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연은 서다인을 바라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우리 딸이 참 많이 변했어. 우리 딸이 이렇게 바르게 자랄 줄이야. 정말 넌 엄마의 자랑이야.”서다인은 형식적인 말은 듣고 싶지 않아 테이블 위에 양손을 엎드린 채 물었다.“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는데요?”진화연 역시 두 손을 포개고 서다인에게 다가갔다.“어렸을 때는 네 아빠를 닮아서 좀 못생겼어. 크면 성형하겠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이렇게 자연스럽고 예쁘게 변했을 줄이야. 얼굴이 동그란 것이 좀 귀엽기도 하고 어려 보이기도 하네.”서다인은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진화연이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성격도 온순해졌어. 전에는 호랑이처럼 사납더니 지금은 온화하고 부드럽고 목소리까지 달콤해졌어.”“군전 그룹 수장이 반할 만 하단 말이야. 지금의 넌 너무 완벽해.”“전에는 만날 오빠랑 싸우고, 나랑 네 아빠랑 싸우더니 지금은 얼마나 유해졌어.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도 알고. 네 아빠 같은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야.”“이제 나한테 효도할 줄도 알고 예의 바르고 정말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엄마는 너 같은 딸을 낳아서 정말 자랑스럽단다.”서다인은 호기심에 물었다.“내가 다른 사람 같지는 않아요?”진화연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경악해서 바라보았다.“넌 내 딸이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내 딸이라고!”서다인은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진화연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말들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정체를 모를 것이다.진화연도 속고 있는 것이다.그럼 도대체 누가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걸까?식사를 마친 후, 서다인은 진화연에게 현금 40만 원을 주고 호텔 방으로 배웅한 후에야 떠났다.그녀는 남씨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택시를 타고 안성을 나와 몇 시간 동안 다른 도시로 가서 훔쳐 온 진화연의 혈액과 자신의 혈액으로 다시 유전자 검사를 했다.신원 정보를 등록할 때는 친구 지우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했다.특권이 없어서 결과가 나오는 데
미리 알리지 않아 남하준에게 걱정을 끼쳐 너무 미안했다.남자는 서다인에게 다가가 검고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안성을 나갔던 거야?”서다인은 움찔하여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남하준이 어떻게 알았을까?그녀에게 위치 추적기라도 달았을까?그녀는 병원에서 모두 현금으로 지급했기 때문에 행방이 누설되지 않았을 것이다.서다인의 얼굴에 의심이 가득한 것을 본 남하준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그녀가 타고 온 차량을 가리켰다.“안성 택시 아니잖아. 도로 관리 정책 때문에 외지 번호판은 보통 안성에서 손님을 태우지 않아.”서다인은 멀어져 가는 차를 돌아보고서야 문득 깨달았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아, 맞아요.”“무슨 일로 나갔는지 말해주면 안 돼?’“아니요.”여자의 단호한 대답은 남하준의 가슴을 찔렀다.더 이상 캐묻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부부 사이에 100% 솔직하지 못하면 감정이 깊지 않은 것이다.서운한 마음에 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서다인은 그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집으로 들어갔다.남자의 손은 두껍고 따뜻했다. 서다인은 마음이 따뜻해지고 달콤하며 약간의 행복감이 마음속에 감돌고 있음을 느꼈다.너무 거짓말 같았다.평소 이 남자는 걸음이 매우 빠르지만 지금은 보폭도 작고 천천히 걸으며 짧은 거리를 몇 분이나 걸었다.위층으로 올라가 안방 입구 앞에 도착하자 남하준은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그녀의 손을 놓았다.새벽인데도 서다인은 아직 자고 싶지 않고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하지만 이 말은 오해받기 쉬우니 밤에 잘 때 하면 안 되었다.서다인은 아쉬운 듯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그녀는 돌아서서 문 옆에 기대어 문밖의 남자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남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윽하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먼저 초대하지 않으니 그도 자진해서 들어가지 않았다.두 사람은 몇 초 동안 눈을 마주쳤고 찌릿한 기류가 감돌았다.“잘 자요.”서다인이
이 딥키스는 한 세기가 지난 것처럼 오래 지속 되었다.서다인은 입술과 혀가 저리고 아파 났고 숨이 가빴다.더 이상 그를 밀쳐내지 않으면 세상에서 처음으로 키스하다 죽게 된 여자가 될 것 같았다.서다인은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힘껏 짚고는 천천히 밀어냈다.남하준은 아쉬운 듯 그녀를 놓아주었고 그녀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맞대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의 공기마저 건조하고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는 눈을 늘어뜨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내일 회사 돌아가. 나랑 같이 가자.”서다인은 움찔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간다고?생각해보면 그는 그룹과 나랏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어떻게 집에만 있을 수 있겠는가?이런 남자가 하루 시간을 내는 것도 어쩌면 사치가 아닐까?시어머니는 남하준이 그녀와 결혼한 후에 집에 돌아오는 횟수가 많아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1년 반이 지나도록 얼굴 한번 보기 어려웠다고 한다.서다인도 그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자신의 신분을 조사해야 하고 일주일 뒤 유전자 검사 보고서를 기다려야 했다.“나... 당분간 못 가요.”서다인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남하준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는 그녀를 내려놓았다.그녀는 발이 땅에 닿자 온몸이 나른해졌고 손은 여전히 그의 가슴팍에 닿아 있었다.“오고 싶을 때 미리 전화해. 내가 사람 보낼게.”서다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남자는 욕망을 억누르고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나 내일 아침에 가.”“배웅할게요.”서다인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괜찮아. 늦게까지 푹 자.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네.”서다인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벌써 아쉬움이 몰려왔다.남자는 뜨거운 눈동자로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잘자.”서다인은 얼른 몸을 비켜 그가 문을 열게 했다.“잘 자
서다인은 그녀의 이혼을 지지하지만 그녀에게 집을 주는 것을 거절하고 대신 그녀에게 나가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키워 더 강해지라고 권했다.진화연은 아무런 이득도 챙기지 못하자 결국 낙담하여 집으로 돌아갔다.일주일 뒤. 서다인은 DNA 검사 보고서를 얻었다.비록 그녀는 감히 확신할 수 없었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었지만, 결과를 보는 순간 그녀는 여전히 무너졌다. 병원 입구에서 입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며 혈연관계가 없는 몇 개의 붉은 글씨체를 흐릿하게 바라보았다.이 보고서는 그녀에게 일어난 모든 불합리함을 증명했다.그녀는 서다인이 아니었다. 그럼 대체 누구일까?그녀는 누구이고, 그녀의 가족과 친구는 또 어디에 있을까?왜 사람들이 고의로 각종 증거와 허상을 날조하여 그녀를 꼭 서다인으로 위장해야 했을까?그 속의 음모는 또 무엇일까?서다인은 차를 타고 집에 가는 동안 줄곧 이런 문제들을 생각했다.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괴로웠다. 서다인은 이 모든 걸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고 문득 남하준이 보고 싶었다.차창 밖은 햇살이 내리쬐고 길은 차들로 가득 차 있었고 차들이 멈춰 서자 그녀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용기를 내어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의 번호를 찾았다.잠시 망설이다가 긴장된 숨을 크게 내쉬며 용기를 내어 다이얼을 돌렸다.전화는 곧 연결되었다.그 순간 서다인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다인아.”남하준의 아주 묵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무선 네트워크 너머로 들려왔다.서다인은 심장이 떨렸다.이 남자는 일주일 동안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더없이 부드럽고 애틋한 것 같았다.그녀의 착각일까?“바빠요?”서다인은 조심스레 물었다.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그와 대화를 하게 되면 늘 쩔쩔매고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아니.”“아.”서다인은 고개를 떨구고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으려 했지만 그를 백 퍼센트 믿을 수가 없었다.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무슨 일 있어?”그가
서다인은 고개를 떨구고 미소를 머금었다.“좋아요.”남하준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쉽지만 회의는 계속 진행해야 했다.“다인아, 별일 없으면 나 먼저 끊을게.”서다인은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통화한 지 2분도 안 되었는데 벌써 끊으려 하다니.다른 장거리 연애 커플은 어떻게 전화 통화를 몇 시간, 심지어 한나절이나 할 수 있을까?‘됐어. 그건 다른 사람 연애지.’남하준은 그녀에게 감정이 없으니 연애에 ‘연’자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금 바쁘지 않더라고 그녀와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요.”서다인은 약간 실망한 말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먼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채 차창 밖을 내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서글픔이 일순간에 감돌았다.내일 남하준이 사람을 보내 그녀를 데려갈까?서다인은 마음속에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다음 날.서다인은 일찌감치 일어나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하고 물건을 챙기고는 기쁨에 겨워 집에서 남하준의 전화를 기다렸다.이따금 베란다 밖으로 뛰쳐나와 군전 그룹 차량이 마중 나오는지 확인했다.그녀는 정오까지 계속 기다렸다.점심 식사 후 남하준이 아닌 백하린과 백인호 두 사람이 선물 뭉치를 들고 방문했다.백인호가 있어서 남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리 백하린을 싫어해도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서다인은 이 두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아 정원 밖 수영장 옆에 숨어서 앉아 조용히 군전 그룹의 사람들을 기다렸다.시간은 1분 1초가 흘러갔다.서다인은 지쳐서 다시 일어나 수영장 주변을 서성거리며 기대에 부풀었다.“내가 너한테 한 방 먹을 줄이야.”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서다인의 뒤에서 들려왔다.서다인은 돌아서서 백하린이 가슴에 손을 얹고 거만한 걸음으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백하린의 그 날카로운 눈빛에는 악독한 한이 가득했다.서다인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백하린은 그녀와 반 미터 떨어진 거리까지 다가와 입술을 삐죽거렸다.“나약한 줄로만 알았는데 꽤 교활
서다인은 익사할 것 같다.온몸이 끝없는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여 물속에서 벌벌 떨었고 물에 잠겨 숨을 쉴 수 없다.그 순간 죽음이 지척에 다가왔고 그녀의 머릿속에 남하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죽음의 문턱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아쉬운 사람은 남하준 한 사람뿐이었다.백하린은 갑자기 그녀를 놓아버렸고 물에 빠진 척 허우적대며 소리쳤다.“살려줘요!”서다인은 백하린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에 이어 두 번 쾅 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서다인은 의식이 희미하고 두려움이 에워싸는 마지막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물속을 떠다녔다.그녀가 물 위로 떠 올라 흐릿한 눈을 떴을 때, 남하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더니 그는 백하린을 안고 수영장 옆으로 헤엄쳐 갔다.환각일까?남하준은 왜 여기에 나타났을까? 그가 백하린을 구했다고?두려운 무중력감이 서다인에게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남하준은 아내와 첫사랑 사이에서 수영할 줄 아는 첫사랑을 선택하고 수영할 줄 모르는 아내를 내버려 두었다.그 순간 서다인의 마음은 무너졌다.그녀는 눈을 감고 몸부림을 완전히 포기했다.몸이 한 치 한 치 아래로 가라앉고 무서운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혔으며 끔찍한 무중력감으로 그녀는 곧 죽을 것 같은 공포에 떨었다.큰 손이 그녀를 안고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고 순간 그녀의 머리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그녀는 의식이 없는 사이에 백인호가 긴장하여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정신 차려! 조금만 더 버텨!”그녀는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았다.죽는 것도 좋았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그녀는 미래를 어떻게 직면해야 할지 몰랐다.손이 닿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서다인은 무중력하게 아래로 계속 떨어졌다.갑자기 움찔하더니 그녀는 넋이 나간 듯 놀라서 눈을 떴다.하얀 천장이 눈에 띄었고 그녀의 시선은 천천히 빗나가 병원 장식이 보였다.곧이어 보이는 것은 남하준의 깊고 무거운 눈동자와 그 옆에 있는 백인호였다.“다인아.”남하준은 긴장해
남하준이 병실을 나서자 백인호가 그 뒤를 따랐고 병실 문을 닫았다.백인호는 남하준의 서늘하고 어두운 뒷모습을 보고 음험한 눈동자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준아, 사실 너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하린이 사랑하고 있지?”남하준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온몸에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하린이가 네 맘을 돌리려고 그동안 많은 잘못을 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건 모두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두 사람 이번에 함께 수영장에 빠진 건 단순 사고였을 거야.”“시간 날 때 하린이한테도 가 봐. 어렸을 때부터 부유 공포증이 있었으니 아마 많이 놀랐을 거야.”백인호가 한바탕 말을 늘어놓았지만 남하준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성큼성큼 떠났다.남자의 성급한 발걸음을 보고 백인호의 눈에는 독기가 올랐다.사람을 죽일 수 있는 눈빛이었다. 지금의 백인호는 미천한 그 여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완자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 완자의 목숨을 위협하다니!남하준은 병원 문을 나서 군전 그룹의 무장 차량에 올라탔다.류청과 정호는 걱정스러운 듯 뒷좌석의 남하준을 돌아보며 물었다.“사모님 괜찮으세요?”남하준은 지친 듯 눈을 감았고 무거운 어깨가 보이지 않는 좌절감에 눌려 숨이 가빴다.“이미 위험에서 벗어났어.”“도련님, 무슨 일이든 저희한테 시키세요. 사모님은 지금 도련님이 필요합니다.”남하준의 찡그린 미간이 더욱 팽팽해졌고 허벅지에 올려놓은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그는 눈을 감고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석연치 않은 죄책감과 자책이 치밀어 올랐다.좋아하는 여자가 눈앞에서 죽을 뻔했는데 그는 백하린을 구했다.서다인이 그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만 단지 그의 가슴 아래의 오장육부가 모두 시큰시큰하고 아파서 매우 괴로웠다.잠시 후,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수영장 옆에 있는 CCTV 확인했어?”정호: “도련님, 남씨 별장의 모든 CCTV가 한 시간 전에 해킹당해서 모든 자료가 날아
그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깼어?”하루 종일 냉정함을 되찾고 마음을 다잡은 서다인은 지금 태연하게 그를 대할 수 있었다.서다인은 눈에는 냉랭한 기운이 스쳤다.“나 괜찮으니까 가서 쉬어요. 여기 있을 필요 없어요.”남하준은 오늘 일을 애써 해명했다.“난 네가 물속에 있는 거 못 봤어. 그리고 하린이 수영할 줄 몰라.”서다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두 번째 이유는 약간 황당했다. 부잣집 아가씨가 어떻게 수영을 못 할 수 있을까?서다인은 화난 표정으로 남하준을 바라보며 말투도 거칠어졌다.“설명할 필요 없어요. 소용 없으니까.”남하준은 그녀의 말투가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닫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다인아, 그런 상황에서 난 하린이를 못 본 척 할 수 없어.”생사의 갈림길에서 사람의 진심을 아는 법이다.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은 혼란스럽고 오로지 마음의 본능으로 모든 판단을 내린다.남하준이 원래 백하린을 그렇게 사랑했으니 인제 와서 어떻게 그를 원망할 수 있을까?하지만 서다인은 여전히 속상하고 슬펐다.못난 눈물이 핑 돌았고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고 남하준을 바라보며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하준 씨, 백하린은 수영할 줄 알아요. 백하린이 날 수영장으로 밀었고 날 물 밑으로 눌렀어요. 내가 당신을 뺏었다고 생각해서 나 죽이려고 했었어요.”남하준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침묵이 흘렀다.서다인은 손을 뻗어 뺨의 눈물을 닦았다. 마음속으로 자신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로인해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싶지 않았지만 여전히 통제할 수 없었다.잠시 마음을 추스른 뒤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CCTV 영상 있어요?”남하준은 덤덤히 대답했다.“없어.”서다인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어이없는 냉소를 지었다.“그러니까, 증거가 없으니 난 지금 헛소리를 하는 거네요?”남하준은 지금 이 문제에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서다인은 가슴에서 한기가 피어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