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준의 어머니인 서영희는 어렸을 때부터 댄스 강사여서 그런지 몸매가 아름다웠다.그리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두 사람의 성이 같았다.“어머니, 안녕하세요.”강지아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네며 인사했다.그러나 예전의 안 좋은 일들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런지 그녀는 매우 긴장되었다.“너무 예쁘네요.”서영희는 강지아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면서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그런데 꽃보다 지아 씨가 더 예뻐요.”“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서영희가 기뻐하는 모습에 강지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꽃을 사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꽃이 아니라 지아 씨가 더 예쁘다잖아. 바보.”서원준이 장난스레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가 바보야? 우리 지아 씨는 절대 바보가 아니야. 너는 여기에 멀뚱하게 서 있지 말고 빨리 가서 차나 먹을 것 좀 가져와.”서원준은 입을 삐쭉거리다가 금세 활짝 웃었다.“네! 두 미녀분은 이쪽으로 모실게요. 차도 금방 준비해서 가져오겠습니다.”서영희는 강지아의 손을 이끌고 정자 아래로 가서 앉았다.정자는 정원 안에 있었고 그 뒤에는 날카로워 보이는 장미꽃 벽과 앞에는 다양한 꽃들이 펼쳐져 있어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어머니, 혹시 이 꽃들은 다 직접 심은 거예요?”강지아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정원에는 다른 도우미가 없는 것 같아 호기심에 묻게 되었다.“그럼요. 심심해서 취미 삼아 아무렇게나 막 심었는데 벌써 이렇게 큰 정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런데 정원이 너무 커서 이제는 관리하기도 조금 벅차네요. 그러면서 몇몇 품종은 무분별하게 막 자라게 된 거예요.”그러다가 강지아에게 한쪽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예전에는 엄청 깔끔했어요. 그런데 저기 저 차나무 좀 봐요. 몇 달 동안 가지치기를 안 해서 너무 지저분해진 거.”“오히려 더 멋있는데요?”“하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냥 저대로 두고 나중에 너무 안 예쁘면 다시 다듬어주려고요.”이때, 서원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야 강지아는 정원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서영희는 그녀에게 이 저택은 서원준이 사준 집이라고 말하면서 집은 낡았어도 정원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고 했다.“저놈이 원래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정원이 이렇게나 큰데 하루 종일 정리하다 보면 시내에서 사는 것보다 더 바쁘게 살 것 같았거든요.”서영희는 강지아를 힐끔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원준이한테 이 말도 했어요. 나중에 그 애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더라도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고요. 각자 사는 게 서로 마음이 편하잖아요. 그러다가 나중에 아이가 크면 우리 집 정원에 데려와 마음껏 뛰어놀게 하라고 했어요.”서영희도 분명히 강지아와 온씨 가문의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다.그러나 말을 마친 뒤 혹시나 강지아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제가 개도 한 마리 키우는데 엄청 예쁘고 순해요. 보러 갈래요?”강지아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렇게 정원에서 꽃구경도 하고 강아지랑 놀다 보니 서원준의 요리도 다 끝나갔다.사실 이 저택에는 집 청소 및 요리해 주는 도우미가 있었고 청각장애가 있는 운전기사도 따로 있었다.식구가 몇 명 없다 보니 분위기는 화목했다.서영희는 인테리어 해둔 곳곳마다 자기가 직접 만든 작은 꽃바구니를 달아 놓았다.그렇게 즐거운 식사 자리가 시작되었고 줄곧 긴장해 있던 강지아도 서영희와 서원준의 농담에 웃고 떠들다 보니 점점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밥을 다 먹은 뒤 서영희는 강지아를 데리고 위층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그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보석상자 안에서 초록색 팔찌 하나를 꺼냈다.“지아 씨, 이 팔찌는 원준이 외할머니께서 남겨주신 유품인데 지아 씨한테 줄게요.”순간 깜짝 놀란 강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안 돼요.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강지아는 순간 긴장된 얼굴로 팔찌를 바라보더니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한 채 불안에 떨었다.그
서원준의 진지한 태도에 강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왜 차는 멈췄어. 시간도 늦었는데 빨리 가...”“마음이 아팠지?”서원준은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그녀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맞췄다.“온유한 씨랑 현채영 씨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지?”“아니.”강지아는 단칼에 부인했지만 서원준은 믿지 않았다.“아닌데 왜 이렇게 몸을 떨어?”그는 강지아의 한쪽 손을 잡아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지금 지아 씨 자신을 좀 봐봐. 얼마나 떨고 있나.”강지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답했다.“그런 게 아니니까 빨리 출발해.”서원준은 여전히 거짓말하는 강지아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뭐가 그런 게 아닌데? 안 떨었다는 거야, 아니면 이제 온유한은 잊었다는 거야?”강지아는 그의 말에 발끈 화를 냈다.“아니라면 아닌 줄 알아!”그리고는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이거 놔. 그냥 나 혼자 갈게.”서원준은 그녀의 어깨를 너무 세게 잡은 나머지 뼈가 다 으스러질 것 같았다.“제발 정신 좀 차려. 세상에는 온유한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야. 지아 씨한테 안정감도 주지 못하고 사랑도 주지 못하는데 대체 뭐가 아쉬워서 아직도 그런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어?”그의 입에서 자꾸 들리는 온유한이라는 단어에 강지아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그만 말하라고!”그러나 서원준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말도 못 해? 대체 온유한 씨는 당신한테 어떤 존재인 거야?”비록 오늘 저녁 식사 자리는 매우 순조로웠지만 서원준은 만족하지 못했다.서영희가 그토록 강지아를 마음에 들어 하는데도 여전히 경계심이 있어 보이는 건 분명 예전에 온유한과 함께 했을 때의 그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다는 뜻이다.“지아 씨, 나한테도 기회를 줘. 우리 같이 노력해서 내가 온유한을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서원준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시선을 맞췄다.“날 봐!”“나도 더 이상 기다리기 싫어졌어. 나는 원래 비열하고 욕심도 많아서 지아 씨랑 같이 있고
“왜 이렇게 빨리 왔어?”강지찬과 정유진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정유진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이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그제야 강지아는 소파 위의 강지찬과 새언니를 보고 자신이 집을 잘못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왕 온 김에 그녀는 쿠션을 안고 아예 소파에 앉아버렸고 잠깐 생각을 정리한 뒤에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이때, 강지찬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서원준 씨 어머니 만나러 갔어?”“응.”“어땠어?”“좋았어.”강지찬은 순간 어두운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원준 씨는 분명 자기 어머니가 너를 매우 좋아할 거라고 장담했었는데 설마 또 그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니지?”저 ‘또’라는 말이 그녀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그러다가 정유진이 강지아의 손목에 찬 팔찌를 발견하고 웃으며 말했다.“가보도 준 걸 보면 마음에 든 것 같은데?”강지아는 팔찌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 시각, 온씨 가문의 최신애도 지금 할 말을 잃었다.술에 잔뜩 취한 온유한을 현채영과 운전기사가 부축해서 데려왔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입으로는 계속 큰 소리로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제...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 테니까 저랑 결혼... 해줘요.”그리고 현채영은 옆에서 그의 말에 대답을 해줬다.“네. 알겠으니까 우리 꼭 결혼해요.”최신애는 듣다가 화가 치밀어 올라 죽을 것 같았다.“우리 아들을 꼬드겨서 또 어디에 갔던 거야?”“그저 같이 술을 마셨을 뿐이에요.”“멀쩡했던 우리 아들이 너 때문에 하루가 멀다고 술에 절어있어. 유한이는 의사야. 수술하는 의사라고!”최신애는 현채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진짜 유한이를 망치려고 작정했어?”그녀의 말에 현채영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유한 씨는 지금 저랑 같이 있는 게 너무 행복하대요. 저랑 하루 종일 술도 마시고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또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어머니께서 바라왔던 지난날들
이튿날, 온유한은 점심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마침 온혁진이 화가 잔뜩 난 채 최신애한테 분풀이하고 있었다.“내가 임유희랑 잘 이야기해 보라고 했는데 갔어, 안 갔어? 지금 임씨 가문의 사람들이 내 전화는 아예 받지도 않는데 이거 어떡할래?”최신애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대체 뭐 하자는 거지? 설마 지금 강지찬 따라 하는 건가?’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고 말했다.“만나러 갔는데 임유희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그 애 어머니한테 쫓겨났어요. 그래서 밖에 나와서 차 한잔 마시자고 문자를 몇 통이나 보냈는데도 답장이 없었고요.”말을 마친 뒤 문자 메시지를 그에게 보여줬는데 확실히 아무런 답장도 받지 못했다.이때, 온혁진이 위층에서 내려오는 온유한에게 말했다.“유한아, 네가 임씨 가문에 좀 가봐.”“싫어요.”온유한은 고민도 안 하고 단칼에 거절했다.그러자 최신애가 재빨리 다가와 그에게 설명했다.“우리랑 협력하는 사람들은 전부 임씨 가문의 그 부자 말만 듣는대. 만약 그들이 짜고 돈을 보내지 않으면 공장과 실험실은 올스톱이야. 아들아, 유희는 분명 너라면 만나줄 것 같은데 둘이서 잘 이야기해 봐.”온유한은 듣다 보니 최신애의 행동이 너무 우스웠다.“왜 제가 임씨 가문에 찾아가서 그 사람들을 만나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이 태안 그룹이 나중에는 다 네 것이 되는데 상관 안 할 거야?”“네. 전 싫어요.”온유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어머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게 다 하찮게만 여겨지거든요.”“뭐라고?”최신애는 그의 대답이 너무 충격적이라 뒤로 주춤했다.온유한은 어젯밤 술의 기운이 아직도 도는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일부러 독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온씨 가문이 그리 대단해 보여요? 그러면 무조건 제 발로 짓밟아야겠네요.”“당신 아들인 제가 그리도 대단해 보여요? 그러면 무조건 막 살아야겠네요.”“온씨 가문도, 저도 모두 죽어버리면 더 이상 어떻게 어머니의 그 고귀
변호사 사무소에서 나오자 정유진은 다리가 풀린 채 주저앉을 뻔했다.“아가씨 죄송합니다. 약혼남 사건은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강 씨 가문과 연관이 돼 있는 한 서울 그 어디에도 이 사건을 맡으려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미리 치른 선금까지 그대로 돌려주겠다며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두려워하는 모습은 유진을 깊은 심연으로 빠트렸다.유진과 약혼남 한빈은 대학교 시절부터 만나온 사이였다. 한빈의 사업을 옆에서 지지해주며 드디어 회사를 어느 정도 규모로 키워냈고 둘의 결혼도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시점에 누군가가 회사의 자금 운용에 문제가 있다고 고발했고 한빈은 검찰에 소환된 채 회사 역시 록다운 상태가 되었다.그들의 눈앞에 아른거리던 행복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배후 세력은 강 씨 가문이었다.서울에서 제일가는 재벌에 기침 한 번이면 서울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강 씨 가문이었다.유진은 차를 끌고 한빈을 만나러 구치소로 향했다. 며칠을 잠조차 제대로 못 잔 듯 퀭했고 수염마저 거뭇거뭇한 것이 전에 보던 위풍당당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유진을 보자마자 한빈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때, 유진아? 변호사는 뭐라고 했어?”유진은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 변호사들이 최선을 다해줄 거야.”“거짓말하지 마!” 한빈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강 씨 가문이 꾸민 일이야, 온 서울에 우리를 위해 변호해 줄 사람이 없는 거 맞지?”한빈이 눈치챌 줄 몰랐던 유진은 어쩔 수 없이 답했다.“... 변호사가 선금을 모두 돌려줬어. 강 씨 가문을 건드리는 사건이라고…”한빈이 큰 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강 씨 가문이 일부러 그런 거야. 우리 회사를 집어삼키려고 의도적으로 날 함정이 빠트린 거지. 유진아 날 믿어줘, 난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도 알잖아. 내가 왜 자금 세탁 같은 일을 하겠어?”유진이 답을 주기도 전에 한빈이 급하게 덧붙였다.“날 구할 방법이 하나 있어. 네 도
모든 사람이 강지찬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약혼자?” 강지찬은 잠시 생각하다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누구죠?”강지찬의 시선이 빤히 유진의 얼굴에 머물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게 느껴졌다.“한빈 씨요.”강지찬은 이제야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렇군요.”그는 꼬았던 다리를 풀더니 고개를 들었다. 분명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상위 포식자 같은 압박감에 유진은 다리가 후들거렸다.“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얼음장같이 차가운 표정은 그녀의 몇 마디 사정에 쉽게 먹잇감을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정유진은 용기를 내 강지찬과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제 예비 신랑을 놔주신다면 뭐든 할게요.”누군가가 피식 비웃었다.“혼자 드라마 찍네. 뭐든 하겠다니, 제까짓 게 대표님한테 뭘 도와줄 수 있다는 거야?”“그냥 꺼져버리지, 여기서 흥이나 깨고 있지 말고. 대표님이 구구절절 매달리는 여자를 제일 싫어하는 거 모르나 봐?”그때, 예상밖에 강지찬이 입을 열었다.“더는 마시고 싶지 않네요.”추호의 흔들림 없는 시선이 유진의 얼굴에 닿았다.“이 술들 다 마셔줘요.”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예전 같으면 정유진 같은 여자는 일찌감치 내쫓았을 것이 분명한데 오늘 강지찬은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유진이 테이블을 확인하자 역시나 손도 대지 않은 몇 병의 양주가 놓여있었다.이걸 다 마시면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위에 출혈이라도 생기겠지?하지만 7년 동안 사랑한 약혼자를 생각하며 유진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그녀는 단호한 눈빛으로 강지찬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이 술을 다 마시면 그이는 봐주시는 건가요?”“그러죠.”모두의 경악한 눈빛 속에서 정유진은 술병을 움켜쥐고 들이붓기 시작했다.강지찬의 차디찬 눈빛이 언뜻 흔들렸다. 유진이 진짜로 마실 줄 생각지 못한듯했다.그 남자가 뭐라고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로 뛰어드는지, 그 정도로 사랑하는 것일까?쉬지 않고 들이붓는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며 강지찬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잠에서 깨자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파왔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유진은 갑자기 한 대 맞은 듯 그대로 멍해졌다.그녀의 시선이 벌거벗은 가슴팍과 마주쳤고 그대로 시선을 위로 올리자 충격에 휩싸였다.강지찬이었다.아려오는 몸이 어제 강지찬과 자버렸다고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강지찬은 그녀의 당황스럽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침대에서 내려왔다.넓은 어깨에 좁은 골반, 모두가 말하는 이상적인 몸매였지만 지금 유진의 눈에는 등에 가득한 붉은 손자국밖에 보이지 않았다.유진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손에 집히는 대로 샤워 타올을 집어 허리춤에 묶은 강지찬이 확 커튼을 열어젖히자 방이 환해지며 유진의 엉망이 된 몰골이 드러났다.“왜 그랬어요?” 유진은 멘탈을 잡지 못한 채 소리 질렀다. “쓰레기야 당신!”그냥 술만 마시면 된다고 했잖아!강지찬은 조롱의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말했다.“한빈은 이미 집에 있을 거예요.”유진은 흠칫 놀라더니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았다.강지찬은 그녀의 턱을 잡고는 물었다.“당신이 원한 건 다 해줬잖아요. 왜 울어요?”“전... 전 당신이랑...”강지찬이 사악하게 웃었다.“먼저 나랑 자겠다고 찾아왔는데, 들어주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죠?”정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이불이 스르르 떨어지며 드러난 뽀얀 가슴팍에는 어젯밤 사랑의 흔적이 가득 남아있었다.강지찬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보더니 옷을 갈아입고는 바로 떠났다.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의현이 나오는 지찬을 보고는 음흉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쯧쯧, 독특한 취향이 있었네. 그 많은 여자는 쳐다도 안 보더니 다른 남자 부인이 좋은 거야?”강지찬은 헛웃음을 쳤다. “다른 남자 부인?”“그럼 네 부인이겠냐?” 의현이 훈계를 시작했다.“유진 씨와의 스캔들이 이미 한빈 귀에 들어갔을 거야. 결혼 준비까지 하는 마당에 혼사는 엎어졌다고 봐야겠지.”강지찬이 대꾸하기도 전에 의
이튿날, 온유한은 점심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마침 온혁진이 화가 잔뜩 난 채 최신애한테 분풀이하고 있었다.“내가 임유희랑 잘 이야기해 보라고 했는데 갔어, 안 갔어? 지금 임씨 가문의 사람들이 내 전화는 아예 받지도 않는데 이거 어떡할래?”최신애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대체 뭐 하자는 거지? 설마 지금 강지찬 따라 하는 건가?’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고 말했다.“만나러 갔는데 임유희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그 애 어머니한테 쫓겨났어요. 그래서 밖에 나와서 차 한잔 마시자고 문자를 몇 통이나 보냈는데도 답장이 없었고요.”말을 마친 뒤 문자 메시지를 그에게 보여줬는데 확실히 아무런 답장도 받지 못했다.이때, 온혁진이 위층에서 내려오는 온유한에게 말했다.“유한아, 네가 임씨 가문에 좀 가봐.”“싫어요.”온유한은 고민도 안 하고 단칼에 거절했다.그러자 최신애가 재빨리 다가와 그에게 설명했다.“우리랑 협력하는 사람들은 전부 임씨 가문의 그 부자 말만 듣는대. 만약 그들이 짜고 돈을 보내지 않으면 공장과 실험실은 올스톱이야. 아들아, 유희는 분명 너라면 만나줄 것 같은데 둘이서 잘 이야기해 봐.”온유한은 듣다 보니 최신애의 행동이 너무 우스웠다.“왜 제가 임씨 가문에 찾아가서 그 사람들을 만나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이 태안 그룹이 나중에는 다 네 것이 되는데 상관 안 할 거야?”“네. 전 싫어요.”온유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어머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게 다 하찮게만 여겨지거든요.”“뭐라고?”최신애는 그의 대답이 너무 충격적이라 뒤로 주춤했다.온유한은 어젯밤 술의 기운이 아직도 도는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일부러 독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온씨 가문이 그리 대단해 보여요? 그러면 무조건 제 발로 짓밟아야겠네요.”“당신 아들인 제가 그리도 대단해 보여요? 그러면 무조건 막 살아야겠네요.”“온씨 가문도, 저도 모두 죽어버리면 더 이상 어떻게 어머니의 그 고귀
“왜 이렇게 빨리 왔어?”강지찬과 정유진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정유진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이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그제야 강지아는 소파 위의 강지찬과 새언니를 보고 자신이 집을 잘못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왕 온 김에 그녀는 쿠션을 안고 아예 소파에 앉아버렸고 잠깐 생각을 정리한 뒤에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이때, 강지찬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서원준 씨 어머니 만나러 갔어?”“응.”“어땠어?”“좋았어.”강지찬은 순간 어두운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원준 씨는 분명 자기 어머니가 너를 매우 좋아할 거라고 장담했었는데 설마 또 그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니지?”저 ‘또’라는 말이 그녀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그러다가 정유진이 강지아의 손목에 찬 팔찌를 발견하고 웃으며 말했다.“가보도 준 걸 보면 마음에 든 것 같은데?”강지아는 팔찌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 시각, 온씨 가문의 최신애도 지금 할 말을 잃었다.술에 잔뜩 취한 온유한을 현채영과 운전기사가 부축해서 데려왔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입으로는 계속 큰 소리로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제...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 테니까 저랑 결혼... 해줘요.”그리고 현채영은 옆에서 그의 말에 대답을 해줬다.“네. 알겠으니까 우리 꼭 결혼해요.”최신애는 듣다가 화가 치밀어 올라 죽을 것 같았다.“우리 아들을 꼬드겨서 또 어디에 갔던 거야?”“그저 같이 술을 마셨을 뿐이에요.”“멀쩡했던 우리 아들이 너 때문에 하루가 멀다고 술에 절어있어. 유한이는 의사야. 수술하는 의사라고!”최신애는 현채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진짜 유한이를 망치려고 작정했어?”그녀의 말에 현채영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유한 씨는 지금 저랑 같이 있는 게 너무 행복하대요. 저랑 하루 종일 술도 마시고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또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어머니께서 바라왔던 지난날들
서원준의 진지한 태도에 강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왜 차는 멈췄어. 시간도 늦었는데 빨리 가...”“마음이 아팠지?”서원준은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그녀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맞췄다.“온유한 씨랑 현채영 씨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지?”“아니.”강지아는 단칼에 부인했지만 서원준은 믿지 않았다.“아닌데 왜 이렇게 몸을 떨어?”그는 강지아의 한쪽 손을 잡아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지금 지아 씨 자신을 좀 봐봐. 얼마나 떨고 있나.”강지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답했다.“그런 게 아니니까 빨리 출발해.”서원준은 여전히 거짓말하는 강지아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뭐가 그런 게 아닌데? 안 떨었다는 거야, 아니면 이제 온유한은 잊었다는 거야?”강지아는 그의 말에 발끈 화를 냈다.“아니라면 아닌 줄 알아!”그리고는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이거 놔. 그냥 나 혼자 갈게.”서원준은 그녀의 어깨를 너무 세게 잡은 나머지 뼈가 다 으스러질 것 같았다.“제발 정신 좀 차려. 세상에는 온유한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야. 지아 씨한테 안정감도 주지 못하고 사랑도 주지 못하는데 대체 뭐가 아쉬워서 아직도 그런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어?”그의 입에서 자꾸 들리는 온유한이라는 단어에 강지아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그만 말하라고!”그러나 서원준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말도 못 해? 대체 온유한 씨는 당신한테 어떤 존재인 거야?”비록 오늘 저녁 식사 자리는 매우 순조로웠지만 서원준은 만족하지 못했다.서영희가 그토록 강지아를 마음에 들어 하는데도 여전히 경계심이 있어 보이는 건 분명 예전에 온유한과 함께 했을 때의 그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다는 뜻이다.“지아 씨, 나한테도 기회를 줘. 우리 같이 노력해서 내가 온유한을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서원준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시선을 맞췄다.“날 봐!”“나도 더 이상 기다리기 싫어졌어. 나는 원래 비열하고 욕심도 많아서 지아 씨랑 같이 있고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야 강지아는 정원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서영희는 그녀에게 이 저택은 서원준이 사준 집이라고 말하면서 집은 낡았어도 정원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고 했다.“저놈이 원래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정원이 이렇게나 큰데 하루 종일 정리하다 보면 시내에서 사는 것보다 더 바쁘게 살 것 같았거든요.”서영희는 강지아를 힐끔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원준이한테 이 말도 했어요. 나중에 그 애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더라도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고요. 각자 사는 게 서로 마음이 편하잖아요. 그러다가 나중에 아이가 크면 우리 집 정원에 데려와 마음껏 뛰어놀게 하라고 했어요.”서영희도 분명히 강지아와 온씨 가문의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다.그러나 말을 마친 뒤 혹시나 강지아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제가 개도 한 마리 키우는데 엄청 예쁘고 순해요. 보러 갈래요?”강지아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렇게 정원에서 꽃구경도 하고 강아지랑 놀다 보니 서원준의 요리도 다 끝나갔다.사실 이 저택에는 집 청소 및 요리해 주는 도우미가 있었고 청각장애가 있는 운전기사도 따로 있었다.식구가 몇 명 없다 보니 분위기는 화목했다.서영희는 인테리어 해둔 곳곳마다 자기가 직접 만든 작은 꽃바구니를 달아 놓았다.그렇게 즐거운 식사 자리가 시작되었고 줄곧 긴장해 있던 강지아도 서영희와 서원준의 농담에 웃고 떠들다 보니 점점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밥을 다 먹은 뒤 서영희는 강지아를 데리고 위층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그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보석상자 안에서 초록색 팔찌 하나를 꺼냈다.“지아 씨, 이 팔찌는 원준이 외할머니께서 남겨주신 유품인데 지아 씨한테 줄게요.”순간 깜짝 놀란 강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안 돼요.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강지아는 순간 긴장된 얼굴로 팔찌를 바라보더니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한 채 불안에 떨었다.그
서원준의 어머니인 서영희는 어렸을 때부터 댄스 강사여서 그런지 몸매가 아름다웠다.그리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두 사람의 성이 같았다.“어머니, 안녕하세요.”강지아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네며 인사했다.그러나 예전의 안 좋은 일들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런지 그녀는 매우 긴장되었다.“너무 예쁘네요.”서영희는 강지아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면서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그런데 꽃보다 지아 씨가 더 예뻐요.”“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서영희가 기뻐하는 모습에 강지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꽃을 사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꽃이 아니라 지아 씨가 더 예쁘다잖아. 바보.”서원준이 장난스레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가 바보야? 우리 지아 씨는 절대 바보가 아니야. 너는 여기에 멀뚱하게 서 있지 말고 빨리 가서 차나 먹을 것 좀 가져와.”서원준은 입을 삐쭉거리다가 금세 활짝 웃었다.“네! 두 미녀분은 이쪽으로 모실게요. 차도 금방 준비해서 가져오겠습니다.”서영희는 강지아의 손을 이끌고 정자 아래로 가서 앉았다.정자는 정원 안에 있었고 그 뒤에는 날카로워 보이는 장미꽃 벽과 앞에는 다양한 꽃들이 펼쳐져 있어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어머니, 혹시 이 꽃들은 다 직접 심은 거예요?”강지아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정원에는 다른 도우미가 없는 것 같아 호기심에 묻게 되었다.“그럼요. 심심해서 취미 삼아 아무렇게나 막 심었는데 벌써 이렇게 큰 정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런데 정원이 너무 커서 이제는 관리하기도 조금 벅차네요. 그러면서 몇몇 품종은 무분별하게 막 자라게 된 거예요.”그러다가 강지아에게 한쪽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예전에는 엄청 깔끔했어요. 그런데 저기 저 차나무 좀 봐요. 몇 달 동안 가지치기를 안 해서 너무 지저분해진 거.”“오히려 더 멋있는데요?”“하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냥 저대로 두고 나중에 너무 안 예쁘면 다시 다듬어주려고요.”이때, 서원
그러다가 문득 자기 접시에 깐 새우가 하나 있는 걸 발견했다.서원준은 국도 한 그릇 떠서 강지아의 앞에 놓아줬다.“밥을 잘 먹어야 해.”강지아는 이미 배불렀지만 그가 떠준 국은 다 마셨다.그리고 서원준의 차를 타고 강씨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와서야 그녀는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지아 씨, 내가 출장 가기 전에 했던 말은 아직 기억하지?”“무슨 말?”서원준이 그녀의 이마를 살짝 때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갔다 오면 나랑 같이 만날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잊었어?”강지아는 이마를 어루만지더니 그제야 생각나는 듯했다.“누구야?”“내일 오후 다섯 시쯤에 데리러 올게. 그때 되면 알게 될거야.”“...”강지아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되물었다.“꼭 만나야 해?”서원준이 눈썹을 들썩거리며 답했다.“당연하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고 그저 나랑 같이 놀러 간다고 생각해.”“안 가면 안 될까?”“안 돼! 안 가면 업고라도 데려갈 거야.”“...”이튿 날 오후, 서원준은 때를 맞춰 데리러 왔다.그는 평상시보다 훨씬 편한 차림이었는데 티셔츠에 5부 데님 반바지를 입었다.이런 옷차림을 강지아는 처음 보는 거라 자신이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싶기도 했다.‘혹시 서원준 씨 어머니를 뵈러 가자는 건 아니겠지?’강지아도 그에 어울리게 편한 차림으로 입었다.그러나 차는 점점 시내를 벗어나고 시외 쪽으로 가고 있었다.“대체 누구를 만나는 거야? 난 아무 선물도 준비 못 했어.”강지아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다시 물었다.누구를 만나든 분명 서원준과 관련이 있는 사람일 텐데 어르신이면 빈손으로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걱정하지 마. 이따 가는 길에 대충 아무거나 사면 되니까.”“...”서원준의 대답에 그녀는 더 이상 물어도 알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차는 도시를 떠나 꽃들이 만발한 어느 꽃가게에 도착했는데 서원준은 차에서 내리더니 어느 한 화분을 가리키며 강지아에게 말했다.“하나 골라.”강지아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공항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았던지라 서원준의 행동은 단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내려줘.”강지아는 화가 나기보다 어이가 없었다.“보는 눈이 너무 많아.”“볼 테면 보라 그래. 내 여자 친구를 내가 안겠다는데 누가 뭐라 그러겠어?”서원준은 말을 마친 뒤 턱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동하민에게 말했다.“짐은 뒤에 있어요.”말을 마친 뒤 그대로 강지아를 안고 자리를 떴다.오늘 유난히 들떠 보이는데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서원준은 곧바로 집에 가지 않고 강지아를 데리고 예약해 둔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갔다.그리고 두 사람만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특별히 동하민에게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 뒀다.동하민은 어쩌다 먹어보는 호화로운 저녁에 주스를 마시다가 참지 못하고 SNS에 사진을 올려 자랑했다.[사장님과 맛있는 식사. 회사 복지가 아주 굿굿.]그리고 아홉 장을 꽉 채워서 음식과 아름다운 야경 사진까지 올렸다.멀지 않은 창가 자리에서 서원준은 눈앞에 앉은 여자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그 눈빛은 너무 강렬했고 그의 눈에는 강지아, 오직 그녀만 보였다.그러다가 문득 네모반듯 한 케이스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자 강지아는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서원준은 케이스를 열어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반지가 아니니까 긴장하지 마.”케이스 안에는 예쁜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반짝이고 있었고 강지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예뻐?”“응.”마침 강지아는 오늘 귀걸이를 안 하고 나왔는데 서원준은 재빨리 귀걸이를 가지고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그의 손끝이 너무 뜨거웠는지 강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움직이지 마.”“나 처음으로 여자한테 이런 걸 해줘서 자칫하면 찌를 수 있어.”그의 말에 강지아는 그제야 얌전히 앉아서 서원준의 손길을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는지 서원준의 향수 냄새가 빠르게 그녀의 코를 간지럽혔는데 참으로 사람에게 안전감을 주는 동시에 남자 매력이 흠씬 풍기는 냄새였다.그러나 여전히
온유한과 현채영이 떠나간 뒤 최의현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표정이 최신애와 다를 바 없었다.“그냥 이렇게 끝나는 거야?”결과가 너무 허탈하고 온유한의 태도에 놀랐다.한규진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이런 상황을 보고도 설마...”강지찬도 한껏 어두운 얼굴로 자리를 뜨면서 속으로 생각했다.‘겨우 이거야? 지아랑 비교하면 저건 아무것도 아닌데.’최신애는 화병으로 결국 병원에 실려 갔다.온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바짝 독이 올라와 있었고 깨어나서도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또 한차례의 검사를 받게 되었다.집안일에는 여태껏 신경조차 쓰지 않던 온혁진도 어젯밤 이야기를 듣고 불같은 화를 냈다. 그러다가 최신애의 행동을 먼저 꾸짖었다.“아직도 모르겠어? 유한이는 지금 일부러 당신 말을 안 듣는 거야. 당신이 강지아랑 그 애를 갈라놓는 바람에 지금 일부러 저런 수준의 여자를 데려와서 심기를 건드리는 거라고.”“예전에 지아를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지? 그 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지금 그나마 유명해지고 온씨 가문에서도 많이 도와줘서 이 바닥에서는 지금 우리 가문이랑 혼인을 맺으려고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는데 괜히 당신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 바람에 우리도 마음 편히 살지 못하고 있잖아.”최신애는 이마를 짚고 그에게 반박했다.“지금 제 탓을 하는 거예요? 그럼 그때 당신은 뭐 하고 있었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봐요. 3년 전에 당신도 강지아를 엄청 싫어했잖아요.”정곡을 찔린 온혁진은 최신애의 말을 인정하기 싫어 버럭 화를 냈다.“여태껏 집안일은 항상 당신이 결정했고 분명 자기 실수로 집안일이랑 회사까지 말아먹게 만들고는 지금 남 탓만 하고 있잖아. 임씨 가문의 일은 무조건 빨리 해결해야 해. 만약 그 사람들이 손잡고 자금을 지원하지 않는 거로 결론이 나면 우리 쪽에서 준비한 새 프로젝트는 망하는 건 물론이고 손실도 어마어마할 테니까.”최신애는 그의 입에서 임씨 가문이라는 단어를 듣
최신애는 반평생 살면서 오늘 처음으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고고한 이미지를 다 내려놓은 채 마치 미친 사람처럼 싸워봤다.그리고 온유한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더욱 흥분해서 그에게 물었다.“봐봐, 네가 좋아한다던 여자가 지금 어떤 꼴인지. 더 할 말이 있어?”온유한은 그저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는데 침대는 이미 엉망진창으로 된 채 바닥에는 뜯긴 콘돔이 널려져 있었다.그러나 그는 아주 덤덤하게 현채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샤워 가운을 다시 입혀준 뒤 머리도 뒤로 넘겨주며 다정하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 없어요?”현채영은 재빨리 답했다.“아니요.”“그럼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요.”온유한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최신애는 자기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온유한의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끄, 끝이야?”그리고 온유한을 잡고 헝클어진 침대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저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안 보이냐고! 현장까지 잡은 마당에 넌 아무렇지도 않아?”그러나 온유한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이건 저랑 채영 씨 사이의 문제니까 상관하지 마세요.”“온유한!”최신애는 복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렇게 변했어?”온유한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답했다.“지태주 씨와의 일은 채영 씨가 나중에 해명할 겁니다. 저는 저 사람을 믿거든요.”“아직도 믿는다고?”최신애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두 눈으로 직접 다른 남자랑 침대에서 뒹군 꼴을 보고도 믿을 수 있어?”“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죠.”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지태주는 히죽거리며 그에게 말했다.“온 대표님은 정말 좋은 남자의 표본인 것 같네요.”그의 말에 온유한이 그를 힐끔 쳐다보자 지태주도 같이 매섭게 쏘아보았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해서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같았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미쳤어, 진짜 미쳤어.”계획대로라면 오늘 밤 현채영을 바로 쫒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