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한 듯하지만 럭셔리한 결혼식장이었다.기자도 언론도 없고 식장의 경비가 삼엄하여 하객의 신상정보를 겹겹이 체크했다.초대를 받은 하객은 재벌과 국가 중요인물로 대부분 관직 종사자들이었다.식장에 들어간 후에도 지윤과 류청은 줄곧 정안의 곁을 지켰다.백진은 갑부의 신분으로 참석해 여러 방면으로 그에게 아부하려는 사람이 많았다.그는 겹겹이 포위되어 아첨하는 알랑거림 속에서 하나하나 응대하고 있었다.정안은 시끌벅적한 인파 속에서 한 바퀴 돌았지만 남하준이 보이지 않아 바로 옆 VIP석으로 가서 앉았다.지윤이 그녀에게 과일차 한 잔을 가져다주고는 그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류청이 지윤의 옆에 앉자 지윤이 물었다.“넌 왜 도련님한테 안 가고 여기 있어?”류청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오늘은 출근이 아닌 휴가로 여자친구랑 결혼식 참석하러 온 거야.”지윤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반박하지 않았다.류청이 의자를 더 바짝 당겨서 지윤의 몸에 붙이고 다정하게 물었다.“앞에 뷔페 있는데 뭐 먹고 싶어? 내가 갖다 줄게.”지윤이 고개를 돌려 보더니 말했다.“나 직접 가서 고르고 싶어.”정안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 여유롭게 말했다.“지윤아. 나 따라다닐 필요 없어. 여기는 안전해. 너도 류청 씨처럼 하루 휴가야.”지윤이 식장을 한 바퀴 둘러보니 사복경찰이 널려 있었고, 하객들은 모두 M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인물들이었고, 정통 어르신마저 혼자 다니고 있었으니 아마 별일 없을 거로 생각했다.“고마워요. 언니. 그럼 나 음식 챙기러 갈게요. 무슨 일 있으면 나 불러요.”정안이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어서 가봐.”지윤은 류청의 손을 잡고 식탁을 나와 뷔페 코너로 향했다.정안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보아하니, 이미 관계를 확정한 것 같았다.정안이 무료하게 과일차를 마시며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여자들의 말소리가 들렸다.처음에는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함께 사과를 입에 물 수도 있고 김을 빨 수도 있고... 와 정말 너무 기대되는데?나 신랑 신부 결혼식보다 들러리 게임으로 바로 넘어갔으면 좋겠어!”정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분이 가라앉아 자리를 떠났다.그녀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계속 듣다가 기분 나빠 죽을 것 같았다.정안은 M국의 풍습에 익숙하지 않아서 혼인신고를 매우 공식적인 혼인 관계로 여겼다.뜻밖에도 혼인신고는 그저 약혼처럼 서로 쉽게 번복할 수 없는 보장을 주는 것이었다.법률은 혼인신고를 인정하고 사람들은 결혼식만 인정했다.그녀와 남하준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으니 많은 사람의 눈에 남하준은 아직 미혼이었다.사람들의 인식 속에 양쪽 들러리는 반드시 미혼이어야 하고 결혼식장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반드시 친밀한 접촉의 게임이 있어야 했다.정안은 지윤과 류청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고 감히 방해하기가 거북했고 할아버지는 한 무리의 정치인들과 얘기를 나누느라 바빴다.그 외 사람들은 정안이 알지 못했다.결혼식이 아직 정식으로 시작되지 않았고 그녀는 할 일이 없어 식장을 나왔다.밖에 아름다운 큰 정원이 있었는데 그녀는 복도 가장자리에 서서 기분이 우울해 앞에 있는 그 무성한 녹색 식물을 감상할 마음이 없었다.그녀는 남하준이 들러리로 선 것은 정통 어르신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했다.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섭섭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남하준은 왜 그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또 거절을 모를까?“밖이 추워요. 식장에 들어가 뭐라도 드시지 그래요?”그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정안이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바라보니, 남자는 큰 키에 마른 체형으로 정교하게 생긴 얼굴은 잘 나가는 톱스타 뺨칠 정도였다.남자는 깊고 어두운 눈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는데 왠지 모를 익숙함에 정안은 오싹해졌다.정안은 그의 옷차림이 매우 단정하고 가슴팍의 양복 주머니에 작은 빨간 꽃 한 송이가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그건 신랑 특유의 상징이었다.그녀가 몇 초 동안
정안이 막 두 걸음 걸었을 때 선우석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서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그의 손을 노려보고, 다시 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지만 그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아 정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선우석 씨, 할 말 있으면 이 손부터 놓고 얘기하시죠.”선우석은 손을 놓기는커녕 더 꽉 잡고 천천히 그녀 앞으로 다가와 속삭였다.“우리 친구 할까요?”“그건 불가능하겠네요. 죄송합니다.”선우석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에는 실망한 기색이 번졌다.“나랑 친구 하면 내가 아주 많은 도움이 될 텐데요?”“예를 들면요?”“예를 들면, 제가 차기 정통 후보거든요.”정안은 벌써 밉보일 수 없어 억지로 웃어 보였다.“선우석 씨께서 차기 정통 지도자가 되시길 바랄게요. 하지만 친구는 정말 적합하지 않아요.”정안이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손을 뻗을 때 머지않은 곳에서 고함이 들려왔다.“나 몰래 둘이 뭐해?”정안이 사자의 고함에 놀라 고개를 돌렸을 때 웨딩드레스를 입은 구인아가 유미의 에스코트 아래 노기등등해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구인아는 화가 잔뜩 치밀어 올라 얼굴 가득 연지로도 그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정안은 긴장해서 선우석의 손을 뿌리치고 가까스로 자기 손을 뺐다.구인아가 달려오더니 정안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번쩍 들었다.정안이 피하려 했지만 선우석이 더 빨라 정안의 앞으로 돌진해 한 손으로 구인아의 손목을 잡고 부드럽게 설명했다.“인아야. 흥분하지 마. 나랑 완자는 그저 평범한 친구 사이야. 그냥 옛날이야기 하고 있었을 뿐이지 선 넘는 행동은 없었어.”정안은 경악해서 선우석을 바라보았다.‘이 자식. 무슨 말을 이렇게 애매하게 해?’구인아는 그 말을 듣자마자 더 열이 올라 울컥했다.“완자? 호칭이 아주 다정하네? 두 사람 언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옛날이야기? 둘이 설마 전에 만났었어?”선우석은 구인아를 가로로 안고 횡포한 말투로 다정하게 달랬다.“내가 가
정안이 발걸음을 멈추고 유미를 등지고 있자 유미가 의기양양해서 말했다.“하준이가 나랑 같이 들러리 서기로 했어!”정안은 코웃음을 쳤다.들러리일 뿐인데 대체 뭐 자랑할 게 있고 뭐가 기쁘다는 것일까?유미가 이어서 말했다.“M국에서는 기혼 남성이 들러리 서려는 사람이 없어. 심지어 여자친구가 있어도 감히 못 선다고. 그러니까 당신은 하준이 마음속에 전혀 중요한 사람이 아니란 거지.”정안은 마음이 아팠지만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돌아서서 유미를 마주 보고 침착하게 말했다.“하준 오빠가 들러리 서는 데는 당연히 그 이유가 있겠지. 난 내 남편 선택을 무조건 믿고 존중해. 그러니까 너무 오버하지 마. 내 남편은 절대 당신이랑 아무런 스킨십도 하지 않을 거야.”유미가 냉소를 지었다.“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는 거야? 결혼식 절차는 내가 이미 확인했어. 우리 사이 게임이 얼마나 화끈한지 이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정안은 자신이 없었지만 여전히 남하준을 믿기로 했다.그 남자는, 다시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정안이 따뜻하게 웃었다.“그래. 무대 아래에서 두 사람 화끈한 게임 기다리고 있을게.”말을 마친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식장으로 돌아섰다.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이 조금 무거웠다.1시간 뒤.결혼식이 시작되자 모든 하객이 자리에 앉았다.불빛이 어두워지고 분위기가 상당히 아름다웠다.사회자가 무대 위에서 덕담을 나누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해 하객들을 하하 웃게 만들며 행복감을 폭발시켰다.분위기가 아주 후끈 달아올랐다.다음 순서는 신랑과 신부 들러리를 무대에 올려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다.정안은 긴장해서 양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꽉 조여왔다.그녀는 과거의 응어리를 가까스로 풀고 다시 남하준을 받아들였는데 만약 다시 또 한 번 시련이 닥친다면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사회자가 다음 순서를 외치려고 할 때 갑자기 이어폰을 몇 초 동안 눌렀다.이윽고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다음 순서는 신랑 쪽 들러리로, 우리 M국의 가장 신망이 두터
정안은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인데,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니 너무 긴장되고 불안했다.모두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무대 위의 좋은 구경을 보려고 시끌벅적했다.하지만 현장에서는 남하준과 정안이 부부 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백진과 정통 어르신은 기대에 찬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었다.사회자가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했다.“이어질 게임 코너를 위해 두 쌍의 부부를 무대 위로 더 모실게요. 연인사이어도 됩니다.”지윤이 즉시 류청을 잡고 함께 손을 번쩍 들었고 류청은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사회자가 지윤과 류청을 가리키며 말했다.“적극적으로 손을 들어주신 어린 부부 모실게요.”외향적인 성격의 지윤은 신나게 류청을 끌고 대담하게 무대로 걸어갔다.류청은 민망하고 겸연쩍게 얼굴을 붉혔다.무대에 오르자마자 지윤이 사회자에게 말했다.“우리는 부부가 아니라 연인이에요.”사회자는 이렇게 밝은 여자를 보며 좋아서 하하 웃었다.“그래요. 연인이면 더 좋죠. 부부 한 쌍 더 찾을게요...”정안이 남하준에게 천천히 다가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에요?”남하준이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물었다.“유미가 신부 들러리 했으면 좋겠어?”“아니요!”정안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남하준이 따뜻하게 웃었다.“내 신부는 너밖에 없어. 들러리도 마찬가지고.”정안은 감동이 밀려와 수줍게 말했다.“애초에 들러리 거절하면 되잖아요?”“거절하다니. 이건 내가 어렵게 얻어낸 건데.”정안은 깜짝 놀라 눈을 깜박거리며 그를 보았고 남하준은 확고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마치, 그는 자신만의 계획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왜 꼭 이 들러리를 서야 하죠?”정안이 그래도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건 분위기 띄우는 일이고 사회자에게 놀림도 당하고. 오빠랑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내 한계만 건드리지 않는 한 받아들일 수 있어.”그때 사회자가 끼어들었다.“두 분 지금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들어
지윤과 류청은 이미 환희에 찼고 다른 부부팀은 아직도 노력하고 있었다.정안이 긴장하며 물었다.“벌칙이 뭐죠?”“꼴찌 팀의 여성분이 먼저 남성분에게 뽀뽀하는 겁니다!”정안은 당황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남하준에게 뽀뽀하라니?‘그건 절대 안 돼!’정안은 재빨리 두 손을 남하준의 목에 얹고 준비를 마쳤다.“빨리요. 나 다시 시도해보고 싶어요. 할 수 있어요!”이건 벌칙이 아니라 남하준에게는 포상이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색해서 말했다.“나는 포기하고 벌칙 받을 거야.”정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뺨을 불룩하게 한 채 말했다.“싫어요.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요.”남하준은 그녀에게 다가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미리 적응해야 앞으로 우리 결혼식에서 주눅 들지 않지.”정안은 화난 척하며 투덜거렸다.“내가 언제 결혼식 올린다고 했어요?”남하준은 흠칫 놀라더니 김이 빠진 듯 약간 긴장해 보였다.“너 이미 내 아내야. 네 부모님이 돌아오길 기다리지 않았다면 진작 결혼식 올렸어.”정안은 그제야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이유가 남하준이 계속 그녀의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순간 감동이 밀려왔다.사회자가 승패를 발표하고 또 꼴찌에 대한 벌칙을 설명했다.정안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사회자의 외침이 시작되기도 전에 발끝을 세우고 남하준의 얇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남하준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그녀와 키스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두 눈에는 따뜻함이 흘러넘쳤다.“와!”한바탕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신부 들러리가 신랑 들러리의 볼에 뽀뽀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겼지만 입술에 뽀뽀할 줄은 몰라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흥분했다.심지어 몰래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너무 한 거 아니야? 어떻게 이 기회를 빌려 남 장군 입술을 훔칠 수가 있어? 일부러 진 거네!”“맞아. 일부러 진 게 틀림없어. 일부러 입술에 키스하다니!”“내가 만약 남 장군이었으면 바로 싸대기 날렸어.”“저 여자 예
“다른 분들은 돌아가 주세요.”이게 지금 무슨 순서란 말인가?”류청과 지윤은 정안을 모시고 무대에서 내려갔고 곧 음악이 흘렀다.선우석이 긴 복도 반대편에서 무대에 올랐고 유미가 무대 아래에서 걸어 올라갔다.어떤 의식도 없었다.무대 위에서 구인아는 엉망진창이 된 입장식을 보며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무대에 서서 기다려야 할지, 어쨌든 그녀의 결혼식은 그녀가 무대에 올라 사회자의 머리에 물이 찼다고 욕하는 순간부터 웃음거리가 되었다.선우석은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 올라 구인아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인아야. 괜찮아.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면 들러리가 누구든, 결혼식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나에게 중요한 건 너야.”위로를 받은 구인아는 마침내 한 줄기 미소를 지었다.남하준이 신랑 뒤에 서고 유미가 신부 뒤에 섰다.유미가 또 다른 들러리 게임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사회자가 원고를 꺼내 들고 축사를 읽기 시작했다.축사를 마친 뒤 말했다.“신랑 신부 반지 교환하겠습니다.”그러자 유미와 구인아는 멍해졌다.원래 리허설 대로라면 신랑신부가 서로의 좋은 점을 말하고 어떻게 만나고 사랑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그다음에 신랑신부 한 쌍, 들러리 한 쌍이 게임을 하고, 게임이 끝나면 선서하고 선서를 마친 후 반지를 교환했다.한 토막이 통째로 잘려나간 셈이었다.구인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이를 악물고 나지막이 화를 냈다.“대체 사회를 왜 이따위로 봐? 아직 사랑한 과정에 대해 얘기도 안 했고 게임도 안 했는데 왜 다짜고짜 반지를 교환하냐고?”사회자는 들은 채 만 체하고, 얼굴에 표준적인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큰 소리로 말했다.“신랑신부 들러리 반지를 건네주시죠!”유미는 약간 실망한 나머지 반지를 보내지 않고 이를 악물고 사회자를 쳐다봤다.남하준은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선우석에게 건넸고 선우석은 박스를 열어 반지를 꺼냈다. 그는 과정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결혼이라는 결과
M국 역대 최고로 처참한 신부 들러리가 아닐 수 없었다.남하준은 무대에서 내려오기 바쁘게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홀로 식장을 빠져나갔다.그가 어디로 가는지, 왜 서둘러 떠났는지 아무도 몰랐다.다들 호기심에 차 있을 때, 무대에서는 결혼식이 정상으로 돌아와 신랑신부가 사랑하게 된 과정, 케이크 커팅, 축배 등이 펼쳐졌다.여전히 손에 든 하얀 손수건을 바라보던 선우석은 반지를 빼내고 안에 있던 침을 뽑아 바닥에 던졌다.눈을 내리뜨고 하얀 손수건을 응시했다.한참 후에야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며 황급히 무대 뒤로 걸어갔다.“선우석, 어디 가?”구인아가 소리치자 선우석이 애써 웃으며 답했다.“화장실이 급해서 그래. 금방 다녀올게.”무대 위에는 신부와 사회자만 남아 순간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선우석은 구석에 숨어서 숨을 헐떡이며 음험한 눈으로 차갑게 명령했다.“남하준이 내 피를 가져갔어. 아마 차를 타고 군인 병원으로 가고 있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든, 죽여서라도 내 피가 묻은 손수건을 뺏어 와. 절대 남하준이 군인 병원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상대방이 되물었다.“그 피 묻은 손수건을 남하준이 가진 게 확실해요?”“정호조차 자신을 배신했으니 아마 아무도 안 믿을 거야. 남하준은 분명 내 피를 갖고 직접 병원에 가서 DNA 검사를 할 거야. 확실해!”“알겠습니다.”상대방이 전화를 끊었고 선우석은 손에 든 반지를 보며 이를 갈았다.그는 매사에 신중히 행동하고 경각심을 세웠지만 여전히 의심을 받았다.선우석은 남하준에 대한 증오가 마음에 번졌고 속으로 생각했다.‘남하준! 이러려고 내 들러리가 된 거였어? 네 목적이 이거였네!’선우석은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무대로 나왔다.그의 시선이 정안의 얼굴을 스치며 눈 밑에는 온정과 다정함이 가득했고 미소가 더 부드러워졌다.결혼식은 계속 진행되었다.정안은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해 진정할 수 없었다.잠시 후 휴대폰 벨이 두 번 울렸고 그녀가 휴대폰을 확인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