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아가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최금혁은 이미 쫓겨났다.온유한이 다가가 그녀의 가방을 들어주며 말했다.“다시는 널 괴롭히지 않을 거야. 가자, 바래다줄게.”강지아는 작업실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한 뒤 자리를 뜨려 했다.화령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해 제일 늦게까지 남아 강지아를 도와줬다.“나중에 내가 한턱 쏠게.”화령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괜찮아. 나중에 유명해지면 첫 인터뷰는 꼭 나에게서 하면 돼. 꼭 너를 표지에 올려줄 테니.”“그래. 번복하면 안 된다.”“그럼, 우리 둘이 보통 친해야 말이지.”화령의 잡지사는 ‘애만'만큼 인지도가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명 잡지인 만큼 국민들의 절대적인 옹호를 받고 있다.화령이 정말 표지를 따낸다면 강지아야말로 화령에게 고마워서 절을 해야 할 판이다.3일 후, 주유정의 작업실이 문을 열었다.그녀의 작업실 면적은 강지아보다 크지 않지만 인테리어는 아주 잘 되어 있었고 패션 감각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다.주유정은 과거 멤버들과 인맥 모두 해외에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녀의 가족과 친한 지인들, 그리고 동창들뿐이다.온혁진과 최신애, 그리고 주유정의 부모님들이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다.강지아와 정유진은 함께 도착한 뒤, 조용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떠들기 귀찮았다.“유한 씨가 아직 안 왔네.”정유진이 말했다. 강지아의 작업실이 문을 연 날 온유한은 일찍 도착했었다.강지아가 말했다.“어제 큰 수술이 두 개 있은 데다가 야간 당직까지 서서 조금 늦는 것 같아요.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예요.”“그렇게 잘 알아?”“본인이 얘기한 거예요.”강지아는 새언니의 말뜻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현재 강지아는 온유한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어떤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 따지지 않으려고 했다.따지기 시작하면 이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늦게 도착한 온유한은 우선 먼저 정유진과 강지아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방현호 씨, 이러지 마세요.”주유정은 그더러 놓으라고 외쳤지만 입술은 피하지 않았다.40대 중반의 방현호는 관리를 잘하고 있어 젊은 사람처럼 보였고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도 주유정이 좋아하는 향이었다.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책상 위에 놓인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주 반짝이고 있다는 것이다.통 큰 남자의 모습이 입을 떡 벌리게 했다. 몇 번 만나는 사이 방현호는 주유정이 원하는 것은 거의 다 들어줬다.이 같은 선물 공세에 주유정은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주유정의 반응을 눈여겨보고 있던 방현호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유정 씨, 시킨 일은 오빠가 다 처리했는데 이제 와서 놓으라고요? 늦었어요.”주유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두 눈에는 빛이 반짝였다.“정말이에요?”방현호는 그녀의 앙증맞은 코를 쥐어짜며 말했다.“내일 유정 씨와 계약할 사람이 올 거예요. 유정 씨를 위해서 많은 돈을 투자했어요. 원래 생각하던 사람을 밀어내서 유정 씨에게 기회가 차려진 거예요.”주유정은 까치발을 들어 방현호의 입에 뽀뽀했다.“사장님, 최고.”“이제 놓으라는 말 안 할 거죠?”방현호의 손이 그녀의 옷자락을 뚫고 들어갔다.주유정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매혹적인 눈빛으로 말했다.“서둘러요. 아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사무실에서 벨트 푸는 소리가 들렸다.이런 느낌은 너무 자극적이었다. 주유정은 심지어 아래층에 있는 최신애의 말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방현호의 어깨 위로 올라탄 주유정은 두피가 간간이 저렸다.“사장님, 사모님이 너무 부러워요.”“부러워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는 유정 씨 거니까.”방현호가 사람을 책상 위로 깔았다.“내 모든 걸 줄게요.”30분 후, 주유정과 방현호가 위층에서 잇달아 내려왔다.“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유한이가 갈 뻔했잖아.”한지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최신애가 기분이 언짢은 것 같아. 얼른 가서 달래.”주유정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거래처도 중요해. 지금 유한 씨 찾으러 갈게.”한지
도경미는 강지아의 비서이다. 단발머리에 180센치가 넘는 키, 검은 양복 차림과 거기에 해골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언뜻 보기에 잘생긴 젊은 남자애 같았지만 사실은 여자이다.도경미는 운전도 잘하고 싸움도 잘해서 강지아가 한눈에 스카우트했다.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사회생활을 일찍 했다. 강지아보다 조금 어렸다.[아이엠 디자이너다]는 다른 예능과 달리 모든 게스트가 모여 같이 녹화하는 것이 아니다.하지만 첫 시즌의 오프닝은 모두가 함께 사진을 찍어야 했다.“지아 언니, 상자 하나만 가지고 갈 거예요?”도경미는 트렁크에 상자 하나를 넣으며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강지아가 대답했다.“시간이 넉넉하니 먼저 해성 쪽 집으로 가서 송 선생님과 합류하자.”도경미가 그제야 하루 일찍 도착한 이유를 알았다.부자들은 온 세상에 집이 있다.“그런데 제작진이 공항에 도착하는 것부터 촬영해야 한다고 했어요.”“그럼 연락해서 집에서부터 찍자고 하고 도착하면 위치를 보내줘.”“네.”비행기에서 내린 강지아가 핸드폰을 켜자마자 온유한의 메시지가 떴다.그녀는 닥치는 대로 ‘도착했어’라는 메시지만 보낸 뒤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목적지에 도착하자 도경미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대박. 오션뷰라니!”여기 집도 당연히 강지찬이 사둔 것이고 휴가철에 나와 놀 때 묵기 편했다.집은 두 명의 하인이 줄곧 돌보고 있어 먼지 하나 없었다.현관에 들어선 강지아는 신발을 벗으며 옆에 있는 도경미에게 말했다.“게스트 룸은 1층에 있어. 마음에 드는 방에 묵으면 돼.”도경미는 가방을 멘 채 신난 얼굴로 방을 선택했다. 창문을 열면 해안선이 저 멀리까지 보이는 경치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촬영팀 조연출에게 위치를 보내자 그쪽에서 답장이 왔다.[?][벌써 촬영장소에 도착한 거예요? 하지만 정식 촬영은 내일부터예요.]깜짝 놀란 도경미는 얼른 대본을 뒤졌다. 그제야 제작진의 촬영지가 바로 이 오션뷰 별장 근처라는 것을 발견했다.이런 우연이 있단 말인
게스트가 꽤 많다. 톱스타 5명과 디자이너 5명, 도착하는 대로 촬영을 했다가 나중에 편집하면 된다.사회자는 우선 강지아의 자료를 받아 자세히 소개했다. 그러고 나서 강지아는 옆에 가서 쉬기 시작했다.잠시 후 다른 게스트들이 속속 도착했고 다섯 명의 스타 게스트는 남자 셋, 여자 둘로 이루어졌으며 현재 가장 핫한 인기 연예인들이다.강지아 선글라스를 끼고 자리에 앉아 한 사람씩 올 때마다 박수를 쳤다.주유정이 도착한 것을 본 순간 선글라스 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모든 사람이 다 모인 후, 열 명의 게스트가 서로를 소개했다.강지아는 이미 선글라스를 벗었고 주유정은 강지아를 발견했지만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강지아가 참석하는 것을 진작 알고 있는 듯했다.두 사람은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첫날 촬영은 모든 게스트를 소개한 후 디자이너와 스타를 팀별로 나누었다.조 편성은 스타의 제비뽑기로 결정된다.‘아이엠 디자이너'라는 프로그램이지만 스타들을 메인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팬덤이 있는 스타들은 이슈를 만들어 시청률과 조회수를 끌어올리기 쉽다.강지아 조에는 지난해 데뷔한 주민희라는 댄스 가수가 있다.예쁘고 팬이 많아서 현재 아주 핫한 상태이다.주민희는 강지아와 비슷한 나이인지라 제비뽑기로 강지아를 보았을 때 표정이 좀 굳어졌다.여자들은 보통 쥬얼리와 스타일리쉬한 것을 좋아하기에 이 두 팀에 가고 싶어 했고 인테리어 디자인에는 관심이 없다.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대본이 없기에 어떤 팀을 뽑으면 그 팀에서 일해야 한다.“강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표정을 가다듬고 예의 바르게 다가온 주민희는 강지아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환하게 웃었다.강지아도 손을 내밀더니 웃으며 말했다.“우리 잘해봐요.”강지아의 반짝반짝 빛나는 미소에 주민희는 깜짝 놀랐다. 디자이너라는 사람이 얼굴도 예쁠 뿐만 아니라 이렇게 젊을 줄은 몰랐다.다섯 명의 디자이너 중 강지아와 주유정만 여자이고 나머지 세 명은 남
“감독님, 저기 강 선생님 어디에서 온 사람이에요? 스타일리스트와 매니저까지 따로 있다니, 톱스타 같아요.”“맞아요. 딱 봐도 기질이 엄청나 보여요. 발에 신은 조리가 600만 원이 넘어요.”감독은 머리를 움켜쥐었다.“성유 쪽에서 추천한 사람인데 신분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여기 있는 사람 중 누구 한 명도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되니 다들 조심하세요.”강지아는 촬영을 마친 후 집에 에어컨 바람을 쐬러 갔다.송민욱도 강씨 가문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주유정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지아야, 주유정이 어떻게 이 방송에 출연할 수 있어? 제작진이 초대한 것일까?”“잘 모르겠어요.”사실 강지아도 이 부분이 궁금해서 서원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유는 프로그램 투자자로서 제작과 관련된 문제에 관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그쪽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즉시 회답을 받았다.“주유정은 뒷돈 줘서 제작진이 기존에 출연시키려던 디자이너를 밀어내고 본인이 출연한 거야.”서원준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스폰서가 이토록 대단한 줄 몰랐네.”“누구인데?”“그건 나도 몰라.”서원준은 일부러 한마디 덧붙였다.“설마 온씨 가문 사람 아닐까? 하하, 농담이야.”강지아가 진지하게 대답했다.“강씨 집안 사람은 아닐 거야. 최신애가 주유정을 좋아하지만 자기 신분을 내세워 뒷돈까지 줘가며 남을 밀어내는 일은 못 하니까.”“그럼 뒤에 다른 큰놈이 있다는 거겠지.”이 바닥에 오래 있은 서원준이라 바로 알아챘다.“그 디자이너들, 제작진이 실력을 보고 데려온 줄 알아? 사실 배경들이 장난 아니야. 그러니까 강지아 씨도 너무 순진하게 굴지 마.”강지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단지 주유정을 밀어주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할 뿐이었다.하지만 이것도 중요하지 않다.두 번째 촬영은 3일 후에 있을 예정이고 그 후 한참 동안 촬영은 서울에서 진행된다.게스트 다섯 팀은 따로 촬영했고 팀마다 감독과 카메라맨이 있었다.애만의 패션쇼가 서울에서 열리니 당연
주유정의 작업실은 이미 문을 열었고 온유한이 도착했을 때 주유정은 회의 중이었다.“유한 씨,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지적인 옷차림의 주유정은 성공한 슈퍼우먼처럼 보였다.“커피 한 잔 끓여줄게. 내가 직접 끓인 커피 마셔본 적이 없잖아. 생각보다 괜찮아.”“너도 예능에 나갔어? 왜?”온유한의 단도직입적인 말이었지만 주유정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이 일로 온유한이 찾아올 것을 예상한 듯했다.“응, 나도 나갔어. 그런데 거기에 지아가 있을 줄은 몰랐네.”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손놀림을 멈추지 않고 원두로 커피를 갈기 시작했다.그런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온유한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정말 우연의 일치라고?”주유정은 흠칫 놀랐다.“유한 씨, 무슨 뜻이야? 설마 내가 일부러 강지아를 노리고 그 프로그램에 나간 거라고 생각해?”온유한은 그런 그녀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주유정은 더욱 격동된 얼굴로 말했다.“나도 디자이너고 작업실도 이제 오픈했어. 이번 예능이 나에게도 중요해. 내가 나가는 게 다른 사람과 무슨 상관인데. 프로그램에 노출되어 유명해지고 싶을 뿐이야. 뭐가 문제인데”맞은편에 앉은 온유한은 여전히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표정은 그리 엄숙하지 않았지만 주유정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온유한은 늘 그렇듯 모든 것을 대범하게 포용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아주 예리하다.“내가 강지아 때문에 그 예능에 나갔다고 쳐도 문제 될 게 있어?”“강지아도 유명해지기 위해 나간 거잖아?”“강지아는 되고 나는 나가면 안 된다는 거야? 유한 씨,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온유한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불공평? 네가 어떻게 참가했는지 잊었어?”주유정은 흠칫 놀랐다.“그, 그게 무슨 말이야?”“이번에는 누구 대신 나간 거야?”안경을 쓰고 있는 온유한이였지만 눈매가 시리고 매서웠다.“주유정, 넌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지.”주유정의 얼굴이 창백해졌
다음 날 아침 8시, 도경미는 시간에 맞춰 강지아를 데리러 왔다.그녀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기에 바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지아 언니, 아침은 누가 사 온 거예요? 문에 걸어뒀네요. 아직 따뜻해요.”금방 잠에서 깬 강지아가 말했다.“너 아직 안 먹었으면 그냥 먹어라.”“난 이미 먹었으니 드세요.”도경미는 집안이 깨끗한 것을 보고할 일이 없어 바로 소파에 앉았다.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했는지 쓰레기통의 쓰레기봉투도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강지아는 짐을 싸고 나와 아침을 먹은 후 애만 패션쇼에 갔다.패션쇼 무대는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고 예능팀은 내일 와서 촬영예정이기에 두 곳 모두 지체되지 않는다.애만은 내년 봄여름 신상품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마침 기념일이었기에 쇼장을 넓은 곳으로 결정했다.여기는 강지아가 여태껏 진행한 패션쇼 중 가장 큰 패션쇼이다. 그러므로 매일 와서 하나하나씩 전부 확인했다.다행히 협력한 시공사가 모두 연우 인테리어라 시공하는 것만큼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공사장이 어수선하고 공기 중에 먼지도 많다.도경미가 강지아에게 마스크와 안전모를 건네자 그녀는 강씨 집안의 보배 딸임을 잊은 듯 하이힐을 신은 채 자재 더미를 누볐다.더러운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판재든 시멘트든 무턱대고 손으로 만졌다.시간이 지나 어렵게 공사장을 나왔고 도경미는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된 듯했다.“가자, 어디 목욕하러 가자.”아무리 일에 열중한 강지아라고 해도 이 모습으로 밖을 누빌 수는 없다.도경미가 운전해 호텔로 갔고 두 사람은 수영장이 딸린 스위트룸의 키를 받았다.강지아가 한 바퀴를 헤엄칠 때까지도 도경미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멍하니 서서 뭐 해? 내려와.”그러자 도경미의 눈이 반짝였다.“역시 지아 언니가 최고!”그러자 도경미도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와서는 수영장에 첨벙하고 뛰어 들어왔다.잠시 후 호텔 종업원이 푸드트럭을 밀고 들어왔다. 그 위에는 와인 스낵 등이 있었다.도경미는 순간 강지아가 월급을 주지 않
“민희 씨, 오늘 너무 예뻐요.”촬영팀 감독과 스태프들은 그저 난처할 뿐이다.현장에 도착한 사람들 모두 마스크와 안전모를 쓰고 있어 아무리 예쁜 스타일로 꾸며도 소용이 없었다.주민희는 제작진 스태프가 나눠준 흰색 마스크와 노란색 헬멧을 받아들었다. 옆에는 헬멧과 마스크를 쓴 채 아주 여유로워 보이는 강지아가 서 있었다. 이 모습에 순간 주민희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강지아는 오늘 오피스룩으로 스타일링을 했고 굽이 굵은 하이힐을 신고 있어 깔끔해 보였다.주민희조차도 스스로가 가식적으로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다행히 이 예능 프로그램은 다른 예능과 달리 현장에 게스트도 없고 감독도 없다.다시 말해 그녀가 이렇게 스타일링 한다고 해도 어차피 나중에 편집될 것이다.“대체 스타일링을 어떻게 한 거야?”주민희는 스타일리스트의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여자 스타일리스트는 자신이 잘못이 아닌 것을 알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연신 사과를 했다.“죄송해요. 강 선생님, 감독님, 옷 갈아입고 올게요.”강지아가 말했다.“괜찮아요. 가서 갈아입으세요.”감독도 말했다.“옷은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갈아입어요. 앞부분은 편집해줄 테니.”그러자 주민희의 비서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민희 씨, 우리가 다른 스타일의 옷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강민희는 강지아보다 예뻐 보여야겠다는 일념으로 예쁜 치마만 잔뜩 챙겨 나왔다.결국 어쩔 수 없이 신발만 굽이 약간 낮은 신발로 갈아 신었다. 그러나 얼굴은 레드카펫 메이크업 그대로였고 거기에 마스크와 헬멧을 썼다.강지아와 비교하면 아주 옹졸해 보였기에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게다가 공사장의 환경도 매우 열악했고 곳곳에는 건축 자재가 널브러져 있었고 공기 중에는 미세 먼지가 가득했다. 그녀의 예쁜 치마와 환경이 그녀를 점점 더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했다.게다가 시공 초기 단계라 그녀는 전혀 도움이 될 만한 게 없었다.그러나 강지아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계속 바쁘게 돌아다녔다.라이벌
현채영은 입꼬리만 올리며 말했다.“내가 왜 그쪽 체면을 세워줘야 하죠? 누구신데요?”그 사람은 눈을 가늘게 뜨며 현채영을 바라봤다. 가뜩이나 못생긴 눈이 이상하게 변해 더 못 생겨 보였다.“현채영, 네 주제 파악 좀 해.”그 남자는 옆에 있던 온유한을 쳐다보더니 일부러 도발적으로 말했다.“온유한 부원장이 얼마를 줬는데? 내가 두 배 줄 테니 하룻밤만 나와 같이 있는 거 어때?”현채영이 앞에 놓인 술을 그의 얼굴에 뿌리자 그 남자는 온몸이 젖었다.안 그래도 멀리서나마 현채영과 온유한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자 더욱 그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천한 년, 감히 나에게 술을 뿌려?”창피를 당한 그 남자는 화가 나 자리에서 일어나 현채영을 향해 주먹을 날리려 했다.그러나 주먹이 현채영에게 닿기도 전에 옆에 있던 온유한이 그를 잡았다.그 남자는 술 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쓱 닦은 후 말했다.“온유한 부원장님, 이 여자 편을 드나 봐요?”말없이 그를 응시하는 온유한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솔직히 말해서 예전에 강지찬과 친할 때 아무도 함부로 그에게 덤비지 못했다.그들은 서울에서 연예인 같은 존재였다. 사람들은 그들 무리에 끼어들고 싶어 안달이 났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그들을 도발하지 못했다.이제 그 무리를 벗어난 온유한인지라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이전과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를 괴롭히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몇 초가 지난 후에야 온유한이 입을 열었다.“내 여자에게 집적거리는데 내가 안 나서면 누가 나서?”말을 마친 온유한은 그 남자를 옆으로 홱 뿌리쳤다.큰 소동에 달려온 강지찬과 정유진 그리고 강지아 모두 이 말을 들었다.온유한은 현채영을 자신의 반대편으로 끌어당긴 뒤 그 남자를 향해 말했다.“꺼져!”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창피를 당한 것을 강지찬과 그 가족이 봤으니 그 남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일부러 온유한을 도발했다. 이 또한 강지찬에게 충성을 표하는 의미이기도 했다.“온유
현채영을 데리고 온 온유한은 연우와 우빈에게 준비한 선물을 정유진에게 직접 건넸다.“그냥 오면 되지 이렇게 비싼 선물까지 왜 사 갖고 와요.”정유진은 단아한 자태로 평범한 친구 맞이하듯 그를 대했다.“작은 성의로 봐주세요.”온유한이 대답했다.한편 온유한이 왔다는 말에 신이 나서 찾아온 최의현은 현채영을 본 순간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이를 악물며 겨우 한마디 했다.“왜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내가 말했잖아, 지아가 돌아왔다고.”그러더니 팔을 번쩍 들며 자랑하듯 말했다.“봤지? 커프스. 지아가 준 거야.”고개를 옆으로 돌린 온유한은 강지찬과 경은우 모두 지아가 준 커프스를 착용한 것을 발견했다.서원준도 같은 커프스를 하고 있는 모습에 온유한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예쁘네.”온유한의 표정을 본 최의현은 순간 재미가 없어졌다.“지찬이에게 인사하러 안 갈래?”온유한이 말했다.“됐어, 난 꼬맹이 보러 온 거야.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겠지?”온유한의 얼굴을 본 최의현은 그의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그냥 강우빈을 보러 온 거라고?많은 시선들이 온유한과 현채영에게 쏠렸다.그런 눈빛에 익숙해진 현채영은 웃으며 말했다.“매번 나와 같이 오니까 사람들이 어려워하잖아. 그래서 혼자 가라고 한 건데 내 말 안 듣고 말이야.”“미안해.”온유한이 말했다.“난 괜찮아. 이까짓 게 뭐라고?”현채영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우리 집안에 일이 생겨서 그렇지 뭐. 그래서 내가 돈밖에 모른다고 생각하지. 내 옷 안에 카드를 넣으며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하는 사람도 있어.”온유한도 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현채영의 난처한 상황을 지켜본 적도 있었다.두 사람은 창가 자리를 찾아 앉았다.자리에 앉자마자 잘 차려입은 남자가 술잔과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번지르르한 얼굴의 그 남자를 온유한도 잘 알고 있었다. 졸부의 아들이며 집안에서는 강지찬에게 빌붙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우빈이 태어나던 해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인연을 완전히 끊었고 강지찬과 온유한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지찬도 기분이 나빴다.아들이 태어난 후 백일잔치도 하지 않은 채 집안 식구들끼리만 축하를 했다.어느덧 우빈이는 세 살이 되었고 강지아가 때마침 귀국했기에 못 해준 축하를 이제는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이번 강우빈의 생일잔치는 성대하게 치르기로 했다.생일파티는 강씨 가문의 식장에서 열렸고 강지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손님들이 많이 왔다.정유진과 강지아는 하객 대응을 맡았다. 사람들은 오래간만에 나타난 강지아를 보고 깜짝 놀랐다.하지만 강지아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이 한 명씩 올 때마다 반갑게 맞이했다.온씨 가문과 최씨 가문에는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지만 화령은 강지아와 절친이었기에 생일잔치에 왔다.편집장으로 승진한 화령은 옛날의 풋풋함이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미녀의 기질을 한껏 풍기고 있었다.“여기 온 것을 나중에 시어머니가 알면 어떻게 해?”강지아가 한마디 물었다.황은숙은 아직도 자기 아들 최금혁을 아프리카로 보낸 강지아와 화령이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강지아의 말에 화령이 긴 웨이브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말했다.“시어머니는 무슨, 그리고 진짜 시어머니라고 해도 내 일에 간섭할 수 없어.”“아이고, 우리 화령 편집장님 점점 폼이 나네. 어쩐지 최금성이 3년이나 아끼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어.”강지아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였지만 화령의 얼굴에 있던 웃음이 옅어졌다.“전엔 얘기 안 했나? 작년에 유산했어.”“어?”“아기가 싫대.”화령이 최금성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지아인지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좋아하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최금성이 아이를 키우지 못할 형편도 아닌데 말이다.“왜 싫대?”“난 그냥... 뭐랄,. 파트너니까. 애인 대역이라고 할 수도 없지.”화령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말을
“당연히 아프지. 문신을 할 때보다 훨씬 아파. 지난주에도 예쁜 여대생이 왔는데 울면서 문신을 지웠어. 하도 울어서 눈이 다 부었어.”“아파서 우는 건 아닐 거야.”“그렇지. 헤어진 사랑 때문에 우는 거겠지. 나도 남자이긴 하지만 어떤 남자들은 진짜로 못 돼 먹었다니까.”강지아는 잡지를 하나 집어 들어 펼쳐보았다.“네 사장님께 얘기해줘. 지금 작업 끝나면 내 다리 문신도 지워달라고.”“그래.”대답을 하고 난 뚱보는 그제야 반응했다.“뭐라고?”강지아가 말했다.“예쁜 그림 있어? 어디 좀 봐봐.”“응? 아!”뚱보는 멍한 얼굴로 노트 하나를 가져왔다.“이건 사장님이 직접 그린 그림이야. 마음에 드는 게 있는지 봐봐.”여기까지 말한 뚱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마디 물었다.“아니, 지아 누나. 무슨 일 있어?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응.”입이 무거운 진수혁이 보아하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물론 말을 했든 안 했든 강지아는 상관하지 않았다.검은 장미꽃 한 송이를 본 강지아는 그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걸로 하자. 섹시해 보이네.”그러자 뚱보가 말했다.“이 그림은 몇 년 전 거야. 요즘 젊은 여자들은 흑장미 문신을 하지 않아.”“난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이걸로 할게.”뚱보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30분이 지나자 진수혁의 하던 작업도 끝났다.강지아의 차례가 돌아오자 진수혁이 한마디 했다.“올 줄 알았어.”강지아도 한마디 했다.“걱정 마. 울지 않을 테니.”그녀는 정말로 울지 않았다. 지우는 게 정말 아팠지만 참고 견뎠다.“지우자마자 바로 다시 문신할 수 있어? 그림은 이미 선택했는데.”“안 돼. 약국에 가서 소염제 같은 걸 사서 매일 바르고 상처가 완전히 회복해야 다시 문신을 할 수 있어.”강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좀 이따 퇴근한 다음에 단골 술집에서 봐. 내가 한턱낼게.”진수혁이 말했다.“문신 지우자마자 술 마시면 안 돼.”강지아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안 마실게.”그녀를 힐
강지아는 오늘 돌아온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회장을 한 번 둘러본 뒤 바로 빠져나왔다. 강지찬과 정유진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강지아가 집에 들어가자 집사들은 깜짝 놀라더니 얼른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다음 날 아침, 강지아는 선물 꾸러미를 들고 새언니가 있는 마당으로 갔다.“고모!”“고모.”두 아이가 달려와 강지아에게 안겼다.“우리 연우가 더 예뻐졌네. 우빈이도 점점 귀여워지고 있어.“귀여운 게 아니라 멋진 거지!”강우빈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그래그래, 멋지네. 역시 우리 우빈이야!”녀석은 거만한 수탉처럼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어깨를 쭉 폈다.“새언니, 이 녀석 누구를 닮은 거예요? 새언니도 아닌 것 같고 우리 오빠도 닮은 것 같지 않네요.”정유진은 호호 웃었다.“어렸을 때 오빠 사진 봐봐. 가슴을 저렇게 펴는데 꼬리가 있었더라면 하늘 높이 치켜올렸을 거야. 두 남매 모두 네 오빠 닮은 것 같아. 어쨌든 나는 아니야.”그러자 연우가 말했다.“내 미모는 그래도 엄마를 더 많이 닮았지.”집안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다.하인들이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이기 위해 데리고 간 후에야 강지찬이 입을 열었다.“어젯밤에 돌아온 거야? 연회에 갔었어?”강지아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귀신은 속여도 우리 오빠는 못 속인다니까. 가서 한 번 둘러보고 나왔어.”“볼 게 뭐가 있다고?”강지찬이 어두운 안색을 보이자 정유진은 혹시라도 강지아가 서운해할까 봐 얼른 강지찬을 툭 친 뒤 화제를 돌렸다.“방씨 아주머니가 아침에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하는 크리스털 찐만두를 했어. 오랜만에 먹는 거지?”강지아는 정유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새언니, 내 눈치 보지 않아도 돼요. 난 괜찮아요.”아침밥을 먹은 뒤 강지아는 잠깐 눈을 붙이고 나서 집을 나섰다.진수혁의 기존 문신 가게는 오래된 동네에 있었기에 지금은 대부분 철거했다. 그러면서 진수혁도 이사를 가게 되었다.가게 때문에 형편이 빠듯해 강지아의 빈 집에서
최신애가 깨어났을 때 온유한과 현채영은 옆에 없었고 임유희만 그녀 옆을 지키고 있었다.“유한이는?”“유한 오빠는...”임유희의 안색이 안 좋았다.“접대가 있다며 현채영 씨를 데리고 갔어요.”화가 난 최신애는 또다시 기절할 뻔했다.“친엄마가 기절했으면 병원에서 효도하고 반성할 생각은 안 하고 또 그 천한 년을 데리고 술 마시러 갔다고?”최신애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고 머리도 어지러웠다.옆에 있던 임유희가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어머님, 진정하세요. 유한 오빠 아마 중요한 술자리가 있어서 그런 것일 거예요. 어머님의 혈압이 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갔어요.”“내가 죽어야만 나를 엄마라고 생각할 것 같구나!”임유희도 그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다.본인도 매우 슬펐기 때문이다.그녀도 아무런 명분 없이 온씨 저택에 머무른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그녀와 현채영이 한집에 사는 것을 아는 외부 사람들이 뒤에서 어떻게 비웃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중요한 것은 온유한이 현채영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 눈에 자주 띄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현채영 같은 여자와 비교당한 생각만 하면 임유희는 속이 울렁거렸다.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현채영에게 졌다는 것이다.강지아에게 진 것은 인정할만했다. 막강한 강씨 가문이고 온유한과는 어릴 때부터 친했기에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채영은?집안이 망해 명예도 없는데 온유한은 그녀를 보물처럼 아끼고 어디나 데리고 다닌다.임유희는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연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서울의 명망 있는 대갓집 규수들은 거의 다 왔다.강지찬은 정유진을 데리고 왔고 한규진도 연예계에서 잘나가는 아역 배우였던 여자친구와 함께 왔다.최의현은 약혼녀를 데리고 왔고 최금성은 당연히 화령을 데리고 왔다.온유한이 현채영과 함께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이 자리에 현채영의 옛 애인도 있었기 때문이다.반면 온유한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현
대화를 나눈 후에야 온유한은 강지아에게 문신해준 사람이 진수혁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녀가 타투이스트와 친구가 된 것을 온유한은 모르고 있었다.“지아가 그쪽 이름을 문신으로 새긴 거 보면 많이 사랑한 것 같은데 왜 헤어진 거야?”온유한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지아에게 내가 어울리지 않으니까.”맥주를 다 마신 뒤 온유한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진수혁은 쓰레기를 치운 뒤 샤워를 했다.진수혁은 이 집에 살고 있긴 했지만 강지아의 안방이 아니라 게스트 룸에 묵었다.샤워를 마친 뒤 강지아에게 문자를 보냈다.[네 전 남자친구와 한바탕 싸웠어.]강지아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누가 이겼어?][당연히 내가 이겼지, 네 전 남자 친구 몸도 별로 안 좋았어. 반쯤 취했거든.][앞으로는 손 쓰지 마. 감당 못 하니까.][마음이 아픈 거야?][내가 마음 아플 게 뭐가 있겠어. 진작 헤어진 사람인데.][언제 돌아와? 단골 술집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곧 갈 거야, 돌아가면 연락할게.]이날 밤 온유한과 현채영 두 사람 모두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온씨 저택에 얼굴을 비쳤다.현채영이 종이백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쇼핑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임유희를 본 현채영은 반갑게 인사했다.“임유희 씨, 퇴근했나 봐요? 오늘 쇼핑하다가 임유희 씨와 잘 어울리는 치마가 있어서 샀어요.”현채영은 치마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마음에 드는지 한 번 봐요.”이런 체면치레에 임유희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아니요. 괜찮아요.”약간 울먹거리는 임유희의 목소리에도 현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우리 사이에 왜 예의를 차리고 그래요. 이 치마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산 거예요. 유희 씨가 나보다 날씬해서 안 입으면 나도 못 입는단 말이에요. 나와 유한 씨가 특별히 임유희 씨를 위해 산 건데.”그러자 옆에 있던 최신애가 종이봉투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누가 이따위 치마가 필요하대?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온유한이
임유희가 돌아오자 최신애는 얼른 하인더러 저녁 식사를 차리라고 지시했다.마침 현채영이 없으니 임유희와 온유한에게 좋은 시간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데 음식이 다 나오기도 전에 온유한이 술을 마시러 나가자 임유희도 밥을 먹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최의현과 단둘이 술을 마시기로 약속한 온유한인지라 강지찬을 부르지 않았다.“현채영을 집으로 데려갔다면서?”“응.”최의현은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그럼 집안이 시끌벅적하겠구나, 임유희에 현채영까지.”술을 한 모금 마신 온유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룸을 예약하지 않고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며칠 후면 지찬이네 아들 생일인데 갈 거야?”온유한은 양복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최의현에게 건넸다.안에는 순금에 보석을 박은 금 자물쇠가 들어있었다. 뭘 선물해야 좋을지 몰라 비싼 것으로 선택했다.선물을 받은 최의현이 물었다.“안 갈 거야? 지아가 올지도 모르는데.”술을 마시던 온유한은 한참 뒤에야 말했다.“안 가.”최의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너 설마 진짜로 현채영과 그런 사이야? 일부러 네 엄마 화나게 하기 위해 만나는 줄 알았는데... 아니,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인데?”온유한은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후 말했다.“지아와 진작 헤어졌고 강씨 가문과도 인연을 끊었는데 내가 가서 뭐해?”“너 이 자식...”최의현은 당장이라도 욕설을 내뱉을 기세였다.“너 그냥 화가 나서 이러는 거지?”온유한이 피식 웃었다.“서원준과 약혼하면 내가 큰 선물 보낼게.”“너 정말 미쳤구나.”최이현이 한마디 했다.두 사람은 적당히 마신 후, 에이프릴 홀에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열한 시가 되지 않았다.최의현은 약혼녀의 전화를 받고 먼저 가버렸고 온유한은 차 열쇠를 운전 기사에게 건넸다.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눈을 감은 온유한은 집만 생각하면 짜증이 났다.“오늘은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운전 기사는 백미러로 그를 힐끗 쳐다본 뒤 말했다.
현채영은 두 손가락으로 카드를 집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어머님, 카드 안에 얼마 있는데요?”“20억.”현채영이 입을 삐죽거리자 최신애가 냉소를 지었다.“왜 적어? 네 집에 20억은커녕 2천만 원이라도 있긴 해?”현채영은 어깨를 한 번 들썩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머님, 제가 바보 같아 보이나요? 유한 씨에게 시집오면 온씨 가문 사업이 모두 내 것이 될 텐데 고작 20억으로 유한 씨를 포기하라고요?”그러자 최신애가 현채영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유한이에게 시집가고 싶어? 꿈 깨! 눈치가 있으면 돈 들고 꺼져.”현채영은 카드를 최신애 앞으로 밀며 말했다.“제가 나갈지 말지는 어머님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유한 씨가 결정하는 거예요.”“너!”이때 마침 현채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전화를 받은 현채영은 전화기 너머의 사람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오 대표님이시네요? 오랜만이에요. 오 대표님... 생각이요? 당연히 했죠. 너무 보고 싶어요... 저녁이요? 알겠어요. 그럼 저녁에 뵐게요.”최신애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너! 너 다른 남자와 노닥거리는 걸 유한이 알아?”현채영이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유한 씨는 당연히 모르죠. 하지만 오 대표님은 그저 친구일 뿐이에요. 오랜만이라 만나서 술 한잔 마시는 거니까 유한 씨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이런 여자를 온유한이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집으려 데려왔다니! 최신애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정말 가문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어 환장했나...“너 이거, 이거...”화가 난 최신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도 잇지 못했다.“유한이에게 네 민낯을 똑똑히 알리고 말 거야. 널 내쫓게 할 거야.”그 말에도 현채영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말하세요. 유한 오빠가 어머님을 믿을까요. 아니면 저를 믿을까요?”최신애는 말문이 막혔다.오후에 꿀잠을 잔 현채영은 온유한이 퇴근하기 전에 메이크업을 하고 집을 나섰다.온유한이 돌아오자마자 최신애는 바로 가서 고자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