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담담하게 웃으며 구인아가 분개하는 모습을 보았다.그녀가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냈다.돌고 돌아 그녀의 목적은 결국 정안이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또 부당한 수단으로 유미를 쫓아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재벌 2세들의 입을 빌려 일을 크게 벌여 정통 어르신과 지도자들에게 남하준이 공사 구분 없이 비서를 잘랐다는 사실을 알려 압력을 주고 유미의 전근을 막으려는 것이었다.아주 대단한 홍문연이었다.그때 관리 2세들이 끼어들었다.“듣자 하니, 도련님은 정직하고 공명정대하게 행동하시는 거로 유명한데 어쩌다 마누라 말에 귀가 얇아져서 유능한 비서를 쫓아낼 수 있지? 정말 대단하네!”“그러게 말이야. 남편 옆에 있는 여자 동료를 괴롭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잖아?”“휴, 우리 언니도 군전 그룹에 다니는데 혹시 언니도 이런 대우 당하는 거 아닌지 몰라.”“그건 모르지.”정안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여유롭게 휴대전화를 꺼내 지윤의 번호를 눌렀다.“지윤아, 내 서류 가방 갖고 와.”차에서 기다리던 지윤은 명령을 받고 즉시 정안의 서류 가방을 갖고 들어왔다.정안은 휴대전화를 치마 주머니에 넣고 방금의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일어서서 사람들에게 말했다.“저 같은 무식한 부녀자는 확실히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니까 다들 제가 아는 게임 함께 하는 건 어때요?”그러자 아까 그 재벌 2세 남자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궁금해서 물었다.“뭐 할 줄 아는데요?”“문장 하나를 놓고 누가 대응하는 외국어를 더 많이 아는지 겨뤄볼까요?”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이 아는 언어라곤 기껏해야 두 가지뿐이라 별로 많지 않았다.남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아주 자신만만한 모습인데 그럼 완자 씨는 얼마나 많은 언어를 알고 있죠?”정안이 덤덤하게 말했다.“별로 많지 않아요. 그저 여덟 가지 정도? 그럼 우리 시작할까요? 유미 씨가 문제를 내시죠.”현장의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말을 하지 못했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창피해서
“이 시간에는 병원 CCTV도 있고 휴대전화 기록도 있어요.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함부로 내 남편 전화를 껐다는 증거예요.”“만약 내 남편이 아직도 당신을 친구로 여긴다면 그저 전근 보내는 정도로 처리하겠죠.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안보국에서 조사받을지도 몰라요. 그런 행동은 스파이로 의심받아 마땅하니까.”현장에 있던 모두가 놀랍고 의아한 표정으로 유미를 바라보았다.유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긴장하고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아니야. 난 스파이가 아니야.”정안은 컴퓨터를 접고 따듯하게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고 남편한테 설명하세요. 두 사람 우정이 깊으니 아마 안보국 조사까지 받게 하지는 않겠죠.”정안은 겉으로는 덤덤한 척했지만 유미와 남하준의 우정이라고 얘기하니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현장을 쓱 둘러보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께서 하시는 게임에 대해 저는 정말 몰라요. 제가 아는 것에 대해 여러분들도 잘 요해하지 못하니 제가 이 모임에 낄 수가 없네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정안은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한 뒤 유미를 보며 말했다.“유 비서가 입건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저는 유 비서와 거리를 두는 게 좋겠네요.”“인아 씨,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정안은 구인아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꿋꿋이 돌아서서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떠났다.지윤이 그 뒤를 바싹 따랐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당황했다.M국은 절대 스파이를 용납하지 않았다.나라를 배신한 스파이는 총살감이었으니 아무도 감히 이 일에 엮이려 하지 못했다.“미안, 인아야. 나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나... 나도 일이 생겼어.”“엄마가 나보고 집에 돌아오래.”그러자 사람들은 유미를 피하려고 온갖 핑계를 대며 조심스럽게 자리를 떠났다.유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래지고 이를 악물고 손을 약간 떨며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구인아가 긴장해서 물었다.“유미야. 너 진짜 남 장군님
불빛이 눈 부신 도시는 심야에도 여전히 시끌벅적하고 차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지윤은 차를 몰고 정안은 조수석에 앉아 조용히 창밖의 경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지윤이 호기심에 물었다.“언니, 구인아가 일부러 그랬을까요?”정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맞아.”지윤은 운전대를 꽉 잡고 이를 악물었다.“정말 너무하네요. 정통 어르신 따님이 이런 사람일 줄이야.”정안이 느릿느릿 말했다.“자녀의 행동으로 그 부모까지 거론하지 마.”“그럼 도련님은 유 비서를 안보국에 고발할까요?”이 일을 생각하자 정안은 기분이 가라앉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깊은 눈동자로 창밖을 바라보며 불빛이 한 프레임 씩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지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었다.아마 유미를 안보국에 고발하지 않을 것이다.유미의 주장대로라면 남하준은 그녀의 사람됨을 알고 있고 더욱이 두 사람은 우정이 두터웠기 때문에 일부러 휴대전화를 꺼버린 일로 그녀를 입건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남하준은 아마 유미를 아까워할 것이다.지윤은 정안이 대답하지 않자 자문자답했다.“유 비서는 이미 도련님의 한계를 건드렸어요. 내 생각에는 무조건 유 비서를 단단히 혼내실 거예요.”정안이 씁쓸하게 입술을 오므리고 몰래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유 비서가 그런 고생을 하게 놔두지 않을 거야.”“언니, 유 비서 때문에 언니가 도련님께 구조 요청을 해도 연락이 닿지 않아 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어요? 당시 그 위급한 상황에서 경찰차와 구급차가 길에서 몇 분만 더 막혔다면 언니와 아이는 모두 목숨을 잃었을 거예요.”지윤이 감개무량해서 울분을 터뜨렸다.“만약 이런 상황에서도 도련님이 유 비서를 감싼다면 이런 남편은 없어도 그만이에요.”정안이 중얼거렸다.“나도 남편으로 인정할 생각 없었어. 지금은 그냥 아이 아빠일 뿐이야.”그에 대해 실망하고 자신이 없어 정안은 이렇게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다.차량이
만약 유미가 남하준이 추운 겨울 늦은 밤에 집 앞에 서서 정안을 기다리고, 그녀에게 슬리퍼를 건네는 것을 알았다면 유미는 화나 죽지 않을까?정안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방으로 걸어갔다.유미의 존재를 너무 의식한 것 같아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떨쳐 버렸다.정안은 안방으로 돌아갔고 남하준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그녀는 잠옷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고 화장을 지우고 씻고 머리도 감았다.40분 후, 정안은 긴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나왔다.그녀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남하준을 향하고 있었다.그는 아직 자지 않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허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온몸에 차가운 냉기가 서려 있고 주위에 짙은 장막이 드리워져 있어 우울한 느낌이 들었다.발자국 소리를 들은 남하준은 허리를 펴고 정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즉시 시선을 거두고 화장대로 가서 앉았고 위에 있는 크림을 집어 얼굴에 발랐다.남하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왜 이 시간에 머리를 감았어?”정안은 대답이 없었다.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안에서 헤어드라이어를 꺼내 코드를 꼽고 그녀 뒤로 와서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수건을 풀었다.정안은 그가 자신의 머리를 말리려 하자 급히 손을 뻗어 헤어드라이어를 집어 들었다.“내가 할게요. 주세요.”남하준은 놓아줄 기미가 없이 꽉 쥐었다.그녀의 손이 남하준의 손등에 닿는 순간, 처음으로 그의 손이 차갑다는 걸 느꼈다.그의 손은 언제 어디서나 아주 따뜻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차가울까?옷을 얇게 입고 문밖에서 그녀를 오래 기다려 몸이 얼어버린 걸까?그는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일부러 외투를 입지 않고 추운 겨울밤에 서서 자신을 괴롭힌 걸까?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당기고 헤어드라이어를 켜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잡고 열심히 말렸다.헤어드라이어는 무음이라 소음이 거의 없었다.정안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핸드크림을 들고 두 손을 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안의 냉담한 말이 들려왔다.“이미 42일이 지났으니 하고 싶으면 해요.”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하준이 그녀를 강제로 안방에서 재우고 그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한 것은 아내의 의무를 다하게 하려는 목적일 것이다.그는 요즘 이미 참을 만큼 참은 것 같았다.남하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움찔했다. 설레기도 했지만 서글픈 마음이 더 컸다.그는 움직이지 않고 손을 매트리스에 따라 가볍게 정안의 손을 만졌다.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다.하지만 그녀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그녀는 손을 빼서 자신의 가슴에 올렸다.남하준은 쓸쓸히 입술을 오므리고 천천히 눈을 감은 채 아무런 행동도 없이 속삭였다.“시간이 늦었다. 쉬어.”정안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의심이 가득했다.아침마다 욕망에 가득 차 언제 폭사할지 모를 정도로 잔뜩 부풀어 오르면서, 그녀가 먼저 허락했는데 그는 왜 반응이 없을까?정안은 의혹을 안고 그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 눈을 감고 천천히 잠이 들었다.순간, 뒤에 있는 남자도 몸을 돌려 그녀의 등을 마주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가볍게 중얼거렸다.“부부 사이 잠자리는 절대 일방적인 개념이 아니야. 네가 원하지 않고 즐기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야. 단순히 동물의 본능적인 욕망의 분출일 뿐이지.”“완아, 내가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네 몸이 나를 배척하고 있어. 너의 냉담함이 내 욕망보다 날 더 고통스럽게 해.”정안은 가슴 끝이 살짝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며 손은 천천히 이부자리를 꼬집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통증을 참았다.그녀는 이렇게 마음이 약한 자신이 싫었다.지금 이 순간 이 남자가 안쓰러웠다.이 남자를 용서해야 하지 않을까?이혼하지 않으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그는 자신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였다.정안은 생각이 많고 마음이 심란하여 속으로 갈등하면서도 아무 답도 하지 않은 채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너무 피곤했는지 그녀가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침대 위에는 그녀 혼자 남아 있
그리고 정안은 이 좋은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했다.시부모님들과 몇몇 가족들은 모두 기뻐하며 내일 온 가족이 아이를 데리러 병원에 가려 했지만 최서윤은 예외로 코웃음을 쳤다.사람이 너무 많으면 바이러스와 세균에 감염될까 봐 정안은 아이의 건강을 위해 모두 거절했다.그녀는 기대에 부풀어 내일 아들을 일찍 데려올 수 있기를 희망했다.햇볕이 내리쬐는 날, 정안은 기분 좋게 정원 밖의 정자에 앉아 바람을 쐬며 정원 곳곳에 햇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날씨가 따뜻해지자 정원의 푸른 식물이 새싹을 돋우고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아저씨들이 도구를 들고 푸르싱싱한 식물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정안이 궁금해서 걸어가 보니 그 거대한 녹색 식물은 어린 국화꽃이었는데 이미 열매를 피고 있었다.“여기부터 시작하죠. 다 뽑아서 흙을 뒤집어 유기질 비료를 넣고 튤립을 가지런히 심을 거예요.”정안이 다가가 호기심에 물었다.“아저씨, 여기 국화꽃이 곧 필 텐데 왜 뽑으시는 거죠?”그는 정안을 보고 황급히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 안녕하십니까. 도련님께서 그렇게 분부하셨습니다.”정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남자는 공무로 바쁘면서 정원의 꽃과 식물을 관리할 시간이 있다니.“그 이는 왜 이 꽃들을 뽑으려는 거죠?”정안이 묻자 남자가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이게 다 사모님께서 튤립을 좋아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작년에 도련님께서 저희 들에게 이 잔디밭을 정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사계절 꽃이 피는 국화꽃을 들여와 직접 씨앗을 뿌려 이렇게 아름다운 국화꽃을 심었습니다. 이제 곧 꽃이 필 텐데 사모님께서 튤립을 좋아하신다며 저희더러 이 꽃을 전부 뽑아 튤립을 심으라고 하셨습니다.”정안은 튤립 씨앗 몇 봉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했다.남하준은 그녀가 튤립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그는 국화꽃을 두 번 준 적은 있지만 한 번도 튤립을 선물한 적은 없었다.아마 지윤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사모님, 정자 쪽에서 쉬고 계세요. 여기는
다그치는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정안은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받고 휴대전화를 귓가에 갖다 댔다.남하준은 먼저 의외인 듯 몇 초 망설이다가 의심스러워 물었다.“완이야?”그의 말투가 유독 부드러워 정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녀가 너무 많은 전화를 거절해서 이젠 다른 사람이 답장하고 받은 전화인 줄 알았을까?정안이 온화한 말투로 대답했다.“맞아요.”그는 약간 흥분된 듯 부드럽게 말했다.“나 내일 집에 돌아갈게. 우리 같이 아들 데리러 병원에 가자.”정안은 살짝 놀랐지만 그의 일이 모레나 끝날 것으로 생각해 거절했다.“괜찮아요. 일 보세요. 지윤이랑 함께 가면 돼요. 괜히 서둘러 돌아올 필요 없어요.”“나 별로 안 바빠.”남하준이 기회를 잡으려고 애쓰면서 물었다.“내일 몇 시에 병원에 가?”정안이 다시 거절했다.“퇴원하는 게 별로 큰일도 아니고 신경 쓰지 마세요.”남하준은 침묵했다.정안은 그의 기분이 좀 가라앉은 느낌이 들어 급하게 전화를 끊으려 했다.“별일 없으면 나 먼저 끊을게요.”휴대전화가 그녀의 귓전을 떠날 때 남하준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완아 나...”그래도 그녀는 통화를 끊었다.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눈 앞에 펼쳐진 작은 국화들을 바라보며 정안은 남하준이 좋은 아빠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날은 유독 시간이 느리게 지나갔다.그녀는 산후 도우미와 함께 아들이 쓸 이불과 생필품을 준비했다.도우미는 아이가 퇴원한 후에도 자신과 함께 자도록 권했지만 정안이 완곡하게 거절했다.아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많이 갖고 친밀감을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날 밤, 정안은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전에 찍어온 아들의 사진을 계속 보았다.곧 만날 생각에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지루한 고요 속에서 정안은 슬슬 깊은 잠에 빠졌다.잠결에 침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졸린 눈으로 거슴츠레 눈꺼풀을 젖혔다.익숙한 향긋한 바디워시 냄새가 코를 찔렀다.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무거운 눈을 젖혔다가 덮으며 눈을 가늘게 뜨
또렷한 이목구비가 정교하고 예쁘고 남성적인 것이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어렴풋이 튀어나온 수염까지 남성미를 물씬 풍겼다.그녀는 오랜만에 남하준의 얼굴을 열심히 보았다.건강한 피부색, 오똑한 콧날, 부드러운 얇은 입술, 섹시한 목젖까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정안은 입술을 오므렸고 그때 남하준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놀란 정안은 얼른 시선을 돌려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다.하지만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정안은 깨끗하게 씻고 나갈 옷으로 갈아입고 짐을 챙겨 아침 먹으러 내려갔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지윤과 함께 병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갈 계획이었다.거실에서 그녀는 지윤과 류청을 보았고 그들은 소파에 앉아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정안은 그들에게 인사하고 거실에 앉아 아침을 먹었는데 그들의 대화가 어렴풋이 들렸다.지윤이 호기심에 물었다.“너 야밤에 도적질이라도 했어? 얼굴이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내안 피곤하게 생겼어? 도련님께서 오늘 서둘러 돌아오시려고 얼마나 필사적으로 모든 일정을 앞당겨 마치셨는데. 오늘 아침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여전히 공무를 처리하셨다고. 나 어제 2시간 밖에 못 잤어.”지윤이 걱정스레 말했다.“그럼 얼른 가서 더 자.”“안돼. 7시에 작은 도련님 모시러 병원에 가야 한단 말이야. 더 못 자.”“너 이거 과로운전이야. 누가 감히 네 차를 타겠어?”류청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운전해.”정안은 좀 먹고 거실로 가서 류청에게 말했다.“류청 씨 들어가서 쉬세요. 병원은 오후에 갈 거예요.”류청이 감격에 겨워 물었다.“정말요?”정안이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류청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을 올라갔다.안방에 돌아온 정안은 남하준의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알람을 켜니 7시 15분 알람이 맞춰져 있었다.몇 분 후에 울릴 알람이었다.그녀는 과감히 알람시계를 지우고 천천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고 커튼 사이 빈틈을 더욱 촘촘히 잡아당겼다.점심나절.바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