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준은 잠시 소년을 훑어보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어떤 소식을 알고 있는 거지?”“한 시간 전에 제가 소몰이하고 있었는데 그 누나가 절 발견하고 이름이 백아영인데 대표님을 찾아달라며 연락처를 알려줬어요. 소몰이 마치고 돌아가서 아빠 핸드폰으로 전화하려고 하던 중에 마침 산에서 대표님을 봤어요...”“그 사람 어디서 봤어?”이성준이 다급하게 묻자, 소년은 멀지 않은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저쪽이요.”이성준이 찾던 산 바로 옆, 기지에서 마을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그가 전에 들었던 건 환청이 아니라 백아영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목소리였다!그러나 한발 늦었다...“그 후 사람들한테 묶인 채 헬리콥터를 타고 떠나는 걸 봤어요.”일찌감치 이곳에서 도망갔으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건 당연했다. 이성준이 쫓아가려고 하자 소년이 다급하게 그를 불러세웠다.“대표님, 그리고 누나가 사람들이 중독된 독이 만다라 꽃에서 추출한 거라고 했어요. 만다라 꽃을 부러뜨려 독혈로 물들이기만 하면 다음 날에 흰 버섯이 자라는데 그 버섯이 독을 억제할 수 있대요.”소년의 말에 이성준은 걸음을 멈췄고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간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아까 그 사람들 봤을 때 누나... 괜찮아 보였어?”“얼굴이 하얗고 엄청 말랐어요.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였어요.”이성준은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제갈연준에게 붙잡힌 와중에 이렇게 빨리 해독 방법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 역시 중독된 거면 몰라도...지난 며칠 동안 백아영이 겪었을 고통에 이성준은 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찾아!”...백아영이 깨어났을 때는 좁고 어두컴컴한 방이었다.방에는 커다란 철문이 닫혀 있었고 머리보다도 작은 크기의 창문이 있었는데 그 환경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이었다.그녀는 몸의 무기력함과 아픔을 견디며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봤다. 끝을 알 수 없는 푸른 바다가 밤하늘 아래서 겹겹이 파
작은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마치 사람의 영혼을 잡아먹는 거대한 짐승처럼 무섭게 느껴졌다.붙잡혀 끌려가는 순간부터 백아영은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았고 자신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살아있는 것만으로 행운이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여전히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오싹해지며 몸을 떨었다.“이건 무기징역인가요?”“업그레이드 버전의 무기징역이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제갈연준은 백아영을 바닥에 내던지며 밖을 향해 신호를 주자 도우미 두 명이 수백 개의 병을 손에 든 채 들어왔다.“이제부터 이 독들이 당신의 하루 세끼가 될 거예요.”중독되었을 때의 고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그걸 매일 겪으라는 말에 온몸이 소름 돋았다.“차라리 죽여줘요!”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모습에 제갈연준은 그녀를 비웃었다.“죽는 건 아주 쉽잖아요. 해독 안 하면 바로 죽을 수 있는데 정말 죽을 거예요?”선우경진은 그녀의 배를 보며 말을 이었다.“아이랑 함께 죽을 생각인가 봐요?”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배를 가렸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좌절을 느꼈다.그동안 독살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그녀의 곁에서 튼튼하게 버텨준 아이인데 태어날 권리마저 잔인하게 빼앗을 수는 없었다.비록 아이를 낳은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백아영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고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갈연준, 당신은 악마야.”...6개월 후.파도가 휘몰아치는 어두운 밤, 백아영은 출산의 큰 고통을 참고 홀로 남자아이를 낳았다.그러나 그녀가 아이를 안아볼 겨를도 없이 철문이 열렸고 제갈연준이 들어와 아이를 데려갔다.“아이는 건드리지 마!”백아영은 서둘러 뒤따라갔지만 출산 직후 일어설 힘조차 없었던 탓에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선우경진은 엉엉 우는 아이를 안고 비아냥거리며 입을 열었다.“이런 꼴로 어떻게 아이를 키워요? 제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잘 키워 줄게요!”백아영은 앞으로 기어가며 간
개인 병원의 수술실.백채영의 비명과 함께 남자아이가 태어났다.의사는 아이를 백채영에게 건네주지 않고 곧바로 뒷문으로 나갔고, 갓 태어난 또 다른 남자아이를 데려와 그녀의 옆에 두었다.백채영은 창백하고 허약한 모습으로 아이를 바라봤는데 그 눈빛은 극도로 싸늘했다.“네가 백아영 아들이야? 정말 징그럽고 역겹네. 두고 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삼 년 뒤 강원.거리는 휴대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는 여자아이들로 붐볐고 그들에게 포위된 사람은 슈퍼스타가 아닌 세 살배기의 남자아이였다.수트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고상한 분위기를 풍겼으나 섬세하고 조각 같은 외모는 귀여움을 자아냈다. “너 정말 귀엽다! 혹시 천사야?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너무 사랑스러워.”“진짜 훔쳐 가고 싶을 정도 치명적인 귀여움이네.”“누나한테 막대사탕 있는데 먹을래?”이현무는 건네받은 막대사탕을 바라보며 선글라스를 벗더니 곧바로 이를 악물고 자리를 떴다.이성준의 아들, 이씨 일가의 도련님으로서 항상 진지한 모습과 품위를 유지했어야 한다. 막대사탕을 좋아하지만, 고작 그걸로 넘어갈 수 없었던 그는 체리빛 입술을 오므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그를 뒤따라오던 중년 여성은 재빨리 길가로 걸어가 차 문을 열며 공손하고 경직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도련님, 타세요.”차에 오르려던 참에 갑자기 길 한복판에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와 바닥에 엎드린 채 덜덜 떨고 있었고, 마주 오던 차는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강아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길 한가운데로 달려가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이제 그 역시도 차에 치일 표적이 됐다.끼익!거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가 눈앞까지 이르렀고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가느다란 그림자가 달려와 이현무를 껴안고 길가로 굴러 다행히 사고를 피했다.바닥에서 두 바퀴를 굴러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여자의 가느다란 팔에는 여러 개의 멍과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남’이라는 글자는 그녀가 이 일에 참견하고 있음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도우미는 이현무를 직접 안아 올리며 차에 탔다.“엄마...”이현무는 창문에 엎드려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고 도우미는 그의 기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기사에게 운전하라고 했다.멀어지는 남자아이를 바라보며 백아영은 마음이 싱숭생숭했고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겪어본 적 없는 감정에 가슴이 미어진 그녀는 아마도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남의 아이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한 기분으로 자리를 떴다.그들이 떠난 후, 백아영이 이현무를 구하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뜨거운 인기를 끌었다...같은 시각 도우미는 방금 일어난 모든 일을 백채영에게 말했다. 그러나 백채영은 이현무의 부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더니 곧바로 이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그녀는 목이 멘 듯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성준 씨, 글쎄 현무가 차에 치일 뻔했다잖아. 아직도 진정이 안 되네.”이성준은 현재 해외에 있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백아영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그는 한참이나 떨어진 먼 곳에서 물었다.“현무는 어디 다친 데 없어?”백채영은 묻지도 않았으면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이어갔다.“다쳤어. 상처 나서 멍들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 현무 곧 여름 캠프 간다고 준비 중이었는데 사고 났으니까 안 보내는 게 맞겠지? 난 부모가 곁에 있는 게 제일 좋은 여름 캠프라고 생각하는데 돌아오면 안돼? 우리 현무 데리고 같이 여행 가자.”아이를 낳으면 이성준의 아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성준은 결혼식을 다시 올릴 생각도 없었고 거의 모든 시간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어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이렇게 지내다가는 30년이 지나도 사모님으로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다.백채영은 그저 묵묵히 이성준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세 식구가 함께 있으면 가족의 정이
3년 만에 드디어 그녀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살아있었다!“귀국하자!”...백아영은 멀리 가지 않고 근처의 호텔로 들어갔다.제갈연준이 사업을 논하기 위해 백아영을 강원으로 데려왔다. 그녀는 지금 제갈연준의 ‘생체 모델’로서 구매자에게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그 어떠한 독도 그녀의 몸으로 실험했다.사업 얘기를 마치고 제갈연준이 접대하러 가면 그녀는 혼자 호텔로 돌아갔다.그녀의 약점을 붙잡고 있는 제갈연준은 이제 그녀가 도망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어느 정도의 자유를 주었다.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이현무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방으로 돌아온 백아영은 지친 상대로 침대에 누웠고, 중독과 해독의 과정을 겪으며 그녀의 몸은 점점 더 허약해져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4시간 후, 헬리콥터는 강원 교외에 착륙했다.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이성준은 헬리콥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마이바흐에 올라탔다.그는 페달을 밟은 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색커스 호텔로 향했다.이미 모든 조사를 마친 그는 백아영이 색커스 호텔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곳으로 간다면 백아영 만날 수 있게 된다!이번에는 절대로 그녀가 떠나는 걸 지켜보기만은 하지 않을 거다!펑!큰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백아영의 방문을 발로 찼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깬 그녀는 경계하듯이 문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제갈연준이 화가 난 얼굴을 한 채 성큼성큼 침대 옆으로 걸어가 그녀의 턱을 세게 잡았다.“백아영, 너 죽고 싶어?!”3년 전 아이를 빼앗아 간 제갈연준은 그걸 빌미로 지금껏 백아영을 위협하며 자신의 말을 듣도록 강요했다.백아영은 아이의 안전을 위해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할 엄두조차 못 냈고 꼭두각시가 된 듯 말을 들었다.‘생체 모델’도 했고 사업도 순조롭게 협상됐는데 갑자기 왜 화를 내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내가 너한테 자유를 줘서 마음이 놓인 거야? 얼굴을 공개하는 걸 보니 이제 아들은 신경 쓰고 싶지 않나 봐?”제갈연준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기사를 보여주며 험
엘리베이터 밖에는 텅 빈 긴 복도가 있었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성준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재빨리 백아영이 있는 방을 향해 걸어갔지만 바로 옆에 남녀 두 명이 서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백아영과 제갈연준이었다.푹 눌러쓴 모자 사이로 그녀는 이성준의 뒷모습을 봤다. 여전히 큰 키에 위엄이 넘쳤지만, 예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다급함과 불안함이 곁들여 있었다.흔들리는 눈동자와 함께 마음속의 감정은 순식간에 끓어올랐다.‘3년 만이네.’이성준의 모습에 백아영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의 뒷모습은 조금씩 시야에서 사라졌다.엘리베이터가 닫힌 후 이성준은 백아영의 방문을 세게 걷어찼다. 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제갈연준이 그녀와 함께 강원을 떠나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강원 교외의 기지로 데려갔다.이성준이 몇 년 동안 제갈 일가의 기지를 하나씩 제거하고 있어 강원에 남게 되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기에 백아영은 제갈연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제갈연준은 간단한 성형수술을 시킬 계획이었다.얼굴이 바뀌면 이성준의 눈앞을 지나쳐도 들킬 가능성이 없었기에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성형수술에 쓰일 원재료는 희귀하고 구하기 힘든 데다가 효과가 한 달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래는 뇌 연구 프로젝트 경연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할 계획이었다.이것이 백아영이 이번에 귀국한 주요 목적이기도 하다.그러나 경연까지는 아직 보름이나 남았고 가성비를 생각했을 때 지금은 숨어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제갈 일가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일을 너한테 맡겼어. 너도 당연히 책임감을 가져야 된다는 걸 알고 있지?”사악함으로 가득한 그의 눈빛에 백아영은 등골이 오싹해졌다.“당신 아이가 내 손에 달려있어.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한테 충성해야지?”“네.”제갈연준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백아
더 이상 잠을 잘 엄두조차 내지 못한 이현무는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벽을 마주 보며 꼿꼿하게 서 있었다.그의 표정은 두려움과 좌절감으로 가득 찼다. 이성준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게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고 백채영의 이쁨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오늘 밤에도 자지 말고 그렇게 서 있어. 완벽하게 반성하고 자.”백채영은 말 한마디를 남기고 싸늘한 표정으로 걸어갔다.이성준이 강원에 돌아왔고 바로 근처에 있다는 생각에 백채영은 바로 짐을 챙겨 찾으러 나갔다.그녀가 떠난 후 도우미가 방에 들어와 소파에 앉아 이현무를 쳐다보며 그를 감시했다.오랫동안 서 있던 그는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바로 꾸중을 들었다.“움직이지 마!”이현무는 곧바로 얼어붙었고, 다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러 어느덧 자정이 넘은 시간이 되었다.도우미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잠이 들었고 곧바로 귀를 째는 듯한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이현무는 그제야 슬그머니 몸을 돌려 뻣뻣하고 아픈 팔과 종아리를 살며시 움직였다.예전에 벌을 받을 때는 학교 갈 시간이 될 때까지 밤새도록 이렇게 서 있었다.하지만 오늘 밤, 그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고 엄마를 찾고 싶었다...낮에 그를 구해준 그 사람 말이다.여자의 팔은 부드러웠고 아주 상냥하게 그를 보살펴 주었다. 이현무는 백아영을 찾고 싶었고 그녀가 자신의 엄마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잠옷 차림으로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온 이현무는 별장 밖으로 뛰쳐나갔다.별장 문 앞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중, 갑자기 멀지 않은 풀밭에서 검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튀어나와 재빨리 그의 입을 가리고 데려갔다!그들은 일찌감치 이곳에 잠복해 있었고 깊은 밤 인적없는 틈을 타서 이현무를 납치하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그는 스스로 도망쳐나왔다....도우미는 밤중에 일어나 화장실에 갔고, 돌아와서
제갈연준은 본인의 요구대로 백아영을 성형시켰다.예전의 그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요염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여우처럼 교활하고 영악한 느낌이 들었다.이에 제갈연준은 특별히 블랙 가죽 재킷까지 매칭했다.그는 소파에 앉아 턱을 괴고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훑어봤다.“완벽해. 오늘부터 넌 내 약혼녀 제갈미연이야. 이제 연약하고 여성스러운 모습 따위는 버려. 만약 설정과 안 맞게 허점이라도 드러낸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말을 마친 그는 백아영에게 태블릿을 건넸다.태블릿에 뜬 사진을 본 백아영은 동공이 흔들리더니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당신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왜 내 아이한테 손을 댄 거죠?!”사진 속 세 살배기 남자아이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엉엉 울고 있었고, 등에는 채찍을 얻어맞은 듯한 핏자국이 두 개 보였다.피로 빨갛게 물든 옷을 보자 백아영의 심장도 찢겨나질 것 같았다.“백아영, 허락도 없이 행적을 드러내고는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어?”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제갈연준의 모습은 흡사 악마를 연상케 했다.“내가 말했잖아?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네 아들이 대신 갚아줄 거라고.”백아영은 태블릿을 꽉 쥐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반면 분노가 차올라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고 싶었다.그러나 제갈연준에게 납치당한 이상 아이의 목숨은 그의 손에 달렸기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를 악물더라도 참아야 하는 숙명이니까.“착하네.”제갈연준은 뿌듯한 얼굴로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밖으로 나가더니 불투명한 유리로 벽을 이룬 자그마한 방 앞에 멈춰 섰다.방 안에는 어떤 남자아이가 갇혀 있는데, 다름 아닌 그녀가 낮에 구해줬던 어린이였다.잠옷 차림으로 유리 벽에 꼿꼿이 기댄 채 차분하면서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입구를 바라보는 아이는 겁을 먹은 모습이란 찾아보기 힘들었다.하지만 칠흑처럼 어두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백아영은 그가 애써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이런 상황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고작 세 살배기 어린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