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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작가: 피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25 18:56:20
눈을 뜨자, 새하얀 천장과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염혜주 환자분, 깨어나셨네요. 지금은 어떠세요?”

간호사가 내 눈을 살피며 혈압을 측정했다.

“환자분, 수술 부위가 찢어지면서 대량 출혈이 있었지만, 다행히 지금은 위험한 상황은 지났습니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말고 충분히 쉬셔야 해요.”

“그러게... 혜주야,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해. 치료가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잖아.”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심민규가 내 옆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오긴 한 모양이네...’

그는 내 곁에 서서 이불을 정리해 주고, 병상 등을 올려 나를 편하게 해주었다. 그러더니 보온 도시락에서 닭고기 수프를 떠내 내 앞에 놓았다.

“내가 직접 끓인 거야. 몸 보양 좀 해. 너도 이제 엄마가 됐으니 철 좀 들어야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지, 이현이랑 경쟁하겠다고 애쓰다가 이게 무슨 고생이냐?”

나는 그가 내밀어준 닭고기 수프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수술 부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는 순간 멈칫했다. 그 표정이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예전처럼 그에게 순응하지 않는 것에 놀란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그의 사업에 집중하도록 돕기 위해 모든 집안일을 도맡았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나는 그의 ‘정성’에 감동해서 눈물이라도 흘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깊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근데 당신이 여기 있으면 아기는 누가 돌보고 있어?”

“혜주야, 내가 그런 걸 소홀히 할 사람으로 보여? 봐봐.”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 아들이 옆 침대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내가 일부러 집에 가서 아기 데려왔어. 분유도 먹였지. 어때, 남편 잘했지?”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숟가락에 수프를 떠서 내게 내밀었다.

“자, 이거 좀 먹어. 몸 보양해야지.”

그 순간, 병실 문 밖에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이현 환자 보호자 계세요? 환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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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코올은 아기의 뇌에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이건 기본적인 육아 상식이에요. 아버지로서 이런 건 좀 더 공부하셔야겠네요.”의사의 단호한 말에 심민규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알코올 일부는 이미 아기 몸에 흡수되었습니다. 이 처방전을 들고 가셔서 약을 받아오세요.”심민규는 의사의 처방전을 서둘러 받으며 말했다.“여보, 너는 여기서 아이랑 있어. 이런 일은 내가 할게.”나는 고개만 끄덕였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심민규가 약을 받으러 간 뒤, 병실에는 나와 소이현만 남았다. 소이현은 더 이상 억지로 착한 척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한층 냉랭해졌다.“염혜주, 너 진짜 질긴 붙임성이야. 그렇게 심민규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네 모습, 스스로 한심하지도 않아?”나는 차분히 대답했다.“나는 심민규의 법적 아내야. 누가 한심한지는 너도 잘 알겠지?”소이현은 내 말에 뼈를 맞은 듯,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한 걸음씩 다가왔다.“뭐 하려는 거야? 내가 너한테 겁먹을 거 같아?”나는 그녀가 나를 향해 무언가를 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내가 아니라 내 아이였다.소이현은 아이의 요람을 번쩍 들더니, 창문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소이현!”나는 외쳤지만, 그녀는 웃음소리를 내며 창밖으로 아이를 내밀었다. 그 웃음은 뒤틀리고 섬뜩했다.“심민규는 어려서부터 내 발밑에서 기던 강아지 같은 존재였어. 내가 몇 년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너 같은 급이 떨어지는 여자와 결혼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내 걸 빼앗으려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소이현의 손이 점점 느슨해지는 걸 보며 나는 망설일 여유도 없이 몸을 던졌다.그 순간 병실 문이 열리고, 약을 들고 돌아온 심민규가 창가의 장면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민규야, 혜주 씨가 미쳤어! 날 공격하려고 해!”소이현은 순식간에 목소리를 바꿔 심민규를 향해 애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잡은 손을 놓아버렸다.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 아이를

  • 출산 후의 전쟁   제7화

    정갈하고 화려한 요리들이 차례로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심민규는 자기 스테이크를 잘라 소이현의 접시에 옮겨주었다.“민규야, 해외로 나간 이후로 이렇게 스테이크를 잘라주는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었어. 역시 너뿐이야...”소이현의 애매한 말투에 심민규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나는 이 테이블에서 누가 누구에게 스테이크를 잘라주는지 관심도 없었다. 오직 이 식사를 끝내고 이혼 문제를 마무리 지을 생각뿐이었다.그러나 소이현은 내가 칼과 포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더니 푸시시 웃음을 터뜨렸다.“혜주 씨, 칼과 포크를 그렇게 잡으면 어떡해요? 프랑스 요리는 예의를 중시하는데, 먹을 때는 포크만 사용하는 게 기본이잖아요.”그녀는 나를 시골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려 했다.내가 창피해하는 모습을 기대했겠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태연하게 내 접시에 있는 음식을 먹었다.소이현은 내가 반응하지 않자, 심민규의 팔꿈치를 툭툭 건드렸다.“민규야, 왜 혜주 씨한테 이런 기본적인 것들도 안 알려줬어? 정말 답답하다니까.”예상과 달리 심민규는 약간 짜증 난 얼굴로 대답했다.“그냥 밥 한 끼 먹는 건데, 어떻게 먹든 뭐가 중요해...”소이현은 입술을 삐죽이며 약간 비꼬는 목소리로 말했다.“민규는 진짜 혜주 씨한테 너무 관대하네.”소이현은 가방에서 작은 선물 상자를 꺼냈다.“아, 맞다! 혜주 씨, 오늘은 직접 사과하려고 온 거니까 내 마음을 꼭 받아줘. 안 그러면 너무 죄송해서 잠을 못 잘 것 같아.”나는 받지 않으려 했지만, 소이현은 재빠르게 상자를 열어 내 앞에 내밀었다. 그 안에는 정교한 레이스로 된 속옷 세트가 들어 있었다.한눈에 보기에도 그 사이즈는 너무 작았다. 아이를 막 출산한 나는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사이즈였다.소이현은 악의적인 미소를 띠며 말했다.“혜주 씨, 민규랑 행복하게 지내. 그러려면 이런 건 꼭 필요하잖아.”나는 냉소적으로 상자를 닫아 그녀에게 돌려주며 단호히 말했다.“필요 없어.

  • 출산 후의 전쟁   제6화

    효정의 집 근처로 이사한 후 나는 육아 도우미를 고용했다.출산 전에 심민규는 내게 약속했었다.“가장 좋은 산후조리원을 예약할게. 거기에 최고급 육아 도우미까지 붙여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그는 말을 바꿨다.“아이는 엄마가 직접 돌봐야 애정이 생겨. 그리고 지금 회사 자금 회전이 바쁘니까, 도우미는 사치야.”그는 내 밤샘 육아로 인해 빠진 머리카락이 침대에 흩어진 것을 보고 짜증 냈다.“너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많이 빠져? 정리 좀 해. 몸조리도 제대로 못 하고... 몸에서 비린내까지 나니까 흥미도 없잖아.”그러나 소이현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자상한 그의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사랑하는 것과 결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지금은 밤마다 아이를 맡길 수 있어서 드디어 푹 잘 수 있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집안일에서도 벗어나 효정과 함께 이혼 서류를 준비할 시간도 생겼다.서류 준비가 마무리된 어느 날, 몇 주간 연락이 없던 심민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혜주야, 왜 요즘 나한테 말도 안 해? 또 삐쳤어? 오늘 밤에 내가 최고급 프렌치 레스토랑 예약했으니까, 우리 같이 가자. 효정 씨네 주소 보내. 데리러 갈게.”심민규에게 내 불만을 말하는 건 그저 ‘삐쳤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나는 처음엔 답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혼 서류가 준비된 마당에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굳이 안 와도 돼. 주소 알려줘. 내가 직접 갈게.”이전 같으면 심민규는 내가 ‘철들었다’며 칭찬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따라 그는 꼭 데리러 오겠다고 고집했다.나는 효정의 집 주소를 알려주고 싶지 않아 근처의 한 아기용품점을 지정했다.“여기로 와.”나는 아기를 위한 새 장난감을 몇 개 사 들고 약속한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갔다.심민규의 차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조수석 문을 열자,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은 소이현이었다.“혜주 씨, 전에 내가 기분 상하게 만든 거 정말 미안해. 민규한테 부탁해서

  • 출산 후의 전쟁   제5화

    효정이 아이를 돌보는 사이, 나는 휴대폰을 열어 놓친 메시지가 있는지 확인했다.화면에는 효정이 보낸 걱정스러운 메시지들과 함께, 심민규의 단톡방에서 쏟아지는 알림이 가득했다.단톡방은 그가 나와 결혼하고 나서야 초대된 곳이었다. 그런데 소이현은 이미 그 방에 있었다. 나는 그제야 심민규에게 소꿉친구라며 ‘어릴 적부터 함께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방의 메시지는 예상대로 소이현의 상태를 걱정하는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었다.“이현 공주님 괜찮으세요? 민규야, 이현이 잘 못 챙기면 안 된다!”“민규도 어쩔 수 없는 신세잖아. 와이프가 너무 속이 좁아서 말이야.”나는 그런 메시지들을 무시하고, 위쪽으로 스크롤을 올렸다.그러다 ‘닭고기 수프’라는 단어에서 흠칫 멈췄다.“우리 이현이 행복해졌네.”“이 닭고기 수프 봐라. 침 고인다. 진짜!”“두 사람 이제야 행복을 찾은 것 같네!”내 마음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계속 위로 올리자, 소이현이 올린 짧은 영상이 있었다.“누가 끓인 수프일까? 다들 맞혀봐!”그녀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매혹적이었다. 겁에 질린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영상 속 수프는 정성스럽게 끓여져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카메라가 움직여 심민규의 얼굴을 비췄고, 그는 소이현의 발을 따뜻하게 감싸며 웃고 있었다.“이현아, 장난치지 말고 얼른 먹어라.”심민규는 그녀를 보며 애정 어린 미소를 지었다.나는 모든 의문이 풀렸다. 보온 도시락에 담긴 닭고기 수프가 차가웠던 이유, 그리고 그 안에 왜 닭 뼈만 들어 있었는지... 그 수프는 소이현이 이미 먹고 남긴 것들이었다.‘정말로 심민규가 나를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거야...’효정도 옆에서 영상을 보고 있었다.그녀는 분노에 찬 얼굴로 보온병과 그 안의 수프를 쓰레기통에 던졌다.“걱정하지 마. 혜주야, 나는 승소율이 높은 이혼 전문 변호사야. 절대 네가 손해 보게 하지 않을 거야. 심민규 같은 쓰레기, 내가 꼭 알거지로 만들

  • 출산 후의 전쟁   제4화

    눈을 뜨자, 새하얀 천장과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염혜주 환자분, 깨어나셨네요. 지금은 어떠세요?”간호사가 내 눈을 살피며 혈압을 측정했다.“환자분, 수술 부위가 찢어지면서 대량 출혈이 있었지만, 다행히 지금은 위험한 상황은 지났습니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말고 충분히 쉬셔야 해요.”“그러게... 혜주야,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해. 치료가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잖아.”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심민규가 내 옆에 서 있는 게 보였다.‘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오긴 한 모양이네...’그는 내 곁에 서서 이불을 정리해 주고, 병상 등을 올려 나를 편하게 해주었다. 그러더니 보온 도시락에서 닭고기 수프를 떠내 내 앞에 놓았다.“내가 직접 끓인 거야. 몸 보양 좀 해. 너도 이제 엄마가 됐으니 철 좀 들어야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지, 이현이랑 경쟁하겠다고 애쓰다가 이게 무슨 고생이냐?”나는 그가 내밀어준 닭고기 수프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수술 부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어?”그는 순간 멈칫했다. 그 표정이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예전처럼 그에게 순응하지 않는 것에 놀란 건지 알 수 없었다.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그의 사업에 집중하도록 돕기 위해 모든 집안일을 도맡았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나는 그의 ‘정성’에 감동해서 눈물이라도 흘려야 했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더 이상 깊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근데 당신이 여기 있으면 아기는 누가 돌보고 있어?”“혜주야, 내가 그런 걸 소홀히 할 사람으로 보여? 봐봐.”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 아들이 옆 침대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내가 일부러 집에 가서 아기 데려왔어. 분유도 먹였지. 어때, 남편 잘했지?”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숟가락에 수프를 떠서 내게 내밀었다.“자, 이거 좀 먹어. 몸 보양해야지.”그 순간, 병실 문 밖에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이현 환자 보호자 계세요? 환자가

  • 출산 후의 전쟁   제3화

    소이현은 집에 가지 않았던 것이었다.방금 씻은 듯 머리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그녀는 내가 임신 전 입었던 슬립형 잠옷을 입고 있었다. 풍만한 가슴이 잠옷의 가슴 부분을 팽팽하게 채웠다.내가 들어오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마치 내가 그녀의 집에 침입한 외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혜주 씨, 집에 들어왔네? 난 막 귀국해서 집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어. 민규 씨가 잠깐 여기서 지내도 된다고 해서... 혜주 씨도 괜찮지?”소이현은 입으로는 정중한 말을 했지만, 내가 수유를 위해 풀어 놓은 옷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앞에 다가왔다.입술은 매끈하게 글로스를 발라 앵두같이 빨갛고 매혹적이었고 목소리는 지나치게 달콤했다.“민규야, 혜주 씨 정말 관리를 잘한 것 같아.”하지만 심민규가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그녀는 나를 비웃는 눈으로 흘겨보았다. 늘어진 가슴, 그리고 임신과 출산으로 뒤덮인 배의 튼살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조롱 대상이었다.심민규는 그녀의 도발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정말 칭찬인 줄 알고 맞장구를 쳤다.“얘가 뭘 알겠어. 하루 종일 게으름만 피우고, 애 낳고 나서 화장도 안 하잖아. 이현아, 넌 너무 착해서 문제야. 이렇게까지 말을 예쁘게 한다니까...”그리고 나를 보고 말했다.“혜주야, 너는 살 좀 빼야 해. 다른 사람들은 애를 낳고 나면 원래 몸으로 돌아가던데, 너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냐? 내가 너 너무 편하게 해줘서 그런가 봐.”심민규는 마치 우스갯소리를 하듯 계속해서 비아냥거렸고, 소이현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어깨를 살짝 때렸다.“아유, 민규야. 너 이렇게 재밌는 사람이었어? 근데 너무 진지하게 말하면 어떡해? 그러다 혜주 씨가 진짜 화내면 큰일이잖아!”심민규는 여전히 농담처럼 대꾸했다.“나는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그걸로 왜 화를 내겠어?”나는 아기를 안고 있던 손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소이현의 도발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남편이자 내 아이의 아빠라는 사람이, 그녀의 비웃

  • 출산 후의 전쟁   제2화

    “염혜주, 지금 뭐 하는 거야? 또 누구한테 불만이 있어서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건데!”심민규의 말에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흘겨보았다.“난 지금 아기 젖 먹이러 가야 해.”그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나는 더 이상 그에게 신경 쓸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곧 이혼할 사람이었다.이제 내게 중요한 건 오직 내 아기뿐이었다.아이 방문을 열자, 아들은 작은 침대에 누워 입을 벌리고 울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울었는지, 허기진 듯했다.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서둘러 아기를 품에 안았다.뒤따라 들어온 심민규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에 나는 이성을 잃을 뻔했다.“심민규, 너는 혼자 배부르게 먹고 놀면서, 애가 이렇게 우는데 4시간 동안 분유 한 번도 안 먹였어?”“염혜주, 말 똑바로 해. 지금 하늘 같은 남편한테 뭘 잘했다고 까칠하게 구는 거야?”그는 되레 당당한 태도로 받아쳤다.“누가 몰라? 애한테는 모유가 좋다며? 너는 그걸 아는 사람이 애만 딸랑 집에 두고 나갔어? 나한테 뭐라고 할 자격이 있냐고!”나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다시 물었다.“그럼 기저귀는? 너는 애 아빠잖아. 내가 없으면 적어도 기저귀 정도는 갈아줬어야지.”그는 아기의 기저귀를 흘깃 바라보더니, 거기에 묻은 것을 본 듯 얼굴을 찌푸렸다.“난 남자야.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너는 엄마잖아. 원래 이런 건 네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자꾸 나한테 떠넘기려고 해?”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충격과 함께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아기를 가지기 전, 심민규는 얼마나 자상하고 꼼꼼했는지 모른다. 그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육아 정보를 들고 와서 아기 영양식을 어떻게 준비할지 함께 고민했고, 아기용품 가게에선 작은 아기 옷을 들고 나를 웃게 했었다.심지어 아기 기저귀를 가리키며 모든 육아를 자신이 도맡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그는 내가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출산 체험 기기를 직접 사용해, 내가

  • 출산 후의 전쟁   제1화

    나는 그대로 돌아서 집을 나섰다.그의 고함과 집 안의 시끄러운 소리는 문이 닫히는 순간 나와는 완전히 차단되었다.나는 휴대폰을 꺼내 변호사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효정아, 나 이혼할 거야.]효정이는 금세 답장을 보냈다.[갑자기 왜 그래? 방금 아기를 낳았잖아...][심민규는 내 아이의 아빠가 될 자격이 없어.]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제왕절개의 상처가 채 아물지 못해 아래쪽으로 찢어진 부분이 시도 때도 없이 욱신거렸다.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다.나는 얇은 잠옷 차림으로 가로등 아래 홀로 서 있었다.집을 나온 지 4시간이 지나도록, 심민규는 한 통의 전화도 걸어오지 않았다.나는 근처의 숙박업소에서 하룻밤 묵을까 고민했지만, 갑자기 나를 애타게 찾고 있을 아기가 떠올랐다.‘우리 아기는 두 시간마다 젖을 먹어야 하는데...’나는 결국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슬리퍼를 끌고 나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니, 심민규의 친구들은 이미 모두 떠나고 없었다. 대신 테이블에는 술잔과 음식물 찌꺼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바닥은 흙 발자국과 과일 껍질로 엉망이었다.심민규는 상의를 풀어 헤친 채 소파에 기대어 누워 있었다.내가 들어오자마자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꼴 좋다. 결국 돌아올 거면서!’라는 표정이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를 들어 내게 건넸다.“애도 아니고, 왜 어린애 같은 짓을 해. 이현이의 신발을 그렇게 더럽혔는데도, 이현이는 너한테 뭐라고 안 했잖아. 너도 좀 이현이처럼 배려심 있게 굴어봐. 혼자 뛰쳐나가서 이렇게 추운 날 고생만 하다가, 결국엔 다시 돌아왔잖아? 이제 알겠지? 이현이가 일부러 너 먹으라고 남겨둔 음식이야. 얼마나 착해... 너도 그만 좀 미워해라. 다 네 자격지심이야.”나는 그가 계속 ‘이현이’라고 말하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내 기억이 맞다면 소이현은 심민규보다 한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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