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영은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렸고 순식간에 위기감이 밀려왔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남원에는 왜 가시는 거죠?”“제가 춤추러 가는 곳마다 방시운이 쫓아와서 소란을 피웠거든요. 제가 남원에서 춤을 추면 온씨 가문이 방시운의 미움을 사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요?”하지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렇게 되면 사적인 원한으로 온씨 가문을 무너뜨릴 수도 있어요.”누가 봐도 도우려는 상황에 백아영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왜 이렇게까지 저를 도와주시는 거죠?”하지연은 눈빛을 반짝였다.“아영 씨가 아니라 이성준을 돕는 거예요. 도와달라고 부탁했거든요.”백아영의 기분은 순식간에 먹구름이 끼었다. 이성준이 또 하지연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심지어 이번에는 얘기도 안 해주고 신세 지는 행동을 일삼았다.“지연 씨, 그럴 필요까지는...”거절이 끝나기도 전에 하지연은 이미 혼자서 비행기에 올라탔다.백아영은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단번에 좌석에 앉은 그녀를 바라보며 기분이 착잡했다.남원.비행기는 선우 일가의 개인 잔디밭에 착륙했다.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백아영은 그녀를 데리러 온 이성준을 발견했다.그는 며칠 전보다 안색이 훨씬 좋아졌는데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윽하게 백아영을 바라봤다.백아영은 여전히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이성준이 그녀를 속였다는 것에 화가 났고, 의논도 없이 하지연을 남원으로 데려온 게 화가 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의 전 여자 친구와 만나게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아영은 재빨리 이성준에게 다가가 그를 안았다.어찌나 격하게 안겼는지 상처가 채 낫지 않은 이성준은 저도 모르게 뒤로 밀려났다.상처가 아프긴 했지만 단번에 백아영을 끌어안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이렇게 보고 싶었어?”백아영은 괘씸해서 꿀밤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곧바로 애교섞인 목소리로 답했다.“엄청 보고 싶었어. 넌? 나 안 보고 싶었어?”이성준은 흠칫 놀랐다.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백아영은 이 악물고 ‘네 친구’라는 말을 내뱉은 후 뒤돌아 나갔다.“아영! 백아영! 빨리 와!”이성준은 욕구불만이었다. 적극적으로 유혹할 땐 언제고 이제는 나 몰라라 도망치는 백아영을 보며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쯧쯧, 남원에 와서 많은 걸 보게 되네. 이성준 네가 여자에게 잡혀 사는 날도 오는구나.”하지연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자연스럽게 문에 기대어 있었다.이성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고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옷을 정리했다. 곧바로 이성을 되찾은 그는 냉정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여긴 무슨 일로 왔어?”이성준은 그녀가 남원에 올 줄 몰랐다. 그러니 하지연이 백아영에게 말했던 이성준의 부탁은 전부 거짓말이다.그녀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방시운 처리하는 거 도와줄게.”이성준은 의심스러운 듯 그녀를 바라봤다. 전에 연회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솔직히 하지연은 단지 방시운을 끌어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도움 준 게 없다.하지연은 불필요한 일에 열정을 쏟아 넣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남 일에 간섭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기에 자발적으로 남원에 온건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다.“목적이 뭐냐?”하지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섰고 가기 전에 가볍게 말 한마디를 남겼다.“목적은 없는데 원하는 건 있어. 아영 씨 화 많이 난 것 같은데 잘못한 게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 토끼도 화나면 사람 물 수 있다는 걸 잊지 마.”...그 시각 유럽.방시운은 앞에 놓은 테이블을 걷어찼고 그의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흉악했다.“정말 이성준 만나러 간 거야? 심지어 그 집에서 지내고 있다고?”부하는 진땀을 빼며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정확히 말하자면 선우 일가에서 지내고 계십니다.”이성준도 그곳에 있으니 다를 바가 없다.“하지연, 감히 날두고 바람을 펴? 지금 당장 남원에 가서 이성준 죽여버릴 거야. 전 남친이랑 어떻게 이어지는지 한번 지켜보자고.”방시운은 화를 내며 남원으로 돌진했다....선우 일가가 어
말이 떨어지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심보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성준을 찾아왔다.“성준아, 내가 화장실 간 틈에 또 이렇게 혼자 나왔어? 너 매일 사모님 만나러 갈 때마다 단향 맡지 못해서 이미 약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하면 나도 완치할 수 있다고 장담을 못하겠네.”이성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선 짜증 내며 말했다.“알겠어.”심보라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또 함부로 행동할 게 뻔하다.지난 며칠 동안 이성준이 방에 있는 시간이 점점 불규칙해졌고 향을 맡는 시간이 부족하여 최면 효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백아영까지 돌아왔으니 음식에 손을 쓰는 것도 불가능해졌고 정말로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불안함이 밀려온 심보라는 가만히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계획을 앞당길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그 시각 제호 클럽의 앞에 차가 멈춰 섰다.하지연은 차에서 내리기 전에 고개를 돌려 백아영을 보며 말했다.“오늘 밤에 누가 저한테 접근하면 절대로 저번처럼 지켜준답시고 달려들어서는 안 돼요.”하지연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건 맞지만 흔쾌히 돕기 위해 이곳에 온 이상 그녀가 위험에 처한다면 백아영은 망설임 없이 도와줄 것이다.이건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가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난 백아영을 보며 하지연은 귀여운 듯 입가에 미소가 번졌지만 아주 잠깐뿐이었다.“방시운이 있는 한, 아무도 절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백아영은 순간 그날 밤 핏빛 정원에서 두들겨 맞은 남자가 떠올랐다. 방시운은 정말로 그녀를 대신하여 화풀이하고 있었고 하지연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전혀 대수롭지 않았다.그런데 서로 죽일 듯이 원망하는 사이 아니었나?“미친놈의 사고방식은 일반인이랑 달라요. 미워하는 마음이 크지만, 오직 그 사람만이 날 괴롭힐 수 있다는 변태적인 성향을 가졌어요. 다른 사람이 괴롭히는 건 용납할
흉악한 남자들로 에워싸인 상황에서도 하지연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앞길 가로막지 말고 꺼져.”“생긴 거랑 다르게 입이 아주 거치네.”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는 키가 크고 우람했다. 얼굴에는 지네 같은 흉터 세 개가 있었고 드러난 팔과 어깨에도 상처투성이인 걸 보니 남원에 오기 전에 한바탕 싸운 게 분명하다.그는 매우 난폭했고 목소리마저 거칠었다.“내 스타일이야. 거칠수록 더 흥분되거든. 마지막으로 기회 줄게. 직접 따라올 거야, 아니면 내가 업고 갈까?”하지연은 혐오감을 드러내며 두 글자를 내뱉었다.“꺼져.”남자는 거만하게 웃고선 곧바로 손을 뻗었다.하지연은 몸을 피했지만,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바람에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남자는 독 안의 든 쥐를 잡듯 거칠게 그녀의 팔을 잡았고 하얀 손목에 붉은 자국이 생겼다.“가자. 내가 재밌게 해줄게.”남자가 팔을 뻗어 하지연을 품 안으로 끌어당기려던 그때 과일칼이 날아와 그의 팔에 꽂혔다.남자는 괴로워하며 하지연을 놓았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 노발대발했다.“감히 날 공격해? 죽고 싶어 환장했냐? 누구야, 당장 나와!”방시운은 천천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고 극도로 잘생긴 그의 얼굴은 마치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처럼 싸늘한 살기를 내뿜었다.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살벌하게 경고했다.“내 사람에게 손대는 순간 너희는 다 죽어.”키 크고 건장한 흉악범이 6명이나 되어 인원수에서 한참이나 밀렸지만, 그건 숫자에 불과할 뿐 몇 분 만에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 쓰러졌다.순식간에 피가 온 바닥에 흘렀다.클럽 안의 사람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도망쳤다.오직 방시운만이 여유롭게 피 묻은 과일칼을 들고 사과 껍질을 벗기듯 남자의 몸에 칼을 그었다. 사활을 건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서 살아온 남자는 처참하게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처지가 됐다.“당장 멈추지 못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온씨 가문 출신이야. 온씨 가문에서 널 가만둘 거라고 생
“지금 당장 남원에서 떠나.”그의 싸늘한 명령과 사나운 표정을 처음 마주한 사람이라면 곧바로 꼬리를 내리겠지만 아무리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해도 하지연은 이미 익숙해진 듯 대수롭지 않았다.그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내가 어디에 있든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그렇게 말하고 뒤돌아 떠나려던 순간, 남자의 주먹이 그녀 앞의 문을 세게 내리쳤고 순간 문짝이 산산조각나며 그의 손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강력하고 살벌한 기운이 압도적으로 엄습해 왔다.방시운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당장 떠나라고!”“싫다면?”하지연은 두려울 게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거만한 태도로 예쁜 얼굴을 들이밀며 도발했다.“문 부수는 게 무슨 대수야?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거면 어디 한번 날 때려봐.”“하지연, 내가 여자 못 때릴 것 같아?”분노를 이기지 못한 방시운은 주먹을 높이 들더니 하지연을 향해 휘둘렀다.피비린내가 나는 주먹이 코앞까지 다가왔으나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쳐다보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렇게 주먹은 그녀의 얼굴 옆에서 멈췄다.하지연을 칼로 조각내고 싶은 욕망이 밀려오며 분노로 표정이 일그러지고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됐지만 핏줄이 불끈 솟은 손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겁쟁이.”하지연은 비꼬면서 무릎을 치켜세우더니 그의 중요 부위를 가격했다.고통으로 안색이 창백해진 방시운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하지연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조금의 미련도 없이 쿨하게 떠났다.“하지연!”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방시운의 부하인 서원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도련님,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시죠.”“안가!”방시운은 이를 악물고 손사래를 친 후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하지연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다음번에는 정말 죽여버릴 거야.”서원은 그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듯 표정이 착잡했다.‘죽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때린 적을 본 적이 없네. 매일 얻어맞기만 하고, 도대
백아영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모욕감을 선사하기에는 충분했다.“성준이의 능력이라면 재기하는 건 시간문제야. 넌 그냥 이 상황을 즐겨. 어차피 얼마 못 가서 전부 빼앗기게 될 거거든.”말을 마친 백아영은 걸음을 옮겨 차에 올라탔다.전보다 잘나가지는 못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위엄과 자신감은 명품 옷을 걸친 백채영을 짓밟기에는 충분했다.백채영은 자신이 광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백아영!”그녀는 이를 갈았다.“성준 씨가 재기할 것 같아? 꿈도 꾸지 마. 절대 그럴 일 없어. 온씨 가문에서 이미 준비를 끝냈으니까 성준 씨랑 선우 일가는 이제 완전히 끝장이야. 지옥이라고! 알겠어?”‘온시혁이 이미 작전을 짠 건가?’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초조함이 밀려왔다. 아직 방시운을 설득하지 못했는데 말이다.불안감이 밀려왔지만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백채영, 알려줘서 고마워. 미리 준비해야겠네?”백채영은 흠칫 놀라더니 순간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채 욕설을 퍼부었다.“백아영, 진짜 뻔뻔하네.”백아영은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은 듯 선우철에게 얼른 가자고 말했다.온시혁이 손을 쓸 준비를 마쳤으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온씨 가문에서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알아내고 그에 맞는 대비책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오빠.”백아영은 선우경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당장 사람 시켜서 온씨 가문 쪽에 수상한 낌새 없는지 알아봐요.”백아영은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솜사탕 같은 녀석이 달려 나와 그녀의 허벅지를 끌어안았다.“엄마~”다리에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자 불안하고 긴장하던 기분이 한순간에 풀렸다.백아영은 단번에 이현무를 품에 안았다.“늦었는데 왜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매일 밤 이성준의 방에서 심보라와 신경전을 겨루고 있으니, 며칠동안 이현무는 홀로 옆방에서 자고 있었다.“엄마...”이현무
백아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연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닌데 왜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선단 말이지?춤을 가르쳐준다고? 그것도 전 여자친구한테서 춤을 배우라니?머리털이 쭈뼛 서는 상황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괜찮아요, 난...”“아니에요, 아영 씨라면 전 좋아요.”하지연은 백아영의 팔을 덥석 붙잡고 우아한 몸짓으로 단호하게 춤을 리드하기 시작했다.스텝을 밟으면서 턴까지 도는 모습은 마치 한 쌍의 나풀거리는 나비를 연상케 했다.선우철은 연신 손뼉 치며 감탄했다.“너무 아름다워요!”태어나서 한 번도 춤을 춰 본 적이 없는 백아영은 하지연의 리드에 따라 몸을 맡겼다. 바람을 가르는 듯한 동작 하나하나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쾌감을 선사했다.“재밌죠?”하지연이 묻자 백아영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못을 박았다.“그럼 앞으로 춤은 내가 가르쳐 줄게요. 아영 씨는 기본기가 좀 있으니까 잘만 따라온다면 나중에 저보다 춤을 더 잘 출 수 있을 거로 장담해요.”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거절하면 예의가 아니었다.하지만 속으로는 어이가 없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냐는 말이다.비록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못해 춤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하지연의 리드에 따라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이자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안무에 집중을 하다 보니 잡생각이 싹 사라졌다.이렇게 후련하고 기분 좋은 느낌은 여태껏 처음이었다.“춤추는 게 생각보다 재밌네요? 지연 씨의 마음도 이해가 되네요.”하지연은 백아영이 건네준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아무리 좋아해도 평생 춤을 출 수는 없죠.”백아영이 물었다.“왜요?”“전 하씨 가문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교양과 품격을 갖출뿐더러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죠.”하지연은 물을 홀짝이며 말했다. 아리따운 얼굴에는 보기 드문 서글픈 기색이 어려있었다.“사실 춤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지만, 집안 사정상 폼 나는 귀족 춤만 배웠거든
“아영 씨는 내가 키우고 싶은 딸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하지연은 문득 손을 뻗어 백아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애정이 듬뿍 담긴 미소를 지었는데 언뜻 후광이 비치는 듯싶었다.백아영은 어이가 없었다.“딸이요...?”“네, 연회장에서 날 지켜준답시고 바보같이 나설 때부터 아영 씨를 딸로 삼기로 결심했거든요.”하지연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고, 잔뜩 신이 나서 말했다.“어리석은 애송이가 따로 없는데, 만약 내가 아니라면 여기저기서 괴롭힘을 당할 게 뻔해요.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요. 앞으로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할 테니까 아영 씨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게요.”딸? 엄마? 이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백아영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연예계에서 아이돌을 마치 아들딸처럼 애지중지 키우는 중장년층 팬들이 많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온라인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데 불과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녀는 연예인도 아니었다.결국 짜증 난 얼굴로 하지연의 손을 탁 쳐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거리를 두었다.“지연 씨, 농담하지 마세요.”하지연은 미소를 싹 지우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농담 아닌데요? 엄마로서 인정받기 위해 우선 방시운부터 공략해 줄게요.”백아영은 할 말을 잃었다.이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으며 두 손 두 발을 들더니 도망치듯 뒤돌아서 빠져나갔다.하지연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유유히 들려왔다.“언젠간 기꺼이 내 딸로 되게 해주죠.”백아영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하지연도 제정신이 아닐 줄이야!한 아이의 엄마로서, 심지어 전 남자 친구의 애인이라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인 여자를 딸로 삼고 싶다니?‘미쳤나?’“왜 그래?”이성준이 휴지를 들고 백아영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백아영은 황당한 와중에 양녀 사건을 이성준에게 털어놓으며 어이없다는 듯 투덜거렸다.“대체 뭐 하자는 거지? 엄마가 되어준다고? 나한테 망신 주려고 작정한 건가?”단지 헤어졌다는 이유로 전 남친의 애인에게 복수를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