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598화

작가: 도토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12-29 18:00:00
“성무열 씨, 죽고 싶어 아주 환장을 하네요.”

성무열은 캐리어를 놓고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당신을 두려워할 것 같아요?”

분위기는 순식간에 과열됐고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했다.

백아영은 착잡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다가 손을 뻗어 성무열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에 두 남자의 시선이 모두 쏠렸다.

기뻐하는 성무열과 달리 이성준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백아영은 애써 이성준의 시선을 피하며 한 손으로 캐리어를, 다른 한 손으로 성무열을 끌며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가자.”

백아영은 그의 존재를 눈앞에서 지우고 조금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단호하게 행동했다.

이성준은 당장이라도 성무열의 팔목을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백아영의 태도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성무열을 다치게 할수록 백아영은 그를 감싸며 지켜줄 게 뻔하니까.

이성준은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었고 백아영의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현무는 안돼.”

백아영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이성준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지금껏 도망쳤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괴로워 그와 말 한마디조차 섞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백아영의 마음을 알 리 없었던 이성준은 그녀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웠다.

백아영은 이를 악물고 큰 용기를 내어 이성준을 바라봤다.

“현무는 나랑 있는 걸 더 좋아해.”

“난 현무의 아빠고 보호자야. 다른 남자 집에서 지내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이성준은 막무가내로 말했다.

“꼭 가야 한다면 현무는 내가 집으로 데려갈 거야.”

“집에 가기 싫어요!”

이현무는 갑자기 백아영의 허벅지를 끌어안더니 눈물 콧물을 펑펑 쏟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집으로 가면 아빠가 절 때려죽일 거예요. 엄마, 제발 저랑 같이 있어요. 집에 가기 싫어요. 엉엉...”

이현무의 서러운 울음소리에 백아영은 가슴이 미어졌다.

그동안 이성준이 어떻게 대했길래 아이가 이렇게 무서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이현무를 품에 안고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다른 남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599화

    “내가 별장 하나 빌리면 되는 거지?”백아영은 답답함에 이를 악물었다.“나랑 현무 단둘이서 지낼게.”비록 직접 집으로 데려가지는 못했지만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응.”아무 관계가 아니더라도 괜한 트집을 잡으며 못살게 굴려는 그의 의도가 고스란히 느껴졌다.기분이 언짢아진 백아영은 이현무의 손을 잡고 이성준을 스쳐 지나갔다.“무열아, 이제 주소 보내줄 테니까 그쪽으로 장비 좀 옮겨줘.”성무열은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말했다.백아영은 이현무를 차에 태우고 나서야 편집한 문자를 한태윤에게 전송했고 전송이 끝나자마자 이성준의 핸드폰에서 메시지 신호음이 울렸다.백아영은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의아함에 고개를 돌려 이성준을 바라보고 싶었으나 우연의 일치라며 생각하고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공교롭게 문자가 온 게 틀림없어.’이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까지 자제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백아영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본 후 성무열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이성준을 바라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이성준 씨,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헤어졌으면 미련 갖지 말고 쿨하게 보내줘요. 왜 계속 귀찮게 질척거리는 거예요? 아영이가 상처받은 걸 뻔히 알면서 설마 양다리를 걸칠 생각으로 찾아왔어요?”이성준은 뚫어져라 백아영이 탄 차를 주시하다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고개를 돌렸다.“나랑 백아영 사이의 일은 당신이 참견할 자격이 없어요.”말을 마친 그는 긴 다리를 뻗으며 마이바흐에 올라탔고 성무열은 분노를 터뜨렸다.“이성준, 경고하는데 다시 한번 아영에게 상처 주면 내가 목숨을 걸고 널 죽여버릴 거야.”성무열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바흐는 훌쩍 떠났다.차 안에서 위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사장님, 왜 아영 씨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신 거죠?”이성준의 신분으로 나타났으니 헤어진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오해가 풀린다면 백아영도 더 이상 싸늘하게 그를 대하지 않을 텐

    최신 업데이트 : 2023-12-30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600화

    이현무는 기대감으로 반짝 빛나는 두 눈과 함께 흥분하며 말했다.“아빠가 말해줬는데 앤니 아줌마랑 같이 떠난 게 아니래요. 오해가 풀리면 우리는 여전히 함께 할 거라고 했어요.”백아영은 순간 흠칫 놀라며 마음이 심란해졌지만 더 이상 기대할 것조차 없는 상황에 재빨리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성준은 지금껏 사람들 앞에서 앤니와의 관계를 부정해 온 적도, 그녀에게 직접 해명한 적도 없었다. 이현무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건 그저 아이를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백아영이 임대한 별장은 모든 살림살이가 갖추어져 있어 짐을 옮기기만 하면 이사가 끝이다. 연구실을 정리하자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그녀는 한태윤을 진찰하기 위해 약과 함께 집을 나섰다.늘 찾아갔던 익숙한 별장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껄끄러웠다.한태윤의 앞에서 바람둥이라고 말한 게 바로 어제였으니 지금 그를 마주하는게 상당히 불편했다.그래도 애써 용기를 낸 후 힘겹게 별장안으로 들어섰고 우연히 그곳에서 임소미를 발견했다.임소미는 서재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백아영은 온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었고 심장이 바늘에 찔리는 듯 불편했다.“아영 씨?”백아영을 발견한 임소미는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고선 곧바로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무의식적으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예상치 못한 반응에 의아함을 느낀 백아영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임소미는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죄책감을 가져야 할 사람은 백아영이다. “안녕하세요.”백아영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당황함을 숨겼다.“태윤 씨 치료하러 가는 길인데 소미 씨도 같이 가실래요?”“아니, 아니요.”임소미는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성준이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경고한 바가 있었는데 어찌 함께 갈 수 있냐는 말이다.우연히 만나게 된 걸 이성준이 알게 된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었다.경계심이 가득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백아영은 큰 돌이 심장을 짓누르는 듯 숨 쉬는

    최신 업데이트 : 2023-12-30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601화

    이성준은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고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저 바람둥이 아니에요!”본의 아니게 멈춰 선 백아영은 그에게 붙잡힌 손을 내려다보며 당황한 나머지 빼내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오히려 힘을 점점 더 세게 주었다.두 사람은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닿을 거리에 마주 보고 서 있었다.가면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는 끝없는 심연 같았고, 마치 소용돌이처럼 그녀를 빨아들일 듯싶었다.“오직 한 사람만 평생 바라볼 거예요.”남자의 시선을 마주한 백아영은 또다시 그 주인공이 자신일 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졌다.하지만 이성적으로 이 모든 건 거짓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왜냐하면 진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단지 연기가 너무 감쪽같았기 때문이다.“태윤 씨가 이럴수록 그녀한테 너무 불공평하잖아요.”“누구...?”이성준은 의혹이 가득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마침 물어보려던 찰나, 옆에 있는 서재에서 걸어 나오는 임소미를 발견했다.백아영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온 힘을 다해 그의 손을 뿌리쳤다.이내 당혹감과 억울함, 수치심이 뒤섞인 얼굴로 말했다.“소미 씨, 오해하지 마세요. 아까는 태윤 씨의 맥박을 짚어주느라...”이성준은 그윽한 시선으로 두 여자를 번갈아 보더니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의혹이 그제야 풀렸다.얼음장처럼 차가운 그의 눈빛은 임소미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누가 함부로 집에 오라고 했지?”임소미는 겁을 먹은 나머지 자칫 무릎까지 꿇을 뻔했다.그녀는 벌벌 떨며 손에 든 USB를 보여주었다.“물건 가지러 왔어요...”비록 한태윤은 아직 완치되지 않았지만, 이성준이 한씨 일가의 뒤치다꺼리를 직접 처리하라고 으름장을 놓은 이상 그는 어쩔 수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해야만 했다.USB에는 업무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자료가 들어 있으므로 꼭 필요했기에 임소미에게 가려오라고 시켰을 뿐, 운도 지지리 없게 백아영과 마주칠 줄은 몰랐다.“죄송해요, 지금 바로 갈게요! 다신 오지 않을게요.”임소미

    최신 업데이트 : 2023-12-30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602화

    이성준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고, 입을 떼자마자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볼에 닿았다.“그래서, 나 좋아하는 거예요?”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백아영은 수치심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이내 눈빛이 흔들리며 차마 똑바로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말까지 더듬거리며 부인했다.“저, 전 단지 태윤 씨가 절 좋아하는 줄 알고...”하지만 정작 말하고 나니 부끄러운 나머지 몸 둘 바를 몰랐다.이성준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고, 낮게 깔린 목소리는 마치 인간을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마법이라도 깃들어 있는 듯 매혹적이었다.“만약 진짜 그렇다면 어떡할래요?”진짜라니?!백아영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결국, 넋을 잃은 채 제 자리에 얼어붙어 멍하니 서 있었다. 대체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너무 놀란 나머지 입까지 살짝 벌어진 그녀를 보자 이성준은 당장이라도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억눌린 욕망은 마치 우리에 갇힌 맹수가 철창살을 부수려고 날뛰는 것처럼 통제하기 힘들었다.하지만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고 굳건히 페이스를 유지했다.그는 일부러 한 발짝 물러서며 미소를 쥐어짜 냈다.“걱정하지 마요, 농담이니까.”어색한 기류가 감돌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다.잔뜩 긴장하던 백아영도 그제야 안심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실망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일렁이는 파도처럼 퍼져나갔다....저녁이 되자 백아영은 이현무를 품에 안고 소파에 앉아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하지만 녀석은 애니메이션 따위 안중에도 없었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백아영을 바라보았다.“엄마, 저랑 집에 돌아가면 안 돼요?”백아영과 이성준이 헤어진 이후로 이현무는 한 번도 고집을 피우거나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또한, 그녀에게 집에 돌아가자거나 아빠를 용서해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성준이 나타난 이후로 녀석의 태도

    최신 업데이트 : 2023-12-30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603화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누군가 백아영의 방문을 두드렸다.이성준과 성무열이 생활용품을 한아름 챙겨서 잇달아 들어섰다.기능이 거의 겹치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보자 백아영은 할 말을 잃었다.“아영아, 내가 산 거 써. 디자인도 예쁘고 실용성도 있어서 저 사람 것보다 훨씬 나아.”성무열이 운을 먼저 뗐고, 이성준이 질세라 비아냥거렸다.“겉보기 좋으면 뭐 해요? 안 그래도 아영 씨가 요즘 피곤해서 잇몸이 붓고 피가 나는데, 특별히 주문 제작한 부드러운 칫솔이 더 좋지 않겠어요?”성무열은 말문이 막혔지만, 굴하지 않고 다른 물건을 추천했다.“아영아, 내가 일부러 핑크 쿠션을 샀는데 마음에 들어? 밤에 껴안고 자면 그렇게 편하대.”이성준이 불쑥 끼어들었다.“바디필로우가 몸에 더 좋아요.”두 사람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렸고, 방 안의 분위기는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아슬아슬했다.그 모습을 지켜본 백아영은 넋을 잃고 말았다.당시 남원에서 제약 기계를 알아볼 때도 이성준과 성무열은 치열하게 다퉜다.시간이 흘러 이제 와서 똑같은 광경을 다시 한번 목격하자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반쪽 가면을 쓰고 있는 한태윤의 모습이 이성준과 점점 오버랩되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에 마치 애초에 동일 인물인 것처럼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아영아, 어서 결정해. 누가 사준 용품을 쓸 거야?”성무열의 목소리에 백아영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이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다시 한태윤을 바라보았는데 아무리 봐도 이성준과 다른 사람이었다.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뺨을 톡톡 건드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고작 이성준을 한번 마주쳤다고 이 정도로 흔들릴 줄이야, 훤한 대낮에 환각이 보일 지경이라니.“안 물어봐도 돼요. 무열 씨가 준비한 물건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이성준이 경멸이 가득한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식자재든 냄비든 전부 장식품에 불과하죠. 아영 씨는 요리를 잘 못 해요.”성무열은 발끈하며 되받아쳤다.“당신이 뭔데 아영의 요리 실

    최신 업데이트 : 2023-12-31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604화

    어렸을 때는 양부모가 생일을 꼬박꼬박 챙겨주고 선물도 잊지 않았는데, 그때만 해도 제일 행복한 공주가 따로 없었다.하지만 백채영이 돌아온 이후로 양부모는 오로지 백채영의 생일과 선물만 정성껏 준비하고, 정작 그녀의 생일날에는 축하한다는 말조차 사치였다.기쁘게 생일을 지내는 백채영과 달리 그녀는 항상 구석에 서서 마냥 부러워했다.어쩌다 보니 그때부터 생일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염원 같은 존재가 되었다.“연구 시작하면 바빠서 생일 보낼 생각 없어요.”이성준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도와줄 사람 찾아줄게요.”백아영은 고개를 저었다.“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백아영이 거절하자 성무열은 이때다 싶어 웃음을 터뜨리며 비아냥거렸다.“한태윤 씨, 잘 보이려고 하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네요? 생일을 안 보내도 된다고 하니까 괜히 힘 빼지 마세요.”백아영의 두 눈에 담긴 씁쓸함을 이성준이 놓칠 리가 없었다.결국, 그는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교외의 자그마한 전원주택.선우경진이 마당에 놓인 침대식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깜짝 놀라 외쳤다.“의술을 익히고 싶다고요?”이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선우경진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의학을 배우려면 천부적인 재능도 중요하지만, 어릴 때부터 다져진 기초와 반복적인 실천이 필요하죠. 성준 씨 나이대만 해도... 큼, 나이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고작 며칠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성취를 이룬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거죠.”이성준이 대답했다.“성취는 필요 없고, 도움만 되면 돼요.”선우경진은 절망이 가득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아영이가 얼마나 뛰어난 의술을 가졌는지 알고 있죠? 게다가 이번에는 무려 신약을 연구하는데 잔심부름이라고 할지언정 결코 쉽지 않을 거예요.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약재 빻는 법을 배우면 되죠.”이성준이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선우경진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그제야 이

    최신 업데이트 : 2023-12-31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605화

    한씨 일가를 밥 먹듯이 드나든 덕분에 백아영은 이미 경비원과 안면을 텄고, 경비원도 두말없이 문을 열고 그녀를 들여보냈다.별장으로 들어서자 2층 안방은 불이 꺼졌지만, 맞은편 방의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그녀의 예상대로 한태윤은 아직 일하고 있었다.정녕 본인이 환자라는 걸 모른단 말인가?이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이 켜진 방을 향해 걸어갔다.한편, 안방 문이 서서히 열리면서 잠옷 차림의 임소미가 나타났다. 그녀는 마침 목이 마른 한태윤에게 물 떠주러 나가려던 참이었다.그러나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백아영을 발견했다.화들짝 놀란 그녀는 제 자리에 굳어버렸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문을 쾅 닫았다.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듯 새하얗게 질렸다.“소미야, 왜 그래?”한태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큰일 났어요.”임소미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아영 씨가 왔는데, 약방 쪽으로 가고 있어요.”한태윤이 돌아온 이후로 이성준은 약방에서 가면을 쓰지 않고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아영 씨가 약방에 갔다가 성준 씨를 마주치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한태윤은 온몸의 피가 식어가는 느낌이 들었다.그때가 되면 신분을 사칭한 일이 탄로되기 마련이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만약 백아영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어떻게든 아영 씨를 속여야 해!”한태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고, 백아영의 발길을 붙잡아 어떻게든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했다.하지만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 이미 방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백아영을 발견했다.‘망했다.’결국, 다리가 휘청이더니 벽에 기댔다.약방.안으로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약 냄새가 진동했고, 창문 옆에 앉은 한태윤은 등을 돌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를 조금씩 빻고 있었다.그녀는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 여태껏 밤새 업무 보고 일 처리한 게 아니었단 말인가?“뭐 하는 거예요?”백아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갔다.약재를 빻던 이성준이 흠칫 놀라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방금

    최신 업데이트 : 2023-12-31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606화

    이내 더는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갔다.이성준은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아영 씨가 자꾸 걱정해주면 저 착각할지도 몰라요. 혹시 날...”“아니에요!”백아영은 당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단지 환자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했을 뿐이에요.”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에 가까운 그녀의 모습에 이성준은 기분이 좋아져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백아영은 뺨이 후끈거릴 정도로 달아올랐다.“이만, 갈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뒤꽁무니를 내뺐다.허둥지둥 도망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성준의 눈에 감정이 소용돌이치면서 더는 억제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아영 씨도 밤새우지 마요.”백아영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여섯째 날은 백아영의 생일이기도 했다.이른 아침부터 이성준은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백아영은 잠옷 차림에 잠이 덜 깬 눈으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긴 왜 왔죠?”“생일 축하해요.”이성준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고, 고작 흔한 말에 불과했지만 마치 첼로 연주곡처럼 감미롭고 듣기 좋았다.생일 축하한다는 걸 대체 몇 년 만에 들어보는가?백아영은 흠칫 놀랐다.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던 상처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곧이어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 냈다.“생일 보낼 여유가 없어요.”“아직 시간 많아요.”이성준은 주방으로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둘렀다.“어서 옷 갈아입어요. 아침은 제가 만들게요.”“그, 그건 좀...”이성준이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예의 차릴 필요 있나요?”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아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한 한태윤의 모습은 넋을 잃을 정도로 멋있었다.백아영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더니 귓불이 점점 달아올랐다.이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당연히 예의 차려야 하지 않나? 우리가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옷을 갈아입고 내려온 백아영은 이미 식탁 위에 차려진 먹음직스러운 국수 세 그릇을 발견했다.그녀가 좋아하는 비빔면

    최신 업데이트 : 2023-12-31

최신 챕터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916화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915화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914화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913화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912화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911화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910화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909화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제908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