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다급히 남하준을 끌고 숙소로 향했다.남하준의 눈에는 따뜻함이 가득했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지체 없이 그녀를 껴안고 키스하려 했다.그러나 정안이 손을 뻗어 그의 얇은 입술을 눌렀다. “뭐 하는 거예요?”“나 바로 숙소로 데려온 건 이러려고...”“아니에요.”정안이 부끄러운 듯 그의 어깨를 툭 쳤다.“일단 놔 봐요.”남하준이 그녀의 몸에서 손을 떼자 정안은 그의 손을 잡고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보모가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잠이 들었고 침대 위의 아기는 이미 몸을 돌려 혼자 침대에 엎드려 앙증맞게 놀고 있었다.울지 않고 보채지도 않는 아이는 맑고 투명한 큰 눈을 뜨고 장난감을 쥐고 깨물고 있었다.아기는 남하준을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다시 정안을 보았을 때 흥분해서 팔다리를 움직이고 배를 공중으로 올리며 옹알옹알 소리를 질렀다.보모가 순간 잠에서 깼고 정안과 남하준을 보고 약간 긴장한 모습이었다.“도련님, 사모님 오셨어요? 제가 방금 깜빡 잠이 들었어요.”정안이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수고 많으셨어요.”아이를 돌보는 건 힘든 일이니 그녀는 감사하기 그지없었다.정안이 손을 뻗어 보호대 안으로 들어가 아들을 안아 올리자 아기는 그녀의 품에서 더욱 밝게 웃었다.남하준은 왠지 모르게 설레고 벅찼다.두 달 못 본 사이에 아이는 벌써 이렇게 많이 컸고 이제 장난감도 갖고 놀고 혼자 몸을 뒤집을 줄도 알았다.남하준은 자애로운 눈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자. 아빠가 한 번 안아보자.”정안이 천천히 그에게 아기를 넘겨주었다.남하준의 품에 안긴 아기는 순간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더니 엄숙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남하준도 귀여운 그의 작은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봤다.두 부자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지도 않고 말도 없이 그 어떠한 스킨십도 없이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정안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남하준이 호기심에 물었다.“얘가 왜 날 이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정안이
과학 연구는 무미건조하고 무료한 싸움이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일 년을 하루같이 연구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정안은 그렇게 오래 버티면서 주위에 이성 친구가 거의 없었고 연애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오늘날 그녀는 과학 연구가 행복하고 즐겁게 느껴졌다.아이와 남편이 옆에 있어 외롭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유일한 단점은 너무 바쁘다는 거였다.남하준은 돌아온 며칠 동안 정신없이 바삐 돌아쳤고 두 사람의 업무 모두 매우 중요했다.유일한 만남 시간은 저녁 휴식 시간이었다.아무리 바빠도 남하준은 시간을 내서 아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들에게 뺨을 맞은 사실을 줄곧 마음속에 새기며 부자 관계를 잘 유지하겠다고 맹세했다.남하준은 아들을 안고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았다.가드레일을 설치해 그가 중간에서 자고 아들은 왼쪽에서 자고 아내는 오른쪽에서 잤다.일이 아무리 힘들고 고돼도 저녁이 되어 행복한 시간을 즐기는 순간, 모든 고생은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정안은 여전히 책을 보는 습관이 있었고 남하준은 그녀가 밤에 책을 보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만약 넋을 놓고 보게 되면 그녀 몸을 만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그녀가 책을 집어 들려고 하면 남하준은 얼른 그녀를 침대에 쓰러뜨리고 진한 관계를 맺어 그녀가 녹초가 되어 잠들도록 했다.정안은 이번 주요 프로젝트의 수석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었다.나이도 젊고 M국에 돌아온 시간도 짧았기 때문이다.그녀의 학식이 옅어 막중한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고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고 남하준의 권력으로 수석 엔지니어 자리를 차지했다는 얘기도 돌았다.식당.식사 시간에 가십거리가 많이 떠도는 법이었다.여성 직원은 오히려 쉽게 정안을 받아들였지만 경력이 많은 몇몇 베테랑 과학 연구원들이 늘 이 일을 마음에 두고 자주 거론했다. 한 여자가,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20대 여자가 자기 상사로 앉게 되었으니 더욱 분통하고 달갑지 않았다.군전 그룹에는 몇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정안이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내버려 둬. 굳이 말할 필요 있어?”“하지만 모두 언니 능력을 의심하고 뒤에서 수군대고 있잖아요?”“사람의 능력은 입으로 전해지는 게 아니라 실력으로 보여주는 거야. 저 사람들의 입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성과를 내는 거야.”그러나 지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뒤에서 사람을 함부로 의론하는 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녀는 이 일을 류청에게 알렸고 류청이 남하준에게 알렸다.다음날, 그룹은 인물 프로필을 직원들에게 보냈다.안에는 M국 가장 유명한 과학자들, 그중 빛나는 사적, 업적, 명예 등이 있었다.수백 명의 과학자 사이에 백완자의 이름이 버젓이 나타났다.본명 백완자, 별명 정안, M국 가장 저명한 화학 과학자, 무기 설계 엔지니어, 경분자 개발자, Z국에서 수백 회 주요 연구에 참여했으며 큰 영예를 얻었다.이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군전 그룹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과학 연구자로서, 모든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 정안의 과학 연구실을 물샐틈없이 에워쌌다.정안은 항상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시간이 소중한 사람이었다.요즘 그녀의 시간은 모두 덕질하는 동료들과 접대하는 데 사용되었다.그녀는 하던 일을 제쳐놓고 뾰로통해서 남하준의 사무실을 찾았다.류청이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가 나왔다.남하준은 갑작스레 방문한 정안을 보자마자 하던 일을 제쳐놓고 그녀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고는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어쩐 일이야? 오늘은 안 바빠?”정안이 투덜댔다.“바빠 죽겠어요. 워낙 일도 바쁜데 오빠가 내 이력을 발표하는 바람에 사무실에 사람들로 가득 찼어요. 친한 척하는 사람들, 친해지려는 사람들, 연구를 지도해달라는 사람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니까요!”남하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안고 소파에 앉아 그녀를 품에 안았다.“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처음이라 다들 흥분해서 그래. 전 세계 어느 과학자가 정안을 알고 싶지 않겠어?”정안이 불쾌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대체 왜 그랬어요
정안이 의혹스러워 물었다.“왜 갑자기 태준 오빠 얘기가 나와요?”“선택해. 나야, 형이야?”남하준은 안색이 어두워져 질투하며 묻자 정안이 웃으며 말했다.“태준 오빠 말이 맞았네요. 계속 혼자 태준 오빠를 연적으로 두고 있었어요. 난 한 번도 태준 오빠를 사랑한 적도 없는데 왜 태준 오빠를 선택해요?”“그러니까 넌 나한테 시집올 거란 말이지?”“그거야 모르죠.”남하준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정안의 볼을 감싸 안으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태준 형과 결혼하겠다는 거야?”정안이 조리 정연하게 말했다.“난 태준 오빠가 아니라 당신을 좋아해요. 하지만 태준 오빠도 당신처럼 나를 좋아한다면 내가 마지막에 누구와 결혼할지 모르는 일이죠.”“왜?”“태준 오빠는 당신과 달라요.”“어떻게 다른데?”“당신은 내성적인 성향이지만 태준 오빠는 직진형이에요. 만약 당신이 태준 오빠와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한다면 태준 오빠는 당신에게 기회도 주지 않고 선수 칠걸요?”남하준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더니 참지 못하고 웃었다.“형이 이성적으로 너 사랑하지 않은 걸 감사히 여겨야겠네.”“태준 오빠가 지우와 결혼하는데 과연 얼마나 걸릴까요?”정안이 남하준의 품에 안겨 기대하며 생각하자 남하준은 사랑스럽게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친구한테 안부 전화라도 넣어봐.”정안이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설레는 마음으로 번호를 눌렀고 벨이 잠시 울리더니 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완자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나 잘 지내. 지우야. 넌 요즘 어때?”“잘 지내고 있어. 나 다음 달 1일에 결혼해. 너 시간 내서 올 수 있어?”정안은 움찔하더니 허리를 곧추세웠다.“너 결혼해? 다음 달에?”“그래! 선을 본 지 1년이 돼 가는데 이 사람 저 사람 고르다가 점점 더 엉망이야. 엄마가 결혼을 너무 재촉해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마침 적당한 사람을 만났어. 양쪽 집안도 서로 맘에 들어 하고 그냥 결혼하려고. 누구와 결혼해도 다 같지 뭐.”정안이 긴장하며 남하준
“태준 오빠 근황 궁금하지 않아?”“완자야. 끊을게. 엄마가 나 찾아.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얘기해.”지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고 정안은 슬픔에 겨워 남하준의 품에 기댔다.“너무 슬퍼요. 지우 결혼하면 태준 오빠 어떡해요?”“너가 태준 형 직진형이라며? 뭐가 두려워? 형이 만약 지우 씨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한 달은커녕 한 시간만 줘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어.”정안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정말이에요?”남하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었다.“태준 형은 네가 어렸을 때부터 존경하던 사람이야. 형 한 번 믿어봐.”“좋아요.”...동진.그럭저럭 괜찮은 호텔 로비에서 지우가 애써 웃으며 식탁으로 돌아갔다.“죄송합니다. 방금 전화 좀 받고 왔어요.”그녀의 어머니 진효연이 발로 그녀를 호되게 차자 그녀는 아파서 발을 움츠리고 진효연을 바라보았다.진효연은 활짝 웃으며 유씨 가문 사람들에게 사과했다.“정말 죄송합니다. 평소에는 철이 있는 아이인데 방금 그 전화는 상사에게서 결려온 전화라 아마 꼭 받아야 했을 겁니다.”상대방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계속 예물 얘기하시죠. 방금 1억 원을 원한다고 하셨죠?”진효연이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긴장해서 말했다.“우리 지우는 남자 친구 한 번 못 사귀어본 숫처녀예요. 몸이 깨끗하고 성격이 어질고 집안일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생활력이 아주 강하죠.”상대방 어머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1억 원 문제없습니다. 만약 우리 가문을 위해 아들을 낳아준다면 1억 원을 더 주죠. 만약 아들을 두 명 낳는다면 2억 원을 드리죠.”진효연은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활짝 웃었고 눈에서 금빛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감격해 마지않았다.“물론이죠. 우리 지우가 얼마나 건강한데요. 심지어 점쟁이도 앞으로 자손 만당할 거라고 했어요.”지우는 마음이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두 부녀가 앞에서 성능을 논하고 그녀는 좋은 가격에 팔려나가는 출산 기계인
동진은 M국 작은 도시의 비교적 번창하고 발전된 마을이었다.이곳은 지우의 고향으로 민풍이 순박하고 환경이 아름다우며 안성과 같은 도시에 비해 생활 리듬이 비교적 느리고 소비 수준도 높지 않아 노후를 보내기에 적합했다.지우의 집이 이곳이었는데 그녀의 어머니 진효연은 시장에서 매점을 운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 혼자 매점 장사를 했고 그녀도 가끔 가서 도와주곤 했다.물론 그녀의 남동생은 지금까지 도와준 적도 없지만 돈을 받을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지우는 저녁밥을 챙겨 보온 도시락에 넣고는 매점에 있는 어머니에게 갖다 주었다.매점에 들어서자마자 진효연이 몰래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엄마, 왜 그래요?”지우가 긴장해서 보온 도시락을 내려놓고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어머니의 팔을 잡고 물었다.“왜 울어요?”진효연은 재빨리 눈물을 닦고 미소 지었다.“아니다.”“왜 거짓말해요?”지우가 바보도 아니고 눈물인지 아닌지 딱 봐도 알 수 있었다.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진효연은 별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지금 몰래 눈물을 흘리는 건 아마 돈 때문일 것이다.진효연은 돈을 목숨처럼 좋아했으니 오직 돈만이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었다.가난에 쪼들린 경험이 있어서인지 불안감 때문인지 그녀가 돈에 대한 집착은 무서울 정도였다.“지성이 녀석이 또 돈 훔쳤어요?”지우가 화내며 묻자 진효연이 울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서랍을 열고 남은 잔돈을 꺼냈다.“5만 원짜리 지폐 다 가져갔어. 몇십만 원은 가져간 것 같은데 이 정도 남은 돈으로는 다음번에 물건 들이기도 부족해.”지우가 화를 꾹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도시락을 툭툭 쳤다.“일단 먼저 식사하세요. 그 녀석 지금 어딨어요? 내가 찾으러 갈게요.”“친구랑 사업 얘기하는데 자기가 술값 내야 한다고 돈이 필요하다고 했어.”그러자 진효연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테이블을 두 손으로 치며 위아래로 절을 하는 자세로 목놓아 울었다.“아이고 내 팔자야
“헐. 지성아. 너희 누나 짱 예쁘고 몸매도 죽인다. 왜 그동안 소개해주지 않았어?”“누나 이름이 뭐야?”“누나, 여기 와서 한잔해요.”모두가 지우를 희롱하고 있을 때, 지우가 미처 지성을 데려가기도 전에 문 앞에서 위엄 있고 패기 넘치는 고함이 들려왔다.“경찰 단속입니다. 모두 나와 로비에 집합하세요.”“어서 서두르세요!”그러자 술집 전체의 음향설비가 모두 조용해졌고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지우는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없었다.지성이 급히 지우 곁으로 가서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누나 여긴 왜 왔어?”“돈은?”지우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그 돈으로 오늘 내가 계산할 거란 말이야.”“엄마가 힘들게 번 돈이야. 사지 멀쩡한 놈이 직접 돈 벌어 써야지. 벌지 못하면 쓰지를 말든가. 나이 스물넷 먹고 계속 엄마 돈 훔치면 창피하지 않아?”지우가 걸으며 닦달했고 두 사람은 로비에 도착했다.한 무리의 사복 경찰들이 술집 사람들을 차례로 검사하며 신분증도 확인하고 주머니도 뒤지고 있었다.지우는 모두가 신분증을 꺼내는 것을 보고 바짝 긴장했다.“나 신분증 안 챙겼는데. 어떡하지?”“팀장님, 얼음 한 봉지 더 찾았어요!”경찰이 앞에 있는 한 남자를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지우가 궁금해 바라보던 순간,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내가 눈이 침침해졌나? 왜 남태준과 비슷한 남자가 보이지?’똑같이 잘생긴 외모와 다부진 몸매를 가진 남자는 얇은 검은색 코트를 걸치고 검은색 바지에 짧은 군화 한 켤레를 신고 있었다.단발머리는 깔끔하고 늠름해 보이며 잘생긴 외모에 강한 카리스마가 물씬 풍겨 패기가 넘쳤다.다른 점은 이 남자의 눈이 매우 아름답고, 깊고, 그윽하고 맑다는 것이다.남자는 다가가 동료가 건네준 얼음을 받아 들고는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렸다.“이 정도 양이면 형벌 때리겠네.”소리를 들은 지우는 그가 남태준이라고 확신했다.그녀는 충격에 온몸이 가늘게 떨리고 눈시울이 이유
그녀는 이 술집에서 가장 보수적인 옷을 입었다.하지만 그녀의 외모는 지우의 성격과 극과 극이라 남태준은 그녀를 지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뭐죠? 벙어리예요?”남태준이 위엄 있게 묻자 지우는 말하려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어쩌면 남태준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녀의 목소리는 더더욱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그때 지성이 황급히 설명했다.“누나 신분증 안 챙겼어요. 저 찾으러 술집에 왔다가 마침 기습 조사가 들어온 거예요.”남태진이 엄숙하고 무관심하게 고개를 숙이고 기기에 손가락을 대고 말했다.“주민등록번호 대세요.”지성이 지우를 밀치며 말했다.“얼른 말해. 누나.”지우가 긴장하며 고개를 젓자 지성이 당황해 급히 설명했다.“저희 누나가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놀랐나 봐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누나 주민등록번호는요...”지성이 읊자 남태준이 번호를 입력했고 기기에서는 범죄 기록이 없다고 나왔다. 그러나 신상 정보란을 보는 순간 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어두워진 눈으로 화면을 한참 동안 주시했다.엄숙하던 그의 안색이 눈에 띄게 온화해졌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완자가 지우 이쁘다고 했는데 이렇게 이쁘게 생겼을 줄이야.’남태준은 시선을 거두고 눈을 들어 지우의 얼굴을 스쳐 지성을 보았다.“그쪽 신분증은?”지성이 공손하게 신분증을 건네자 지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휴, 못 알아봐서 다행이야.”긴장한 지우의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팀장님, 누군가 뒷문으로 도망쳤어요!”고함이 나자 로비 안의 경찰들이 모두 경계하더니 3분의 2를 차지하는 경찰들이 쫓아가서 잡고 나머지 두세 명이 현장을 지켰다.다부진 몸의 남태준이 선두에 서서 빠르게 후문으로 달려갔다.지우가 긴장하며 따라가려는데 지성이 그녀를 잡았다.“누나 어디 가?”“가서 보려고.”지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보긴 뭘 봐. 마약 밀매하는 놈들 전부 정신병자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 죽이는 자식들인
경찰이 한 달간 배치한 작전이 오늘로 끝이 났다.산에서 거대한 독극물 재배 기지와 원자재가 발견되었고 2t의 현물도 압수되었다.남태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촬영기지의 투자자 육건우는 체포되어 입건되었다.다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그의 변호사가 와도 보석으로 풀려날 수 없었다.취조실.남태준은 쇠 옥에 갇힌 육건우를 향해 말했다.“침묵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에요. 당신이 말을 하든 안 하든 증거가 확실하다면 마찬가지로 형을 선고할 수 있어요.”육건우는 피식 웃더니 조금의 당황함도 없이 여유작작한 모습이었다.경찰이 아무리 검문해도 침묵으로 일관했다.“대장님, 잠깐 나와보셔야겠어요.”취조실 문이 열리면서 오신우가 그를 불렀다.남태준이 일어나서 떠나려고 할 때, 육건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남태준, 난 그저 평범한 영화 투자자일 뿐이야. 마약 같은 거에 손댄 적 없으니까 나 풀어줘.”남태준은 얼굴이 어두워져서 육건우를 돌아보니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눈가에 냉기가 돌았다.남태준이 나가 문을 닫는 순간 오신우가 긴장해서 말했다.“대장님. 지성이가 신고하러 왔어요.”“지성이가?”남태준이 긴장하며 얼굴을 찡그리자 오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남태준은 밖으로 나가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일이야?”“누나가 실종됐대요.”오신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태준은 황급히 달려나갔다.그는 달려가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종일 꺼둔 전원을 켰다.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고 그중에 지성도 있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경찰 프런트 데스크에서 뛰쳐나왔고 표정은 엄숙하고 무거웠다.지성은 남태준을 보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더욱 초조해서 말했다.“형...”남태준이 다급히 물었다.“지우가 왜?”지성은 눈시울이 흠뻑 젖은 채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누나가 아침에 장 보러 간다고 나갔다가 계속 집에 안 돌아왔어요. 누나 스쿠터는 길바닥에 쓰러져있는데 사람은 안 보여요.”그때 옆에
남태준은 경찰서로 돌아와 밤새 배치하고 새벽 4시에 많은 경찰 병력을 이끌고 이웃 마을 산꼭대기의 영화기지를 공격했다.산꼭대기에 가까운 사람들은 늦은 밤 총소리에 잠이 깼다.날이 밝자 많은 경찰차가 정적을 울렸고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다.지우가 한창 단잠에 빠져있는데 송수빈의 전화에 잠이 깼다.지우가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송수빈의 전화를 받자 송수빈은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지우야. 지우야. 얼른 인터넷 확인해봐. 세상에. 우리 마을에서 큰 뉴스가 났어. 어젯밤 얼마나 짜릿했는 줄 알아?”“우리 마을에서?”지우는 일어나 게슴츠레한 눈을 비볐고 송수빈이 황급히 수정했다.“아니. 우리 마을 아니고 옆 마을. 산에 있는 촬영기지 있잖아. 새벽 4~5시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경찰차가 잔뜩 오가고 난리가 났대.”새벽 4~5시? 지우는 남태준 생각이 나서 군말 없이 송수빈의 전화를 끊고 남태준의 휴대전화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전원이 꺼진 상태였다.지우는 그가 임무를 나갈 때 전원을 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마음이 조마조마해진 그녀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인근의 기사를 검색했다.지우는 아침 내내 걱정하며 전화도 여러 번 했다.정오가 되자 지성이 밖에서 돌아와 득의만면한 얼굴로 물을 따라 마시더니 흥분해서 말했다.“누나! 육건우가 잡혔대. 하늘도 양심이 있지.”“육건우가 잡혔다고?”지우가 긴장하며 물었다.“마약 형사한테 잡혔대? 태준 씨는 괜찮아?”“누나 남자친구 괜찮던데? 내가 방금 육건우가 묵고 있는 호텔 입구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태준이 형이 경찰 몇 명과 함께 육건우를 경찰차에 태우는 걸 봤어.”아침 내내 근심하던 지우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육건우는 잡히면 사형 아니면 종신형이야. 네가 진 빚도 갚지 않아도 돼.”지성이 흥분해서 말했다.“그러니까 말이야. 죽어도 싸지 뭐.”“이번 사건으로 교훈을 얻어서 다시는 도박 하지 말고 착실하게 살아.”지성은 테이블에 있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소
남태준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가 내게 선물한 반지 같아서 질투하고 기분 나빴던 거야?”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이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흥분하며 지우의 몸을 덥석 껴안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너도 나 좋아하지? 그래서 신경 쓰고 있는 거지?”“맞아요. 나 당신 좋아해요. 그 반지 돌려주면 안 돼요? 더 이상 갖고 있지 말아요. 네?”“지우야.”남태준은 흥분하는 말투로 달랬다.“다시 한번 말해주면 안 될까?”지우는 순순히 중복했다.“그 반지 돌려주라고요.”남태준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긴장해서 말했다.“그거 말고 첫 마디.”지우는 얼굴이 화끈거려 그의 가슴팍에 묻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줍게 말했다.“좋아해요. 태준 씨.”“나도 너 좋아해.”남태준은 크게 흥분하여 매력적인 목소리로 지우의 귓가에 속삭였다.“사랑해. 지우야.”“그럼 그 반지는...”남태준이 바로 말을 끊었다.“그거 임다희가 준 반지 아니야.”지우가 호기심에 고개를 들고 물었다.“그럼 누구 거예요?”“그때 큰 마약 조직을 잡으면서 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물건도 압수했지만 배후의 보스만 잡지 못했어. 그 신비로운 배후의 보스는 다들 준영이 형이라고 부르는데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어.”“그 반지는 그 사람이 잠자리에 들 왕비로 선택받은 중요한 증거야. 그것만 있으면 그 사람 배에 탈 수 있거든.”지우는 충격적인 표정으로 남태준을 밀어내고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남색을 팔아 접근했던 거예요?”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난 선택받았지만 그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신분이 폭로됐어.”“만약 폭로되지 않았다면...”지우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용기가 없었고 남태준은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그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쯤 아마 감옥에 갇혔겠지.”지우가 호기심에 물었다.“그 사람은 잠자리에서 어떤 역할인데요?”남태준은 미간을 잔
지우는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다른 서랍을 잽싸게 뒤지고 양말과 팬티를 챙긴 다음 옷장 문을 닫고 황급히 남태준의 집을 떠났다.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그녀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했지만 그럴수록 바늘에 가슴이 찔리는 듯 아파졌다.지우가 다시 병원에 돌아왔을 때 남태준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짐가방을 가볍게 내려놓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의 옆을 지켰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보고 또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보며 마음속으로 서글퍼졌다.‘임다희는 몇 번이나 당신을 해쳤는데 왜 그 여자가 준 반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전에는 당신을 죽일 뻔했고 지금은 당신을 이렇게 괴롭게 만들었는데 왜 계속 마음속에 그 여자 자리가 있냐고요.’지우는 생각할수록 슬퍼져서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그의 큰 손 옆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녀의 손은 저도 모르게 천천히 남태준의 따뜻한 큰 손을 만졌고 천천히 그와 손깍지를 꼈다.지금의 지우는 너무 불안하고 조금의 안정감도 느끼지 못했다.남태준이 아직도 임다희를 사랑할까 봐 두려웠다.남태준은 은은히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천천히 눈을 떴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하자 지우의 거뭇거뭇한 머리가 그의 곁에 엎드려 자는 것이 보였다.여자의 손이 그와 맞닿았다.남태준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가 금방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남태준은 달콤한 행복에 마음이 꽉 채워진 것 같았고 손바닥을 천천히 조여 여자의 부드럽고 작은 손과 더 단단하게 밀착시킨 후 다시 눈을 감았다.조용한 병실에서 지우의 존재가 가져다준 따뜻한 행복에 남태준은 그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날 밤, 남태준은 몸 안의 약효가 빠지자 서둘러 퇴원절차를 마쳤다.지우는 그에게 하루 더 병원에 머물며 지켜보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새벽 네 시에 중요한 임무가 있어서 지금 서둘러 경찰서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남태준은 지우가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그녀의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병원에 병 보러 오지 왜 왔겠어? 갑자기 왜 태준 씨를 물어?”임다희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태준이가 당신 안 찾았어?”“아니.”지우가 고개를 젓자 임다희는 가볍게 웃었다.“그쪽이 아니라면 대체 누굴 찾아갔을까?”“그게 무슨 말이야?”지우가 일부러 이해가 안 가는 척 묻자 임다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사람 재결합한 거 맞지?”지우는 침묵했다.임다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조롱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두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까. 태준이가 당신을 찾지 않은 건 아마 약효가 너무 강해 당신 같은 여린 몸을 망쳐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찾아 해결했나 보네.”“약효가 너무 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지우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녀를 만족시켜줬다.임다희는 속이 편안해지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이 시간에 당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지우의 안색이 확 가라앉았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남태준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지금 까불고 있을까?만약 남태준이 그녀가 임다희와 정면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지우는 절대 임다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남태준의 뜻에 따라 얌전하고 철든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다.지우는 괴로운 척 연기하며 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냈다.임다희는 그녀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한 감정을 잠재우고는 실소를 터뜨렸다.“이게 당신들 사랑이야? 하하. 우습네!”그녀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차 문이 닫히고 차량이 서서히 빠져나갔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택시를 잡아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태준을 걱정했다. 그의 옷이 흠뻑 젖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지우는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는 남태준의 집에 가서 깨끗한 옷 몇 벌을 챙기려 했다.
잠시 후 한 남자 의사가 들어와 남태준이 평온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효과가 조금은 있네요.”말을 마친 그는 남태준의 아랫도리를 보더니 한마디 보탰다.“하지만 효과가 만족스럽지는 않네요. 휴. 환자분 물 많이 주시고 약효가 천천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의사는 자리를 떠났고 지우는 급히 미지근한 물을 붓고 남태준의 아랫배를 슬쩍 쳐다봤다.병원의 이불이 너무 얇은 편도 아니었는데 남태준의 아랫배가 여전히 부풀어 올랐다.지우는 속으로 욕했다.‘늑대 같은 임다희! 빌어먹을!’“태준 씨. 물 좀 마셔요.”지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남태준이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뜨고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자 지우가 서둘러 그의 등을 부축해 주었다.“아직도 힘들어요?”지우가 관심하며 묻자 남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나 이제 괜찮으니까 너 집에 가서 쉬어.”“싫어요. 여기 있을래요.”남태준은 눈을 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돌아가라고.”“혹시 무슨 일 생겼는데 옆에 돌봐줄 사람 없으면 어떡해요?”“여기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으니까 나 괜찮아.”“그래도 난 여기 있고 싶다고요.”남태준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천천히 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몸 안의 불은 꺼졌지만 탄소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어. 넌 탄소 더미 옆의 디젤과 같아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비유를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남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지우는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여기 머무르는 게 어쩌면 그의 안정과 회복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좋아요. 나 먼저 갈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요.”“그래.”지우는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1층 로비에서 매니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약을 받는 임다희를 만났다.지우는 재빨리 기둥 뒤에 숨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허리와 다리를 다친
지우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옆집에서 종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매번 거래가 있을 때면 이웃 할아버지는 종돈에게 독한 약을 먹였고 약을 먹은 종돈은 열 몇 마리의 암퇘지와 교배를 했다.그녀는 그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처절하고 끔찍한 돼지 울음소리는 그녀 어린 시절의 악몽이었다.정신이 번쩍 든 지우는 두말없이 펑 하고 문을 닫았다.갑작스레 문을 닫는 모습과 지우의 창백한 얼굴, 당황하는 모습에 남태준은 피식 웃었다.지우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고 15분 후, 남태준은 지우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응급실에 가서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의사가 남태준 옆에 있는 지우를 가리키며 물었다.“환자분 여자친구예요?”남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여동생이에요.”지우는 마음이 뭉클했다. 남태준은 스스로 고통을 참을지언정 그녀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여자친구 있어요?”“없어요.”“내가 주소를 줄 테니 가서...”의사가 간단한 방법을 추천하려 하자 남태준이 엄숙하게 말했다.“나 경찰입니다.”의사는 말을 뚝 그치고 긴장된 듯 침을 삼키더니 웃어 보이며 애써 둘러댔다.“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경우 의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도 해독제가 없어요.”“진정제 놔주세요. 진정제가 안 되면 마취제라도...”“그런 약은 함부로 처방할 수 없고 일정한 수치에 도달해야 처방할 수 있어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의사는 난처해하더니 남태준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강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진정제 놓아드리겠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거예요. 그저 괴로움을 조금 억제하는 정도예요.”“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롭게 참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다른 약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의사가 약을 처방하며 말했다.“여자친구도 없고 그런 서비스도 받기 싫다면 여동생분께 성인 가게에 가서 사달라고 하세요.”지우는 이렇게 난처한 적이 없었다.
지우가 만약 숫처녀라면 아마 고생할 것이다.남태준은 생각하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러 의사를 찾아 해결할 생각이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려던 순간,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지우가 다급하게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태준 씨?”남태준은 움찔 놀랐다. 뜨거운 눈으로 지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니 입이 바짝 마르고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지우는 남자가 머리와 몸이 흠뻑 젖어 숨도 약간 헐떡이는 것을 보고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타오를 듯한 고온에 지우는 화들짝 놀랐다.“태준 씨 열 나요.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태준은 꾹 참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운전할 줄 알아?”“아니요.”지우가 긴장하며 말했다.“방금 택시 타고 왔어요. 택시 타고 병원에 데려다줄게요.”택시?남태준은 자신이 통제 불능이 되어 택시에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몰라 걱정했다.지우는 휴지를 뽑아 그의 볼과 목의 물기를 닦아 줬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기, 손바닥의 부드러움은 치명적인 유혹처럼 그를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들고 싶게 만들었다.“지우야.”남태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감고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며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했다.“방금 다희를 만났어.”지우는 땀을 닦는 동작을 멈추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티 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요?”“그리고 이렇게 됐어. 너무 괴롭고 답답해 죽을 것 같아.”남태준은 침을 삼키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지우의 시선은 그의 고통스러운 안색에서 내려와 그의 가슴팍을 보니 기복이 아주 심했고 더 아래로 내려가니 운전석에 앉아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다희가 약을 먹였어요?”지우는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어쩔 줄 몰랐다.그러자 남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어떡해요?”지우는 부랴부랴 고개를 내밀어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살폈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