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은 서다인이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곳을 찾아다녔다.수원, 그녀의 친정집, 예전에 살던 셋방.그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그녀는 말없이 사라졌다.단 하루 만에 남하준은 수척해졌다.10년 전 백하린이 출국할 때 느꼈던 아픔이 되살아난 것이다.점심나절.남씨 저택에 불청객이 왔다.한 여 변호사가 서다인을 대리하여 두 사람의 이혼에 관해 이야기하러 남하준을 찾아왔다.별장 서재.밖은 햇빛이 밝게 내리쬐고 서재도 넓고 밝았지만 분위기는 어둡고 냉랭하며 보이지 않는 저기압으로 뒤덮여 있었다.변호사는 남하준에게 은행 카드와 이혼 합의서를 건넸다.“제 의뢰인은 이미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어요. 이 카드는 남하준 씨 거죠? 서다인 씨가 쓴 부분은 나눠서 갚을 겁니다.”남하준은 어둡고 쓸쓸한 표정으로 탁자 위의 이혼 합의서를 무거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순간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고 숨 쉬는 것조차 가슴에서 간헐적인 통증을 느꼈다.서다인은 쉽게 이혼을 꺼내지 않기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직접 남하준에게 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벌써 약속을 어기려는 걸까?변호사를 보낼 정도로 그를 만나기 싫었던 걸까?남하준은 괴로운 숨을 깊이 내쉬며 여 변호사를 올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지금 어디 있어요? 직접 만나야겠어요.”“죄송합니다. 제 의뢰인은 당분간 남하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서류에 사인하시고 이혼 절차도 끝나면 당연히 만나게 되실 거예요.”남하준은 입꼬리를 올리고 이혼 합의서를 집어 들고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바로 찢었다.변호사는 경악했다.남하준은 찢어진 종이를 쓰레기통에 던졌다.“이혼하고 싶으면 직접 나 찾아오라고 하세요.”변호사는 벌떡 일어서더니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만약 남하준 씨가 서명하지 않으면 제 의뢰인은 이혼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남하준의 차가운 눈이 어두워졌고 주먹을 살짝 쥐었다. 온몸에 차갑고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방안을 한기로 가득 채웠다.변호사는 긴장한 듯 침을 삼키고 공손히 목례를
“그럼 사랑하지도 않는데 왜 이혼하지 않으려는 건데?”서다인은 배가 고팠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고 중얼중얼 말했다. “그 사람 할머님이 날 매우 좋아하셔.”“아, 효심이 지극하네.”두 사람은 조용히 라면을 먹었다.순간, 지우는 달걀을 집어 껍질을 벗기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내 생각에는 말이야. 아무리 서로 죽을 만큼 사랑하는 연인도 결혼 후에는 변하게 돼 있어. 결혼에는 사랑이 아니라 책임감과 정만 있는 거야. 그 사람이 너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중요하지 않아. 너한테 돈만 주면 되지.”서다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지우를 바라보았다.“넌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이렇게 비관적이야?”“결혼해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 난 평생 결혼하고 싶지 않아. 혼자가 좋은 것 같아.”“나도 너처럼 이혼하면 다시 결혼하지 않을 거야. 우리 같이 고독하게 늙어가자.”“하하, 네가 있는데 왜 고독해?”서다인은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지우는 껍질을 벗긴 달걀을 서다인에게 건네주며 호기심에 물었다.“너 집 나간 지 이틀이 지났는데 네 남편 혹시 여기까지 찾아오는 거 아니야?”서다인은 그녀의 달걀을 받아들고 말했다.“남편은 너에 대해 몰라. 그러니까 여기 찾아올 수 없을 거야.”“하지만 그 사람은 남하준이야. 군전 그룹 수장이라고! 국방 무기를 다루는 사람이란 거 몰라? 그렇게 선진적인 무기도 다루는 사람이 너 하나 못 찾을까?”서다인은 달걀을 깨무는 동작을 멈추더니 순간 당황했다.지우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지우는 휴지를 꺼내 손을 닦고 일어났다.“택배 왔나 보다.”서다인은 마음이 무거워 달걀 한 조각을 깨물고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입구에 있는 지우는 바보같이 몇 초 동안 멍하니 있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입구에 있는 건장하고 꼿꼿한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준수한 외모의 남자는 강한 카리스마를 풍기고 있었고 몸에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분위기가 무서웠다.멋진 검은색 옷
“얘기 좀 해.”남하준의 말투는 온화했고 깊고 검은 눈동자에는 부드러운 빛이 가득했다.서다인은 고개를 떨구었다.“제 변호사가 이미 분명히 말했을 거예요. 더 이상 할 얘기 없어요.”남하준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투가 다소 거칠어졌다.“다시는 이혼하겠다는 말 꺼내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서다인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울분에 차서 말했다.“당신도 백하린이랑 인연 끊겠다고 약속했잖아요.”“나 연락한 적 없어.”서다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 눈시울이 젖었다. 연락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사랑하다니.그녀가 당장 죽을 것 같았을 때, 머릿속은 온통 이 남자 생각뿐이었지만, 이 남자는 수영할 줄 아는 첫사랑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그녀를 챙기지 않았다.그녀는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서다인은 살짝 울먹이며 말했다.“인호 씨가 없었다면 난 이미 저세상 사람이에요.”남하준은 다급하게 말했다.“인호 형이 없었다면 난 두 사람 모두 구했을 거야.”서다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고맙지만, 수영할 줄 아는 백하린이 익사하는 게 그렇게 두려웠어요?”남자는 그녀에게 다가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하린이는 어릴 때부터 부유 공포증 있어서 수영할 줄 몰랐어. 언제 장애를 극복하고 수영까지 배웠는지 나도 몰랐어.”서다인은 뒷걸음질 치며 분개해서 말했다.“나한테 가까이 오지 말아요.”“다인아, 나한테 해명할 기회를 줘. 응?”남하준은 거의 애원하는 식으로 말했다.해명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그는 매번 백하린을 위해 그녀에게 상처 주고 있었다.서다인은 더 이상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의 진짜 신분은 서다인이 아니었다.억지로 결혼을 유지한다고 해도 그녀의 신분이 밝혀지는 날 무효가 된다.“남하준 씨, 난 당신이랑 법정에 서고 싶지 않아요.”서다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가슴이 막히는 것 같아 괴로
서다인은 몸이 굳어지더니 화가 나서 발버둥 치며 그를 밀쳤다.그러나 그녀가 발버둥 칠수록 남자는 더 세게 안았다. 두 손으로 그녀를 꽉 껴안고 머리를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파묻고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낮고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인아, 우리 이혼하지 말자. 응?”서다인은 그의 품에서 울음을 참으며 여전히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남하준은 붉게 물든 눈을 천천히 감으며 잠시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예전에는 백하린이 떠났고 지금은 서다인이 이혼하려 한다.한 번으로 부족해서 똑같은 슬픔을 또 한 번 겪고 있다.칼도 맞았고 총알도 맞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사랑의 고통보다 훨씬 덜 고통스러웠다.앞으로 다시는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았다.남하준은 그녀를 부둥켜안고 괴로운 마음을 달래며 물었다.“결혼한 지 거의 반년 동안, 한 번도 나 좋아한 적 없어?”그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지난 반년 동안 그녀는 몇 번이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매번 고통스러웠고 점점 더 고통스러웠다.그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더 이상 미천하게 사랑하고 싶지 않았고 게다가 그는 백하린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평생 그녀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서다인은 코를 훌쩍이며 몸을 곧게 펴고는 차갑게 말했다.“없어요.”남하준은 날카로운 칼날이 가슴을 뚫고 들어와 심장에 꽂히는 것을 느꼈고 송곳이 콕콕 찌르는 통증이 점차 강해졌다.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거친 숨을 크게 내쉬어도 심장의 아픔이 가라앉지 않자 천천히 품 안의 여자를 놓아주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그는 눈시울을 붉혔지만 목소리는 차분했다.“이미 결정했어?”서다인은 고개를 떨구고 차갑게 말했다.“네, 이미 결정했어요. 이번엔 절대 흔들리지 않아요.”남하준은 천천히 주먹을 쥔 채 점점 더 무거운 숨을 몰아쉬며 여자의 냉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이혼 합의서는?”서다인은 움찔하더니 그의 뜻을 이해하고 방으로 돌아가 새로운 협의서와 펜을 가져와 탁자 위에 놓았다.남하준은 종
남하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아파트를 나와 류청과 정호의 앞을 지나갈 때, 차가운 기운이 스쳐 지나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섬뜩하게 했다.두 사람은 오랜 세월 남하준과 함께 있었지만 지금처럼 무서운 저기압을 본 적이 없어 그의 뒤를 따라가다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놀라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쭈뼛쭈뼛 내려와 그를 차에 태우고 떠났다.차 안 뒷좌석.남하준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침묵을 직혔다.차 안 전체가 극도로 억압적이고 냉엄한 분위기에 휩싸여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때 전화벨이 울렸다.조수석의 류청은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가 불청객인 것을 알고 황급히 꺼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행여나 남하준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웠다.잠시 후 통화를 끊은 류청은 뒷좌석의 남하준을 뒤돌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류청은 지뢰밭에 닿을까 봐 두렵지만 또 보고하고 싶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겁에 질려 입을 열었다.“도련님, 하린 아가씨에 관한 거 전부 조사했는데 지금 들으시겠어요?”“응.”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고 한 글자도 더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류청은 목을 축이며 조심조심 말했다. “M국은 이중 국제 신분을 허락하지 않아요. 그래서 M국에는 백하린이란 사람이 없어요.”남하준은 눈을 번쩍 뜨더니 어두운 눈동자로 물었다.“하린이가 귀화했다는 거야?”류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하린 씨는 M국 사람도 아니고 백하린이란 이름도 없어요. Z국에서 이름은 백완자 입니다.”남하준은 안색이 더 나빠졌다.“계속해.”류청: “백완자는 14살에 Z국 가장 유명한 학교에 특별 모집에 합격했지만 학교 기숙사에 살지 않았고 수업에 참여한 횟수도 매우 적어 동기들은 거의 그녀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하지만 매번 시험에서는 과목별 1등을 차지했고 각종 상도 많이 받고 대학 시절 다섯 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모두 국제 최고 권위의 학술지에 실렸어요.”“순리롭게 졸업했지만 너무 바빠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한 학교의 가
남하준은 정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부모님의 사인을 자세히 조사해 봐. 화장 증명서가 없다면 아직 살아계실지도 몰라.”“그럼 백하린 씨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할까요?”“응.”“네!”류청은 공손히 대답했다.“백하린이 발표했던 논문은?”류청은 휴대전화를 꺼내 자료를 열어 그에게 건넸다.남하준은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 스크린 속 논문을 보며 깊은 의혹에 휩싸였다.《산화환원반응 구리, 철, 강철 및 유리소의 파생 나노기술 핵심분석 및 연구》《분자 금속 재분리의 합성 및 화학 응용》남하준은 계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논문의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모두 화학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남하준은 차창 가장자리에 팔꿈치를 괴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백하린이랑 할아버지 DNA 샘플을 구해봐. 은밀하게.”류청과 정호는 눈을 마주쳤고 지금 남하준 생각을 완전히 이해했다.“네.”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이튿날 아침.서다인은 어젯밤 괴로워 한숨도 못 잤다. 아침이 되어서야 졸려서 눈을 감았다.이때 다급한 벨 소리가 울렸고 그녀는 힘겹게 휴대전화를 귓가게 갖다 댔다.휴대전화 너머로 시어머니의 긴장하면서도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다인아, 네 친오빠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서다인은 벌떡 일어나 앉더니 곧 정신을 차렸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아침부터 집에 깡패들이 찾아왔어. 네 오빠가 빚을 졌는데 네가 보증을 섰다고. 네 오빠 대신 돈 갚으라고 소란을 피웠어.”서다인은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일어나 급히 옷장을 뒤져 옷을 집어 들었다. “어머니, 집을 담보로 한 적은 없으니까 그 사람들 신경 쓰지 마세요. 계속 소란피우면 경찰에 신고하세요. 제가 지금 당장 갈게요.”허윤미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급하게 올 필요 없다. 이미 다 처리했어.”서다인은 약간 움찔하더니 의아해서 물었다.“이미 처리했다고요?”“그래, 네 오빠 대신 그 돈 갚고 차용증도 돌려받
서지석은 차갑게 웃었다.“다인아, 오빠도 어쩔 수 없었어. 너는 안 도와주지 빚쟁이들은 자꾸 재촉하지. 어쩔 수 없이 내 친여동생이 부잣집에 시집가서 그 정도 돈은 껌이라고 했을 뿐이야.”“그런데 그 방법이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이야. 네 시댁 식구들이 얼마나 호탕한지 단번에 빚 태반을 해결해 줬어.”“네 남편 위신도 대단하더라고. 내 매부가 군전 그룹 수장이고 널 담보로 돈을 빌리겠다고 하니 다들 얼마든지 빌려주겠다고 나서는 거야. 네 남편 위상이 아주 효과가 좋아.”“지금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해.”서지석은 득의양양해서 말했다.“누가 감히 나 건드리면 매제가 나서서 해결해 줄 거니까!”서다인은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고 온몸에 분노를 억누르고 약간 떨었다. 얼음장 같은 얼굴로 욕설을 퍼부었다.“서지석, 이 쓰레기. 감히 다시 한번 남하준 이름 걸고 사기 치고 다니면 너 절대 가만 안 둬.”서지석은 건들건들하며 차갑게 웃었다.“다인아, 나한테만 뭐라고 하지 마. 아빠도 술친구들에게 사위가 남하준이라고 떠벌리고 다니고 있어. 딸이 부잣집에 시집갔는데 엄청 대단하다고.”“네 엄마는 더 말할 것도 없어. 그저께 네 남편한테 울면서 전화해서 손쉽게 2천만 원 받았어. 네 남편 씀씀이 한번 시원시원하네.”서지석은 여전히 기뻐하고 있었지만 서다인은 이미 화가 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이 가족은 시궁창의 더러운 생물처럼 다른 사람에게 달라붙어 피를 빨고 뿌리칠 수 없게 달라붙어 아주 징그러웠다.서다인은 나지막이 호통쳤다.“나 이미 남하준이랑 이혼했으니까 다시는 그 사람 찾아가지 마. 다시는 그 집안에 폐 끼치지 말라고.”서지석은 코웃음을 쳤다.“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장난을 해? 이혼? 네가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는 이상 왜 이혼하겠어? 넌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도 그런 집안에 시집 못 가. 너처럼 허영심 많고 재물을 목숨처럼 여기는 애가 이혼은커녕 거마리처럼 붙어 있어도 모자랄 판에.”“그래, 오빠가 알았어. 앞으로 도박 때문에 돈
그 순간,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화가 나고 괴로웠다. 그리고 어떤 여자도 아무 이유 없이 나쁜 것을 배우고 타락하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무슨 일이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그때 왜 고소 안 했어?”서다인은 이런 인간쓰레기를 찢어버리고 싶어 이를 악물었다.지우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다인이 엄마도 참 못났지. 자기 자식도 보호하지 못하고 도박 빼고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지우는 안경을 쓰고 타자를 계속했다.“넌 성격도 좋고 또 그렇게 돈 많고 권력 있는 남편도 있으니 설령 그 사람들과 혈연관계가 없다고 해도 이번 생은 너한테 달려들어 빨아 먹으려 들 거야.”서다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그녀는 이미 많은 피해를 입었다.남씨 집안까지 이 불량배들에게 얽매이게 되었다.지금 그들과 자신의 신분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계속 이렇게 참으면 그녀는 조만간 미쳐버릴 것이다.그녀는 가능한 한 빨리 이혼 합의서를 받고 자신의 신원을 밝혀야만 이 흡혈귀들을 벗어날 수 있었다.서다인은 한참을 잠잠히 있다가 궁금한 듯 물었다. “지우야, 너 뭐 쓰고 있어?”“알바. 돈 많이 벌어야 네 돈 빨리 갚지.”서다인은 눈을 들어 그녀의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니 글자를 가득 채웠다.“이게 뭔데?”“다른 사람 대신 소설 써주는 거야. 중도에 연재가 중단된 소설인데 대충 써주고 글자 수대로 수당을 줘. 즉 타자가 빠를수록 더 많은 돈을 번다 이거지.”서다인은 마음 아팠다.“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어. 내 돈은 천천히 갚아도 돼.”“하지만 너도 다른 사람한테 빌린 거라며? 너도 갚아야 하잖아?”서다인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순간, 그녀는 지우 옆에 앉아 무릎을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그녀가 타자하는 것을 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지우야, 나도 일거리 좀 줘.”“어떤 기술이 있고 어떤 일을 할 줄 아는데?”지우는 손가락을 날리며 한시도 쉬지 않고 타자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