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은 휴대전화를 들고 앞으로 나가며 명령했다.“따라오지 마.”유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왜 그렇게 서둘러? 또 지윤 씨는 왜 찾아?”남하준이 뒤돌아보며 나지막이 쏘아붙였다.“따라오지 마.”유미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하게 말했다.“너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얘 데려가.”남하준이 류청을 가리키며 말하자 류청이 즉시 앞으로 가서 유미의 손을 잡고 뒤로 물러섰다.유미가 몸부림치려 고함을 질렀다.“뭐 하는 거야? 하준이 지금 급해 하는 거 못 봤어? 분명 무슨 일 생겼다고. 내가 가서 해결해야 해.”류청이 어쩔 수 없어 하며 말했다.“도련님은 지금 그쪽 친구가 아니라 상급자예요. 사적인 일에 간섭하지 마세요.”유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멀리서 전화하는 남하준을 바라보며 긴장해서 물었다.“사적인 일?”“지윤이를 찾는 건 분명 사적인 일 때문이겠죠. 설마 업무적인 일로 찾겠어요?”“그렇다면 내가 더욱 도와야지.”류청이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의 팔을 잡고 놓지 않았다.“제발... 좀 그만 하세요. 도련님 걱정하는 것도 알고 좋아하는 것도 알겠는데 어떤 일은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면 안 돼요.”유미는 화가 나서 이가 근질근질했고 남하준을 가리키며 말했다.“지윤 씨를 찾는 건 분명 백완자 때문일 거야. 그 여자는 이미 떠난 지 반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하준이 곁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녀?”류청은 침묵했다.강한 소유욕과 편집증을 보이는 유미를 보며 어쩔 수 없었다.만약 남하준과 유미가 서로 사랑했다면 남하준은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이렇게 그를 사랑하는 여자가 곁에 있으니 아마 매일매일을 평안하게 보냈을 것이다.전화 연결음이 울리고 남하준의 심장은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지윤은 전화를 받자마자 쏘아댔다.“이 사람아. 나 지금 운전 중이야. 어지간한 일은 음성으로 보낼 수 없어?”남하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나 남하준이에요.”지윤은 순간 당황했다.“죄... 죄
“아니. 난 안 변했어. 그대로야.”정안은 무신경한 태도를 보였다.“그래요?”남하준은 심호흡을 하고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을 참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어디야? 내가 갈게. 얘기 좀 해.”정안은 여전히 흐트러짐 없이 평온했다.“내일 변경으로 떠나는 데다 지금 본가에 가서 태준 오빠랑 지우 보러 가야 해요. 남 장군님이랑 만날 시간 없어요.”남하준이 싸늘하게 웃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또 남태준.그녀가 영원히 잊지 못하는 남자는 항상 그의 넷째 형 남태준이었다.“그래.”남하준은 괴로워 숨을 못 쉬고 입으로 입김을 내쉬며 여전히 다정하게 말했다.“너 시간 날 때 만나자.”“그럼 이만 끊을게요.”정안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남하준은 손을 천천히 내리고 발끝에 쌓인 눈을 내려다보았다.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풀이 죽어 고목 아래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그의 심장이 날씨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남하준의 통화가 끝나자 유미가 지체 없이 그에게 달려갔다. “하준아! 대체 무슨 일이야?”...같은 시각, 차 안.전화를 끊은 정안은 시들어가는 꽃처럼 차창가에 맥없이 기대어 눈시울이 촉촉하고 눈동자에는 빛이 없었다.그들의 통화를 들은 지윤이 궁금해서 물었다.“왜 도련님 안 만나요?”정안이 눈을 감고 무기력하게 말했다.“내일 그룹에 가서 입사할 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만나는 게 좋아. 아니면 괜히 시끄러워질지도 몰라.”“뭐가 두려운 거예요? 제가 있잖아요.”정안은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너처럼 대단한 무술 실력이 없는 내가 배 속의 아기를 잘 보호하려면 유일한 방법은 아무런 사건사고에도 휘말리지 않는 거야.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선 안 돼. 내 맘 알겠어?”지윤이 그녀의 뜻을 깨닫고 긴장하며 물었다.“유미 만났어요?”정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목이 메어 한마디만 더 하면 울컥할 것 같았다.그녀는 유미를 만났다.그 여자는 남하준의 앞에 서서 그의 머리와 어깨의 눈송이를 부드럽
지윤은 이해가 가지 않아 오래 참았지만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언니 지금 도련님 아이도 임신했고 도련님도 아직 언니에게 미련이 남았는데 왜 쟁취하지 않는 거예요?”“언니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도련님은 바로 넘어올 거예요.”정안은 진지한 얼굴로 지윤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하준 오빠는 유미가 자기 좋아하는 거 알아.”“그게 왜요?”정안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지윤의 둔한 머리를 두드렸다.“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일한다는 건,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예비 여자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잖아.”지윤은 어느 정도 알아들은 셈이었다.유미가 남하준의 곁에 있는 한 정안은 그 혼잡한 물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언니 앞으로 그룹에서 일하게 되면 도련님과 자주 마주칠 거고 계속 피할 수만은 없어요. 그리고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어떻게 숨길래요?”정안은 불룩한 아랫배를 만지작거리며 긴 한숨을 내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비행기가 착륙한 후 정안은 지윤과 함께 택시를 타고 군전 그룹으로 갔다.두 사람은 아무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행동했고, 출입문 경비원에게 증명서를 제출하고, 신원 정보를 입력하고, 지문 등을 확인했다.마지막으로 보안 검사를 통과하고 군전 그룹에 들어갔다.정안은 많이 와봐서 이곳에 익숙했다.그녀는 일부러 남하준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기숙사 아파트를 골라 입주했다.지윤이 짐을 챙겨주고 방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자 정안이 책을 내려놓고 문을 열러 갔다.“지윤아 나 신경 쓰지 마. 남은 건 내가 정리...”문이 반쯤 열리고 말도 다 하지 못했는데 정안은 문 앞에 있는 남자를 보자마자 굳어버렸다.남하준이 벌써 그녀가 온 걸 알았을까?정안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지만 짐짓 덤덤하게 물었다.“도련님, 무슨 일이시죠?”남하준은 그
남하준이 소파에 앉았고 정안이 옆 의자를 그의 맞은편으로 끌어당겨 앉았다.두 사람은 유리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지만 정안의 잔잔한 물결 같은 태도로 인해 간극이 벌어졌다.남하준이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 돌아왔어?”정안은 움찔하더니 말했다.“우리 집안일에 대해 얘기한다면서요?”남하준이 불쾌해하며 물었다.“그러니까 지금 우리 관계는 이렇게 간단한 안부 인사조차 할 수 없다는 거야?”정안은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으로 외투의 단추를 만지며 침묵을 지켰다.남하준은 그녀의 눈매가 처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은근히 마음이 아팠지만 더 이상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바꾸었다.“한이서가 네 할아버지의 모든 사업을 인수한 후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가총액이 10조 원 이상 증가했어. 지난 반년 동안 한이서는 기업과 자산을 차근차근 해외로 이전했어.”“대부분 산업을 해외로 이전했지만, 그 자산들은 아직 한이서 명의로 되어 있지 않아 네 할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시면 전부 네 할아버지 소유로 돌아갈 거야.”“자산은 일단 통제 가능한 범위에 있어.”“그동안 백인호는 인간 세상에서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어. 그래서 네 가족 소식도 전혀 없고.”말을 마친 남하준은 조용히 정안을 지켜보며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정안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얼굴색은 어두웠고 외투의 단추는 거의 헐렁해졌다.남하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마음이 초조했다.“내가 계속 추적하고...”남하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안이 끼어들어 그의 이전 질문에 답했다.“나 돌아온 지 일주일 됐어요.”남하준은 움찔하더니 그대로 굳어졌다.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그녀가 마침내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 기뻤지만 또 그녀가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아 슬펐다.정안은 마음이 무거웠지만 애써 평온한 척 고개를 들어 남하준을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웃음을 지
“그 여자가 누구를 좋아하든 그건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 여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난 몰라.”“하지만 분명 내 마음을 알면서도 자꾸 들리는 헛소문만 믿고 내가 다른 여자와 잘 어울린다며 내 상처를 짓밟고 있어.”남하준은 불쾌한 감정을 단숨에 쏟아낸 뒤 한마디 더 보탰다.“내가 본 최악의 여자야.”말을 마친 그는 일어나서 굳은 얼굴로 문 쪽으로 걸어갔다.정안은 그의 꾸지람을 듣고 나니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서러운 마음이 풀렸다.적어도, 그는 유미와 사귀고 있지 않았다.그런데 그녀가 정말 나쁜 것일까?아니면 남하준이 선을 지키지 못하는 걸까?정안이 몸을 돌려 급히 물었다.“어디 가요?”남하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문고리를 잡은 손도 멈춰 2초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군무기 팀 회의가 있어.”말을 마친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정안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남하준이 떠나는 뒷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배를 만졌고 마음이 쓰라렸다.‘아가야, 네 아빠는 여전히 우리 거인가 봐. 아빠에게 네 존재를 알려야 할까? 만약 알려주면 유미 이모도 알게 될 텐데... 애초에 백하린처럼 독하게 나와 우리를 괴롭힐까 봐 걱정이야.’정안은 아기가 뱃속에서 두 번 걷어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온화하고 자상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배를 문지르며 속삭였다.“착하지. 널 위해서라도 엄마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거야. 일단 조용히 지켜보자. 응?”아기가 또 두 번 움직였고 정안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이튿날 아침.정안은 서류를 챙겨 입사하러 그룹 본사에 왔고 지윤이 그 뒤를 따랐다.건물 1층 로비에 막 발을 들여놓았는데 공교롭게도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유미를 만났다.정안을 보는 순간 유미는 마치 혈 자리가 눌린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얼굴빛이 흐려지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정안이 대범하게 걸어 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유 비서님.”유미는 화를 억누르고 입을
지윤이 곧바로 반응하고 사과했다.“미안해요, 언니. 다음부터 주의할게요.”정안의 배가 크지 않은 데다 두꺼운 코트 안에 숨겨져 있어 지윤은 그녀의 임신 사실을 잊기 쉽상이었다.정안이 나지막이 말했다.“반드시 화목하게 지내야 해.”“알겠어요.”입사 절차는 순조롭게 끝났다.지윤은 군전 그룹에 근무하지 않고 정안의 개인 비서로 전향해 급여도 정안 개인이 지급했다.과학 연구부서에서 정안은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교수들을 만났다.유주헌, 하영진과 같은 나이든 과학자들은 일찍이 정안의 실력을 직접 본 적이 있어 정안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 마치 최고의 보물을 얻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그러나 해외파 연구원들은 젊고 예쁜 외모와 연약한 모습을 가진 젊은 여성을 보고 또 낙하산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무시했다.모두가 정안을 둘러싸고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새로운 2팀의 팀장 류강우가 보다 못해 정안을 사무실로 불러 그녀에게 자료 뭉치를 던져주었다.“백완자 씨라고 했죠?”류강우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앞으로 016 프로젝트 맡아서 진행하세요. 거기 있는 핵연료를 분석하면 돼요.”정안이 자료를 집어 들고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라듐 원료에는 방사선이 있었다.비록 연구 수치가 작고 방사선 방호복을 입어 안전성이 높았지만 임산부에게는 너무 위험했다.그녀는 견딜 수 있지만 아기는 견딜 수 없었다.정안이 완곡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팀장님. 이 프로젝트는 제가 맡을 수 없으니 바꿔주세요.”류강우는 신입사원이 출근 첫날부터 상사에게 기세등등하게 위세를 부릴 줄은 정말 몰랐다.그는 노기를 띠며 물었다.“프로젝트는 못 바꿔요. 그럼 팀을 바꾸든지. 가서 1팀에 불어봐요. 그쪽 같은 신입사원 받는지.”“전 어딜 가든 다 괜찮아요.”정안이 덤덤하게 말하자 류강우가 코웃음을 쳤다.“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1팀이 그쪽이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줄 알아요?”정안이 심호흡을 하고 화를 참으며
남하준의 시선이 천천히 감으로 향했다.밝은 주황색의 감은 크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하나 같이 아주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었다.남하준이 그녀를 수상쩍게 바라보며 물었다.“네가 땄어?”“네. 가지 하나가 아래로 늘어 뜰어져서 땄어요.”남하준은 가슴이 뭉클했지만 정안의 상투적인 수법을 생각하니 순식간에 감동이 사라졌다.“말해봐. 내가 뭘 도와줄까?”남하준은 그녀가 이유 없이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언제나 그녀에게 백기를 들고 도와줄 수밖에 없는 그였다.정안은 생글생글 웃으며 남하준에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나 1팀에 가고 싶어요.”남하준의 눈빛이 흐려지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안 돼. 1팀은 전부 최전선에 있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 프로젝트가 어렵고 주기도 길고 스트레스도 많고 위험해. 넌 2팀에서 네가 잘하는 분야를 열심히 하면 돼. 게다가 2팀에 있는 몇몇 교수들과 전에 몇 번 일했으니 그분들도 너 좋아하실 거야.”정안은 순간 막막해졌다.1팀은 최전선 업무를 책임지고 있었다니.만약 2팀이 곡식을 쫓는 맷돌이라면 1팀은 그 맷돌을 끄는 당나귀였다.그에 비하면 2팀 팀장이 그리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남하준은 그녀가 오랫동안 사색에 잠겨 깨어나지 못하는 걸 보고 호기심에 물었다.“왜? 2팀이 싫어?”정안은 곧 정신을 차리고 급히 웃어 보였다.“아니요. 2팀 좋죠. 괜찮아요. 그럼 일 보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두 손으로 바구니를 들고 떠나려 했다.눈치 빠른 남하준이 바구니의 한쪽을 잡더니 다급하게 물었다.“왜 이래?”정안이 진지하게 답했다.“돌아가야죠!”남하준은 피식 웃더니 따뜻한 눈동자에 어이 없는 기색이 스치며 물었다.“이런 경우가 어딨어? 방금 준 선물을 도로 가져가?”정안이 기억하는 남하준은 감을 좋아하지 않았다.다만 그녀는 방금 그를 만날 마땅한 핑계를 찾지 못했고, 추운 날 위험을 무릅쓰고 과일을 사러 나가고 싶지 않아 직접 감을 몇 개 따왔다.이 감은 원래
남하준은 정안에게 외투를 잘 여며주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그의 싸늘한 눈빛은 노기를 띠고 약간의 의혹이 섞여 있었다.마치 유미에게 이게 지금 무슨 태도냐고 묻는 것 같았다.유미는 자신의 당돌함과 추태를 의식한 듯 방금의 기세를 꺾고 남하준 앞으로 다가갔다.“하준아, 너 야근한다며? 내가 너 저녁밥 챙겨왔어.”유미의 시선이 천천히 정안에게로 옮겨졌고 가식적인 미소는 매우 온화했다.“완자 씨도 계신 줄 모르고 따로 준비하지 못했네요. 미안해요.”정안에게 지금은 특수 상황이었다. 최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누구의 미움도 받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하고 그저 평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했다.“괜찮아요. 저 돌아가 먹으면 돼요.”정안은 웃으며 말하더니 외투 단추를 풀고 남하준이 말리기도 전에 옷을 벗어 남하준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번거롭게 바래다주지 않으셔도 돼요.”남하준의 안색이 가라앉고 침울해졌다.“두 분 식사하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정안은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가슴이 아릿아릿하면서도 애써 괜찮은 척 말했다.그녀는 유미에게 예의를 갖추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남하준이 따라가고 싶어 하자 유미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어디 가려고?”남하준이 차가운 얼굴로 그녀의 손을 홱 뿌리치고 성큼성큼 뒤쫓아갔지만 한 발짝 느려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그가 힘껏 문 열기 버튼을 눌렀지만 문은 조금의 기척도 없었다.초조해 난 그는 몇 번이나 화를 내며 버튼을 누르다가 재빨리 비상계단으로 성큼성큼 뛰어 내려갔다.정안은 1층 로비 유리문 앞에 서서 지윤을 기다리며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목을 움츠린 채 어두컴컴한 바깥 하늘을 바라보았다.길가의 따스한 노란색 불빛에 흩날리는 눈송이가 천천히 떨어져 쓸쓸하고 처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녀는 몸도 춥고 마음도 추웠다.임신 중에 울지 말고 최대한 유쾌한 기분을 유지해 아기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웠다
유승아가 멀리 가자 남서연은 휴대전화를 들고 커피 두 잔 값을 내고 떠났다.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날짜를 보았다.백씨 가문이 계획한 유승아와 백건의 결혼식은 아직 20여 일 남았다.보아하니 유승아가 급했던 것 같다.남서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오빠에게 여자친구가 없는 이상 오빠만 나와 결혼하고 싶다면 난 아무 걱정 없이 사랑에 눈이 먼 여자가 될 수 있어. 그 누구의 방해도 소용없다고!’물론 유일하게 용납할 수 없는 건 남자의 배신이었다....저녁 무렵.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남서연은 남우영의 메시지를 받았다.[서연아, 삼촌 명령으로 오늘부터 내가 아니라 삼촌이 네 출퇴근을 책임질 거야.][하지만 건이 오빠는 나와 같은 방향이 아니잖아요.][길은 같은 방향이 아니지만 마음은 같은 방향이잖니?]남서연은 곧장 백건에게 전화를 걸었다.벨이 두 번 울리고 곧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연아.”“오빠, 나 출퇴근 도와줄 필요 없어요. 우영 오빠가 도와주는 게 훨씬 편하죠.”백건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우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해. 네 일도 바쁘고 나도 바쁜데...”남서연이 곧장 말을 끊었다.“오빠 시간은 소중하잖아요. 일부러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에게는 앞으로 평생의 시간이 있잖아요.”백건은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 정이 깊지 못하여 두 사람의 혼사에 또 변고가 생길까 봐 이렇게 긴장한 것이다.“서연아.”백건이 속삭였다.“네?”“어디야?”“사무실이요.”“우영이가 계속 네 출퇴근을 도와주라고 할게. 하지만 지금은 내가 너 보고 싶어.”남서연이 긴장되어 핸드폰을 보니 오후 5시였다. 그리고 사무실 전체를 둘러보았다.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고 결혼 사탕까지 받은 상황에서 만약 백건이 이 시간에 그녀를 찾는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들통날 것이다.“내려오지 말아요.”남서연은 부랴부랴 일어나 사무실을 나서서 엘리베이터 문으로 향했다.“내가 갈게요.
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유승아는 사탕을 집어 들고 한숨을 내쉬었다.“휴, 이건 모두 아주머니가 나를 위해 준비한 건데. 건이는 자기 편하려고 이걸 바로 네게 갖다 줬네.”남서연 얼굴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유승아는 뒤늦게 반응한 듯 미안한 척 말했다.“미안해, 서연아. 난 그냥 한 말인데. 기분 나쁜 건 아니지?”남서연은 웃음을 짜내어 고개를 가로저었다.“두 사람 백년해로하길 바랄게.”“고마워요.”유승아는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시며 테이블 위의 사탕을 흘끗 쳐다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오늘은 백건에 대해 얘기하려고 찾아 왔어.”“네. 말씀하세요.”“건이가 왜 너와 결혼하려는지 알아?”“아니요.”“건이가 말 안 해줬어?”“물어본 적 없어요.”“알고 싶지 않아?”남서연은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승아 언니, 나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당연하지. 말해봐.”“절대 내게 그 이유를 알려주지 마세요.”유승아는 멍해졌다.그녀가 밤새도록 생각한 도발적인 말들이 남서연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궁금하지 않아?”“너무 궁금하죠.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빠 입에서 직접 듣고 싶어요.”“건이가 널 속일까 봐 두렵지 않아?”“오빠가 나를 왜 속여요?”남서연이 되묻자 유승아는 기회를 잡고 서둘러 말했다.“왜냐하면...”“잠시만요.”남서연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맑고 순수한 눈동자로 웃으며 말했다.“난 그래도 오빠가 알려주는 버전을 듣고 싶어요. 나를 속인다고 해도 난 오빠만 믿을래요.”유승아는 차갑게 콧방귀를 꼈다.“사랑에 제대로 눈이 멀었네.”“그게 뭐 나쁜가요? 만약 두 사람 모두 제정신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죠.”유승아는 몸을 기울여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정말 건이가 너를 속일까 봐 두렵지 않아?”남서연도 똑같이 몸을 기울여 목소리를 낮추었다.“설마 오빠가 제 돈을 사기 치려고 해요?”유승아는 안색이 확 굳어졌고 남
2분간의 깊은 키스에 남서연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백건은 아쉬운 듯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떠났고 이마를 맞대고 있는 두 사람의 숨결이 거칠고 어지러웠다.방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남서연은 눈을 내리뜨고 수줍어서 남자의 따스한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나 갈게.”백건이 속삭이자 남서연의 목구멍에서 겨우 단음이 새어 나왔다.“네.”“시간 나면 자주 나 찾아와.”백건이 조곤조곤 말하자 남서연은 조금 멍해졌다.왜 그녀가 찾아가야 할까?“오빠가 나 찾으러 오면 안 돼요?”남서연이 나지막이 묻자 백건이 입술을 오므리고 엷게 웃었다.“안 될 건 없지. 하지만 너희 집에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 네 사무실에는 사람이 더 많고.”남서연은 그제야 남자의 뜻을 알아챘다.단둘이 만나자는 뜻이었다. 그의 사무실로 가든 아니면 그의 집으로 가든.남서연은 부드럽게 응답했다.“네.”백건은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문을 열고 나간 후 문을 닫아주었다.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몰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두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린 채 기분 좋게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끌어안고 한 바퀴 돌았다.그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었다. 백건은 그녀를 좋아한다는 의사를 보인 적도,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할까?‘너와 결혼하고 싶어 미치겠어’라는 백건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이튿날 아침.남서연은 사탕과 과자를 잔뜩 챙겨와서 사무실 동료들에게 나눠주었다.모두 그녀가 나눠준 사탕과 과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서연아, 너희 집 재벌이야? 이렇게 비싼 사탕을 회사 사람들에게 나눠줘?”“이건 사탕 계의 에르메스잖아. 한 알에 몇만 원이야. 그리고 이 견과류 초콜릿 비스킷은 작은 박스에 몇십만 원이야.”“그러게 말이야. 오늘 나눠준 것만 해도 몇백만 원은 되겠어.”남서연은 모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에 든 사탕을 보며 어리둥절했다.“우리 집
남씨 가문은 늘 남서연의 요구를 들어줬다.그녀가 이렇게 얘기하니 다들 웃으며 말했다.“그래. 두 사람이 알아서 해.”“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저씨, 아주머니. 감사드려요.”백건은 미간에 웃음을 머금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남서연은 남자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백건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부주의한 틈을 타서 가볍게 주물렀다.백건은 남씨 본가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너무 기뻐 집안 어른들과 술을 몇 잔 더 마시고 술자리에서 어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남서연은 방에 가서 씻고 쉬려고 했다.“술을 마셨으니 운전하지 말고 우리 집에서 묵고 가.”남창민이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말했다.백건이 승낙하려는데 허윤미가 그의 손을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당신 취한 거 아니에요? 건이는 운전기사와 함께 왔어요.”“그래. 내가 깜빡했네.”백건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저도 모르게 남서연의 방을 돌아보았다.술을 몇 잔 마신 남우영이 옆에서 보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삼촌, 서연이가 잠시 떠난 사이에 지금 몇 번째 보고 있는 거예요? 방에 돌아갔으니 다시 나오지 않을 거예요.”백건은 그렇게 호명되니 모든 어른들 앞에서 민망하여 어색하게 웃었다.이에 어른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백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의 바르게 말했다.“늦었으니 이만 가볼게요. 모두 일찍 쉬세요.”“내가 바래다주마.”남태준이 따라 일어서자 백건이 서둘러 말했다.“괜찮아요. 아저씨.”남태준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백건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설 때 참지 못하고 남서연의 방을 쳐다보았다.남태준이 그의 마음을 간파하고 물었다.“위에 올라가서 서연이랑 인사하고 갈래?”백건의 눈에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설렘이 스치더니 예의 바르게 말했다.“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잘 자라고 인사만 하고 내려올게요.”남태준은 손을 내저었다.“어서 가봐.”백건은 성큼성큼 부엌을 나와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