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는 소욱에게 물었다.“폐하의 아이입니까?”소욱은 터무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내 아이가 아니다.”그러나 그 순간, 무언가 떠오른 듯 그는 눈을 좁혔다.“설마…”그가 기억해낸 것은 조묘의 난 당시, 모용란이 자신과 얼굴이 닮은 아이를 데려와 소욱의 자식이라고 속였던 일이었다.천룡회가 대패한 후, 그 아이는 천옥에 갇혔고, 이후 서왕이 조사하여 그 아이가 천룡회에 의해 친부모로부터 강제로 빼앗긴 존재임을 밝혀냈다.그 아이의 부모는 천룡회와 관련이 없었기에 서왕은 아이를 친가로 돌려보냈다.……그 아이가 궁문 밖에서 떠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신하 진한길은 아이를 데려와 추궁했다.예상대로 그 아이였다.아이는 그때 입었던 옷 그대로였으나, 얼굴은 창백하고 야위어 있었다.아이는 소욱을 보자마자 억울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바마마,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소욱의 눈빛은 싸늘했다.“내가 또다시 나를 아바마마라 부르면 네 혀를 잘라버리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진한길!”“예, 폐하!”아이는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하지만 그들은 모두 폐하께서 제 아버지라고 했단 말입니다…”소욱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진한길에게 명했다.“저 아이를 다시 부모에게 돌려보내라. 그리고 그들에게 경고하라. 아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면 더는 키우지 말라고.”그는 냉정히 자리를 떴고, 남겨진 아이는 절망에 빠졌다.그날, 진한길은 아이의 친부모를 찾아냈다.그들은 진한길에게 하소연하며 고개를 숙였다.“우리 아들이 그자들 손에 끌려간 뒤로 이제야 돌아왔는데, 어려운 살림에 적응하지 못하고 황제 폐하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기는 훗날 태자가 되어 황제가 될 운명이라며… 저희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진한길은 냉정하게 일갈했다.“폐하께서 아이를 살려주신 것만도 큰 은혜다. 당장 아이를 데려가라!”부부는 아이를 인계받았으나, 그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나
“요녀 사건의 배후 주모자는 분명 북연이 아닙니다.” 봉구안이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북연이 아니라면 누가 배후에서 지시한 걸까?이에 대해 봉구안과 소욱 모두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한편, 성 밖 교외의 객잔에서 소박한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창가에 서서 남제 황궁을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천하를 바둑판 삼아, 선수를 쥐는 것이 이치.아쉽게도 그의 상대는 큰 뜻을 잃고, 남의 아내가 되는 것을 선택해버렸다.…요녀 사건은 소욱이 은이에게 맡겨 자세히 조사하도록 했다.천하의 정세는 풍운이 휘몰아친다.소욱이 해야 할 일은 남제를 강성하게 만들어 외적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병이 오면 막고, 물이 들이치면 흙으로 막아내어 두려울 것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그날 밤, 그는 봉구안과 함께 군대 개혁에 대해 늦은 밤까지 논의했다.“맹 장군이 제안한 개혁안이 매우 타당하구나. 하지만 너의 의견도 듣고 싶다.”봉구안은 스승이 쓴 개혁 방안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그녀는 진심으로 말했다.“남제의 모병제는 지방 장군들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방지하여 권력을 분산시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전시에는 모병제가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스승님께서 제안한 부병제는 기존 부병제를 완전히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두 제도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방안입니다.”“부병제는 농사와 군복무를 겸하게 하는 제도로, 평소에는 농사를 지어 곡식을 생산하고, 전시에는 전장에 나가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첫째, 백성은 먹을거리가 우선입니다. 근래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인해 조정에서 계속 군사를 징집하자 농업 인력이 줄어들어 곡식 생산이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부병제를 시행하면 이 상황을 크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둘째, 병사를 한시적으로 사용하고 유지하는 데도 큰 비용이 듭니다. 대규모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하루에 수십만 냥씩 들어가게 됩니다. 병사들이 별도의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가지면 조정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스승님께서 선성의
며칠 되지 않아, 교무당의 제자가 서른 명에 이르렀다.이미 전장에 나가 장수를 맡았던 관리도 있었고, 병법에 능통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뜻을 품은 가난한 집안의 자제들도 있었다.장차 장수를 길러야 할 교무당에는 평범한 백성이 쉽게 발을 들이긴 어려웠다.교무당의 스승은 현재 세 명이었다.봉구안 외에도, 문책을 가르치는 스승이 있었다.예를 들어 지형과 지세, 병력을 배치하는 그림을 그리는 법, 암호를 만드는 법 등을 가르쳤다.또 다른 스승은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법과 심리전을 가르쳤다.교무당 수업이 시작되기 전, 봉구안은 매우 바빴다.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깊이 고민했다.그날 밤, 소욱은 영화궁에 들렀다.봉구안의 책상 위에는 수많은 병서와 교무당 제자들의 명단이 놓여 있었다.소욱은 제자 명단을 집어 들어 몇 페이지를 넘겼다.이름들 중에는 그도 익히 아는 인물들이 많았다.봉구안이 이렇게까지 준비를 했으니, 자신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황후, 내게도 좀 가르쳐 줄 수 있겠느냐?”그는 명단을 내려놓고 그녀 곁에 앉으며, 피곤한 눈빛 속에 은은한 다정함을 담아 물었다.봉구안은 바쁜 와중에도 고개를 들어 그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그럼 절 국사로 봉해 주시겠습니까?”소욱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좋다. 네가 무엇을 하고 싶든, 다 들어주마.”하지만 봉구안은 그를 밀어내며 약간 귀찮다는 듯 말했다.“방해하지 마세요.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단 말입니다.”“내가 정사를 끝내고 달려왔는데도, 어찌 나를 외면하는 것이냐? 교무당 일이 내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냐?”소욱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만이 묻어났다.그제야 봉구안은 그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지도를 내려놓고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싼 뒤 입술 위에 가볍게 입맞춤했다.“이 정도면 됐습니까?”그녀의 이런 대충 넘어가려는 위로에 소욱이 순순히 만족할 리 없었다.하지만 봉
영화궁.빈궁들이 각자 마음을 품은 채로 문안 인사를 왔다.그들은 모두 이 새 황후가 만만치 않을지 어떨지 몰라 더욱 조심스러웠다.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황후마마, 교무당에 가서 강의를 하신다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문인 줄 알았습니다.”봉구안은 담담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상위자의 품격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저절로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차를 다 마신 봉구안은 느긋하게 입을 뗐다.“특별히 할 말 없으면 그만 돌아가도록 하세요.”빈궁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에게 예를 갖췄다.“네, 황후마마.”녕비는 황후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았다.아무리 봐도 폐비 봉씨와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녕비, 내 얼굴에 뭐가 묻었소?”봉구안이 한 마디 하자, 녕비는 간이 콩알만 해졌다.왠지 딱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아닙니다. 황후마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황후가 교무당에서 강의를 펼친다는 소식은 녕비만 들은 것이 아니었다.태후도 이미 소문을 들었다.자녕궁.계 상궁이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태후마마, 새로 들어온 황후는 정말 보통 내기가 아닌 듯 합니다.”“입궁한 이래로, 신혼 첫날밤을 제외하곤 매일 밤 황제가 영화궁에 머물렀다 합니다.”“영화궁은 매일 밤마다 물을 데우느라 분주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이렇게 방탕한 자가 어찌 어진 황후로 불릴 수 있겠습니까?”“게다가 이제는 교무당에 나가 강의를 하겠다니...”“이건 도저히 막 혼인한 여인의 모습이 아닙니다.”태후는 손에 쥔 염주를 굴리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현명한…”태후가 말을 꺼내는 찰나,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계 상궁을 크게 나무랐다.“황후는 국경을 지키던 여걸이다.”“한낱 상궁이 감히 황후의 험담을 하는 것이냐!”계 상궁은 난생처음 보는 그 패기에 기가 눌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공주마마께 인사 올립니다!”장공주가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그녀는 막
봉구안이 자녕궁에 들어서자, 장공주가 직접 나와 맞이했다.“소…” 장공주는 하마터면 잘못 부를 뻔했지만 곧바로 고쳐 말했다.“황후.”봉구안은 담담한 태도로 반응하며 우선 태후가 앉아 있는 자리를 향해 예를 올렸다.태후는 온화하면서도 약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예는 생략하거라. 자리에 앉아라.”그 후, 태후는 곧 자리를 뜨며 말했다.“내 몸이 피곤하구나. 계 상궁, 나는 이만 처소로 돌아가야겠다.”“예, 태후마마.”태후가 나가자, 외전에는 장공주와 봉구안만 남게 되었다.봉구안은 태후가 자신을 부른 것이 아니라, 장공주가 부른 것임을 깨달았다.장공주는 안부를 물으며 말을 꺼냈다.“황후께서는 요즘 안녕하십니까?”봉구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럭저럭 괜찮습니다.”장공주는 숨기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어마마마께서 황후를 부른 건 제 부탁 때문입니다.”“교무당이 다시 열리는데, 저도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 여쭙고 싶어서요.”봉구안은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그 일은 공주마마께서 폐하께 직접 청하시지요.”장공주는 콧방귀를 뀌며 불쾌하게 말했다.“폐하께 청하다니요? 그분은 절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저보고 한낱 여인으로서 조용히 시집갈 날만 기다리라 하시며, 이미 한 번 시집갔다 온 몸이니, 남자가 저를 데려가 주는 것만도 고마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여인을 우습게 보는 분이십니다.”봉구안은 이 말을 듣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소욱이 설마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군!”영화궁에서 소욱은 봉구안의 말을 듣자마자 크게 화를 냈다.자신이 언제 장공주에게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이건 명백한 비방이었다.“구안아, 날 믿어라. 공주는 나의 친 누님이다.”“또한 남제와의 화친을 위해 애쓴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공주를 그렇게 깎아내리겠느냐?”장공주가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건 이미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봉구안은 소욱의 성격을 잘 알기에 그의 말을 믿었다.다만, 소
봉구안은 소욱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의 얼굴을 들어올리며 진지하게 물었다.“폐하, 우시는 겁니까?”이 여인은 정말로 눈치가 없구나!하지만 다음 순간, 봉구안이 몸을 기울여 그의 입가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 입맞춤은 깃털이 스치는 듯 부드럽고 살며시 다가왔다.“폐하, 제가 안아 드려도 되겠습니까?”소욱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곧이어 봉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그의 다리 밑으로 손을 뻗었다.이건… 그를 품에 안아올리겠다는 뜻이었다.소욱은 곧바로 몸을 뒤로 뺐고, 허둥지둥하는 바람에 의자가 넘어졌다.“황후! 대체 뭘 하려는 것이냐!”“안아 드리려구요.” 봉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폐하께서 동의하신 일입니다. 왜 갑자기 피하시는 거죠?”그녀의 표정은 실로 당혹스러워 보였다.“남자를 이렇게 안는 법이 어디 있느냐?”대체 그를 뭐로 보는 거지.자존심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봉구안은 구름이 가볍게 흩어지듯 무심하게 말했다.“전장에서 누군가 다쳤을 때, 저는 이렇게 안아 왔습니다.”소욱은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황제인 나를 이렇게 안아선 안 된다.”“폐하께서는 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봉구안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고민하는 듯 보였다.“당연하지! 누가 이걸 좋아하겠느냐?”봉구안은 차근차근 다가왔다.“부부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소욱은 몸을 고정하고 땅속으로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알겠다. 이번 한 번만이다.”그가 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그는 다친 병사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모든 걸 잊었다.곧이어 봉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말 고분고분하시네요. 그러나 폐하, 억지로 자신을 희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소욱은 눈을 뜨며 의아함을 느꼈다.그녀의 진심은 대체 뭘까?봉구안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는 사람을 달래는 법을 잘 몰라요. 방금 폐하께서 울 것 같아 보
서왕은 대체 자신이 어떻게 감옥을 나왔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온몸이 무너져 내린 듯 정신이 혼미했고, 걸음걸이마저 허둥지둥 흐트러져 있었다.마치 혼이 빠져나간 허수아비처럼 공허한 상태였다.“전하...” 유화는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자책했다.그날 밤 자신이 전하를 잘 지켰다면, 전하가 그 여우 같은 여인에게 휘둘리지 않았을 텐데!서왕은 유화가 부축하려는 손길을 뿌리치며 말했다.“나에게 손대지 말거라.”그의 거칠고 낮은 음성은, 지금 그가 느끼는 절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어전.소욱은 서왕이 창백한 얼굴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무슨 일이냐?”서왕은 쿵 소리를 내며 땅에 무릎을 꿇었다.“폐하, 완부옥이...”한참을 더듬거리며 말끝을 잇지 못하고 완부옥의 이름만 중얼거렸다.소욱은 속으로 짐작했다. 설마 완부옥이 남자라는 걸까?그렇지 않고서야, 서왕이 이렇게 절망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영화궁.“완부옥이 회임을 했다니, 게다가 서왕 전하의 아이라니?” 봉구안은 적잖이 놀랐다.소욱 역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하지만 곧 생각을 정리하며, 만약 완부옥이 서왕과 혼인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그냥 그녀를 남강으로 내쫓아 봤자, 언제든 돌아올 가능성이 있었다.이제는 이런 문제를 깔끔히 마무리할 수 있을 터였다.소욱은 봉구안의 어깨를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이 두 사람을 혼인 시키려고 하는데,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봉구안은 단 한마디만 물었다.“완부옥은 어떻게 생각하나요?”소욱은 이미 알아본 뒤라 답이 준비되어 있었다.“서왕에 따르면 그 자도 혼인에 동의했다고 하더군. 어차피 아이도 생겼으니.”봉구안은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완부옥과 서왕이라니?한 명은 온화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고, 다른 한 명은 냉혹하고 무자비했다.그 둘이 초야를 치뤘다는 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신이 알던 서왕은 심지가 깊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교무당에서의 강의가 시작되자, 학자들은 차례로 자기소개를 했다.여러 장수 중, 봉구안은 이미 익숙한 인물들이 있었다.하지만 그중 몇몇 가난한 집안 출신은 생소했다.그들의 차례가 오자, 하나씩 이름과 신분을 밝히기 시작했다.“학생 견진, 양남 출신입니다.”“소자는 곽인, 지금은 황성에 살고 있으며,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저의 뜻입니다!”“학생 신국안, 평소에 맹 소장군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습니다. 특별히 소장군을 위해 시 한 수를 지어 왔습니다.”...마지막 한 사람의 차례가 되자, 그는 일어나 다른 이들처럼 말을 길게 늘어놓지 않았다.대신 한결같이 침착한 모습으로 운치 있는 장수의 기품을 풍기며 간단히 말했다.“소자는 유연이라고 합니다.”봉구안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그의 가문 배경을 다시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유연은 출중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옆사람들이 농담을 던졌다.“유 형제 같은 사람이 전장에 나가면, 적군이 미인으로 착각할 겁니다!”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유연은 전혀 화내지 않았고, 그의 눈빛에는 담담한 거리감이 담겨 있었다.마치 세상의 그 어떤 일도 그의 감정을 흔들 수 없다는 듯했다.봉구안은 단호하게 명했다.“조용히 하세요.”그제야 모두 입을 다물었다.한 장수가 질문을 던졌다.“황후마마, 마마를 마마로 불러야 합니까, 아니면 맹 소장군으로 불러야 합니까?”봉구안은 강단 뒤에 숨어 수업을 하지 않았다.대신 솔직하고 당당하게 대답했다.“교무당에서는 직책이나 신분이 없습니다. 오직 선생과 제자만 있을 뿐입니다.”유연이 선뜻 일어나, 예를 갖추며 말했다.“그렇습니다, 선생님.”그는 평온한 말투로, 바다처럼 깊고 고요한 시선으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두 명의 선생이 강의할 때, 봉구안은 옆에서 지켜보며 각자의 학습 태도를 세심히 관찰했다.견진은 유일한 여학생으로, 생각이 흔들리기 쉽고 병법은 이미 능숙했지만, 맹 소장군에게 실전적인 전투법을 배우고
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얼굴로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잠시 후 궁으로 돌아가거라. 어의에게 너의 상태를 잘 살피게 하겠다."봉구안은 서여국으로 비밀 사절로 파견된 상태였고, 황제와 그녀의 심복 모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황제의 호위병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황제의 배려에 봉구안은 사양하려 했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모신이 먼저 물었다."폐하, 저 관료들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황제는 조여란이 화살로 모두를 살해하려 했던 순간, 관료들 중 일부가 외쳤던 말을 떠올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조여란의 동조자는 모두 체포하고, 나머지는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라.""예, 폐하!"그 순간, 반역죄가 자신들에게 닥쳤음을 깨달은 관료들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폐하, 살려주십시오!""폐하! 순간의 실수였습니다!""폐하, 조여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습니다!""폐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그러나 서여국 황제는 이들의 간청을 전혀 듣지 않고 단호하게 명령했다."끌고 가거라!"그렇게 조여란의 동조자들은 모두 체포되었다."아아…" 숙연은 조여란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점점 불안에 휩싸였다. 그녀는 급히 몸을 떨며 말했다."저는 조여란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억울하게 끌려온 것뿐입니다."서여국 황제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억울하다고? 내가 본 건 너와 조여란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서여국 황제는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숙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머리를 저었다."아닙니다! 언니,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여란이 반역자인 줄도 몰랐습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여국 황제는 검을 뽑아 숙연의 목에 겨누며 비웃듯 말했다."아직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구나?"숙연의 동공이 흔들리며 그녀는 급히 외쳤다."언니, 저… 저는 언니의 친동생입니다…!"그 순간, 황제는 매섭게 칼로 그
봉구안은 허공으로 치솟으며 다리로 신속하게 상대를 공격했다.경공을 잘하는 그녀였기에 발차기 실력도 남달랐다.조여란은 그녀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그 과정에 발길질에 맞은 그녀의 얼굴은 퉁퉁 부어올랐다.착지한 봉구안은 한손을 등 뒤에 감추고 한손을 뻗으며 조여란을 도발했다.조여란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그녀는 옷섶으로 흐르는 피를 닦고는 음침한 눈으로 봉구안을 노려보았다.“너 대체 정체가 뭐냐!”황제 신변의 호위가 이 정도로 강했던가?봉구안은 대답 대신, 이차 공격을 시전했다.철갑옷 같은 기공을 상대하려면 기교가 중요했다.그녀는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응집했다.그리고 손바닥을 아래로 둔 채로 신속히 전방을 향해 찌르기를 시전했다.그녀의 손이 조여란의 가슴에 닿았다.평범한 주먹질처럼 보여도 뾰족하게 튀어나온 중지에 모든 힘이 실렸다.봉구안은 내력을 집중하여 중지에 실었기에 그 위력은 상당했다.“푸흡!”조여란의 등이 굽어지더니 입으로 피가 섞인 열물을 토해냈다.그녀는 뒤로 엉거주춤 물러나 가까스로 다시 중심을 잡았다.“철갑옷!”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구안의 주먹이 그녀의 늑골을 향해 날아왔다.뼈를 관통할 것 같은 위력이 담긴 일격에 조여란은 신음을 내뱉으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네 이년! 숙천설이 대체 너한테 뭘 약속했길래… 악!”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주먹이 눈을 향해 날아왔다.조여란은 눈을 붙잡고 다시 뒤로 물러났다.“숙천설! 자신 있으면 나랑 붙어! 남의 등 뒤에 숨어 있는 게 무슨 황제야! 나와! 숙천설!”서여국 황제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헀다.“조여란, 네 철갑옷이 천하무적은 아니었군.”조여란은 이를 갈았다.“그럴 리 없어!”봉구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헀다.“철갑옷은 날카로운 검이 아니면 상처를 낼 수 없지. 섭정왕,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네가 이긴다면 길을 비키도록 하지.”말을 마친 그녀는 손을 뻗었다.“검을 가져오너라!”잽싸게 모습을 드러낸 은육
봉구안은 싸늘한 눈으로 조여란을 바라보며 전의를 불태웠다.그 유명한 철갑옷 공법을 한번 눈앞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순식간에 봉구안은 발로 땅을 구르며 앞을 향해 튕겨나갔다.조여란은 그 자리에서 자세를 취하고 기를 운용하여 공법을 시전했다. 온몸의 근육이 단단하게 굳기 시작하더니 마치 단단한 방패를 연상케 했다.봉구안은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창을 받아라!”그녀가 창술에 능하다는 것을 아는 서여국 황제가 그녀를 향해 무기를 던졌다.봉구안은 창을 받고는 고개도 안 돌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조여란은 음침한 얼굴로 다시 공법을 시전했다.장창이 그녀의 어깨를 찔렀지만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했다.봉구안은 다시 정신을 다잡고 상대의 가슴을 향해 창을 찔렀다.하지만 극한으로 끌어올린 조여란의 철갑옷 공법 때문에 창끝은 그녀의 옷을 찢고도 가슴에 상처 하나 남기지 못했다.봉구안의 모든 초식은 상대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장창이 부러질 때까지 찔렀는데도 조여란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진기를 응집한 조여란은 산발이 된 머리를 휘날리며 음산한 눈빛으로 소리쳤다.“숙천설,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그녀는 봉구안을 밀치고 서여국 황제에게 달려들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황제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봉구안은 다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분노한 조여란이 호통쳤다.“주제도 모르는 것, 감히 내 앞을 가로막다니! 그래! 네년부터 죽여주마!”곧이어 조여란의 공세가 이어졌다.두 사람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육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그림자 호위 은삼이 은이에게 말했다.“형님,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까요?”은이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마마께선 지시를 받고 움직이라 했다.”은삼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조여란 저 여자 꽤 하는데요? 마마께서 다칠까 걱정돼요.”은칠이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마마와 조여란이 결전을 벌이는데 은삼이 재수없는 말만 하며 마마를 저주했습니다.]탁!은
조여란 신변의 병사들이 활시위를 잡았다.이때 누군가가 외쳤다.“당장 그만둬!”조여란은 의아한 얼굴로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수많은 사람들이 광화사 대문을 열고 반란군의 앞으로 다가갔다.서여국의 관원들이었다.문무백관이 거의 다 이곳에 잡혀왔다.황제가 한 짓일 것이다.조여란이 차갑게 말했다.“저들을 인질로 나를 협박하려고? 난 누구든 죽일 수 있어!”대신들은 미친 사람처럼 발악하는 조여란의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섭정왕! 자네가 이런 사람이었을 줄이야!”“조여란, 감히 반역을 꾀하다니!”“우릴 다 죽이면 천하 백성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하려고? 조정에 관원이 한 명도 없으면 넌 황제가 되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조여란은 이미 이성을 상실했다.“멍청한 것들은 버려도 좋아!”갑자기 검은 인영이 공중에서 나타났다. 그는 조여란도 익숙한 인물, 숙연을 데리고 있었다.“이 여자도 내칠 것이냐?”봉구안은 숙연을 앞으로 밀치며 싸늘하게 물었다.고공 비행에 숙연은 이미 겁에 질려 얼굴이 파리하게 질린 상태였다.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조여란을 향해 소리쳤다.“왕야, 나 좀 구해줘!”봉구안은 뒤에서 그녀의 턱을 잡고 비아냥거렸다.“숙연 대인, 이럴 때는 폐하께 살려달라 애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조여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사실 그녀 역시 숙연에게 정이 있었다. 어쨌거나 그녀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장기말이었다.하지만 그것보다는 대의가 더 중요했다.“활시위를 당겨라!”곧 화살이 자신을 향해 날아올 것을 감지한 뭇 대신들이 소리를 질렀다.“조여란, 미쳤어? 우리 같은 편이잖아!”“황시위를 당기라니까!”조여란은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숙연은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조여란을 바라보고 있었다.심지어 조여란이 데려온 병사들마저 모두 죽이라는 말에 동요하고 있었다.황제를 살해하는 것은 황위를 빼앗기 위함이지만 관원들을 죽이면 어떻게 될까?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이었다.병사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얼굴을 가린 그림자
광화사.조여란의 대군과 호원아의 대군이 대치 중에 있었다.“호원아, 넌 무단으로 직무지를 떠나 폐하를 해하려고 하였다. 내가 섭정대권으로 너를 처단할 것이다!”호원아는 화가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난 폐하의 명을 받들어 광화사를 지키고 있는데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조여란, 반역은 네가 했지! 그리고 너희들, 감히 조여란과 결탁하더니! 폐하께 미안하지도 않느냐!”조여란의 옆에 선 한 장군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방구 뀐 놈이 성낸다고! 호원아, 당장 비켜! 우린 폐하가 무사한지 확인해야겠다!”친히 광화사 대문을 지키고 선 호원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너희를 들여보내? 꿈 깨!”조여란은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전방을 노려보며 손짓했다.“활시위를 당겨라!”그녀가 데려온 대군은 호원아가 이끄는 부대보다 인원수가 훨씬 많았다.아무리 호원아라도 쪽수 앞에서는 별 수가 없을 것이다.갑옷을 입은 호원아가 근엄한 목소리로 명령했다.“포진하고 화살을 방어해라!”뭇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광화사 안쪽까지 후퇴했다.화살비가 한바탕 쏟아진 후, 조여란은 마치 충신처럼 안쪽을 향해 외쳤다.“폐하, 소신이 너무 늦게 와서 송구합니다!”쾅!이때 대문이 열렸다.고개를 든 조여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용포를 입고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황제였다.“섭정왕, 늦었군.”서여국 황제의 신변에는 수십 명의 고수가 지키고 있었다.조여란은 싸늘한 눈빛으로 황제를 가리키며 말했다.“넌 폐하가 아니야!”모신 상궁이 분노한 말투로 반문했다.“섭정왕, 미친 것이냐! 폐하께서 여기 계신데 감히 손가락질을 해?”조여란은 등 뒤에 서 있는 뭇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최근 폐하와 똑같이 생긴 여인이 광화사에 진입하였다는 보고가 있었다. 폐하를 사칭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호원아 너의 간계였구나.”“호원아, 네가 가짜 황제를 내세우고 진짜 폐하를 해한 게 틀림없어!”호원하가 분통해서 말했다.“조여란, 함부로 사람 모함하지 말거라!”서여국 황제는
광화사 밖은 황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는 그림자 호위가 봉구안을 지키려 대기하고 있었다.그림자 호위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광화사만 주목하고 있었고 은칠만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황후께서 변장을 하시고 서여국 폐하와 야밤에 은밀한 밀회...”그가 쓴 내용을 본 은삼이 주먹을 그의 머리에 꽂았다.“밀회는 무슨 밀회야!”순식간에 은칠의 정수리가 볼록하게 부어올랐다.“왜 셋째 형님도 저한테 그러십니까?”은삼은 또 한번 주먹을 휘두르고는 소리를 죽여 말했다.“둘째 형님이 왜 널 잘 지켜보라고 했는지 알겠어! 은칠, 전에는 몰랐는데 너 소설 쓰는 재주가 있다? 너 마마께서 곤란해 지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폐하와 마마 사이를 이간질하려고!”은칠이 울먹이며 말했다.“다들 저만 괴롭혀요! 폐하께 고발할 거예요!”그는 눈물을 머금고 한마디 덧붙였다.[은삼이 보고서를 쓰는 것을 방해하며 사실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은삼은 뒷골이 땡기는 기분이었다.“쉿! 누가 오고 있어!”은사가 낮게 말했다.시위대가 야간 교대를 하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 한 시위가 황제가 있는 절당으로 아침을 가지고 갔다.모신 상궁이 밖으로 나오자 시위가 조심스레 물었다.“모 상궁님, 폐하께서는 밤새 잘 주무셨나요?”모신이 싸늘한 얼굴로 답했다.“그래.”시위가 또 물었다.“그럼 어제 밤에 방문하신 귀빈은…”그는 안을 들여다보려고 고개를 기웃거렸고 모신은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절당 안.모신은 아침을 식탁에 차리고 은침으로 독을 검사했다.반찬에 독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황제에게 식사하라 전했다.식탁에 마주앉은 황제가 물었다.“그자는 무사히 나갔고?”모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예, 어젯밤 소인이 광화사 밖까지 바래다드렸습니다.”황제는 죽 한숟가락 떠서 입가로 가져갔다.이틀 전, 봉구안을 다시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저는 숙연 대인
광화사.마차에서 내린 서여국 황제는 주지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문득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따라온 호위들 중에 몇몇 안 보던 얼굴이 있었다.아마 조여란이 보낸 자들일 것이다.서여국 황제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하고 앞으로 걸었다. 황금색 용포가 햇살을 받으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방에 도착하자 문을 잠근 상궁 모신이 조심스레 말했다.“폐하, 광화사가 좀 이상합니다.”불상 앞에 마주선 서여국 황제가 싸늘한 눈빛을 하고 말했다.“이곳은 짐을 위해 만들어진 감옥이다.”승려는 진작에 바뀌었을 것이다.승상의 영향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그날 밤, 황궁 서재.숙연은 상소문을 읽고 있는 조여란에게로 다가가 직접 포도를 입에 넣어주었다.조여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런 거 하지 마.”이제 나이도 있는데 지금도 소녀처럼 구는 숙연이 못마땅했다.숙연은 허리를 숙이고 조여란의 목을 끌어안고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뭘 겁내. 어차피 이 황궁과 서여국 전체가 우리의 것이 되었는데.”조여란은 굳은 표정으로 상소문에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아직 부족해. 그 여인이 살아 있는 한, 황제는 여전히 그 여인이야.”“만약 너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었다면 국정 감사만 맡기지 않았겠지.”“내가 보기에…”“뭐 의심 가는 거라도 있어?”숙연은 예쁘장한 얼굴로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조여란은 그녀의 턱을 잡고 차갑게 말했다.“폐하의 몸 상태가 이 지경인데 아직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야.”“어쩌면 몰래 신의를 찾아서 아무도 모르게 치료를 받으려는 것일 수도 있어.”숙연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그렇다는 건 우릴 의심한다는 소리 아니야?”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몰래 병치료를 하려 했을 리 없었다.조여란이 차디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눈치챘다고 해도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건 없어.”“광화사 안팎에 모두 내 사람들이거든. 숙연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태상황이 분노한 고함을 질렀다.“미친 놈!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짐은 네 아비이자 북연의 황제란 말이다!”하지만 그의 아들이자 현임 황제는 병부에 눈이 멀어 그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태상황이 강력한 무공을 갖고 있는 것을 걱정해서 사내들은 그에게 근력을 무력화시키는 약을 먹였다.나이가 든 태상황은 결국 숫자에 밀려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그는 곧 떠나려는 신임 황제를 보고 곧 있으면 이 사내들에게 유린당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처음으로 당황했다.“아니… 아니 된다!”신임 황제는 매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병부, 내놓으실 거지요?”분노한 태상황이 포효했다.“하늘이 북연을 멸하려는 게구나!”신임 황제가 음침한 눈을 하고 말했다.“아바마마,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병부, 내놓으실 거죠?”태상황의 몸은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였다.병부를 내놓지 않는다면 오늘 밤 무슨 일을 당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이런 치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내는 없었다.하물며 그는 북연의 황제였다.태상황은 굴욕의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그래, 알았다!”일각이 지난 후.신임 황제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병부를 들고 동화대를 떠났다.마차에 오른 그는 동화대 정문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짐의 아바마마도 역시 정상인이었군.”동화대.태상황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에 깔린 비빈들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었다.불과 몇 달 사이에 그는 열 살은 더 늙은 것 같았다.그는 후회막심하여 검을 들고 자결을 택하려 했다.병부를 내놓으면 북연이 어떤 결말을 초래할지 뻔히 알면서 자신의 결백을 위해 결국 내놓고 말았으니 나라에 큰 죄를 지은 거나 다름없었다.챙그랑!검이 바닥에 떨어졌다.결국 그는 죽을 용기조차 없었다.그는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하늘과 조상님들이 보우하여 협공 작전이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은가?태상황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창밖의 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한편, 서여국.봉구
북연.궁밖의 동화대는 황가에서 건설한 작은 행궁이었다. 압박에 의해 퇴위한 태상황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이곳에서 편히 쉬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상 구금이나 다름없었고 안팎에 군대가 지키고 있었다.내실, 태상황은 근엄한 자세로 상석에 앉아 있고 그의 앞에는 불효자식인 신임 황제가 있었다.황제는 강압적인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고 태상황도 화가 난 상태였다.“남제를 협공한다고? 네가 북연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구나!”태상황은 과거에 마음이 약해져서 이 불효자식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다.신임 황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병부때문이었다.그의 눈에는 광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마치 이 문제만 해결하면 천하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아바마마, 곧 거사가 성사됩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온 천하가 북연에 귀속되는 광경을 보게 되실 겁니다. 북연이 천하통일을 이뤄내지 못하더라도 남제는 멸망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병부를 내어주시지요!”태상황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아들을 꾸짖었다.“어리석은 놈! 넌 미친 게 틀림없어!”“남제는 하루아침에 멸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짐은 이 일에 동의할 수 없다!”인내심이 바닥난 신임 황제는 태상황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고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울부짖었다.“아바마마, 왜 아들을 이리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짐도 대국을 위해서란 말입니다! 아바마마께선 나이가 드셨고 북연은 더 이상 아바마마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전장에 패배한 기록이 없던 북연이 아바마마의 손에서 연속 남제에 패했습니다.”패배한 전장을 언급하자 태상황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손을 뻗어 아들의 뒤통수를 갈기며 호통쳤다.“그걸 말이라고! 이 후레자식이! 네가 아니었으면 북연은 삼십만 대군을 잃지 않았어! 네가 아니었으면 남제가 화룡을 접촉할 일도 없고 화룡을 제작해낼 일도 없었어!”“북연의 지금 상황은 다 네가 초래한 거야!”뒤통수를 맞은 신임 황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