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설비가 갖춰진 초호화 지하실이 눈에 들어왔다.2미터짜리 침대에 회색 침구 시트가 덮여 있었고 바가 있었는데 그 위에 눈을 사로잡는 술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고 음향기기, 스크린, 책과 기타 생필품이 골고루 갖춰져 있었다.병사들이 한 바퀴 뒤졌지만 사람을 찾지 못했다.남하준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의심스러운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여기에 분명 누군가 살고 있을 것이지만 정안의 실종된 가족은 아니었다.류청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이것 좀 보세요.”남하준이 뒤돌아보니 류청이 손에 메스를 들고 있었다.“어디서 났어?”“서랍에서요.”남하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말했다.“백인호야.”“그럼 지난 반년 동안 계속 이 집에 숨어 있었다는 거예요?”“백인호와 정호 모두 여기에 숨어 있었어.”남하준이 확신에 차서 말하자 류청은 이해되지 않는 듯 물었다.“그럼 지금은 어디 숨었죠?”남하준이 몇 초간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한이서 오빠를 만나야겠어.”한 무리의 사람들이 비밀 통로의 방을 나와 거실로 왔다.이때, 한이서가 통통한 남자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남자는 통통한 얼굴에 통통한 몸매, 어색한 이목구비와 서늘한 눈빛을 지녔다.남하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를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자가 남하준 앞으로 다가가서 예의 바르게 손을 뻗었고 쉰 목소리는 상처를 입은 듯 이상했다.“안녕하세요, 한이서 오빠 한서진입니다.”남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악수도 하지 않았으며 안색이 점점 나빠졌고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류청은 한서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곧 한서진은 천천히 손을 거두며 어색하게 웃었다.“제 여동생 집에서 뭘 찾으려고 이렇게 오래 찾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제 여동생이 법을 어겼나요?”남하준은 여전히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차갑게 명령했다.“철수해.”류청은 별생각 없이 즉시 병사들에게 철수하라고 했다.남하준은 한이
이른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비쳐들었다.정안은 잠결에 누군가 방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갑자기 들이닥친 여자를 보았다.유미가 침대 위의 정안을 보자 당황하더니 안색이 어두워지며 차갑게 말했다.“왜 하준이 방에서 자요?”정안은 주먹을 천천히 쥐며 이른 아침 유미의 출현으로 마음이 초조하고 우울했다.유미가 남하준 방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니.정안이 불쾌해서 말했다.“여긴 내 남편 방이에요. 왜 자면 안 되는 거죠?”유미는 얼굴이 잿빛이 되어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젖은 수건을 들고나와 의자와 캐비닛을 닦기 시작했다.정안이 이해 안 되는 얼굴로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유미는 코웃음을 치더니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사람이 청소할 줄 모르면 뭐가 청소인지 보고도 모르나?”정안은 심호흡을 하고 화가 잔뜩 나 조여오는 배를 움켜쥐고 좋은 말투로 말했다.“왜 내 남편 방을 청소하냐고 묻고 있는 거잖아요?”유미가 몸을 똑바로 세우고 기고만장하게 정안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난 하준이 비서예요. 지난 반년 동안 하준이 생활과 일을 세심하게 챙겼고 아주 잘 돌봤어요. 그쪽과는 달리.”정안은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내가 왜요?”유미는 시큰둥하게 말했다.“하준이에게 폐를 끼치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뭐에요? 하준이를 위해 요리를 해준 적 있어요? 아니면 옷을 한 번 개어 준 적이 있어요? 물 한 잔이라도 따라준 적은 있나? 일적으로 돕지 못하면서 생활 방면으로도 하준이를 돌볼 수 없잖아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질투나 하고, 나와 하준이의 순수한 우정을 이간질하잖아요!”정안은 배가 간간이 아픈 것 같아 어금니를 꽉 깨물며 심호흡했다.어려서부터 집안과 국가가 그녀에게 주는 교육은 현모양처형이 아니며, 모든 사람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빛을 발해야 한다는 교육이었다.정안은 마음을 가다듬고 되물었다.“난 하준 오빠 아내이지 도우미가 아니에요. 근데
그녀가 남하준에게 잘 못 한다고?정안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그녀는 남하준을 위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위험을 무릅쓰고 블랙 섀도우 본부에 들어가 그를 구했다.그녀는 남하준을 위해 임신을 대가로 Z국을 포기하고 Z국의 과학 연구 사업을 포기하고 M국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하고 있었다.그녀는 이미 자신의 가장 중요한 생명과 사업을 모두 남하준에게 맡겼고, 뱃속에 그의 아기를 품고 있는데도 그에게 잘하지 못한다고 하면 꼭 가정부처럼 그를 모셔야만 하는 걸까?정안은 자신과 유미의 세계관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고 유미를 이해하지 못했다.유미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정안은 유미를 쫓아낼 수 없었고 그녀가 계속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니 짜증이 몰려왔다. 그녀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일어나 외투, 신발, 양말을 신고 휴대폰을 들고 나갈 준비를 했다.그녀가 몇 걸음 걷자 유미가 뒤에서 말했다.“일어났으면 이불부터 정리해야지 왜 이렇게 게을러요?”정안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아픈 배를 움켜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유미 때문에 화가 나서 유산을 하게 될 것이다.정안은 유미를 등지고 덤덤하게 말했다.“이불 정리하는 일은 원래 오빠가 해요. 오빠가 없으면 지윤이가 하고. 오빠와 지윤이가 모두 없으니 유 비서가 하세요 그럼. 어차피 유 비서 일이 다른 사람 시중드는 거잖아요. 내가 유 비서 일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그쪽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어요?”유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를 갈며 물었다.“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말 그대로예요.”정안은 한마디 내뱉고 성큼성큼 떠나갔다.남하준은 지금 임무 수행 중이었다. 정안은 자신과 유미의 모순 때문에 남하준을 심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설령 말한다고 해도 남하준은 유미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을 테니 오히려 고민만 늘어놓을 것 같았다.며칠 후.정안은 지윤을 통해 유미가 그룹의 일을 처리하고 안성으로 돌아가 남하준의 일을 돌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진작 눈치챘지만 짐짓 모른 척 계속 설명했다.“지윤아, 나 오늘날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건 단지 타고난 IQ에만 의존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건 노력이었어.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져. 더 많이 배우고 더 잘하려면 시간과 개인적인 일을 희생하면서 전심전력으로 열심히 연구해야 해.”“한두 시간 수다로 그리움이 전혀 해결되지도 않는데 뭐하러 시간을 허비해?”지윤이 웃으며 물었다.“그러니까 도련님은 언니가 독하다고 생각하죠. 10년 전에 도련님을 차단하고 모든 연락을 끊었잖아요.”정안은 손을 뻗어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띔했다.“사랑은 삶의 전부가 아니야. 상대를 깊이 사랑하더라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잘 판단하고 잘 따져봐야 해.”“그럼 도련님은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정안이 쑥스럽게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하더니 말했다.“아직은 가치가 있지.”지윤이 또 물었다.“언니, 유 비서가 편집증 환자처럼 도련님께 잘해주고 있는데 설마 도련님 마음 변하는 건 아니겠죠?”정안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씁쓸해지더니 부드럽게 말했다.“가서 네 할 일이나 해. 나 방해하지 말고.”“좋아요.”지윤은 대답하고 소파로 돌아가 휴대전화를 꺼내 게임을 했다.정안은 착잡한 마음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잠시 쳐다보며 방금 지윤이 한 말이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남하준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채팅 페이지를 열었다.어제 남하준이 음성 몇 개를 보냈는데 마침 바빠서 못 들었고 그녀가 확인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그녀는 남하준의 휴식을 방해할까 봐 답장하지 않았고 오늘도 여전히 답장하지 않았다.그녀가 좀 더 주동적이어야 하는 건 아닐까?정안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국 답장하지 않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계속 일에 몰두했다.잠시 후 휴대폰 벨이 울렸다.열심히 서류를 보던 정안이 천천히 손을 뻗은 뒤 휴대전화를 들고 와 화면을 힐끗 쳐다보니 낯선
“사실 지우는 아주 여성스러운 여자예요. 단지 오빠를 슬럼프에서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용맹하고 얄미운 여자로 만들어 오빠를 자극했을 뿐이죠. 지우가 얼마나 마음이 여리고 또 귀여운 사람인데요.”“지우 아버지가 전에 암에 걸렸었어요. 지우 혼자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아버지 병 치료를 해주느라 많은 빚을 졌어요. 어떻게든 아버지를 구하려고 끝까지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세상을 떠나셨어요. 결국 지우는 엄청난 빚을 떠안았지만 여전히 꿋꿋하고 낙관적인 마인드를 유지하고 있어요.”“오빠도 어차피 지금 혼자잖아요. 지우...”정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태준이 말을 끊었다.“난 자격 없어.”정안이 경악했다.“네?”“나 같은 장님이 어떻게 그런 좋은 여자를 욕심내겠어?”“오빠. 지우도 오빠랑 똑같은 말 했어요. 두 사람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요? 서로 마음 터놓고 한번 시도해봐요.”남태준이 덤덤하게 웃더니 말했다.“착한 애야. 완곡하게 거절한 거잖아. 모르겠어?”지우의 완곡한 거절이었을까?정안도 분간할 수 없었다.결국 남녀 간의 감정은 사람이 물을 마시고 추위와 온기를 스스로 아는 것과 같다.정안이 어쩔 수 없어 하며 물었다.“그래서 진짜 지우 안 찾을 거예요? 만약 맞선에 성공하면 다른 남자와 결혼할 텐데? 두 사람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조금도 없어요?”남태준이 말머리를 돌려 무거운 어조로 물었다.“백인호 소식은 아직 없는 거야?”정안이 경악했다.“왜 갑자기 백인호를 물어요?”“개두술을 부탁하고 싶어. 만분의 일 확률이라도 시도해보고 싶어.”“오빠. 너무 위험해요. 그 인간은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예요. 사람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인간에게 수술을 맡기겠다니요! 게다가 그 수술 너무 위험하잖아요. 백인호가 오빠를 죽이지 않더라도 수술대에서 죽거나 평생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완자야. 나 이미 결정했으니까 설득하지 마. 넌 백인호가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
날씨가 점점 따뜻해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또 다음 정기검진 시간이 되었다.정안은 앞으로의 모든 정기검진은 그에게 말해야 한다고 했던 남하준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아직 안성에 있었고 중요한 임무를 처리 중이었다.그의 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정안은 지윤과 함께 그룹의 직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태아가 이미 7개월이 넘었고 의사는 그녀에게 안성으로 돌아가 출산하라고 권했다.직원 병원의 산부인과는 시설이 완벽하지 않았고 신생아실도 없었다.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남하준이 보고 싶어 정안은 그룹에 출산 휴가를 신청하고 지윤과 함께 몰래 안성으로 돌아갔다.남하준에게 서프라이즈를 주고 싶은 마음에 미리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비행기에서 내려서부터 지윤은 위험을 감지했다. 자꾸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이었고 집에 가는 길에도 뒤에 미스터리 차량이 계속 미행하고 있었다.“언니. 아무래도 이상해요. 우리 미행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도련님께 알릴까요?정안이 긴장된 표정으로 백미러를 바라보며 몇 초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안성이 위험한 거야?”“그런 것 같아요.”지윤이 예리한 관찰력으로 확신에 차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안성에 오신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계속 그룹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잖아요. 분명 까다로운 일을 처리하고 있을 거예요.”“그럼 알려야지.”정안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안전이 최우선이야.”지윤이 대답했다.“맞아요.”곧바로 전화가 연결되고 남하준의 살짝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완아.”정안이 이번 달에 처음으로 먼저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오빠 나 지금 지윤이랑 안성에 왔어요.”남하준이 긴장하며 물었다.“왜 돌아왔어? 지금 어디야?”“차 타고 금원으로 가는 중이에요. 의사가 나 안성에서 아기 낳으라고 했어요. 직원 병원에 신생아과가 없다고요.”“언제 집에 도착해?”“지윤이가 우리 지금 미행당하고 있대요.”남하준의 말투가 더 긴장해졌다.“위치 보내. 내가 사람 보낼게.
지윤이 차에서 내려 짐을 챙기려는데 류청이 그녀 앞으로 다가와 활짝 웃으며 말했다.“내가 할게.”지윤이 반응하고 그를 보자 류청은 이가 다 보일 정도로 활짝 웃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한없이 밝은 모습이었다.“왜 그렇게 신났어?”지윤이 묻자 류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반달 눈이 되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때때로 지윤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복권이라도 당첨됐어?”지윤이 경악하더니 물었다.“설마 1등?”류청이 웃으며 답했다.“아니. 나 복권 안 사.”“근데 왜 이렇게 기뻐해?”류청은 즉시 미소를 거두고 입을 오므리더니 다시 흰 이를 드러냈다.“내가 기뻐했어?”“응. 복권에 당첨됐거나, 돈을 주웠거나 아니면 곧 신부와 합방을 앞둔 새신랑 모습인데?”류청은 캐리어를 끌다가 움찔하더니 지윤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고 어색하게 중얼거렸다.“나 신부 없어.”그는 캐리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고 지윤이 그 뒤를 따랐다.“도련님도 왔는데 왜 그 여자는 안 보여?”“어느 여자?”류청이 의문스러워 묻자 지윤이 차갑게 말했다.“유 비서 말이야.”“임무 수행하러 갔어.”“어떤 임무?”“기밀이야. 말할 수 없어.”유미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류청을 노려보다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그와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집에 돌아왔을 때 이미 저녁 무렵이었고, 정안이 남하준에게 돌아온다는 말을 미리 하지 않아 저녁 식사를 준비하지 못했다.정안과 뱃속의 아기가 배고플까 봐 걱정한 남하준은 직접 계란 국수 4인분을 만들었다.식탁에서 류청은 활짝 웃으며 감개무량한 투로 말했다.“사모님 덕분에 제가 도련님이 직접 만든 국수를 먹어보네요.”정안은 입술을 가볍게 오므리고 방금 자리에 앉은 남하준을 힐끗 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예쁜 미소가 가득하고 눈가에는 온화함이 가득했다.“식기 전에 얼른 먹어.”남하준은 정안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냄비 안에 더 있으니까 먹고 더
남하준은 유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서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인터넷을 찾아보려고 했다.정안이 그의 휴대전화를 뺏어오며 말했다.“보지 마요. 인터넷엔 모두 겁주는 것밖에 없어요. 별로 큰 문제 아니에요.”남하준은 가슴이 아파 팔을 오므리고 그녀의 머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난 유능한 남편도 아니고 유능한 아버지는 더더욱 아니야. 이번에 또 너 정기검진 놓쳤어.”정안이 부드럽게 속삭였다.“괜찮아요. 어쩔 수 없었잖아요.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는 날엔 반드시 내 곁에 있어 줘요.”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입술에 대고 가볍게 키스했다.“너랑 아기 꼭 지켜줄 거야.”정안이 다시 한번 강조했다.“약속했어요. 아무리 바빠도 우리 아이를 제일 먼저 본 사람이 오빠였으면 좋겠어요. 나도 분만실에서 나와 제일 먼저 오빠 얼굴 보고 싶어요.”“약속할게. 무슨 일이 있든 네가 출산하는 날엔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네 곁을 지킬게.”정안은 행복에 겨워 눈을 감고 웃으며 그의 따뜻한 품에 안겼다.남하준은 부드러운 그녀의 몸을 더 꽉 끌어안았다.그때 갑자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정안이 남하준의 휴대전화를 들어보니 발신자 정보가 유미라고 떴다.순간 정안은 모든 행복이 시들해진 기분으로 남하준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남하준은 휴대전화를 받고 정안을 밀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완아. 나 전화 좀 받고 올게.”정안은 움직이지 않고 불쾌한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내가 못 들을 게 뭐 있어요? 여기서 받아요. 스피커폰으로.”남하준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스피커폰으로 연결했다.그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저쪽에서 유미의 당황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준아... 살려... 나 좀 살려줘...”남하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온몸이 굳어졌다.정안은 구조 요청 소리를 듣고 즉시 일어나 남하준에게 길을 비켰다.남하준은 일어나서 다급하게 물었다.“무슨 상황이야? 지금 어디야?”이때 류청도 황급히 뛰어나와 긴장된 표정으로 남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