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다급히 남하준을 끌고 숙소로 향했다.남하준의 눈에는 따뜻함이 가득했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지체 없이 그녀를 껴안고 키스하려 했다.그러나 정안이 손을 뻗어 그의 얇은 입술을 눌렀다. “뭐 하는 거예요?”“나 바로 숙소로 데려온 건 이러려고...”“아니에요.”정안이 부끄러운 듯 그의 어깨를 툭 쳤다.“일단 놔 봐요.”남하준이 그녀의 몸에서 손을 떼자 정안은 그의 손을 잡고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보모가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잠이 들었고 침대 위의 아기는 이미 몸을 돌려 혼자 침대에 엎드려 앙증맞게 놀고 있었다.울지 않고 보채지도 않는 아이는 맑고 투명한 큰 눈을 뜨고 장난감을 쥐고 깨물고 있었다.아기는 남하준을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다시 정안을 보았을 때 흥분해서 팔다리를 움직이고 배를 공중으로 올리며 옹알옹알 소리를 질렀다.보모가 순간 잠에서 깼고 정안과 남하준을 보고 약간 긴장한 모습이었다.“도련님, 사모님 오셨어요? 제가 방금 깜빡 잠이 들었어요.”정안이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수고 많으셨어요.”아이를 돌보는 건 힘든 일이니 그녀는 감사하기 그지없었다.정안이 손을 뻗어 보호대 안으로 들어가 아들을 안아 올리자 아기는 그녀의 품에서 더욱 밝게 웃었다.남하준은 왠지 모르게 설레고 벅찼다.두 달 못 본 사이에 아이는 벌써 이렇게 많이 컸고 이제 장난감도 갖고 놀고 혼자 몸을 뒤집을 줄도 알았다.남하준은 자애로운 눈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자. 아빠가 한 번 안아보자.”정안이 천천히 그에게 아기를 넘겨주었다.남하준의 품에 안긴 아기는 순간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더니 엄숙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남하준도 귀여운 그의 작은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봤다.두 부자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지도 않고 말도 없이 그 어떠한 스킨십도 없이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정안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남하준이 호기심에 물었다.“얘가 왜 날 이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정안이
과학 연구는 무미건조하고 무료한 싸움이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일 년을 하루같이 연구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정안은 그렇게 오래 버티면서 주위에 이성 친구가 거의 없었고 연애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오늘날 그녀는 과학 연구가 행복하고 즐겁게 느껴졌다.아이와 남편이 옆에 있어 외롭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유일한 단점은 너무 바쁘다는 거였다.남하준은 돌아온 며칠 동안 정신없이 바삐 돌아쳤고 두 사람의 업무 모두 매우 중요했다.유일한 만남 시간은 저녁 휴식 시간이었다.아무리 바빠도 남하준은 시간을 내서 아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들에게 뺨을 맞은 사실을 줄곧 마음속에 새기며 부자 관계를 잘 유지하겠다고 맹세했다.남하준은 아들을 안고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았다.가드레일을 설치해 그가 중간에서 자고 아들은 왼쪽에서 자고 아내는 오른쪽에서 잤다.일이 아무리 힘들고 고돼도 저녁이 되어 행복한 시간을 즐기는 순간, 모든 고생은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정안은 여전히 책을 보는 습관이 있었고 남하준은 그녀가 밤에 책을 보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만약 넋을 놓고 보게 되면 그녀 몸을 만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그녀가 책을 집어 들려고 하면 남하준은 얼른 그녀를 침대에 쓰러뜨리고 진한 관계를 맺어 그녀가 녹초가 되어 잠들도록 했다.정안은 이번 주요 프로젝트의 수석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었다.나이도 젊고 M국에 돌아온 시간도 짧았기 때문이다.그녀의 학식이 옅어 막중한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고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고 남하준의 권력으로 수석 엔지니어 자리를 차지했다는 얘기도 돌았다.식당.식사 시간에 가십거리가 많이 떠도는 법이었다.여성 직원은 오히려 쉽게 정안을 받아들였지만 경력이 많은 몇몇 베테랑 과학 연구원들이 늘 이 일을 마음에 두고 자주 거론했다. 한 여자가,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20대 여자가 자기 상사로 앉게 되었으니 더욱 분통하고 달갑지 않았다.군전 그룹에는 몇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정안이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내버려 둬. 굳이 말할 필요 있어?”“하지만 모두 언니 능력을 의심하고 뒤에서 수군대고 있잖아요?”“사람의 능력은 입으로 전해지는 게 아니라 실력으로 보여주는 거야. 저 사람들의 입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성과를 내는 거야.”그러나 지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뒤에서 사람을 함부로 의론하는 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녀는 이 일을 류청에게 알렸고 류청이 남하준에게 알렸다.다음날, 그룹은 인물 프로필을 직원들에게 보냈다.안에는 M국 가장 유명한 과학자들, 그중 빛나는 사적, 업적, 명예 등이 있었다.수백 명의 과학자 사이에 백완자의 이름이 버젓이 나타났다.본명 백완자, 별명 정안, M국 가장 저명한 화학 과학자, 무기 설계 엔지니어, 경분자 개발자, Z국에서 수백 회 주요 연구에 참여했으며 큰 영예를 얻었다.이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군전 그룹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과학 연구자로서, 모든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 정안의 과학 연구실을 물샐틈없이 에워쌌다.정안은 항상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시간이 소중한 사람이었다.요즘 그녀의 시간은 모두 덕질하는 동료들과 접대하는 데 사용되었다.그녀는 하던 일을 제쳐놓고 뾰로통해서 남하준의 사무실을 찾았다.류청이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가 나왔다.남하준은 갑작스레 방문한 정안을 보자마자 하던 일을 제쳐놓고 그녀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고는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어쩐 일이야? 오늘은 안 바빠?”정안이 투덜댔다.“바빠 죽겠어요. 워낙 일도 바쁜데 오빠가 내 이력을 발표하는 바람에 사무실에 사람들로 가득 찼어요. 친한 척하는 사람들, 친해지려는 사람들, 연구를 지도해달라는 사람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니까요!”남하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안고 소파에 앉아 그녀를 품에 안았다.“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처음이라 다들 흥분해서 그래. 전 세계 어느 과학자가 정안을 알고 싶지 않겠어?”정안이 불쾌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대체 왜 그랬어요
정안이 의혹스러워 물었다.“왜 갑자기 태준 오빠 얘기가 나와요?”“선택해. 나야, 형이야?”남하준은 안색이 어두워져 질투하며 묻자 정안이 웃으며 말했다.“태준 오빠 말이 맞았네요. 계속 혼자 태준 오빠를 연적으로 두고 있었어요. 난 한 번도 태준 오빠를 사랑한 적도 없는데 왜 태준 오빠를 선택해요?”“그러니까 넌 나한테 시집올 거란 말이지?”“그거야 모르죠.”남하준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정안의 볼을 감싸 안으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태준 형과 결혼하겠다는 거야?”정안이 조리 정연하게 말했다.“난 태준 오빠가 아니라 당신을 좋아해요. 하지만 태준 오빠도 당신처럼 나를 좋아한다면 내가 마지막에 누구와 결혼할지 모르는 일이죠.”“왜?”“태준 오빠는 당신과 달라요.”“어떻게 다른데?”“당신은 내성적인 성향이지만 태준 오빠는 직진형이에요. 만약 당신이 태준 오빠와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한다면 태준 오빠는 당신에게 기회도 주지 않고 선수 칠걸요?”남하준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더니 참지 못하고 웃었다.“형이 이성적으로 너 사랑하지 않은 걸 감사히 여겨야겠네.”“태준 오빠가 지우와 결혼하는데 과연 얼마나 걸릴까요?”정안이 남하준의 품에 안겨 기대하며 생각하자 남하준은 사랑스럽게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친구한테 안부 전화라도 넣어봐.”정안이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설레는 마음으로 번호를 눌렀고 벨이 잠시 울리더니 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완자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나 잘 지내. 지우야. 넌 요즘 어때?”“잘 지내고 있어. 나 다음 달 1일에 결혼해. 너 시간 내서 올 수 있어?”정안은 움찔하더니 허리를 곧추세웠다.“너 결혼해? 다음 달에?”“그래! 선을 본 지 1년이 돼 가는데 이 사람 저 사람 고르다가 점점 더 엉망이야. 엄마가 결혼을 너무 재촉해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마침 적당한 사람을 만났어. 양쪽 집안도 서로 맘에 들어 하고 그냥 결혼하려고. 누구와 결혼해도 다 같지 뭐.”정안이 긴장하며 남하준
“태준 오빠 근황 궁금하지 않아?”“완자야. 끊을게. 엄마가 나 찾아.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얘기해.”지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고 정안은 슬픔에 겨워 남하준의 품에 기댔다.“너무 슬퍼요. 지우 결혼하면 태준 오빠 어떡해요?”“너가 태준 형 직진형이라며? 뭐가 두려워? 형이 만약 지우 씨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한 달은커녕 한 시간만 줘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어.”정안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정말이에요?”남하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었다.“태준 형은 네가 어렸을 때부터 존경하던 사람이야. 형 한 번 믿어봐.”“좋아요.”...동진.그럭저럭 괜찮은 호텔 로비에서 지우가 애써 웃으며 식탁으로 돌아갔다.“죄송합니다. 방금 전화 좀 받고 왔어요.”그녀의 어머니 진효연이 발로 그녀를 호되게 차자 그녀는 아파서 발을 움츠리고 진효연을 바라보았다.진효연은 활짝 웃으며 유씨 가문 사람들에게 사과했다.“정말 죄송합니다. 평소에는 철이 있는 아이인데 방금 그 전화는 상사에게서 결려온 전화라 아마 꼭 받아야 했을 겁니다.”상대방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계속 예물 얘기하시죠. 방금 1억 원을 원한다고 하셨죠?”진효연이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긴장해서 말했다.“우리 지우는 남자 친구 한 번 못 사귀어본 숫처녀예요. 몸이 깨끗하고 성격이 어질고 집안일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생활력이 아주 강하죠.”상대방 어머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1억 원 문제없습니다. 만약 우리 가문을 위해 아들을 낳아준다면 1억 원을 더 주죠. 만약 아들을 두 명 낳는다면 2억 원을 드리죠.”진효연은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활짝 웃었고 눈에서 금빛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감격해 마지않았다.“물론이죠. 우리 지우가 얼마나 건강한데요. 심지어 점쟁이도 앞으로 자손 만당할 거라고 했어요.”지우는 마음이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두 부녀가 앞에서 성능을 논하고 그녀는 좋은 가격에 팔려나가는 출산 기계인
동진은 M국 작은 도시의 비교적 번창하고 발전된 마을이었다.이곳은 지우의 고향으로 민풍이 순박하고 환경이 아름다우며 안성과 같은 도시에 비해 생활 리듬이 비교적 느리고 소비 수준도 높지 않아 노후를 보내기에 적합했다.지우의 집이 이곳이었는데 그녀의 어머니 진효연은 시장에서 매점을 운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 혼자 매점 장사를 했고 그녀도 가끔 가서 도와주곤 했다.물론 그녀의 남동생은 지금까지 도와준 적도 없지만 돈을 받을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지우는 저녁밥을 챙겨 보온 도시락에 넣고는 매점에 있는 어머니에게 갖다 주었다.매점에 들어서자마자 진효연이 몰래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엄마, 왜 그래요?”지우가 긴장해서 보온 도시락을 내려놓고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어머니의 팔을 잡고 물었다.“왜 울어요?”진효연은 재빨리 눈물을 닦고 미소 지었다.“아니다.”“왜 거짓말해요?”지우가 바보도 아니고 눈물인지 아닌지 딱 봐도 알 수 있었다.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진효연은 별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지금 몰래 눈물을 흘리는 건 아마 돈 때문일 것이다.진효연은 돈을 목숨처럼 좋아했으니 오직 돈만이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었다.가난에 쪼들린 경험이 있어서인지 불안감 때문인지 그녀가 돈에 대한 집착은 무서울 정도였다.“지성이 녀석이 또 돈 훔쳤어요?”지우가 화내며 묻자 진효연이 울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서랍을 열고 남은 잔돈을 꺼냈다.“5만 원짜리 지폐 다 가져갔어. 몇십만 원은 가져간 것 같은데 이 정도 남은 돈으로는 다음번에 물건 들이기도 부족해.”지우가 화를 꾹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도시락을 툭툭 쳤다.“일단 먼저 식사하세요. 그 녀석 지금 어딨어요? 내가 찾으러 갈게요.”“친구랑 사업 얘기하는데 자기가 술값 내야 한다고 돈이 필요하다고 했어.”그러자 진효연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테이블을 두 손으로 치며 위아래로 절을 하는 자세로 목놓아 울었다.“아이고 내 팔자야
“헐. 지성아. 너희 누나 짱 예쁘고 몸매도 죽인다. 왜 그동안 소개해주지 않았어?”“누나 이름이 뭐야?”“누나, 여기 와서 한잔해요.”모두가 지우를 희롱하고 있을 때, 지우가 미처 지성을 데려가기도 전에 문 앞에서 위엄 있고 패기 넘치는 고함이 들려왔다.“경찰 단속입니다. 모두 나와 로비에 집합하세요.”“어서 서두르세요!”그러자 술집 전체의 음향설비가 모두 조용해졌고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지우는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없었다.지성이 급히 지우 곁으로 가서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누나 여긴 왜 왔어?”“돈은?”지우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그 돈으로 오늘 내가 계산할 거란 말이야.”“엄마가 힘들게 번 돈이야. 사지 멀쩡한 놈이 직접 돈 벌어 써야지. 벌지 못하면 쓰지를 말든가. 나이 스물넷 먹고 계속 엄마 돈 훔치면 창피하지 않아?”지우가 걸으며 닦달했고 두 사람은 로비에 도착했다.한 무리의 사복 경찰들이 술집 사람들을 차례로 검사하며 신분증도 확인하고 주머니도 뒤지고 있었다.지우는 모두가 신분증을 꺼내는 것을 보고 바짝 긴장했다.“나 신분증 안 챙겼는데. 어떡하지?”“팀장님, 얼음 한 봉지 더 찾았어요!”경찰이 앞에 있는 한 남자를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지우가 궁금해 바라보던 순간,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내가 눈이 침침해졌나? 왜 남태준과 비슷한 남자가 보이지?’똑같이 잘생긴 외모와 다부진 몸매를 가진 남자는 얇은 검은색 코트를 걸치고 검은색 바지에 짧은 군화 한 켤레를 신고 있었다.단발머리는 깔끔하고 늠름해 보이며 잘생긴 외모에 강한 카리스마가 물씬 풍겨 패기가 넘쳤다.다른 점은 이 남자의 눈이 매우 아름답고, 깊고, 그윽하고 맑다는 것이다.남자는 다가가 동료가 건네준 얼음을 받아 들고는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렸다.“이 정도 양이면 형벌 때리겠네.”소리를 들은 지우는 그가 남태준이라고 확신했다.그녀는 충격에 온몸이 가늘게 떨리고 눈시울이 이유
그녀는 이 술집에서 가장 보수적인 옷을 입었다.하지만 그녀의 외모는 지우의 성격과 극과 극이라 남태준은 그녀를 지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뭐죠? 벙어리예요?”남태준이 위엄 있게 묻자 지우는 말하려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어쩌면 남태준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녀의 목소리는 더더욱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그때 지성이 황급히 설명했다.“누나 신분증 안 챙겼어요. 저 찾으러 술집에 왔다가 마침 기습 조사가 들어온 거예요.”남태진이 엄숙하고 무관심하게 고개를 숙이고 기기에 손가락을 대고 말했다.“주민등록번호 대세요.”지성이 지우를 밀치며 말했다.“얼른 말해. 누나.”지우가 긴장하며 고개를 젓자 지성이 당황해 급히 설명했다.“저희 누나가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놀랐나 봐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누나 주민등록번호는요...”지성이 읊자 남태준이 번호를 입력했고 기기에서는 범죄 기록이 없다고 나왔다. 그러나 신상 정보란을 보는 순간 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어두워진 눈으로 화면을 한참 동안 주시했다.엄숙하던 그의 안색이 눈에 띄게 온화해졌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완자가 지우 이쁘다고 했는데 이렇게 이쁘게 생겼을 줄이야.’남태준은 시선을 거두고 눈을 들어 지우의 얼굴을 스쳐 지성을 보았다.“그쪽 신분증은?”지성이 공손하게 신분증을 건네자 지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휴, 못 알아봐서 다행이야.”긴장한 지우의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팀장님, 누군가 뒷문으로 도망쳤어요!”고함이 나자 로비 안의 경찰들이 모두 경계하더니 3분의 2를 차지하는 경찰들이 쫓아가서 잡고 나머지 두세 명이 현장을 지켰다.다부진 몸의 남태준이 선두에 서서 빠르게 후문으로 달려갔다.지우가 긴장하며 따라가려는데 지성이 그녀를 잡았다.“누나 어디 가?”“가서 보려고.”지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보긴 뭘 봐. 마약 밀매하는 놈들 전부 정신병자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 죽이는 자식들인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