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그 여자애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순간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았고 그의 여자친구도 없어졌다.류청이 차량을 향해 소리쳤다.“시간이 얼마나 필요해? 반 시간이면 충분할까?”이어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지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밤까지 답을 주면 안 될까? 아니면 나 오늘 잠 못 잘 것 같아.”그는 괴로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고 차량 앞으로 돌아와 무거운 마음으로 차량을 점검했다.정안은 올라가서 방문을 열고 외투를 벗어 한 바퀴 쓱 둘러보았다.베란다의 유리문이 열리고 남하준이 밖에서 들어와 유리문과 커튼을 닫고 정안에게 걸어가며 부드럽게 말했다.“왔어?”정안이 그에게 다가가 즐겁게 말했다.“오빠, 내가 재밌는 이야기 해줄게요. 류 비서와 지윤이...”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하준은 그녀의 허리를 덥석 껴안고 품에 안아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음?”기습적인 진한 키스에 정안은 반응하지 못하고 두 손으로 남자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 올렸다.남하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움직여 그녀를 벽에 누르고, 그녀의 손목을 머리 위 벽에 누르고, 몸을 숙여 더욱 키스에 몰입했다.그의 키스는 좀 난폭했다.정안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갇혀 있는 느낌이었고, 양손에 아무런 힘도 낼 수 없었고, 입술과 혀의 움직임에 온몸이 저리고 나른해졌으며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수줍은 여자의 신음이 질척한 타액의 소리에 섞여 사람을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정안은 그의 열렬한 공세에 사로잡혔고 갑자기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허리에 닿아 옷 속으로 기어들어 허리를 따라 위로 옮기는 것을 느꼈다.그의 굵은 손바닥은 따스하고 자극적이어서 그녀의 몸에 불을 지피듯 문질러 사람을 미치게 했다.“음음!”정안은 반항하려는 건지 영합하려는 건지 몸의 욕망을 따라가려는 건지 나지막한 신음을 참지 못했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내려와 뺨에 이르렀고 또 그녀의 목으로 와 짓누른
밤이 되어 약간 쌀쌀했다.이 시간에 남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지만 정안과 남하준은 그제야 방에서 나왔다.남하준의 들끓는 욕망에 들볶여서 정안은 이미 배가 고프고 온몸이 나른해졌다.거실에서 도우미가 음식을 가져왔다.그녀와 남하준은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애틋한 눈빛에는 약간의 부끄러움이 깃들었다.남하준이 그녀에게 국 한 그릇을 떠서 건네주며 부드러운 말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늘 유미가 찾아와서 또 너 기분 나쁜 말이나 지나친 행동한 거 아니야?”정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그가 지금 매우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미 한번 겪어보았고 또 사건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하고 싶지 않아 그가 계속 물었다.“기분 나쁜 일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 혼자 마음에 담아두고 견디지 말고.”정안은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저어주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물었다.“유미가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남하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나쁜 사람을 대할 때는 단칼에 자를 수 있는데 유미처럼 나쁜 짓은 하지 않고 부도덕한 일만 하는 사람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정말 다루기 힘들어. 그저 일부러 멀리하고 피할 수밖에.”“그럼 그 자리는...”“유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전근을 마쳤어.”정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남하준이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네 쪽 일은 어떻게 됐어?”정안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이미 처리했어요. 내일 점심 주주총회에서 한꺼번에 처리할 거예요.”“그래. 내일 나랑 같이 가.”“오빠도 가려고요?”“응.”“왜요?”“정호 때문에.”“정호가요?”“정호가 한서진이고, 한서진이 정호야. 아주 위험한 상황이고.”정안은 충격적인 표정으로 남하준을 바라보며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고 오랫동안 진정되지 않았다.정호는 이미 얼굴을 바꾸고 목소리도 수술해서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그럼 백인호는 지금 얼마나 무서운 존재일까?“좋아요.”정안이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진은 냉엄하고 위엄 있게 입을 열었다.“주주 여러분, 오랜만입니다.”“회장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주주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묻자 백진은 옆에 있는 몇 명의 변호사를 가리켰다.“전에 발표된 유언장, 위임장, 내 명의로 돼 있던 모든 재산에 대한 상속 서류는 모두 무효이며 내 변호인단은 이미 이 모든 일을 다 처리했어요.”“난 내 양자에게 한 푼의 재산도 주지 않았으니 저 여자는...”백진이 한이서를 가리키며 노했다.“저 여자는 그저 납치범이고, 사기꾼이고, 경제 범죄자일 뿐이요!”한이서가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돌렸을 때 한서진은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다.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이미 저항할 힘이 없어졌다.모두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의혹스러워할 때 한이서가 냉소를 짓더니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망할 영감! 당신 아들 내외와 손자 목숨이 중요하지 않은 가봐?”백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가 끓어올랐다.그때 남하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연락해서 손을 써보지 그래?”한이서가 고함을 질렀다.“내가 못할 것 같아?”말을 마친 한이서는 바로 휴대전화를 들고 다이얼을 돌리려 했지만 신호가 먹통이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또 다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지만 여전히 신호가 없자 숨을 헐떡이며 바로 비서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그제야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휴대전화가 부분적으로 신호가 차단된 것을 발견했다.한이서는 완전히 포기하고 멍한 눈으로 의자에 앉아 몸부림을 멈췄다.남하준이 부하에게 눈짓하자 부하직원 두 명이 다가가 한이서를 잡고 두말없이 밖으로 압송했다.한이서가 걸어가면서 노호했다.“너희들 딱 기다려! 그 사람이 분명 너희 모두 죽일 거야. 반드시!”한이서가 밖으로 끌려나가자 정안이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남하준 곁에서 속삭였다.“정호는요?”“걱정 마. 못 도망 가.”정안은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백진은 한이서가 앉았던 가죽 의자를 걷어차고 테이블 앞에 서서 두 손
정호는 웃음에 눈물을 머금었다.류청이 부하를 데리고 앞으로 나가 그를 체포했다.수색하는 과정에 정호의 몸에서 총기를 찾아냈는데 류청은 그 총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뭉클했다.사실 정호는 총으로 무리수를 두면 도망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류청이 그 총을 보고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리자 정호가 속삭였다.“나 도련님 죽일 생각은 했어도 너 죽일 생각은 한 번도 없었어. 넌 내 인생 최고의 친구니까.”류청은 눈가가 촉촉해졌다.그는 부하에게 총을 건네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는 정호를 바라보았다.“이미 늦었어.”“우리 엄마도 몰라볼 정도로 성형했는데 넌 나 어떻게 알아봤어?”“내가 아니라 도련님께서 한눈에 너 알아보셨어.”“뭐?”류청이 씁쓸하게 웃었다.“참 아이러니하지? 네가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죽이려던 상사가 너의 표정과 행동, 말하는 방식과 눈빛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어.”정호는 쓸쓸하게 웃을 뿐 말이 없었다.류청이 마음 아파하며 말을 이었다.“넌 도련님께서 가장 신뢰하고 가장 믿음직스럽게 생각한 조수였어. 널 친형제처럼 여겨 네 아버지 병원비도 대줬고. 종종 너 몰래 네 가족에게 돈을 보내라고 시키셨거든. 네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면 도련님은 분명 두말없이 네 신혼집이랑 차까지 마련해줬을 거야.”“하지만 넌 도련님을 배신했어. 돈에 눈이 멀어 버린 넌 우리를 참 실망하게 했어.”정호는 고개를 숙이고 붉어진 눈시울은 이미 촉촉이 젖어 있었다.아무리 많은 변명을 늘어놓아도 틀린 건 틀렸고 이미 돌아갈 수 없었다.“만약 아직 양심이란 게 있다면 백인호에 대해 자백해. 블랙 섀도우 조직이 M국에서의 계획과 모든 스파이를 털어놔.”정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건 불가능해. 내가 말하면 내 가족은 곧 죽음이야.”“구제 불능이군.”류청이 노호했다.“끌고 가!”네 명의 병사가 그를 누르고 아래로 내려갔고 류청이 그 뒤를 바싹 따랐다.이어 각종 뉴스 헤드라인과 실시간 검색어에는 백진의 컴백에 대한 소식들로 가득했다.
백진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눈 밑은 촉촉해졌다.“하준아, 완자야. 왔어?”백진의 시선이 작은 아기에게 고정되었다.“자, 이 할아버지가 안아 보자꾸나.”남하준이 아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자 백진은 아기를 안고 소파로 직행했는데 눈에는 귀여운 아기의 모습뿐이었다.“아이 이름은 지었어?”백진은 자리에 앉아서도 눈도 제대로 들지 않고 달콤하게 자는 아기를 쳐다보며 속삭였다.남하준이 정안을 소파에 앉히고 말했다.“아직이요.”정안이 웃으며 말했다.“시부모님께서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하겠다고 할아버지께서 지어달라고 부탁하셨어요.”“우영이 어떠냐?”백진이 툭 내뱉었다.남하준이 생각하더니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아주 좋은 이름이네요. 아주 우아하고 꾸준함을 의미하는 좋은 이름이네요.”정안도 말을 보탰다.“저도 아주 맘에 들어요. 감사해요.”“그래. 그럼 우영으로 하자꾸나. 남우영.”그때 산후 도우미가 짐을 들고 와 가장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정안이 몸을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아기 데리고 올라가 쉬세요.”도우미는 대답하고 백진의 앞에 다가가 아이를 받았다.백진은 아쉬운 듯 아기를 바라보며 눈에는 섭섭함이 가득했다남하준과 정안은 그가 아주 외롭다는 것을 보아내고 마음이 아팠다.“할아버지만 괜찮으시다면 우리 여기서 살아도 될까요?”백진은 흥분에 겨워 말했다.“당연히 좋지. 여긴 네 집이다. 언제든 환영해.”남하준이 대답했다.“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이어 그는 옷 주머니에서 청첩장을 꺼내 백진에게 건넸다.“정통 어르신께서 갖다 주라고 하셨어요.”“청첩장?”“따님이 결혼하시는데 할아버지를 직접 초대하셨어요. 저희도 같이 갈 거예요.”백진은 환하게 웃으며 청첩장을 열었다.“정통 어르신의 초대라면 당연히 영광이지. 대체 어느 집 아들이 이렇게 복이 많아 정통 어르신 따님과 결혼하는 거지?”그때 도우미가 차와 간식을 가져왔고 남하준이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저도 모르는 사람이에요.”백진
정안은 너무 부끄러워 핑계를 대고 거실을 떠났다.“할아버지, 나 아기 보러 갈게요. 두 분 얘기 나누세요.”“그래.”백진이 웃으며 대꾸하자 정안은 아들을 보러 아기방으로 향했다.백진은 슬픈 기색을 드러내며 감개무량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남하준에게 말했다. “두 사람 아직 젊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늙은이를 위해 여기서 살 필요 없다. 나 혼자서도 괜찮아. 사람이 늙으면 조금 고독한 것도 정상이니 별로 문제 될 것 없어.”남하준이 위로했다.“우리 집에는 형님과 형수님들이 많고 게다가 셋째 형수가 완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지내는 데 힘들 거예요. 여기 와서 지내면 완자가 더 편할 거예요.”백진은 그 말을 듣고 남씨 가문의 셋째 며느리를 생각하더니 저도 모르게 얼굴빛이 가라앉았다.“그 셋째 형수가 혹시 그때 너에게 결혼을 거절당한 후 네 셋째 형에게 시집간 처자냐?”남하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하준아, 남자는 말이다. 주변 이성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해. 친구든 친척이든 낌새가 좀 이상한 여자는 최대한 멀리해야 하는 거다.”“네. 할아버지. 주의하겠습니다.”백진이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내 손녀딸은 어려서부터 속이 좁은 거 알지?”남하준이 피식 웃었다.“그럼요.”그건 바로 정안이 그를 신경 쓰고 있으니 질투하는 것이기도 하다.비록 정안의 진심이 확실하지 않지만 남하준은 정안이 그를 사랑하고 신경 써서 질투하고 속 좁게 행동하며 그의 모든 감정을 독점하려는 것이라 믿기로 했다.생각하다가 남하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아기방으로 향했다.“하준아. 내가 한 가지 부탁이 있어.”남하준이 정신을 차리고 진심으로 말했다.“할아버지. 부탁이라니요. 원하시는 일은 바로 분부하시면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절대 마다하지 않겠습니다.”백진이 가볍게 탄식하더니 쓸쓸히 말했다.“내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까지 모두 갇혀있어. 난 네가 구해줬으면 좋겠구나.”“걱정 마십시오. 할아버지께서 말씀
문이 닫히자 정안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뜨거워졌다.남하준이 옷을 입지 않은 것이 느껴졌고, 아직 닦지 않은 물방울이 몸에 남아 있는 것을 그녀는 함부로 쳐다보지 못했다.“앞으로 노크하지 말고 바로 들어와.”남하준이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부드럽게 중얼거렸다.“우리 사이에 사생활은 없어.”“오빠 샤워하는 모습 보려던 거 아니었어요.”정안이 부끄러워하며 말했다.“이따가 결혼식에 몇 시에 갈 건지 물어보려 했단 말이에요.”“오후 3시.”“아.”정안이 부드럽게 대답하더니 목소리가 점점 수줍어졌다.“그럼 씻어요. 난 나가볼게요.”“같이 씻을래?”남하준이 떠보듯 묻자 정안이 단칼에 거절했다.“싫어요.”남하준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뜨거운 눈빛으로 말했다.“안 씻으려고?”“씻어야죠. 오빠 다 씻으면 그때 씻을 거예요.”남하준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난 계속 샤워하고 넌 한쪽에서 세수하고 양치하면 되지. 전혀 영향이 없는걸?”“그건 좀 아니죠.”정안은 갑자기 어색해졌다. 아무리 부부라 해도, 두 사람이 가장 친밀한 행동을 했다 해도, 아직 그렇게 사적인 일에 적응하지 못했다.“유리문 닫으면 되잖아?”남하준이 계속 달래자 정안은 그의 요구에 못 이겨 동의했다.스크럽 요리를 한 겹 사이에 두고 그는 안에서 샤워하고 그녀는 밖에서 씻었다.같은 화장실에 같이 있을 정도로 친해지는 느낌이 너무 묘해서 정안은 내내 얼굴이 새빨갰다.정안이 다 씻고 유리문을 두드렸다.“나 먼저 나갈게요.”남하준은 몸을 닦고 목욕 수건으로 하반신을 두르고 유리문을 열어 그녀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완아.”정안은 움찔했다.“왜요?”“아직도 피곤해?”그가 쉰 목소리로 묻자 정안은 그의 뜻을 즉시 알아챘다.요 며칠, 그녀는 밤에 비교적 일찍 잤다. 남하준은 바빠서 저녁 늦게 돌아온 후 보통 그녀를 깨우지 않았다.깨어났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비몽사몽 한 상태였고 그가 원해도 대처할 정신이 없어 너무 피곤하다며 원기 왕성한 남자를 또
“알아. 그래서 안 깨웠어.”정안은 그의 귓가에 다가가 귓불에 대고 속삭였다.“만약 저녁 11시 전에 돌아오면 나 마음껏 갖고 놀아도 돼요.”“갖고 놀아?”남하준은 속삭이듯 말하며 눈 밑에는 아쉬움과 안쓰러움이 가득했다.정안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자 남하준은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더니 두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엄숙하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그런 말은 하지 마. 아무리 내가 네 남편이라도 그건 아니지.”“듣기 싫어요?”정안은 뭐가 잘못됐는지 몰라 의혹스러워했다.“좋지. 당연히 좋지. 심지어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만 그거 알아? 남자에게 마음껏 갖고 놀라는 말은 혈맥을 뛰게 하고 가슴이 벅차게 하는 말이야.”“하지만 넌 장난감이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내가 널 사랑하는 것 외에도 너도 너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난 한 번도 네 몸을 갖고 논다는 생각한 적 없어. 그러니까 너도 논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선 안 돼.”정안은 가슴에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단지 그녀의 잘못된 단어 사용 때문에 그는 이렇게 슬퍼하며 그녀의 세계관을 바로 잡으려 하고 있었다.정안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의 얇은 입술에 뽀뽀하고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사실 나도 날 아주 사랑해요. 하지만 오빠는 참 정직하고 생각이 바른 사람이에요.”남하준은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그녀를 눌러 키스하며 나지막이 말했다.“사실 나도 그렇게 정직한 사람은 아니야. 네가 날 갖고 놀겠다면 얼마든지 가능해.”정안은 참지 못하고 웃었다.“그런 게 어딨어요?”남하준이 뜨거운 눈빛으로 말했다.“네 남편 갖고 놀래? 아주 지구적이고 강력하고 제한시간도 없어.”정안은 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다정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후끈 달아올랐다.그녀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남하준의 목에 얼굴을 묻고 그의 관능적인 목젖에 가볍게 키스했다.남자의 목젖이 얼마나 예민한지, 남하준도 이렇게 유혹된 적은 처음이라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