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민아는 눈썹을 찌푸리고 말을 이어갔다.“만약 아니라면, 송시아는 왜 나더러 반드시 이랑 씨와 결혼해 신씨 집안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우린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이라는 거 이랑 씨도 인정하잖아요. 나한텐 기성은 씨가 있어요... 이런 말이 이랑 씨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송시아가 소월 언니 목숨을 담보로 날 협박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송시아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소월 언니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게 될 거예요.”“이랑 씨, 사실 제 머릿속에 예전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랐어요.”“송시아는... 제 언니가 맞아요...”소민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그녀가 죽을 때까지도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송시아가 그녀의 언니이고, 두 사람은 혈연관계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소민아는 어린 시절 송시아를 가장 의지하고 좋아했지만, 이젠 그녀와의 관계를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소민아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송시아가 돈을 벌기 위해 더러운 곳에 가서 늙은 아저씨들의 노리개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지 생활비를 벌어 동생을 키우기 위함이었다.그녀 역시 당시의 고됨이 송시아를 이토록 권력에 눈이 먼 괴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그녀가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엔 종래로 그녀를 해친 적이 없다.소민아는 정말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예전 기억이 모두 돌아오니 송시아에게 드는 감정은 애증이에요. 절 살리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돈을 벌던 언니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변해버렸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눈물을 흘리는 소민아를 본 신이랑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꼭 껴안고는 등을 토닥여주었다.“나 민아 씨 우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나 다 알고 있어요. 한 번도 민아 씨를 힘들게 할 생각 없었어요. 난 영원히 민아 씨 편이라는 거 기억해요.”“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뭘 요구하든 다
“이랑 씨한테 너무 불공평한 일 아닌가요?”소민아는 그제야 자신이 늘 고민하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이랑 씨, 대체 무엇 때문이에요?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우린... 분명 예전엔 만난 적 없잖아요, 안 그래요?”소민아는 종래로 첫눈에 반해 모든 걸 바친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신이랑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호선을 그렸다. 그는 설명 대신 그녀에게 대충 둘러댔다.“민아 씨, 세상엔 이유가 없는 일들도 있어요. 한 사람을 좋아하는 데엔 이유가 필요 없어요.”그가 손을 뻗어 그녀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우리 일단 밥부터 먹어요. 아까 거의 안 먹었잖아요. 내가 가서 음식 데울게요. 다 먹으면 집에 데려다줄게요.”소민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 오늘 차 몰고 왔어요.”신이랑은 분명 누군가의 최고의 동반자가 될 것이고, 친구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다.다만 소민아와의 관계는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녀는 한 사람에게 마음을 굳히면 영원히 그 사람만 보기 때문이다.3년이라는 시간제한도 오직 기성은을 자극하기 위해 꺼낸 말이다. 또한 어쩌면 자신의 기다림을 합리화하고 싶어 그랬는지도 모른다.모든 말을 털어놓고 나니 그녀는 마음속 거대한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이 홀가분했다. 그녀가 집에 돌아가니 명세진이 주방에서 죽을 꺼내왔다.“이랑이네 집에서 밥 먹었다면서? 그래도 시간이 늦으면 네가 배고파할까 봐 아주머니한테 먹을 것 좀 만들어놓으라고 했어.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힘든 거 있으면 고모한테 말해.”소민아는 이미 배가 불렀지만, 고모의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어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전 괜찮아요. 회사 일로 고민 좀 하고 있어서 그래요. 참, 현아 언니 최근 집에 온 적 있어요? 저번 엄마아빠가 오셨을 때 왜 다음 날 바로 간 거예요?”명세진은 한숨을 내쉬었다.“휴. 그 강지훈이라는 사람은 대체 우리 현아한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신이랑은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신군회의 책상에 내려놓았다.“이 안에 6억이 들어있어요. 제가 모아둔 돈이에요. 나머지 돈은 민아 씨와 결혼식 준비하는 데에 쓸게요.”“안... 안 돼요. 오빠...”“아빠, 빨리 오빠 좀 설득해주세요! 소민아 그 여자 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요.”신이랑은 바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보고는 인사도 하지 않고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신군회는 이 일이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신이랑이 권력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 지금 신이랑은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의 도움 없이 신이랑 본인의 능력만으로도 서울에서 충분히 잘 살 수 있다.역시 신군회의 아들이다.신수지는 이제 유연홍에게 칭얼거리기 시작했다.“엄마, 아빠한테 말해주세요. 아빠... 엄마 말씀은 잘 들으시잖아요.”“그만! 다 나가!”신군회는 벌컥 화를 내며 책상 위 서류들을 모두 바닥에 내던져버렸다.유연홍은 차분하게 신수지를 달랜 뒤 자신의 등 뒤로 끌어당겼다.“여보, 수지한텐 이렇게 불같이 화내면서 왜 그 아들한테는 아무 말도 못 해요? 수지는 내 딸이에요.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어요. 무슨 수를 쓰든 신이랑과 우리 수지 결혼시켜요. 아니면... 절대 집에 들이지 않을 거예요.”신군회는 시뻘게진 눈으로 유연홍을 쳐다보다가 들고 있던 찻잔을 던져버렸다. 그가 유연홍에게 화를 분출하는 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그 입 다물어! 여자가 뭘 안다고.”“당신 소민아가 누군지 알아?”“송시아의 잃어버렸던 동생이야. 내 대다수 인맥들은 다 송시아와 연결되어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세 그룹과 닿아있고, 또 얼마나 많은 놈들이 그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지 알아? 이건 내 유일한 기회야. 이번 일이 잘못되면 우린 끝이라고!”그 지독한 여자의 동생이었으니 소민아가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었던 것이다.유연홍은 더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신수지도 잔뜩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장소월, 31세, 암으로 사망.서울 강남병원,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연우야, 오늘 의사선생님이 투석한다고 주사를 놓아주셨는데 너무 아팠어.」「나 곧 죽어. 보러 와 줄 거지?」「제발, 연우야...」장소월이 힘겹게 머리를 돌려 전화기의 메시지 창을 보고 있다. 메시지를 몇 개나 보냈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전연우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그녀의 손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뼈만 남아 앙상했고 두 눈은 안쪽으로 푹 꺼져 있었다.사지는 이미 암 후유증으로 인해 썩어가고 있었다.몸을 까딱할 수 없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책임 간호사도 거의 보름 너머 와보지 않았다.원인: 더 이상 치료해도 의미 없음.그녀는 사실 엄살이 많았고 아픈 걸 끔찍이 무서워했다. 암 말기라 그녀는 매일 고통에 시달렸고 전연우에 대한 사랑만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이유였다.하지만 이 넘쳐나던 사랑이 메말라가자 그녀에게 남은 건 뼈만 남은 몸뚱이였다.장소월은 전화기를 꺼버리고 조용히 죽기를 기다렸다.고통으로 그녀는 의식이 흐릿해졌다. 씁쓸하게 느껴졌다. 안 깐 힘을 다해 전연우와 결혼했고 8년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좋은 아내가 되려 했다. 모든 걸 다 바쳐 그 사람 곁을 지켰는데 그녀가 얻은 건 무엇인가?사람들은 하나 둘 그녀의 곁을 떠났고 가난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그녀가 죽으면 제일 기뻐할 사람이 전연우다. 이제 그는 자유의 몸이다. 더 이상 징그러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전연우, 드디어 소원대로 송시아와 결혼할 수 있다.8개월 전.전연우의 생일날,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장소월은 소파에 앉아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테이블 위 그녀가 정성껏 차린 음식들도 이미 차갑게 식어갔다.기다리던 전연우는 오지 않고 비서가 이혼서류를 가져왔다. 비서가 싱겁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사장님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큰 전 씨 집안 산업을 누군가는 물려받아야 되잖아요.”장
새벽 12시.장소월이 악몽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킨다. 이마엔 땀이 맺혀있다.순간 익숙한 소독제 냄새가 코끝에 스친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냄새다.장소월은 잠시 멍해졌다. 죽은 거 아니었나?왜 아직 살아있는 거지?‘탈칵’하는 소리와 함께 깜깜했던 병실이 밝아졌다. 눈부신 불빛에 그녀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악몽이라도 꾼 거야?”긴 다리로 침대 곁에 다가왔다. 큰 체구가 그녀의 왜소한 몸에 비친 빛을 막아주기엔 넉넉했다.“전...전연우?”장소월이 머리를 들어 뼈속까지 증오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놀라움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다가오지 마!”왜 또 이 악마의 곁으로 돌아온 걸까?그녀는 본능적으로 거부하며 뒤로 물러선다.장소월의 머리는 지금 복잡하기 그지없다. 전연우를 본 순간 크나큰 두려움과 절망이 몰려와 숨이 막혔다.전연우가 멈칫한다. 이내 가느다란 눈은 차가움으로 가득 찬다. 불쾌한 듯 그녀를 쳐다보았고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졌다.“의사 불러줄게.”남자의 차가운 저음이 칼처럼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문이 쾅 하고 닫기고 나서야 장소월도 긴장이 풀렸다.남자가 떠난 후 방안에 떠돌던 강렬한 압박감도 사라졌다. 장소월은 황급히 이불을 걷어냈다. 순간 째질듯한 아픔이 손목에 전해졌다.손목을 보니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손목을 그은 건가?장소월은 아픔을 견디면서 다른 한 손으로 침대맡의 테이블에서 구식 전화기를 들어 달력을 찾아보았다.시간을 본 순간 장소월은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지금은 무려 2000년, 그녀가 18살 되던 그해였다.장소월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녀는 지금 입원 중이고 손목을 그어 전연우를 협박해 고백을 받아달라는 중인 것 같았다.전연우는 장소월이 10살 되던 해에 장해진이 밖에서 데려온 양자였다.장소월이 그를 사랑한다고 느끼게 된 건 그녀가 15살 되던 해 집에서 키우던 티베탄 마스티프가 갑자기 실성해 그녀한테 달려들어 물
장소월이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전연우에게 웃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오빠, 미안해. 전에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오빠를 궁지로 내몰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이제 깨달았어. 앞으로도 꼭 기억할게. 오빠는 오빠일 뿐이라고.”난리를 피우지도 떼를 쓰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평온한 나머지 아무런 생기 없는 인형 같았다.전연우의 어두운 눈동자가 빛나더니 얇은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비웃음이었다. 그녀의 새로운 수작인 건가?전연우가 입을 열었다.“알았다니 다행이네. 밤새우지 말고 얼른 쉬어. 내일 데리러 올게.”그러고는 어른처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장소월은 피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고 수긍하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돌아선 전연우의 눈에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고 차가움만이 남아 있었다.병실에서 나온 전연우는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장소월을 만졌던 손을 닦았다.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간 그는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손수건을 던졌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전연우가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버튼을 누른다.아우디 한 대가 라이트를 킨 채로 있다. 조수석에는 긴 파마머리를 한 여인이 앉아있다. 섹시한 옷차림에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다. 야릇한 붉은 입술은 담배연기를 뿜어냈다.여자의 시선은 차에 타는 남자의 잘빠진 몸을 따라 움직였다.“잘 달래줬어?”전연우가 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했다. 그의 눈에 역겨움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여자의 손에 들린 담배를 뺏아 창밖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내 차 안에서 담배 피우지 마.”여자가 매혹적으로 웃어 보이더니 다리를 꼬았다.“안 피면 어린 아가씨 향수 냄새를 어떻게 덮어.”아이라인을 그린 예쁜 눈이 차 안에 놓인 핑크색 향수병으로 향한다. 거기엔 글자가 쓰여있는 스티커도 붙여져 있었다: 장소월 전용 좌석.그녀가 살짝 웃어 보이더니 말한다.“18살밖에 안되는 여자애가 점유 욕은 굉장히 강하단 말이야. 왜? 장가에 데릴 사위로 들어갈 생
택시에 탄 지 한 시간쯤 지나 장가 별장 앞에 멈춰 섰다.장소월은 집으로 들어가 신발을 바꿔 신었다. 아줌마가 그 모습을 보더니 인츰 다가왔다.“아가씨, 왜 혼자에요? 연우 도련님이랑 같이 들어오시는 거 아니었어요?”아줌마는 아직 많이 젊었고 주름이 많지는 않았다.장소월은 대뜸 아줌마를 꼭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녀를 친자식처럼 아껴준 사람은 아줌마뿐이었다.그러나 뒤에는 전연우가 강제로 전가에 남겨 그와 송시아를 모시게 했다.“아줌마, 너무 보고 싶었어.”“어... 저기... 아가씨, 왜 그래요? 혹시 아직 다 안 나으신 건가요?”아줌마가 장소월을 밀어내더니 걱정스레 손을 그녀의 이마에 갖다 댔다.괜찮은 거 같은데?아줌마는 오늘 장소월이 약간 이상해 보였지만 딱히 뭐라 표현할 수는 없었다.“아니 그냥 안아보고 싶었어.”“이제 막 들어왔는데 배 안 고파요? 죽 끓여놨는데 얼른 오세요.”“입맛 없어, 그냥 올라가서 좀 잘래. 점심때 다시 불러줘!”밤을 꼬박 새우고 차를 탔더니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아 맞다, 아가씨, 아까 회장님 전화 오셨는데 집 들어오시면 다시 전화 달라고 했어요. 아가씨한테 하실 말씀이 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이건 회장님 출장 가시기 전에 아가씨께 전달하라고 하신 거예요.”장소월은 실버 쇼핑카드를 건네받고는 머리를 끄덕인다.“응”장해진이 전연우 대신 그녀에게 주는 보상인가?장해진이 무슨 말을 꺼낼지 장소월은 알고 있었고 담담하게 전화를 걸었다.장해진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좋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허울뿐이었다...그는 사실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장해진이 늘 가업을 물려받을 아들을 갖고 싶어 했다는 것을. 하여 많은 애인을 두고 있었지만 그중 누구도 아들이나 딸을 낳지는 못했다.그래서 결국 전연우를 입양한 거다.나날이 커가고 있는 딸은 장해진에게 정략결혼의 도구일 뿐이었다.이익을 위해서라면 장해진은 수단을 가리지 않았고 자신의
장소월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자기 전 그녀는 따듯한 우유 한 잔을 마시곤 했는데 오랫동안 고치지 못한 습관이었다.얇은 커튼 밖 어둠은 유난히 짙었다. 한줄기 라이트가 창문으로 비쳐들었다.타이어가 땅에 마찰되면서 나는 소리가 시끄럽게 귀청을 때렸다.전연우의 아우디 A6은 장해진이 회사에서 그에게 상으로 준 새 차였다.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들어왔고 손에 든 차 키를 내려놓았다.날카로운 눈빛으로 한번 훑었지만 익숙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전에는 항상 가냘픈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무미건조한 드라마를 보는 누군가가 있었건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테이블도 평소처럼 간식이 널브러져 있지 않고 깨끗했다.전연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아줌마가 주방에서 나왔다.“연우 도련님, 저녁 식사하셨나요?”“소월이는?”전연우가 묻는다.“아가씨는 몸이 불편하시다면서 일찍 잠에 드셨어요.”“올라가서 한번 볼게.”전연우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계단을 세 개쯤 올라가더니 발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내일 점심에 윤이 돌아오니까 윤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개 더 하고.”“네, 알겠습니다, 연우 도련님.”아줌마가 답한다.3층에 도착한 전연우, 손잡이를 돌렸지만 전처럼 열리지 않았다.안에서 잠군 것이다.전연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와 장소월의 방은 모두 3층에 있었고 장해진의 방은 2층이었다. 2층은 평소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고 4층은 윤이가 단독으로 쓰고 있었다.예전 같았으면 그는 장소월의 방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고 안에서 잠근 적은 없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장소월이 진짜 그에게서 마음을 거둔 것일까?전연우는 문을 두드렸다.“소월아, 자?”악마의 노크 소리에 정소월은 이불 속에 몸을 감추고 귀를 틀어막았다. 대꾸하기가 싫었다.사실 아까 전연우가 차를 끌고 돌아올 때부터 그녀는 소리를 듣고 깨어있었다.전연우는 밖에 집을 하나 샀다. 방 2개에 거실 2개
신이랑은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신군회의 책상에 내려놓았다.“이 안에 6억이 들어있어요. 제가 모아둔 돈이에요. 나머지 돈은 민아 씨와 결혼식 준비하는 데에 쓸게요.”“안... 안 돼요. 오빠...”“아빠, 빨리 오빠 좀 설득해주세요! 소민아 그 여자 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요.”신이랑은 바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보고는 인사도 하지 않고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신군회는 이 일이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신이랑이 권력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 지금 신이랑은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의 도움 없이 신이랑 본인의 능력만으로도 서울에서 충분히 잘 살 수 있다.역시 신군회의 아들이다.신수지는 이제 유연홍에게 칭얼거리기 시작했다.“엄마, 아빠한테 말해주세요. 아빠... 엄마 말씀은 잘 들으시잖아요.”“그만! 다 나가!”신군회는 벌컥 화를 내며 책상 위 서류들을 모두 바닥에 내던져버렸다.유연홍은 차분하게 신수지를 달랜 뒤 자신의 등 뒤로 끌어당겼다.“여보, 수지한텐 이렇게 불같이 화내면서 왜 그 아들한테는 아무 말도 못 해요? 수지는 내 딸이에요.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어요. 무슨 수를 쓰든 신이랑과 우리 수지 결혼시켜요. 아니면... 절대 집에 들이지 않을 거예요.”신군회는 시뻘게진 눈으로 유연홍을 쳐다보다가 들고 있던 찻잔을 던져버렸다. 그가 유연홍에게 화를 분출하는 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그 입 다물어! 여자가 뭘 안다고.”“당신 소민아가 누군지 알아?”“송시아의 잃어버렸던 동생이야. 내 대다수 인맥들은 다 송시아와 연결되어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세 그룹과 닿아있고, 또 얼마나 많은 놈들이 그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지 알아? 이건 내 유일한 기회야. 이번 일이 잘못되면 우린 끝이라고!”그 지독한 여자의 동생이었으니 소민아가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었던 것이다.유연홍은 더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신수지도 잔뜩
“이랑 씨한테 너무 불공평한 일 아닌가요?”소민아는 그제야 자신이 늘 고민하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이랑 씨, 대체 무엇 때문이에요?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우린... 분명 예전엔 만난 적 없잖아요, 안 그래요?”소민아는 종래로 첫눈에 반해 모든 걸 바친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신이랑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호선을 그렸다. 그는 설명 대신 그녀에게 대충 둘러댔다.“민아 씨, 세상엔 이유가 없는 일들도 있어요. 한 사람을 좋아하는 데엔 이유가 필요 없어요.”그가 손을 뻗어 그녀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우리 일단 밥부터 먹어요. 아까 거의 안 먹었잖아요. 내가 가서 음식 데울게요. 다 먹으면 집에 데려다줄게요.”소민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 오늘 차 몰고 왔어요.”신이랑은 분명 누군가의 최고의 동반자가 될 것이고, 친구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다.다만 소민아와의 관계는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녀는 한 사람에게 마음을 굳히면 영원히 그 사람만 보기 때문이다.3년이라는 시간제한도 오직 기성은을 자극하기 위해 꺼낸 말이다. 또한 어쩌면 자신의 기다림을 합리화하고 싶어 그랬는지도 모른다.모든 말을 털어놓고 나니 그녀는 마음속 거대한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이 홀가분했다. 그녀가 집에 돌아가니 명세진이 주방에서 죽을 꺼내왔다.“이랑이네 집에서 밥 먹었다면서? 그래도 시간이 늦으면 네가 배고파할까 봐 아주머니한테 먹을 것 좀 만들어놓으라고 했어.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힘든 거 있으면 고모한테 말해.”소민아는 이미 배가 불렀지만, 고모의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어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전 괜찮아요. 회사 일로 고민 좀 하고 있어서 그래요. 참, 현아 언니 최근 집에 온 적 있어요? 저번 엄마아빠가 오셨을 때 왜 다음 날 바로 간 거예요?”명세진은 한숨을 내쉬었다.“휴. 그 강지훈이라는 사람은 대체 우리 현아한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소민아는 눈썹을 찌푸리고 말을 이어갔다.“만약 아니라면, 송시아는 왜 나더러 반드시 이랑 씨와 결혼해 신씨 집안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우린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이라는 거 이랑 씨도 인정하잖아요. 나한텐 기성은 씨가 있어요... 이런 말이 이랑 씨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송시아가 소월 언니 목숨을 담보로 날 협박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송시아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소월 언니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게 될 거예요.”“이랑 씨, 사실 제 머릿속에 예전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랐어요.”“송시아는... 제 언니가 맞아요...”소민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그녀가 죽을 때까지도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송시아가 그녀의 언니이고, 두 사람은 혈연관계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소민아는 어린 시절 송시아를 가장 의지하고 좋아했지만, 이젠 그녀와의 관계를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소민아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송시아가 돈을 벌기 위해 더러운 곳에 가서 늙은 아저씨들의 노리개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지 생활비를 벌어 동생을 키우기 위함이었다.그녀 역시 당시의 고됨이 송시아를 이토록 권력에 눈이 먼 괴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그녀가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엔 종래로 그녀를 해친 적이 없다.소민아는 정말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예전 기억이 모두 돌아오니 송시아에게 드는 감정은 애증이에요. 절 살리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돈을 벌던 언니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변해버렸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눈물을 흘리는 소민아를 본 신이랑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꼭 껴안고는 등을 토닥여주었다.“나 민아 씨 우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나 다 알고 있어요. 한 번도 민아 씨를 힘들게 할 생각 없었어요. 난 영원히 민아 씨 편이라는 거 기억해요.”“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뭘 요구하든 다
6시 퇴근 후, 소민아는 호텔에 들러 신이랑의 컴퓨터 가방과 옷을 챙기고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그녀가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딸깍 문이 열렸다.신이랑이 편한 잠옷을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얼굴은 아까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왔어요?”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민아는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네. 이랑 씨 물건 가져왔어요. 빠진 건 없는지 확인해봐요.”거실에 들어와 보니 깜빡하고 청소하지 못했던 거실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공기청정기까지 작동하고 있었고, 아무렇게나 소파에 던져놓았던 카펫도 정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구석구석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이랑 씨가 청소한 거예요?”소민아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푹 쉬라고 했잖아요. 이런 일은 왜 한 거예요!”심지어 식탁엔 신이랑이 만든 음식까지 놓여 있었고 주방에선 채 완성되지 않은 음식이 조리되고 있었다.신이랑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에 있는 물건을 받아들었다.“손 씻고 와요. 내가 갈비탕 만들고 있어요. 곧 다 돼요.”소민아는 뭐라 더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모두 삼켜버리고 말머리를 돌렸다.“그럼 약은 먹었어요? 좀 좋아졌어요? 머리 아직도 아파요?”신이랑이 머리를 저었다.“이제 안 아파요. 내가 가서 젓가락 가져올게요. 앉아요.”실은 소민아는 물건을 전해준 뒤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나가버린단 말인가?그녀는 여전히 그의 마음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소민아는 어쩔 수 없이 식탁 의자에 앉았다. 신이랑이 그릇과 젓가락을 가져와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많이 만들었으니까 얼른 먹어요. 내일까지 놔두면 상할 거예요.”“나 혼자 먹으라고요? 이랑 씨도 앉아요. 저 다 못 먹어요.”“그래요.”신이랑은 앞치마를 벗고 마지막으로 국을 가져온 뒤 그녀 옆에 앉았다.소민아는 얼이 빠진 얼굴로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 채 입안에 밥을 넣고 있었다. 신이랑은 그동안 줄곧 그녀에게 음식을
송시아는 앞으로 걸어가 손을 뻗어 소민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언니가 했던 고생 넌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민아야, 그때 언니가 널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서 미안해. 다 언니 잘못이야. 널 잃어버렸던 그 날 밤... 얼마나 많이 찾아다녔는지 몰라.”“이제 언니한테 가족은 너밖에 없어.”“난 다시는 너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지난 시간 너한테 잘못했던 거 하나하나 다 보상해 줘야지.”“이번 한 번만 언니 말대로 해줄래? 기성은은 잊고 신이랑과 결혼해. 언니가 있는 한 신씨 가문에서도 널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야. 지금으로선 널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야.”“소씨 가문은 널 도울 능력이 없어.”소민아가 말했다.“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요, 이랑 씨 좋죠. 하지만 전 그 사람한테 마음 없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성은 씨라고요. 꼭 이렇게까지 절 몰아붙여야겠어요?”“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주선호는 지금 신장암 말기야. 치료될 가능성은 제로고. 지금은 선거 시즌이잖아. 신군회도 후보자 중 한 명이야. 신군회도 성세 그룹 임원들과 밀접히 관계를 맺고 있으니 분명 당선될 거야. 신군회가 시장 자리에 앉으면 지금 그 사람이 맡고 있는 비서실장 자리는 공석이 돼. 신이랑이 정계에 진출하기만 하면 그 자리는 자연히 신이랑의 것이 될 거야. 애초부터 신군회는 신이랑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려고 했었거든.”소민아는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신씨 가문과 예전부터 관계를 맺고 있었네요!”송시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건 전연우한테 물어야지.”“전연우야말로 이런 면에서 가장 빠삭한 사람이야. 전연우와 장소월이 결혼하기 전, 주선호는 전연우와 자신의 딸인 주가은을 맺어주려 했었어. 하지만 아쉽게도 전연우는 이미 장소월에게 단단히 빠져버려 단칼에 그 제안을 거절해버렸어.”“정치와 사업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 전연우가 짧은 몇 년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프로젝트를 따냈다고 생각해?”주가
“송시아 씨, 당신은 정말 답도 없이 망가져 버렸네요. 분명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소민아는 목이 부서져라 송시아를 향해 소리쳤다.그때, 사무실 문밖엔 소피아가 송시아에게 결재를 받을 서류를 들고 와 있었다. 안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걸음을 멈춰 섰다.“대가? 이 세상에 정말 그런 게 있다면 전연우, 강지훈, 기성은은... 필시 나보다 먼저 숨통이 끊어질 거야. 나보다 장소월을 더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못 믿겠으면 지켜봐. 내가 3일 안에 장소월을 목숨을 거둘 수 있는지 없는지.”송시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말이야. 너무 쉽게 죽이고 싶진 않아. 죽는 것보다도 못하게 살도록 만들어줄 거야. 그림 그리는 손목이 뜨거운 불에 구워지는 고통을 맛보게 해줘야지. 참... 전연우가 그 반반한 얼굴에 홀딱 빠져버렸었지?”“난 언제든 그 얼굴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어. 그때가 돼도 남자들이 장소월을 위해 나랑 맞설 수 있을지 궁금하네.”“송시아 씨, 그만 해요! 정말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미친 사람이네요! 당신 같은 사람은 분명 지옥에 떨어질 거예요!”송시아가 가장 개의치 않아 하는 말이 바로 이런 말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주어지든 전혀 상관없다.“그럼 똑똑히 지켜봐. 내가 장소월의 숨통을 어떻게 끊어놓고 전연우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말이야.”소민아는 눈앞 완전히 악마가 되어버린 여자를 쳐다보았다.“당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네요. 대표님에겐 적어도 자신의 목숨으로라도 그분의 뜻을 지키려 하는 기성은이 있어요. 하지만 당신에겐... 아무것도 없잖아요. 바깥에서 어울려 다니는 그 남자들 또한 당신을 성욕을 분출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할 거예요.”“제 말이 좀 과격하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당신 귀엔 한 글자도 들어가지 않잖아요.”“송시아 씨... 자신이 이렇게 변해버렸다고 생각하면... 괴롭지 않아요?”“세상엔 수많은 남자들이 있어요. 왜 하필 전 대표님이어야 하는
신이랑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그래요.”소민아는 회사에 돌아가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던 도중 캡모자를 눌러쓰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남자 한 명을 발견했다. 소민아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의 행동을 살펴보았다.얼마 후 남자가 전화를 걸었다.“누님, 그 여자 위치 찾았어요. 사진도 있고요. 전 지금 지하주차장에 있어요.”소민아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송시아가 찾는 그 여자?소월 언니다!송시아가 이렇게나 빨리 소월 언니를 찾았다고?그... 그럴 리가 없다!3분 뒤, 송시아가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자 남자는 그녀에게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누님, 그 여자 어떻게 처리할 거예요? 몰래...”그가 손가락으로 목을 베는 동작을 취했다.소민아는 빠르게 핸드폰을 꺼내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급할 필요 없어. 넌 일단 돌아가 내 전화 기다리고 있어. 너무 쉽게 죽게 하면 안 되지.”“알겠어요. 그럼... 누님, 저희한테 줄 수고비는... 저희들 요즘 전국을 휘젓고 다니고 해외에까지 나가느라 정말 힘들었어요.”송시아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남자에게 돈을 이체해주었다.“이건 수고비의 3분의 1이야. 나머지는 일이 다 끝나면 줄게. 너희들 고생한 거 잊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걱정하지 마십시오, 누님. 저희들 절대 누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두 사람의 거래가 끝나자 지하주차장엔 다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소민아는 씩씩거리며 차에서 내려가 대표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소민아가 벌컥 문을 열었을 때, 송시아는 서류 봉투를 뜯고 있었다. 그녀는 소민아를 보고는 다시 서류 봉투를 닫아 옆에 놓아두었다.“언니한테 무슨 할 말 있는 거야?”“아까 지하주차장에서 만났던 그 남자 누구예요? 송시아 씨, 이번엔 또 누굴 죽이려는 거예요! 왜 꼭 그렇게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건데요! 아무도 당신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송시아가 웃으며 그 서류 봉투를 들고 일어섰다. 그녀는 소민아 앞에서
소민아는 며칠 더 휴가를 주겠다는 신이랑의 배려를 거절했다. 다음 날 회사에 나와보니 신이랑은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그는 피곤한 듯 이마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신이랑이 고개를 드니 눈에 가득 퍼진 실핏줄이 보였다. 소민아는 바로 가방을 내려놓고는 걱정스레 다가갔다.“이랑 씨, 두통이 또 발작한 거예요? 약은 먹었어요?”신이랑은 고개를 저었다. 한눈에 봐도 예전 두통 때문에 힘들어하던 그 모습이었다.소민아는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만지려다가 허공에서 멈춰 섰다.“제가 병원 예약해 둘 테니까 가봐요. 이렇게 참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에요. 오늘 스케줄은 오후에 예정된 중문 시리즈 사람과의 미팅밖에 없어요. 지금 병원에 가면 그전에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소민아는 이제 신이랑의 스케줄도 기억하고 있었다. 예전엔 항상 신이랑이 먼저 말했고, 장소가 어디든 그녀는 따라가기만 했었는데 말이다.지금의 소민아는 정말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신이랑이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나 괜찮아요.”소민아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바로 핸드폰을 들고 신경내과에 예약했다.“편집장님, 30분 뒤로 예약해 뒀어요. 얼른 물건 챙겨서 나랑 같이 가요.”소민아의 말투도 조금 사나워졌다.신이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알았어요.”소민아는 부하 직원에게 남은 일을 맡겨두고는 차를 몰고 신이랑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소민아가 운전하다가 물었다.“혹시 어젯밤 샜어요? 의사 선생님 말씀 잊었어요? 수술 뒤엔 몸을 잘 챙겨야 한다고 했잖아요. 잠을 제대로 안 자는 건 건강 회복에 치명적이에요.”눈을 감고 있던 신이랑은 그녀의 말을 들으니 몸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어젯밤 신수지가 왔었는데 보기 싫어서 호텔로 옮겼어요. 난 신수지가 싫어요.”소민아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신수지가 이랑 씨를 왜 찾아가요? 동생 아니었어요?”신이랑이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소민아는 그가 뭘 말하려는
막무가내인 그녀의 모습을 신이랑은 더는 참아낼 수가 없어 단호히 말했다.“현실을 제대로 자각하세요. 난 절대 신수지 씨와 결혼하지 않아요. 당신 집안의 도움은 더더욱 필요 없고요. 성세 그룹에 들어간 건 민아 씨를 위해서예요. 민아 씨가 없어도 난 당신들과 얽히지 않을 거예요.”“계속 여기에 있고 싶으면 있어요.”신이랑은 바로 서재에 걸어 들어가 중요한 서류들을 챙기고는 노트북 가방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신수지는 얼른 달려가 그의 팔을 잡았다.“어디에 가려고요? 오빠, 가지 말아요. 내가 그렇게 싫어요?”“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때문에?”신이랑은 바로 그녀의 손을 뿌리쳐버렸다.“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 하지 말아요.”신이랑은 물건을 들고 바로 떠나버렸다.신수지는 그의 뒤를 쫓아가며 소리쳤다.“오빠!”신이랑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리를 떴다.신수지는 분노에 차올라 발을 동동 굴렀다.“이게 다 소민아 때문이야. 너만 없었다면 오빠도 날 멀리하지 않았을 거라고!”신이랑은 차를 몰고 집에서 나가 한 호텔 방에 체크인했다.신수지는 엉엉 울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유연홍은 자신의 귀한 딸이 울며 들어오자 얼른 뛰어가 달랬다.“왜 그래, 수지야? 누가 너 괴롭혔어? 엄마한테 말해.”유연홍은 신수지의 옆에 앉아 휴지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엄마! 저 신이랑한테 갔었는데 쫓겨났어요. 밥 한 끼 같이 먹겠다고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쳤는데...”“절 완전히 무시하더라고요.”“욕까지 했어요! 대체 제가 그 여자보다 못한 게 뭐예요? 그 여잔 나보다 나이도 많고 예쁘지도 않잖아요.”유연홍이 그녀를 달랬다.“수지야, 네가 이랑이를 찾아간 일 절대 아빠가 알게 하시면 안 돼. 아빠는 이미 이랑이를 집에 돌아오게 할 방법을 찾으셨어. 이랑이가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엄마가 어떻게든 널 받아들이게 할게.”“그러니까 지금은 너무 밀어붙이면 안 돼. 알겠니?”그 말에 신수지는 다운되었던 기분이 많이 괜찮아졌다.“하지만 오빠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