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다인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 분명 그룹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새벽에 돌아왔을 것이다.“괜찮아요. 나 신경 쓰지 말고 당신 일 봐요.”서다인은 침대 가장자리로 옮기며 그의 자리를 내어주었다.“곧 날이 밝아요. 어서 자요.”남하준은 서다인이 싫어할까 봐 벌떡 일어섰다.“샤워하고 올게.”서다인은 그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냄새 안 나요. 내일 씻어요. 얼른 자요.”남하준은 내친김에 누웠고 서다인은 그에게 이불을 끌어다 덮어 주고는 함께 누웠다.여자의 갑작스러운 호의에 그는 약간 황홀해졌다.낮까지만 해도 매정하게 이혼하겠다며 그를 멀리하고 냉담하게 대하던 그녀가, 지금은 한없이 온화한 현모양처처럼 그의 몸을 걱정하고 안쓰러워하고 있었다.여자의 마음은 바다 밑의 바늘과 같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그는 매우 막막했다남하준은 돌아서서 옆으로 누워 서다인의 자는 모습을 달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의 숨결은 가볍고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가 그의 콧속으로 흘러들어와 마음속에서 맴돌았다.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이튿날 아침.남하준은 세 시간을 자고 다시 깨어났다.괴로움에 시달리다 깬 것이다.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자신을 짓누르는 여자를 보고 마침내 왜 이렇게 괴로운지 알았다.서다인은 몸의 반쪽으로 그를 눌렀고 부드러운 촉감이 심금을 울렸다. 반바지를 입은 하얀 긴 다리가 그의 아랫배를 눌렀고 교묘하게 그의 민감한 곳을 눌렀다.그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온몸이 뜨거워지고 호흡마저 거칠어졌다. 온몸을 간지럽히는 충동이 그의 의지력을 괴롭히고 있었다.“다인아.”남하준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손으로 그녀의 발을 살짝 밀었다.그가 막 밀치자 서다인은 얼떨결에 다시 그 위에 걸쳤다.이 행동이 그의 민감한 부분을 아프게 했다.“악!”남하준은 눈살을 약간 찌푸리며 고통스럽게 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몸을 홱 돌려 서다인을 몸 아래로 눌렀다.어렴풋하게 정신을 차린 서다인이 눈을 떴을 때 남자의 잘생긴 얼굴과 타오를 것 같은 눈망울
30분 후, 화장실 문이 열렸다.서다인은 침대 가장자리에 단정히 앉아 눈을 들어 보았다.남자의 짧은 머리는 반건조 상태로 흰색 캐주얼 셔츠와 긴 바지를 입고 나와 시원해 보였다.여전히 뜨거운 남자의 눈빛에 서다인은 얼굴이 화끈거려 급히 옆에 있던 옷을 집어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스쳐 지나갈 때 남하준이 그녀의 팔을 잡자 서다인은 발걸음을 멈추었다.남하준은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천천히 그녀가 가지고 있는 흰색 치마로 시선을 옮겼다.그녀가 어제 입었던 치마인데 저녁에 샤워한 후 바로 깨끗이 빨아서 말렸다.그리고 지금은 남하준의 잠옷을 입고 있었다.그는 덤덤하게 말했다.“다른 옷 없어?”서다인은 손에 든 치마를 보고 대답했다.“어제 씻고 밤새 말렸으니 이제 입을 수 있어요.”“다른 거로 바꿔.”“왜요?”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놓고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그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서다인이 입을 열었다.“제가 옷을 단정히 입지 않아 당신 얼굴에 먹칠한다고 생각해요?”남하준은 그녀의 온화한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긴장해서 설명하려고 했다.“아니, 난 그게 아니라...”군전 그룹에는 남성도 많지만 여성 직원도 있었다. 병사들의 아내도 섹시하고 예쁘게 차려입고 오는데 왜 서다인이라고 안 될까?서다인은 화가 난 듯 돌아서서 옷을 침대에 내던졌다.“안 입을게요. 그럼 됐죠?”“옷 몇 벌 가져오라고 할게.”남하준은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서다인은 일어서서 헐렁한 티셔츠 자락을 잡아당겨 몇 바퀴 돌린 뒤 허리춤에 작은 매듭을 지어주자 순식간에 옷에 핏이 돌고 몸에 잘 맞았다.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돌아서서 문을 나섰다.남하준은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어디 가?”서다인은 귀찮은 듯 또박또박 말했다.“아침 조깅이요. 밥도 먹고 빈둥빈둥 돌아다니려고요. 당신과 함께 있지 않다면 어디든 좋아요.”그녀의 말은 날카로운 검이 되어 두 사람의 마음을 베었다.남하준은 순간 얼굴이 굳어지고 가슴 끝이 쑤시고
서다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아섰다.“아가씨, 2천 원에 가져가. 원 값에 주는 거야. 설마 2천 원도 없어?”서다인은 반지가 끼었던 곳을 힘껏 문지르며 서글퍼졌다. 먼 곳을 바라보던 두 눈에 눈물이 맺히며 성큼성큼 떠났다.사장에게 뒤에서 욕을 먹어도 그녀는 그 반지를 살 용기가 없었다.그녀는 돈이 부족하지도 않고, 반지를 끼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고, 만약 이 반지를 직접 사서 끼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 결혼이 정말 슬프고 불쌍하게 느껴질 것이다.서다인은 시장을 나섰다.길가에 손님을 태우는 오토바이가 많았지만 그녀는 감히 타지 못하고 길가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는 많은 행인의 관심을 끌었다.그때, 승용차 한 대가 그녀 앞을 지나쳐 10m 앞에서 멈추었다.잠시 후 차량이 후진해 서다인 앞에 멈춰 섰다.창문을 내리자 차에 타고 있던 두 남자가 얼굴을 내밀며 옹졸한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었다.“아가씨, 태워줄까?”서다인은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아니요, 괜찮아요.”“차에 타. 오빠가 데려다줄게.”남자는 빙그레 웃었고 음흉한 눈은 서다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서다인은 위험을 깨닫고 즉시 몸을 돌려 번화한 시장으로 향했다.차 안의 남자가 재빨리 문을 열고 달려내려오더니 두 사람은 서다인을 억지로 차에 태웠다.“살려주세요!”서다인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오토바이 기사가 사람을 구하러 오려다가 상대방이 비수를 꺼내자 뒷걸음질 쳤다.서다인이 강제로 차에 납치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이 법치 사회에서 서다인은 누군가가 감히 길거리에서 부녀자를 납치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차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다가 강제로 눌려 휴대전화를 빼앗겼다.차량이 깊은 산골짜기의 오솔길로 가는 것을 보고 그녀는 몸부림을 포기하고 침착함을 유지한 채 탈출할 기회를 노렸다.차량은 오랫동안 울퉁불퉁한 산길을 질주했다.한참을 빙빙 돌다가 다시 시멘트 도로에 나타났을 때, 도로 표지판에 ‘J국 국경’이라는 글이 보이자 그녀는 어리둥
“M국이요!”“아주 맘에 들어!”대머리는 일어나서 한시라도 빨리 서다인을 갖고 싶었다.그가 아직 자리를 뜨기도 전에 갑자기 큰 손이 그의 팔을 눌렀다.“형님, 이 여자는 제 스타일이기도 한데 저에게 양보해 주시죠.”서다인은 말하는 남자를 쳐다보면서 순간 멍해졌다.남자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큰 키, 멋진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뜻밖에도 남하준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태준아, 난 네놈이 성적으로 무능한 줄 알았다. 마을에 그렇게 많은 여자가 시중을 들어도 눈길 한번 안 주더니 오늘은 이 여자가 마음에 든 거냐?”그는 덤덤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나 아주 정상이에요. 단지 입맛에 맞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죠.”대머리는 크게 웃으며 태준의 어깨를 툭툭 쳤다.“좋아, 내가 실컷 놀면 너한테 주마.”태준은 재빨리 일어나 강력한 기세로 말했다.“제가 언제 형님한테 부탁한 적 있습니까? 하지만 오늘은 너무 맘에 들어 마음이 근질근질해서 급한데. 이번 한 번만 양보해 주시죠?”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욕망도 없고 욕심도 없어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던 태준이 이렇게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대머리는 서다인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저렇게 예쁜 여자이니 어느 남자가 침을 흘리지 않았겠나? 분명 처녀는 아닐 테니 네가 다 놀면 나한테 다시 줘.”“어서 가.”대머리는 태준의 어깨를 툭툭 쳤다.태준은 탁자 위의 담배를 집어 들고 서다인에게 다가가 거칠게 팔을 잡아당겨 옆집으로 끌고 갔다.서다인은 놀라서 온몸이 팽팽해졌고 눈시울이 붉어지며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탈출 기회를 찾았다.이렇게 엄수된 곳에서는 탈출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오늘, 그녀는 여기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방에 들어가자, 태준은 방문을 잠그고 서다인을 큰 침대에 던졌다.서다인은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였다.“제발, 저 좀 놔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제발 부탁이에요.”
서다인은 어리둥절했다.태준은 얼굴이 굳어지며 말했다.“내가 너무 잘생겨져서 못 알아보는 건가?” 서다인은 심장이 떨리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태준은 그녀의 통통한 볼을 꼬집었다.“나 남태준이야.”서다인은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남자는 한숨을 쉬며 일어나 그녀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속삭였다.“무서워하지 마. 나 만난 이상 넌 안 죽어.”“저 알아요?”남태준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 모습을 잊은 건 그렇다 치고 이름까지 까먹어? 이 양심도 없는 꼬맹이 같으니라고!”서다인은 눈물로 시선을 흐리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3년 전 기억을 잃었어요. 나 알아요? 내가 누구죠?”남태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리둥절하고 당황한 눈빛에서 그녀가 정말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너 백하린이잖아. 다섯째가 너 계속 완자라고 불렀고.”서다인은 놀라서 그를 쳐다보고 잠시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누군지 모르지만 백하린은 아니에요. 그 사람은 지금 안성에 있어요.”남태준은 서다인의 뺨을 꼬집었다.“아, 아파요.”서다인은 재빨리 얼굴을 만지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네가 완자가 아니라고?”서다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럼 정말 닮았네. 말랐을 뿐 이목구비는 변한 게 없어.”“백하린 어렸을 때 모습이랑 닮았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남태준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물었다.“너 하준이랑 결혼했어?”서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럼 네가 완자 맞아.”남태준은 침대에서 일어나 담배를 한 대 집었다.“하준이는 완자 말고 다른 여자랑 결혼 안 해.”서다인은 그가 방금 자신의 이름을 말한 것을 생각하고 그제야 반응했다.“혹시 하준 씨 넷째 형님?”남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천천히 한 모금 피웠다.그는 연기를 내뿜고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보았다.“계속 소리 질러. 밖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무능하다고 생각하면 안
두 시간 후.남태준이 방문을 열었다.입구에 총을 든 남자 몇 명이 서 있었다.“형님, 꽤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오래 했는데 여자는 괜찮아요?”“너희들은 여기서 뭐해?”“보스가 형님 상황 살피라고 하셔서요. 일이 끝나면 여자를 보스 방으로 데려오라고 하셨어요.”남태준은 침울한 표정으로 방을 돌아보았다.“내가 직접 데려갈게.”“네.”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남태준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거칠게 서다인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서다인은 헝클어진 머리와 단정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M국 쪽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그녀는 남태준을 통해 이 재난을 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남하준이 구조 요청 메시지를 받고 그녀를 구할 방법을 찾기를 바랄 뿐이었다.통나무집 앞의 정자에서 대머리는 남태준이 서다인을 끌고 오는 것을 보고 두 눈을 반짝였다. 느끼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담배를 피우며 유유히 입을 열었다. “태준아, 좋았어?”남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대머리는 일어서서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이제 내 차례야.”서다인은 두피가 저리고 심장이 폭격하듯 뛰며 메스꺼움이 밀려왔다.“형님, 이 여자를 가지고 노는 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좋은 소식이라니?”남태준이 고개를 돌려 서다인을 보니 그녀는 몸을 가늘게 떨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그는 대머리에게 거짓말을 마구 지어내며 서다인에게 더 많은 시간을 벌려고 했다. “방금 물어보니 이 여자는 Z국에서 온 화학자더라고요. 우리가 전에 구했던 그 불량품들을 해결할 방법이 있어요.”대머리는 경악하며 서다인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저 여자가?”“네, 한번 시도해보죠.”남자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번들번들한 대머리를 만지며 즐겁게 말했다.“그래, 창고로 끌고 가.”서다인은 창고로 끌려갔다.그녀는 이렇게 거대한 마약 제조 공장을 보았을 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고 분노가 치밀었다.
남태준은 지금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10년 넘게 마약을 제조해 온 장인도 못 해낸 일을 서다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서다인이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좋았다.서다인은 연구하면서 중얼거렸다.“불순물에는 나트륨이 들어 있고 루비듐과 비슷한 물질이 있는데 루비듐은 공기와 물에 닿으면 폭발해요. 저도 이렇게 이상한 새로운 원소는 처음 봐요.”“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연구해 볼게요.”모두가 알아듣지 못한 채 수상쩍은 표정으로 서다인을 바라보았다.서다인은 그들의 의심의 눈초리와 그녀의 몸을 탐내는 곱지 않은 눈빛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진짜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서다인은 가루를 조금 집어 병에 넣고 어떤 물질을 넣어 불 위에 잠시 태웠다.그녀는 동작이 능숙하고 매끄러우며 여러 차례 조작한 후 가루를 물에 넣었다.모두 다시 폭발할 줄 알고 뒤로 물러섰다.그러나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남태준은 놀라서 서다인을 바라봤다.대머리는 크게 좋아하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역시 Z국 화학자야. 이렇게 빨리 해결하다니. 아주 좋아!”서다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남태준을 바라보았다.남태준은 미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의 뜻을 내비쳤다.서다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물을 만나면 폭발하는 현상은 해결했지만 치명적인 독소를 갖고 있어 흡입하면 바로 죽어요.”대머리가 서다인에게 다가가자 서다인은 놀라서 뒤로 물러나 그를 경계하며 바라보았다.그는 서다인의 뺨을 두드리며 말했다.“예쁜 아가씨, 나를 도와 2t의 물건을 해결한다면 내가 살려줄게. 약간의 보상도 줄 수 있어.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환영하고.”마약 두목의 말은 한마디도 믿을 수 없다.서다인은 굳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워요.”갑자기 밖에서 총소리가 났다.서다인은 긴장해서 가슴이 두근거렸고 악연하게 밖을 바라보았다.모두가 긴장하여 즉시 총을 들고 뛰쳐나갔다.남태준은 권총을 꺼
딱 봐도 마약 소굴의 전투력이 더 강해 뚫기 어려운 것 같았다.서다인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갑자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서다인의 귀에 들려왔다.그녀는 권총을 움켜쥐고 온몸이 뻣뻣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귀를 쫑긋 세우고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서다인.”차분하고 경쾌한 목소리가 서다인의 귀에 들려왔다.총을 잡은 그녀의 손이 떨리며 자신이 너무 긴장해서 생긴 환청인 줄 알았고 호흡이 더 가빠졌다.“서다인.”남하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이 순간, 서다인은 환청이 아니란 것을 확신하고 재빨리 옷장 문을 열었다.낯익은 모습이 눈에 띄었고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와 남자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남하준은 옷장 속에 숨어 있는 여인을 보고 하루 종일 불안했던 가슴을 쓸어내렸고 모든 걱정과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서다인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옷장을 뛰쳐나와 남하준의 품에 안겼다.“정말 하준 씨에요?”서다인은 그의 허리를 꼭 껴안고 따뜻하고 두툼한 가슴에 묻었다.비현실적이지만 또 안심되었다.남하준은 그녀를 꼭 껴안고 눈을 감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벌렁거리는 심장은 지금도 아련하게 아팠다.그는 서다인이 마약 소굴에 갇힌 후 모진 일을 당할까 봐 걱정했다.1분 1초가 그를 모질게 괴롭혔다.용병이 하루가 지나도 이곳을 뚫을 수 없자 그는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서 혼자 위험을 무릅쓰고 잠입했다. 미스터리한 사람이 준 소식에 따라 서다인이 있는 정확한 위치로 왔다.“괜찮아. 나야.”남하준은 심호흡하고 목소리를 낮추어 부드럽게 위로했다.“집에 가자.”서다인은 그의 따뜻한 품에 안겨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코를 훌쩍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어떻게 들어왔어요? 저 사람들 엄청 많은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어요. 전투력이 웬만한 중대에 뒤지지 않아요.”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문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이제 말해줄게.”서다인은 조용히 그를 따라 떠났다.밖은 캄캄하고 총소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