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담담하게 웃으며 구인아가 분개하는 모습을 보았다.그녀가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냈다.돌고 돌아 그녀의 목적은 결국 정안이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또 부당한 수단으로 유미를 쫓아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재벌 2세들의 입을 빌려 일을 크게 벌여 정통 어르신과 지도자들에게 남하준이 공사 구분 없이 비서를 잘랐다는 사실을 알려 압력을 주고 유미의 전근을 막으려는 것이었다.아주 대단한 홍문연이었다.그때 관리 2세들이 끼어들었다.“듣자 하니, 도련님은 정직하고 공명정대하게 행동하시는 거로 유명한데 어쩌다 마누라 말에 귀가 얇아져서 유능한 비서를 쫓아낼 수 있지? 정말 대단하네!”“그러게 말이야. 남편 옆에 있는 여자 동료를 괴롭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잖아?”“휴, 우리 언니도 군전 그룹에 다니는데 혹시 언니도 이런 대우 당하는 거 아닌지 몰라.”“그건 모르지.”정안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여유롭게 휴대전화를 꺼내 지윤의 번호를 눌렀다.“지윤아, 내 서류 가방 갖고 와.”차에서 기다리던 지윤은 명령을 받고 즉시 정안의 서류 가방을 갖고 들어왔다.정안은 휴대전화를 치마 주머니에 넣고 방금의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일어서서 사람들에게 말했다.“저 같은 무식한 부녀자는 확실히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니까 다들 제가 아는 게임 함께 하는 건 어때요?”그러자 아까 그 재벌 2세 남자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궁금해서 물었다.“뭐 할 줄 아는데요?”“문장 하나를 놓고 누가 대응하는 외국어를 더 많이 아는지 겨뤄볼까요?”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이 아는 언어라곤 기껏해야 두 가지뿐이라 별로 많지 않았다.남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아주 자신만만한 모습인데 그럼 완자 씨는 얼마나 많은 언어를 알고 있죠?”정안이 덤덤하게 말했다.“별로 많지 않아요. 그저 여덟 가지 정도? 그럼 우리 시작할까요? 유미 씨가 문제를 내시죠.”현장의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말을 하지 못했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창피해서
“이 시간에는 병원 CCTV도 있고 휴대전화 기록도 있어요.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함부로 내 남편 전화를 껐다는 증거예요.”“만약 내 남편이 아직도 당신을 친구로 여긴다면 그저 전근 보내는 정도로 처리하겠죠.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안보국에서 조사받을지도 몰라요. 그런 행동은 스파이로 의심받아 마땅하니까.”현장에 있던 모두가 놀랍고 의아한 표정으로 유미를 바라보았다.유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긴장하고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아니야. 난 스파이가 아니야.”정안은 컴퓨터를 접고 따듯하게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고 남편한테 설명하세요. 두 사람 우정이 깊으니 아마 안보국 조사까지 받게 하지는 않겠죠.”정안은 겉으로는 덤덤한 척했지만 유미와 남하준의 우정이라고 얘기하니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현장을 쓱 둘러보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께서 하시는 게임에 대해 저는 정말 몰라요. 제가 아는 것에 대해 여러분들도 잘 요해하지 못하니 제가 이 모임에 낄 수가 없네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정안은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한 뒤 유미를 보며 말했다.“유 비서가 입건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저는 유 비서와 거리를 두는 게 좋겠네요.”“인아 씨,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정안은 구인아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꿋꿋이 돌아서서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떠났다.지윤이 그 뒤를 바싹 따랐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당황했다.M국은 절대 스파이를 용납하지 않았다.나라를 배신한 스파이는 총살감이었으니 아무도 감히 이 일에 엮이려 하지 못했다.“미안, 인아야. 나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나... 나도 일이 생겼어.”“엄마가 나보고 집에 돌아오래.”그러자 사람들은 유미를 피하려고 온갖 핑계를 대며 조심스럽게 자리를 떠났다.유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래지고 이를 악물고 손을 약간 떨며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구인아가 긴장해서 물었다.“유미야. 너 진짜 남 장군님
불빛이 눈 부신 도시는 심야에도 여전히 시끌벅적하고 차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지윤은 차를 몰고 정안은 조수석에 앉아 조용히 창밖의 경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지윤이 호기심에 물었다.“언니, 구인아가 일부러 그랬을까요?”정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맞아.”지윤은 운전대를 꽉 잡고 이를 악물었다.“정말 너무하네요. 정통 어르신 따님이 이런 사람일 줄이야.”정안이 느릿느릿 말했다.“자녀의 행동으로 그 부모까지 거론하지 마.”“그럼 도련님은 유 비서를 안보국에 고발할까요?”이 일을 생각하자 정안은 기분이 가라앉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깊은 눈동자로 창밖을 바라보며 불빛이 한 프레임 씩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지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었다.아마 유미를 안보국에 고발하지 않을 것이다.유미의 주장대로라면 남하준은 그녀의 사람됨을 알고 있고 더욱이 두 사람은 우정이 두터웠기 때문에 일부러 휴대전화를 꺼버린 일로 그녀를 입건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남하준은 아마 유미를 아까워할 것이다.지윤은 정안이 대답하지 않자 자문자답했다.“유 비서는 이미 도련님의 한계를 건드렸어요. 내 생각에는 무조건 유 비서를 단단히 혼내실 거예요.”정안이 씁쓸하게 입술을 오므리고 몰래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유 비서가 그런 고생을 하게 놔두지 않을 거야.”“언니, 유 비서 때문에 언니가 도련님께 구조 요청을 해도 연락이 닿지 않아 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어요? 당시 그 위급한 상황에서 경찰차와 구급차가 길에서 몇 분만 더 막혔다면 언니와 아이는 모두 목숨을 잃었을 거예요.”지윤이 감개무량해서 울분을 터뜨렸다.“만약 이런 상황에서도 도련님이 유 비서를 감싼다면 이런 남편은 없어도 그만이에요.”정안이 중얼거렸다.“나도 남편으로 인정할 생각 없었어. 지금은 그냥 아이 아빠일 뿐이야.”그에 대해 실망하고 자신이 없어 정안은 이렇게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다.차량이
만약 유미가 남하준이 추운 겨울 늦은 밤에 집 앞에 서서 정안을 기다리고, 그녀에게 슬리퍼를 건네는 것을 알았다면 유미는 화나 죽지 않을까?정안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방으로 걸어갔다.유미의 존재를 너무 의식한 것 같아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떨쳐 버렸다.정안은 안방으로 돌아갔고 남하준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그녀는 잠옷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고 화장을 지우고 씻고 머리도 감았다.40분 후, 정안은 긴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나왔다.그녀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남하준을 향하고 있었다.그는 아직 자지 않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허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온몸에 차가운 냉기가 서려 있고 주위에 짙은 장막이 드리워져 있어 우울한 느낌이 들었다.발자국 소리를 들은 남하준은 허리를 펴고 정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즉시 시선을 거두고 화장대로 가서 앉았고 위에 있는 크림을 집어 얼굴에 발랐다.남하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왜 이 시간에 머리를 감았어?”정안은 대답이 없었다.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안에서 헤어드라이어를 꺼내 코드를 꼽고 그녀 뒤로 와서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수건을 풀었다.정안은 그가 자신의 머리를 말리려 하자 급히 손을 뻗어 헤어드라이어를 집어 들었다.“내가 할게요. 주세요.”남하준은 놓아줄 기미가 없이 꽉 쥐었다.그녀의 손이 남하준의 손등에 닿는 순간, 처음으로 그의 손이 차갑다는 걸 느꼈다.그의 손은 언제 어디서나 아주 따뜻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차가울까?옷을 얇게 입고 문밖에서 그녀를 오래 기다려 몸이 얼어버린 걸까?그는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일부러 외투를 입지 않고 추운 겨울밤에 서서 자신을 괴롭힌 걸까?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당기고 헤어드라이어를 켜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잡고 열심히 말렸다.헤어드라이어는 무음이라 소음이 거의 없었다.정안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핸드크림을 들고 두 손을 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안의 냉담한 말이 들려왔다.“이미 42일이 지났으니 하고 싶으면 해요.”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하준이 그녀를 강제로 안방에서 재우고 그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한 것은 아내의 의무를 다하게 하려는 목적일 것이다.그는 요즘 이미 참을 만큼 참은 것 같았다.남하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움찔했다. 설레기도 했지만 서글픈 마음이 더 컸다.그는 움직이지 않고 손을 매트리스에 따라 가볍게 정안의 손을 만졌다.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다.하지만 그녀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그녀는 손을 빼서 자신의 가슴에 올렸다.남하준은 쓸쓸히 입술을 오므리고 천천히 눈을 감은 채 아무런 행동도 없이 속삭였다.“시간이 늦었다. 쉬어.”정안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의심이 가득했다.아침마다 욕망에 가득 차 언제 폭사할지 모를 정도로 잔뜩 부풀어 오르면서, 그녀가 먼저 허락했는데 그는 왜 반응이 없을까?정안은 의혹을 안고 그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 눈을 감고 천천히 잠이 들었다.순간, 뒤에 있는 남자도 몸을 돌려 그녀의 등을 마주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가볍게 중얼거렸다.“부부 사이 잠자리는 절대 일방적인 개념이 아니야. 네가 원하지 않고 즐기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야. 단순히 동물의 본능적인 욕망의 분출일 뿐이지.”“완아, 내가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네 몸이 나를 배척하고 있어. 너의 냉담함이 내 욕망보다 날 더 고통스럽게 해.”정안은 가슴 끝이 살짝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며 손은 천천히 이부자리를 꼬집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통증을 참았다.그녀는 이렇게 마음이 약한 자신이 싫었다.지금 이 순간 이 남자가 안쓰러웠다.이 남자를 용서해야 하지 않을까?이혼하지 않으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그는 자신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였다.정안은 생각이 많고 마음이 심란하여 속으로 갈등하면서도 아무 답도 하지 않은 채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너무 피곤했는지 그녀가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침대 위에는 그녀 혼자 남아 있
그리고 정안은 이 좋은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했다.시부모님들과 몇몇 가족들은 모두 기뻐하며 내일 온 가족이 아이를 데리러 병원에 가려 했지만 최서윤은 예외로 코웃음을 쳤다.사람이 너무 많으면 바이러스와 세균에 감염될까 봐 정안은 아이의 건강을 위해 모두 거절했다.그녀는 기대에 부풀어 내일 아들을 일찍 데려올 수 있기를 희망했다.햇볕이 내리쬐는 날, 정안은 기분 좋게 정원 밖의 정자에 앉아 바람을 쐬며 정원 곳곳에 햇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날씨가 따뜻해지자 정원의 푸른 식물이 새싹을 돋우고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아저씨들이 도구를 들고 푸르싱싱한 식물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정안이 궁금해서 걸어가 보니 그 거대한 녹색 식물은 어린 국화꽃이었는데 이미 열매를 피고 있었다.“여기부터 시작하죠. 다 뽑아서 흙을 뒤집어 유기질 비료를 넣고 튤립을 가지런히 심을 거예요.”정안이 다가가 호기심에 물었다.“아저씨, 여기 국화꽃이 곧 필 텐데 왜 뽑으시는 거죠?”그는 정안을 보고 황급히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 안녕하십니까. 도련님께서 그렇게 분부하셨습니다.”정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남자는 공무로 바쁘면서 정원의 꽃과 식물을 관리할 시간이 있다니.“그 이는 왜 이 꽃들을 뽑으려는 거죠?”정안이 묻자 남자가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이게 다 사모님께서 튤립을 좋아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작년에 도련님께서 저희 들에게 이 잔디밭을 정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사계절 꽃이 피는 국화꽃을 들여와 직접 씨앗을 뿌려 이렇게 아름다운 국화꽃을 심었습니다. 이제 곧 꽃이 필 텐데 사모님께서 튤립을 좋아하신다며 저희더러 이 꽃을 전부 뽑아 튤립을 심으라고 하셨습니다.”정안은 튤립 씨앗 몇 봉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했다.남하준은 그녀가 튤립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그는 국화꽃을 두 번 준 적은 있지만 한 번도 튤립을 선물한 적은 없었다.아마 지윤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사모님, 정자 쪽에서 쉬고 계세요. 여기는
다그치는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정안은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받고 휴대전화를 귓가에 갖다 댔다.남하준은 먼저 의외인 듯 몇 초 망설이다가 의심스러워 물었다.“완이야?”그의 말투가 유독 부드러워 정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녀가 너무 많은 전화를 거절해서 이젠 다른 사람이 답장하고 받은 전화인 줄 알았을까?정안이 온화한 말투로 대답했다.“맞아요.”그는 약간 흥분된 듯 부드럽게 말했다.“나 내일 집에 돌아갈게. 우리 같이 아들 데리러 병원에 가자.”정안은 살짝 놀랐지만 그의 일이 모레나 끝날 것으로 생각해 거절했다.“괜찮아요. 일 보세요. 지윤이랑 함께 가면 돼요. 괜히 서둘러 돌아올 필요 없어요.”“나 별로 안 바빠.”남하준이 기회를 잡으려고 애쓰면서 물었다.“내일 몇 시에 병원에 가?”정안이 다시 거절했다.“퇴원하는 게 별로 큰일도 아니고 신경 쓰지 마세요.”남하준은 침묵했다.정안은 그의 기분이 좀 가라앉은 느낌이 들어 급하게 전화를 끊으려 했다.“별일 없으면 나 먼저 끊을게요.”휴대전화가 그녀의 귓전을 떠날 때 남하준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완아 나...”그래도 그녀는 통화를 끊었다.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눈 앞에 펼쳐진 작은 국화들을 바라보며 정안은 남하준이 좋은 아빠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날은 유독 시간이 느리게 지나갔다.그녀는 산후 도우미와 함께 아들이 쓸 이불과 생필품을 준비했다.도우미는 아이가 퇴원한 후에도 자신과 함께 자도록 권했지만 정안이 완곡하게 거절했다.아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많이 갖고 친밀감을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날 밤, 정안은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전에 찍어온 아들의 사진을 계속 보았다.곧 만날 생각에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지루한 고요 속에서 정안은 슬슬 깊은 잠에 빠졌다.잠결에 침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졸린 눈으로 거슴츠레 눈꺼풀을 젖혔다.익숙한 향긋한 바디워시 냄새가 코를 찔렀다.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무거운 눈을 젖혔다가 덮으며 눈을 가늘게 뜨
또렷한 이목구비가 정교하고 예쁘고 남성적인 것이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어렴풋이 튀어나온 수염까지 남성미를 물씬 풍겼다.그녀는 오랜만에 남하준의 얼굴을 열심히 보았다.건강한 피부색, 오똑한 콧날, 부드러운 얇은 입술, 섹시한 목젖까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정안은 입술을 오므렸고 그때 남하준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놀란 정안은 얼른 시선을 돌려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다.하지만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정안은 깨끗하게 씻고 나갈 옷으로 갈아입고 짐을 챙겨 아침 먹으러 내려갔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지윤과 함께 병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갈 계획이었다.거실에서 그녀는 지윤과 류청을 보았고 그들은 소파에 앉아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정안은 그들에게 인사하고 거실에 앉아 아침을 먹었는데 그들의 대화가 어렴풋이 들렸다.지윤이 호기심에 물었다.“너 야밤에 도적질이라도 했어? 얼굴이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내안 피곤하게 생겼어? 도련님께서 오늘 서둘러 돌아오시려고 얼마나 필사적으로 모든 일정을 앞당겨 마치셨는데. 오늘 아침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여전히 공무를 처리하셨다고. 나 어제 2시간 밖에 못 잤어.”지윤이 걱정스레 말했다.“그럼 얼른 가서 더 자.”“안돼. 7시에 작은 도련님 모시러 병원에 가야 한단 말이야. 더 못 자.”“너 이거 과로운전이야. 누가 감히 네 차를 타겠어?”류청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운전해.”정안은 좀 먹고 거실로 가서 류청에게 말했다.“류청 씨 들어가서 쉬세요. 병원은 오후에 갈 거예요.”류청이 감격에 겨워 물었다.“정말요?”정안이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류청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을 올라갔다.안방에 돌아온 정안은 남하준의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알람을 켜니 7시 15분 알람이 맞춰져 있었다.몇 분 후에 울릴 알람이었다.그녀는 과감히 알람시계를 지우고 천천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고 커튼 사이 빈틈을 더욱 촘촘히 잡아당겼다.점심나절.바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병원에 병 보러 오지 왜 왔겠어? 갑자기 왜 태준 씨를 물어?”임다희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태준이가 당신 안 찾았어?”“아니.”지우가 고개를 젓자 임다희는 가볍게 웃었다.“그쪽이 아니라면 대체 누굴 찾아갔을까?”“그게 무슨 말이야?”지우가 일부러 이해가 안 가는 척 묻자 임다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사람 재결합한 거 맞지?”지우는 침묵했다.임다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조롱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두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까. 태준이가 당신을 찾지 않은 건 아마 약효가 너무 강해 당신 같은 여린 몸을 망쳐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찾아 해결했나 보네.”“약효가 너무 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지우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녀를 만족시켜줬다.임다희는 속이 편안해지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이 시간에 당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지우의 안색이 확 가라앉았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남태준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지금 까불고 있을까?만약 남태준이 그녀가 임다희와 정면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지우는 절대 임다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남태준의 뜻에 따라 얌전하고 철든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다.지우는 괴로운 척 연기하며 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냈다.임다희는 그녀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한 감정을 잠재우고는 실소를 터뜨렸다.“이게 당신들 사랑이야? 하하. 우습네!”그녀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차 문이 닫히고 차량이 서서히 빠져나갔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택시를 잡아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태준을 걱정했다. 그의 옷이 흠뻑 젖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지우는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는 남태준의 집에 가서 깨끗한 옷 몇 벌을 챙기려 했다.
잠시 후 한 남자 의사가 들어와 남태준이 평온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효과가 조금은 있네요.”말을 마친 그는 남태준의 아랫도리를 보더니 한마디 보탰다.“하지만 효과가 만족스럽지는 않네요. 휴. 환자분 물 많이 주시고 약효가 천천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의사는 자리를 떠났고 지우는 급히 미지근한 물을 붓고 남태준의 아랫배를 슬쩍 쳐다봤다.병원의 이불이 너무 얇은 편도 아니었는데 남태준의 아랫배가 여전히 부풀어 올랐다.지우는 속으로 욕했다.‘늑대 같은 임다희! 빌어먹을!’“태준 씨. 물 좀 마셔요.”지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남태준이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뜨고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자 지우가 서둘러 그의 등을 부축해 주었다.“아직도 힘들어요?”지우가 관심하며 묻자 남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나 이제 괜찮으니까 너 집에 가서 쉬어.”“싫어요. 여기 있을래요.”남태준은 눈을 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돌아가라고.”“혹시 무슨 일 생겼는데 옆에 돌봐줄 사람 없으면 어떡해요?”“여기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으니까 나 괜찮아.”“그래도 난 여기 있고 싶다고요.”남태준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천천히 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몸 안의 불은 꺼졌지만 탄소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어. 넌 탄소 더미 옆의 디젤과 같아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비유를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남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지우는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여기 머무르는 게 어쩌면 그의 안정과 회복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좋아요. 나 먼저 갈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요.”“그래.”지우는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1층 로비에서 매니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약을 받는 임다희를 만났다.지우는 재빨리 기둥 뒤에 숨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허리와 다리를 다친
지우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옆집에서 종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매번 거래가 있을 때면 이웃 할아버지는 종돈에게 독한 약을 먹였고 약을 먹은 종돈은 열 몇 마리의 암퇘지와 교배를 했다.그녀는 그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처절하고 끔찍한 돼지 울음소리는 그녀 어린 시절의 악몽이었다.정신이 번쩍 든 지우는 두말없이 펑 하고 문을 닫았다.갑작스레 문을 닫는 모습과 지우의 창백한 얼굴, 당황하는 모습에 남태준은 피식 웃었다.지우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고 15분 후, 남태준은 지우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응급실에 가서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의사가 남태준 옆에 있는 지우를 가리키며 물었다.“환자분 여자친구예요?”남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여동생이에요.”지우는 마음이 뭉클했다. 남태준은 스스로 고통을 참을지언정 그녀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여자친구 있어요?”“없어요.”“내가 주소를 줄 테니 가서...”의사가 간단한 방법을 추천하려 하자 남태준이 엄숙하게 말했다.“나 경찰입니다.”의사는 말을 뚝 그치고 긴장된 듯 침을 삼키더니 웃어 보이며 애써 둘러댔다.“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경우 의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도 해독제가 없어요.”“진정제 놔주세요. 진정제가 안 되면 마취제라도...”“그런 약은 함부로 처방할 수 없고 일정한 수치에 도달해야 처방할 수 있어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의사는 난처해하더니 남태준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강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진정제 놓아드리겠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거예요. 그저 괴로움을 조금 억제하는 정도예요.”“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롭게 참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다른 약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의사가 약을 처방하며 말했다.“여자친구도 없고 그런 서비스도 받기 싫다면 여동생분께 성인 가게에 가서 사달라고 하세요.”지우는 이렇게 난처한 적이 없었다.
지우가 만약 숫처녀라면 아마 고생할 것이다.남태준은 생각하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러 의사를 찾아 해결할 생각이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려던 순간,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지우가 다급하게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태준 씨?”남태준은 움찔 놀랐다. 뜨거운 눈으로 지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니 입이 바짝 마르고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지우는 남자가 머리와 몸이 흠뻑 젖어 숨도 약간 헐떡이는 것을 보고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타오를 듯한 고온에 지우는 화들짝 놀랐다.“태준 씨 열 나요.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태준은 꾹 참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운전할 줄 알아?”“아니요.”지우가 긴장하며 말했다.“방금 택시 타고 왔어요. 택시 타고 병원에 데려다줄게요.”택시?남태준은 자신이 통제 불능이 되어 택시에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몰라 걱정했다.지우는 휴지를 뽑아 그의 볼과 목의 물기를 닦아 줬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기, 손바닥의 부드러움은 치명적인 유혹처럼 그를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들고 싶게 만들었다.“지우야.”남태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감고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며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했다.“방금 다희를 만났어.”지우는 땀을 닦는 동작을 멈추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티 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요?”“그리고 이렇게 됐어. 너무 괴롭고 답답해 죽을 것 같아.”남태준은 침을 삼키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지우의 시선은 그의 고통스러운 안색에서 내려와 그의 가슴팍을 보니 기복이 아주 심했고 더 아래로 내려가니 운전석에 앉아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다희가 약을 먹였어요?”지우는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어쩔 줄 몰랐다.그러자 남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어떡해요?”지우는 부랴부랴 고개를 내밀어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살폈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
며칠 후.남태준은 임다희가 제공한 단서에 따라 미리 깊은 산에 잠복해 마약 밀매업자들을 잡았고 몇 킬로그램의 물품도 압수했다.모두가 기뻐하고 공적을 세운 것을 감격스러워하며 축하하고 있을 때, 남태준만 걱정이 가득했다.그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임다희가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그녀의 신분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다.이 사건은 곧 경찰에 의해 발표되었고 공식 웹사이트는 물론 뉴스에도 게재되었다.뉴스를 본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태준아. 네가 마약상을 잡고 물건까지 손에 넣은 건 내 공도 있지 않아? 나 밥 한 끼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남태준은 그녀의 입에서 단서를 더 찾고 싶어 그녀의 요구를 승낙했다.저녁, 퇴근 후 남태준은 임다희가 준 장소로 차를 몰고 갔다.장소에 도착해서야 개인 클럽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곳은 VIP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준 초대 코드로 그 클럽에 들어갔다.긴 복도를 지나 웨이터가 룸의 문을 열었다.남태준이 들어가서 보니 범상치 않은 방이었다. 커다란 방에는 침대, 소파, 식탁, 옷장에 화장실까지 있었다.식탁에서 임다희는 섹시하고 우아한 튜브톱 스커트를 입고 요염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식탁 위에 촛불을 켜 놓은 저녁 식사는 매우 낭만적이었다.“태준아 왔어?”임다희는 일어나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어서 앉아.”남태준은 조금 경계하며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앞에 있는 양식을 보고 옆에 있는 몇 병의 술을 보며 말했다.“오늘 식사를 위해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야.”“마음에 들어?”임다희가 웃으며 묻자 남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아니. 싫어.”임다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어 덤덤하게 말했다.“네가 준 정보 아주 정확하더라. 고마워. 만약 필요하다면 경찰서에 와서 상금 받아 가.”임다희는 어이없이 웃으며 옆에 이미 열린 술을 들고 남태준에게
“네?”지우가 멍하니 아직 반응하지 못했을 때 남태준이 바로 키스를 했다.남자의 패기 넘치고 강한 딥키스에 지우는 어질어질하고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없었으며 그의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몸 아래에서 넋을 잃었다.함께 있는 시간은 늘 뜨겁고 끈적끈적했으며 아늑하고 행복했다.진한 키스를 나눈 후, 지우는 몸이 나른하고 숨이 가빠졌지만 남태준은 오히려 더욱 에너지가 넘치고 심지어 욕망이 자극되어 발산되지 않으니 더욱 흥분했다.그는 지우를 거실에 남겨두고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달려가 목욕을 했다.다시 나왔을 때 지우는 거실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남태준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컴퓨터 내용을 들여다봤다.그러자 지우는 노트북을 덥석 덮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시간이 늦었어요. 집에 가야겠어요.”남태준이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저녁 9시가 넘었다.그는 지우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며 그녀가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랐다.“열 시에 가.”남태준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조용히 달랬다.“열 시에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지우는 고개를 흔들었다.남태준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항상 그녀에게 키스해 그가 욕망을 억누를 수 없을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가 매번 자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또 고통스럽게 억누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런 남자를 보며 지우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아니요. 지금 가야겠어요. 너무 늦으면 안 돼요.”남태준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래.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지우는 즉시 물건을 챙기고 가방을 든 뒤 남태준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가요.”남태준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좀 서운했다.지우는 정말 그와 더 있고 싶지 않은 걸까?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미어졌다.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승용차는 마당에서 천천히 빠져나가 도로로 들어가 쏜살같이 달려갔다.길가에는 오랫동안 주차된 승합차 한 대가 줄곧
적어도 지우가 그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니 말이다.남태준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다희는 언제나 자신이 훌륭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야. 자기가 원하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손에 넣으려 하지.”지우가 감탄하며 말했다.“그 여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네요.”남태준이 거침없이 말했다.“그래도 한 때 만났던 사이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그럼 태준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지우가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다시 만나고 싶어요?”남태준이 화를 억누르고 물었다.“나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묻는 거야?”“그럼 아까 왜 그렇게 긴장하며 끌고 나갔어요. 그건...”남태준의 바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그건 네가 우리 집에 있는 거 들키기 싫어서지. 지성이가 이미 육건우에게 한 방 먹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지우는 순간 그의 뜻을 알아챘다.전에 남태준은 임다희가 아직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몰라서 대범하게 지우를 소개해줬었다.하지만 지금은 임다희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걸 알았으니 지우를 보호하기 위해 이 연애를 잘 숨겨야 했다. 아니면 임다희가 또 무슨 수단을 써서 두 사람을 이간질할지 모른다.마음이 따뜻해진 지우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남 대장님도 무서울 때가 있었네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에 화가 나서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지우가 날쌔게 손을 피했다.“지우야. 이리 와.”남태준이 화난 척 말했지만 지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싫은데요?”남태준이 몸을 기울이고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 하자 지우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식탁을 나섰다.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직 밥 다 안 먹었는데 어디 가?”“안 먹을래요.”지우는 방긋 웃으며 남태준의 행동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잡고 혼내주려 하는 것 같았다.남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우는 급하게 돌아서서 거실로 뛰어갔다.“이리 오라고.”남태준이 부드러운 명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