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연은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서대홍을 나무랐다.“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왜 정신이 왔다 갔다 해? 얼른 나가자고!”서대홍은 진화연과 서지석을 손가락질하며 욕했다.“가긴 어딜 가! 내가 여기 있는데 뭐가 두려워?”남하준은 머리가 아팠다.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우게 되면 서다인이 깨날까 봐 두려웠다.이런 가족이 있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서대홍은 거실에서 2분 동안 소란을 피웠다.류청이 위풍당당한 병사 몇 명을 데리고 들어올 때까지.그들은 소총을 들고 냉혹하고 매서운 눈빛으로 서대홍에게 다가왔다.순간 서대홍은 정신을 차렸고 두 발이 나른해지더니 갑자기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긴장된 동공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두 손이 떨리고 목소리까지 떨렸다.“죄... 죄송합니다. 형... 형님들... 저는...”서지석도 놀라서 두 발에 힘이 빠져 급히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아빠, 어른 가요.”“나... 좀 부축해 줘... 다리에 힘이 없어.”진화연은 서대홍을 흘겨보며 불쾌하게 부축하고 떠났다.남하준은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은 채 소파 등에 기대어 세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자기도 모르게 서다인을 걱정했다.이런 가족이 있으면 서다인은 예전에 분명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류청은 총을 든 병사들을 데리고 세 사람의 뒤를 따라 직접 남씨 저택을 떠나보냈다.남씨 저택 대문 밖.서대홍은 심호흡하고 주눅이 들어 뒤에 있는 큰 별장을 돌아보았다.아무도 따라 나오지 않는 것이 확실하자 그는 숨을 돌린 뒤 다시 능청을 떨었다.“내 사위가 정말 군전 그룹 수장일 줄이야. 그 총 봤어? 손에 총을 가지고 있었어.”진화연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나무랐다“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왜 허세를 부리냐고? 이게 뭐야? 분명 잘 지낼 수 있었는데 당신이 우습게 굴어서 사위랑 사이가 틀어졌잖아!”서대홍은 주먹을 불끈 쥐고 가
“다인아, 엄마 지금 너희 집 앞이야.”“우리 집 앞이요?”“응. 남씨네 가문 별장. 네가 우리 몰래 혼인신고 한 거 알고 찾아왔거든.”“네 아빠가 방금 집에서 소란을 피우다가 네 남편 부하들이 총을 들이밀어서 나왔어.”“그래서 너무 화나서 너희 집 앞에서 날 때린 거야. 흑흑. 엄마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달플까? 네 오빠는 한 번도 엄마를 도와준 적이 없어. 정말 인정머리 없는 인간들.”“앞으로는 절대 저 배은망덕한 두 인간에게 기대지 않을 거야. 다인아, 엄마는 너밖에 없다.”서다인은 그녀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그동안 기억이 없어서 부모님에 대한 감정이 일천했는데 자신이 서다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감정이 더 옅어졌다.“잠깐만 기다려요. 바로 나갈게요.”서다인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고 방을 나갔다.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거실에 앉아 휴대폰을 보던 남하준은 발걸음 소리를 듣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서다인은 다소 어색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잠깐 나갔다 올게요.”남하준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네 부모님이랑 오빠가 방금 왔었어.”“알아요.”“그래.”남하준은 깊고 뜨거운 눈동자로 온화하게 물었다.“근데 어디 가? 같이 가줄까?”서다인은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괜찮아요.”남하준은 그녀에게 다가가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긴장한 기색을 보았다.“어디 가는지 말해줄 수 없어?”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막연한 걱정일 뿐이었다.서다인은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밖을 가리켰다.“엄마가 밖에서 기다려요.”남하준은 멍하니 있다가 서다인의 말투에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걸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들어오시라고 할까?”“괜찮아요.”서다인은 무뢰한 행세를 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 남씨네 집안에 폐를 끼칠까 봐 걱정했다.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었다.친밀함과 서먹서먹함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남하준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천천히 넣
입구에 이르자 서다인은 다시 고개를 돌려 엄지와 검지를 교차하며 손가락 하트를 만들었다.그녀의 환하고 달콤한 미소가 더해져 미치도록 귀여웠다.갑작스러운 하트 폭격에 가슴이 뭉클해진 남하준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뺨이 뜨거워지며 입술을 오므리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서다인이 집을 나가자 그의 마음은 완전히 공허해졌다.이렇게 큰 거실이 쓸쓸하고 고독하게 변해가는 것을 느꼈고 좀 지루하고 걱정스러웠고 마음이 쓸쓸했다.남하준은 그 자리에서 몇 걸음 서성거리다가 서재로 향했다.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이었다....서다인은 집 앞에서 멍이 들고 얼굴이 부은 진화연을 보았다.같은 여자로서 안쓰러운 마음이 든 서다인은 차를 불러 그녀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병원에서 서다인은 진화연에게 전면 검사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진화연은 자신의 돈을 쓰지 않고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당연히 동의했다.다만 검사 과정에서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었다.간호사는 채혈한 진화연의 혈액 샘플 몇 개에서 갑자기 한 개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다시 한번 채혈했다.검사를 마치고 보고서를 가져왔다.진화연의 몸은 간단한 피부 외상을 제외하고 아주 건강했다.호텔 뷔페.진화연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음식을 가득 챙겨 마음껏 먹고 있었다.서다인은 입맛이 없어 아주 적게 먹고는 조용히 앞에 있는 중년 여자를 바라보았다.이 여자를 동정하지만 동정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게으르고 도박 중독에, 반평생을 가정폭력 성향의 알코올 중독 남자에게 기대어 살았고 딸을 낳고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도박꾼이 되고 빚까지 지고 도망갔다.딸도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생활을 하며 몸을 팔아 돈을 벌고 머리에 든 것이 없지만 진취적이지 않았다.진짜 서다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진화연은 지금 딸이 돈 많고 권세 있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고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진화연은 서다인을 바라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우리 딸이 참 많이 변했어. 우리 딸이 이렇게 바르게 자랄 줄이야. 정말 넌 엄마의 자랑이야.”서다인은 형식적인 말은 듣고 싶지 않아 테이블 위에 양손을 엎드린 채 물었다.“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는데요?”진화연 역시 두 손을 포개고 서다인에게 다가갔다.“어렸을 때는 네 아빠를 닮아서 좀 못생겼어. 크면 성형하겠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이렇게 자연스럽고 예쁘게 변했을 줄이야. 얼굴이 동그란 것이 좀 귀엽기도 하고 어려 보이기도 하네.”서다인은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진화연이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성격도 온순해졌어. 전에는 호랑이처럼 사납더니 지금은 온화하고 부드럽고 목소리까지 달콤해졌어.”“군전 그룹 수장이 반할 만 하단 말이야. 지금의 넌 너무 완벽해.”“전에는 만날 오빠랑 싸우고, 나랑 네 아빠랑 싸우더니 지금은 얼마나 유해졌어.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도 알고. 네 아빠 같은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야.”“이제 나한테 효도할 줄도 알고 예의 바르고 정말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엄마는 너 같은 딸을 낳아서 정말 자랑스럽단다.”서다인은 호기심에 물었다.“내가 다른 사람 같지는 않아요?”진화연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경악해서 바라보았다.“넌 내 딸이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내 딸이라고!”서다인은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진화연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말들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정체를 모를 것이다.진화연도 속고 있는 것이다.그럼 도대체 누가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걸까?식사를 마친 후, 서다인은 진화연에게 현금 40만 원을 주고 호텔 방으로 배웅한 후에야 떠났다.그녀는 남씨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택시를 타고 안성을 나와 몇 시간 동안 다른 도시로 가서 훔쳐 온 진화연의 혈액과 자신의 혈액으로 다시 유전자 검사를 했다.신원 정보를 등록할 때는 친구 지우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했다.특권이 없어서 결과가 나오는 데
미리 알리지 않아 남하준에게 걱정을 끼쳐 너무 미안했다.남자는 서다인에게 다가가 검고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안성을 나갔던 거야?”서다인은 움찔하여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남하준이 어떻게 알았을까?그녀에게 위치 추적기라도 달았을까?그녀는 병원에서 모두 현금으로 지급했기 때문에 행방이 누설되지 않았을 것이다.서다인의 얼굴에 의심이 가득한 것을 본 남하준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그녀가 타고 온 차량을 가리켰다.“안성 택시 아니잖아. 도로 관리 정책 때문에 외지 번호판은 보통 안성에서 손님을 태우지 않아.”서다인은 멀어져 가는 차를 돌아보고서야 문득 깨달았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아, 맞아요.”“무슨 일로 나갔는지 말해주면 안 돼?’“아니요.”여자의 단호한 대답은 남하준의 가슴을 찔렀다.더 이상 캐묻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부부 사이에 100% 솔직하지 못하면 감정이 깊지 않은 것이다.서운한 마음에 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서다인은 그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집으로 들어갔다.남자의 손은 두껍고 따뜻했다. 서다인은 마음이 따뜻해지고 달콤하며 약간의 행복감이 마음속에 감돌고 있음을 느꼈다.너무 거짓말 같았다.평소 이 남자는 걸음이 매우 빠르지만 지금은 보폭도 작고 천천히 걸으며 짧은 거리를 몇 분이나 걸었다.위층으로 올라가 안방 입구 앞에 도착하자 남하준은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그녀의 손을 놓았다.새벽인데도 서다인은 아직 자고 싶지 않고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하지만 이 말은 오해받기 쉬우니 밤에 잘 때 하면 안 되었다.서다인은 아쉬운 듯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그녀는 돌아서서 문 옆에 기대어 문밖의 남자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남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윽하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먼저 초대하지 않으니 그도 자진해서 들어가지 않았다.두 사람은 몇 초 동안 눈을 마주쳤고 찌릿한 기류가 감돌았다.“잘 자요.”서다인이
이 딥키스는 한 세기가 지난 것처럼 오래 지속 되었다.서다인은 입술과 혀가 저리고 아파 났고 숨이 가빴다.더 이상 그를 밀쳐내지 않으면 세상에서 처음으로 키스하다 죽게 된 여자가 될 것 같았다.서다인은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힘껏 짚고는 천천히 밀어냈다.남하준은 아쉬운 듯 그녀를 놓아주었고 그녀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맞대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의 공기마저 건조하고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는 눈을 늘어뜨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내일 회사 돌아가. 나랑 같이 가자.”서다인은 움찔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간다고?생각해보면 그는 그룹과 나랏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어떻게 집에만 있을 수 있겠는가?이런 남자가 하루 시간을 내는 것도 어쩌면 사치가 아닐까?시어머니는 남하준이 그녀와 결혼한 후에 집에 돌아오는 횟수가 많아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1년 반이 지나도록 얼굴 한번 보기 어려웠다고 한다.서다인도 그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자신의 신분을 조사해야 하고 일주일 뒤 유전자 검사 보고서를 기다려야 했다.“나... 당분간 못 가요.”서다인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남하준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는 그녀를 내려놓았다.그녀는 발이 땅에 닿자 온몸이 나른해졌고 손은 여전히 그의 가슴팍에 닿아 있었다.“오고 싶을 때 미리 전화해. 내가 사람 보낼게.”서다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남자는 욕망을 억누르고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나 내일 아침에 가.”“배웅할게요.”서다인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괜찮아. 늦게까지 푹 자.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네.”서다인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벌써 아쉬움이 몰려왔다.남자는 뜨거운 눈동자로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잘자.”서다인은 얼른 몸을 비켜 그가 문을 열게 했다.“잘 자
서다인은 그녀의 이혼을 지지하지만 그녀에게 집을 주는 것을 거절하고 대신 그녀에게 나가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키워 더 강해지라고 권했다.진화연은 아무런 이득도 챙기지 못하자 결국 낙담하여 집으로 돌아갔다.일주일 뒤. 서다인은 DNA 검사 보고서를 얻었다.비록 그녀는 감히 확신할 수 없었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었지만, 결과를 보는 순간 그녀는 여전히 무너졌다. 병원 입구에서 입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며 혈연관계가 없는 몇 개의 붉은 글씨체를 흐릿하게 바라보았다.이 보고서는 그녀에게 일어난 모든 불합리함을 증명했다.그녀는 서다인이 아니었다. 그럼 대체 누구일까?그녀는 누구이고, 그녀의 가족과 친구는 또 어디에 있을까?왜 사람들이 고의로 각종 증거와 허상을 날조하여 그녀를 꼭 서다인으로 위장해야 했을까?그 속의 음모는 또 무엇일까?서다인은 차를 타고 집에 가는 동안 줄곧 이런 문제들을 생각했다.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괴로웠다. 서다인은 이 모든 걸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고 문득 남하준이 보고 싶었다.차창 밖은 햇살이 내리쬐고 길은 차들로 가득 차 있었고 차들이 멈춰 서자 그녀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용기를 내어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의 번호를 찾았다.잠시 망설이다가 긴장된 숨을 크게 내쉬며 용기를 내어 다이얼을 돌렸다.전화는 곧 연결되었다.그 순간 서다인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다인아.”남하준의 아주 묵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무선 네트워크 너머로 들려왔다.서다인은 심장이 떨렸다.이 남자는 일주일 동안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더없이 부드럽고 애틋한 것 같았다.그녀의 착각일까?“바빠요?”서다인은 조심스레 물었다.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그와 대화를 하게 되면 늘 쩔쩔매고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아니.”“아.”서다인은 고개를 떨구고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으려 했지만 그를 백 퍼센트 믿을 수가 없었다.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무슨 일 있어?”그가
서다인은 고개를 떨구고 미소를 머금었다.“좋아요.”남하준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쉽지만 회의는 계속 진행해야 했다.“다인아, 별일 없으면 나 먼저 끊을게.”서다인은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통화한 지 2분도 안 되었는데 벌써 끊으려 하다니.다른 장거리 연애 커플은 어떻게 전화 통화를 몇 시간, 심지어 한나절이나 할 수 있을까?‘됐어. 그건 다른 사람 연애지.’남하준은 그녀에게 감정이 없으니 연애에 ‘연’자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금 바쁘지 않더라고 그녀와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요.”서다인은 약간 실망한 말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먼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채 차창 밖을 내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서글픔이 일순간에 감돌았다.내일 남하준이 사람을 보내 그녀를 데려갈까?서다인은 마음속에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다음 날.서다인은 일찌감치 일어나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하고 물건을 챙기고는 기쁨에 겨워 집에서 남하준의 전화를 기다렸다.이따금 베란다 밖으로 뛰쳐나와 군전 그룹 차량이 마중 나오는지 확인했다.그녀는 정오까지 계속 기다렸다.점심 식사 후 남하준이 아닌 백하린과 백인호 두 사람이 선물 뭉치를 들고 방문했다.백인호가 있어서 남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리 백하린을 싫어해도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서다인은 이 두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아 정원 밖 수영장 옆에 숨어서 앉아 조용히 군전 그룹의 사람들을 기다렸다.시간은 1분 1초가 흘러갔다.서다인은 지쳐서 다시 일어나 수영장 주변을 서성거리며 기대에 부풀었다.“내가 너한테 한 방 먹을 줄이야.”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서다인의 뒤에서 들려왔다.서다인은 돌아서서 백하린이 가슴에 손을 얹고 거만한 걸음으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백하린의 그 날카로운 눈빛에는 악독한 한이 가득했다.서다인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백하린은 그녀와 반 미터 떨어진 거리까지 다가와 입술을 삐죽거렸다.“나약한 줄로만 알았는데 꽤 교활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
네모난 식탁에는 여섯 가지 요리에 국 하나,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새우, 게, 생선, 닭, 쇠고기, 야채, 수입산 인삼 비둘기 찜이 있었다.이러한 음식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남태준은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 아니면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던 남태준이 시선을 돌려 지성의 어두운 얼굴을 보니 이 맛있는 음식들이 지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성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엄마, 의사가 상처 완전히 아물기 전에는 담백하고 잘 소화되는 음식을 많이 먹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고 했어요. 아직 이런 음식은 벅차요.”진효연은 야채를 집어 지성의 그릇에 놓았다.“넌 야채 많이 먹어. 이건 충분히 담백해.”지성은 게를 보며 침을 흘렸다. 평소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는 그의 집에서 하필 그가 다쳤을 때 해산물을 준비하다니.밥을 먹기도 전에 화가 잔뜩 불렀다.진효연은 집게로 가장 큰 게를 집어 남태준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놓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태준아. 넌 이거 많이 먹어.”“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지우를 쳐다봤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태준은 진효연이 너무 열정적인 것 같았다.설마 그를 수양아들로 삼아 지우의 오빠로 만들고 싶은 걸까?“혹시 게 뜯는 도구 있어요?”남태준이 식탁을 보며 묻자 진효연은 어리둥절했다.게를 자주 먹지 않으니 게를 먹을 때 전문적인 도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지우는 그릇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가 깨끗한 작은 가위와 커피용 작은 숟가락을 꺼내 남태준에게 건넸다.“대충 이거라도 써요. 우리 집은 게를 먹을 때 그냥 입으로 뜯었어요.”지우가 부드럽게 말하자 남태준은 엷게 웃으며 도구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진효연은 남태준에게 해산물을 집어주고 지성에게 닭고기를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다들 열심히
지우가 물건을 들고 지성의 방으로 가져갔다.남태준은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가서 그녀의 집안을 둘러봤다.확실히 좀 좁고 낡긴 하지만 깔끔한 편이었다.부엌 맞은 편에 바로 식탁이 있고 식탁 옆에는 거실이 있고 거실 소파도 짧아서 세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텔레비전은 구식이고 냉장고도 작아서 거실 구석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비좁아 보였다.“태준이 왔어?”진효연은 음식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활짝 웃으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앉아. 어서 앉아. 준비 거의 끝나가.”너무 친절하고 다정한 태준이라는 호칭에 남태준은 조금 어리둥절했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제가 뭐 도와드릴까요?”“없어. 없어. 그저 앉아서 차나 마시고 지우와 얘기나 나누면 돼. 부엌일 정도는 나 혼자로 충분하지.”남태준은 또 움찔했다.지우와 얘기를 나누라니. 조금 어리둥절했다.너무 갑작스러운 열정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성은 부랴부랴 남태준에게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청한 뒤 녹차 한 잔을 우려낸 뒤 리모컨을 건넸다.“TV 볼래요?”남태준이 다급하게 거절했다.“괜찮아.”지성은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스포츠 채널을 누르면서 말했다.“누나는 로맨스 드라마만 좋아해요. 누나가 집에 있으면 내가 리모컨을 차지한 적이 없어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그건 직업 때문에 그런 거잖아.”“형도 누나 글 쓰는 거 알아요?”“누나가 경찰의 사랑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 아쉽지만 결말은 비극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책을 출판했어요.”남태준은 방금 찻잔을 들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동작이 뻣뻣해져서 차마 차를 마실 수 없었다.방 안에서 지성의 옷을 챙겨주던 지우가 그의 말을 듣고 노기등등하게 뛰쳐나왔다.“야. 너 그 부질 없는 입 다물어!”남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았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하지만 지성에게는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지성은 긴장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TV를 계속
지우가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래. 그럼 나 간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옆을 지나갔다.남태준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그녀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지우는 그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강제로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요 며칠 동안 그는 끝없는 번뇌와 후회 속에 살았다.그때 지성이 가방을 들고 남태준 앞으로 다가왔다.“형. 가요.”남태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들게.”지성은 크게 기뻐했고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마워요. 형.”차에 오른 남태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다.잠시 후 지우가 뒤에서 따라오자 남태준은 속도를 줄이고 백미러로 지우가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약간 멍해졌다.지성이 그런 남태준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누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다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해요. 조금 있다가 앞쪽 길목에 도착해서 오솔길로 빠지면 누나가 우리보다 훨씬 빨라요.”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지성은 힐끔 남태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사실 우리 누나가 가끔 사납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어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사람 잘 챙길 줄 알고 성실하고 선량한 편이에요.”남태준이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알아.”“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난 대학생이었고 누나 혼자 힘으로 이 집안을 지켰어요. 병원비며 빚이며 모두 누나 혼자 짊어졌어요.”남태준이 계속 응대했다.“알아. 지우 좋은 사람인 거.”지성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누나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 왜 헤어졌어요?”남태준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네 누나가 나 안 좋아해. 별로 느낌이 없대.”지성은 입을 떠벌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누나 사람 보는 눈은 개나 줘버렸나? 난 또 엄마가 두 사람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