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합니다!”“이에 한 표를 던집니다!”김재중의 말을 따르는 고위직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곧이어 주주총회 대표들도 따라서 일어나 발언하기 시작했다.오늘 이 일에 대해 우현아와 김예훈한테서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김예훈과 우현아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이 바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이들은 모두 자기 이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다.오늘 이 일이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지, 그리고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따질 생각도 없었다. 그저 김예훈과 우현아의 행동으로 자신이 피해당하였다고 생각했고, 자신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입힌 김예훈이 바로 이 사건의 원흉이라고 생각하면서 쫓아내려고 했다.“그만, 조용히 해보세요!”계속 눈감은 채로 생각에 잠겨있던 우충식이 갑자기 일어나면서 손짓했다.부산 용문당의 부 회장직과 JK 그룹 이사장직을 맡은 그에게 어느 정도 위엄과 통제력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의 손짓 하나로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기 때문이다.이때 우충식이 말했다.“현아가 한 일은 여러분들이 똑똑히 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고 나쁜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께 약속드리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모든 화살이 새로 부임한 두 분을 향하게 된다면 여러분 뜻대로 진행할 것이라고요.”우충식의 말에 김재중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이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뒤이어 우충식은 엄숙한 표정으로 우현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현아야, 네가 내 딸이라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전에 물어봐야 할 것이 있어. 김재중 씨의 말을 들어보니 대리권을 따내려고 김예훈 씨를 데리고 갔다가 계약도 무산되고 이 대표님 팔목도 부러뜨렸다며. 사실이야?”우현아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사실이긴 하지만...”퍽!우현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우충식이 테이블을 ‘쿵’ 내리쳤다.“설명은 필요 없고 진실의 여부만 중요해. 이제 사실이라는
우충식의 얼굴은 순식간에 심하게 일그러졌다.김예훈은 그에게 더 이상 함부로 혀를 놀릴 기회를 주지 않고 쌀쌀하게 말했다.“이명재가 험한 말로 네 딸을 모욕한 건 하나도 신경 안 쓰이나 보구나. 네 딸이 인도 새끼에게 처참하게 능욕을 당하고 그 대가로 JK 그룹에 별 의미 없는 대리권을 얻어와야 너 우충식이 딸의 능력을 인정하는 거야? 뭐 그렇다 치자. 근데 말이야. 그 새끼를 팬 건 네 딸이 아니라 나야. 네가 이걸 문제로 삼고 싶으면 사장인 나를 먼저 혼내야 하지 않겠어? 근데 날 훌쩍 건너뛰고 감히 우 대표님에게 시비를 걸어? 우 부사장, 이 김예훈이 네 눈엔 가차 없이 밟아도 찍소리도 내지 않는 등신으로 보여?”김예훈은 웃을 듯 말듯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우충식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그는 김예훈과 여러 번 정면으로 충돌한 적이 있지만 매번 불리한 상황에 빠졌고 심지어 막대한 손실도 본 적도 있었다.그런 김예훈이 지금 이렇게 직설적으로 자기에게 맞받아치니 우충식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옆에 있던 김재중이 콧방귀를 뀌며 우충식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김 사장, 네가 꼴에 달린 입이라고 함부로 막 지껄이는구나. 우리 잘생기고 혈기왕성한 이 대표님이 예쁜 우 대표님을 보니 남녀 사이에 흔히 생기는 성적 충동이 생긴 게 아니겠어? 고작 말장난 몇 마디 한 걸 갖고 왜 그 난리야? 그가 무슨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농담만 한 거잖아. 이런 농담은 사업에 관련된 대화에서 흔해 빠진 게 아니냐고! 근데 명색이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 농담 때문에 이 대표님을 두들겨 팼다고? 이봐 김 사장, 넌 뭐 산에서 살다 온 야만인이야? 싸우고 죽이는 거 빼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네가 이 대표님을 두들겨 패기 전에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생각이나 해봤어? 너의 그 무지막지한 무모함 때문에 조 단위의 대리권이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결과는 생각이나 해봤냐고?”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세상 정의로운 척은 혼자 다
게다가 김재중은 우현아와 김예훈만 그룹에서 제명하면 여전히 대리권을 따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회의실의 사람들은 현재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여 대리권을 따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하지만 일말의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었다.그 순간, 김재중의 연설전까지만 해도 우현아와 김예훈에게 별다른 적대감이 없던 임원도 두 사람을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왜냐하면 돈과 담을 쌓고 돈을 거절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회의실의 분위기가 돌변한 것을 본 우충식은 순간 기분이 상쾌해졌고 김재중에게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헛기침하며 목을 축였다. “여러분, 상황이 알기 쉽게 정리되었죠? 현아야, 솔직히 말해서 네가 대표 자리에 앉은 첫날, 네 아빠로서 네 편에 서야 하는 게 마땅한 도리야. 하지만 네가 그토록 미숙한 행동을 보이니까 이 아빤 실망이 너무 커. 이렇게 중요한 사업에 네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다니, 큰 그림을 위해 작은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사업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 이 아빤 이젠 네 그깟 능력으로는 대표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현아야, 아빠는 너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러니까 더 이상 이사회와 주주 대표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고 자진해서 사퇴하도록 해.”우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우충식을 유심히 바라봤다. 우충식이 자기의 사퇴를 강요하기 위해 이 정도로 말을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지껄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그깟 사업을 위해 그녀가 인도 사람한테 한 몸을 바쳐야 한단 말인가?순간 우현아의 입가에 조롱이 가득 찬 미소가 번졌다.그룹의 대표직 자리에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노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충식의 인정을 받아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녀는 아빠의 인정을 통해 우씨 가문의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그들 앞에서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
순간 회의장 전체가 고요한 침묵 속에 빠졌다.다들 기괴한 물건을 본 듯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누군가 참지 못하고 “푸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김 사장, 혹시 머리가 돌았나? 네가 이명재의 팔을 부러뜨렸는데 그가 너의 책임을 묻지 않을뿐더러 너에게 고분고분 대리권 계약서를 보내 사인을 받으려 한다 이 말인가?”“김 사장, 미쳐 돌아간 거야 아니면 미련하기 짝이 없는 거야? 뭐 지금 우리를 바보 취급하는 거야?”“이 대표님이 너를 고소해 변호사에게서 기소장을 받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어디서 이런 천진난만한 환상을 하고 있어? 진짜 정신이 나갔나?”임원과 주주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했다.김재중은 뭔가 생각난 듯 과장해서 입을 열었다.“여러분, 오늘 제가 유람선을 타고 있을 때 김 사장이 이 대표님에게 오후 2시까지 대리권 계약서를 들고 우리 우씨 그룹에 오라고 경고했던 게 기억납니다. 계약서를 들고 오지 못하겠으면 자기가 들어가 누울 관을 사놓으라고 협박하더군요. 여러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요. 우리 김 사장의 오만하고 기고만장한 태도만큼은 정말 세상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겁니다. 나 김재중은 부산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사업하며 별의별 금수저, 은수저들을 다 만나봤어요. 근데 능력은 티끌만치도 없으면서 이렇게 허세에 찌들고 눈에 뵈는 게 없이 거만한 양아치는 나도 정말 처음 봅니다.”김재중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침에 있었던 사태를 제멋대로 상상하고는 코웃음을 치며 김예훈을 비웃었다.‘이 자식이 설마 회의실 내의 사람들을 세 살짜리 어린애 취급을 하며 개수작을 벌이고 있는 건가? 이명재의 팔을 부러뜨리는 것도 모자라 그를 협박해서 제시간에 계약서를 들고 여기에 오라고 했다고? 대체 뭘 생각하는 거야?’옷맵시가 좋은 몇몇 임원들은 팔짱을 끼고 하찮은 인간이라도 대하듯 멸시하는 눈빛으로 김예훈을 바라보고 있었다.‘김예훈이 차려입은 옷 가격이 통틀어 20만 원을 넘지 않을 게 분명해 보였다. 머리에 피도 안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이명재 대표님처럼 고귀한 신분과 높은 지위에 계신 분이 어떻게 우리 우씨 그룹 회사 정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을 수 있어?”“김예훈이 이 대표님의 팔을 부러뜨린 게 아니었나? 우리 체면을 봐서 기소장을 보내지 않은 것만 봐도 천만다행인데 뭐 우리 회사 정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이건 뭐 말이야 방귀야?”“이봐, 너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이 대표님이 김예훈을 회사 정문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요구한 게 아니야?”회의실에 있던 임원과 주주들은 잠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다가 이내 생색을 내며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우충식도 순간 카운터 여직원이 상황이 상황인지라 급하게 말을 전달하다가 실수로 잘못 말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회의실 내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카운터 여직원에게 쏠렸고 다들 숨죽여 그녀의 해명을 기다렸다.카운터 여직원은 조바심이 나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는 바르르 떨면서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이 혼자 오신 게 아니라 지금 정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요...”이 말에 다들 흠칫 떨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일이야, 이 대표가 사람들을 데리고 와 우리의 죄를 물으려 하는구나!’김재중은 펄쩍 뛰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경호원, 경호원은 어디 있어! 너희 경호원들 임무는 절대 우현아와 김예훈이 회사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잘 감시하는 거야! 이따가 이 둘을 이 대표님에게 넘겨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해!”임원과 주주들이 무리를 지어 우르르 회사 홀로 몰려들었다.서둘러 도착한 경호원 몇 명이 경계하는 얼굴로 김예훈과 우현아를 쳐다보며 두 사람이 혼란을 틈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섰다.하지만 김예훈은 무심한 표정으로 우현아의 작은 손을 잡고 태연자약한 태도로 회사 홀로 천천히 걸어갔다.홀에 도착한 임원과 주주들은 한눈에 홀 한가운데에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인도 사람들이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이 인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람지고 건장한 체형에 이목구비가 뚜렷
김예훈은 김재중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심한 표정으로 인형처럼 정교한 여성을 바라보았다.바로 인도 청별 그룹 아시아 지역 대표 이지윤이었다.“아이고, 이 대표님이 어쩐 일로 이 누추한 곳에 찾아오셨나요. 이 우충식이 제대로 된 접대도 못 해 드렸네요.”우충식은 당연히 이지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는 부드러운 표정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우충식 옆에 어정쩡하게 서있던 그룹의 핵심 임원도 우충식을 따라나서 인사를 나눴다.그들은 모두 이지윤이라는 인물을 알고 있었다.지난달에 청별 그룹의 한국 대표 이대정이 대표직에서 해임당했다.그를 대신해 대표직에 올라간 사람이 바로 이 아시아 지역 대표 이지윤이었다.요점만 요약한다면 이지윤이 청별 그룹 내부에서 장악한 권력은 이대정을 훨씬 뛰어넘는 막강한 수준이었다.그녀의 그룹 내 지위도 이대정보다 몇 배 이상으로 높은 자리에 있었다.우씨 그룹처럼 보잘것없는 작은 곳에 이런 내노라하는 거물이 나타나자 우충식도 얼굴이 화끈거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우충식은 충격과 환희를 동시에 느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살짝 불안감이 맴돌기 시작했다.“천만에요, 우 이사장님.”이지윤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오늘은 저 이지윤이 사전에 연락도 없이 무례하게 방문해 우 이사장님께 폐를 끼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말을 마친 후 이지윤은 김예훈이 있는 방향으로 비켜서서 허리 굽혀 90도 경례를 했다.김예훈이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지윤이 머리를 들어 자세를 바로잡았다.하지만 그녀의 이런 일련의 행동은 우충식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이지윤이 자신을 정중하게 대하는 모습을 본 우충식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곧바로 그 이유를 대충 알아챘다.우충식은 자신이 부산 용문당 회장 자리에 올라갈 것이라는 소문이 장안의 화제로 떠올라 이지윤이 자신에게 이 정도로 깍듯하게 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짐작했다.제멋대로 마음속에서 결론을 내린 우충식은 더 이상 이지윤의 눈치를
김재중을 비롯한 사람들의 공포에 질린 시선하에서 이명재는 안간힘을 쓰며 바닥에 엎드려 우현아가 서있는 방향을 향해 절하기 시작했다.“우 대표님, 제가 안목이 좁아 대표님에게 몹쓸 짓을 했습니다.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은 다 제 잘못입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 주세요!”그리고 ‘쿵쿵’하는 소리와 함께 이명재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절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는 이내 피투성이가 됐고 잘생긴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몰골이 흉측해졌지만 이명재는 감히 피를 닦아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 장면을 지켜보는 이지윤의 예쁜 얼굴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녀는 우현아를 바라보며 해명하기 시작했다.“이명재는 우리 이씨 가문의 방계 사람이고 또 제 심복이기도 해요. 그래서 제가 그를 부산 대표 자리에 앉힌 거예요. 제 본래의 의도는 그가 협력 파트너를 잘 선택해 부산에서의 청별 그룹 이미지를 수립하고 이익을 창출하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가 감히 수중에 장악한 공적인 권리를 이용해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려 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오늘 아침에 그는 우 대표님에게 입에 차마 담지 못할 성희롱을 한 것도 모자라 우 대표님에게 선을 넘은 스킨십까지 시도하려는 대담하기 짝이 없는 짓도 했더군요. 우리 청별 그룹에서는 이런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 절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제 사내 교육이 해이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늘 제가 우리 청별 그룹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겁니다. 우씨 그룹에서 원하시는 대로 이명재를 처벌해도 좋으니 저 이지윤은 전적으로 여러분의 결정을 받아들일 겁니다.”이지윤의 말이 끝나자 다들 제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청별 그룹 내부의 규칙이 이 정도로 엄격할 줄은 모두가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이지윤 대표가 상벌이 명확한 사람일 줄은 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그녀가 단지 예쁜 미모만 갖춘 여성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국의 재벌 집 세자나 도련님과 맞먹는 기질도 겸비하고 있었다.그리
우현아는 우충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김예훈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녀는 눈앞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지윤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 사과하려는 것이 김예훈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때문에 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김예훈뿐이었다.“그만해, 그만 절하면 됐어. 바닥이 박살 나면 네가 배상할 거야?”김예훈은 이명재가 백 번을 절하고 나서야 앞으로 나서서 쭈그리고 앉아 빙그레 웃으며 이명재를 보며 물었다.“오늘 아침에 내가 했던 말은 기억이 나? 내가 뭐랬는지 말해봐.”그 말에 이명재는 눈꺼풀이 뛰며 무의식적으로 중얼댔다. “오후 2시에 대리권 계약서를 가지고 여기에...”“맞아, 그 계약서는 어디에 있어?”김예훈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물었다.“계약서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요.”이명재는 울먹이며 잘못을 빌었다.“김 사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모든 게 제 잘못이라는 걸 진심으로 깨달았어요.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김예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심하게 말했다.“이지윤 씨의 체면을 봐서 너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게. 나머지 한쪽 손을 너 스스로 부러뜨려. 그런 다음 내 눈앞에서 최대한 멀리 꺼져. 다음에 또 날 건드리면 네 관에서 네 시체를 보게 될 거야.”그 말에 이명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지만 그는 이내 신속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했다.“김 대표님,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맹세컨대, 앞으로 다시는 우 대표님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우 대표님을 제 친엄마로 모시고 효도하겠습니다!”말이 떨어지자 이명재는 왼손을 바닥에 격렬하게 내리쳤고 “뚝”하는 소리와 함께 왼손이 부러졌다.하지만 이명재는 감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왼손을 질질 끌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다들 등골이 서늘해졌고 눈꺼풀도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어떤 일은 직접 경험하는 것과 소문으로 듣는 것에 커다란 차이
김예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마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기꺼이 부탁하니 안 들어주면 예의가 아니겠지?”말을 마친 후 그는 휴대폰에서 몇 년 동안 한 번도 전화를 걸지 않았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세 번 울린 후 상대방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고 충격과 의아함이 가득 찬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랑하는 예훈 씨, 드디어 나한테 전화했네요!”“제 프러포즈를 받아주시려는 건가요? ”“빅토리카.”김예훈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오늘 전화한 건 당신이 처리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예요.”“당신네 영국 제국 황실에 마리아라고, 무슨 49번째 황위 계승자라고 하는데 사람이 너무 별로네요.”“이 사람의 존재가 당신과 나의 우정 그리고 한국과 영국 제국의 외교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처리 좀 부탁할게요.”말을 마친 김예훈은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깔끔하게 전화를 끊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마리아, 당신은 이제 영국 제국 황실에서 제명되었어.”“빅토리카? 영국 제국 장공주?”마리아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영국 제국의 장공주 빅토리카는 서양 최고의 미녀일 뿐만 아니라 문학과 무술도 뛰어난 분이란 걸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야!”“그분 이름을 언급한다고 해서 내가 겁먹을 줄 알아?”“그분이 맨날 티비에 나와서 심지어 흑아프리카에서도 그분의 명성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역시 너 같은 관종은 주목을 끌려고 진짜 별짓 다 하네. 네가 무슨 세계 연방의 사무총장이라도 되는 줄 알아?”장무준도 비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김예훈, 수작 그만 부려.”“황실에서 제명됐다고? 진짜 너같이 상류층의 규칙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리다.”“티비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진짜 전화 한 통으로 황실 제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야?”“잘 들어. 황실 제명은 상원의 승인뿐만 아니라 교황의 승인도 필요해!”“모든 절차를 밟는데 적어도
“장씨 가문?”“한국의 장씨 가문? 아니면 영국 제국의 장씨 가문?”김예훈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장무준, 상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고 한국 사람들은 진작에 일어섰어. 너같이 은혜를 모르고 조상을 잊은 것들이 아직도 서양 놈을 조상으로 삼고 떠받들어 모시는 거야.”“날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디 한번 해봐!”“안타깝지만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넌 나한테 안돼.”“너같이 외국의 것만 맹목적으로 숭상하고 외국인들한테 아첨하는 사람은 평생 날 못 이겨.”말을 마친 김예훈은 동하임의 팔을 잡고 돌아서 떠날 준비를 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감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역시 이 남자는 달랐다.외국의 것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아첨하는 뻔뻔스러운 장무준과 비하면 김예훈이야말로 진정한 남자였다.“이봐, 무슨 말을 그렇게 해?”“네가 뭔데 내 남친한테 그런 말을 해?”“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서구 문명을 비꼬는 거야?”이때 줄곧 경멸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만 보고 있던 마리아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그녀는 분노한 장무준의 팔을 잡고 김예훈을 가리키며 말했다.“거기 한국 사람, 좋은 말 할 때 무릎 꿇고 당장 사과해!”“여기에 3일 동안 무릎 꿇고 있어!”“아니면 영국 제국 황실을 통해 즉시 진주를 제재하는 성명을 발표할 거야!”“내 말 한마디면 네가 한 짓 때문에 진주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거야!”“또한 내 말 한마디면 진주 기관에서 너한테 중벌을 내릴 거야!”“영국 제국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 나 마리아의 능력도 의심하지 말고!”“난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고 내뱉은 맡은 무조건 실천해!”마리아는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그녀 옆에 서 있던 영국 제국의 남녀들도 모두 비웃는 눈빛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그들이 보기에 김예훈은 멍청한 한국 사람으로 보였고 마리아를 건드린 게 주제넘은 행동으로 보였다.이 한국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영국 제국 황실과 비
“바깥 세상?”김예훈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건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 듣자 하니 요즘 리카 제국 쪽에서 독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약탈을 해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그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니?”“그리고 영국 제국은 크리스마스 금지령을 무시하고 밤새도록 파티를 벌여 독감 감염률이 치솟았다던데 이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아니면 유라시아 전쟁에서 영국 제국이 세탁 세제 몇 봉지를 갖다가 유라시아 일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모독하고 이를 빌미로 사람들한테 군사적, 재정적 제재를 가한 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장무준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차갑게 말했다.“어디서 주워들은 근거 없는 말들이지? 이 나라 사람들이 함부로 퍼뜨린 루머 아니야?”“난 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 증거 있어?”“증거 없으면 말 함부로 하지 마. 비방죄로 널 고소할 수도 있어!”장무준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김예훈은 귀찮아서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이 없었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으면 다른 얘기 좀 해보자.”“내 기억이 맞다면 며칠 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영국 제국의 기자가 한국의 독감 백신이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었지?”“맞아. 물을 만하잖아. 무슨 문제제라도 있어?”장무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한국이 어떻게 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겠어? 자기기만 하는 거잖아.”“자기기만?”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영국 제국의 기자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그 사람이 백신 접종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온갖 노력을 다했고 결국은 백신을 맞았어.”“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그런 질문을 내뱉은 거야.”“이런 이중 잣대와 뻔뻔함이 네가 말하는 문명이라고?”“너!”장무준은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고 국제적으로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김예훈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만하고 우린 이제 시즌 호텔 경매장으로 가야 해.”“여기서 더 이상 역겹게 굴지 말고 이제 꺼져.”장무준은 조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동하임의 매혹적인 몸을 힐끗 쳐다본 후 몸을 돌려 마리아와 함께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결국은 영국 제국의 황족이 되고 황위 계승권의 기회를 얻는 게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다.설사 그 황위 계승권이 실현하기 어려운 멀고 먼 꿈일지라도 장무준은 기꺼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무준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장무준, 똥 먹었어? 입냄새가 왜 그렇게 심해?”김예훈의 말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걸 원치 않아 급히 김예훈을 잡아당겼다.“김예훈 도련님, 그만해요. 저런 놈이랑 말 섞지 말아요.”“이 뻔뻔스러운 놈이 나한테 무릎 꿇고 빌 때가 곧 올 거예요.”동하임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김예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동하임의 사적인 일이라 그가 너무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김예훈이라는 이름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네가 바로 그 버르장머리가 없고 노인을 존중할 줄도 모른 데다 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진주에서 온갖 허세를 부리는 물러터진 놈이구나.”“물러터진 놈?”김예훈은 장무준의 말이 도대체 어디서 굴러 나온 말인지 몰라 그저 담담하게 장무준을 바라보기만 했다.“물러터진 놈이 아니야?”장무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일본의 귀빈들한테 손댄 것도 모자라 감히 진주 전임 총독한테도 손을 대다니!”“능력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어디서 허세야?”“완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네.”“설마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왜? 내가 너희 집 어르신 뺨을 때린 게 불만인가 봐?”장무준은 차갑게 말했다.“불만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네 놈이 영국 제국의 황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