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계훈은 놀라움에서 충격을 느끼며 마지막엔 무척 기뻐했다.“진, 진짜야?”소계훈은 그제야 안심했다. 지아와 도윤 사이의 문제가 이미 해결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가 너무 많이 생각한 것 같았다.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겼으니 이는 좋은 일이었다.“내가 왜 아빠를 속이겠어요? 이미 한 달이 넘었는데, 그것도 쌍둥이에요.”소계훈은 매우 흥분했다.“그래, 정말 좋구나.”전에 소계훈이 교통사고로 입원한 후, 지아도 아이를 잃었다. 비록 그때 자신을 보러 올 때마다 지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몸은 나날이 수척해졌으니 소계훈은 또 어떻게 개의치 않을 수 있겠는가?두 사람은 지금 아이가 생겼고 또 감정기초가 있었으니, 소계훈도 좀 안심할 수 있었다.“그럼 너와 도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아이가 생긴 후 도윤은 오히려 널 보러 오지 않는 거야?”지아는 참고 또 참았고, 끝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지금 소씨 가문이 파산한 데다 소계훈 자신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니, 이런 일을 말하면 그는 도윤을 미워하게 될 것이고 또 매일 답답함을 느낄 뿐이었다.“도윤의 신분이 특수해서요. 최근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는데, 우리가 위험해질까 봐 이곳으로 보내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거예요. 게다가 난 임신한지 아직 3개월이 되지 않았으니 좀 조심해야 하고요.”지아가 이렇게 말하자, 소계훈도 납득할 수 있었다.“어쩐지 지금 매일 나에게 전화를 하지만 우릴 만나러 오지 않더라니. 지아야, 그럼 네가 말해봐라. 넌 도윤에 대해 도대체 어떤 태도지?”지아는 아랫배를 만지며 본심에 어긋난 말을 했다.“비록 과거에 좀 다투었지만, 도윤은 결국 내 아이의 아빠잖아요.”“그래, 너희들은 아직 젊지. 그리고 싸우지 않는 젊은 부부가 또 어딨겠어? 너도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태교에 전념해. 이번에는 꼭 아이를 지켜야 한다. 아이가 있으면 모든 것이 좋아질 테니까. 이 아이는 말이야, 부부 두 사람 연결시키는 고리야. 아이만 있으면 너희들
소계훈은 부채질을 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그럼 내가 이렇게 물어보지, 만약 네 엄마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난 또 무엇을 얻을 수 있지?”지아는 침묵했고, 소계훈은 계속 말했다.“내가 얻는 건 원망뿐이고, 그 뒤로는 끝도 없는 무시뿐이야. 네 엄마는 나를 욕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후엔 매일 날 미워하면서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할 거야. 그리고 네 엄마의 눈에는 빛이 사라져 입가에 웃음 따윈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될 걸. 그리고 난 네 엄마란 사람을 얻더라도, 결국 그 마음을 얻지 못해,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이미 지독하게 붕괴된 집안을 얻을 뿐이야. 너 또한 성격이 어두워질 거고.”“난 네가 조심스럽게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모습을 잊지 않았어. 넌 분명히 어린 아이였고, 다른 또래들이 무심하게 놀고 먹는 동안, 넌 눈치를 살피면서 최선을 다해 엄마의 기분을 맞추려고 했지. 그런데 결국 네 엄마의 마음을 얻지 못했잖아? 이런 집안에서 자라는 건 총소리가 없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겠어? 그렇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너도 네 엄마처럼 될 거야.”“공작새가 아름다운 이유는 넓은 천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만약 그것을 작은 철장에 가둔다면, 꼬리조차 펼 수 없을 텐데, 또 어떻게 아름다움을 선보일 수 있겠는가?”“그리고 난 네 엄마를 놓아주기로 선택했으니, 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나를 미워하지도 않을 거야. 그렇게 그 사람은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자유를 얻게 됐지. 나도 정신적인 만족을 얻었어. 유일한 아쉬움은 네가 엄마 없이 자랐다는 거야. 그래서, 난 이 세상의 일들은 모든 것이 결과가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노력한다고 해서 동등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그건 우리가 어떻게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변할 거야.”지아는 그때의 상황을 상상했고, 그것은 마치 지금 자신이 도윤의 곁에 있는 것과 같았다.“아빠, 그럼 엄마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겠네요?”“그래, 어떻게 사랑하지
조율에서 이예린까지, 지아는 자신이 이미 모든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소계훈은 그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기억은 여전히 몇 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지아야, 넌 네 아빠를 그렇게 못 믿는 거야? 내가 만약 정말 아이를 원했다면, 먼저 조율에게 명분을 줬을 거야. 게다가 네 동의를 거친 다음 또 모든 상황이 안정적이고 적절할 때 아이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일을 할 수 있겠어?”만약 소계훈 본인이 말하지 않았다면, 지아는 아마 평생 그를 오해했을 것이다.그녀는 조율 뱃속의 미처 자라지 못한 태아가 소씨 집안의 핏줄인 줄 알았다.“그 사람은 아빠를 엄청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졌죠?”소계훈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전에 자주 말했잖아. 젊은이들은 항상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그 아이는 홧김에 날 떠난 후 클럽에 가서 술을 마셨고, 그 후 술김에 다른 남자와 그런 일을 한 거야. 후에 나는 그 아이를 찾아 나의 태도를 표명했고, 우리가 함께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아이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발견했어.”“그럼 아빠는 어떻게 생각했는데요?” 지아는 소계훈을 바라보았다.“나는 그 아이가 확실히 나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줬다는 것을 인정해. 그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나는 기분이 유난히 홀가분했거든. 그러나 난 그 뱃속의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어. 나보다 그렇게 어린 여자애와 결혼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 마련인데, 이제 아버지도 모르는 아이까지 키우다니. 비록 나는 자선가이지만, 귀찮은 일 싫은 것도 사실이야.”소계훈의 눈빛은 더욱 예리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기업가 특유의 냉정함이었다.“나에게 있어 딸은 지아 너 하나밖에 없었으니 그때 아이를 가질 계획은 없었어. 그리고 그 아이와 난 단순히 사귀는 사이였지 선을 넘은 적은 더더욱 없었으니 내가 또 어떻게 남의 아이를 받아들이고 키울 수 있겠니? 게다가 난 20대에 이미 뼈
소계훈은 계속 말했다.“지아야, 넌 어릴 때부터 나의 보호를 잘 받아서 사회의 잔인함을 몰라. 남자든 여자든 권력을 위해, 돈을 위해, 지위를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거든.”“이제 알겠어요.”“그때 조율은 나에게 충분히 많은 시간을 들였고, 난 가장 적합한 선택으로 된 거야. 일단 나에게 나쁜 습관이 없는 데다, 또 일편단심 한 사람만 바라보며 마음까지 정직하니, 조율은 나에게 시집온 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갈 거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아이보다 훨씬 큰 거지. 내가 죽으면 조율은 많은 유산을 받게 될 거야. 그리고 그 아이는 내 명확한 대답을 얻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꼬시는 것을 포기했거든. 지아야, 넌 그날 밤 조율이 누구를 꼬시려고 했는지 아니?”지아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누군데요?”“바로 도윤이었어.”지아는 완전히 멍해졌다.“어떻게 도윤일 수가?”“그 아이는 눈이 높아서, 내가 줄곧 넘어오지 않았기에 마음속으로 불만이 있었던 거야. 너와 도윤이 부부란 사실은 외부에 발표되지 않았기에 남들은 도윤이 이미 장가를 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어. 그러니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도윤을 꼬시려고 했겠지.”지아는 전에 확실히 이런 일을 걱정했었다. 도윤은 그렇게 잘생기고 사람들 눈에 띄었으니 틀림없이 많은 여자들이 그를 넘보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도윤은 매번 부드럽게 웃으며 지아의 걱정에 대답했다.“난 너만 있으면 충분한데, 어떻게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겠어.”다만 지금 조율과 도윤 두 사람을 연계시키니, 지아는 여전히 좀 믿기 힘들었다.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조율은 이예린과 약간 닮았으니, 만약 도윤이 그녀를 보았다면 틀림없이 관심을 좀 가졌을 것이다. 그럼 조율은 도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그럼 조율 뱃속에 있는 아이는 도대체 누구의 아이일까요?”“내가 그때 알아낸 것은, 조율이 원래 도윤에게 약을 먹이려 했지만
지아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고 소계훈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많이 말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나 좀 봐, 너와 도윤에 대해 말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내 얘기만 했지? 지아야, 걱정하지 마. 도윤은 아주 좋은 남자니까 밖에서 이상한 짓 하지 않을 거야. 네가 시집가기 전에 난 사람을 시켜 도윤을 조사했는데, 남녀 관계에 있어 도윤은 줄곧 잘 처리해왔더라고.”도윤에 관한 일에 대해 지아는 한 글자도 듣고 싶지 않았다.“아빠, 그럼 아빠는 조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거예요?”소계훈은 원래 이 화제를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아가 매우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 계속 말했다.“처음에는 그 아이가 똑똑하고 영리하고 또 착한 줄 알았지만, 후에 그 아이가 한 짓을 보고 나서야 난 자신이 그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왜, 넌 조율을 알고 있는 거야?”지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아빠의 연애사에 관심이 생겼을 뿐이에요.”소계훈은 부드럽게 웃었다.“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 아빠는 다른 생각은 없고, 그냥 매일 네 행복한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보아하니 소계훈은 조율의 죽음을 의외의 사고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고, 후에 도윤이 그녀를 위해 소씨 가문에게 ‘복수’를 한 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아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아빠, 알았어요.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나와 도윤의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가 말한 것처럼, 싸우지 않는 부부가 또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우리도 싸운 게 아니라, 단지 도윤이 일 때문에 바빠서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서 그래요. 이건 별 영향 없으니까 아빠도 우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난 그냥 최근에 임신해서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잘 웃지 않는 거예요.”“그래, 그럼 나도 마음이 놓이는구나. 내가 디저트 가져다줄게.”소계훈의 안색이 좋아지고 또 엄청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지아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그 일들, 난 언제까지 숨길 수
지아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소계훈은 손에 든 칼을 내려놓았다.“지아야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으면 이 아빠에게 말해 봐. 참지 말고.”“아빠, 여기는 우리가 잠시 지내는 곳일 뿐이니 앞으로 아이를 낳으면 우리 어디 가서 지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어요.”지아는 앞으로 도윤과 더 이상 얽매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때 가서 아이를 데리고 또 어디로 도망갈까? 그녀는 또 어디로 도망갈 수 있을까?소계훈은 한숨을 쉬었다.“도윤이 우리가 전에 살던 별장을 다시 샀다고 하던데. 그렇지 않으면 우리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좀 더 생각해 볼게요. 아직은 이르니까 안 급해요.”지아는 칼을 들고 말했다.“아빠, 좀 가르쳐 주세요. 나도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요.”“좋아, 내가 가르쳐 주마.”미연은 멀리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사진 한 장을 찍어 도윤에게 보냈다.이때 웨딩숍에서 양복을 고르고 있던 도윤은 넋을 잃고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 지아는 왼손에 칼을 든 채 조각할 나무를 테이블에 고정시켰다.비록 한 손밖에 쓸 수 없지만, 그녀는 아주 열심히 조각하고 있었다.도윤은 사진을 최대한 확대했고, 지아의 속눈썹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그는 전에 지아가 갓 임신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눈빛이 초롱초롱했고, 매일 참새처럼 재잘거렸다.“뱃속의 아이가 남자아이일까 아니면 여자아이일까? 당신 한 번 알아맞혀 봐. 난 이 아이에게 어떤 방을 준비해야 할까? 예쁜 치마 사줄까 아니면 멋진 양복 사줄까? 어머, 장난감까지 선택해야 하잖아.”지아는 귀찮다고 떠들면서 또 번번이 스스로 물건을 골랐다. 설령 그때의 도윤이 지아를 무시했다 하더라도 그녀의 흥분된 마음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그리고 지아도 점차 도윤이 자신을 냉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그를 찾아 상의하지 않았다.사실 도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지아가 혼자 백화점에 가서 스스로 아이들의 물건을 골랐다는 것을.지아는 곧 태어날 아기새를
점원은 도윤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얼른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 웨딩드레스가 마음에 드시는 겁니까? 아가씨와는 사이즈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가씨더러 한 번 입어 보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혼식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저희가 가능한 한 빨리 아가씨의 사이즈에 따라 고치겠습니다.”도윤은 다시 한번 드레스를 바라본 다음, 결연히 떠났다. ‘내가 지아에게 빚진 것이 어찌 결혼식과 웨딩드레스뿐이겠는가.’그가 그녀에게 빚진 것은 아마 평생 갚지 못할 것이다.백채원이 고른 양복으로 갈아입은 뒤, 점원은 허리를 굽혀 도윤의 바짓가랑이를 정리해 주었는데 그야말로 칭찬을 멈추지 못했다.“대표님 정말 너무 멋있습니다. 어쩜 이렇게 품위가 넘칠까요? 정말 타고난 옷걸이시네요. 대표님과 아가씨의 결혼식은 틀림없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것입니다.”도윤은 정장을 여러 번 입어 봤지만 결혼 예복은 처음이었고, 심지어 그가 아내로 맞이할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조차 아니었다.그는 슬픔과 아쉬움에 미간을 찌푸렸고, 점원은 조심스럽게 그의 곁에 서 있었다.“대표님, 어디 마음에 안 드시는 곳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얼른 말씀해 보세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저희가 모두 수정할 수 있습니다.”“아니야, 이 양복과 방금 내가 본 그 웨딩드레스 좀 포장해줘.”“네, 대표님.”도윤이 나오자, 백채원은 이미 다른 옷으로 갈아 입고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도윤 씨, 나 이미 레스토랑 예약했으니 같이 점심 먹어요.”도윤은 시계를 보았다.“난 아직 회의가 있어서. 혼자 먹어.”“도윤아.” 백채원은 도윤의 소매를 잡아당겼고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우리 결혼식, 약속대로 진행되는 거 맞죠?”지난달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지만 도윤은 지윤에게 위험이 있다며 결혼식을 한달이나 미루었다.그리고 혼인 신고까지 하루하루 미루고 있었으니 백채원은 그저 당황하기 그지없었다.도윤은 가볍게 손을 빼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응
육아용품점에 도착하자, 도윤은 그제야 그때의 지아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윤은 그들의 첫번째 아이였으니, 이치대로라면 도윤은 누구보다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때, 이예린의 일은 두 사람 사이의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구름과 같은 색깔을 가진 작은 옷 하나하나를 보고 나서야 도윤은 지아가 그때 왜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그녀의 눈이 왜 그렇게 밝았는지를 깨달았다.아기의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을 저격했고, 작고 부드럽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와, 대표님 이 말 좀 보세요. 정말 귀여워요. 그리고 이 장난감 총, 뿅뿅뿅, 너무 깜찍하잖아요.”“이 옷도 어쩜 이렇게 작을까요? 설마 아기가 이렇게 작은 거예요? 고양이 같아요.”“어머, 그리고 이 젖꼭지 좀 봐요.”진봉은 도윤보다 더 바빴다. 그처럼 거친 남자가 육아용품점에 있으니 마치 장군이 다림질하는 것과 같았고 엄청난 대조를 이루었다.한쪽의 점원은 도윤의 옷차림을 한 번 훑어보더니 바로 대단한 고객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낀 그 시계만 해도 이 가게 전체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안녕하세요, 아기 성별이 어떻게 되죠? 제가 추천해 드릴게요.”이 말에 도윤은 말문이 막혔다. 태아가 아직 너무 어렸기에 그들은 성별을 알 수 없었다.“그건 몰라.”“그렇군요, 그럼 여기에 있는 이 스타일들은 어떤가요? 이 색깔들도 신생아가 입기엔 적합해서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모두 잘 어울릴 거예요.”하지만 도윤은 한쪽에 있는 핑크 색으로 된 옷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속으로 지아가 딸을 낳기를 바랐다.비록 그녀가 쌍둥이를 임신해서 딸을 낳을 확률이 아주 컸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두 아들을 낳는 것도 가능했다.“아이가 공주님이었으면 하시나 봐요.”여자아이의 옷은 남자아이에 비해 좀 정교했다. 부드러운 레이스, 리본, 예쁜 공주치마.도윤은 지아가 만약 그녀와 똑같이 생긴 딸을 낳으면 자신이 얼마나 기뻐할지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작고 부드러운 아이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
지아는 물 한 잔을 건네며 시언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스파이가 누구라는 거예요?” “방금 떠난 사람은 소지훈이에요. 지금은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인데, 우리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이고, 얼마 전에 죽은 소명담의 동생이기도 하죠.” “그동안 큰형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모두 한 핏줄이고, 소씨 가문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가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누가 감히 가족이 자기 가문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생각했겠어요?”“그런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저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거라고요.” 지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르신은 왜 편애하셨던 걸까요?” “원래 황제는 장남을 사랑하는 법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번째 아이여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각별히 아끼셨어요. 어쩌면 과도한 애정을 쏟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손자들인 저와 형제들에게도 각별히 대해주셨어요. 사촌들과 다툴 때마다 늘 우리 편을 드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작은 편애가 쌓여 그 사람들의 원한이 된 거예요.” 지아가 시언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읽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저 사람이 소씨 가문을 해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왜죠?”“세상에 자기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10년, 20년을 준비했잖아요. 저 사람보다 더 차분하고 계획적인 사람일 거예요. 소지훈 씨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꾸몄을 리 없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지아의 표정은 여전히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된 거예요. 판은 이미 시작되었고요.” 지아의 위로에 시언의 감정도 점차 안정되었다. “대체 우리 큰형과 무슨 계획을 꾸미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시언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인 소지훈이 서 있었다.몇 년 사이, 예전의 어린 철부지는 이제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로 떠올라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 얽힌 사연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언은 1년의 세월을 들여 목각으로 ‘행려풍속도’를 복원했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것은 방대한 작업을 간신히 완성했을 무렵이었다. 그것은 바로 시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소지훈이 고용인이 없는 틈을 타 정신없이 놀다가 실수로 작품을 망가뜨린 것.이는 대회 출품을 목표로 하던 시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는 동생을 가차 없이 혼내며 매질하고 말았다.두 사람 모두 소영수 내외의 후손들이지만, 둘째 집과 셋째 집은 어릴 적부터 소영수가 장남을 더 편애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까지도 소영수에 눈에 들지 못하고, 늘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가문의 중심인 소영수는 이 일에 분노하며 소지훈의 손바닥을 피가 날 정도로 때린 뒤, 그를 사당에 무릎 꿇게 하며 삼 일 밤낮으로 벌을 주었다. 이 사건은 어린 소지훈의 마음에 깊은 원망의 씨앗을 심었다. 이후 시언이 이성을 되찾고 사과했지만, 소지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가문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았지만, 유독 첫째인 소임호와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불운한 이는 넷째였다. 그는 심예지와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지만 버림받았고, 그로 인해 사랑에 상처받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자손마저 두지 못했다. 시언이 소지훈의 눈에 담긴 냉소를 보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똑똑히 말씀하셨을 텐데? 소씨 가문은 흥망을 같이해야 한다고. 소씨 가문이 이렇게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소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시언의 옷깃을 잡았다.“그거 알아요? 나는 당신 집안이 너무 싫어요. 항상 체면을 차리려는 모습은 역겨울 정도라고요.”“허, 할아버지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당신들만 그렇게 아낀 거예요? 우리도 분명 소씨 가문 사람이었는데... 지금이라
도윤은 음윤한 심장후에 비해 훨씬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해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을 때는 대비가 확연했다.한 사람은 강인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럽고 우아한 매력을 가진 극과 극의 존재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도윤은 시선으로 심장후를 가볍게 스치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제 약혼녀인 소시월입니다.”심장후가 소개했다.“반갑습니다.”도윤의 시선이 닿는 소시월의 얼굴에는 지아와 약간 닮은 점이 있었다. 그 순간, 시월의 눈동자에 긴장이 스쳤고,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그렇습니까?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거죠?”도윤의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그 속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위엄과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도윤은 소시월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소시월은 마음을 다잡고 답했다.“이 대표님께서 비즈니스계에서 쌓으신 명성은 제가 Z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번 기회를 통해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비즈니스에 있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한 가족이 될 텐데,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시월의 답변은 빈틈이 없었고, 흠잡을 곳도 없었다.“좋습니다.”도윤은 시선을 돌리고 심규철과 함께 다른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소시월은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을 그제야 풀었지만, 찰나의 눈 맞춤에도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눈빛이 정말 무서웠어. 한 번이라도 나를 더 쳐다봤다면 숨통이 막혔을 것 같다니까?’‘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카리스마 넘쳤어.’“괜찮아?”심장후가 소시월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소시월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괜찮아, 손님들이 또 많이 온 것 같던데, 나 먼저 가볼게.”“너무 무리하지는 마.” 소영수는 장례식은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