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여론은 일시 잠잠해졌고 서원준도 더 이상 저격하지 않았다.어차피 방송도 해야 하기에 주유정을 너무 저격하면 방송 효과에도 좋지 않다.다음 방송이 시작되자 주유정은 루비로 팬들을 매료시켰다.특히 보석의 가치를 소개하자 누리꾼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했다.[주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이런 보석을 구매할 수가...][너무 예뻐서 눈이 부셔요.][주얼리 디자이너가 정말 고급스러운 직업이네요.][주 선생님 옆에 있는 주민희는 바보 같아요. 강지아와 한 팀일 때는 그래도 하녀 같긴 했는데 여기 와서는 아무것도 못 하네요.][주민희는 개그 담당 아니에요?][하미소는 어느 팀이든 잘 어울리는데 주민희는 어느 팀에 있든 쓸모없는 것 같아요.]주민희의 안티팬이 들어오면서 댓글 창은 다시 팬들과 안티팬의 싸움판이 되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드디어 본인이 여론에서 빠졌다고 생각했지만 몇몇 네티즌들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강지아와 주유정을 같이 언급하며 비교하기 시작했다.두 사람의 외모, 능력을 비교하더니 주유정이 강지아보다 낫다고 결론지었다.주유정은 어릴 때부터 학교의 퀸카였었고 유치원 때도 가장 예쁜 아이였다.하지만 강지아보다 더 뛰어나다고 하면 우선 강지아의 팬들이 허락하지 않았다.[강지아는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이야.][우리 지아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국내 패션계의 원톱들이야. 누가 더 훌륭한데?][주 선생님, 굳이 어린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어요! 같은 나이대의 프로들과 비교해봐요. 얼마나 훌륭한지!]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주얼리 디자이너가 주유정보다 더 어리다. 그런데 누구와 비교를 한단 말인가?처음 몇 번의 일 때문에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서원준은 계속 모니터링 했다.인터넷상의 여론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을 보고는 손을 쓰지 않았다.방송이 끝난 후, 갑자기 ‘강지아 학력’이 실검에 오르내리게 되었다.누군가가 나서서 강지아를 적발했다. 그녀가 학교에 다니지 않고 대학 졸업장도 돈으로 산 것이라고 말이다.게다가
온유한이 주유정을 찾아간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오빠를 찾아간 것인지 강지아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일단 차를 몰고 곧장 주유정의 집으로 향했다.주유정이 잔꾀를 부려 초반에 성공한 것 같으니 지금쯤 흥분해서 잠이 안 오겠지?별장 안은 캄캄하고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주유정이 집에 없다고?차 전조등을 끄고 잠깐 기다리고 있을 때 검은색 승용차가 별장 문 앞에 멈춰 섰다.차에서 남자와 여자 한 명씩 내렸다.남자는 강지아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여자는 주유정이다.강지아가 두 사람의 관계를 궁금해하고 있을 때 그 남자는 주유정을 끌어안더니 차 문에 밀고는 바로 키스를 퍼부었다.주유정은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목을 껴안았고 심지어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상대방을 문지르기까지 했다.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강지아는 당황하지 않고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온유한과 같이 오지 않은 것이 유감일 뿐이다.여태껏 주유정이 본인을 저격한 원인이 온유한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강지아는 이참에 확실히 얘기를 하려 했다.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주유정은 온유한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절대!사진을 찍은 뒤 강지아는 시동을 걸고 자리를 떴고 주차한 위치가 그나마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 애정행각에 빠진 커플을 방해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강지아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주유정과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최신애가 자신을 싫어하고 온유한과 본인 사이에 주유정이 끼어있는 것이 생각만 해도 껄끄러웠다.그런데 왜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겠는가?장형준에게 전화를 걸어 상대방에게 차 번호를 확인해달라고 했고 장형준은 두말없이 승낙했다.“지아의 전화야?”장형준과 가까운 곳에 있던 온유한이 휴대전화 너머로 지아의 목소리를 들었다.“네, 아가씨가 차 번호 알려주면서 차 주인에 대해 상세하게 알아봐 달라고 해서요. 아가씨가 지금 운전 중인 것 같아요.”온유한이 순간 미간을 찌푸리자 강지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절대 지아의 옛날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면 안 돼.
“어젯밤에는 지찬 오빠를 만나러 간 거야?”아침을 먹는 강지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었다.온유한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실검 봤어?”“응.”사실 강지아는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어젯밤에 주유정을 찾아간 것도 온유한 때문이다.하지만 온유한이 자기편이라는 생각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주유정이 바보지! 이런 남자를 버리다니!“그 사진들이 오빠 손에서 나온 거 알면 주유정이 기절할 거야.”온유한은 강지아에게 만두를 집어주며 말했다.“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어.”주유정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두 여자에게 상처를 줬다. 친엄마가 주유정에게 놀아난 것만 생각하면 온유한은 분통이 터졌다.“빨리 그만하고 물러났으면 좋겠어.”강지아가 말했다.만약 주유정이 여기서 멈추고 더 이상 수작을 부리지 않는다면 강지아도 그녀를 놓아줄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한술 더 떠서...그때 온유한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지아가 고개를 힐끗 들어 바라보니 최신애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온유한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받기 싫은 얼굴을 하자 강지아가 말했다.“받아.”온유한은 어쩔 수 없이 받았다. 하지만 미처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최신애가 전화기 너머에서 소리쳤다.하지만 최신애의 호통에 온유한은 그저‘네’라고만 대답하다가 전화를 끊었다.“오빠더러 오래?”강지아가 물었다.“응.”“내가 같이 갈게.”온유한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아까부터 그는 왠지 강지아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처럼 그를 차갑게 대하지도 않았다.마치 두 사람의 예전 상태로 돌아간 것 같았다.온씨 저택.식탁에는 아침 식사와 그릇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보아하니 온혁진 혼자만 아침을 먹었고 최신애와 주유정은 먹지 않은 것 같다.온유한이 강지아와 함께 온 것을 본 최신애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왜 같이 온 거야?”최신애는 강지아가 보기도 싫어 온유한에게 물었지만 강지아가 먼저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보러 왔어요.”“유정이
“유한 씨?”주유정은 눈물이 글썽한 얼굴로 말했다.“저 사진들 모두 가짜야. 내 말을 믿어줘.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기 위해...”강지아가 대놓고 온유한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자 주유정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온유한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얼른 다가가 말했다.“그 사진들 누가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 믿어줘. 유한 씨.”최신애는 화가 난 얼굴로 강지아를 가리켰다.“어린 나이에 이렇게 뻔뻔스럽다니! 다시 한번 말하는데 내가 죽기 전까지 너는 절대 우리 온씨 집 문턱을 넘을 수 없어.”“어머니!”온유한은 강지아를 품에 안은 채 애원하듯 말했다.“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듣기 싫어요.”“날 일부러 화나게 하기 위해 그러는 거지?”최신애는 분통이 터졌다.강지아를 보며 미소를 지은 온유한은 화가 난 최신애가 기절할까 봐 차마 강지아를 꼭 껴안지 못했고 그저 감동 가득한 얼굴로 최신애를 보며 말했다.“내가 지아의 이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지금 내가 얼마나 기쁜지 알아요? 내 엄마면 나를 위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강지아는 온유한의 허리를 살짝 꼬집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최신애는 온유한의 연속적인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이에 주유정이 다급히 말했다.“유한 씨, 그럼 나는? 나는 어떡하라고.”주유정은 몸을 돌려 강지아 앞에 서더니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했다.“유한 씨를 얻기 위해 날 망가뜨리려는 거야? 나를 모욕하기 위해 사진도 포토샵한 것이고? 강지아, 나와 유한 씨는 늘 너를 친동생으로 생각했어. 그런데 네가 이토록 악랄할 줄 몰랐어!”최신애는 주유정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맞아. 우리 온씨 가문은 절대 너 같이 지독한 여자를 집안에 못 들여. 그리고 조금 전, 내가 온씨 가문을 대표하여 유정이가 우리 집 며느리라고 인정했어.”온유한의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다.“뭐라고요?”강지아는 빈정거리는 눈으로 최신애와 주유정을 바라보았다. 그저 옆에 있는 온유한이 너무 불쌍할 뿐이었다.휴대전화를 꺼낸
“5년 전에 누가 보내주더라고. 이 사진들을.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한 번 볼래?”온유한은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유정은 온몸이 더욱 오싹해졌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도대체 누가 그런 것일까?그때 온유한과 헤어진 지 몇 년이 지나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왜 온유한에게 이런 사진을 보냈을까?도대체 누가 그런 것일까?주유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런 짓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이때 온유한이 말했다.“그 사람이 누군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중요하지 않아. 너도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마. 우리 어머니를 이용하지 말고 지아를 괴롭히지 마!”최신애는 이미 멍해졌다.이성이 그녀에게 아들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아들을 믿는다면 그동안 어리석은 짓을 수없이 많이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유정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주유정은 일단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모르겠어요. 아주머니, 누군가가 일부러 저를 모함한 것이 틀림없어요. 그 사진들 저 진짜 모르는 일이에요. 본 적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이번만큼은 최신애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그런데 유한이가 그 사진들이 포토샵 한 게 아니라고 했잖아. 네가 몇 년 동안이나... 내 아들을 기다렸다고 하지 않았어?”최신애가 끝까지 밀어붙이자 주유정은 눈물이 글썽한 얼굴을 치켜들고 최신애를 바라보았다.“아주머니, 저도 여자예요. 혼자 외국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그때 유한 씨가 나를 무시하고 메일이나 전화를 해도 답장이 없었어요. 혼자 너무 힘들어서 죽을 뻔...”이때 최신애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게 내 아들과 무슨 상관이야? 애초에 네 마음대로 출국했고 네가 헤어지자고 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내 아들을 탓하는 거야?”중요한 것은 주유정이 그녀를 속였다는 것이다.온씨 가문에서 갖은 총애를 한몸에 받은 최신애는 이런 수모를 겪어본 적이 없다.학력도 있고 명예도 있는 자신이 주유정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온유한은 강지아를 엘리베이터 벽으로 밀었다.거침없이 쏟아지는 입맞춤에 강지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두 사람의 키스는 차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집까지 이어졌고 강지아는 결국 온유한에게 소파에 깔린 채 한참 동안 또 뽀뽀 세례를 받았다.입술이 떨어질 때 두 사람은 미친 듯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온유한의 안경은 얼굴에 멀쩡하게 걸려있었지만 안경 렌즈 뒤의 두 눈은 이미 안개가 자욱한 것처럼 글썽인 듯했고 눈동자가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보기만 해도 두피가 저릴 정도였다.강지아는 이렇게 점잖은 사람도 이런 부분에서는 변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키스를 너무 해서인지 입술마저 얼얼했다.“지아야, 나 좋아한다고?”조금 전까지는 당당하게 말했는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두 사람의 자세가 너무 이상해서 강지아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응.”온유한은 그녀의 건성건성 한 대답에 못마땅한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잡고 돌렸다.“나를 보며 똑바로 다시 얘기해줘.”“다시 말할 필요가 뭐 있어? 한 번 들었으면 됐지.”강지아는 참지 못하고 눈을 피하며 온유한의 가슴을 밀었다.“먼, 먼저 일어나면 안 돼?”“안돼.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일까 봐 싫어.”허스키한 온유한의 목소리는 섹시하기 그지없었다.강지아는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이렇게 날... 깔고 있으면 내가 모를 건데?”“지아야...”온유한은 강지아와 코를 맞대고 말했다.“내가 좋다고 말해봐.”강지아는 온몸이 불타버릴 것처럼 뜨거웠다.“내가 좋아하는지 안 하는지 그것도 몰라? 됐어. 더 이상 묻지 마.”원래부터 털털한 강지아인지라 온유한과 최의현과는 거리감 없이 오빠 동생 사이로 지냈다.오늘 온유한은 드디어 그녀의 얼굴에서 수줍은 표정을 발견했다.그 느낌은... 신선했고 마음을 설레게 했다.온유한의 것이었던 어린 여자아이가 마침내 성장하여 사랑의 감정이 싹텄고 이제 그를 위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가씨, 알아보라고 한 차 번호 확인해 봤습니다.”장형준이 서류를 강지아에게 건네줬다.“방현호?”이름과 사람 모두 매우 생소했다.장형준이 말했다.“방현호 마누라는 해외에 있는 재벌가 외동딸로 집에서 큰 광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귀국했다고 합니다. 방현호의 회사는 서경시에 있는데 고향이 서울이라 아내와 아이도 서울에 있습니다.”강지아는 순간 흠칫 놀랐다.“회사가 서경시에 있는데 아내와 아이가 서울에 있다고요?”“그게...”장형준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경시에 내연녀가 있는데 그 여자가 방현호에게 아들딸 쌍둥이를 낳아줬어요. 그 외에도 여자가 아주 많아요. 주유정은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루비 보석을 생각한 강지아는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하지만 이 자료로 무엇을 할 계획은 없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에 대해 강지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 쓰는 사람은 오직 온유한 뿐이다.최신애는 주유정에게 화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고 온유한은 며칠째 병원에서 간호를 했다.강지아는 병문안을 갈 계획이 없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 최신애도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아이엠 디자이너] 프로그램은 계속 촬영을 진행했고 애만 패션쇼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네티즌들은 현장에 못 가지만 패션쇼가 조금씩 완성되고 좋아하는 아이돌이 이 쇼를 보러 온다는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이 프로그램은 다른 예능과 달리 사람들을 웃기고 게임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강지아 외에 다른 디자이너들의 반응도 좋았다.특히 스타일리스트 관련된 것들은 여자아이들이 메이크업을 따라 할 수 있어 열기가 점점 뜨거워졌다.가장 반응이 안 좋은 팀은 주유정과 주민희 조였다.루비의 인기가 끝났고 주민희 또한 시청자들의 눈에 거슬렸다.[스스로 하겠다고?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루비야, 루비! 조약돌이 아니라고. 누나.][주민희 진짜 왜 저래? 주 선생이 원석
최신애는 사실 마음의 병이다.주유정에게 속아 너무 창피하기 때문이다.특히 주유정을 데리고 예비 며느리라며 뽐낸 자신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외부 사람들은 집안 사정을 모르지만 알게 되면 얼마나 비웃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어머니, 국 끓였으니 좀 드세요.”“너 지금 속으로 나를 비웃고 있지?”온유한과 옆에서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온혁진을 번갈아 쳐다본 최신애는 더욱 화가 났다.“너희 부자, 왜 비웃어?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한 건데?”온유한은 들고 있던 국그릇을 내려놓았다.옆에 있던 온혁진은 신문을 펼쳐 들며 말했다.“며칠이나 입원하고 있잖아. 그만하면 됐어. 소란을 피울 거면 집에 가서 피워. 나와 유한이 출근하는 거 안 보여?”벌떡 일어나 앉은 최신애가 발작을 일으키려 할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온유한이 일어나 문을 열자 밖에 정유진과 강지아가 서 있었다.“형수님.”온유한은 정유진을 부른 뒤, 강지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왜 왔어?”강지아는 활짝 웃었고 온유한은 솟구쳐 오르는 욕망을 겨우 참으며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하던 말이 끊긴 최신애는 강지아를 보자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지금 주유정 말고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바로 강지아이다.“아주머니, 몸이 안 좋으시다고 들어서 지아와 함께 보러 왔습니다.”정유진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계속 보러 오려고 생각했는데 제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미루는 바람에 이제야 오게 되었네요. 몸은 좀 괜찮아졌나요?”최신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너희들 뭐하러 왔니’라는 말만 목구멍에서 맴돌았다.“걱정해 줘서 고맙네.”최신애가 다시 베개에 몸을 기대자 옆에 있던 온혁진이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유진아, 지아야, 얼른 앉아.”정유진은 온혁진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고 강지아는 옆에 얌전히 앉아 말을 하지 않았다. 최신애는 화를 내고 싶어도 낼 곳이 없었다.게다가 정유진 앞에서는 뭐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강씨 집안 식구들 앞에서 혹시라도
머리 꼭대기에서 들리는 온유한의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예전에 온유한은 항상 속삭이는 말투로 부드럽게 말을 했지만 지금 온유한의 목소리는 차갑고 딱딱하기 그지없었다.강지아도 숨기지 않고 말했다.“싫은 거 아니야. 하지만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용기를 내어 고개를 든 강지아는 익숙한 이 남자를 바라보았다.3년 사이 온유한은 살이 조금 빠진 것 외에 변한 게 없었다.달라진 것을 굳이 짚으라고 하면 기질일 것이다.온유한만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었고 오롯이 차가운 느낌만 들었다.“나와 엮이기 싫어서 문신을 지운 거야?”뻔히 알면서 물어본 것이나 다름없었다.온유한은 갑자기 손을 뻗더니 강지아의 턱을 잡고 말했다.“문신 지울 때 안 아팠어?”강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온유한이 계속 말했다.“나와 헤어지는 것보다 더 아팠어?”강지아의 눈빛이 변했다.온유한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다짜고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깜짝 놀란 강지아는 힘껏 발버둥 쳤지만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너무 거친 키스에 강지아는 온몸이 부서질 듯했다.감정이 북받친 키스에 강지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순간 두 사람의 입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그제야 강지아를 놓아준 온유한은 깨물린 입술에 어느새 피가 나고 있었다.“미쳤어?”강지아는 얼른 목욕 타월로 몸을 감싼 뒤 멀찌감치 떨어졌다.온유한은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았지만 상처가 깊어서 그런지 다시 피가 솟구쳤다. 지금의 온유한은 정말로 점잖은 망나니 같았다.“미쳤냐고?”온유한은 심드렁한 얼굴로 강지아를 보며 말했다.“전에 안 해본 것도 아닌데 뭐.”가슴이 심하게 출렁인 강지아는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싫어. 이러지 마... 싫다고...”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강지아는 욕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이런 강지아의 모습에 온유한은 더욱 자극이 된 듯 그녀를 쫓아가려 했다. 이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
“괜찮아?”강지아의 손을 잡은 화령은 그녀의 손이 차가운 것을 발견했다.“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어.”뒤돌아서는 순간 때마침 쟁반 가득 술을 들고 오는 웨이터와 부딪혔다.와르르, 술잔이 그녀의 치마에 쏟아졌다.갑작스런 소리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저도 모르게 고래를 돌린 온유한은 웨이터가 미안한 표정으로 강지아에게 사과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아가씨,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진짜 죄송해요.”강지아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얼른 치워요. 사람들이 미끄러워 넘어지면 안 되니까.”“네, 네. 바로 치우겠습니다.”화령은 황급히 수건을 가지고 와서 강지아의 치마를 닦아줬다.“옷 갈아입으러 같이 가자.”“괜찮아. 나 혼자 가면 돼. 넌 여기 유리 파편들 깨끗이 치우는 것 좀 봐줘.”강지아의 움직임에 시선을 빼앗긴 온유한은 그녀의 발목에 문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문신이 있던 자리는 피부만 빨갛게 되어 있었다.강지아는 방으로 돌아갔다.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치마를 준비해 놓았기에 갈아입을 수 있었다.술이 엎질러져 몸까지 끈적끈적해 샤워를 해야 했다.옷을 다 벗고 나서야 타투한 곳에 물이 닿으면 안 된다고 했던 진수혁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샤워 타월로 몸을 감싸고 나와 방수밴드를 찾았다.방 안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 동하민인 줄 알고 한마디 했다.“치마는 세탁이 안 될 것 같으니 매장에 처리할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고 방법이 없으면 그냥 버려.”방 안의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서랍에서 방수밴드를 꺼내 들고 돌아선 순간 강지아는 소파에 앉은 사람이 동하민이 아니라 온유한인 것을 발견했다.강지아는 흠칫 놀랐다.온유한은 강지아의 발목만 뚫어지게 바라봤다.정신을 차린 강지아는 서랍을 닫으며 말했다.“왜... 여기 있어?”“타투 지웠어?”강지아는 자신의 종아리를 한 번 본 뒤 말했다.“응, 지웠어.”온유한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녀의 발목만 뚫어지게 바라봤다.샤워
현채영은 입꼬리만 올리며 말했다.“내가 왜 그쪽 체면을 세워줘야 하죠? 누구신데요?”그 사람은 눈을 가늘게 뜨며 현채영을 바라봤다. 가뜩이나 못생긴 눈이 이상하게 변해 더 못 생겨 보였다.“현채영, 네 주제 파악 좀 해.”그 남자는 옆에 있던 온유한을 쳐다보더니 일부러 도발적으로 말했다.“온유한 부원장이 얼마를 줬는데? 내가 두 배 줄 테니 하룻밤만 나와 같이 있는 거 어때?”현채영이 앞에 놓인 술을 그의 얼굴에 뿌리자 그 남자는 온몸이 젖었다.안 그래도 멀리서나마 현채영과 온유한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자 더욱 그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천한 년, 감히 나에게 술을 뿌려?”창피를 당한 그 남자는 화가 나 자리에서 일어나 현채영을 향해 주먹을 날리려 했다.그러나 주먹이 현채영에게 닿기도 전에 옆에 있던 온유한이 그를 잡았다.그 남자는 술 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쓱 닦은 후 말했다.“온유한 부원장님, 이 여자 편을 드나 봐요?”말없이 그를 응시하는 온유한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솔직히 말해서 예전에 강지찬과 친할 때 아무도 함부로 그에게 덤비지 못했다.그들은 서울에서 연예인 같은 존재였다. 사람들은 그들 무리에 끼어들고 싶어 안달이 났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그들을 도발하지 못했다.이제 그 무리를 벗어난 온유한인지라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이전과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를 괴롭히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몇 초가 지난 후에야 온유한이 입을 열었다.“내 여자에게 집적거리는데 내가 안 나서면 누가 나서?”말을 마친 온유한은 그 남자를 옆으로 홱 뿌리쳤다.큰 소동에 달려온 강지찬과 정유진 그리고 강지아 모두 이 말을 들었다.온유한은 현채영을 자신의 반대편으로 끌어당긴 뒤 그 남자를 향해 말했다.“꺼져!”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창피를 당한 것을 강지찬과 그 가족이 봤으니 그 남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일부러 온유한을 도발했다. 이 또한 강지찬에게 충성을 표하는 의미이기도 했다.“온유
현채영을 데리고 온 온유한은 연우와 우빈에게 준비한 선물을 정유진에게 직접 건넸다.“그냥 오면 되지 이렇게 비싼 선물까지 왜 사 갖고 와요.”정유진은 단아한 자태로 평범한 친구 맞이하듯 그를 대했다.“작은 성의로 봐주세요.”온유한이 대답했다.한편 온유한이 왔다는 말에 신이 나서 찾아온 최의현은 현채영을 본 순간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이를 악물며 겨우 한마디 했다.“왜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내가 말했잖아, 지아가 돌아왔다고.”그러더니 팔을 번쩍 들며 자랑하듯 말했다.“봤지? 커프스. 지아가 준 거야.”고개를 옆으로 돌린 온유한은 강지찬과 경은우 모두 지아가 준 커프스를 착용한 것을 발견했다.서원준도 같은 커프스를 하고 있는 모습에 온유한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예쁘네.”온유한의 표정을 본 최의현은 순간 재미가 없어졌다.“지찬이에게 인사하러 안 갈래?”온유한이 말했다.“됐어, 난 꼬맹이 보러 온 거야.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겠지?”온유한의 얼굴을 본 최의현은 그의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그냥 강우빈을 보러 온 거라고?많은 시선들이 온유한과 현채영에게 쏠렸다.그런 눈빛에 익숙해진 현채영은 웃으며 말했다.“매번 나와 같이 오니까 사람들이 어려워하잖아. 그래서 혼자 가라고 한 건데 내 말 안 듣고 말이야.”“미안해.”온유한이 말했다.“난 괜찮아. 이까짓 게 뭐라고?”현채영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우리 집안에 일이 생겨서 그렇지 뭐. 그래서 내가 돈밖에 모른다고 생각하지. 내 옷 안에 카드를 넣으며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하는 사람도 있어.”온유한도 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현채영의 난처한 상황을 지켜본 적도 있었다.두 사람은 창가 자리를 찾아 앉았다.자리에 앉자마자 잘 차려입은 남자가 술잔과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번지르르한 얼굴의 그 남자를 온유한도 잘 알고 있었다. 졸부의 아들이며 집안에서는 강지찬에게 빌붙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우빈이 태어나던 해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인연을 완전히 끊었고 강지찬과 온유한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지찬도 기분이 나빴다.아들이 태어난 후 백일잔치도 하지 않은 채 집안 식구들끼리만 축하를 했다.어느덧 우빈이는 세 살이 되었고 강지아가 때마침 귀국했기에 못 해준 축하를 이제는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이번 강우빈의 생일잔치는 성대하게 치르기로 했다.생일파티는 강씨 가문의 식장에서 열렸고 강지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손님들이 많이 왔다.정유진과 강지아는 하객 대응을 맡았다. 사람들은 오래간만에 나타난 강지아를 보고 깜짝 놀랐다.하지만 강지아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이 한 명씩 올 때마다 반갑게 맞이했다.온씨 가문과 최씨 가문에는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지만 화령은 강지아와 절친이었기에 생일잔치에 왔다.편집장으로 승진한 화령은 옛날의 풋풋함이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미녀의 기질을 한껏 풍기고 있었다.“여기 온 것을 나중에 시어머니가 알면 어떻게 해?”강지아가 한마디 물었다.황은숙은 아직도 자기 아들 최금혁을 아프리카로 보낸 강지아와 화령이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강지아의 말에 화령이 긴 웨이브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말했다.“시어머니는 무슨, 그리고 진짜 시어머니라고 해도 내 일에 간섭할 수 없어.”“아이고, 우리 화령 편집장님 점점 폼이 나네. 어쩐지 최금성이 3년이나 아끼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어.”강지아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였지만 화령의 얼굴에 있던 웃음이 옅어졌다.“전엔 얘기 안 했나? 작년에 유산했어.”“어?”“아기가 싫대.”화령이 최금성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지아인지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좋아하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최금성이 아이를 키우지 못할 형편도 아닌데 말이다.“왜 싫대?”“난 그냥... 뭐랄,. 파트너니까. 애인 대역이라고 할 수도 없지.”화령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말을
“당연히 아프지. 문신을 할 때보다 훨씬 아파. 지난주에도 예쁜 여대생이 왔는데 울면서 문신을 지웠어. 하도 울어서 눈이 다 부었어.”“아파서 우는 건 아닐 거야.”“그렇지. 헤어진 사랑 때문에 우는 거겠지. 나도 남자이긴 하지만 어떤 남자들은 진짜로 못 돼 먹었다니까.”강지아는 잡지를 하나 집어 들어 펼쳐보았다.“네 사장님께 얘기해줘. 지금 작업 끝나면 내 다리 문신도 지워달라고.”“그래.”대답을 하고 난 뚱보는 그제야 반응했다.“뭐라고?”강지아가 말했다.“예쁜 그림 있어? 어디 좀 봐봐.”“응? 아!”뚱보는 멍한 얼굴로 노트 하나를 가져왔다.“이건 사장님이 직접 그린 그림이야. 마음에 드는 게 있는지 봐봐.”여기까지 말한 뚱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마디 물었다.“아니, 지아 누나. 무슨 일 있어?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응.”입이 무거운 진수혁이 보아하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물론 말을 했든 안 했든 강지아는 상관하지 않았다.검은 장미꽃 한 송이를 본 강지아는 그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걸로 하자. 섹시해 보이네.”그러자 뚱보가 말했다.“이 그림은 몇 년 전 거야. 요즘 젊은 여자들은 흑장미 문신을 하지 않아.”“난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이걸로 할게.”뚱보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30분이 지나자 진수혁의 하던 작업도 끝났다.강지아의 차례가 돌아오자 진수혁이 한마디 했다.“올 줄 알았어.”강지아도 한마디 했다.“걱정 마. 울지 않을 테니.”그녀는 정말로 울지 않았다. 지우는 게 정말 아팠지만 참고 견뎠다.“지우자마자 바로 다시 문신할 수 있어? 그림은 이미 선택했는데.”“안 돼. 약국에 가서 소염제 같은 걸 사서 매일 바르고 상처가 완전히 회복해야 다시 문신을 할 수 있어.”강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좀 이따 퇴근한 다음에 단골 술집에서 봐. 내가 한턱낼게.”진수혁이 말했다.“문신 지우자마자 술 마시면 안 돼.”강지아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안 마실게.”그녀를 힐
강지아는 오늘 돌아온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회장을 한 번 둘러본 뒤 바로 빠져나왔다. 강지찬과 정유진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강지아가 집에 들어가자 집사들은 깜짝 놀라더니 얼른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다음 날 아침, 강지아는 선물 꾸러미를 들고 새언니가 있는 마당으로 갔다.“고모!”“고모.”두 아이가 달려와 강지아에게 안겼다.“우리 연우가 더 예뻐졌네. 우빈이도 점점 귀여워지고 있어.“귀여운 게 아니라 멋진 거지!”강우빈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그래그래, 멋지네. 역시 우리 우빈이야!”녀석은 거만한 수탉처럼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어깨를 쭉 폈다.“새언니, 이 녀석 누구를 닮은 거예요? 새언니도 아닌 것 같고 우리 오빠도 닮은 것 같지 않네요.”정유진은 호호 웃었다.“어렸을 때 오빠 사진 봐봐. 가슴을 저렇게 펴는데 꼬리가 있었더라면 하늘 높이 치켜올렸을 거야. 두 남매 모두 네 오빠 닮은 것 같아. 어쨌든 나는 아니야.”그러자 연우가 말했다.“내 미모는 그래도 엄마를 더 많이 닮았지.”집안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다.하인들이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이기 위해 데리고 간 후에야 강지찬이 입을 열었다.“어젯밤에 돌아온 거야? 연회에 갔었어?”강지아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귀신은 속여도 우리 오빠는 못 속인다니까. 가서 한 번 둘러보고 나왔어.”“볼 게 뭐가 있다고?”강지찬이 어두운 안색을 보이자 정유진은 혹시라도 강지아가 서운해할까 봐 얼른 강지찬을 툭 친 뒤 화제를 돌렸다.“방씨 아주머니가 아침에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하는 크리스털 찐만두를 했어. 오랜만에 먹는 거지?”강지아는 정유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새언니, 내 눈치 보지 않아도 돼요. 난 괜찮아요.”아침밥을 먹은 뒤 강지아는 잠깐 눈을 붙이고 나서 집을 나섰다.진수혁의 기존 문신 가게는 오래된 동네에 있었기에 지금은 대부분 철거했다. 그러면서 진수혁도 이사를 가게 되었다.가게 때문에 형편이 빠듯해 강지아의 빈 집에서
최신애가 깨어났을 때 온유한과 현채영은 옆에 없었고 임유희만 그녀 옆을 지키고 있었다.“유한이는?”“유한 오빠는...”임유희의 안색이 안 좋았다.“접대가 있다며 현채영 씨를 데리고 갔어요.”화가 난 최신애는 또다시 기절할 뻔했다.“친엄마가 기절했으면 병원에서 효도하고 반성할 생각은 안 하고 또 그 천한 년을 데리고 술 마시러 갔다고?”최신애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고 머리도 어지러웠다.옆에 있던 임유희가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어머님, 진정하세요. 유한 오빠 아마 중요한 술자리가 있어서 그런 것일 거예요. 어머님의 혈압이 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갔어요.”“내가 죽어야만 나를 엄마라고 생각할 것 같구나!”임유희도 그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다.본인도 매우 슬펐기 때문이다.그녀도 아무런 명분 없이 온씨 저택에 머무른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그녀와 현채영이 한집에 사는 것을 아는 외부 사람들이 뒤에서 어떻게 비웃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중요한 것은 온유한이 현채영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 눈에 자주 띄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현채영 같은 여자와 비교당한 생각만 하면 임유희는 속이 울렁거렸다.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현채영에게 졌다는 것이다.강지아에게 진 것은 인정할만했다. 막강한 강씨 가문이고 온유한과는 어릴 때부터 친했기에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채영은?집안이 망해 명예도 없는데 온유한은 그녀를 보물처럼 아끼고 어디나 데리고 다닌다.임유희는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연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서울의 명망 있는 대갓집 규수들은 거의 다 왔다.강지찬은 정유진을 데리고 왔고 한규진도 연예계에서 잘나가는 아역 배우였던 여자친구와 함께 왔다.최의현은 약혼녀를 데리고 왔고 최금성은 당연히 화령을 데리고 왔다.온유한이 현채영과 함께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이 자리에 현채영의 옛 애인도 있었기 때문이다.반면 온유한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현
대화를 나눈 후에야 온유한은 강지아에게 문신해준 사람이 진수혁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녀가 타투이스트와 친구가 된 것을 온유한은 모르고 있었다.“지아가 그쪽 이름을 문신으로 새긴 거 보면 많이 사랑한 것 같은데 왜 헤어진 거야?”온유한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지아에게 내가 어울리지 않으니까.”맥주를 다 마신 뒤 온유한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진수혁은 쓰레기를 치운 뒤 샤워를 했다.진수혁은 이 집에 살고 있긴 했지만 강지아의 안방이 아니라 게스트 룸에 묵었다.샤워를 마친 뒤 강지아에게 문자를 보냈다.[네 전 남자친구와 한바탕 싸웠어.]강지아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누가 이겼어?][당연히 내가 이겼지, 네 전 남자 친구 몸도 별로 안 좋았어. 반쯤 취했거든.][앞으로는 손 쓰지 마. 감당 못 하니까.][마음이 아픈 거야?][내가 마음 아플 게 뭐가 있겠어. 진작 헤어진 사람인데.][언제 돌아와? 단골 술집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곧 갈 거야, 돌아가면 연락할게.]이날 밤 온유한과 현채영 두 사람 모두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온씨 저택에 얼굴을 비쳤다.현채영이 종이백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쇼핑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임유희를 본 현채영은 반갑게 인사했다.“임유희 씨, 퇴근했나 봐요? 오늘 쇼핑하다가 임유희 씨와 잘 어울리는 치마가 있어서 샀어요.”현채영은 치마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마음에 드는지 한 번 봐요.”이런 체면치레에 임유희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아니요. 괜찮아요.”약간 울먹거리는 임유희의 목소리에도 현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우리 사이에 왜 예의를 차리고 그래요. 이 치마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산 거예요. 유희 씨가 나보다 날씬해서 안 입으면 나도 못 입는단 말이에요. 나와 유한 씨가 특별히 임유희 씨를 위해 산 건데.”그러자 옆에 있던 최신애가 종이봉투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누가 이따위 치마가 필요하대?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온유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