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힘껏 옷을 던졌다.둔탁한 소리가 다시 울리고 총알이 옷에 명중되었다.같은 시각 정안은 빠르게 달려 계단을 뛰어올라 큰 기둥 뒤로 숨었다.그녀는 호흡이 점점 줄어들어 심장이 멎을 것 같았고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배가 찌릿찌릿 아플 정도로 긴장했다.이제 몇 걸음만 걸으면 집으로 돌진할 수 있었다.그녀는 배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아가야, 괜찮아. 엄마 꼭 할 수 있으니까 엄마 믿어. 긴장하지 말고 겁먹지도 마.”그녀는 다시 입고 있던 스웨터를 벗어서 때를 봐서 홱 뿌렸고 또 둔탁한 소리가 울리더니 총알이 스웨터를 뚫고 대문에 박혔다.정안은 있는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 대문을 향해 돌진했다.그러자 다시 총알이 발사됐다.3발 연속 정안의 옆을 스쳤고 그녀는 사신과 스쳐 지나가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집안으로 뛰어들었다.너무 당황하고 긴장되고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에 그녀는 현관에서 넘어지고 말았다.배가 짓눌려 심한 통증이 오자 그녀는 이를 악물고 무릎을 꿇고 앞으로 기어가며 소리쳤다.“소등!”곧이어 온 집안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배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고 그녀는 아랫도리에서 액체가 서서히 밀려나 허벅지가 흠뻑 젖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간신히 거실로 올라가 탁자 위의 휴대폰을 찾았다.마루에 누워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걸었고 어두운 천장을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바라보았다.정안은 침착하게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부른 다음 남하준에게 전화했다.눈물방울이 정안의 눈가에 천천히 흘러내렸고 한 손으로는 아픈 배를 쓰다듬고 한 손으로는 그가 전화를 받기 기다렸다.연결음이 뚜뚜뚜 오래도록 울렸다.그녀의 마음이 식을 때까지 남하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걸었는데 기계음 소리만 들려왔다.“지금 거신 번호는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이니...”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캄캄한 심연의 바닥으로 떨어졌고 끝없는 절망으로 떨어졌다.정안은 너무 일찍 결론을 내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남하준은 분명 무슨
칠흑 같은 어둠의 장막은 마치 악몽 같았다.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고 정안과 지윤은 각각 구급차에 실려 갔다.정안은 죽을 것 같은 복부의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신체적 고통은 심장의 1만분의 1도 안 되었고 끝없는 두려움과 실망이 그녀를 지독하게 괴롭혔다.그녀와 아이가 동시에 위험에 처했을 때, 그녀의 곁에는 가족이 한 명도 없었다.그녀가 의지하고 사랑했던 남편은 소식이 끊긴 채 다른 여자를 구하고 있었다.애초에 그녀와 가짜 백하린이 동시에 물에 빠졌을 때, 남편이 그녀를 무시하고 그 여자를 구했을 때 그 실망감, 심장을 찢어발기는 고통이 다시금 몰려왔다.그녀는 분만실로 실려 들어갔고 귓가에 의사와 간호사가 황급히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눈앞이 희미하고 귓가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그녀의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밖으로 넘쳐흘렀고, 아랫배에 피가 흐르고, 심장이 천만 마리의 개미에게 물어뜯기는 것 같은 따끔거림이 몰려왔고 아랫배의 욱신거림까지 그녀를 계속 괴롭혔다.“산모분 남편 도착했어요? 다른 가족은요? 수술 동의서에 누가 서명해요?”“얼른 가족에게 전화하세요. 지금 산모분 위험한 상태에요. 태아 몇 개월 차에요? 어느 병원에서 정기 검진받았어요?”“산모분 휴대전화 어딨어요? 얼른 가족에게 연락하세요.”마음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초조한 의사의 재촉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정안은 이미 땀에 흠뻑 젖은 채 온몸을 떨며 힘없이 휴대전화 잠금화면을 열고 시어머니의 번호를 열어 간호사에게 건넸다.그러자 그녀는 분만실로 밀려 들어갔다.자궁 수축이 일어날 때마다 그녀는 분만실에서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그러나 그녀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간호사가 그녀에게 휴대전화를 돌려주었을 때,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남하준의 번호를 눌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그가 전원을 켜고 서둘러 오기를 바랐다.하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진 상태라는 기계음만 들려왔다.의사는 분만실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정안은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고 결국 고통받는 건 자신이었다.지윤은 서명을 마친 후, 빠르게 정안의 곁으로 달려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언니. 힘내요. 언니랑 아기 분명 무사할 거예요.”의사가 소리쳤다.“얼른 수술실로 옮겨서 제왕절개수술 시작해!”조산사가 정안의 병상을 밀자 다른 조산사가 큰소리로 외쳤다.“아기 머리가 나왔어요!”분만실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 몇 명이 모두 둘러서서 희망을 본 듯 감격에 겨워 정안을 다독이며 힘주는 법을 가르쳤다.지윤은 산대 옆에 엎드려 몸의 통증을 참고 눈물을 반짝이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언니 힘내요. 포기하지 마요. 아기 괜찮을 거예요. 제발 버텨요...”정안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죽을 듯한 10도 통증을 참느라 온몸이 땀에 젖고 눈물이 말라 입술이 깨물리고 분만대를 조르느라 손등의 핏줄이 터졌다.기절할 것 같은 통증을 느낀 순간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갑자기 모든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녀의 몸이 가벼워졌다.의사는 더욱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나왔어! 어서 빨리 산모 구해!”지윤은 눈물범벅이 되어 정안을 바라보며 그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울먹였다.“언니. 아기 나왔어요. 흑흑.”정안은 온몸이 저려 의사의 손에 들려 있는 아이를 힘없이 쳐다보았다.아기는 아주 작고 보들보들하며 핏자국이 있는 몸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의사가 아기의 두 발을 거꾸로 들고 등을 한번 또 한 번 두드리기 시작했다.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정안은 마음이 바짝 조여왔다.그녀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고, 그녀는 겨우 7개월 된 아이를 바라보며 가슴이 짓밟히는 것처럼 뼈에 사무치는 아픔을 느꼈다.“빨리 지혈해!”다른 의사들이 더 혼란스러워졌다.“피 더 많이 가져와. 어서!”정안은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의사와 조산사의 구조 소리, 지윤의 흐느낌이 희미하게 들렸다.하지만 그녀가 가장 듣고 싶은 것은 아이의 울음소리였다.아기가 울기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깊은
남하준은 얼굴이 굳어지더니 느릿느릿 말했다.“한이서는 일주일에 한 번 꼭 그 미용실에 가. 근데 네가 또 그 안에서 납치당했으니 그 미용실 분명 뭔가 있어.”“그럼 이제 어떡해?”유미가 물었지만 남하준은 말없이 그녀를 정형외과에 데려다주고 보고서를 의사에게 건네고 상황을 설명했다.유미가 치료를 받을 때 그는 방을 나와 외투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보았다.그제야 휴대전화가 꺼진 것을 발견했다.그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전원을 켰고 곧바로 전화 알림과 메시지가 폭주했다.남하준은 순간 얼굴이 확 어두워지며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류청이 열 몇 개, 부모님이 대여섯 개, 형님과 형수님, 지윤, 그리고 정안의 부재중 전화도 두 통 있었다.순간 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즉시 정안에게 전화하며 노기등등하게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네가 내 폰 꺼놨어?”남하준은 치료 중인 유미에게 화를 내며 물었다.유미와 의사는 그의 갑작스러운 고함에 깜짝 놀랐다.유미는 긴장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아니... 아니야. 나 네 폰 만진 적도 없어.”남하준은 전화기 너머의 벨 소리를 듣고 있었다.그러나 정안이 계속 받지 않아 초조하고 걱정으로 가득한 그는 휴대전화가 왜 꺼졌는지 따질 시간이 없었고 류청에게 전화를 걸면서 성큼성큼 자리를 떴다.유미가 긴장된 표정으로 의사를 밀어내고 절뚝절뚝 쫓아갔다.“하준아. 나 아직 아픈데 어디 가? 나 버리고 가는 거야?”남하준은 그녀의 말이 한 글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전화를 받은 류청이 다급하게 말했다.“사모님 사고 났어요. 어서 병원에 오세요.”순간 남하준은 가슴이 찢어지고 머리가 하얘졌고 100m 달리기 속도로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유미가 절름거리며 몇 걸음 뛰었는데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뒤에서 애처롭게 소리쳤다.“하준아. 이렇게 나 버리고 가면 어떡해?”...빛이 환히 비치는 병실에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정안은 의식이 점점 뚜렷해지자 허약하게 눈을 뜨고 손가락
맏며느리 유가영이 말을 보탰다.“그래. 아이 낳고 울면 눈도 상하고 산후 우울증에 걸리기 쉬워.”정안이 입술을 오므리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감사해요. 형님. 안 울게요.”“그래야지.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미숙아라도 별로 문제 될 것 없어. 한두 달만 병원에 입원하면 집에 갈 수 있어. 내가 아이 키운 경험이 있으니까 내가 키워줄게. 분명 잘 돌볼 수 있을 거야.”허윤미가 황급히 말했다.“아니다. 내가 키워주마. 그래도 아이는 내가 더 많이 키워봤지. 네 남편도 그렇고 첫째도 그렇고 넷째도 그렇고. 봐봐. 얼마나 튼튼하니?”그녀가 뒤에 있는 남태준을 툭 치며 말했고 갑자기 두들겨 맞은 남태준은 놀라서 가슴을 움켜쥐었다.정안은 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그녀를 보러 와준 남태준을 보며 감동이 밀려와 미소가 절로 번졌다.남태준이 입을 열었다.“완자야. 득남 축하해.”정안이 부드럽게 말했다.“고마워요. 오빠.”그러자 큰형 남희준도 덩달아 축하하며 장난쳤다.“제수씨, 저 녀석 겨우 1.8kg이지만 엄청 튼튼해 보였어. 얼마나 힘차게 우는지 유리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기운이 넘치고 손발을 퍼덕거리더라니까?”정안은 아들의 소식을 들으니 너무 기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 아주버님.”허윤미가 정안의 손을 잡고 감개무량해서 말했다.“완자야. 고생이 많았다. 아이 낳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의사가 너 출혈이 심해서 자궁을 잘라야 목숨을 건질 뻔했는데 네 혈소판이 강하게 버텨냈고 산부인과 의사들 덕분에 다행히 지혈할 수 있었어.”출산의 위험에 대해 그녀는 임신하기 전에 이미 익혀 두었다.어느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겠는가?아이가 건강하기만 하면 모든 고생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그녀는 오늘의 고통을 꼭 기억하고 앞으로 다시는 낳지 않을 것이다.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어머님, 저 이제 괜찮아요.”“괜찮긴 뭐가 괜찮아? 지금 몸이 이렇게 허약한데?”허윤미는 진지한
남하준은 순간 그가 정안의 섬세하고 예민한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느꼈다.그들은 떨어져 지낸 지 너무 오래되었고 실제로 함께 한 시간은 매우 적었다.그는 무거운 숨을 내쉬고 가슴이 답답해서 남태준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을 나섰고 남하준이 돌아서서 들어가려고 하자 의사가 제지했다.“산모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산후 도우미만 남기고 다른 가족들은 전부 돌아가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남하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제가 남편입니다. 제가 남아서 산후 도우미와 함께 돌볼게요.”허윤미가 다급하게 말을 보탰다.“그래요. 제 아들은 남게 해주세요. 그러는 편이 더 안전해요.”의사가 남하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산모분께서 남편분은 돌아가 일하라고, 산모분 휴식 방해하지 말라고 특별히 전해달라고 했어요.”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의아해하며 남하준을 바라보았다.남하준은 순식간에 기분이 가라앉았고 실의에 빠진 눈으로 굳게 닫힌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의사는 말을 마치고 바로 떠났다.남하준은 제자리에 멍하니 있었고 가족들이 모두 몰려와 의아해하며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추궁했다.남하준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고 또 부부간의 일은 다른 사람이 관여하지 않을수록 좋았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하준아. 정말 가려고?”허윤미가 크게 소리쳤다.“완자가 홧김에 한 소리를 믿어? 너 이렇게 가면...”그때 남태준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엄마. 도우미가 완자 돌보니까 걱정하지 마요.”“태준아. 두 사람 대체 왜 저러니?”“저야 모르죠.”남태준이 지팡이를 길게 빼서 길을 짚으며 몸을 돌려 떠났고 남창민이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내쉬며 허윤미의 팔을 잡아끌었다.“어서 가자고.”그렇게 온 가족이 함께 떠났다.산부인과를 나온 남하준이 류청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윤 씨 병실 어디야?”류청이 그에게 위치를 알려줬고 2분 후 남
류청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앞으로 너 무슨 불만이나, 원하지 않는 거 싫어하는 거 있으면 솔직히 말해줘. 아니면 좋아하는 거나 원하는 거 다 얘기해줘.”지윤이 움찔하더니 긴장해서 입안에 있는 사과를 삼켰고 심장이 좀 빨리 뛰는 것 같았다.“그걸... 왜?”“남자들은 보통 직설적이어서 여자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거든.”류청이 진지한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다.“많은 공을 들여 여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연구하는 남자는 대부분 선수야.”지윤이 얼굴이 붉어지며 긴장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걸 왜 너한테 말해야 하는데?”류청이 다급해서 말했다.“네가 말해야 내가 해주지!”지윤의 안색이 더욱 긴장되었다.“네가 왜 해줘?”류청이 움찔하더니 눈빛이 더욱 뜨거워졌다.“왜냐하면... 난...”너를 좋아한다는 말이 류청의 목구멍에 돌처럼 박혀서 나오지 않았고 얼굴만 붉어지며 말하기가 부끄러웠다.거절당할까 봐 두려워서였다.그는 전에 누구를 좋아한 적도, 여자에게 대시한던 적도, 여자와 가까이 지낸 경험은 더더욱 없었다. 류청은 긴장감에 일어나 눈빛을 반짝이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지윤이 그의 말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류청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문밖을 보았는데 맞은편 벽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남하준을 보았다.“도련님?”류청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지윤이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았다.역시나 입구 맞은편 벽에 기대어 있는 남하준이 보였다.류청이 나가서 남하준에게 다가가 물었다.“왜 들어오지 않고 여기 서 계세요?”남하준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너 고백 끝나면 들어가려고.”류청은 민망한 듯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수줍게 귀를 붉혔다. “고백... 아니에요.”남하준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병실로 들어갔다.지윤은 그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지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도련님 오셨어요?”남하준이 침대 끝으로 가서 병상 난간에 두 손을 얹고 물었다.“몸은 좀 어때요?
류청이 그녀의 태도를 보며 의아해서 물었다.“너 왜 그래?”지윤은 또 코웃음을 치더니 불쾌하게 말했다.“내 앞에서 그 여자 얘기 꺼내지도 마. 재수 없고 역겨워.”류청이 지윤의 앞에 다가가 진지하게 물었다.“너 유 비서 싫어해?”계속 정안의 결혼을 망치고, 정안의 남편을 빼앗고 싶어 하는 여자를 그녀가 어떻게 싫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지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싫어하지. 엄청 싫어해!”류청이 조금 긴장한 듯 말했다.“사실 나도 유 비서 싫어해.”지윤이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남하준은 어린애 같은 지윤을 보고 또 순풍에 돛다는 류청을 바라보며 그가 정말 유미를 싫어하는지 아니면 단지 지윤의 환심을 사려는 건지 생각했다.류청의 말에 지윤은 마음이 편해지자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남하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도련님 생각에는 누가 언니를 죽이려 한 것 같으세요?”남하준이 되물었다.“완자가 죽으면 누구에게 가장 유리하죠?”지윤이 생각 없이 불쑥 말을 내뱉었다.“누구겠어요? 그 재수 없고 역겨운 여자밖에 더 있겠어요?”류청이 경악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유 비서가 사모님을 죽이려 했다고?”지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류청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말도 안 돼. 절대 불가능해. 유 비서가 아무리 도련님을 좋아해도 청부살인은 아니지.”지윤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쓰레기통에 처넣고 침대에서 내려오며 고함을 질렀다.“나가!”그녀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류청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지윤아. 난 그냥...”“듣기 싫으니까 나가라고.”지윤은 뒤돌아서서 꽃병 속의 꽃을 류청의 품에 던져 한 손으로 그의 몸을 밀며 나가며 말했다.“나가. 두 사람 모두 나가.”그렇게 남하준과 류청은 함께 병실에서 쫓겨났고 병실 문이 세게 닫혔다.류청은 자존심도 없이 꽃을 안고 돌아가 지윤을 달래려고 했지만 남하준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상사에게 자신이 뻔뻔하게 여자에게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민망했다.그의 근엄하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