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고생해서 이룬 회사를 아빠 손에 무너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잖아요.”윤하경이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저와 강한 그룹의 관계는...”윤하경이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신비감을 조성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윤수철의 모습에 윤하경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직접 강한 그룹에 가서 물어보시는 게 어때요?”말하며 윤하경은 또다시 하품했다. 기지개를 켜자 실크 소재의 잠옷이 어깨에서 흘러내려 백옥처럼 하얀 팔뚝이 드러났다. “저 정말 피곤해서 잠 좀 자야겠어요.”“안 돼.”윤수철이 버럭 소리를 높였다. 이번엔 그가 직설적으로 얘기를 꺼냈다. “회사 장부 조사는 이제 그만해.”“금방 입사해서 아직 회사에 관해서도 제대로 모르잖아. 우리 가족 회사이기도 해.”“장부 조사를 끝내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라도 할 거야?”윤하경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윤수철을 쳐다보았다. “아빠도 저희가 가족이라는 걸 알고 계시긴 하셨네요?”“그럼 그땐 왜 한빛 그룹을 다른 사람에게 줄지언정 저에게 넘기려고 하지 않으셨어요?”윤하경의 뜻은 너무도 분명했다. 받은 것이 있으니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의미였다. ‘그 장부, 내가 끝까지 파줄게.’비록 조사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 문제로 제일 먼저 본색을 드러낸 것이 윤수철이라는 것은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난... 그 사람일 줄 알았는데.’윤하경은 윤수철이 또 다시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기 전에 먼저 서재를 나섰다. 서재 문이 닫히자 윤하경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결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 회사에 도착한 윤하경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고 황급한 여자의 목소리로 들려왔다. “여보세요. 대표님. 무슨 일 있으세요?”“네. 있어요.”윤하경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30분 후, 회사 앞 카페에서 만나죠.”“아, 룸에서요.”말을 마친 윤하경은 상대방이 대답도 하
비록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말투였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두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윤하경이 피식 웃어버리며 말했다. “주시연 씨는 회사의 고참 직원이시잖아요. 지금은 제가 시연 씨의 직속 상사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시연 씨와 얘기를 나누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아닌가요?”초조한 주시연과 달리 윤하경은 오히려 여유가 넘쳤다. 커피를 마시는 윤하경의 시선은 여전히 주시연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시선을 올린 주시연은 윤하경을 향해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죠. 윤 대표님께선 뭘 알고 싶으신 거예요?”“회사에 온지 몇 년 되셨어요?”윤하경이 나지막이 물었다. “아마 3, 4년 쯤 된 것 같아요.”“아~”윤하경이 살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시연 씨는 제가 갑자기 회사 부대표직을 맡은 게 시연 씨의 커리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세요?”“네... 네?”주시연은 윤하경이 그런 질문을 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멍해진 주시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윤하경에게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전 윤 대표님께서 회사에 오셔서 정말 기뻐요.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윤하경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래요?”주시연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럼요.”잠시 생각하던 주시연이 말을 이었다. “대표님이 오시기 전에 정연 언... 백 팀장님에게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대단하신 분이라고.”“젊은 시절 신 대표님의 모습이 있다고 하셨어요. 신 대표님이 이끌던 한빛은 잘 나갔었다고요.”주시연이 입술을 짓이겼다. “대표님께서 부임하신 시간이 길진 않지만 전 대표님 능력을 인정해요.”그 말은 꽤 진심인 것 같았다. 거짓말이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윤하경의 눈빛이 비웃음으로 빛났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그래요?”“그럼 오히려 제가 묻고 싶네요. 왜 제 사무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
윤하경은 그녀를 한 번 돌아보았다.“왜 그래요? 아직 할 말이라도 있어요?”윤하경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주시연은 입술을 깨물었다.“저기...신고하지 않으시면 안 될까요?”“네?”윤하경은 하얗고 예쁜 이빨을 살짝 드러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전반적으로 사람을 해칠 것 같지 않은 온화한 인상을 주었다.“조금 전에는 주시연 씨와는 상관없다고 하지 않았어요?”주시연은 침을 꿀꺽 삼키며 얼굴에 고뇌가 스쳤다.윤하경은 점점 인내심을 잃고 주시연의 손에서 손을 빼내려고 했다.그 순간 주시연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강도가 꽤 세서 쿵 하는 소리가 났고 윤하경은 놀랐다.그녀는 돌아서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왜 이러는 거죠?”윤하경은 일부러 묻고 있다는 걸 주시연은 알았다.주시연은 눈을 감았다가 큰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윤 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됐어요. 부탁드립니다. 신고하시면 제 인생은 끝이에요.”윤하경은 눈동자를 살짝 굴렸지만 전혀 놀라지 않았다.만약 확신이 없었다면 그녀는 주시연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다만 주시연이 이렇게 빨리 항복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은 채 다시 돌아서서 이전에 앉았던 의자에 앉았고 땅에 앉아 있는 주시연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멍청한 사람과 얘기하는 걸 싫어해요. 주시연 씨가 현명하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요.”주시연은 턱을 살짝 들었다.“일어나세요. 난 다른 사람의 조상님이 되려는 생각이 없어요. 내게 무릎 꿇을 필요 없어요.”주시연은 그녀를 쳐다보았고 잠시 침묵하더니 결국 일어섰다.그녀는 오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상의는 흰색 재킷에 레이스 이너를 매치했다.치마는 무릎을 살짝 가리는 정도의 길이였다.주시연의 몸매를 적당히 드러내며 직장 내 엘리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지금은 매우 초라해 보였다.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윤하경 맞은편에 앉아 눈을 살짝 감으며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말씀드리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장담해 주실 수 있나요?”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가느다란 하얀 손가락으로 커피잔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그건 주시연 씨의 대답이 내 마음에 드느냐에 달려 있어요.”주시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녀의 얼굴에 다시 깊은 고민이 스쳤고 후회의 기색이 역력했다. 만약 처음부터 그 돈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궁지에 몰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 사람은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 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처럼 윤하경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그녀는 이를 악물었고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엉켜 혼란스러웠다.윤하경은 손목시계를 흘깃 보며 점점 인내심을 잃어갔다.주시연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쳐다보았다.“대표님, 그 돈은 제가 아니라 윤씨 가문의 사람이 가져갔어요. 저는 뇌물을 받았지만 이 일이 밝혀지면...”윤하경은 주시연의 말투에서 마치 자신을 위협하려는 듯한 뉘앙스를 감지했다.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이 일이 밝혀지고도 누가 주시연 씨에게 돈을 빼돌리라고 했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하나뿐이에요. 재무 이사인 주시연 씨가 직권을 남용해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게 될 거예요. 금액도 적지 않잖아요?”윤하경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감옥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면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게 좋겠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날 선 칼날처럼 주시연의 가슴을 파고들었다.윤하경이 말한 것이 바로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다.말하면 끔찍하게 망가질 수도 있지만 말하지 않으면 더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다.결국 주시연은 전자를 선택했다.“좋아요.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주시연은 결심을 내리자 한층 차분해졌고 윤하경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하지만 제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렸다.“말해봐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대한 들어줄게요.”“나중에 최고의 변
윤하경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일어나 노트를 덮고 그것을 가슴에 안고는 조용히 회사를 나섰다.옆에 있던 비서는 침묵했다.“...”‘부 대표님이 회장님의 친딸이라고 하던데 두 사람 사이가 왜 이렇게 안 좋아 보이지?’비서가 의아해하는 사이 윤하경은 가방을 든 채 회사 문을 열고 나갔다.주시연은 사무실에서 윤하경이 떠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그녀의 손가락은 불안하게 움켜잡히며 눈빛에는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윤하경은 회사에서 나와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온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온지우가 또 어딘가에서 여자를 만나고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곳에 있을 거란 예상은 하지 못했다.온지우는 한 온천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온지우가 물었다.“지금 올 거야?”“갈게. 주소 보내줘. 너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전화를 끊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온지우는 주소를 보냈고 윤하경은 직접 운전해서 그곳으로 갔다.도착했을 때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온천 호텔 레스토랑에서 온지우를 만났다.온지우는 평소 엉뚱한 면이 있지만 주문한 음식은 모두 윤하경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그녀가 직장 여성처럼 차려입은 모습을 보고 온지우는 능글맞게 휘파람을 불었다.“쯧. 며칠 만에 못 봤더니 윤하경에서 부 대표님으로 변했네. 어때? 네 아버지가 드디어 회사를 너에게 맡기기로 했어?”온지우가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하자 윤하경은 그를 날카롭게 째려보았다.“좀 비꼬는 말투로 말하지 않으면 안 돼?”온지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새우를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왜 갑자기 한빛 그룹에 간 거야? 네 아버지께서 마음을 바꿨어?”온지우는 윤하경과 친해서 그녀의 집안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윤하경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내가 몇 번이나 아버지의 좋은 일을 망쳤는데 그렇게 착하게 나를 한빛 그룹에 들어오게 할 리가 있을까? 게다가 한빛 그룹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부대표라는 직위를 준다는 건 말이 안 돼.”이번에는 온지우가
“네?”윤하경은 그 질문에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머릿속에 이전에 강현우에게 들킨 장면이 떠올랐다.강현우는 다른 건 몰라도 소유욕이 지나치게 강했다.지난번 배경빈과 함께 식사했을 때 그리고 그와 함께 연회에 참석했다가 들킨 후의 대가를 떠올리며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기침을 한번하고 말했다.“지금 당연히 회사에 있겠죠.”“그래?”전화 너머 강현우는 가볍게 웃으며 낮고 거친 목소리가 마치 윤하경의 귀에 바로 들리는 듯했다.윤하경은 귀가 간지럽고 찌릿한 느낌이 들어 휴대폰을 잠시 멀리 뗀 뒤 겨우 웃으며 말했다.“네.”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기자 윤하경은 어리둥절했다.휴대폰을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잠시 생각한 윤하경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다시 강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무슨 일로 전화 주셨어요?]그녀는 화면을 잠시 응시했지만 강현우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잠시 고민하던 윤하경은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식탁으로 돌아갔다.온지우는 이미 껍질을 깐 새우를 여러 개 그녀의 그릇에 담아 놓았고 그녀가 돌아오자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를 흘끔 쳐다봤다.“뭐 숨기는 거야? 연애하는 거야?”윤하경은 즉각 부인했다.“말도 안 돼.”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온지우는 윤하경의 뒤를 쳐다보며 동시에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강 도련님, 어떻게 오셨어요?”윤하경은 당황했다.“!!!”그녀는 온몸이 굳어 마치 전기가 흐르는 듯 가볍게 떨렸고 멍하니 뒤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설마. 이렇게 우연히 만날 수가 있어? 어디를 가든 만나는 게 나와 강현우 씨는 뭔가 이상한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조금 전 회사에 있다고 했던 게 떠오르자 윤하경은 지금 바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세상에. 누가 좀 구해줘. 난 지금 벼락 끝에 있는 기분이야.’반대편에 있는 강현우는 정말 태연한 모습이었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윤하경을 훑어보며 온지우에게 웃으며 말했다.“방금 누군가를 만난다고 했는데 미인을 만나러 나왔다니 놀랍
윤하경은 정말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온지우는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부드럽게 끌어 강현우 앞으로 데려가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네. 맞아요.”“그럼 가볼까요?”강현우의 시선이 온지우가 잡고 있는 윤하경의 손으로 향하자 그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다.“좋아요.”강현우는 옅은 미소를 띠며 몸을 돌려 앞서 걸었다.뒤따르는 윤하경은 도망칠 수 없었다. 온지우는 마치 그녀가 달아날까 염려하는 듯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온지우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너 방금 강현우 씨와 함께 있었다는 말 왜 안 했어?”온지우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넌 안 물어봤잖아. 우리 유성 그룹이 강한 그룹과 협력할 프로젝트가 있어서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윤하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들은 온지우와 강현우에게 이끌려 비교적 한적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온지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으니 강현우 씨 앞에서 잘 보여야 해. 혹시라도 그가 기분이 좋아지면 바로 너희 한빛 그룹에 투자할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넌 아버지를 밀어내고 한빛 그룹 대표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거야.”윤하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온지우를 흘겨보았다.“그만 좀 해.”그녀는 방금 강현우가 자신을 보고 일부러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앞서 걷는 키가 크고 위압적인 강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이 사람 속셈이 너무 많아.’그녀가 속으로 비난을 퍼붓는 사이 강현우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미처 표정을 가다듬지 못한 그녀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애교스러운 미소로 바꿨다.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 그녀의 섬세한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사랑스러움이 스쳐 갔다.강현우는 눈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왜요? 윤하경 씨, 나한테 불만이라도 있어요?”윤하경은 황급히 손을 저었다.“아니요. 전혀요.”온지우는 의아한 듯 윤하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강현우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며 그의 눈에는 장난기 어린 빛이 반짝였다.윤하경은 정말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온지우는 돌아서서 강현우에게 말했다.“강 대표님, 저희 먼저 가죠. 윤하경은 여자아이니까 민망해할 거예요.”윤하경은 그제야 온지우에게 고마운 눈빛을 보냈다.오늘 처음 온지우를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제야 온지우가 제대로 된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강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자 윤하경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가방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하던 중 휴대폰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돈줄인 강현우였다.[가기만 해봐.]윤하경은 어이없었다.“...”그녀는 잠시 이마를 문지르며 생각한 후 결국 메시지를 하나 작성해 보내기로 했다.[강 대표님께서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오히려 이런 상황일수록 윤하경의 태도는 더욱 겸손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얄팍한 계산으로는 결코 강현우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오늘은 온지우와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건데 오해 없으시라고 그렇게 말한 거예요.]메시지를 보낸 후 강현우는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그녀는 이제 그가 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때 드디어 강현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수영복 입고 뒤뜰로 와.]간단한 몇 마디였지만 그걸 본 윤하경은 화가 날 뻔했지만 그녀는 강현우의 말을 반항할 수 없었다.강현우는 악마처럼 마음이 착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그녀가 반항할수록 더 심한 보복이 돌아올 것을 알았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온지우가 말한 안쪽 방으로 가서 수영복을 갈아입었다.그녀는 원래 보수적인 수영복을 고르려 했지만 이곳의 수영복은 거의 다 너무 섹시한 디자인이었고 고르다 고르다 결국 그녀는 조금 긴 레이스 원피스 수영복을 선택해 입었다.게다가 그녀의 몸매가 뛰어나서 어떤 옷을 입어도 마치 맞춤 제작처럼 잘 어울렸다.거울 속의 자신을 본 윤하경은 이렇게 몸에 딱 맞는 수영복이 오히려 그녀의 몸매를 강조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마치 누군
방 안으로 들어온 건 바로 안현주였다.기세등등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던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윤하경을 훑어보며 비아냥댔다.“또 그 낯짝 두꺼운 친구 대신 고자질하러 온 거예요?”거칠고 모욕적인 말에 윤하경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말조심하세요.”“조심해야 할 건 그 여자죠. 당신 그 잘난 친구가 내 약혼자한테 기웃거리고 있는데, 내가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요?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당신네 쪽부터 조심시키세요.”윤하경은 이를 악물며 침착하게 대꾸했다.“안현주 씨. 당신이 지금까지 한 일들, 전부 불법이라는 거 알고 있죠?”하지만 안현주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그래서요? 그게 뭐 어떻다는 건데요?”그 뻔뻔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걸 억누르며 윤하경이 낮게 말했다.“좋아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시죠.”그녀는 등을 돌려 방을 나가려 했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도 않아 안현주의 목소리가 다시 그녀를 붙들었다.“잠깐.”윤하경이 멈춰서서 돌아보는 순간, 안현주는 차가운 술을 윤하경의 얼굴에 그대로 끼얹었다.“강현우를 등에 업었다고 해서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요. 그 사람, 그냥 잠깐의 호기심으로 당신한테 관심 보인 거예요.”안현주의 눈빛엔 조롱과 경멸이 가득했다.“강현우 씨 맞선녀가 벌써 경성에 도착했단 얘기 못 들었나 보죠? 얼마 안 가서, 당신도 버려지겠네요. 쓰레기처럼.”윤하경의 온몸은 술로 흠뻑 젖었다. 머리부터 가슴까지 흐르는 액체가 그녀의 자존심까지도 타고 흘러내렸다.모욕감에 치를 떨며 반격하려는 찰나, 그녀의 뒤로부터 따뜻한 온기가 다가왔다.안현주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고 목소리가 엉겼다.“강...”그 순간,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강현우가 등장했다.“말은 잘하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더듬어요?”윤하경이 놀란 듯 뒤돌자, 그의 날카로운 턱선이 시야에 들어왔다.안현주는 입술을 달싹이며 식은땀을 흘렸다.‘혹시... 내가 한 말 전부 들은 건가?'그녀는 다급히 태세
우지원은 그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윤하경은 그의 표정을 보고 단박에 알아챘다.‘또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있구나.’“유호천 씨 찾으러 왔어요. 어디 있는지 안내해 줘요.”우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곧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분... 왜 찾으시려는 건가요? 비록 우리 대표님의 사촌이긴 해도 대표님만큼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오히려...”“헛소리 그만해요.”윤하경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강현우는 그렇게 과묵한데, 왜 이런 애를 부하로 두는 건지...'.“우지원 씨. 저번에 한밤중에 저 불러내 놓고 빚졌다고 했던 거 기억하죠? 그런데 지금 이 정도도 못 도와주겠다는 건가요?”우지원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따라오세요.”그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슬쩍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 문자를 보냈다.윤하경은 그걸 알아채지 못한 채 그를 따라갔다.‘헤븐'의 어두운 복도는 여전히 불길했지만 윤하경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 우지원은 한 룸 앞에서 멈춰 섰다.“오늘 그분, 기분이 별로라 혼자 있고 싶다고 하셨어요. 정말 들어가실 건가요?”“됐고, 그만 가요.”더는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아 윤하경은 단숨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어두운 조명 속, 술병과 담배꽁초가 널브러진 가운데 유호천이 홀로 앉아 있었다.그는 마치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손에 쥔 술병을 그대로 던졌다.그 술병은 정확히 윤하경을 향해 날아왔고 뒤따라 들어오던 우지원이 황급히 그녀를 끌어당겼다.우지원의 이마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윤하경이 여기서 다치기라도 하면... 대표님이 날 어떻게 벌을 줄지 상상도 안 가네.’“여자분한테 이렇게 대하는 게 말이 됩니까?”유호천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윤하경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아, 윤하경
단 두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의사는 두 차례나 위급 통지서를 내렸다.소지연은 너무 놀라 울음조차 잊은 채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다행히도, 의료진의 노력 끝에 김미애는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하지만 진료를 마치고 나온 의사는 차갑게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환자는 얼마 전 큰 수술을 받았어요. 흥분하면 절대 안 되는 상태였는데, 가족들은 그런 걸 몰랐던 건가요?”소지연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결국 벽에 기대앉은 채 중얼거렸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윤하경은 그런 지연을 바라보다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의사 선생님, 앞으로는 저희가 더 신중히 조심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환자분 치료에 최선을 다해 주세요. 치료비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의사는 그녀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병실로 돌아온 뒤, 소지연은 여전히 넋이 나간 듯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윤하경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지금 이렇게 자책한다고 뭐가 달라져?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거야?”소지연은 씁쓸하게 웃었다.“아니면 어쩌라고. 안현주는 안씨 가문의 딸이야. 내가 뭘 할 수 있겠어.”그 말에 하경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소지연의 말대로, 안현주 앞에서 소지연은 아무 힘도 없는 존재였다.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소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만 가봐. 엄마 옆엔 내가 있을게.”윤하경이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려던 순간, 소지연이 덧붙였다.“오늘만큼은 엄마랑 단둘이 있고 싶어.”그 말에 윤하경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알겠어. 내일 다시 올게.”윤하경은 병원을 나와 차에 올라탔고 결국 참지 못하고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들었다.원래 오늘은 임수연의 일로 기분이 좋았는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그 기분도 사라졌다.그녀는 핸드폰을 켜 스크롤을 내리던 중, 문득 한 게시물을 보고 눈썹을 치켜올렸다.놀랍게도, 유호천이 게시물을 올린 것이다.사진 속 배경은 어느
윤하경은 입술을 꼭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님, 지연이는 정말 아무 잘못 없어요. 누구의 내연녀도 아니고요."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김미애를 진정시키려 했지만,김미애는 흥분한 채 윤하경을 밀쳐내며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을 가리켰다.“이걸 보고도 아직 그런 말이 나와? 이 사진들을 보라고!”윤하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진을 바라봤다.사진 속에는 소지연과 유호천이 마치 껴안고 있는 듯한 장면이 찍혀 있었다.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곧바로 소지연을 바라봤다.소지연은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우린 정말 그런 사이 아니야. 난 그냥 부축했을 뿐이야.”소지연의 말을 윤하경은 믿을 수 있었다.윤하경은 그 말을 믿을 수 있었다.지연은 단순한 구석은 있었지만, 남자에게 쉽게 빠질 인물은 아니었다.더군다나 유호천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친구인 자신을 속일 이유도 없었다.과거 윤하경이 구지호와 사귀었을 때, 소지연은 옆에서 수없이 그녀에게 남자에게 너무 빠지지 말라고 나무랐었다.‘그런 지연이가 내연녀일 리 없어.'윤하경이 돌아서서 김미애를 차분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윤하경은 차분히 돌아서 김미애를 설득하기 시작했다.“어머님, 이 사진들만 봐선 절대 어머님 말씀처럼 단정 지을 수 없어요. 지연이도 분명히 아니라잖아요. 따님의 말을 믿어주세요.”“남의 말에 너무 휘둘리시면 안 돼요.”소지연은 머리가 복잡해 어찌 설득해야 할지 몰랐고,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난 정말 그런 적 없어. 정말이에요, 엄마. 제발 믿어줘요.”하지만 김미애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확신에 찬 듯한 표정으로 딸과 윤하경을 문밖으로 밀어내더니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엄마, 이 문 좀 열어봐요! 진짜 그런 사이 아니에요!”소지연은 울먹이며 문을 두드렸고 윤하경은 그런 그녀를 껴안아 진정시켰다.“어머님 지금 너무 화가 나신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보자, 응?”눈물범벅이 된 소지연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임수연이 윤씨 집안에서 판을 치며 날뛴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다.이번엔 간신히 그녀의 약점을 쥐게 된 이상, 반드시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다시는 기회를 잡지 못하도록, 완전히 짓눌러버려야 했다.그래서일까, 윤하경은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녀는 가방에서 두툼한 현금을 꺼내 유 집사에게 건넸다.“이건... 감시하는 사람에게 주는 수고비예요.”유 집사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사람이었다. “하경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드릴게요.”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인 뒤, 높은 굽의 힐을 신고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조금 전, 소지연과 통화할 때 분명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목소리 끝에 떨림이 있었고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오랜 친구였기에 윤하경은 소지연이 조금만 달라져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그래서 곧장 차를 몰았다.집에서 병원까지 보통 40분 거리였지만 30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소지연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무슨 일이야?”윤하경은 그녀 옆에 앉으며 물었다.“무슨 일 생긴 거야?”소지연은 훌쩍이며 말했다.“하경아... 나, 같이 집에 좀 가주라.”윤하경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어머니... 무슨 일 생긴 거야?”그녀도 바보는 아니었다. 소지연은 멀쩡해 보였고 집에 가자는 말을 하는 걸 보니 틀림없이 소지연의 엄마 쪽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윤하경은 더 묻지 않고 조용히 소지연을 부축해 병원을 나섰다.집으로 가는 내내 차는 속력을 높였고 도착했을 땐 이미 집 안이 아수라장이었다.온 집안이 엉망진창이었고 마치 도둑이라도 들었던 것처럼, 모든 물건이 마구 뒤엉켜 있었다.소지연의 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두 눈은 허공을 바라본 채, 생기라고는 없었다.“엄마...”그 말에 정신을 차린 소지연의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봤다.소지연의 손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곤,
“나가라고 했지 못 들었어?!”윤수철의 고함이 터지자, 그 기세에 눌려 극심한 기침까지 쏟아졌다.윤하연은 더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그가 ‘쾅’ 소리를 내며 서재 문을 닫고 나서야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몸을 겨우 일으켰다.예전까지만 해도 그런 수모는 늘 윤하경의 몫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모든 게 자신에게 돌아오니 이토록 아플 줄은 몰랐다.입술을 꾹 깨문 채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돌아서자마자 윤하경의 비웃음 섞인 시선과 마주쳤다.윤하연은 이를 악물며 다가와 콱 소리를 내고 물었다.“이제야 속이 시원해?”“내가 아빠한테 맞는 거 보니까 아주 기분 좋지?”윤하경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럼. 말 안 해도 알겠구먼.”윤하연은 이를 악물더니 입술은 터져 피가 맺혀 있었고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런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윤하경에게 외쳤다.“넌 진짜, 악독해.”그 말에 윤하경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찍었다.그러자 윤하연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뭐 하는 거야?”윤하경은 핸드폰을 흔들며 유쾌하게 웃었다.“악독해도, 너처럼 악마 같진 않거든. 내가 너라면 당장 방구석에 처박혀서 아무도 못 보게 숨었을 거야.”사실 윤하연은 외모 자체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저 적당히 단아하고 얌전한 이미지이지만 지금 이 몰골은 딱 사람 놀라게 할 만한 수준이었다.윤하연은 뺨을 붉히며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이번엔 더는 덤벼들지 않았다.윤하경이랑 붙어봤자 이득은커녕, 손해만 늘어나고 괜히 윤수철의 눈 밖에 나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결국 이를 갈며 굽 높은 구두 소리만 요란하게 남긴 채, 그녀는 위층을 내려갔다.윤하경은 그 뒷모습을 흘끗 보고 미소를 짓다가 다시 서재 쪽을 흘끔 바라봤다가, 시선을 내리깔았다.윤수철이 지금 어떤 심정일지 잘 알고 있었다.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고 그 진실을 딸의 손에 들킨 상황. 그건 단순한 분노를 넘어서서 수치심과 자괴감까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그런
윤하경은 시선을 아래로 내려, 땅에 쏟아진 닭고기 국수를 바라봤다. 잠시나마 감정의 파문이 스치듯 일었다.그녀는 짧게 숨을 고르며 지금 당장 윤하연의 뺨을 올려 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더니 그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말했다.“사람 말 못 알아듣겠으면 다시 태어나서 인간 교육부터 받아? 이따위로 창피한 짓 하느니 그냥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윤하연은 이를 악물고 윤하경을 노려봤고 그 여유로운 표정이 더 얄밉고 괘씸했다.“윤하경, 시치미 떼지 마. 오늘 일, 네가 한 짓 맞잖아. 당장 말해. 우리 엄마 어디로 보냈어?”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 바보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구나.’“그렇게 네 엄마 걱정하기 전에 먼저 네가 한빛 그룹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부터 해. 괜히 함께 쫓겨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까 그릇 부순 거, 가격 꽤 나가거든? 나중에 물어주고 나가야 할지도 몰라.”윤하경의 톤은 가볍고 속도는 느긋했지만 말끝마다 날이 서 있었다.그러자 윤하연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냥... 아빠랑 엄마가 싸운 거잖아?” “왜 우리가 쫓겨나야 해?”윤하경은 그녀가 부르는 “아빠”라는 말에 어이없게 웃음이 났다. 자기보다 더 친근하게 부르니 참 볼만했다.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사람의 것까지 아끼게 된다’는 말. 윤수철이 임수연을 얼마나 감싸고 돌았는지, 그 감정이 고스란히 윤하연에게도 이어졌던 것이다.하지만 앞으로 임수연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물론, 윤하연까지 어떤 식으로 정리할지는 윤수철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들었다. “내가 너한테 설명해 줘야 할 의무는 없어.”그리고 고개를 돌려 유 집사를 불렀다. “다시 만들어 주세요. 앞으로 음식 버리는 사람한텐, 밥 안 해도 돼요.”그러곤 윤하연을 싸늘하게 쳐다봤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소파로 돌아가 잡지를 펼쳤다.윤하연은 그런 윤하경을 보며 이를 악물고 있었고 손이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윤하경은 다짐했다. 임수연과 윤수철, 두 사람 모두 자기가 저지른 죗값을 치르는 걸 똑똑히 지켜볼 거라고러야 한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수연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발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경호원들에게 양팔이 붙들려 끌려왔다.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수연은 이제 윤하경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여보, 내 말 좀 들어봐요! 정말, 정말 내가 함정에 빠진 거라니까요! 날 믿어줘요.”어머니를 여읜 사람처럼 목 놓아 우는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소파에 앉아 있던 윤하경은 너무 시끄러운 그 울음에, 손가락으로 귀를 툭툭 쳤다. 듣기 싫을 정도로 참 피곤한 소리였다.그렇게 울부짖는 임수연을 향해, 윤수철은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잠시 후, 약을 챙겨 올라갔던 유 집사가 내려왔다고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어른거렸다.그녀는 등을 곧게 펴고 임수연을 붙잡고 있던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회장님 말씀입니다. 임 여사님은 뒷마당 지하실에 가두라고 하셨습니다.”그러곤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근데 한 명밖에 없네요?”경호원은 임수연을 힐끔 보며 말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땐, 이분 혼자였습니다.”유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처리하세요. 저는 회장님께 다시 보고드릴게요.”그녀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갔고 내려올 땐 아예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리고 슬며시 윤하경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하경 씨,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이 여자가 왜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진 거예요?”윤하경은 그녀를 힐끔 보고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유 집사님, 아는 게 너무 많으면 목숨이 위험해질 텐데요?”유 집사는 머쓱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그냥... 좀 신기해서요.”“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오늘 아직 끝난 게 아니니
“뭐라고요?” 윤하경은 어이가 없어 눈을 깜빡였다.자기 바람피운 아내에게 화낼 생각은 안 하고 바람 들킨 걸 알려준 딸한테 성질을 낸다고?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도무지 아빠라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윤수철은 거친 숨을 내쉬며 현장을 박차고 나갔다.잠시 방 안에 혼자 남은 윤하경은 방바닥에 무릎 꿇고 엉엉 울고 있는 임수연을 바라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줌마, 그럼 전 이만 갈게요.”임수연은 거의 분노로 이성을 잃은 듯 옆에 있던 찻잔을 들어 윤하경을 향해 던졌다. “꺼져! 당장 꺼지라고!”더 이상 감정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그녀의 눈에는 독기만이 가득했다. “너지? 너 아버지 데리고 온 거! 지난번 사진도 너지, 맞지?”윤하경은 무표정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줌마, 이 나이에 화내면 건강에 안 좋아요. 그러다 어디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벌써 조심하셔야죠.” 그녀의 말투는 한없이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조롱은 차갑기만 했다.임수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 너 앞으로 뭘 더 하려는 거야?” 그 말 한마디에 그녀는 뼛속 깊이로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고 윤하경의 말이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았다.하지만 윤하경은 더는 말을 섞을 생각이 없어 무심하게 발걸음을 돌리고 방을 나섰다.그녀와 윤수철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발코니 위에 숨어 있던 유한빈이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슬쩍 빠져나가려는 순간, 임수연이 재빨리 그의 팔을 잡아챘다.“어딜 가?” “그, 그냥 문 좀 닫으려고...” 유한빈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했다.임수연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 지금 도망친다고 끝날 것 같아? 윤수철은 나뿐 아니라 너도 절대 가만 안 둘 거야.”유한빈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럼... 우리 그냥 도망칠까?” “도망?” 임수연은 비웃음을 흘렸다. “세상 끝까지 도망쳐도 쟤가 놓아줄 것 같아?” “해외로 가자고... 유럽 같은 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