전연우는 탐욕스러운 눈으로 눈앞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애틋한 마음이었다. 장소월이 곁에 없는 동안 전연우는 그녀의 사진만 반복해 보며 그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이제... 그녀가 드디어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장소월은 자리에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전연우, 난 네가 싫어.” “그러니까 그만 좀 해. 제발!”“난 너랑 같이 살 수 없어. 예전의 모든 것들 잊을 수도 없고.”“후회돼서 미치겠어. 그때 왜 바로 네 숨통을 끊어놓지 않았을까. 네가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떠났어야 했는데.”“별이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할 말 있으면 집에 가서 하고 밥부터 먹자, 응?” 전연우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서울로 돌아가면 모든 걸 알게 될 거야.”“돌아가서도 네가 여전히 날 죽이고 싶다고 하면, 그땐 목숨 내놓을게.”“나 죽으면 성세 그룹을 포함해 해외에 있는 자산까지 전부 팔아서 현금, 주식, 보석으로 바꿔 너한테 상속할 거야. 너랑 별이가 평생 걱정 없이 편히 지낼 수 있게.”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전부 그녀를 속이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말일 뿐이다.장소월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가소로웠다. “넌 네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만, 최고의 것들을 나한테 주려고 해.”“만약 날 사랑하지 않았다면, 전연우... 난 지금 이곳에 살아있지도 못했을 거야!”“전연우, 난 네 사랑 따위 필요 없어.”장소월은 자신이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했다.죽고 싶지는 않지만... 그를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혼자 먹어. 난 입맛 없어.”장소월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휴게실로 가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들은 장소월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전연우, 길에서 마음대로 주워온 아이를 내 아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임신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네 손으로 직접 날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 잊었어? 그렇게까지 나 모욕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방식은 안 먹혀.”장소월의 말투와 눈빛엔 담담함만이 담겨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고통을 전부 견뎌왔으니 말이다. 전연우는 예전 그녀가 마시는 우유에 독약을 탔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영영 엄마가 될 기회를 상실했고, 자궁까지 절제했다. 그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놈이 지금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 길가에서 데려온 아이와 친자 확인을 하겠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고 있다.어찌 황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전연우는 아무 말 없이 액셀을 밟았다. 그녀가 믿지 않을까 봐, 곧장 가장 신뢰도가 높은 대학 병원으로 향했다.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보디가드들이 별이를 안아 들었고, 전연우는 장소월의 손을 잡고 8층으로 향했다.“뭐 하는 거야. 이거 놔! 혼자 걸을 수 있어.”전연우는 그녀의 팔목에서 힘을 풀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8층 전체가 비워져 있었고, 각 계단 입구마다 보디가드들이 지키고 있었다.의사도 일찌감치 문밖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연우가 차분히 그녀에게 말했다. “이분들은 모두 가장 공신력 있는 의사 선생님들이야. 오늘은... 내가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테니까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이 친자 감정이 진짜인지 아닌지.”“소월아... 믿기 힘들겠지만, 별이는 정말 우리 둘의 친자식이야.”눈앞 남자의 진지한 눈빛에 장소월은 하마터면 속아 넘어갈 뻔했다. 머릿속에... 그녀에게 고통만 안겨 주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수술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이를 낳던 순간이었다.장소월은 그 기억을 되짚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저려왔다. 당시 송시아 때문에 하마터면 수술대 위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었다.설령 그 아이가 죽지 않았더라도 아들일 리는 없다.송시아가 그녀
예를 들어... 그의 장소월은 전생에서 죽은 뒤,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현재로 돌아왔다는 것.쉰 살이 거의 되어가던 전연우는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그 순간부터 견딜 수 없는 비통함에 시달렸다.시간을 계산해보면 아내를 잃고 난 후 되찾기까지 불과 십여 일밖에 지나지 않았다.전생에서 전연우는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서 만인의 숭배를 받았지만, 진정으로 그가 얻은 것은 끝없는 공허함뿐이었다...돌이켜보니 모든 영광을 함께 누려야 할 사람은 안타깝게도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그녀가 없을 때, 전연우의 눈에는 온통 그녀뿐이었다...매정하게 버려두었던 아내가 떠난 그때부터, 그는 어둠 속에 빠져버렸다. 그러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뼛속까지 사무치는 그리움이 조금씩, 조금씩...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후 머릿속까지 잠식되어 자꾸만 그녀가 떠올랐고, 모든 곳에 그녀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전연우는 진정으로 그녀의 죽음을 마주한 뒤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그때쯤 이미 십 년이 지났고, 전연우는 병이 깊어 위독한 상태였다...그는 죽은 후, 자산을 '그 아이'에게 남기지 않고 전부 보육원 자선 재단에 기부했다...이 모든 것이...꿈만 같았다.장소월은 전연우에게 끌려오는 날을 상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방에는 꽃병이 놓여 있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화려한 장미꽃들이 꽂혀 있었다...그녀는 좋은 기억들을 떠올려 착잡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하지만 침대 머리맡에 걸린 결혼사진을 본 순간 떠오르는 것이라곤 온통 고통스러운 기억뿐이었다.은경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애원했다.“아이쿠, 아가씨! 제발 뭐라도 좀 드세요.”“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잖아요. 한 끼 안 드시면 10만 원 감봉...”“제 얼굴을 봐서라도 한 입만 드세요.”장소월은 돌아온 후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장소월은 끝내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전연우의 예전 성격대로라면 강제로 쑤셔 넣었겠지만, 지금의 전연우는 그녀에게 조금도 강요할 수 없었다.오빠... 참으로 낯선 호칭이었다. 그 두 글자가 다시 그의 입에서 나오다니,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을까?대체 무슨 낯짝으로 오빠라는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집에 돌아온 후로도 그녀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그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장소월은 아무 말 없이 좀비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을 지나갔다. 앙상한 몸은 마치 곧 시들어버릴 낙엽 같아서,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았다.겨우 한 발짝 걸었을 뿐인데, 자리에서 일어선 것만으로도 온 힘을 다 쓴 것 같았다. 다시 두 번째 발을 내딛으려던 순간, 돌연 눈앞이 캄캄해지고 몸에 힘이 풀려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소월아...” 전연우는 재빨리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아 올렸다. “의사한테 전화해서 당장 오라고 해요!”은경애도 당황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네, 네, 지금 전화하겠습니다.”은경애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 서철용은 곧바로 집을 나섰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전연우의 집에 도착한 그는 도우미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급히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의료 상자를 들고 안방에 들어가 보니 오랜만에 보는 그녀가 침대에 쓰러져 있었다. 모든 것이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일부러 단식하면서 널 괴롭히려는 게 아니야. 소월 씨 스스로 마음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거야. 전에 내가 말했던 심리 질환 장애, 우울증이라고 이해해도 돼.” 서철용은 그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고는 기본적인 생명 유지를 위해 수액을 놓을 준비를 했다. 그는 뒤에 서 있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담담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런 방법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해. 최대한 빨리 정상적으로 밥을 먹게 해야 해.”“도우미를 시켜 죽 끓여와.”그 말을 들은 은경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요.”장소월은 눈을 감고 무겁게 숨을 고르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별이, 정말 제 아이인가요?”서철용은 입술을 질근 깨물고는 사실대로 말했다. “맞아요! 소월 씨와 전연우의 친자식이에요.” 그는 침대 곁에 걸터앉고는 이불에서 핫팩을 꺼내 그녀의 손바닥 아래에 놓아주며 말했다. “소월 씨도 믿기 어려울 거예요. 나도... 처음 들었을 땐 너무 충격적이라 믿지 않았었거든요.”“하지만... 나중에 관련 자료를 찾아본 결과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요. 소월 씨한테도... 비밀이 있는 거 맞죠?”“그 아이의 존재는 아마 하늘이 소월 씨에게 내려준 마지막 희망일 거예요. 소월 씨가 전생에서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어서 이번 생에 보상해주는 것일지도 몰라요. 소월 씨는 아직 25살도 안 되는 어린 나이잖아요. 앞으로 더 넓은 미래가 펼쳐져 있을 거예요. 나도 소월 씨에게 전연우를 용서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만약 이모가 살아계셨다면, 소월 씨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하셨을 거예요. 이모는... 소월 씨가 매일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랄 테니까요...”“소월 씨는... 이모의 유일한 딸이잖아요.”“정말 미안해요. 감히 소월 씨의 용서를 바라지도 않아요. 만약 언젠가 소월 씨가 내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바칠게요.”장소월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괴로운 듯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내 아이가 그렇게 쉽게 떠났을 리가요. 전부 그 여자가... 날 속인 거예요.”“하지만... 너무 괴로워요. 정말 살고 싶은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그 사람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요...”서철용은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감정 억누르지 말고 터뜨려요. 울고 나면 좀 괜찮아질 거예요.”그 아이... 전연우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오직 그녀만이 아이를 소중하게 여겼다...그녀보다 아이를 더 사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
다음 날, 소현아는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두 아기는 불안한 듯 계속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아가들, 착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 태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소현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아기를 달랬다.하지만 아기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소현아의 배 위에 놓여 있던 강지훈의 손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귓가에 소현아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자꾸 차지 마. 내가 안 먹이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강지훈의 눈에서 경계심과 냉기가 사라지고 짜증스러움만 남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소현아의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음산하게 경고했다.“너희 둘 얌전히 있어. 말 안 들으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현아가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지 말아요. 아기들이 당신 싫다고 계속 차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은 들리지도 않으니까 아기들 겁주지 마세요!”강지훈은 손등이 찌릿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안 들린다는 거 너도 알아?”소현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은 못 들어도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내 뱃속에 있으니까요.”강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불을 걷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이 뒤섞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소현아는 수없이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씨, 그 나쁜 놈에게 전화했어요? 소월이 저 보러 언제 와요?”이 작은 머릿속에 어젯밤 했던 말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그는 소현아를 등지고 천천히 옷을 입으며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전화했어. 전연우가 안 된
강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가 봐.”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제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소현아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웅얼거렸다.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소월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되지 않겠는가?그녀가 민감한 부위를 찌른 탓에 강지훈은 마음속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그 눈에선 음산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또 도망가고 싶다는 건가?그는 이미 한 번 이 토끼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소현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지라,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그냥 소월이가 보고 싶어요.”장소월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강지훈은 입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럼 북경 감옥으로 불러올까?”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실은 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 내가 소월이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 나쁜 놈이 나더러 많이 먹는다면서 자꾸 구박하고 화를 냈어요. 소월이가 여기에 놀러 오면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줘야 해요!”강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장소월이 오기만 한다면.”소현아는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잡혀 왔다. 그런데도 강지훈은 그녀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다.전연우는 어떻겠는가.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야에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에 그의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장소월을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강지훈이 아닌 전연우가 될 것이다.저 작은 토끼의 화가 전연우를 향하게 하면 될 일이다.소현아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의사가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혹시라도 죽는 건 아닐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의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의사가 검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소현아는 엉덩이만 바깥에 내민 채 계속 강지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계속되는 완강한 거부에 의사도 난감해졌다.강지훈은 품 안에 웅크린 작은 토끼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귓불을 잡아 올렸다.“죽을까 봐 무섭다며? 빨리 검사받아봐.”소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흑흑, 너무 무서워요...”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가운 벗어.”의사가 흰 가운을 벗자 소현아의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훈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의사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흘러나왔다.“어때?”검사가 끝나자 강지훈은 소현아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도록 두 팔을 벌렸다.의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별문제 없습니다. 최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드실 수 있습니다.”별문제가 없다는 말에 강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강지훈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아기들도 배고플 텐데요.”“드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양을 줄이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출산하실 때 고통스러우실 수 있습니다.”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아기 낳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강지훈 씨, 그럼 지금 당장 낳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잖아요.”소현아는 예전 창고에 갇혀 하루에 작은 찐빵 하나로 버텼던 때를 떠올렸다. 가끔씩은 찐빵조차도 먹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허기를 버텼다.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배부
“저 졸려요. 의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까 검사 못 받을 거예요!”한동안 강지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소현아는 그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강지훈의 음산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에 힘껏 몸을 움츠렸다.“다, 당신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부러 저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저 안 그래도 바보인데 이러면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고요!”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코끝을 그녀의 코에 가져갔다.“괜찮아졌으면 아까 하던 일 마저 해야겠어. 내 몸에 토해놓고 어물쩍 그냥 넘어가려고?”소현아는 이불 속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었다.“토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안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한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곱슬거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흥미로운 듯 꼼지락거렸다.소현아는 그가 아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화내지 말아요. 그냥 비긴 거로 해요. 어차피 당신도 제 몸에 더러운 거 묻힌 적 있잖아요. 다음에 또 그랬을 땐 안 때릴게요.”그녀는 강지훈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말했다.강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수 없는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한 말투로 그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다야?”소현아는 얼굴에 경계심을 가득 드러낸 채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그와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다, 당신 또 뭘 하고 싶은 건데요? 현아 때리면 안 돼요.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아기가 무서워할 거예요!”강지훈의 눈에서 장난기가 점차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피어올랐다.“강지훈 씨,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줄래요? 당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가 갑
온몸에 토사물을 뒤집어쓴 강지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머리 위에서 소현아는 계속하여 토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에도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몹시 괴로운 모양이었다.강지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 조심스럽게 그녀를 내려놓고 화장실로 데려갔다.엉망진창이 된 바닥과 자신의 몸을 확인한 강지훈의 몸에서 오싹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주... 주인님.”규영과 미진은 전화 한 통에 달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정리된 후였지만 주변을 맴도는 살기는 여전히 무시무시했다.“저녁에 대체 뭘 먹인 거야!” 강지훈이 소리쳤다.규영과 미진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냥 중국 요리 몇 가지였습니다. 아가씨께서 좋아하는 음식이라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드셨습니다.”강지훈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장 요리사 불러와. 너희 둘은 알아서 벌을 받을 준비 하고.”곧이어 요리사부터 식재료 구매 담당과 음식을 나르는 도우미까지 모두 불려왔다. 그 누구도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얼마 후 소현아는 마침내 구토를 멈추고 창백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너무 힘들어 눈물까지 글썽거렸고 눈가도 붉어져 있었다.“아까 규영 씨랑 미진 씨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소현아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강지훈은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처벌받으러 갔어.”소현아는 못마땅한 듯 그를 쏘아봤다. “왜 벌을 줘요? 제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건데. 배가 불편한데도 아기가 노는 거라고 착각해서 계속 먹었던 거란 말이에요. 그 사람들은 아무 잘못 없어요!”규영과 미진은 그녀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강지훈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강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 평소에도 많이 먹었잖아. 언제 이렇게 심하게 토한 적 있었어?”소현아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평소에도 아주 많이 먹는다. 오
소현아는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단순히 아기가 뱃속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입을 크게 벌려 음식을 삼켰다.그렇게 한 술씩 떠먹다 보니 어느덧 세 사람 몫의 음식을 모두 비워냈다. 그러고는 꺼억 트림까지 내뱉었다.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사람들은 덩달아 만족감을 느꼈다.특히 직접 그녀에게 음식을 먹여준 미진은 벅찬 성취감까지 느끼는 듯했다.“오늘은 아가씨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나왔나 봐요. 기억해뒀다가 요리사님께 말씀드려서 앞으로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어요.”소현아는 급기야 목구멍까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방금 먹었던 음식들이 당장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애써 눌러 참으며 진지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저는 뭐든지 다 잘 먹어요. 가리는 거 없어요. 다만 요즘 기분이 안 좋아서, 집에 가고 싶어서 밥을 안 먹는 거예요.”규영과 미진이 무언가 말을 하려던 찰나 방문이 활짝 열렸다.강지훈이 제복을 입고 검은색 군화를 신은 채 매서운 냉기를 휘감으며 들어왔다.“주인님.”규영과 미진은 즉시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공손하게 인사했다.강지훈은 곧장 소현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가에 묻은 기름때를 발견하고는 휴지로 닦아주었다.“오늘 많이 먹었어?”규영과 미진이 대답했다.“네. 모두 드셨습니다.”강지훈은 텅 빈 식판을 힐끗 보고는 명령했다.“나가 봐.”곧이어 방 안에는 그들 둘만 남게 되었다.강지훈은 외투를 벗고 셔츠 차림으로 성큼성큼 침대 곁으로 걸어가 앉았다.“이리 와.”소현아는 배를 감싸 안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싫어요. 당신 손이 닿으면 너무 아프단 말이에요. 아기도 당신 싫어해요. 매번 당신이 만질 때마다 발로 찬다고요. 발로 차면 배가 너무 아파요.”강지훈은 매일 총을 잡고 있는지라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런 손이 얇고 부드러운 피부에 닿았으니 무척이나 거칠고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더욱이 그는 요즘 그녀의 배를 만지는 것에 푹 빠져버렸다. 만질 때마다 너무 아파 미칠 지경이었
북경 감옥.소현아가 돌아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계속되는 그녀의 탈출 시도에 강지훈은 그녀를 독방에 가두라고 명령했다.“아가씨, 오늘은 거의 드시지 않았네요. 배고프지 않으세요? 아가씨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 만들었는데, 입맛이 돌 거예요. 조금이라도 드세요.”규영과 미진은 식판을 들고 들어와 창가에 앉아있는 그녀를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어르고 달래고 있었다.소현아는 탕수육이라는 말에 침을 꿀꺽 삼켰지만, 여전히 우울감에 젖어있는 척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싫어요. 배 안 고파요. 집에 갈 거예요. 강지훈 씨가 집에 데려다준다고 해서 따라왔단 말이에요.”규영과 미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당시 차 안에서 소현아가 너무 강력하게 저항했던 탓에 강지훈은 행여 아이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아가씨가 안 드시더라도, 뱃속 아기는 먹어야 하잖아요.”“요 며칠 드시는 양이 예전보다 훨씬 적으세요. 오늘도 안 드시면 저희는 주인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그 말에 소현아는 즉시 몸을 돌렸다. 통통한 볼엔 불만이 가득 드러나 있었다.“먹을게요! 먹겠다고요! 강지훈한테 말하지 마세요! 그 사람 엄청 무섭단 말이에요! 임신했는데도 자꾸만 저랑 자려고 하고... 매번 그 짓을 하고 나면 배가 아파 미치겠어요...”소현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다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봤다.“규영 씨, 미진 씨, 제 뱃속에 있는 아기 잘못되진 않았겠죠?”너무나도 순진무구한 모습이었다.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말을 듣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한편으로는 서슴없는 잠자리 고백에 얼굴이 화끈거려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임신한 지 시간이 꽤 지난 지라 적당한 성관계는 가능하지만, 주인님의 난폭한 행동에 정말로 아이가 잘못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소현아는 그들이 들고 있는 음식에
서철용 또한 한때는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토록 서민용의 목숨에 집착했던 것이다.하지만 서민용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 장영우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그동안 배은란은 이미 아이들과 깊은 정을 나누고 있었다.주로 서철용이 아이들을 돌보던 예전과는 달랐다. 당시의 배은란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했고 애정 또한 별로 없었다.하지만 그가 떠난 후 아이들은 배은란의 손에 맡겨졌다.그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걱정과 초조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의 모습은 거짓이 아니었다.서철용이 떠나면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이 없기에 배은란은 그들을 위해 남을 수밖에 없다.서철용 또한 감히 그런 위험한 모험을 시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장영우가 독단으로 그를 비행기에 실은 뒤에야 통보했던 것이다.지난 2년간 해외에서 그는 그녀와 아이들의 걱정에 마음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래도 다행히 장영우가 꾸준히 배은란과 아이들의 근황을 알려주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이젠 배은란 나한테 맡겨. 내가 잘 보살필게. 하지만 그 여자가 너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가끔씩 꿈에 보러 가줘. 또 그 토끼 인형처럼 눈이 새빨개지도록 우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서철용은 후련한 듯 묘비에 새겨진 얼굴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네가 나보다도 더 그 여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거라고 믿어.”몸을 돌려 떠나려던 찰나, 언제부터 뒤에 서 있었는지 모를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서철용은 난처한 얼굴로 내디뎠던 발을 다시 거두어들였다.“은란아, 언제 왔어?”배은란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엔 아직 당황한 기색이 남아있었지만, 이내 감정을 감추고 그를 지나쳐 묘비 앞으로 걸어갔다.“민용 씨는 당신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다시는 오지 마.”소망이가 머리핀을 떨어뜨렸다며 다시 가지러 가겠다고 떼를 썼었다. 배은란은 아이들을 멀리서 기다리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