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동료들은 이다은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고 상사는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일은 점점 순조로워졌다.하지만 가정은... 이다은은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행복하다면 행복했다.남우영은 그녀에게 정말 친절하고 다정하게 잘 해주었다.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줄곧 그녀의 결혼을 좋게 보지 않았고 늘상 이것저것 걱정했다.그리고 그 조금 유명한 인플루언서 공아영은 최근에 남우영과 점점 더 많이 연락하고 있었다.거의 매일 남우영에게 전화했다.남우영의 말을 들어보면 두 사람은 아마 공적인 일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남우영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를 더 좋아하게 되고, 좋아할수록 더 신경이 쓰였다.신경 쓸수록 그녀는 더욱 고통스러워졌다.그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만약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남우영을 사랑하게 된다면 앞으로 이혼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이다은은 생각만 해도 괴로웠다.저녁 무렵.남우영은 야근을 했고 이다은은 혼자 기사의 차에 앉아 집에 돌아왔다.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집안에 외부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긴장하며 거실을 바라보았다.화려하고 세련된 옷차림을 한 여자가 작은 봉지를 들고 걸어 나왔다.이다은은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않고 앞에 있는 익숙한 여자, 공아영을 바라보았다.“그쪽이 남우영이 성급하게 결혼한 아내예요?”공아영은 아주 담담한 눈빛으로 이다은을 위아래로 바라보며 약간 무시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난 우영이 친구예요. 전에 두고 간 물건 가지러 왔어요.”이다은은 불쾌하게 물었다.“그게 뭐죠?”공아영은 들고 있던 봉지를 가리키며 덤덤하게 말했다.“전에 여기 남겨뒀던 속옷과 일용품인데, 확인해 볼래요?”이다은은 들어오자마자 온몸이 저렸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공아영은 환하게 웃으며 이다은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옆 캐비닛 위에 방문 열쇠를 놓았다.“열쇠는 돌려줄게요.”이다은은 그녀가
이다은은 고개만 끄덕일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심적으로 지치고 피곤이 몰려왔다.어쩌면, 이것이 그녀가 재벌가에 뛰어든 대가일지도 모른다.“왜 그래?”남우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이다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굳은 미소를 지었다.“아니야.”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끊었고 남우영은 제자리에서 멍해졌다.그녀는 평소 괜찮은 듯 보였지만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남우영은 그녀의 부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가정에 녹아들지 못하고, 그에게도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항상 거리감이 느껴졌다.남우영은 생각할수록 이상해져 휴대전화를 꺼내 공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무슨 일이야?”공지훈이 묻자 남우영은 베란다로 걸어가서 물었다.“오늘 우리 집에 물건 가지러 네가 갔었어?”“아닌데 왜?”“그럼 누가 갔어?”남우영이 긴장하며 물었다.“아영이가 갔어. 내가 오늘 너희 집에 가는 걸 알고 기어코 자기가 가겠다면서 열쇠를 뺏어갔어.”남우영은 어이가 없어서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무슨 일인데 그래? 아영이랑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있은 말투네?”남우영은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분노했다.“내가 아니라 내 마누라가 네 여동생을 봤어.”공지훈은 경악했다.“뭐? 네 마누라? 너 결혼했어? 언제?”“말하자면 길어. 시간 있으면 다시 설명할게. 먼저 끊을게.”“잠깐. 뭐가 그리 급해. 얼른 얘기해봐.”“끊는다.”남우영은 말을 마치고 즉시통화를 중단했다.지금 그는 이다은이 오해했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다은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그는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이다은에게 전화를 걸었다.휴대폰이 캐비닛 위에 놓여 있고 벨이 울리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남우영은 정원을 나와 사방을 둘러보았다.과연 정자 쪽에서 이다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조명 아래의 꽃을 보고 있었다.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정원의 불빛이 아련하고 아름답고 맑은 바람이 서서히 불어왔다.이다
이다은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내가 본 건 공아영 씨였어.”“너한테 뭐라고 했는데?”이다은은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얼굴에 한줄기 미소가 번졌다.“뭐, 그냥 오해할만한 애매한 말들을 했지”남우영은 그녀의 희고 부드러운 손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말했다.“그러니까, 분명 신경 쓰면서도 내게 말하지 않은 거야?”이다은이 마음이 켕겨 침묵했다.“우리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명색에 부부야. 너도 그때 좋은 남자를 만나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맞선을 본 거 아니었어? 성급히 결혼하던 그때 그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갔어?”이다은은 씁쓸하게 웃었다.“난 나와 조건이 비슷한 남자를 고르고 싶었는데 신데렐라가 될 줄이야.”“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건 좋은 거 아니야?”“당연히 좋지.”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남우영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애정을 가득 담고 있었지만 유감이 깃들어 있었다.그녀는 남우영이 갑자기 왜 이렇게 자신을 쳐다보는지 몰랐다.남우영은 숨을 푹 내쉬더니 한 손으로 이다은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품으로 꼭 껴안았다.남자에게 안긴 이다은의 호흡에는 남자의 온몸에서 흐르는 좋은 향기가 가득했다.그는 더욱 꽉 껴안고 여자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마치 상처를 입은 사자처럼 위로를 구했다.이다은은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렇게 가라앉았는지 몰랐다.손으로 그의 허리를 안고 몸으로 그의 두터운 가슴을 맞대고 있었다.시간이 1분 1초 지나갔지만 남우영은 놓을 생각이 없었고 더욱 꽉 껴안아 그녀의 연약한 목살 안으로 볼을 비볐다.이다은은 그의 뜨거운 호흡에 목이 간지럽고, 말하고 싶어도 말하기 민망하고, 자신의 말이 분위기를 방해할까 봐 두려웠다.달빛이 짙어지자 이다은은 희미하게 남우영의 잠긴 목소리를 들었다.“다은아, 너 나 좋아해?”이다은은 순간 멍해졌다.남우영은 눈을 질끈 감고 계속 중얼거리는 말투에는 비굴한 간청이 가득했다.“난 정말 너를 사랑해. 그러니까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해 주면 안 될까?”이다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남씨 가문은 온 마음을 다해 준비했다. 가족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였고, 그녀를 위한 환영 파티까지 열렸다.정원에는 세련된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진수성찬과 좋은 술이 차려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우아한 선율을 연주하고 있었으며, 정원의 장식에도 그녀를 환영하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이다은은 남우영의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 어색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그가 소개하는 가족들을 하나하나 마주했다.마지막에는 얼굴이 뒤섞여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다가와,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그때, 남우영이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걱정 마, 우리 가족은 다 좋은 사람들이야. 다들 널 마음에 들어 할 거야.”이다은도 느낄 수 있었다.이런 계층의 사람들을 직접 마주해보니 알 수 있었다. 돈 많고 권력이 있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품격이 있었다.그들은 TV나 영화 속 부유층처럼 속물적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높이고 낮추며 서열을 매기는 태도도 없었고, 그녀의 출신이나 학력을 문제 삼는 시선도 존재하지 않았다.그녀가 들은 것은 오직 따뜻한 칭찬뿐. 모두가 그녀의 장점만을 이야기했다.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녀를 유난히 마음에 들어 했다.그리고 이 집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손녀인 남서연 또한 그녀를 반겼다.그녀가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남우영이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그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남씨 가문의 모든 이가 자연스레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듯했다.“새언니, 그거 알고 계세요?”남서연은 둥그렇게 부른 배를 가만히 감싸며 투덜거렸다.“오빠가 예전에 그랬어요. 세상에서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저라고요.”이다은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남서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남우영을 힐끗 쳐다보았다.“근데 말이죠, 오빠가 결혼한 이후로 제 위치가 완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어요. 이젠 두 번째 손가락에도 못 낀다니까요.”이다은은 의아
백건은 남우영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손에 들고 있던 집게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너도 알잖아, 내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는 걸.”남우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을 당할 줄은 몰랐다. 정말 최고의 외삼촌이 틀림없었다.그는 집게를 받아 들고 와규 한 점을 올려 구웠다.“배고프니?”백건이 남우영을 바라보며 물었다.남우영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집사람이 너무 긴장한 것 같아서요. 통 먹지를 못하네요. 제가 좀 구워서 가져다줘야겠어요.”백건은 앞쪽에 앉아 있는 이다은을 슬쩍 쳐다보았다.“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아 보이네.”남우영은 간단히 대답했다.“네.”백건이 그를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혹시 이 여자 때문이야? 그동안 다른 여자들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이유가.”남우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탄하듯 말했다.“너 정말 너희 아버지를 똑 닮았구나, 정말 한결같은 남자야.”남우영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에이, 그런 외삼촌은 뭐 엄청 자유로운 스타일이신가 봐요? 외삼촌도 예전엔…”백건은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남우영의 말을 끊었다.“그만! 다른 얘기 하자고.”남우영은 가볍게 웃었다. 괜히 쿨한 척하는 외삼촌에 어이가 없었다.어쩔 수 없이 그는 대화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서연이 출산 예정일은 언제예요?”“다음 달이야.”“그럼 얼마 안 남았군요.”“응.”“떨리시나요?”“그럼, 당연히 떨리지. 아빠가 되는 게 처음이라.”남우영은 백건 옆으로 다가가 몸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외삼촌, 서연이랑 결혼한 거, 사실 속도위반 때문이었죠?”“아니야.”남우영은 이어서 말했다.“비록 해프닝이었지만, 어쨌든 그걸 핑계로 결혼을 결심한 거잖아요.”백건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몇 초간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남우영을 옆으로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넌 이미 네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에 골인했잖아. 그래 놓고는 뭘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거야? 임신 문제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는
그녀는 언제나 주변과 어딘가 동떨어진 느낌을 주었다.파티가 끝난 뒤, 남우영은 이이다은을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차 안에서 남우영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피곤해?”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나직이 대답했다.“응, 조금.”“집에 가면 족욕을 준비해 줄게. 마사지도 해주고…”그 말에 이다은은 움찔하며 정신을 차렸다. 순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괜찮아, 정말 괜찮아. 너도 피곤할 텐데, 나까지 신경 쓰지 마.”남우영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그래? 나도 족욕하고 싶은데, 네가 해줄래? 마사지도 해줘.”이다은은 순간 얼어붙었다.남우영은 그녀의 당황한 얼굴을 힐긋 바라보며 되물었다.“내가 해주는 건 싫고, 네가 해주는 것도 싫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이다은은 입을 삐죽이며 뾰로통하게 중얼거렸다.“그건 네가 힘들까 봐 그런 거지.”“난 하나도 안 힘든데.”이다은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마지못해 말했다.“알겠어, 집에 가면 마사지해 줄게.”남우영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좋아.”“넌 정말…”이다은은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남우영은 가볍게 웃고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우리 가족 말이야, 널 정말 좋아해.”이다은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응, 나도 느꼈어. 사실 내가 어디 특별해서 좋아하시는 게 아니라, 원래 좋은 분들이라서 그런 거야.”남우영은 잠시 침묵했다.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차 안의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오랜 침묵 끝에, 남우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다은아, 우리… 아이를 가져볼래?”이다은은 순간 멍해졌다.치맛자락을 꼭 쥔 손이 살짝 떨려왔다.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감정이 밀려왔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남우영이 덧붙였다.“아이가 생기면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 결혼생활도 더 돈독해질 거고.”그녀는 남우영의 이런 생각이 싫었다.에이스타 그룹에서 그녀의 커리어는 이제 막
이이다은은 불쾌한 기색으로 눈썹을 찌푸리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나랑 결혼한 이유가 너희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였어?”남우영은 당황한 나머지 급히 말했다.“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그럼 대체 뭐야?”그녀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왜 그렇게까지 애를 갖고 싶어 하는데?”“너도 알잖아.”“아니, 난 모르겠는데?”남우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때문에 불안해. 혹시라도 아이가 생기면 네가 날 떠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어.”“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면 애가 한 명이든 열 명이든 결국엔 널 떠나게 되어있어.”말을 맺기가 무섭게 이다은은 단호한 눈빛으로 문을 열고 나가더니 별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남우영은 황급히 그녀를 따라 달려갔다. 한걸음에 이다은의 손목을 붙잡으며 불안과 초조함이 가득 찬 채로 간절히 물었다.“여전히 나랑 이혼하고 싶은 거지?”이다은은 지쳐 보였다.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넌 정말 말이 안 통해.”남우영은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줘 말했다.“왜겠어? 다 너 때문이잖아.”그는 비겁할 정도로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어떻게든 이 결혼을, 이 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왜 내 탓으로 돌리는 건데?”이다은도 화가 난 듯했다.그녀도 예상하지 못했다. 첫 부부 싸움이, 하필이면 아이 문제 때문일 줄은.남우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다은아, 네 눈엔 내가 없어. 네 마음이 느껴지질 않아.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게, 단 하나라도 있긴 해?”그 순간, 이다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하지만 애써 삼켰다.그녀는 서운함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네가 뭔데 그런 말을 해?”남우영도 더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정말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니까!”이다은은 분노에 차 발을 굴렀다.“남우영, 넌 진짜 나쁜 놈이야.”그녀는 두 손으로 그를 밀쳐냈다.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
이다은은 온 힘을 다해 비틀거리는 남우영을 방 안으로 데려왔다.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화장실로 달려가 젖은 수건을 집어 들었다. 이내 조심스레 그의 얼굴을 닦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마신 거야?”남우영은 취기에 잠겨 정신이 흐릿했다.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입술 사이로 흐느적거리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처음엔 그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그러나 모든 뒷정리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뉘려던 순간, 희미한 속삭임이 어둠 속에서 가볍게 울려 퍼졌다.“다은아…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이혼하기 싫어… 제발… 나랑 이혼하지 마…”이다은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그의 품에 기대었다. 가슴 한편이 알싸하게 저렸다.그녀의 손끝이 자연스레 그의 뺨을 더듬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로 잠든 남우영을 바라보았다.가슴이 두근거렸다.부정하고 싶었지만, 이 떨림을 숨길 수 없었다.이다은은 천천히 몸을 기울여,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며시 포갰다.“이혼 안 해, 우영아.”그녀는 나지막이 속삭였다.“조금만 적응할 시간을 줘.”“다은아… 다은아…”이다은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남우영, 나도 너 좋아하는 것 같아.”그게 아니라면,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로 다투고 있었는데, 그가 술에 취해 망가진 모습을 보자마자 이렇게까지 가슴이 아플 리 없었다.이튿날 아침이 밝아왔다.남우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릿속이 텅 빈 듯 멍해졌다.어제 술을 조금 마셨고, 그 이후로 기억이 끊겼다.상반신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며 이다은의 흔적을 찾았다.그러나 방 안은 텅 비어 있었고, 그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침대맡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오전 11시 30분.남우영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어쩌다 이렇게 늦잠까지 자버린 걸까.다은이는 혹시 아직도 화난 걸까.그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