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아는 생각할수록 강홍식과 고세연의 행동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그녀는 다가가 고세연의 손을 잡고 강홍식의 뒤에서 그녀를 끌고 나왔다.“당신이 한 거죠?”강홍식은 정유진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옆에서 바람을 넣지 않는 한, 절대 강지찬에게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세연은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얼굴에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수아야, 그게 무슨 말이야? 잘 모르겠어, 손 놓아줘.”말하며 강홍식에게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영감!”강홍식은 강수아를 가리켰다.“너 얼른 손 떼. 배 속의 아이한테 문제라도 생기면 절대 가만 안 둬!”강수아는 강홍식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고세연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작은오빠랑 무슨 합의 봤어요? 흥, 저번에 언니가 납치될 때도 당신 흔적이 있었어요. 오빠가 추궁하지 않는다고 마음 놓지 마세요. 언젠간 끝장을 볼 테니까요.”고세연은 마음이 불안해졌지만, 표정은 점점 억울해 보였다.“수아야, 난 억울해. 정말 내가 한 게 아니야.”“그런지 아닌지는 당신이 말한 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강수아도 그녀에게 구역질이 나 고세연을 한쪽으로 내던졌다.할 말은 이 꼬맹이가 다 했기 때문에 강지찬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온 강지찬은 안색이 조금 되돌아왔다.원래 화가 너무 나서 정유진을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아까 강수아의 분석을 듣고 좀 진정이 되었다.둘이 촛불 만찬을 즐긴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정유진이 그를 대하는 태도도 분명 좋아졌는데, 갑자기 실종될 리가?그리고 그녀의 새 회사도 아직 인테리어 중인데, 일편단심으로 사업에 임하는 그녀가 어렵게 쌓아온 시장을 내버려두고 도망갈 리가 없다.온유한도 말했다.“이번 형수님이 실종된 일은 정말 수상해요. 조사를 꼼꼼히 하고 나서 다시 말하죠.”경은우도 덧붙였다.“이번 일은 다 실마리가 있어요. 형수님이 이혼 소송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아마 강지현이 자극받았을 거예요. 그리고 요즘 형수님과 형이 다시 같이 일하
쪽배는 결국 두 사람을 섬으로 데려다주었다.돌길을 따라 섬으로 들어가면서 정유진은 섬에 흩어져있는 나무집을 보았다.강지현은 열쇠를 꺼내 그중 하나의 문을 열었다.집안은 누군가 청소를 했는지 매우 깨끗했고 심지어 입구에 새 슬리퍼 두 켤레가 놓여 있었다. 한 켤레는 남성용, 한 켤레는 여성용이었다.강지현은 신발을 갈아신고 집 안으로 들어가 창문의 커튼을 열었다.이곳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하늘을 자주 볼 수 있는 북쪽과는 달랐다. 정유진이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이곳의 날씨는 안개가 자욱하고 공기가 매우 습했다.“이 섬은 사방이 호수로 둘러싸여 있어 들어오고 나갈 때는 배를 불러서 갈 수밖에 없어요.”강지현이 말했다.정유진은 한숨을 내쉬었다.“언제까지 여기 계실 거예요?”강지현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대답을 하지 않고 부엌으로 가려고 돌아섰다.미리 청소할 사람을 불러서 주방 냉장고에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깨끗하게 씻은 과일 한 접시를 들고 올 무렵, 정유진은 신발도 갈아신지 않은 채 여전히 현관에 서 있었다.강지현은 접시를 내려놓고 그녀 앞에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발을 잡고 신발을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정유진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손을 피했다.“제가 할게요.”강지현도 억지로 손을 대지는 않았다.나무집은 이층으로 되어있었는데 아래층에는 거실과 식당, 주방과 작은 창고가 있었고 위층에는 침실 2개와 서재가 있었다.정유진은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는 강지현을 보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저녁 식사는 강지현이 생선찜, 게찜, 야채 볶음과 수프를 만들어 호화롭게 먹었다.두 사람은 조용히 밥을 먹은 후 정유진은 설거지하러 갔다.부엌을 정리하고 돌아서자, 강지현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았다.“솔직히 제 제안이 마음이 움직였죠? 맞아요?”정유진이 말을 꺼냈다.“정말 당신과 사이가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아요. 지현 씨, 저희는 불가능한 사이에요. 제가 결국 강지찬씨과 이혼을
3일 동안 섬에 머물렀지만, 가끔 야채와 과일을 배달하러 오는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정유진은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다.강지현에게 물어보니 이 섬의 나무집은 모두 부자들이 휴가를 위해 구입한 것이고, 섬은 휴가철에만 사람이 있다고 했다.즉, 전화를 빌리려고 해도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여기에 얼마나 머무를 건가요?”“형님이 찾으러 오기 전까지요.”이 ‘형님’이라는 단어는 꽤 아이러니했지만, 강지현의 표정은 늘 그렇듯 한결같았다.그는 정유진의 인내심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는 위로해 주는 대신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요리했다.그는 그런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그날 밤, 정유진은 멍한 상태에서 잠이 들려고 할 때 갑작스러운 기침 소리에 잠에서 깼다.강지현은 한참 동안 기침을 멈추지 않았고 정유진은 그에게 물을 부어줄 수밖에 없었다.“약 챙겼어요?”강지현이 눈짓으로 침대옆 서랍을 가리키자, 정유진은 서랍을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많은 약이 들어있었다.강지현은 그 약서랍에서 능숙하게 약을 조제해 스스로 약을 먹었다.한참 동안 기침을 한 그는 약간 기운이 없어 보였다.“여기는 습도가 너무 높아 공기가 좋지 않아서 당신 몸에 좋지 않아요.”정유진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병원으로 가봐요.”강지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전 그렇게 연약하지 않아요. 잔병치레에 익숙해서 잘 알아요.”그가 설득되지 않는 것을 본 정유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강지현의 병은 즉시 나아지지 않았다. 밤새 잠깐씩 기침을 하더니 다음날 더욱 무력해 보였다.정유진이 아침밥을 차리고 그는 죽 반 그릇만 마셨는데 얼굴이 약간 하얗게 질렸다.점심이 되어서야 정유진은 그가 열이 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해열제를 먹어도 별 효과가 없었다.사실 강지현은 몇 년 동안 앓지 않았던 폐렴이 이 섬의 기후 때문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폐렴에 걸릴 때마다 입원해야 했고, 약을 먹
한밤중인 데다가 핸드폰도 없으니, 정유진은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몰랐다.밤의 호수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고 공기가 차갑고 바람이 조금 거셌다. 강지현은 또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우리 또 어디로 가는 거예요?”정유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강지찬이 온 거예요?”강지현은 그녀를 등지고 안아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계속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말일 끝낸 그는 죽을 듯이 기침하며 노를 전혀 젓지 못했다.“죽고 싶은 거예요?”정유진은 노를 빼앗아 저었다.“저희 돌아가요.”지금 배가 뭍과는 멀지 않아서 정유진은 노를 저을 줄 몰라도 몇 번 첨벙거리면 배를 다시 뭍으로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강지현이 그녀를 밀어내고 다시 고집스럽게 노를 저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갑자기 번개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바람이 거세지면서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정유진의 심장은 심하게 뛰면서 몹시 나쁜 예감이 들었다.“강지현 씨, 돌아가요. 비가 올 거예요.”강지현은 고집을 부렸다.“그렇게 쉽게 당신을 찾게 두지는 않을 거예요.”정유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오는 길에 저는 당신과 싸우지도 다투지도 않았어요. 강지현 씨, 왜 그런지 아세요?”강지현이 대답했다.“알아요.”“지금 돌아가도 늦지 않았어요.”정유진은 화를 참으며 충고할 수밖에 없었다.“당신 지금 아파요. 비까지 맞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은 해봤어요?”강지현은 바람에 숨이 막혀 기침을 하면서도 노를 놓지 않고 꽉 잡았다.“애초에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예요. 제가 살고 싶은 줄 알아요?”그는 노를 전혀 젓지 못했고 바람은 점점 더 거세져 그 몸으로 온전히 서 있지도 못했다. 쪽배도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정유진도 잔소리를 하기 귀찮아 노를 뺏기 위해 덮쳐들었다.그는 강지현이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렇게 냉정하고 삶을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그렇게까지 할까?이 순간에야 그녀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알고
강지현을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다시 잠자리에 눕히느라 정유진은 지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그녀는 옷을 먼저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감기 예방을 위해 소염제와 해열제를 찾아서 강지현이 먹는 것을 지켜본 후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와서 보니 강지현이 이불에 싸여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정유진이 이마에 손을 대보니 밤중에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강지현의 열이 더 심해졌다.이 상태로는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찬장을 뒤져도 휴대전화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정말 휴대전화가 없어요.”강지현은 말을 하면서도 입이 덜덜 떨렸다.정유진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휴대전화가 없는데 강지찬이 왔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오늘 오후에 식료품을 배달해 준 아저씨가 내일이면 강지찬이 이곳으로 찾아올 거라고 하더군요.”정유진은 그가 너무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을 보고 할 말이 없어 침실로 가서 이불을 가져와 강지현에게 덮어주어야 했다.하지만 강지현은 여전히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다.이 계절에 나무집에서 준비한 이불은 여름용 이불이었고, 방금 옷장을 뒤져보았지만, 겨울용 이불은 없었다.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침대에 들어가 이불 사이로 강지현을 꼭 안아야 했다.잠시 후 강지현은 서서히 진정되었다.그날 밤 한바탕 소동을 벌이다 보니 정유진도 피곤하고 졸려서 언제 깊은 잠에 빠졌는지 모를 정도였다.다음 날 아침, 강지찬이 도착했다.침대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강지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는 강지현의 품에서 자는 여인을 죽일 듯이 바라보며 그 얼굴이 정유진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그 순간 강지현은 눈을 떴다.강지찬을 본 그는 전혀 놀라지 않고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강지찬을 바라보았다.침실에는 세 사람만 있었고, 장형준과 다른 두 사람은 바깥을 지키고 있었다.강지현은 갑자기 도발에 가득 찬 얼굴로 웃었다.“형님, 오셨어요.”강지찬은 이마의 핏줄이 불끈거렸다.그는 끝까지 쫓아
조금 전 금방 깨어났을 때 강지현과 함께 있던 장면을 생각하니, 정유진은 오늘이 문제에 관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강지찬의 모습은 끔찍했고, 실망으로 가득 찬 얼굴은 정유진의 심장을 내리치는 망치와도 같았다.정유진은 심장이 약간 답답하고 약간 아파졌다.“믿기 어렵겠지만 강지현 씨와 저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는 지금 많이 아파요. 먼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야 해요.”강지찬은 정유진을 지극히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정유진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 바닥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는 강지현을 바라보았고, 그의 뜨거운 체온이 옷 사이로 느껴졌다.강지찬은 배를 타고 왔고, 장형준은 부하들을 데리고 강지현에게 옷을 입혔다.병원에 도착해 입원 준비를 마치자 이미 날이 밝았다. 강지현은 링거를 맞았다.강지현을 병원에 안정시켜둔 후 정유진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강지찬은 물론 장형준도 보이지 않았다. 문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경호원만 눈에 띄었다.“강지찬 씨는 어디 있나요?”“사모님, 대표님은 먼저 돌아가셨어요.”정유진은 멍했다.“먼저 갔다고요?”“둘째 도련님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대표님이 장형준과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갔어요.”정유진은 할 말이 없었다.이번에는 강지찬이 정말 화가 났다.강지현은 오후에 정신이 들었다. 이쪽의 의료 수준은 당연히 서울만큼 좋지 않고, 강지현의 폐질환은 다소 복잡하여 그의 염증이 좀 가라앉고 열이 내리면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준비할 예정이었다.그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고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그 옆에는 강지찬의 경호원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때때로 강지현에게 관심을 건넸다.정유진은 뒤쪽에 앉아서 줄곧 말을 하지 않았다.서울로 도착한 강지현은 곧바로 태안병원으로 보내져 또 다른 일련의 검사를 시작했다.정유진도 그때쯤에 떠나가 애매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강홍택과 류선이 도착했다.류선은 정유진을 보고 분노로 눈이 붉어져서는 곧장 달려가 정유진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하지만 정
“깼어?”이명자는 서둘러 체온계를 가져와 정유진의 이마에 대보았다.“37.4도, 아직 미열이 조금 있네.”한 잠자고 난 정유진은 많이 나아진 것 같아 안도하며 말했다.“전 괜찮아요.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이명자는 다시 부엌으로 가서 죽을 한 그릇 펐다.“자기는 뭘 자. 낮에 할 일도 없는데 그때 자면 되지. 죽 끓여놨어. 죽 먹고 감기약 또 한 번 먹어. 그래도 안 되면, 내일 병원 가자.”“네, 엄마 말 들을게요.”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훨씬 편안해졌고 체온을 재보니 열이 없었다.그녀는 집에 머물지 않고 연우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K그룹으로 향했다.임우연은 대표사무실로 들어가려는 정유진을 막아섰다.“정 대표님, 강 대표님 안 계십니다.”정유진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출근 안 했어요?”임우연이 말을 이었다.“강 대표님 출근 안 하신 지 며칠 되셨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근데 지금은 최의현 부대표님도 안 계세요.”정유진은 몸을 돌려 회사를 떠났다.한동안 강지찬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전화는 연결되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강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언니?”전화기 너머로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돌아왔어요? 우리 오빠 절대 버리지 않을 거라니까요. 언니랑 둘째 오빠 어디 갔던 거예요? 언제 돌아왔어요?”정유진은 그녀와 수다를 떨 시간이 없었다.“어제 돌아왔어. 네 오빠 돌아왔니? 본가에 있어 아니면 부경원에 있어? 네 오빠한테 물을 일이 좀 있어서.”“전 모르겠어요. 오빠가 언니 찾으러 가고 나서 며칠 못 봤어요.”전화를 끊고 정유진은 자현거로 향했다.그녀는 강지찬이 여기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가보기로 마음먹었다.한참 동안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자, 그녀는 아예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들어갔을 때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거실 테이블에 가득 놓인 술병을 보았다.
정유진은 믿을 수 없었다.4년 전 그녀와 강지찬은 원래 서로 마음이 거의 없었고 두 사람은 항상 서로를 믿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강지찬의 말을 믿지 않았다.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저에 대한 강지현 씨의 마음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어요. 믿거나 말거나 저는 항상 그를 친구로 대했고요.”강지찬은 지금 당장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고, ‘친구’라는 단어는 그에게 상당히 거슬리게 들렸다.“친구? 정유진, 날 역겹게 하지 마.”“거짓말 아니에요.”강지찬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서 눈앞에 있는 여자를 고고히 내려다보았다.“네가 친구라고 했는데 그러면 왜 둘이 같이 서남쪽에 있는 외딴 마을에 같이 나타난 건지 말해줄래? 강지찬이 널 납치해서 데리고 간 거야, 아니면 네가 협조해서 그와 같이 간 거야?”정유진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처음에는 강제로 차에 탔지만, 강지현과 사이가 껄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그를 설득해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기에 저항하지 않았다.“저는 강지현에게 포기하라고 설득하고 싶었어요. 그와 사이가 껄끄러워지기 싫어요.”정유진은 솔직히 말했다.강지차은 강지현의 얼굴을 떠올리며 화가 나다 못해 실소했다.“그럼, 왜 날 찾아온 건데? 그렇게 걔가 아쉬우면 걔를 찾으러 가.”강지찬은 말을 끝내고 뒤돌아서서 서랍에서 문서를 꺼내 펜을 들고 사인을 했다.사인을 마친 후 그는 정유진의 얼굴에 던져주었다.“네가 계속 이혼하고 싶어 했잖아? 정유진, 네가 이겼어. 네 소원 들어줄게. 내일 오후 세 시, 동사무소 앞에서 만나.”정유진은 얼어붙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지찬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얼굴은 혐오와 실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 눈빛은 애정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차가웠다.“이혼 서류 챙겨서 꺼져!”강지찬은 돌아서서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정유진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은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였다.그녀는 이혼 합의서를 집어 들고 강지찬이 이미 서명한 것을 확인했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