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기 안에서 안가희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계속 공격해.”계속 공격한다는 것은 그들은 죽고 이성준의 부상이 계속되면서 한 치의 전진도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남자는 무슨 말을 더하려고 했지만 안가희는 무전기를 끊어버렸고 그들은 힘이 없이 눈빛 교환을 하고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공격을 계속했다.밤이 깊어져 갔고 피비린내는 밤의 습기를 머금고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이들이 마지막으로 쓰러지자 이성준의 큰 몸도 그제야 약간 비틀거리며 나무줄기에 기대었다.하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산 아래 숲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다음 공격을 기다렸다. 그는 거의 한계에 다다른 자신의 몸을 전혀 사리지 않았다.그는 이미 상처투성이가 되어 선혈이 백골에 물들어 있었다.잠시 후 숲에서 다시 드문드문 소리가 들려왔고 이성준은 심호흡하고 다시 똑바로 섰다. 손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고 천천히 주먹을 쥐고 싸울 준비를 했다.밀림의 풀숲이 뜯겨 나갔고 백아영이 그 속을 뚫고 나와 비틀거리며 이성준에게 달려들었다."성준아!"어둑어둑한 달빛이 그녀의 이전보다 더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이성준은 곧장 앞으로 나가 그녀를 받았다.“빨리 돌아가.”"동굴이 발견됐어. 그들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동굴을 찾으러 갔어.”백아영은 목소리가 허약했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부드럽게 기대어 있었고 그녀의 몸에도 몇 군데의 새로운 상처가 생겨나 피가 멈추지 않았다.탈출도 구사일생이었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우리는 아마 살길이 없는 것 같아."백아영은 애달프게 이성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성준아,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나는 너와 함께 있고 싶어.”"도망가려면 같이 가고 죽으려면 같이 죽어. 우리 이제는 헤어지지 말자, 알았지?”이것은 현명한 결정은 아니었다. 그들이 함께 있으면 더 빨리 죽을 뿐이다. 하지만 동굴이 이미 발견되었고 다음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지금 그녀를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숨길 시간도
바로 그때, 초조하고 긴장된 고함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성준아, 등뒤를 조심해!”달빛 아래의 숲에 또 다른 백아영이 서 있었다.이성준은 경황실색하여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뒤로 시선을 돌렸다. 등에 업힌 백아영은 이때 그를 기습하는 남자에게 비수를 꽂았다.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방금 그는 반드시 한 대 맞았을 것이다.이성준은 날렵한 발길로 남자를 걷어찼지만 서있던 백아영은 여전히 다급하게 소리쳤다.“네가 업은 건 내가 아니야. 가짜라고! 빨리 그녀를 내려놓고 떨어져!”두 백아영은 똑같이 생겼고 심지어 전에 그가 그녀에게 감아준 상처도 똑같았다."저 여자야말로 가짜야. 성준아, 절대 속지 마.”등에 업힌 백아영은 다급하게 말했다. "만약 내가 가짜라면 아까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분명히 알았을거야.”확실히 이 여자가 가짜라면 두 사람이 접촉하는 즉시 이성준도 알 수 있었다.등에 있는 백아영은 가짜가 아닐 것이다.방금 나타난 백아영은 아마 변장을 했을 것이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업고 뒤로 물러섰다.서 있던 백아영은 안달복달해하며 그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몸에 많은 상처를 입어 비틀거리며 걸었으며 걸음마다 새로운 피를 흘렸다.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성준아, 이 여자는 가짜야. 처음으로 나를 사칭한 것이 아니라고. 얼른 떨어져, 제발.”백아영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네가 나를 믿지 않더라도 좋아. 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쉽게 믿지 마. 방금 이 여자가 너를 습격하려고 했으니 다시는 기회를 주지 말라고.”등에 엎혀 있던 백아영은 이 말을 듣고는 눈 밑에서 차가운 빛이 반짝였다.이성준은 솜씨가 좋고 경각심이 높아 기습도 성공하기 매우 어려워 다시 기회를 찾아야 하는데 지금 들통나면 이성준도 그녀를 경계할 것이고 그러면 손을 쓰기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았다.그녀는 반드시 이성준이 그녀를 완전히 믿게 해야 했다!하지만 진정한 백아영을 눈 앞에 두고 그녀가 잘
"셋까지만 셀게.”셋!유쾌한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 마치 큰 연극을 보는 관중 같았다.둘!경호원의 단검이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동시에 두 명의 백아영의 피부를 긁었고 두 여인은 모두 피를 흘렸다.그녀들의 눈에는 모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하나!비수를 가로 그었다.이성준은 번개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두 백아영과의 거리는 비슷했기에 같은 시간에 한 명만 구할 수 있었다.잘못 선택하면 진짜 백아영은 그의 눈앞에서 죽는다.가짜 백아영은 손을 들어 그에게 내밀었는데 그녀는 기대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이성준이 자신을 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복제 체였고 모든 면에서 백아영과 똑같았다. 물론 이성준에게 주는 느낌도 마찬가지였다.그는 어떤 이상도 알아차릴 수 없었고 어떤 차이도 느낄 수 없었다.인간은 감각적인 생물이며 특히 이성준과 같은 자신감 있는 남자는 자신의 감각적 판단을 더 잘 믿는 편이다.가짜 백아영은 기쁨에 겨워 이성준이 자신을 내민 손을 잡기를 기다렸다. 한편 진짜 백아영은 눈물로 이성준을 흐릿하게 바라볼 따름이다.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칼날이 목덜미를 베고 피가 튀었을 때 가짜 백아영의 손은 그대로 힘없이 툭 떨어졌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이성준이 진짜 백아영을 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아니!”"말도 안 돼!”그녀의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함을 질렀다. "넌 날 구했어야 했어, 왜, 왜......”만약 진짜 가짜라면 그가 그렇게 진실하게 느낄 수 없었다. 한 치의 허점도 없었다.그러나 "아영이만이 시종일관 나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었어.”"허, 그렇군......”가짜 백아영은 슬픔에 말문이 막혔다. 눈의 흉악함이 마침내 꺼지고 그녀는 힘없이 쓰러졌다."감동적인 한 장면이네.”안가희는 손뼉을 치며 칭찬했지만 눈빛은 가장 독한 뱀처럼 음흉했다.그녀의 한이 하늘을 찌를 듯한데... 그녀는 사랑을 얻지 못하는데 백아영과 이성준은 왜 행복해야 하지?진정한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공격당하고 있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성준은 여전히 백아영을 잘 보호하고 있었다. 이성준은 그 누구도 자신을 넘어 백아영에게 접근하지도, 위해를 가하게 하지도 못하게 방어하고 있었다.하지만 이성준의 몸은 상처가 쌓여 부상이 심해지며 점점 더 만신창이가 되어갔다.이성준의 몸에는 점점 더 많은 반항의 흔적이 쌓여갔고, 그의 몸에 있는 수많은 상처는 백아영의 마음을 갈기갈기 할퀴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흐느끼며 비통함에 몸서리를 쳤다.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그들의 반항은 죽기 전의 몸부림과도 같은 형벌이 되어버렸다.“그만해요, 제발 그만해요.”백아영은 눈물로 인해 눈가가 빨개졌다.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떨리는 몸을 추스를 틈도 없이 안가희에게 달려갔다.“제가 졌어요.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요. 제발 그만해줘요. 더 이상 성준이한테 상처 주지 마요.”“아영아, 돌아와!”이성준은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백아영을 다시 데려오려 했다. 하지만 공격하던 사람들은 기세를 몰아 이성준과 백아영을 갈라놓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이 안가희 앞에 무릎꿇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안가희 옆을 지키던 경호원은 앞으로 나서 백아영을 제압했다. 백아영은 안가희 발밑에 엎드릴 정도로 절박하고 비굴하게 자비를 구했다.“죽여요, 날 죽여요.”눈물범벅이 된 백아영의 눈빛에서는 한낱 희망도 보이지 않고 절망만 가득 찼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발적으로 목을 안가희 앞으로 내밀었다. 죽기만을 희망하면서 내보이는 약점이었다.경호원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백아영은 이미 무너졌다.안가희는 희열에 찬 모습으로 백아영을 지켜봤다. 지금, 이 순간, 오랜 기간 가슴에 맺혔던 한이 드디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안가희는 마침내 백아영에게 죽기만도 못한 고통을 안겨주는 복수를 했다.안가희는 자기 행복을 방해한 주범인 백아영이 지옥을 경험하는 게 좋았다.“후회해요?”안가희는 백아영을 내려다보며 한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이 여자 죽일 거야!”하얗고 연약한 피부에 날카로운 비수가 닿았다.변화는 굉장히 빨리 일어났다. 진공 석화의 찰나였다. 경호원들이 깨달았을 때는 전세가 이미 완전히 역전된 순간이었다. 안가희는 그제야 격앙된 감정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다.“백아영씨, 절 속였군요!”조금 전, 백아영이 일부러 방시운의 얘기를 꺼낸 의도는 안가희의 감정을 끌어내 허점을 찾기 위함이었다.“당신이 처음부터 무릎꿇고 죽여달라 애원한 이유가 반격할 기회를 찾기 위해서였군요.”백아영도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없어 평생을 바친 연기와 목숨을 대가로 도박을 걸었다.다행하게도 안가희는 걸려들었다.안가희가 제압당하자, 모든 킬러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성준도 즉시 백아영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눈빛을 교환하면서 이성준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입술만 짓이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이성준이 마음속에 맺힌 말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백아영은 창백한 입술을 끌어올려 애써 웃으며 물었다.“성준아, 헬기 운전할 줄 알아?”이성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깔끔하게 안가희가 왔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백아영의 앞길을 막지는 못했다.멀지 않은 공터에 안가희가 산을 오르기 위해 타고 왔던 헬기 한 대가 멈춰있었다. 이성준은 헬기 안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운전석에 앉았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백아영은 이제야 이성준이 얼마나 다쳤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검은 셔츠는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이성준이 흘린 피는 그런 셔츠마저 물들여 변색시켰다.백아영은 마음이 찢기는 것 같았지만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한 발 한 발 신중히 후퇴하여 헬기를 향해 갔다.안가희는 현재 처한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백아영이 헬기 오르는 순간 그녀에게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안가희는 이미 모든 걸 잃었다. 더 이상 복수할 수 없다면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그냥 보내면 안 돼!”안가희는 미친 듯이
헬기가 이륙하고, 숲은 시야에서 차츰 작아졌다.백아영은 안가희를 기절시키고 마침내 긴장을 풀고 힘없이 의자에 기대었다.하지만 신경은 여전히 곤두선 채로였는데 그녀는 운전석에 앉은 이성준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괜찮아?”이성준의 부상은 그녀보다 훨씬 심각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열몇 번이나 저승사자를 만났을 텐데, 그는 이를 악물고 버티며 헬기를 조종하고 있었다.이성준의 표정은 냉정했다. 마치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대답했다.“난 괜찮아. 아영아, 눈 좀 붙여. 자고 깨면 집에 도착해있을 거야.”집에 도착하면 이 악몽은 끝나있을 것이다.백아영은 마음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 이성준과 함께 여전히 살아있으니 말이다.헬기가 선우 일가의 착륙장에 도착하여 안정적으로 착륙한 순간 선우경진이 사람들과 허들을 들고 헬리콥터로 향했다. 그들은 조심스레 백아영과 이성준을 이송했다.집에 도착한 후, 백아영은 상념을 벗어나 마음 편히 잘 수 있게 되었다.그동안 부족했던 잠과 피로를 한 번에 회복하기라도 하듯 백아영은 오랜 시간 잠들었다.눈을 떴을 때 그녀는 너무 오래 자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엄마, 머리 아파? 현무가 주물러 줄게.”고사리 같은 손이 백아영의 이마에 안착하여 부드럽게 주물럭거렸다. 아픔이 서서히 가시는 기분이었다.백아영의 생각도 서서히 되살아나는 중이었다.현무는 기억 속에 있던 모습처럼 여전히 점잖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한동안 못 본 새 조금 야위고 눈가가 붉은 것이 강인한 척하며 눈물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여 더 마음이 쓰였다.그녀가 만신창이인 채로 돌아와 현무가 많이 놀란 듯하였다.“현무야, 엄마는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백아영은 자책하며 아이를 안았다.한 번의 포옹, 한마디의 위안이 아이에게는 도화선이 되었는지 울음을 터트렸다. 현무는 백아영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현무와 얼마나 안고 있었을까, 백아영은 조심스레 물었다.“아빠는 어때, 깨어났어?”
그녀는 흐느껴 울며 내뱉었다.“다행이다, 다행이야...”“그래.”이성준은 천천히 손을 올려 그녀를 품에 안았다.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그 속에는 한없는 다정함이 담겼다.“와! 너무 좋아요, 엄마랑 아빠가 드디어 화해했네요.”현묵이는 기쁨의 손뼉을 쳤다.‘화해?’그 말을 듣자 흥분했던 백아영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고 이제야 이성준과 이미 헤어진 사이라는 것이 떠올랐다.그들은 한차례의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었을 뿐, 화해는 하지 않았다.그들 사이의 갈등은 제삼자 때문이었다...둘은 떨어져서 마주 앉았다. 분위기는 삽시간에 숙연해졌다.이성준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심란한 감정이 눈빛을 통하여 전해졌고 얼마 후 그는 결심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나는...”“이성준.”백아영은 그의 말을 잘랐다. 물기를 머금은 두 눈이 굳건하고 오만하게 그를 쳐다보았다.“나 생각 끝냈어. 나 때문에 목숨까지 바치는 너인데 그런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는 너는 용납할 수가 없어. 이 점은 앞으로도 영원히 타협 못해. 그래서 말인데...”이를 악문 백아영은 갑자기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으로 그의 하반신을 쳐다보았다.“네가 여전히 밖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면 난 네 옆에 있는 모든 여자를 쫓아낼 거야. 네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게. 그럼에도 네가 여전히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나 몰래 나간다면 나는...”은침 하나가 이성준이 자리에 꽂혔다.“남자구실 못하게 만들어버릴 거야!”마침 약을 들고 문 앞에 도착했던 위정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창백해져 몸을 떨었다.이번에 돌아온 백아영은 더 살벌해져 있었다.놀라 죽는 줄 알았다.이성준이 아무리 백아영을 사랑한다고 해도 이 정도의 위협과 모욕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위정은 두 환자가 싸울 것 같아 조마조마하면서도 누굴 도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위정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이성준이 유유자적하게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좋아.”‘좋다고?’위정은 입가에 경
하지만 백아영의 화를 부추긴 건 따로 있었다.“이성준, 너 나를 안 믿었구나!”제 발이 저린 이성준은 급히 백아영의 눈길을 피했다. 그도 처음엔 쉽게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가짜 백아영의 외모, 목소리, 분위기 심지어 섬세한 모습까지 백아영과 너무나도 판박이였다.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직감으로도 그는 눈앞에 보이는 모습들이 조작된 장면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못하였다.그 후 반복되는 상황에 이성준이 백아영에 대한 믿음은 하루하루 무너져 가고 있었다.이성준의 제 발 저린 모습을 바라본 백아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분노를 담아 그를 내리쳤다.“그래서 네가 그토록 방탕하게 놀아나는 모습은 모두 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였던 거지! 너는 의도적으로 나를 속였어! 너에 대한 나의 진심을 시험해 보고 싶었어? 그러한 상황에서 너는 내가 너를 용서하길 바랐니? 아니면 널 버리고 떠나길 바랐니?”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 시간 동안 쌓였던 괴로움과 억울함만 생각하면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져 그를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만 같았다.이성준은 그녀가 뜻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았기에 몸에 무리가 간 그는 기침이 나오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백아영은 순간 멈칫했다.솟아오르던 분노는 삽시간에 걱정으로 바뀌었다.“내가 상처를 건드렸어?”백아영은 분노에 눈이 멀어 이성준이 온몸이 성치 않은 환자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 후회되었다.“맞아도 싸지 뭐.”이성준은 큰 손으로 백아영의 작은 손을 감쌌다. 안색이 창백한 그였지만 눈빛만은 따사롭고 부드럽기에 그지없었다.“미안해, 아영아. 내가 잘못했어. 그때 너를 믿었어야 했는데... 맞아도 싸지, 더 때려도 돼.”갑자기 마음이 약해진 백아영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환자를 때려놓고 어떻게 더 화를 내겠는가.그녀는 울먹이며 답했다.“완전히 네 탓도 아니지, 복제인간이 있다는 걸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그녀는 진짜 나랑 너무 닮았어. 나였어도 구분하기에 어려웠을 거야. 그리고 나도 널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