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은의 질문에 남우영은 경악했다.그는 이다은이 이렇게 솔직할 줄은 몰랐다. 비록 얼굴이 붉어졌지만 눈빛은 여전히 굳건하고 조용히 그를 마주 보며 간절히 답을 원하고 있었다.남우영은 목이 타는 것 같아 테이블 위의 물컵을 들고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였다.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곳으로 깜빡이며 이다은의 눈을 피했다.이다은이 질문을 이었다.“마음속에 다른 여자가 있는 거예요? 아니면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거예요?”남우영은 긴장하며 툭 내뱉었다.“아니에요. 다른 여자는 절대 없어요.”이다은은 그제야 한시름 놓여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거네요?”남우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하지만 이다은이 방금 이혼이라는 단어를 쉽게 말한 것을 보면 그는 이다은에게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내가 만약 다은 씨를 속였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남우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방금 누그러진 이다은의 마음이 순간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놀란 눈으로 남우영을 바라보았다.‘날 속였다고? 역시 이 자식은 게이였어. 날 속여서 결혼한 거야.’이다은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고 눈 밑의 분노가 점차 치솟았다.남우영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서둘러 설명했다.“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만일이요.”이다은은 고개를 떨구고 좋은 음식을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지금은 밥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그녀는 꾹 참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만약 그런 일로 나를 속였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아요. 난 계속 당신과 결혼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어요.”남우영은 마음이 복잡하여 천천히 주먹을 쥐고 이다은의 어두운 표정을 바라보며 슬퍼했다.“나 배 안 고프니까 혼자 드세요.”이다은은 말을 마친 후 식탁을 떠나 방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은 의자에 기대어 쓸쓸히 앉아 한 상 가득 음식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그날 밤, 이다은은 방을 나가지 않았다. 남우영의 성적 취향 때문에 잠을 이
남우영은 다른 손도 벽에 받히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이다은을 올려다보고 숨을 거칠게 쉬며 계속 변명했다.“난 당신을 속이지 않았어요.”“확실해요?”이다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남우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이 켕겼다.그는 이다은을 너무 좋아해서 이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맞아요, 확실해요.”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다은은 갑자기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걸고 발끝을 세워 몸을 기울여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남우영은 너무 놀라서 꼼짝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고 동공이 살짝 흔들리며 깜빡거렸다.그는 호흡이 흐트러졌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으며 몸이 긴장되고 경직되었다.여자의 달콤한 입술을 맛본 후,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마음속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 두 손을 그녀의 허리에 얹고 앞으로 다가가 이다은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몸을 벽에 눌렀다.그는 간단한 입맞춤에 만족하지 않고 입을 살짝 벌려 그녀의 입술을 머금고 혀를 내밀었다. 그녀의 입술과 혀를 깊이 탐하며 서로 한데 엉켰다.이다은은 어리둥절했다. 남우영이 게이인지 아닌지, 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녀는 남우영이 피하거나 배척할 줄 알았는데 그가 이렇게 열광할 줄은 전혀 몰랐다.주도권을 장악한 그의 키스는 공격적이고 강하고 열정적이어서 그녀가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음음...”이다은은 그를 밀어내려고 발버둥 쳤지만 온몸에 힘이 빠지도록 키스를 받은 그녀는 주먹을 쥐고 그의 가슴을 때렸다.그녀의 반항이 너무 무력해서 거절이 아닌 환영 같았고 유혹적인 몸부림 소리가 심금을 울렸다.남자는 건장한 몸으로 그녀가 꼼짝 못 하게 눌렀다. 그녀를 삼키려는 듯 깊고 강렬한 키스를 퍼부었다.그는 이다은의 두 손목을 잡고 천천히 위로 당겨 머리 위의 벽에 눌렀다. 그의 키스는 점점 깊어졌고, 점점 욕망적으로 변하면서 몸이 이다은의 몸에 밀착되었다.이다은이 주도했기 때문에 그는 이토록 미친 것이다.이다은은 이 키
결국 순순히 돌아서서 식탁으로 돌아와 의자를 당겨 앉고 테이블 위의 만두를 집어 곧장 입에 넣었다.남우영은 그녀가 마침내 타협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다은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이다은의 얼굴은 아직 벌겋고 수줍음이 가시지 않았다. 남우영의 잘생긴 얼굴과 건장한 몸매, 성격은 또 그렇게 좋고 자상하면서도 배려심 있는 동성애자 남자를 보며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안 돼. 이대로 이 남자를 포기할 수 없어. 내가 반드시 여자를 좋아하게 만들 거야.’이다은은 마음을 먹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남우영은 우아하게 아침을 먹으며 부드러운 투로 물었다.“이따가 어디 가요?”“고용시장에요.”“내가 데려다줄게요.”“괜찮아요. 당신은 출근하러 가요.”“아니요. 나 급하지 않아요.”이다은은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물었다.“근데 당신 어디서 일해요?”남우영은 아침을 먹는 동작을 멈추더니 침묵을 지켰다.이다은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나 당신 출근하는 곳에 가봐도 돼요? 당신 동료들을 만나고 싶어요.”남우영은 눈빛이 흔들렸다.“그건 좀 곤란할 것 같아요.”이다은은 어쩔 수 없이 입술을 오므렸다.“아.”거절당한 이다은은 약간 서운해했다.아침을 먹은 후, 남우영은 차를 몰고 이다은을 고용시장에 데려다주고 자신은 출근하러 갔다.남우영이 그룹 빌딩 1층에 들어서자마자 맞은편 직원들이 그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그러나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민지가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를 들고 남우영의 앞을 가로막았다.남우영은 그녀를 보자마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여민지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두 눈에 사랑을 듬뿍 담아 두 손으로 내밀었다.“대표님. 이건 제가 직접 만든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에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지나가던 직원들은 이 장면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여민지가 대표에게까지 꼬리를 흔드는 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남우영은 표정이 어두워졌고 차가운 눈으로 그녀의 손에 있는 물건을 쳐다보았다. 고민
이다은이 편의점 구석에 앉아 2천 원짜리 패스트푸드를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안녕하세요, 이다은 씨, 저는 에이스타 그룹의 인사팀 팀장입니다. 저희 에이스타 그룹 산하의 메가항공연구개발부서에서 다은 씨를 초빙하려고 하는데 혹시...”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다은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요즘 사기꾼들이 왜 이렇게 맹목적이야? 사기를 치려면 적어도 기본적인 사전 조사는 해야 할 것 아니야?”그녀는 계속 밥을 먹었다.상대방이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이다은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전화를 받고 짜증스럽게 말했다.“에이스타 그룹인가요?”“네. 이다은 씨, 제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왜 전화를 끊으셨죠?”“사기를 치려면 좀 더 그럴싸하게 쳐야죠. 난 에이스타 그룹에 이력서를 넣은 적도 없고 내 학력으로는 그룹의 문턱조차 넘지 못해요. 근데 항공개발부서에서 나를 고용하고 싶어 한다고요? 그런 말을 어느 바보가 믿겠어요?”인사팀 팀장도 자신의 말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위에서 제공한 자료는 확실히 그러했다.그녀가 아무리 인정할 수 없다고 해도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이다은 씨, 만약 제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시면 바로 저희 본사로 와서 면접을 보세요. 제가 에이스타 그룹 전체를 조작할 수 없는 거잖아요?”이다은은 경악하여 손에 든 젓가락이 떨어졌다.그녀는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목청을 가다듬었다.“당신이 정말 에이스타 그룹의 인사팀 팀장인가요?”“맞아요.”“메가항공연구개발부서에서 저를 채용한다고요?”“맞습니다.”이다은은 멍해졌다.행운의 번개에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행운은 그렇게 비현실적이고 난해하고 믿기지 않았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에이스타 그룹은 비록 민간 기업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빠르게 발전한 기업이며 인터넷 업계에서는 떠오르는 샛별이었다.산하의 우주항공은 더욱 대단했다.우주항공청에서 유출된 인재들은
잊었다면 더 이상 도망갈 필요도 없었다.이다은은 전화를 받아 귓가에 연결했다.“여보세요.”정하늘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다은, 너 어디로 이사 갔어? 너희 부모님이 네가 그 남자랑 나갔다고 하던데.”“그 남자가 아니라 내 남편이야.”“지금 어디야?”“너랑 상관없는 일이야.”그러자 정하늘이 울부짖었다.“이다은!”이다은은 정하늘의 분노를 듣고 가소롭게 느껴졌다.“정하늘, 나 이미 결혼했으니 남편과 함께 사는 건 정상 아니야? 네게 주소를 보고할 필요는 없어.”정하늘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다은아, 내가 너 걱정하는 거 알잖아. 너 그 낯선 남자랑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 어떤 사람인지 아냐고? 이렇게 무턱대고 나가서 살다가 그 남자가 너 괴롭히기라도 하면 어떡해?”이다은은 완전히 어이가 없어 또박또박 말했다.“정하늘, 어렸을 때부터 함께 놀면서 자란 정을 생각해서 난 널 친구로 여기고 있어. 하지만 언제까지나 친구일 뿐이니 선을 넘지 마. 넌 나에 대해, 그리고 우리 부부 사이 일에 대해 간섭할 권리 없어. 그 사람이 날 괴롭히든 아니든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라고. 넌 임신한 네 아내나 잘 챙겨.”정하늘이 갑자기 툭 내뱉었다.“너 아직도 내가 이현이랑 결혼한 것 때문에 화났어?”이다은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그와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어 바로 통화를 끊어버렸다.전화를 끊고 열차 안으로 들어갔는데 핸드폰이 또 울렸다.정하늘의 전화인 것을 보고 그녀는 다시 끊었다.곧이어 정하늘의 메시지가 왔다.[나 미워하는 거 알아. 나에 대한 복수는 네가 제대로 하고 있어. 나 지금 미치게 후회해. 다은아,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착각하지 마. 나 너 미워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아. 더 이상 나 귀찮게 하지 마.]이어서 정하늘의 메시지 폭격이 일었다.[다은아, 넌 지금 너 자신을 속이고 있어.][넌 전에 분명 나를 좋아했어.][내가 잘못했어. 나 지금 후회해. 매일 이현이와
남우영은 이다은의 가는 허리를 잡고 눈살을 찌푸리며 참았고 호흡이 가빠졌다.이 여자는, 그녀의 영롱하고 풍만한 몸이 얼마나 부드럽고 매혹적인지 모르고 있었다.감히 그의 품 안에서 꿈틀대다니.정말 미칠 것 같았다.남우영은 손에 든 디저트를 놓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녀의 동작을 힘껏 억누르며 은근슬쩍 거리를 두었다.그는 잠긴 목소리로 나지막이 물었다.“무슨 일이 그렇게 즐거웠는데요?”이다은은 꽃처럼 활짝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어떤 대기업에서 먼저 전화 와서 나더러 내일 면접 보러 오래요.”남우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작 이 일을 알고 있었다.“어떤 회사인데요?”남우영은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그러자 이다은은 두 손을 남우영의 목에 걸고 진심으로 감격하며 천천히 말했다.“에이스타 그룹이요.”“나쁘지 않네요.”남우영이 담담하게 답하자 이다은은 불쾌하게 중얼거렸다.“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죠. 에이스타 그룹은 지금 인터넷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대기업이에요.”남우영은 이다은이 진심으로 이 일을 원하고 있으며, 그의 회사를 매우 존경한다는 것을 알았다.“면접 꼭 통과하길 바랄게요.”남우영은 부드럽게 말하며 눈 밑에는 감출 수 없는 온정이 가득했다.이다은은 환하게 웃으며 그의 뜨거운 눈을 마주치더니 갑자기 자신의 행동이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방종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아마도 아침의 깊은 키스 때문인지, 그녀는 남우영과의 관계가 예전처럼 어색하지 않고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다.만약 이혼하지 않기로 했다면 반드시 남우영이 여자를 좋아하게 만들 것이다.이다은은 천천히 손을 내려놓고 흥분을 가라앉히며 부드럽게 말했다.“저녁 준비 끝났으니까 얼른 손 씻고 먹어요.”남우영은 급히 탁자 위의 디저트를 그녀에게 주었다.“이거 사 왔어요.”이다은은 포장 봉지를 보고 경악해서 말했다.“이 원조맛 가게는 웨이팅 시간이 길고 수량도 제한해서 팔고 있잖아요?”남우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난
그러나 남우영의 반응에 이다은은 자존심이 상했다.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덤덤한 척 말했다.“농담한 거니까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남우영은 목을 축이고는 설명했다.“다은 씨, 난 같이 자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괜찮아요. 설명할 필요 없어요.”이다은은 가슴이 답답했지만 일부러 침착한 척했다.“알아요. 우리 천천히 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우걱우걱 밥을 먹었다.남우영은 그녀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고 안절부절못했다.“다은 씨...”남우영이 말을 하려는데 이다은이 황급히 끊었다.“밥 먹어요. 이 얘기는 그만 해요.”남우영은 어쩔 수 없이 숨을 내쉬고 밥을 먹었다.식사 분위기는 상당히 무거웠다.식사 후 이다은은 남우영에게 설거지를 맡기고 혼자 방에 숨어 울분을 토했다.남우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혼자 멍하니 생각에 잠겨 헤어나오지 못했다.시간은 1분 1초가 지나갔고 밤이 깊었다.이다은이 방 불을 껐다.그러자 남우영은 갑자기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 30분 후 그는 깨끗이 씻고 잠옷을 입고 방을 나섰다.그는 이다은의 방문 밖에서 배회했다.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또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손을 내려놓았다.그는 돌아서려다가 참지 못하고 돌아왔다.그렇게 끝없이 고민했다.그때, 문이 열리자 이다은이 빈 컵을 들고 안에서 나왔는데 그녀는 남우영이 문 앞에서 손을 드는 동작을 보고 어리둥절했다.남우영은 황급히 손을 내려놓고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안 잤어요?”“잤는데 목이 말라서요...”이다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우영이 그녀가 들고 있던 컵을 뺏어갔다.“내가 물 따라줄게요.”“아니...”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남자는 이미 그녀의 컵을 들고 가서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고마워요.”이다은이 손을 내밀며 말하자 남우영은 컵을 그녀에게 주지 않고 그녀 옆을 비집고 방에 들어갔다.“내가 안으로 갖다 줄게요.”이다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가 컵을 들고 방에 들어가 그녀의
“외도와 기만.”기만이라는 말에 남우영은 긴장한 나머지 침을 삼키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다은은 그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보고 말했다.“너무 무리하지 말고 당신 속마음을 따라요. 세상의 시선 때문에 결혼하지 말고, 대를 잇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평생 얽매여있지 말아요.”남우영은 멍해졌다.“그 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대체 무슨 뜻이죠?”이다은은 그가 정말 능청 맞는다고 생각해서 솔직하게 물었다.“당신 동성애자죠? 남자 좋아하잖아요. 여자 안 좋아하죠?”남우영은 동공이 흔들리더니 두 손으로 문짝을 짚고 그녀를 가둔 채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어떻게 동성애자예요? 난 여자 좋아해요. 그것도 엄청.”정말 미칠 지경이었다.그가 동성애자라고 말한 건 이다은이 처음이 아니었다.그의 어머니와 사촌 여동생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다만 어머니와 사촌 여동생에게는 증명해 보일 수 없지만 이다은에게는 증명할 수 있었다.그는 화가 나서 입을 벌리고 숨을 쉬며 정중하게 다시 말했다. “나 정말 여자 좋아해요.”이다은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못 믿겠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대꾸했다.“아.”“못 믿겠어요?”그녀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이다은은 그의 뜻에 따라 계속 물었다. “만약 당신이 여자를 좋아한다면, 설마 성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아무 문제 없어요.”남우영은 억울함을 토로할 곳이 없었다. 그는 이다은의 오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 방면의 오해라니.이다은은 마음이 착잡하고 무기력하게 중얼거렸다. “아. 그럼 동성애자도 아니고 몸도 문제없는데 왜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내 몸에 손대지 않는 거예요? 그럼 단순히 내게 관심이 없어서 손대기 싫은 거예요?”“혼자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요!”남우영은 마음이 지쳐 황급히 설명했다.“난 당신을 좋아해요. 아주 많이 좋아한다고요. 첫눈에 반했어요.”“그럼 대체 이유가 뭐냐고요?”이다은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얼굴이 점
퇴근 후 집에 들어온 남우영은 냉장고에 붙은 메모, 그리고 방에 가지런히 놓인 선물들과 그 위에 올려놓은 그의 블랙카드를 발견했다.답답한 듯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외투를 대충 침대 위에 던진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허리를 숙였다.그는 이마를 짚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선물과 카드를 돌려준 걸 보니, 내일은 이혼 서류를 건네겠다는 뜻인가?’그 생각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잠시 고민하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다은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남우영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다은 씨, 얘기 좀 해요.”방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는 다시 한번 부드럽게 말했다.“다은 씨...”잠시 후, 방 안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은 일찍 자려고요.”시간을 보니 아직 자기에는 이른 초저녁이었다.남우영은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방으로 돌아간 그는 샤워를 마친 후 잠옷으로 갈아입었다.밤 9시경, 남우영은 다시 이다은의 방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직접 등록된 지문으로 방문을 열었다.방 안은 불이 꺼져 있었고 거실의 불빛이 비스듬히 새어 들어와 희미하게나마 침대의 윤곽만이 보였다.남우영은 문을 닫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잠들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있던 이다은은 문 열리는 소리에 긴장하며 몸을 웅크렸다.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문 쪽을 바라봤다.어둠 속에서 다가온 남우영이 신발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왔다.“남우영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이다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녀의 경계심이 가득 담긴 눈빛에도 불구하고 남우영은 대답 대신 이불을 들추고 그녀 옆에 누웠다. 그의 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휘감았다.이다은은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 긴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남우영 씨!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요?”남우영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으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내가 내 아내를 안고 자겠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이참에 우리 말도 놓자.”이다은은
이다은은 남우영의 메시지를 읽고는 휴대폰을 침대 위에 내던지듯 내려놓으며 화난 목소리로 혼잣말했다.“남우영, 나쁜 놈! 돈 많고 권력 있다고 다 네 맘대로 되는 줄 아는 거야? 사람을 이렇게 갖고 놀면 재밌어? 정말 너무해...”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억누르며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충분히 쉰 덕분인지 몸이 한결 가벼워진 이다은은 간단히 씻고 준비를 마쳤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 그녀는 남우영이 눈을 뜨기도 전에 이미 집을 떠난 상태였다.그녀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다시 우주항공청으로 향했다. 남은 데이터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연구소로 들어선 그녀는 몇몇 뛰어난 교수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교수들은 그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규 학위가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점심시간, 이다은은 교수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하게 되었다. 그녀는 밝고 친근한 성격 덕분에 교수들과 금세 가까워졌다.정안 교수는 유난히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이다은 씨,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돼요?”“스물일곱입니다.”정안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정말요? 믿기지 않네요. 제 아들이랑 동갑인데, 훨씬 어려 보이세요.”이다은은 머뭇거리며 물었다.“교수님, 자녀가 몇 분 계세요?”정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들 하나요.”“아, 그러시구나...”이때 옆에 있던 교수들이 장난스럽게 끼어들었다.“정 교수님, 혹시 이다은 씨를 아드님께 소개하려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정안은 손사래를 치며 어색하게 웃었다.“아니에요. 우리 아들은 다은 씨에게 어울릴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다른 교수는 웃으며 농담을 이어갔다.“그거 반어법 아닌 거 확실하죠?”이다은은 민망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안은 그녀가 불편할까 봐 서둘러 말했다.“무슨 그런 말씀을! 물론 우리 아들이 다른 씨같이 참하고 능력 있는 여자 친구를 만난다면 저야 기쁘겠죠. 하지만 우리 아들은...”정안은 말끝을 흐리며 한숨을 쉬면서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이
남우영의 폭풍 같은 키스에 이다은은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어느새 그녀는 모든 것을 맡긴 채 그에게 안겨 있었다. 그의 강렬한 입맞춤과 단단한 품 안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몸은 이미 이성을 잃고 그의 리드에 따르고 있었다.숨은 점점 가빠지고 온몸은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린 듯했고, 그녀는 자신이 주방을 벗어나 거실로 이끌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두 사람의 침실은 2층에 있었지만, 거실 소파 앞에 다다르자, 남우영은 이다은이 갑작스럽게 이성을 되찾아 자신을 밀어낼까 두려워 서둘러 그녀를 소파에 눕혔다.이다은은 여전히 그의 키스에 취해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었고 가슴은 폭발할 듯 두근거렸다. 아슬아슬하게 이다은의 온몸 곳곳을 부드럽게 만지던 그의 손길은 점점 더 대담해졌고, 거실의 공기는 뜨겁고도 위험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남우영은 테이블 위에서 리모컨을 집어 들어 거실의 조명을 어둡게 조정했다. 은은한 빛으로 바뀐 거실은 마치 꿈속 같은 몽환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다은은 이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어 자신이 언제 옷을 벗었는지도 알지 못했고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그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살이 찢기는 듯한 첫 경험의 고통이 그녀를 현실로 되돌려놓았다.“아... 아파요!”이다은은 고개를 돌려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하며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녀는 눈물을 터뜨리며 간신히 말했다.“남우영 씨, 미쳤어요? 진짜 나쁜 놈이에요... 흑...”“미안해요... 다은 씨... 정말 미안해요.”남우영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안하다고 속삭였지만, 고장난 1톤 트럭처럼 절대 멈추지 않았다.그의 강압적인 태도는 이다은을 더욱 혼란스럽고 무력하게 만들었다.이다은은 그의 품속에서 몸부림치며 울었다. 고통과 두려움,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그녀를 짓눌렀고, 더 이상 어떤 존중도 느낄 수 없었다.‘내가 싫다고 했는데도 멈추지 않아
두 사람이 차에 타자, 기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출발했다.이다은은 창가 쪽으로 몸을 틀어 최대한 남우영과 거리를 두며 참았던 화를 터뜨리듯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남우영 씨, 왜 자꾸 억지 부리시는 거예요?”남우영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의자에 기대고 짐짓 느긋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억지라니요.”“억지잖아요! 남우영 씨의 차를 얻어 타고 싶지 않다고 분명하게 얘기했잖아요!”“다은 씨, 제가 잘못한 거니까 저를 미워해도 돼요. 저를 원망한다 해도 할말 없고, 심지어 때려도 괜찮아요. 하지만 이혼은 절대 안 돼요.”이다은은 울분을 담아 쏘아붙였다.“이건 사기 결혼이에요! 이 결혼은 애초에 무효라고요!”“사기 결혼이라... 그 말 누가 믿을까요?”이다은은 그의 눈빛과 말투에 당황한 듯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사기 결혼이라니... 보통 그런 건 돈이나 이익을 노리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잖아. 근데... 남우영 같은 부자가 나같이 탈탈 털어도 먼지밖에 나오지 않는 여자를 속여서 결혼했다? 그걸 누가 믿겠어?’“그건...”결국 그녀는 아무 말도 있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밀려오는 무거운 감정이 그녀를 짓눌렀다.이다은 역시 이혼을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좁힐 수 없이 큰 간격은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를 옭아매게 했다.이다은이 아무리 분수를 알고 결혼을 요구해도 남우영은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다은은 곧장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남우영은 평소처럼 주방으로 향해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한때는 대저택에서 손끝 하나 물에 적시지 않던 도련님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요리하는 시간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이다은은 씻고 나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그때, 방에서 나오던 그녀는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더니 흠칫 놀라며 다급히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남우영 씨! 제발 이제 저를 위해 요리하지 마세요. 저는 그런 거... 받을 자격 없다
이다은은 정안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화학 교수라고 하면 보통 나이 많은 대머리 아저씨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련되고 기품 있는 분도 있구나.’정안은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뒤쪽 데이터에서 또 편차가 발생했습니다. 이전에 데이터를 성공적으로 수정했던 동료에게 다시 맡겼지만, 이번엔 손도 못 대더군요. 이유를 물어보니 그 데이터를 수정했던 숨은 고수가 있다며 다은 씨를 언급했어요.”이다은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곧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정안 교수님, 이덕수 차장님,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 제가 잘못했습니다. 신고만 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받은 돈은 다 돌려드릴게요. 각서도 쓰고 협약서에도 서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데이터를 유출하거나 누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정안은 차분히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지었다.“다은 씨, 오해하신 것 같네요. 저희는 당신 씨를 감옥에 보낼 생각 전혀 없어요. 다만 데이터를 직접 확인해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주실 수 있을까요?”이다은은 순간 멍하니 정안을 바라보다 방 안의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기대와 긴장 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이덕수마저 옆 의자를 당기며 권했다.“자, 여기 앉으세요.”이다은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린 가운데,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마우스를 집어 들었다.비록 M국 항공우주대학교를 정식으로 졸업하지는 못했지만, 항공우주 데이터 분석에 대한 열정만은 누구보다 강했던 그녀였다. 자격이 부족하다며 좌절하는 대신, 독학으로 공부하며 스스로 능력을 키워온 결과였다.시간이 흘러 30분이 지나자, 이다은은 화면에 집중한 채 외쳤다.“찾았어요! 여기 오류가 있네요.”방 안의 사람들은 고개를 내밀어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문제는 단순히 코드 하나가 어긋난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수정하기 위한 접근 방식은 쉽지
여민지와 그녀의 부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반면 남우영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저는 이다은의 남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 이다은 말입니다.”그의 말에 세 사람은 순간적으로 굳어버렸고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있었다.침묵을 깨고 여중권이 겨우 입을 열었다.“오늘 이렇게 저희를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이 일 때문이겠군요.”여민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우영을 바라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저를 홍보팀에 들여온 것도 계획된 거였나요? 저를 직접 면접 본 것도 다 계획이었나요?”남우영은 부드럽지만 의심의 여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물론입니다. 여민지 씨가 제 아내를 사칭한 증거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제 아내로 위장해 제 아내의 학위를 가로채고, 그 신분으로 회사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옥에 갈 이유가 되니까요.”여민지는 온몸을 떨며 부모를 불안하게 쳐다봤다.여중권은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남 대표님, 대화로 해결합시다. 과거 일인데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어려운 이씨 가문을 도와줬던 건 대표님도 잘 아실 겁니다.”남우영은 냉소를 띤 채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들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당신 딸을 회사에 들인 이유가 바로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걸 제대로 정산할 때가 됐군요.”여중권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이혜원과 여민지는 안절부절못하며 필사적으로 남우영에게 용서를 빌었다.“남 대표님, 제 딸을 살려주십시오. 어떤 방법이든 따르겠습니다.”그러나 남우영은 비웃으며 단호히 말했다.“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잠시 후, 경찰들이 레스토랑에 도착했고, 세 사람은 충격과 공포 속에서 체포되었다.여민지는 울면서 필사적으로 용서를 구했지만, 남우영은 흔들림 없이 그들을 외면했다.레스토랑을 나서며 남우영은 차로 돌아갔다.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
이다은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고 단 하나의 문장만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결국 사고를 치고야 말았네. 이러다 감옥에 가는 건가? 그런데 나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남씨 가문 며느리가 감옥에 가면 그야말로 집안 망신이겠지?’그녀는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막막한 심정으로 끌려갔다.한편, 남우영은 여민지와 그녀의 부모를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레스토랑에서 남우영을 만난 여민지와 그녀의 부모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남우영의 정체를 알게 된 여민지의 부모는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등장했다. 마치 딸이 재벌가 며느리라도 되는 듯, 두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남우영은 마주 앉아있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전직 공무원에 전직 판사라...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지. 다은 씨 같은 약자에게는 그들의 권력이 얼마나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을까...’여민지의 아버지, 여중권이 먼저 입을 열며 공손히 물었다.“남우영 씨는 어디에서 일하고 계십니까?”“에이스타 그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이번에는 여민지의 어머니, 이혜원이 대화를 거들며 말했다.“우리 딸과는 얼마나 알고 지내셨어요?”“얼마 안 됐습니다.”이혜원이 다시 물었다.“그럼 두 분 관계는 어느 정도로 발전한 건가요?”남우영은 태연히 답했다.“오늘이 처음으로 저녁 약속을 한 정도입니다.”여중권과 이혜원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중권이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첫 만남부터 저희를 초대하신 이유는 뭔지... 혹시 결혼 이야기가 나온 건가 싶어서요.”남우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을 잘랐다.“결혼 이야기라니요. 두 분은 저와 다은 씨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이혜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여민지가 황급히 끼어들며 말했다.“아빠, 엄마... 대표님께서 두 분을 직접 뵙고 싶어 하셔
여민지는 모두의 칭찬과 아부 속에서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며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남우영은 여느 때처럼 집으로 향하지 않고 차 안에 앉아 조용히 로비를 응시하며 이다은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시간이 흘러 대부분 직원이 퇴근했지만, 그녀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조바심이 난 그는 차에서 내려 곧장 사무실 건물로 들어갔다. 그러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 그의 앞을 막아서며 길을 가로막았다.“대표님, 안녕하세요.”여민지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밝게 인사했다. 그녀의 눈빛은 자신감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남우영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네.”여민지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대표님, 오늘 회사에서 떠도는 이상한 소문 때문에 마음 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해요. 저도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는지 모르겠어요.”남우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무슨 소문이요?”“대표님이 저를 좋아하신다는 얘기요. 회사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수군거리더라고요.”그녀는 말을 마친 뒤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심지어 대표님이 저에게 적극 대시한다고들 해요...”남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여민지는 그가 미소 짓는 걸 보고 신이 난 듯 한 발 더 다가섰다.“대표님, 기회 되면 저녁 식사하면서 조용히 얘기 나눠보는 건 어떠세요?”남우영은 한숨을 내쉬며 짧게 답했다.“좋아요. 부모님도 모시고 나오세요.”여민지는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뭐라고요? 처음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요?”남우영은 짜증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차가 기다리고 있으니 나갑시다.”여민지는 그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들뜬 마음으로 주변 직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남우영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한편, 건물 모퉁이에 숨어 있던 이다은은 두 사람이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들이 함께 차
또다시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이다은은 뒤척이며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불안과 두려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만약 이 사실이 남우영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그녀는 이불을 꽉 움켜쥔 채 생각했다.‘현실은 동화가 아니야. 왕자가 신데렐라와 결혼하는 일 같은 건 절대 있을 수 없어.’다음 날 아침, 이다은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눈을 떴다. 남우영이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그녀는 조용히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회사에 도착하자 팀장이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익숙한 듯 주어진 일을 받아 들고 묵묵히 책상으로 돌아갔다. 문서를 정리하고 자료를 검색하는 등 사소한 일을 처리하며 머릿속을 비우려 애썼다.그녀는 팀장에게서 늘 가벼운 업무만 배정받았다. 학력이 높지 않은 데다 특별 채용으로 입사한 그녀를 향한 동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사랑스러운 외모와 우아한 몸매는 사람들이 그녀를 오해하게 했다.점심시간이 되자, 동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식사하러 나갔다. 그러나 몇몇 직원들은 그녀처럼 사무실에 남아 빵이나 배달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이다은은 무심히 빵을 뜯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결혼을 하게 된 거지... 어떻게 에이스타 그룹의 대표랑 번개 모임을 가지듯 결혼할 수가 있냐고!’아직도 믿기지 않는 현실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덕분에 이렇게 쉽게 항공 개발 부서에 들어오다니... 이건 분명 내 능력에 비해 과분한 일이야.’그녀가 빵을 입에 물고 멍하니 앉아있던 그때, 낯선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이다은 씨.”그녀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봤다.세련된 정장을 입고 사원증을 목에 건 남자가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들어왔다.그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도시락을 그녀의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공손히 말했다.“대표님께서 준비하신 점심입니다.”이다은은 순간적으로 당황해 주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