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검객?”김예훈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용인주가 웃으며 말했다.“이자는 일본의 검객으로 부산에서 검도관을 차렸습니다. 명목상으로는 검도를 전수하는 것이지만 사실 암암리에 처리하는 일들은 우리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지요.”“인재윤이 보낸 사람들인가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습니다! 일석이조의 계획이었죠. 우리의 계획에 따르면 오늘 김 대표님이 제 손에 죽지 않으면 이 일본 검객이 결투를 신청할 겁니다. 만약 지면 그 자리에서 죽는 거고, 이기면 일본 검객을 화나게 했으니 귀찮은 일들이 생길 겁니다.”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지 않았다.현장에 용문당 제자 다섯 명이 긴검을 들고 조용히 휘둘렀다.일본 검객은 오른손을 허리춤에 있는 장도 위에 올려 순식간에 검을 뽑았다. 날이 빛을 받아 반사됐다.그러자 뛰쳐나온 용문당의 제자 다섯 명은 갑자기 온몸을 벌벌 떨더니 모두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그들의 얼굴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가득했고 그 누구도 이 일본 검객이 이렇게 막강한 실력의 소유자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일본의 검술.”김예훈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일본의 검객은 비록 검객이지만 사용하는 검은 모두 일본도이다.일본의 검술은 수련하기 힘들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검객이 이 검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검도계에서 이미 최고의 기술까지 익혔다는 것을 증명한다.사악이때 일본 검객은 멈추지 않고 왼발로 땅을 밟고 마치 앞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을 취하며 곧바로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그러나 주위에 수많은 용문당 고수가 죽어, 양측은 순간 접전을 벌였지만 일본 검객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손에 쥔 일본 장도를 휘둘렀다.사사삭.일본 검객은 순식간에 주위에 있는 열댓 명의 용문당 고수들을 채소 베는 것처럼 베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목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목이 다 날아갔다.열댓 명을 죽인 일본 검객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사악.날이 반사되며 앞을 가로막던 용문당 고수들은 바닥에 쓰
현장의 일본 검객은 이미 만인의 적이 되었다.일본 검객 손에 쥐고 있는 장도는 마치 냉전기 같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무시무시한 빛을 반사했다.긴 검을 쥐고 있던 용문당 제자 두 명은 동시에 앞으로 걸어 왔다. 이 둘은 딱 봐도 이전에 나왔던 용문당 제자들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검을 꺼내 빛이 반사되자 일본 검객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하지만 일본 검객은 피하지 않고 손에 쥐고 있던 장도를 휘둘렀다.쨍.두 자루의 긴 검이 순간 두 동강이 나는 소리에 두 고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이 지경에 이르자 막강한 실력을 보유한 용문당 제자들은 감히 앞으로 나올 수 없었고 모두 겁에 질린 채로 뒤로 흩어져 용인주와 김예훈 등 사람들을 둘러싸 경호했다.그러나 용문당 제자들이 겁에 질려 있다는 사실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아차렸다.오정범이 눈살을 찌푸리며 앞으로 걸어와 허리춤에 있던 당도를 꺼내 차갑게 말했다.“네 정체가 뭐냐?”“내가 누구냐고?”차가운 표정의 일본 검객은 장도에 묻은 피를 소매에 천천히 닦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난 야마자키 파 켄타로, 인재윤 선생님의 은혜를 입었고 오늘 김예훈이 우리 선생님과 일가를 죽였으니 내가 너를 죽이는 것으로 복수할 것이다. 어디 한 번 덤벼봐!”“켄타?”오정범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부산 야마자키 검도관 관장?”켄타가 천천히 말했다.“맞아. 그게 바로 나다.”표정이 일그러진 오정범을 보고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범이 형님, 저 사람 어떤 사람이에요?”오정범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김 대표님, 저자는 일본에서 검도 10대 오야붕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일본 청년 검도계에서 가장 강한 열여덟 명에 포함되어 있는 자로, 소문에 의하면 이전에 우리 한국 사람은 모두 동쪽에 있는 병자들로 그 누구도 자기한테 덤빌 수 없다고 소리친 적이 있다고 합니다.”‘동쪽에 있는 병자들?’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일본
사사삭.여전히 일본의 검술이다!그러나 이번엔 휘두른 검은 앞으로 휘두른 것이 아닌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휘두른 것이다.가볍게 돌았을 뿐인데 빛이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다.훅.용문당 제자 이십여 명이 막으려 손을 쓰지도 못한 채 모두 흉부에서 피를 튀기며 뒤로 날아갔다.강하다!정말로 강하다!단도를 꺼낸 켄타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한번 휘둘렀지만, 이십여 명의 숨통을 끊어 놨다.그 후 켄타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와 한 사람씩 목을 베었다. 바닥에는 순식간에 오십여 명이 쓰러져 있었다. 용인주를 호위하던 용문당 제자들은 점점 줄어 들었다.용문당 고수와 우두머리 사람들은 모두 입이 바싹 말라왔다.강하다!일본 검도는 확실히 강하다!무심한 듯한 화려한 살인 기술을 시전하니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었다.당도를 쥔 오정범은 눈살이 떨리기 시작했다.오정범은 혼자서 켄타를 막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김예훈이 아직 명령을 내리지 않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이때 김예훈 손에 있던 찻잔이 순간 앞으로 날아갔다.쨍그랑.켄타가 도를 휘두르자, 찻잔은 그대로 두 동강 나버렸다.그러나 타오르던 기세가 순간 깨지며 싸움을 시작할 때부터 계속된 왔던 강한 기운이 마치 풍선 터지듯 사라졌다.켄타의 두 눈이 미묘하게 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을 가늘게 뜨고 켄타를 바라보던 김예훈은 이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실력은 나쁘지 않은데 아쉬운 건 그 정도로 나는 못 죽여. 나를 죽이고 싶으면 최소한 너의 사부 정도는 데리고 와야 할 거야.”김예훈이 하는 말은 전부 사실이다. 일본의 검성이 와야지 조금은 볼만할 것이다.일개 켄타는 막강해 보이지만 김예훈이 만약 손을 쓴다면 세 걸음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켄타는 김예훈을 노려보며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인재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별 볼 일 없는 것이 허풍만 떨고 있구나. 만약 용문당 제자가 호위하지 않으면 넌 오늘 백번은 더 죽었어! 맞아 내가 오늘 여기 친히
“자결해.”용인주가 아무 표정도 없이 입을 열었다.“내가 손을 쓸 때면 더욱 험한 꼴을 보게 될 거야.”“자결하라고?”켄타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뭐라는 거야? 너희 한국은 하루 종일 한국 무술을 자랑이나 하더니, 무술은 오래됐지만 모두 실속은 없는 거 아니야? 도대체 나한테 이런 말을 하려는 용기는 어디서 온 거야? 죽을 ‘사’자를 쓰는 방법을 모르는 건가?”용인주의 측근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 걸어 나와 소리쳤다.“우리 용문당의 당주를 모욕하다니! 죽으려고 작정했어?”“용문당의 당주?”켄타나의 얼굴이 차가워졌다.“요즘은 늙은 영감탱이가 나와서 거들먹거리고 개나 소나 데리고 와서는 우리 일본 야마자키 파 앞에서 거만을 떨어? 퉤! 한국인은 모두 동쪽 병자들이 맞았네!”차가운 얼굴로 켄타는 용인주를 얕잡아 보며 실속 없는 깡통이라고 생각했다.“동쪽의 병자들?”용인주가 큰 소리로 웃었다.“저번에 이 말을 한 일본인은 이미 내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 죽였는데.”말이 끝나자, 용인주가 몸을 움직이더니 귀신처럼 켄타의 뒤까지 쏜살같이 달려갔다.방금 기세등등했던 켄타는 정신을 차렸지만, 표정이 무척이나 일그러졌다.한국의 무술은 그 힘도 강력하고 그 누구보다 빨랐다.용인주는 무서운 기운을 풍기지는 않았지만 빠른 거 하나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방금 오만방자했던 켄타는 지금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이 온몸이 얼어붙었다.사악.켄타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고 동시에 단도로 겨드랑이 밑을 찔렀다.이는 야마자키 파의 무서운 복중검이다.이런 검법은 빠르고 세며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자멸하게 한다.그러나 이 도를 휘두르려 할 때 용인주는 이미 오른손을 재빨리 뻗어 순식간의 켄타의 목을 졸랐다.켄타는 온몸이 굳어 감전된 것처럼 온몸을 계속 덜덜 떨었다.용문당의 고위층과 제자들은 이 장면을 보고 숨쉬기가 힘들었다.‘강하다! 정말로 강하다!’김예훈도 눈을 가늘게 뜨고 보고 있었다.전 국방부 장관이자 현 용문당 당주는 확실히 실력자이다
김예훈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퍼져나갔다.일본 야마자키 파의 오야붕인 켄타가 용인주를 살해하려고 했고, 인재윤 일가는 싸움에서 모두 죽었다는 것이었다.그래서 용인주는 야마자키 파에게 해명을 요구했다.이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김예훈이 이 일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이 상황에 당황한 김예훈은 나중에서야 상황을 파악했다.용인주는 김예훈이 부산에 가기 전에 부산에서 이름을 떨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김예훈이 조용히 부산으로 건너가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로 용인주가 원하는, 더 나아가서 용문당이 원하는 것이었다.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김예훈은 어쩔 수 없이 부산으로 가야 했다.프리미엄 가든으로 돌아오니 정민아는 아직 경기도 정씨 가문의 일을 처리하는 중이라 돌아오지 못했다.김예훈은 그런 정민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가주 자리에 오른 것은 정민아에게도 기회였다. 정민아를 명문가 사람으로 만들려는 김예훈의 계획에 어울리는 처사였다.김예훈은 오정범에게 부산의 자료를 요구해 정민아의 퇴근을 기다리면서 자료를 읽고 있었다.“따르릉.”김예훈이 어떻게 부산의 일을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저장되지 않은 핸드폰 번호였는데, 부산에서 온 전화였다.김예훈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그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원래 많지 않고 오직 측근만이 알고 있었다.하지만 김예훈이 부산에 가려고 하는 지금 이때, 부산에서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오다니...김예훈은 핸드폰을 지켜보며 받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어 테이블을 몇 번 치더니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하지만 상대는 포기하지 않는 듯, 여전히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핸드폰이 세 번째 울릴 때, 김예훈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예훈이니?”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가 김예훈의 먼 기억을 끄집어냈다. 잠시 멈칫한 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인국 아저씨?”“하하하, 예훈이지? 틀린 번호가 아니라니까.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수소문
조인국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 김예훈은 말할 시간도 없었다.조그마한 여자아이에 불과하던 그의 딸인 조효임을 떠올린 김예훈은 살짝 어이없다는 미소를 드러냈다.그때 그 여자아이는 항상 김예훈을 따라다니곤 했는데, 아마 지금은 어엿한 성인으로 자랐을 것이다. 다만 김예훈은 조인국의 데릴사위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마침 우연히 조인국 일가와 연락이 닿았으니 부산에 가면 조인국 일가와 만나게 될 것이다....저녁 아홉 시. 정민아는 여전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김예훈이 집을 나서 정씨 저택으로 가 정민아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문 앞에 갑자기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나는 듯이 등장하더니 김예훈 앞에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고 송준이 나오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했다.“김 대표님, 한 시간 전, 하 비서가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더니 CY그룹의 모든 일을 저한테 인수인계한 후 사직서를 내고 바로 공항으로 갔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떠나면 길면 반년, 적어도 몇 주는 있다가 올 거라고 합니다. 아마도 하 비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합니다. 김 대표님, 가서 도와주셔야 합니다!”“하은혜 씨가 갑자기 부산으로 갔다고?”김예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심각해졌다.전에 하은혜의 어머니와의 일은 이미 해결했다. 게다가 다음 달 15일에 부산 심씨 가문에 갈 것이라고 했다.그러니 심씨 가문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하은혜는 김예훈에게 알릴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떠나는 것은 매우 이상했다.김예훈은 고민하다가 심정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심정효의 핸드폰은 꺼져있었다.또 하은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하은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러니 김예훈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두 사람의 전화번호는 모두 개인 번호로 공정 전화를 하는 다른 핸드폰이 있기에 함부로 꺼두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두 사람의 개인 번호 모두 연락이 되지 않는다니...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심씨 가문에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맞다, 떠나기 전
이튿날 아침. 송준과 오정범에게서는 하은혜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하지만 하은혜가 문자를 먼저 보내왔다. 짧은 한마디였다.「전 괜찮아요.」그 문자를 받은 김예훈의 심장은 더 내려앉았다.특히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하은혜의 전화는 여전히 꺼진 상태였다.결국 김예훈은 부산에 가기로 마음먹었다.시간이 긴박했기에 김예훈은 정민아에게 얘기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박인철에게 성남에서 정민아의 안전을 신경 쓰고 정민아가 정씨 집안의 권력을 이어받는 것을 도와주라고 했다.송준은 남아서 CY그룹의 일들을 처리했다.결국 김예훈은 오정범만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오정범 곁에 공진해와 도적구자 두 사람은 며칠 전에 부산에 가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김예훈이 부산에 온다는 것을 듣고 슬슬 몸을 풀며 김예훈과 같이 움직일 준비를 했다.KTX 위에서 김예훈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부산에 가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잠깐 고민하던 그는 핸드폰을 꺼내 부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예훈이냐? 네가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하냐?”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조인국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의아함이 묻어 있었다.김예훈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아저씨, 제가 오늘 마침 부산에 갈 일이 있어서요. 만약 가능하다면 며칠 후에 시간 될 때 같이 만나서 식사할까요?”전화기 너머에 있는 조인국은 살짝 굳어있다가 이내 대답했다.“비행기로 오는 거야, 아니면 KTX로 오는 거야? 오늘 언제 도착인데?”김예훈은 손목의 롤렉스를 보면서 대답했다.“아마도 점심 전에 도착할 것 같아요. 하지만...”조인국은 김예훈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빠르게 대답했다.“그럼 내가 운전기사를 보내서 널 데리러 갈게. 오늘 점심에 마침 파티가 있는데 와서 참여해. 아줌마랑 효임이도 올 거야. 오랫동안 얼굴을 못 봤으니 오늘 만나자. 그럼 이렇게 하고, 나는 일단 일 때문에... 마침 부산 용문당의 고위층 사람과
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이때 식당칸에서 위엄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시아야, 그만 해라! 식당칸을 점용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야. 여기서 함부로 무력을 사용하면 돌이킬 수 없어!”임시아의 얼굴에서 오만한 기색이 사라지더니 손을 내리고 대답했다.“알겠습니다.”그렇게 말하는 임시아의 큰 눈은 김예훈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길을 터주었다.김예훈은 임시아를 쳐다도 보지 않고 식당칸으로 들어섰다.식당칸의 직원은 두 사람으로 많지 않았다. 그리고 정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들은 중년 남녀였다. 개량한복을 입은 그들은 아우라가 남달랐다. 딱 봐도 상위층의 고귀한 신분인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안에는 오직 한 중년 남자만이 앉아있었다. 그의 앞에는 열 가지가 넘는 음식들이 있었는데 많이 먹지는 않았다. 그저 몇 수저 뜬 모양이었다.김예훈의 시선은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 그 중년 남자의 얼굴에 닿았다. 아까 입을 연 남자가 바로 이 사람이다.상대도 대수롭지 않은 듯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눈빛에는 고고함이나 오만함이 없었고 오히려 당당함이 엿보였다. 다른 사람이 얘기하지 않아도 이 중년 남자가 이곳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김예훈의 시선이 그에게 닿는 것을 본 중년 남자는 웃으면서 얘기했다.“허허, 젊은 친구. 우리가 잘못했네. 자네의 식사를 지체했어. 자네가 너그러이 용서해 주길 바라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모두 시키게나. 내가 계산하도록 하지.”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여 중년 남자에게 대답했다.이 중년 남자가 비범한 신분이라는 것을 알지만 김예훈의 신분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신분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김예훈의 태도를 본 임시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불쾌해했다.김예훈은 평범한 옷차림에 손목에는 몇십 년이 되어 보이는, 제대로 작동할지 걱정될 정도로 낡은 시계를 차고 있
“바깥 세상?”김예훈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건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 듣자 하니 요즘 리카 제국 쪽에서 독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약탈을 해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그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니?”“그리고 영국 제국은 크리스마스 금지령을 무시하고 밤새도록 파티를 벌여 독감 감염률이 치솟았다던데 이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아니면 유라시아 전쟁에서 영국 제국이 세탁 세제 몇 봉지를 갖다가 유라시아 일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모독하고 이를 빌미로 사람들한테 군사적, 재정적 제재를 가한 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장무준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차갑게 말했다.“어디서 주워들은 근거 없는 말들이지? 이 나라 사람들이 함부로 퍼뜨린 루머 아니야?”“난 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 증거 있어?”“증거 없으면 말 함부로 하지 마. 비방죄로 널 고소할 수도 있어!”장무준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김예훈은 귀찮아서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이 없었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으면 다른 얘기 좀 해보자.”“내 기억이 맞다면 며칠 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영국 제국의 기자가 한국의 독감 백신이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었지?”“맞아. 물을 만하잖아. 무슨 문제제라도 있어?”장무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한국이 어떻게 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겠어? 자기기만 하는 거잖아.”“자기기만?”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영국 제국의 기자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그 사람이 백신 접종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온갖 노력을 다했고 결국은 백신을 맞았어.”“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그런 질문을 내뱉은 거야.”“이런 이중 잣대와 뻔뻔함이 네가 말하는 문명이라고?”“너!”장무준은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고 국제적으로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김예훈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만하고 우린 이제 시즌 호텔 경매장으로 가야 해.”“여기서 더 이상 역겹게 굴지 말고 이제 꺼져.”장무준은 조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동하임의 매혹적인 몸을 힐끗 쳐다본 후 몸을 돌려 마리아와 함께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결국은 영국 제국의 황족이 되고 황위 계승권의 기회를 얻는 게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다.설사 그 황위 계승권이 실현하기 어려운 멀고 먼 꿈일지라도 장무준은 기꺼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무준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장무준, 똥 먹었어? 입냄새가 왜 그렇게 심해?”김예훈의 말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걸 원치 않아 급히 김예훈을 잡아당겼다.“김예훈 도련님, 그만해요. 저런 놈이랑 말 섞지 말아요.”“이 뻔뻔스러운 놈이 나한테 무릎 꿇고 빌 때가 곧 올 거예요.”동하임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김예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동하임의 사적인 일이라 그가 너무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김예훈이라는 이름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네가 바로 그 버르장머리가 없고 노인을 존중할 줄도 모른 데다 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진주에서 온갖 허세를 부리는 물러터진 놈이구나.”“물러터진 놈?”김예훈은 장무준의 말이 도대체 어디서 굴러 나온 말인지 몰라 그저 담담하게 장무준을 바라보기만 했다.“물러터진 놈이 아니야?”장무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일본의 귀빈들한테 손댄 것도 모자라 감히 진주 전임 총독한테도 손을 대다니!”“능력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어디서 허세야?”“완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네.”“설마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왜? 내가 너희 집 어르신 뺨을 때린 게 불만인가 봐?”장무준은 차갑게 말했다.“불만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네 놈이 영국 제국의 황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