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은 술을 마시며 유미가 그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을 들으며 저릴 정도로 아파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하준아, 유미 말이 맞는 것 같아. 유미 말 들어.”유미가 일어나 남하준이 들고 있던 술을 덥석 빼앗았다.“그만 마셔.”남하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젖은 눈을 천천히 감고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자신이 슬퍼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였다.유동진이 조용히 술을 마시고 한숨을 내쉬었다. “휴, 불쌍한 우리 하준이. 완자 얼굴 한번 보려고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거잖아. 사람이 많으면 완자가 덜 불편해할 것 같아서. 근데 주스 한 잔 마시고 새우 한 입 먹고 가버렸네.”유미는 남하준의 옆에 앉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하준아, 넌 더 좋은 여자 만나야 해.”“그래. 유미 말이 맞아.”한참 후 남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울먹였다.“완자한테 내가 많이 부족해.”유동진은 깜짝 놀랐고 유미는 분해서 눈물을 쏟으며 울먹였다.“그게 무슨 소리야. 그 여자가 뭐 그렇게 대단해?”“부족한 사람은 그 여자지. 안목도 없고 소중함도 모르고.”“하준아, 그 여자는 너 좋아한 적 없어. 기억을 잃은 후에 너랑 결혼하긴 했지만 그건 그저 당시 신분이 미천하고 생활이 어려워 의지할 곳이 필요했을 뿐이야.”“기억을 회복하고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자기는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는 삶과 좋아하는 직업도 있고 꿈의 나라도 있고. 그 여자는 너 눈곱만큼도 생각 안 해.”남하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유미야, 앞으로 다시는 완자 그렇게 말하지 마.”유미는 불쾌해서 말했다.“내 말이 틀렸니?”남하준이 일어나서 비틀대자 유미가 급히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그는 유미의 손을 천천히 밀어냈다.“나 머리 아파서 먼저 방에 가서 쉴게. 너희들 계속 먹어.”“내가 부축해 줄게.”유미가 또 부축했지만 남하준이 다시 밀어내고 차갑게 말했다.“됐어.”남하준이 비틀비
“유미야!”유동진이 외쳤지만 유미는 뒤도 안 돌아보고 성큼성큼 떠났다.유동진은 할 수 없이 혼자 술을 마시고 바비큐를 먹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백씨 저택.정안은 작은 박스를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인기척을 들은 여은수는 얼른 젓가락을 놓고 허둥지둥 방으로 향했다.정안은 할머니가 계란후라이를 먹다가 그녀가 돌아온 걸 보고 당황한 기색으로 숨는 걸 보고 잽싸게 달려가 여은수 앞을 막았다.여은수는 당황하고 어색한 눈빛으로 침을 삼키고는 애써 도도한 척 고개를 젖히고 정안을 보았다. 그 으스대는 모습은 마치 ‘난 절대 사과 못 해. 어쩔 셈이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정안이 오만한 할머니를 바라보니 마치 잘못한 아이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인정하기 싫어하는 모습이었다.정안은 피식 웃었다.“할머니, 왜 자꾸 나 피해요?”여은수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하지 않자 장안이 다시 그녀 앞으로 돌아가 손에 박스를 보이며 부드럽게 달랬다.“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 사 왔어요.”여은수가 차갑게 말했다.“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손녀가 할머니 좋아하는 디저트 사 왔는데 왜 못 받아요?”여은수는 차갑게 웃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억울하게 말했다.“나한테 잘해주는 척하지마.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 아니까.”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할머니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제가 무슨 생각하는데요?”여은수는 다시 피하더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투덜댔다.“그래. 내가 바보다. 내가 눈이 멀어서 자기 친손녀를 못 알아봤어. 그래서 무례하게 돈 가지고 너 모욕하고 욕하고 또...”여은수는 말하면 할수록 괴로웠다. 마음속의 억울함이 죄책감으로 변해 목이 메어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런 사람이야. 교양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사람 귀찮게 하지. 난 원래 이런 사람이고 변하지 않아. 네가 나 미워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어.”정안은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는 분명 화가 나 있으면서도 전부 죄책감 가득한 말만 하고 있었다.정
정안은 애교 부리는 투로 말했다.“할머니, 이러지 마세요. 전에 가짜 손녀에게 그렇게 잘해주셔서 내가 얼마나 질투한 줄 알아요? 그때 내가 할머니 손녀라고 얼마나 말씀드리고 싶었다고요?”여은수는 입술을 깨물며 소리 없이 울고 몸이 떨렸다.“그때는 가짜 백하린을 통해 엄마 아빠 생사를 조사하려고 계속 꾹꾹 참았어요. 내가 미안해요 할머니. 잘못했어요.”정안이 말하면서 여은수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자 여은수는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정안은 어렸을 때부터 안고 애교 부리는 걸 좋아했는데 여섯 살 이후로 이렇게 붙어 있은 적이 없었다.“할머니, 나 용서해 줄 거죠?”장안은 부드럽게 여은수의 손을 흔들며 계속 애교 부렸다.“할머니. 이번 한 번만. 네?”여은수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흐느끼고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사과할 사람은 이 할미야.”정안은 활짝 웃더니 한 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할머니 잘못 아니에요.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난...”여은수가 고개를 들어 정안을 보니 두 눈은 이미 붉고 촉촉해 있었다.정안은 마음이 아파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달랬다.“나랑 같이 거실에 가서 앉아 있어요. 할머니 좋아하는 디저트 사 왔는데 우리 같이 먹어요. 네?”여은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긴장하여 고개를 가로저었다.“할머니 화 안 났어. 평소에도 바빠서 힘들 텐데 방에 돌아가 쉬어. 난... 혼자 먹으면 돼.”정안은 할머니가 여전히 조심스럽게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눈물을 반짝이며 여은수의 손을 잡고 소파로 가서 지윤이 건넨 디저트를 열며 말했다.“싫어요. 난 할머니랑 같이 있고 싶어요.”여은수는 놀라서 정안을 바라보았고 정안은 디저트를 여은수의 입가에 갖다 댔다.“할머니. 아~”여은수는 깜짝 놀라 디저트를 보더니 곧바로 입을 벌려 먹고 다시 정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긴장해서 물었다.“설마... 너도 가짜 손녀 아니냐?”
정안이 급히 해명했다.“나랑 하준 오빠는 한 번도 사귄 적이 없는데 헤어졌다니요?”“나 때문에 너희가 이혼했잖아?”“혼인신고는 다른 신분으로 했으니 그 결혼은 무효죠.”여은수는 여전히 자책했다.“너랑 하준이는 반년 넘게 부부로 지냈잖아?”정안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저 유명무실한 부부였고 부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여은수는 경악하며 정안을 바라보았다.정안은 애써 괜찮은 척 디저트를 한 입 먹더니 여은수에게도 하나 건넸다.“나랑 하준 오빠는 불가능해요.”“왜 불가능해? 하준이도 너 좋아하고 너도 하준이 좋아하잖아? 서로 마음도 맞고 집안끼리도 오래 알고 지냈으니 하늘이 맺어준 배필이 아니냐?”정안은 여은수의 손을 끌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속삭였다.“제가 앞으로 천천히 설명해 드릴게요.”여은수가 엄숙하게 말했다.“반년이 지나도록 부부 일을 하지 못했으니 하준이 몸이 안 좋은 거 아니냐?”정안은 어이가 없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할머니. 함부로 넘겨짚지 마세요.”여은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노기에 차서 말했다.“그럼 마음이 변한 게 틀림없다. 내가 하준이랑 얘기를 나눠봐야겠어.”“안 돼요. 할머니. 절대 찾아가시면 안 돼요.”정안이 황급히 달랬고 여은수는 묵묵히 어떻게 두 사람의 사이를 회복시킬까 생각했다....뉴빌리지, 정통 어르신의 저택.그는 손에 든 보고서를 보고 흥분하여 손가락을 약간 떨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잘됐네. 너무 잘됐네. 드디어 정안을 찾았어!”그는 고개를 들어 남하준을 올려다보며 흥분해서 말했다.“역시 남 장군이야. 드디어 정안을 찾았다니. 그런데 왜 사진이 없나?”남하준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주 중요한 인물이라 사진을 넣으면 신분이 노출돼 화를 자초할 수 있습니다.”정통 어르신은 군의 기밀을 이해했다. 어떤 것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그럼 앞으로 어떡할 건가? 정안이 우리 M국에 합류하도록 설득할 자신이 있나?”“정안은
“나도 알면 안 되나?”정통 어르신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제가 설득해보겠습니다.”“그래. 이 일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국가의 번영과 부강을 위해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를 꼭 붙잡을 수 있기를 바라네.”...며칠 후.석양이 드리우고 따사로운 노란빛의 그림자가 흩뿌려져 온 대지를 감쌌다.백씨 저택 거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정안은 소파에 기대어 책 속의 복잡한 기구들을 골똘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완자야! 누가 왔게?”여은수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정안은 생각을 중단하고 고개를 문 쪽을 돌렸다.여은수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뛰어 들어왔고 그녀의 뒤에는 남하준이 뒤따랐다.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전히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다.넋을 잃은 정안은 책을 들고 일어섰고 심장이 마구 나대기 시작했다.순간 정안은 며칠 못 보니 격세지감이란 말이 무엇인지 체감하게 되었다.계속 보고 싶었지만 만날 이유도 핑계도 없었다. 그런데 남하준이 먼저 찾아올 줄이야.“오빠.”정안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인사하고 손에 책을 탁자 위에 놓았다.남하준이 그녀에게 다가가니 깊은 눈동자가 물처럼 부드러웠고 따스함이 뒤섞여 있었다.“바빠?”남하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정안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남하준이 탁자 위에 놓인 그녀의 책을 훑어보니 표지는 세계 최첨단 전투기 무기 그림으로 그가 처음 보는 글씨체였다.어느 나라의 무기 책인지도 알 수 없었으니 심오한 정도는 가히 상상할 수 없었다.“나 할 얘기 있는데 같이 나갈래?”남하준이 묻자 정안이 머뭇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두 사람 사이의 감정 문제는 이미 확실히 정리했는데 그녀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정안이 대답하기도 전에 여은수가 달려들어 정안을 남하준에게 휙 밀었다.“어서 같이 나가. 안 급하니까 천천히 얘기 나눠.”할머니에게 밀린 정안은 그대로 남하준의 품속으로 들어갔다.남하준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았고 그의 따뜻하고 듬직한 품에 닿자 정안의 볼이 순간 뜨겁
남하준은 정안을 데리고 한없이 펼쳐진 해변으로 갔고 두 사람은 노을빛 속에 나란히 서 있었다.바닷물의 물결은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났다.정안이 주위를 둘러보니 경호원 몇 명이 멀리서 지키고 있었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있었다.“오빠, 나 왜 여기로 데려왔어요?”정안이 호기심에 묻자 남하준의 시선이 정안에게 고정되었다.노을빛의 그림자 속에서 그녀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여기 조용하잖아. 아무도 우리 방해하지 못하고 도청당할 위험도 없어.”정안은 멍해졌다. 남자의 엄숙한 표정과 굳은 눈빛을 보고 그가 공적인 일로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난 오빠가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이해해. 하지만 나도 내 입장이 있잖아?”“정통 어르신께 대신 죄송하다는 말씀 전해주세요.”남하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투는 더없이 진지했다.“M국은 네가 필요해. 비록 M국은 널 양성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지만 넌 M국 사람이니 뿌리가 여기 있는 거잖아. 세상 사람들도 네가 Z국을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고 너 이해해 줄 거야.”정안은 여유롭게 말했다.“세상 사람들 시선은 중요하지 않아요. 난 그저 내 연구 성과만 중요하지.”“네가 돌아오면 우린 모든 역량을 모아 네 연구에 협조할 거야.”“나 이미 계약한 거 알고 있잖아요?”“Z국은 인권 자유가 있어. 아무리 계약했더라도 위반할 수 있잖아. 그 위반에 따른 결과는 M국이 책임질 거야.”정안의 눈이 어두워졌다.“아니요. M국은 감당할 수 없어요.”“왜?”“경분자에 관한 모든 연구를 포기하고 특허는 Z국 소유가 되는 거예요.”정안이 씁쓸하게 입술을 오므리고 남하준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오빠, 경분자는 내가 독자적으로 연구개발 한 거예요. 오직 나만 그 원리를 알고 있고 그래서 나에겐 아주 중요해요. 내 목숨보다 중요한데 어떻게 포기해요?”남하준은 과학자가 일에 대한 집착을 알고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5년 후에 Z국과
정안은 촉촉한 눈을 깜박이며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눈 밑에는 이 남자를 향한 아쉬움이 가득했다.어둠이 내리자 그녀는 남하준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몽롱함이 더 절묘하게 아름다웠다.그녀의 마음은 몸처럼 굳어 있었다.“너 이번에 돌아가면 M국에 다시 돌아올 기회가 없는 거잖아.”남하준의 무거운 말투가 거의 울먹이는 것 같았다.“왜 그렇게 무정해? M국에 미련이 전혀 없어?”“난...”정안은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아팠다.그녀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아쉽지만, 가장 아쉬운 사람은 여전히 남하준이었다.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휴가 때 연락도 할 수 있고 심지어 그들이 Z국에 가서 만날 수도 있다.하지만 일단 M국을 떠나면 남하준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고 남하준은 그녀의 삶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만약 3년 전이라면, 그녀는 슬퍼할 것이지만 마음이 아프거나 섭섭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이미 이 남자를 사랑했고, 너무도 깊이 사랑했고,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그녀는 지금 이렇게 고통스럽고 아쉬워하고 있었다.과학 연구와 사랑 사이에서 그녀는 전자를 선택했다.정안은 심장이 찢어지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걷잡을 수 없이 아파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남하준은 어렴풋이 그녀의 눈물을 보고 두 손으로 그녀의 볼을 감싸 안고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에 우는 거야? 아니면 태준 형 때문에?”정안은 괴로운 듯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그녀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에게 왜 이럴 때 항상 남태준 이야기를 꺼내는지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만약 너만 M국에 남고 싶다면 Z국 일은 국가에서 사람을 보내 교섭하고 계약 위반 책임도 해결할 거야. 프로젝트 특허도 걱정 마. 우리가 반드시 쟁취할게.”정안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였다.“프로젝트가 하나가 아니라 스물여 개에요.”남하준은 깜짝 놀라 멍해졌고 정안은 코를 훌쩍이며 괴로운 듯 중얼거렸다.“내
지우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난 평생 비행기 티켓 값도 없을 거야.”“티켓은 내가 사줄게. 숙식도 전부 무료.”정안이 말하자 지우가 고개를 저었다.“나 아직도 너한테 빚이 8천만 원이 넘어. 네가 떠난 후에도 계속 네 계좌로 분할 이체할 거야.”정안이 그녀의 손을 잡고 안쓰럽게 어루만졌다.“지우야, 진짜 안 갚아도 돼.”“돈을 빌렸으면 갚는 건 인지상정이야. 네가 갑부 손녀라 돈 많은 거 알아. 하지만 나 같은 가난뱅이가 너랑 평등하게 친구가 되려면 남은 건 이 보잘것없는 자존심뿐이야.”“난 그냥 네가 고생하는 게 싫어서 그래.”정안이 안쓰러워 탄식하자 지우가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보였다.“나 지금 엄청 좋아! 나 같은 전문계 고졸이 배진 그룹에 취직했다니! 평생 그렇게 많은 월급을 받을 거라 생각도 못 했어.”정안이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점점 더 좋아질 거야.”지우는 정안의 어깨에 기대어 따뜻한 우정을 만끽했다.“이번 생에 가장 큰 행운은 너 같은 친구를 만난 거야.”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가 놓아준 후 지우가 물었다.“몇 시 비행기야?”“내일 아침.”“내가 배웅할게.”“새벽 비행기야. 나올 필요 없어. 푹 쉬어. 도착하면 내가 연락할게. 나 출근하면 10개월 정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어. 너한테 다시 연락하면 나 휴가란 뜻이야.”“그래. 기다릴게.”정안은 지우를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했고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지우는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아직도 처리 못 한 일 있어?”정안이 미소 짓더니 갑자기 눈시울을 적시고 말했다.“지우야. 너 하준 오빠랑 친구 하면 안 될까?”지우가 잠시 놀라더니 경악해서 말했다.“그분은 M국 군전 그룹 수장이야. 난 일개 평민인데 어떻게 친구 할 자격이 있겠어?날 너무 과대평가하네.”“내가 전에 두 사람 소개해줬잖아. 그리고 연락처도 저장했고.”지우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대체 무슨 생각이야? 도련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
지우는 예전에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남태준 같은 유형의 남자를 좋아했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좋아함으로써 그의 성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감싸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아니요. 난 당신 같은 돌직구가 좋아요.”남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과 촉촉한 입술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일어서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가자.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일에 주의력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널 잡아 먹을 것 같아.”지우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식탁 앞에 놓아주었고 식탁 위의 반찬 세 가지와 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해.”지우는 기분 좋게 앉아 그에게 국을 떠 주었다.남태준도 따라 앉아서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지우가 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니.”지우는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뿌듯해졌다.그녀가 만든 건 그저 일상적인 가정식 음식이었고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조리 방법도 단순했다.갈비찜, 토마토 달걀 볶음, 청경채, 그리고 어두 무찌개였다.그러나 남태준은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싱글벙글했다.“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면서 그래도 나 음식 못하게 할 거예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목을 축이고 말했다.“만약 네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고 취미라면 그리고 힘들지 않다면 해도 돼.”“하지만 네 취미도 아니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며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그러면 너도 힘들잖아.”남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만지며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손으로 지우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빛은 뜨거웠다.“내 침대에서 좀 더 오래 자지 그랬어?”“네?”지우가 의혹스러운 듯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내가 돌아오면 같이 잘 수 있게.”지우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고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누구 좋으라고요!”“앞으로 나 밥해주지 마.”남태준은 그녀의 하얀 작은 손을 만지고 입가에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왜요?”지우는 자신의 요리 솜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늘 그녀가 요리했으니.“내가 돌아와서 하면 돼. 내가 바쁘면 요리사 부르면 되고.”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았다.“내 여자친구는 요리나 집안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 나에게 네 일을 공유하고 내 일을 경청하고 각자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시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뭐가 시시한 일인데요?”“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쇼핑하고...”남태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그의 키스는 뜨거웠고 큰 손은 천천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엉덩이를 안으로 오므렸다.진한 키스가 뜨거워질수록 지우는 그의 몸 반응이 점점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앉은 위치가 애매해 커다란 것이 몸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온몸은 저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팔다리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고 아랫배가 공허해졌다.떨림, 수줍음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다.그녀가 옮기려고 할수록 남태준이 그녀를 껴안고 더 바싹 달라붙었다.진한 키스가 불러온 욕망에 두 사람의 숨결은 가빠졌다.남태준은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서 떠나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 목소리를 잃은 듯 쉰 목소리로 가볍게 중
“그럼...”임다희는 믿기 싫은 듯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목숨 걸고 널 구한 건 내가 경찰이기 때문이야.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어.”“그럴 리 없어.”임다희는 분노하여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먹였다.“나 절대 못 믿어. 나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남태준은 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임다희, 난 널 위해 목숨을 버린 적 없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무슨 논리?”임다희가 눈물을 쓱 닦았다.“넌 그래도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니까 측은한 마음에 그 요트를 떠나라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네가 내 신분을 폭로한 거야.”남태준은 그녀를 구하려던 동기를 차근차근 분석해줬다.“네가 내 스파이 신분을 폭로하면서 우리 둘 다 위험에 빠졌어.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 난 절대 자기 살길만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어. 경찰의 책임감으로 너 데리고 도망친 거야.”임다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죽을 뻔한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지금 남태준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그의 관대함 때문이었다.“너 지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임다희가 눈물이 흐릿해져서 묻자 남태준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맞아.”“하지만 지우가 너를 차버렸어.”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고상한 자태를 뽐내며 조롱하듯 물었다.“이번에도 흔쾌히 승낙하고 깨끗이 잊은 거야?”남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맞아. 깨끗이 잊었어. 이미 끝난 인연이고 지나간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어? 이 세상에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한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임다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매섭게 말했다.“쓰레기!”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