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찬은 정유진이 자기를 죽도로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음이 아프고 자책하고 있기에 강지현을 상대할 틈도 없다.유치원에서 누군가 안팎으로 협조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모르게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경찰은 어린이집 통제에 나섰고 원장부터 청소부까지 남아 심문했다.정유진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강지찬과 함께 사람들을 데리고 연우의 교실로 갔다.교실은 매우 크다. 수업하는 곳, 활동하는 곳, 그리고 잠자는 곳과 식사하는 곳으로 나뉜다.정유진은 아이의 안전만 생각했다. 1분 1초 모두 아이의 생각뿐이다.강지현이 물 한 병을 건네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두르지 마세요. 연우를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예요.”정유진이 말을 잇기도 전에 강지찬은 사람을 끌어안았다.두 사람 사이의 기 싸움을 정유진은 생각할 틈이 없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켰다.“고마워요. 여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요. 먼저 돌아가요.”강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경찰이 어린이집 직원 전원을 차례로 뒤질 때까지 이렇다 할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정유진이 원장실에서 나올 때 날은 이미 저물었다. 연우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오후 내내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강지찬은 코트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며 말했다.“괜찮을 거예요. 나를 믿어요.”정유진의 참고 참았던 화가 이 순간 폭발했다. 그녀는 강지찬을 밀쳐내며 말했다.“다섯 살 아이예요. 한 번도 가족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아이가 분명 놀랐을 거예요. 강지찬 씨, 우리한테서 좀 떨어져 주면 안 돼요? 우리를 그냥 놓아줄 수는 없는 거예요?”강지찬은 굳은 얼굴로 여자를 강제로 품에 안았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우선 집에 데려다줄게요.”“안 갈 거예요. 상관하지 마세요.”이런 상태로 집에 돌아오면 이명자와 정명학만 놀래킬뿐이다. 게다가 집에 앉아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경찰은 연우의 반 선생님에게 연우의 습
경찰은 대량의 경찰력을 동원하여 조사하고 있지만 하룻밤이 지나도록 아무 정보도 찾지 못했다.정유진은 밤새 잠을 못 자서 안색이 안 좋다.강지현이 죽 한 그릇을 앞에 놓고서야 반응을 보였다. 이 사람도 어젯밤에 돌아가지 않았다.“좀 씻고 와요. 건강이 중요하니까.”강지현이 세면도구를 건넸다.“고마...”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에 있던 세면도구와 죽을 모두 다른 사람이 가져가 쓰레기통에 버렸다.강지찬은 그녀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며 차갑게 말했다.“내 마누라는 신경 쓸 필요 없어.”이런 상황에 싸우고 싶지 않은 정유진은 어쩔 수 없이 강지현에게 말했다.“돌아가요. 여기 있어봤자 소용없어요.”강지현도 밤새 잠을 못 자서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였다.그는 별다른 말 없이 은근한 눈빛으로 강지찬을 힐끗 쳐다보기만 했다.강지찬은 정유진을 데리고 근처 호텔로 가서 샤워하게 한 후 아침 식사를 가져다줬다.정유진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강지찬이 샤워가운을 입은 채 전화를 받고 있었다. 방금 옆방에서 샤워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카락에 물기가 남아있었고 얼굴은 아주 진지해 보였다.“누구 전화예요, 연우에게서 연락이라도 왔어요?”“아니요.”강지찬은 식탁을 가리키며 말했다.“아침 식사를 사 왔어요. 일단 식사하세요.”아이의 소식이 없이는 정유진은 입맛도 없었다. 죽 몇 숟가락만 떴을 뿐이지만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옷을 갈아입고 나온 강지찬은 몇 숟가락만 뜬 것을 보고 의자를 잡아당겨 그녀 옆에 앉히고 숟가락을 들고 그녀의 입에 갖다 댔다.“뭐 하는 거예요?”“먹여 주는 거잖아요.”“배불러요.”숟가락이 입가에 있어 안 먹으면 안 된다.“내가 알아서 먹을게요.”강지찬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그녀의 앞에 그릇을 놓았다.마음속에 그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정유진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먹었다.경찰서에 돌아왔을 때, 새로운 심문이 시작되었다.어린이집에 일이 생겨서 며칠째 폐원 상태인데 어린이집 대표까지 나서서 강지찬과 정유진에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선 정유진은 이명자가 심장이식을 해야 한다는 말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지금처럼 절망하고 무력한 적이 없었다. 아이의 행방이 묘연하고 어머니의 생사도 예측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이라도 일이 생기면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다.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려 할 때 강지찬이 얼른 다가가 강제로 품에 안았다.“다 내 잘못이에요, 아이도 우리 어머니도 아무 일 없을 거예요. 맹세해요!”정유진은 그를 째려봤다.“맹세요? 맹세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데? 당장 아이를 만나게 해 줘요. 엄마가 내 앞에 건강하게 서 있게 해 줘요. 할 수 있어요?”강지찬의 그윽한 눈동자가 물결치는 듯했다.신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할 수 없다.아무 말을 하지 않자 정유진은 갑자기 미친 듯이 그의 가슴을 쳤다.“강지찬! 당신 정말 미워 죽겠어! 내가 왜 당신을 만나서 이런 것들을 겪어야 하나고! 왜 당신을 만나게 한 거냐고!”아마 많이 급했던 모양이다. 한참을 발버둥 쳐도 그의 품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정유진은 화가 나 강지찬의 팔을 덥석 물었다.강지찬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품에 안긴 여자를 밀쳐내지 않고 물게 가만히 내버려 뒀다.강지찬은 셔츠를 입었다. 이가 셔츠를 찢지는 않았지만 그 안의 살을 물어뜯었다.잠시 후 네이비 셔츠 소매에 큼직한 핏자국이 났다. 피가 났지만 티가 많이 나지 않았다.“대표님...”장형준은 와서 제지하려다가 강지찬이 눈짓하자 멈추었다.정유진은 입이 뻐근할 때까지 팔을 꽉 물었다. 가슴속의 분노가 가라앉자 그제야 입을 뗐다.강지찬은 자신의 팔을 미처 살피지 못하고 그녀의 턱을 주물렀다.“세게 물었는데 턱은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다운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정유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강지찬은 또 그 틈을 타서 사람을 품에 안으며 달래다.“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찾을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도 사람을 시켜서 맞는 심장을 알아보라고 했으니 모두 괜찮을 거예요. 나를 믿으세요.”
정유진은 강지찬을 심하게 물었다. 물림 자국이 꽤 깊이 박혔다..온미정은 상처를 치료해주면서 욕을 했지만 강지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최근 또 누군가와 원수를 졌어? 아니면 또 어떤 여자를 건드린 거야? 연우와 할머니 중 어느 쪽이든 일이 생기면 네놈은 끝장이야. 너에게 대체 뭐라고 하면 좋을까? 정유진은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너 같은 자식을 만나 이렇게 바람 잘 날 없이 사는지 몰라.”강지찬이 잠자코 있자 온미정은 손에 들고 있던 면봉으로 상처에 세게 눌렀다.강지찬은 너무 아파 온몸을 떨었다.“아픈 것은 알아? 유진이가 너를 물어 죽여야 했는데.”강지찬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병원에 계속 있을 수 없으니 유진이와 장모님, 잘 부탁합니다.”“꺼져, 꺼져. 널 보면 화가 나, 빨리 아이나 찾아. 벌써 하루가 지났어. 연우도 분명 많이 놀랐을 거야.”온미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우는 그가 직접 받고 기른 아이이다. 연우를 특별히 좋아했다.중환자실 밖에는 정명학이 말없이 앉아 있었다.강지찬이 다가오자 그제야 일어났다.“여기는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 빨리 가서 아이를 찾아.”“네, 지금 가보겠습니다.”강지찬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원을 나섰다.차에 오르자 강지찬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장형준이 한마디 했다.“대표님, 고남준 씨가 요즘 연회 객을 끌어모으느라 바빠 보입니다.”강지찬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았다.“둘째네와 영감 쪽은?”“둘째 할아버지 세 식구 모두 외국에 나가 있어서 별 이상이 없습니다. 어르신 쪽은 요즘 고 사모님과 같이 외출을 거의 안 합니다. 외출도 다른 사람과 미용 약속이나 쇼핑만 하고요. 정상으로 보입니다. 강지현 쪽은 고남준을 제외하고는 평소 거의 상록수 별장에 머물러요.”강지찬이 담배꽁초를 던지며 장형준에게 운전하라고 지시했다. 머릿속이 매우 빨리 돌아갔다.최근 몇 년 동안 그는 많이 수그러들었다. 비즈니스업계에서도 적을 만들지 않았다. 가장 많이 미움을 산 사람이라면 강지
강지찬은 제시간에 성원에 도착했다. 고남준도 와 있었다.강지찬을 본 고남준은 피식 웃었다.“강 대표님 드디어 오셨네요. 아, 오랜만에 뵙는데 강 대표님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지셨어요? 몸매 유지를 잘하시네요.”강지찬은 인사할 기분도 없이 강지현을 바라봤다.“그래. 직접 왔어. 무슨 조건인데? 말해봐.”고남준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두 강 대표님이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으니 저는 나가서 기다릴까요? 강 대표님, 시간이 없으니 통쾌하게 결정해 주세요.”뒤에 있는 ‘강 대표'는 강지찬에게 하는 말이다. 고남준은 자기가 데려온 사람을 데리고 옆 회의실로 갔다.보아하니 오늘은 결론을 낼 작정인 것 같다.고남준이 떠나자 강지현 사무실의 분위기는 금세 긴장감이 돌았다.최의현이 웃으며 말했다.“도대체 누가 통쾌하지 않은데? 지현 씨, K그룹이 제시한 조건을 고남준 씨가 맞춰줄 수 있나요?”강지현이 뜨거운 차 한 잔을 손에 든 채 강지찬을 바라보며 말했다.“맞아요. K그룹과 비슷한 조건이지만 당연히 고남준 쪽이 조금 모자라겠죠.”최의현이 다급한 듯 물었다.“그럼 뭘 망설이는 거죠?”강지현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천천히 말했다.“내가 돈이 많고 적음에 신경 쓸 것 같이요?”강지찬의 눈빛이 침울해졌다.최의현이 분개하며 말했다.“무슨 뜻이에요? 처음부터 성원을 우리에게 줄 생각이 없었던 거 아니예요? 강지현 씨, 지금 우리 놀리는 거예요?”강지현은 찻잔 속 맑은 찻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처음부터 말했어요. 정유진만 있으면 된다고.”최의현은 책상을 쾅쾅 걷어찼다.“X발, 너 왜 아직도 안 죽은 거야?”그동안 최의현은 성원을 인수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이제 강지현만 사인하면 된다. 그런데 이 인간이 돈이 아니라 여자 얘기를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게다가 강지찬의 여자를 뺏으려 한다. 본인의 병적이고 재수 없는 꼴은 안 보이나 보다.고남준만 옆방에 있지 않았으면 최의현의 성격상 분명 강지현
최의현은 어쨌든 강지찬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조금만 머리를 써도 상대방의 뜻을 알 수 있다.“강 대표님, 연우의 실종이 고남준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시는 건 아니죠?”장형준도 백미러를 통해 강지찬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연관성을 생각하는 듯했다.강지찬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연우가 실종된 지 며칠이 지났어. 살아있는지도 모르고... 정말 나의 원수라면 아무 소식이 없을 수 없어.”최이현이 말했다.“강지현일 수는 있을까? 너를 협박하기 위해 연우를 데려간 것이지. 예전에 정유진을 데려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그 자식이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 같아.”강지찬이 대답했다.“강지현은 아니야. 유진 씨와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했어. 아이로 유진 씨를 협박하려 했다면 진작 했을 거야. 아이가 유진 씨의 가장 나약한 부분인 것을 알거든. 하지만 아이를 건드리는 것이 유진 씨를 건드리는 것보다 더 본인에게 더 안 좋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강지현은 아니야.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해.”최의현은 그 분석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우 일이 고남준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놈이 그렇게 건방지게 굴 수 있을까? 감히 우리 땅에서 내 조카를 건드린다고? 미친 거 아니야?”강지찬이 코웃음을 쳤다.“사람마다 나약한 부분이 있어. 고남준은 바로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고. 성원은 분명 고남준에게 매우 중요할 거야. 자기 사업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아버지와 담판을 지으려고 하는 거야. 내 추측에는 고씨 집안에서도 틀림없이 그 남자에게 무슨 짓을 했을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고남준을 이토록 미치게 하지는 않았겠지.”말을 마치고는 이내 장형준에게 지시했다.“고남준과 그 남자의 자료를 고남준에게 보내.”장형준은 즉시 사람을 시켜 움직였다.강지찬은 또 경찰서에 갔다.이명자는 이미 깨어났고 병세가 잠시 안정되었다. 다만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심장이식을 하는 것이다.정유진은 요즘 병원과 경찰서만 오가고 있다.강지찬이 도착했을 때
경찰이 CCTV를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김숙희라는 이름의 청소부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김숙희는 연우 반을 전담하는 청소부로 서른다섯 살이다. 어린아이들은 숙희 이모라고 다정하게 불렀다.물컵을 들고 교실에서 나간 연우의 모습이 CCTV에 찍혔지만 교실 밖 작은 통로는 화장실과 아이들의 실내활동실, 그리고 낮잠을 자는 곳이어서 CCTV가 없었다.연우는 교실을 나온 후에 보이지 않았다.강지찬과 정유진은 경찰을 따라 현장을 찾았다. 어린이집은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일부 구석과 화장실만 없었다.화장실 안은 휑뎅그렁하고 아주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어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다.한 여경은 화장실을 한 바퀴 돌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른 반 화장실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팀장에게 보여주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다른 반 화장실에도 이런 청소 전용차가 있습니다.”그러자 뒤따르던 유치원 직원이 말했다.“이런 청소차는 학교에서 배치한 것입니다. 반마다 다 있습니다.”강지찬과 정유진은 얼른 다가가 봤다. 일부 쇼핑몰이나 마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청소차이다. 쓰레기를 수거할 수 있고 옆에 대걸레 통이 딸려 있었다.청소차는 높이가 무려 1미터가 넘는다. 의식을 잃은 아이를 충분히 안에 넣을 수 있었다.CCTV를 확인한 사람이 CCTV를 캡처 화면을 보여줬다.김숙희는 청소차를 끌고 유치원 내 운동장을 차분히 가로질러 유치원 후문으로 직행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그러자 직원이 말했다.“후문 밖은 어린이집 쓰레기 처리장입니다. 매일 아침 청소차가 와서 쓰레기를 싣고 갑니다.”그러니까 김숙희가 방과 후 청소차를 끌고 다니며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평범한 행동이라는 것이다.이 시각 유치원에서는 연우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난리가 났다.CCTV를 보던 정유진은 당장이라도 미칠 것 같았다.“아이가 청소차 안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그렇게 앳되고 어린 연우가 쓰레기처럼 청소차에 버려졌다
강지찬은 연우의 실종이 어쩌면 고남준이 관련이 있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통화를 통해 이 모든 것이 고남준의 소행임을 확신했다.고남준이 한 짓이니 적어도 사건의 발단은 확실히 그와 관련이 있다.정유진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나도 방금 확인...”“어떻게 할 예정이에요?”정유진이 물었다.강지찬은 어리둥절해졌다. 상대방의 표정이 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솔직히 말했다.“고남준의 비밀을 손에 넣었어. 연우와 맞교환할 생각이야.”“그 다음엔요?”정유진이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강지찬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정유진은 앞으로 몇 발자국 나와 강지찬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러고 나서 다 잊고 고남준과 협력하려는 거예요?”비즈니스 부분에서 강지찬은 고남준과 싸울 생각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자신의 의심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만약 그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랐다.어쨌든 고남준의 배후에는 서경시의 고씨 집안이 있었고 K그룹도 서경시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하지만 정유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정유진은 강지찬의 비즈니스 스타일에 늘 이견이 있었다. 강지현 외에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해결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정유진은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강지찬은 경찰서에서 싸우고 싶지 않아 그녀를 다독였다.“이 일은 나에게 맡겨. 걱정하지 말고. 연우는 무사히 돌아올 거야.”말을 하면서 정유진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댔다.하지만 상대방은 이내 손을 뿌리쳤다.“무사할 거라고요? 벌써 5일이나 지났어요. 연우가 완전히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면 마음속에 트라우마가 남을지 걱정은 안 돼요? 얼마나 무서울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는 아직도 병원에서 심장이식을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다고요. 만약 적당한 심장이 없으면 병원에서 나오지 못할 거예요!”자신을 아껴주는 엄마가 이대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유진은 당장이라도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