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난 평생 비행기 티켓 값도 없을 거야.”“티켓은 내가 사줄게. 숙식도 전부 무료.”정안이 말하자 지우가 고개를 저었다.“나 아직도 너한테 빚이 8천만 원이 넘어. 네가 떠난 후에도 계속 네 계좌로 분할 이체할 거야.”정안이 그녀의 손을 잡고 안쓰럽게 어루만졌다.“지우야, 진짜 안 갚아도 돼.”“돈을 빌렸으면 갚는 건 인지상정이야. 네가 갑부 손녀라 돈 많은 거 알아. 하지만 나 같은 가난뱅이가 너랑 평등하게 친구가 되려면 남은 건 이 보잘것없는 자존심뿐이야.”“난 그냥 네가 고생하는 게 싫어서 그래.”정안이 안쓰러워 탄식하자 지우가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보였다.“나 지금 엄청 좋아! 나 같은 전문계 고졸이 배진 그룹에 취직했다니! 평생 그렇게 많은 월급을 받을 거라 생각도 못 했어.”정안이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점점 더 좋아질 거야.”지우는 정안의 어깨에 기대어 따뜻한 우정을 만끽했다.“이번 생에 가장 큰 행운은 너 같은 친구를 만난 거야.”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가 놓아준 후 지우가 물었다.“몇 시 비행기야?”“내일 아침.”“내가 배웅할게.”“새벽 비행기야. 나올 필요 없어. 푹 쉬어. 도착하면 내가 연락할게. 나 출근하면 10개월 정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어. 너한테 다시 연락하면 나 휴가란 뜻이야.”“그래. 기다릴게.”정안은 지우를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했고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지우는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아직도 처리 못 한 일 있어?”정안이 미소 짓더니 갑자기 눈시울을 적시고 말했다.“지우야. 너 하준 오빠랑 친구 하면 안 될까?”지우가 잠시 놀라더니 경악해서 말했다.“그분은 M국 군전 그룹 수장이야. 난 일개 평민인데 어떻게 친구 할 자격이 있겠어?날 너무 과대평가하네.”“내가 전에 두 사람 소개해줬잖아. 그리고 연락처도 저장했고.”지우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대체 무슨 생각이야? 도련
지윤은 피식 웃었다.“언니는 내 생명의 은인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가족이에요.”한편 지우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지윤을 바라보며 천천히 정안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좋은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갑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고 굳이 Z국에서 일하고 있다.마음씨가 선량하여 남의 고난을 모른 척 하지 않고 지윤을 구해냈으며, 거액의 돈을 그녀에게 빌려줘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었다.게다가 수시로 라이브 그림 바자회를 열고 수익금을 전부 자선단체에 기부했다.이렇게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지우는 호기심이 발동했다.“완자야, 넌 인생에서 뭐가 가장 중요한데?”이 순간 정안의 머릿속에 남하준이 떠올랐다.하지만 지윤이 말을 가로챘다.“언니는 일이 가장 중요해요.”지우는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정말 궁금한데 완자 직업이 대체 뭐예요?”지윤은 가볍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정안이 말했다.“그저 평범한 기기 엔지니어야.”지우가 계속 물었다.“어떤 기기? 뭐 하는 사람인데?”정안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일 얘긴 그만하자. 심심해. 너 얘기 좀 해봐. 너...”그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고 지윤이 전화를 받더니 몇 마디 주고받았다.정안과 지우가 그녀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 지윤이 정안에게 핸드폰을 건넸다.“언니, 도련님 비서가 찾아요.”정안은 움찔하더니 긴장해서 물었다.“누구?”“류청 씨요.”정안은 남하준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떨리고 아쉬운 감정이 더욱 짙어졌다.그녀는 내일 Z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더 이상 영향받고 싶지 않았다.정안은 독한 마음으로 말했다.“나 다신 하준 오빠 안 만나다고 전해.”지윤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여전히 휴대폰을 건네며 무겁게 말했다.“그래도 한 번 들어봐요. 앞으로 후회하지 말고.”지윤의 눈빛과 안색이 너무 어둡고 무거워 정안은 덜컥 불안해졌다.그녀는 휴대폰을 받아 귀에 대고 부드럽게 물었다.“류청 씨, 무슨 일이세요?”“내일 M국 떠나는 거 알아요.
다음 날.정안이 류청을 찾아왔을 때, 그는 감옥에서 범인을 꺼내고 있었다.물어보니 블랙 섀도우는 M국 정부에 두 과학자와 백인호를 교환하겠다고 요청했다.과학자에 비해 백인호의 목숨은 전혀 언급할 가치가 없었다.감옥 입구에서 백인호는 수갑을 차고 머리에 검은 천을 덮고 병사에 의해 차에 호송되었다.정안이 류청을 잡고 긴장하며 물었다.“하준 오빠 소식 있어요?”류청이 고개를 저으며 걱정 가득한 눈으로 불안한 듯 입을 열었다.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엿새가 지났어요.”“설마 블랙 섀도우 사람들에게 납치된 건 아닐까요?”정안의 눈 밑에는 눈물이 고이고 긴장한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블랙 섀도우는 도련님을 잡았다고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과학자 두 명을 잡은 것만 인정하고 지금 백인호와 맞바꾸고 있어요.”“하준 오빠 어쩌다 실종된 거죠?”류청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애초에 파견된 병사들은 모두 블랙 섀도우에 의해 죽었어요. 도련님께서 다시 계획을 세워 직접 사람들을 데리고 두 과학자를 구하러 나섰고요. 동행한 십여 명 모두 소식이 없어요.”정안은 경악했다.“십여 명이요?”“네. 정호도 같이 갔어요.”정안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눈빛이 어두워졌다.“왜 겨우 십여 명이죠? 애초에 서다인이 친오빠에게 팔려 국경으로 갔을 때는 군대 전체를 이끌고 나 구하러 왔어요. 그리고 전투기도 있었고.”“상황이 달라요. 당시는 자기 구역에 있었잖아요. 하지만 블랙 섀도우는 세트리아에 있어요. 그러니 우리 군대를 해외로 파견할 수 없고 전투기가 상대의 영공에 들어가면 세트리아의 미사일에 의해 격추될 수 있어요.”정안은 그제야 깨닫고 진지하게 말했다.“류청 씨, 나 좀 도와줘요. 하준 오빠 구하러 가야겠어요.”“안 돼요. 절대 안 돼요.”류청이 긴장하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정안이 그를 쫓아가 가로막았다.“하준 오빠 구할 수 있게 해줘요.”류청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마를 짚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세트리아.군사력이 매우 강한 작은 나라이며 세계적으로 악랄하기로 소문나고 야심만만하고 포악한 나라였다.경제든 재물이든 자원이든 국토든 빼앗을 수 있는 건 조금도 놓치지 않았다.세트리아의 국경에는 파운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 위에 수천 명의 섬사람들이 살고 있었다.섬사람들은 다름 아닌 블랙 섀도우 조직이 중점적으로 양성하는 각국의 엘리트 간첩들이었다.아무리 민간조직의 어두운 세력이라지만 그 배후에는 세트리아 정부가 있었다.파운도의 일몰은 아주 아름다웠다.요트가 부두에 들어서자 총을 든 건장한 사내 둘이 정안을 부축하여 강기슭으로 올렸다.그리고 요트는 빠르게 떠났다.정안은 검은 안대로 쓰고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두 명의 건장한 사나이에 의해 끌려가고 있었다.모래사장을 지나 평평한 길을 걷고 버스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10분 동안 달렸다.정안의 안대를 벗겼을 때 그녀는 이미 넓고 큰 집에 서 있었다.세트리아 특색을 띤 아주 독특한 인테리어였다.그녀는 눈을 비비고 주위를 둘러보았다.총을 든 건장한 사나이 네 명이 방 네 구석을 지키며 그녀를 흉악하게 노려보고 있었다.그녀 앞에는 침대가 있었는데, 침대 위에는 약 60세의 정정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침대 위에는 낮은 탁자가 놓여 있고 테이블 위에는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다.노인은 정안을 힐끗 쳐다보고 나서 눈을 내리깔고 느긋하게 숨을 들이켜고는 육포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이 물건은 어디서 났나?”노인이 물었다.정안은 그들에게 0.1mg의 경분자를 주어 관심을 끌었고 그녀를 블랙 섀도우의 본부로 데려오게 했다.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차갑게 말했다.“남하준 만나러 왔어요. 그 사람 못 만나면 난 한마디도 할 수 없어요.”노인은 침착하고 유유자적하게 고기와 술을 먹으며 정안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그런 사람 몰라. 본 적도 없고.”“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정안은 살짝 고개를 들고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그녀의 모습에 노인이 코웃음을
노인은 머리를 쳐들고 크게 웃었다.그때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가 들어왔는데 그는 점잖고 우아한 눈빛으로 정안을 한참 동안 훑어보았다.그는 정안의 앞으로 다가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난 블랙 섀도우 부수령 우드다. 수령님 연세가 많으셔서 몸이 안 좋아. 할 말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해.”“난 남하준과 정안의 행방으로 교환하러 왔어. 만약 남하준을 풀어준다면 정안과 40g이 넘는 경분자의 행방을 알려주지.”우드가 가볍게 웃었다.“좋아.”격노한 수령이 술잔을 움켜쥐고 우드를 향해 세게 내리쳤고 우드가 재빨리 피했다.“이 정신 나간 놈. 감히 나 몰래 남하준을 잡아?”우드는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천천히 바닥의 술잔을 주워 침대 위의 낮은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수령님 나이가 많이 드셔서 몸도 안 좋으시잖아요? 이젠 겁도 많고 박력도 없으시니 진작 물러나야 했어요.”수령의 얼굴은 흉악하고 일그러져 있었고 불 같은 눈으로 이를 갈며 우드를 노려보았다.하지만 우드는 계속 침착하고 온화한 모습이었고 점잖고 유유한 태도를 보였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정안은 부수령이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냉혈한 사람은 감정을 숨기는 데 매우 능숙하며 결코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한참 후 수령이 격노하며 물었다.“남하준과 적을 치다니. 네 놈이 블랙 섀도우 전체를 죽이려고 작정했구나!”우드는 엷게 웃더니 말했다.“제가 죽은 사람을 두려워할 것 같으세요?”정안은 순간 당황해서 통제 불능이 되어 고함 질렀다.“하준 오빠한테 무슨 짓 했어?”정안의 고함에 놀란 우드는 몸을 홱 돌려 눈빛을 약간 흐렸다.“넌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담대한 여자야. 감히 홀몸으로 죽음의 굴로 들어오다니. 그렇다면 분명 손에 뭔가 있다는 거네?”정안은 눈이 붉어지고 눈물이 시야를 흐리며 또박또박 말했다.“하준 오빠 어딨어? 만나야겠어.”우드는 뒤에 있는 사람을 향해 말했다.“물감옥에 가서 데려와.”정안은 가슴이 찢어졌지
정안은 눈물 범벅이 된 채 우드를 향해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왜 죽였어? 대체 왜?”“죽이고 싶으면 죽이는 거지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정안은 울다가 웃기 시작했다.눈물이 그녀의 입가에 떨어지자 그녀는 쓴맛과 짠맛을 느꼈다.그녀는 바닥에 앉아 남하준의 어깨를 허벅지에 안은 채 그의 머리를 팔로 받치고 그의 차가운 뺨에 얼굴을 기댔다.그녀의 눈물이 남하준의 얼굴에 방울방울 떨어졌고 그녀는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았다.그저 조용히 남하준의 차가운 몸을 안고 몸을 벌벌 떨며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그녀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더니 목이 아파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하준 오빠 죽으면 아무도 경분자 못 찾을 줄 알아. 정안의 행방은 더더욱 못 알려줘. 나 죽여.”“정안은 대체 어디 있어?”화가 난 우드의 말투가 좀 사나워졌다.정안은 남하준을 꼭 끌어안고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끼게 되었다.너무 고통스러워 살아갈 용기조차 잃어버리고 세상 모든 것이 그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나 죽이라고.”정안은 흐느끼며 다시 한번 말했지만 이번에는 말투가 조금 무거웠다.우드가 다가가 정안의 옷깃을 홱 잡아당겨 일으켜 세우더니 차갑고 음산한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못 죽일 것 같아?”너무 울어 눈이 새빨개진 정안은 여전히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그를 자극했다.“죽이라고. 이 새끼야. 이 짐승만도 못한 개 같은 놈. 쓰레기. 너 오늘 나 못 죽이면 사람이 아니지.”우드는 순간 격노하여 즉시 총을 꺼내 정안의 머리를 겨누었다.정안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너무 편안하게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녀는 빨리 죽어서 남하준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저승길에서 그와 함께 부모님을 찾으러 갈 것이다.정안은 울먹이며 속삭였다.“미안해요. 오빠. 내가 늦었어요. 조금만 기다려요.”정안은 머리에서 총소리가 나기를 기다렸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빨리 총 한 발이 그녀를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비좁은 감옥 안.희미한 햇빛이 창문으로 비쳐 들어왔다.정안은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남하준의 손을 꼭 잡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햇빛이 그녀의 옆구리에 비쳐 따뜻함이 넘쳤다.서서히 눈을 뜬 남하준은 몸이 허약하고 힘이 없었고 낡고 검게 변한 천장을 보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씁쓸하게 입술을 찡그렸다.‘염라대왕전을 한 바퀴 돌고 왔는데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그가 약간 움직이니 누군가 손을 잡은 것을 느꼈고 힘껏 고개를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정안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꿈에서라도 그녀를 이렇게 위험한 곳으로 데려오고 싶지 않았다.그는 이것이 꿈이었으면 하고 긴장하며 움직였다.정안은 그의 기척에 깨어 고개를 들어 남하준을 보았을 때, 감격에 겨워 일어나 그의 이마를 만졌다. “오빠 깼어요? 드디어 깬 거예요?”남하준은 경악했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그는 정안의 손목을 잡고 화를 냈다.“네가 왜 여기 있어?”정안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다정하게 되물었다.“이틀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어디 아픈 곳 없어요?”남하준은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 몸의 통증을 참으며 일어나더니 더욱 강경하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말해. 왜 여기 있어?”정안은 말을 잇지 못했고 남하준은 단단히 화가 났다. 전에 없던 걱정과 두려움이 마음을 뒤덮었다.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지만 정안이 위험에 처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그녀가 블랙 섀도우 본부에 온 것은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간 것과 같았다.남하준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백완자. 너 미쳤어?”이렇게 무서운 남하준을 본 적 없는 정안은 놀라서 당황하고 또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그녀는 애써 설명했다.“그래요. 나 미쳤어요. 내가 오빠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오빤 이미 악취 나는 시체가 됐을 거예요!”화가 치밀어 오른 남하준은 호흡이 가빴고 창백한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또박또박 말했다.“그럼 차라리 시체가 되는 편이 훨씬
“넌 오지 말았어야 했어.”남하준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지만 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엷게 웃었다.“내가 와서 다행인 거죠.”남하준은 부드럽고 따뜻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근심이 가득했다.“오빠는요? 어쩌다 여기 잡혀들어왔어요?”정안이 궁금해하며 묻자 남하준은 씁쓸하게 웃고 눈을 감고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정호가 매수당했어.”정안은 경악했다. 뜻밖에도 정호가 배신을 했다니.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서 적의 손에 넘어간 남하준의 심정은 얼마나 괴로울까?정안은 마음이 울적하여 그의 품에 안기어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르고 얼굴을 그의 가슴에 붙였다.이 남자를 위로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남하준은 놀라고 경직되었다.곧 놀라움은 희열로 번졌고 남하준은 점점 설레었다. 정안이 먼저 그를 안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는 손을 살짝 들어 긴장한 채 그녀의 등에 올려놓았다. 미처 꽉 안지도 못했는데 정안이 벌떡 일어나 앉더니 약간 흥분해서 말했다.“이대로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수만 없어요. 탈출 방법을 찾아야 해요.”남하준은 떨떠름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정안은 그에게 이불을 끌어당겨 주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볼 테니까 오빠는 잘 휴식해요. 몸 회복하면 우리 다시 탈출할 방법 찾아요.”남하준이 주위를 살펴보니 침대 하나, 캐비닛 하나, 그리고 별도의 화장실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여기서 나랑 이틀 동안 있은 거야?”남하준이 묻자 정안은 고개를 끄덕였다.“넌 어디서 잤는데?”남하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어두운 얼굴로 묻자 정안은 침대 가장자리를 두드렸다.“여기 엎드려서 잤죠.”남자의 표정이 더욱 나빠지더니 침대에서 일어나려하자 정안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왜 일어나요?”“네가 누워.”“오빠 환자에요. 푹 쉬어요.”“이정도 부상은 아무것도 아니야.”남하준은 굳이 일어나 이불을 들추려 했다.“너 이미 이틀 동안 잘 쉬지 못했어.”“오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