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경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할아버지, 오늘 있었던 일이 너무 공교롭지 않으세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안심이 될 텐데 왜 방해하셨죠?”“백채영은 뭐니 뭐니해도 선우 일가의 공주님이야. 남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렇게 몰아세우면 결과가 어떻든 망신은 면치 못할 거야. 앞으로 무시라도 당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선우소훈은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경진아, 사회 물을 몇 년이나 마셨다는 사람이 성격이 아직도 그렇게 경솔하면 쓰겠니?”선우경진은 오로지 백채영의 신분을 확인하려다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신을 속으로 나무랐다.하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말했다.“백채영이 도우미가 무슨 독에 중독되었는지 모르는 것 같았어요.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요!”“아까 물어봤거든? 도우미가 뱀독에 중독되었다고 하더라.”선우소훈이 흐뭇하게 대답했다.선우경진은 살짝 놀랐다.“진짜요?”선우소훈은 그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왜? 내가 너한테 거짓말 할 이유라도 있어?”그건 말도 안 되었다.선우경진은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왜 뻔히 알면서도 훌쩍거리기만 할 뿐,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냐는 말이지? 설마 여자라는 이유로 일부러 투정 부리고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작전인가?그러나 미심쩍은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건 사실이다....선우 일가는 임시로 찾은 별장에 거주했는데, 최대한 자취를 감추려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걸 기피했다. 따라서 별장 자체도 그리 크고 화려한 편이 아니었다.물론 경비실도 마찬가지였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였다.방에는 책상, 의자, 그리고 1.2m짜리 싱글 사이즈 침대가 놓여 있는데, 야간 경비 중에 그럭저럭 눈 좀 붙일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별장 출입 금지령이 내려진 탓에 결국 경비실이 백아영의 거처가 되었다.딱딱한 침대에서 자려니 그녀는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백아영은 그렇게 경비실에서 몇 날 며칠을 보냈다. 어느 날 오후,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잔뜩 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폭우가 쏟아졌다.창문을 타닥타닥
그의 어깨에는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잘생긴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호수 같은 깊은 눈망울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네가 여기 왜 있어?”이성준은 말을 이어가면서 코트를 벗어 재빨리 백아영의 어깨에 걸치고는 가녀린 몸을 단번에 폭 감쌌다.옷에 남아 있는 체온 덕분에 폭우가 내리는 밤에 모처럼 따뜻함이란 무엇인지 느껴보게 되었다.백아영은 살짝 놀란 듯 물었다.“상처는 다 나았어?”“거의 다 나았어.”이성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추워서 하얗게 질린 그녀의 앙증맞은 얼굴을 내려다보며 다시 캐물었다.“대답해, 여기서 뭐하냐고.”“어르신께서 나한테 경비 서라고 했어.”이성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비좁고 꿉꿉한 방안을 훑더니 분위기가 한층 더 살벌해졌다.그는 백아영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따라와.”이성준은 우산을 쓰고 백아영과 함께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 콩알만 한 빗방울이 우산에 후드득 떨어졌지만, 백아영은 비를 단 한 방울도 맞지 않았다.오히려 우산이 백아영 쪽으로 너무 기울여진 탓에 이성준의 한쪽 어깨가 흠뻑 젖을 정도였다.점점 가까워지는 별장을 보자 백아영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어르신께서 다시는 별장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명령했단 말이야.”그녀의 말에 이성준의 안색이 더욱 싸늘해졌다.이내 소름 돋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이제부터 너한테 명령할 권리 따위 없을 거야.”말을 마친 그는 백아영을 끌고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도우미한테서 이성준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백채영은 기쁜 마음으로 2층에서 내려와 버선발로 마중 나갔다.“성준 씨, 아직 회복 중일 텐데 벌써 날 찾아온...”그녀의 의기양양한 목소리는 이성준이 백아영의 손을 잡은 모습을 발견한 순간 뚝 끊겼다.미소로 가득했던 얼굴은 상처라도 받은 듯 울상으로 변했고,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왜... 걔는 왜 데려왔어...?”주인으로서 집에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선우소훈과 선우경진도 아래층으로 내려
그러나 이제 와서...백채영은 마음이 심란한 반면 짜증이 확 났다.“엄마, 그게 무슨 말이죠?”백채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열연을 펼쳤다.“혹시 누가 협박했어요?”박라희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몰골이 초췌했다. 마치 그동안 끔찍한 나날이라도 보낸 듯 누군가 그녀의 자백을 얻어내려고 고문했을 가능성도 있었다.선우 일가의 의심만 사게 한다면 백아영은 혐의를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다만 위정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한 중년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이 사람은 불법으로 구제품을 만드는 사장입니다.”초라한 모습의 박라희를 보자 중년 남자는 덜컥 겁을 먹고 감히 거짓말할 엄두조차 못 내고 그날 밤 박라희가 찾아와서 포대기에 적힌 글씨를 조작한 일을 낱낱이 털어놓았다.심지어 매장 CCTV에 찍힌 영상까지 챙겨서 가져왔다.이제 굳이 포대기가 없어도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게 된 셈이다.선우소훈과 선우경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난번 분말 유산약 소동은 그렇다 쳐도 포대기 사건마저 박라희의 작품이란 말인가?그렇다면 결국 백아영은 결백하다는 뜻이었다.“박라희! 감히 날 속이려 들어?!”선우소훈이 버럭 외쳤다. 이내 화가 점점 끓어올랐고, 고작 눈속임에 당했다는 생각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박라희를 집어삼킬 듯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었다.박라희는 자백하는 순간부터 끝장났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이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악을 쓰더라도 백채영만큼은 이번 사건에 휘말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곧이어 바닥에 무릎 꿇은 채 울면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귀신에게 홀렸나 봐요. 절대도 어르신을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우리 채영이가 누려야 하는 걸 백아영이 자꾸 뺏으려고 하는 꼴이 못마땅해서 이런 짓을 저지르게 되었어요.”“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감히 백아영을 끌어들여요?”이성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내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말했다.“그나마 백아영이 임신해서 채찍질 100대를 면해서 천만다행이지, 아니면 반쯤
이성준은 뒤돌아서 싸늘한 눈빛으로 선우소훈을 바라보았다.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마치 소리 없는 위협처럼 다가왔다. 만약 선우소훈이 아직도 그녀를 난처하게 한다면 당장이라도 안면박대할 기세였다.어찌 됐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선우소훈은 이성준이 무례하게 굴어도 못 본 척했다.이내 백아영을 향해 말했다.“우리가 널 오해한 탓에 애먼 도우미 노릇만 여태까지 하게 해서 진심으로 사과할게. 혹시 원하는 보상이 있다면 말만 해.”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금까지 부당한 대우를 받은 백아영은 단지 선우 일가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일 뿐, 더는 이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잠깐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엄마를 뵐 수 있을까요?”그녀가 어떤 사람이든 무슨 죄를 지었든 관계없이 어디까지나 혈연으로 연결된 핏줄인지라 언젠간 꼭 만나 보고 싶었다.생각지도 못한 백아영의 제안에 선우소훈은 깜짝 놀랐다.보통 사람이라면 생모가 죄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외면할 가능성이 컸다. 심지어 보상받을 기회를 고작 죄인을 만나려고 쓰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백아영은 일면식도 없는 어머니를 위해 흔쾌히 보상을 포기했다.‘그래도 효심은 있군.’선우소훈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준비할게.”“할아버지!”이때, 백채영이 불쑥 끼어들었다.“동의하시면 안 돼요! 허수빈은 선우 일가의 죄인이잖아요. 평생 지하실에 가둬두고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하면 몰라도 딸까지 만나도록 선심 쓰는 건 아니지 않아요? 어떻게 이처럼 뻔뻔한 요구를 제안할 수 있단 말이죠?”선우소훈은 백채영이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앙칼지게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채영아, 이건 누가 봐도 우리가 잘못한 일이잖아. 보상할 건 보상해야지.”백채영은 짜증이 나서 발만 동동 굴렀다.백아영의 소원을 이뤄주는 자체가 그녀는 못마땅했다. 게다가 백아영과 허수빈은 혈연관계도 없는데, 만약 만났다가 서로 못 알아본다면 어떡하냐는 말이다!그녀는 이내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백아영은 민망한 듯 말했다.“나, 나 요리할 줄 몰라.”지난번에 딱 한 번 배웠는데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 아직은 요리 초보였다.“나한테 맡겨.”이성준은 식자재를 들고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곧이어 텅텅 빈 냉장고가 가득 채워졌다.그러고 나서 능숙하게 야채를 꺼내 다듬기 시작했다.백아영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밥을 얻어먹으러 왔다는 사람이 식자재도 준비해 오고 요리까지 직접 하다니?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자, 이성준은 고개를 들며 농담조로 빈정거렸다.“얼른 청소하지 않고 뭐 해? 이따가 먼지 구덩이 속에서 밥 먹을 거야?”순간 백아영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니 서둘러 청소하러 떠났다.방이 워낙 작아서 그녀는 몸만 돌려도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성준이 보였다.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미가 넘쳤는데, 결국 저도 모르게 자꾸 음흉한 상상에 빠졌다.청소하고 있는 여자와 요리하는 남자라... 이는 누가 봐도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의 한 장면이지 않은가?이런 생각을 떠올리자 백아영은 또다시 얼굴이 화르르 달아오르더니 재빨리 잡념을 떨쳐버렸다.하지만 눈동자만큼은 분주하게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이성준은 몰래 힐끔거리는 그녀를 일찌감치 눈치챘지만, 굳이 까발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껏 감상하도록 놔두었고, 심지어 요리할 때 웍질까지 하면서 끼를 부렸다.30분 뒤, 청소도 마치고 요리도 완성되었다.이내 자그마한 방안에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찼다.그동안 경비 서느라 경비실에서 꼼짝도 못 한 그녀는 남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음식도 맛이 없었기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식탁에 차려진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을 내려다보며 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고, 뱃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성준아, 고생했어.”이성준은 국을 한 그릇 떠서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별말씀을, 당장이라도 군침을 흘릴 것 같으니까 얼른 먹어.
이성준과 시선이 마주치자 백아영은 흠칫 놀랐다.그렇다고 굳이 남아 있을 이유는 또 뭐란 말이지?이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순간 이성준의 표정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다신 안 오려고?”“백채영의 재판 날에는 참석하겠지만, 다른 때에는... 아마 돌아올 일이 없지 않을까?”비록 일찌감치 내린 결정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성준 앞에서 얘기하려고 하니 목이 잠기면서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순간, 울컥한 기분이 든 이성준은 폭풍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듯 엉망진창이 되었다.그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찬바람을 쌩 일으키며 몸을 돌렸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고개를 돌려 민우진을 향해 말했다.“나와!”집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당연히 움직일 생각이 없는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돌아가고 싶으면 혼자 가. 어차피 방향도 다르잖아.”“내가 끌어내기를 바라는 건가?”싸늘한 목소리는 오싹할 지경인데, 누가 봐도 협박하는 말투였다.서슬 퍼런 이성준의 모습에 민우진은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괜히 백아영 앞에서 말다툼을 벌였다가 그녀를 난처하게 할까 봐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영 씨, 내일 다시 찾아올게요.”백아영은 앞뒤로 나란히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민우진은 자기 처신을 못 할 정도로 이성준과 치고받고 싸우는 그런 충동적인 사람은 아니었다.단지 서로 눈에 거슬릴 뿐, 아마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다만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고 쌩하니 떠나는 이성준을 떠올리자 괜히 기분이 찜찜했다.그녀가 남원을 떠난다고 해서 화가 난 건가?식탁 위에서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을 내려다보자 백아영은 마음이 뒤숭숭했다.건물 밖에는 여전히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이성준은 계단에서 내려와 곧바로 차에 올라탔고, 더는 민우진과 말을 섞지 않았다.강압적인 말투로 그를 협박하다시피 불러낸 목적이 결국은 백아영과 단둘이 방 안에 있는 자체를
“백아영 씨, 허수빈이 남원에 도착했어요. 저랑 선우 일가에 다녀오시죠.”백아영의 호흡이 갑자기 가빠지더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허수빈, 그녀의 생모가 왔다!드디어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되다니!백아영은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고 선우 일가에 도착했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비웃는 백채영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새로 받은 네일아트를 요리조리 둘러보며 비아냥거렸다.“악덕 도우미의 딸은 역시나 천박하구나. 자기 주제도 모르고 이런 엄마를 두고도 악착같이 빌붙으려고 해? 뼛속까지 더러운 피가 흐르는데 유유상종이 따로 없지 않겠어?”아무리 생모라고 해도 백아영은 어찌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변명할 수 있겠는가?결국 이를 꽉 악물고 가슴 속에 차오른 울분을 삼키며 함께 온 기사한테 말했다.“그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기사는 백아영을 지하실로 데려갔다.선우경진은 2층 난간 옆에 서서 거실에 있는 백채영을 내려다보더니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채영아, 백아영은 혈육이 보고 싶어서 효도하러 왔을 뿐 잘못한 건 아니잖아? 이 점만 봐서라도 허수빈과 완전 다른데 똑같이 취급하고 모욕하면 되겠어?”“오빠! 또 백아영의 편을 들어주는 거예요?”백채영은 짜증이 났다.“지난번에 절 의심하더니 이번에는 대놓고 백아영의 편에 서 있네요? 절 진짜 사촌 여동생으로 생각하긴 하나요?”지난번 일을 언급하자 선우경진도 죄책감이 들었다. 어쨌거나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자칫 백채영을 망신당하게 할 뻔한 건 사실이었다.그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언제 백아영의 편을 들어줬어? 알았어, 네가 기분 나쁘다면 더는 말 꺼내지 않을게.”백채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실로 걸어갔다.백아영과 허수빈의 만남 자체가 걱정인 그녀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시시각각 지켜보기로 했다.한편, 대낮인데도 지하실에는 빛 한 점 없었다. 주위를 밝히는 거라고는 오로지 조명뿐인지라 어딘가 답답한 느낌
그녀는 불쑥 다가와 백아영의 목을 두 손으로 꽉 졸랐는데, 광기 어린 모습은 악귀가 따로 없었다.“왜 아직도 살아 있는 거야? 죽어! 살아 있으면 안 된다고! 얼른 죽어버려.”선우정현은 선우 일가의 큰 아가씨로서 허수빈이 모셨던 주인이자 그녀가 배신한 사람이기도 했다.또한, 허수빈의 배신으로 아직 행방이 묘연하여 생사를 알 수 없다.목이 꽉 조이는 느낌에 백아영은 너무 괴로웠고, 심장은 마치 끝없는 심연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선우정현이 당신을 그렇게 잘 챙겨줬는데, 왜 죽인 거예요?”“나한테 잘해 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결국 난 평생 한낱 도우미에 불과하잖아. 너만 사라진다면 제갈 일가 덕분에 부귀영화는 물론 상류층 생활을 누리는 건 일도 아니야. 선우정현, 죽어 버려! 네가 없어야만 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어.”그녀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그 어떠한 도덕적인 감정 또는 수치심, 감사함, 죄책감 따위 없이 뻔뻔스럽게 말했다.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는 백아영의 머릿속에는 온통 목이 조여 괴롭다는 생각만 들었다.“그렇게 하면 딸아이한테 무슨 영향을 줄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나요? 악명 높은 엄마의 딸로서 대체 어떻게 처세해야 한단 말이죠?”“딸?”허수빈은 멈칫하더니 그제야 딸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듯싶었다. 물론 흉악한 얼굴에는 감정 변화가 전혀 없었다.“걔가 어떻게 처세하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 여태껏 갇혀 있는 동안에 날 구해줄 능력도 없으면서! 그 년도 결국 쓰레기에 불과해.”그녀의 말을 들은 백아영은 마치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실망감이 몰려와 뼛속까지 시린 느낌이었다.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기대는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친딸마저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매정한 사람이 이 세상에 진짜 있을 줄이야!혈육 앞에서는 그녀도 바뀔 거로 생각했던 자신이 우스울 지경이었다.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백아영은 심지어 어떻게 구출되어 지하실에서 빠져나왔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백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