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은 몰라도 서욱 두목님한테는 당연히 규칙이 있지.”경호원이 쌀쌀하게 대답했다.“나 시간 없어. 돈 줄 테니까 정보나 줘.”진서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어차피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 내고 사는 건데 저렇게 거만하게 구는 건 아무리 봐도 기분 나쁜 일이었다.김혜민이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그만해, 진서준. 그냥 좀 기다려보자.”사실 김혜민도 여기 온 건 처음이었다.그저 친구한테서 도서욱의 정보력은 최고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허허, 성질 한번 급하구먼?”그제야 도서욱이 찻잔을 내려놓고 진서준을 바라봤다.“그래, 뭘 알고 싶은데?”“사람을 찾고 있어.”“누군데?”“진요한.”그 이름을 듣자 도서욱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설마 네가 찾는 진요한이 경성 진씨 가문의 그 사람이야?”이 반응에 진서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이 남자는 역시나 정보망이 있긴 한 모양이다.“맞아. 그 남자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진서준의 질문에 도서욱은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며 물었다.“너랑 그 사람이 무슨 관계인데?”“그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정보만 말해.”진서준이 단칼에 질문을 잘랐다.“이 정보 절대 싸지 않을 거야.”도서욱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비싸다고? 설마 그 남자가 아직 신농 금지구역에 있다는 말 하려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코웃음을 쳤다.“어라? 너 신농 금지구역까지 알고 있네?”이번엔 도서욱이 놀랄 차례였다.눈앞의 녀석이 생각보다 아는 게 많았다.“하지만 넌 아직 멀었어. 진요한은 더 이상 신농 금지구역에 없어.”도서욱이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뭐? 그럼 어디에 있는지 알아?”진서준의 심장이 요동쳤다.과연 그토록 찾고 싶었던 아버지의 단서를 잡을 수 있을까?“정보를 주는 건 좋은데 네가 얼마를 낼 수 있어?”도서욱이 노골적으로 물었다.“그건 네가 가진 정보 가치에 따라 다르지.”“난 항상 먼저 가격을 정하고 그다음에 정보를 줘.”도서욱의 대답에
“나쁜 결과를 감당하라고?”도서욱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이봐, 네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봐.”도서욱은 애초에 진서준과 김혜민이 둘뿐인 걸 보고 쉽게 한탕 해먹을 생각이었다.어차피 돈을 뜯어내도 저 둘이 어쩔 수 없을 것이다.설마 주먹으로 해결하겠다고?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도서욱 뒤에 서 있는 경호원 네 명은 내공 무인으로서 실격이 대단한 사람이었다.게다가 복도에는 무려 백 명이 넘는 경호원이 대기 중이었다.이 애송이가 미치지 않고서야 혼자서 이 모든 사람을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내가 화내기 전에 네 여자 데리고 꺼져. 안 그러면 너희 둘 다 이곳에서 무사히 못 나갈 줄 알아.”도서욱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 진서준 뒤에 서 있는 여자는 꽤 탐나는 미모였다.하지만 도서욱도 너무 욕심부리는 타입은 아니었다.이미 400억을 손에 넣었으니 이런 돈이면 원하는 여자를 전부 구할 수 있었다.게다가 상대방이 순식간에 400억을 쏜 걸 보면 신분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괜히 사태를 심각하게 끌고 가 불필요한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었다.도서욱 뒤에 서 있던 경호원이 네 명이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우락부락한 근육을 과시하며 진서준과 김혜민을 위협했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마지막으로 경고했다.“진짜 안 돌려줄 거지?”“계속 떠들어 봐. 곧 이 방을 기어서 나가게 될 테니까.”도서욱은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야, 우리 사장님 말씀 못 들었어? 당장 꺼져.”경호원의 호통에 진서준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결국 힘으로 설득할 때가 온 것이다.진서준은 앞으로 나서더니 갑자기 손을 휘둘렀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따귀를 맞은 경호원은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입안에서 이빨이 피와 함께 튀어나왔다.“이 개자식이 감히 먼저 공격한다고?”도서욱은 테이블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분노를 터뜨렸다.“저
“너... 너 대체 사람이야, 귀신이야?”진서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차갑게 다가가기만 했다.“오지 마. 오면 쏠 거야.”도서욱은 허둥지둥 품에서 작은 권총을 하나 꺼냈다.총이 등장하자 김혜민은 깜짝 놀라 외쳤다.“진서준, 조심해.”총은 여러 무기 가운데서도 차원이 다른 위력을 가진 무기였다.보통 사람이라면 총구 앞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무술을 익힌 무인이라 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맞으면 반응하기 어려웠다.“네가 아무리 강해도 총 앞에서는 꼼짝 못 하겠지.”도서욱이 비굴한 웃음을 짓자 진서준의 눈빛이 한없이 차가워졌다.“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누군가 내 머리에 총을 들이대는 거야.”“그럼 당장 꺼져. 안 그러면 진짜로 쏠 거야.”도서욱이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진서준은 미동도 없이 그저 천천히 걸어갔다.“한번 쏴 봐. 하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진서준이 전혀 위축되지 않자 도서욱은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당겼다.탕!총성이 울려 퍼졌다.“진서준!”겁에 질린 김혜민이 비명을 질렀다.하지만 다음 순간, 도서욱과 김혜민은 동시에 얼어붙었다.고속 회전하며 날아가던 총알이 진서준의 눈앞에서 멈춰 선 것이다.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총알을 꽉 움켜쥔 것처럼 보였다.도서욱은 눈앞의 광경이 믿을 수 없어 말문이 턱 막혔다.사람이 어떻게 총알을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진서준은 손을 뻗어 떠 있는 총알을 집어 들어 손끝에 힘을 줬다.우두둑!총알이 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그 순간, 도서욱의 정신도 완전히 박살 났다.도석욱은 바닥에 풀썩 주저앉더니 곧장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형님, 제가 사람을 잘못 봤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총도 통하지 않는데 대체 무슨 수로 저 사람을 이길 수 있겠는가?결국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이미 기회를 줬지만 네가 스스로 걷어찼지.”진서준이 싸늘하게 말했다.“형님, 제가 진짜 잘못했습니다. 방금 속여서 가져간
“네?”도서욱은 얼이 빠졌다.‘아니, 예전에도 사람 죽이는 짓 많이 해놓고 오늘은 갑자기 사람 죽이라니까 그게 자기를 해치는 거라고?’“너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는 있어?”도서욱의 멍한 표정을 보자 소 마스터는 이를 악물고 분통을 터뜨렸다.“모르는데요? 유명한 놈인가요?”도서욱은 머리를 긁적였다.“그냥 좀 싸움 잘하는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 마스터님 상대는 절대 못 되죠.”도서욱은 애써 비위를 맞추려 했지만 이번엔 제대로 헛발질했다.“개소리 집어치워!”소 마스터는 도서욱의 머리를 힘껏 후려쳤다.“나 같은 놈 백 명이 덤벼도 저분한테는 한 끗도 안 먹혀.”머리를 처맞은 도서욱은 화를 버럭 내려다가 그 말에 입을 떡 벌렸다.“네? 백 명이 덤벼도 안 된다고요?”“헛소리 말고 똑똑히 들어. 그분이 누군지 알아? 그분은 바로 전설 속의 용존이야. 단 일격으로 육급 대종사 둘을 처단한 괴물 같은 존재라고. 동북 지역을 주름잡는 두 명문대가조차 머리를 조아리게 한 절세 천재란 말이야. 그런 사람을 내가 죽이라고? 네가 미친 거야, 아니면 날 미치게 하려는 거야?”소 마스터는 혈압이 치솟아 도서욱을 한 대 더 패 죽여버리고 싶었다.“뭐라고요? 그놈이 바로 그 전설적인 용존이라고요?”도서욱은 말 그대로 정신이 아득해졌다.용존의 이름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런데 오늘 그 전설적인 존재를 직접 봤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그 앞에서 행세하고 심지어 사기를 쳤다고?순식간에 도서욱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손등으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도서욱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었다.“소 마스터님, 그럼...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당장 사람 데리고 가서 무릎 꿇고 빌어. 용존께서 널 용서하지 않으면 넌 오늘부로 끝장이야.”소 마스터는 단호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바로 사람 모아 거기 가서 사죄드리겠습니다.”도서욱은 급히 부하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마 진서준이 경성 진씨 가문의 후예였다니, 그건 왕족이나 다름없는 신분이었다.“진서준 씨, 이제 만족하셨습니까? 만족했다면 이제 어떤 정보를 살 건지 말해보시죠.”블랙은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말했다.“진요천의 현재 위치입니다.”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건 좀 어렵겠는데 일단 해볼게요.”블랙은 도서욱과는 달랐다.먼저 일을 처리하고 그다음에 가격을 부르는 타입이었다.블랙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한참을 검색했고 이윽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쉽지 않네요. 가장 최근 정보가 두 달 전입니다. 진요한이 강남에 있었다고 나오네요.”“뭐라고요? 강남이라고요?”진서준의 눈이 번뜩였다.“맞아요. 하지만 그건 두 달 전 얘기입니다. 지금도 거기 있는지는 저도 몰라요.”블랙이 고개를 저었다.두 달이라면 꽤 긴 시간이었기에 이미 구지범에게 딴 곳으로 끌려갔을 가능성이 컸다.“진요한은 혼자 있었나요? 아니면 누군가 같이 있었나요?”진서준이 다시 물었다.“정보에 따르면 처음엔 누군가 함께 있었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은 사라졌고 결국 강남엔 진요한 혼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이 안 되고요.”블랙은 어깨를 으쓱였다.“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진요한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면 무조건 먼저 저한테 알려줘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 겁니다.”진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아버지를 찾을 수만 있다면 돈이 문제가 될 리 없었다.“돈은 이제 별로 필요 없어요. 대신 당신이 용존이라면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줘도 되나요?”블랙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뭔데요? 법률이나 도의에 어긋나는 거만 아니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어요.”진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강남 동성구의 깡패 조직 두목이 예전에 날 개 패듯이 팼어요. 저를 대신해서 그 자식 좀 혼쭐 내주세요.”이 말을 듣자 진서준은 순간 멈칫했다.“부탁이란 게 겨우 이것인가요?”대단한 일이라도 시키려나 했더니 고작 사람 하나 혼내주는 거였다.“이게 쉬운 일인가요?
독사의 구역에 도착한 후, 진서준은 김혜민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차에서 기다릴래? 좀 있다가 난장판 될 텐데 너까지 보호하기 힘들 수도 있어.”이번에 온 이유는 블랙을 위해 이곳의 조직 두목을 혼내주기 위해서였다.상대 쪽은 수가 많았지만 진서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다만 일반인을 상대로 죽을 정도로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적당히 손봐주기만 하면 됐다.“괜찮아, 난 너랑 같이 안 있을게. 그냥 구경꾼 모드로 있을 거야.”김혜민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진서준은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다.“그래, 알았어. 이따가 꼭 조심해.”진서준이 굳이 말려도 김혜민이 말을 들을 것 같진 않았으니 차라리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는 게 나았다.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동성구에서 가장 큰 술집으로 향했다.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술집 안에는 이미 청년들이 꽤 있었다.귀를 찢을 듯한 음악과 어지러운 조명 속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춤을 추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딱 봐도 열기로 가득한 분위기였다.이런 환경이 진서준은 영 익숙하지 않았다.대학 시절에도 이런 곳엔 오지 않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업무상 어쩔 수 없이 몇 번 온 게 전부였다.진서준은 들어서자마자 직원에게 다가갔다.“너희 사장 독사 있어?”직원은 진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에 경계하며 물었다.“넌 누구야? 우리 사장을 왜 찾는 거야?”“당연히 볼 일이 있어서지.”“무슨 일이든 일단 나한테 말해.”직원이 차갑게 대응했다.“너한테는 말해봤자야. 내가 두들겨 패야 할 사람이 너희 두목이거든.”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말하자 직원은 순간 멍해졌다.“뭐라고? 우리 두목을 패겠다고?”“그래. 그러니까 전화해서 얼른 오라고 해. 10분 안에 안 오면 이 술집을 박살 내버릴 테니까.”진서준의 싸늘한 말투에 직원의 얼굴이 굳어졌고 바로 소리쳤다.“이 자식이 깽판 치러 왔네? 거기 경호원 없어?”곧이어 덩치 큰 남자 네 명이 다가왔다.“이 녀석이 지금 소란을 피우려고 해.
본래 약간 한산했던 공간이 이제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진서준도 서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저놈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몰라, 근데 누구든 간에 독사 형님 구역에서 사고 치면 무조건 죽는 거야.”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진서준을 쳐다보았고 다들 속으로 저 청년이 오늘 여기서 끝장날 거라는 생각을 했다.대략 100명은 되어 보이는 경호원들이 진서준을 완전히 에워쌌다.“저놈이 이소룡이 환생한 사람이라 해도 살아 나가기 힘들 거야.”진서준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분명 너희 두목을 찾으러 왔다고 했어. 왜 쓸데없이 너희가 대신 얻어맞으려고 하는 거야?”“닥쳐! 우리를 건드린 대가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마. 다들 저놈 죽여버려!”카운터 안쪽에 앉아 있던 김혜민의 표정이 굳어졌고 눈살을 찌푸렸다.이건 아무리 봐도 감당하기 힘든 숫자였다.한순간, 100여 명의 조직원들이 각종 무기를 들고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그러나 진서준은 침착하게 그 자리에서 손만 움직였다.콰지직!펑!“으아악!”사방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진서준은 마치 전쟁터의 신이라도 된 듯했고 아무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가까이 오는 자들은 주먹 한 방이면 허공으로 날아가고 따귀 한 대면 바닥에 나뒹굴었다.순식간에 100명 이상의 조직원이 쓰러졌다.그리고 무대 중앙에 홀로 서 있는 건 진서준뿐이었다.“대박, 이거 이소룡보다 더 미친 실력인데?”“100명이 한꺼번에 덤볐는데도 멀쩡하다고?”“이게 진짜 짱이야.”구경꾼들의 입이 떡 벌어졌고 직원들도 완전히 얼어붙었다.이렇게 싸움을 잘하는 놈은 난생처음이었다.진서준은 차갑게 마지막으로 경고했다.“마지막 기회 줄게. 두목한테 전화해. 아니면 이 술집을 통째로 날려버릴 테니까.”“알았어, 너 잠시만 기다려, 지금 당장 우리 두목한테 전화할게.”직원은 그제야 덜덜 떨며 급히 휴대폰을 꺼냈고 독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술집에서 소란을 피우는 놈이 있습
그 외침은 굉장히 컸고 독사와 그 일당은 순간 멈칫했다.“도서욱? 서욱 두목이라고?”독사는 멍하니 서 있다가 부하에게 지시했다.“이놈 단단히 붙잡아 둬. 난 밖에 나가 확인하고 오겠어.”말을 마친 독사는 서둘러 바깥으로 나갔다.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독사는 완전히 얼어붙었다.수백 명의 인파가 바깥에 가득 서 있었고 그 선두에는 바로 도서욱이 있었다.독사가 동성 깡패 그룹의 두목이라고 해도 도서욱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도서욱은 강남 지하 세계에서 최고로 군림하는 존재였고 무도 종사인 소 마스터와도 친분이 있었다.소 마스터 한 명이면 독사의 구역 따위는 하루아침에 초토화될 수 있었다.“방금 서욱 두목이 뭐라고 했지? 진서준 씨에게 사과하러 왔다고? 진서준 씨는 도대체 누구지?”독사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도서욱이 부하들을 이끌고 직접 사과하러 올 정도라면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수준의 거물이라는 거지?그런데 도서욱의 모양을 보면 분명 그 사람이 지금 이 술집 안에 있는 것 같았다.독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이런 거대한 존재가 자기 구역 안에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까맣게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독사는 허둥지둥 도서욱에게 다가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부했다.“서욱 두목, 어쩐 일로 여길 오셨습니까?”조금 전까지 술집에서 보이던 거만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진서준 씨에게 사과하러 왔어.”도서욱은 냉랭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오히려 내가 묻고 싶구나. 진서준 씨가 왜 네 구역에 와 있는 거지? 설마 네가 진서준 씨를 건드린 거야?”“네?”순간 독사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서욱 두목, 농담하시는 겁니까? 제 구역에 그런 거물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정말 그런 분이 계셨다면 전 당장 제단을 차려서 모셨겠죠. 감히 건드릴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도서욱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서욱 두목, 그분이 제 술집 안에 계신 게 맞습니까?”독사의 목소리가 떨렸다.“당연하지.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 왜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