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 고개를 살짝 돌려 지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왜요? 소 선생님은 외동이신가요?” “저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졌어요. 하지만 스승님께서 저를 거두어주셨고, 귀하게 키워주셨죠. 하지만 혼자 계신 분이라 다른 형제나 자매는 없었어요. 아가씨 댁처럼 북적이는 분위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삶이었죠.” 지아는 인내심을 가지고 시월과 한참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시월의 전화가 울렸다.일과 관련된 전화였고,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언은 지아를 감시하는 것처럼 일부러 남아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는 무무와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시언은 드레스 디자인을 하던 중, 자수를 어떻게 넣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지아는 약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언은 멀지 않은 곳에서 디자인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무무는 그가 한참을 끙끙대는 것을 보더니 슬며시 다가가 그의 작업을 살폈다. 그러고는 곧 무언가를 떠올린 듯 종이와 연필을 집어 들었다. 이 모습을 곁눈질로 힐끔 본 시언은 어린아이가 낙서하는 것쯤으로 여기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30분 후, 색까지 채워진 디자인 초안이 눈앞에 놓이자, 시언은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듯했다. 그는 그림에 담긴 금실 자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순간, 막혔던 머리가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금실 자수를 사용할 생각을 못 했지? 화려하면서도 우아해. 디자인 주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고!” 무무를 바라보는 시언의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꼬맹아, 네가 금실 자수를 알아? 게다가 그림도 그릴 줄 안다고?” 무무는 그저 옆에서 지켜봤을 뿐인데도, 시언의 디자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자수 도안을 만들어냈다. 이는 아이의 그림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무무가 손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하자, 시언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지아가 대신 설명했다.“무무가 살던 마을에서는 금실 자수가 일반적이었어요. 집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 드리워진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그들의 눈에는 어떠한 빛도 없고, 세상의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보곤 한다.하지만 지아는 시하의 다리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문부터 열게 해야겠어.’침을 놓으며, 지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족분들이 정말 도련님을 짐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도련님의 곁에 남아 있겠어요? 가족분들은 언제나 도련님을 받아들이고, 도련님의 존재를 품어주는 항구 같은 존재예요.”“시영 아가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던데, 그때 심정이 어떠셨어요? 도련님께서 세상을 떠나신다면, 가족분들은 그때 도련님이 느끼신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겠어요?” “이 세상이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도련님은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어요. 도련님처럼 젊고 강한 사람이, 죽음이 아닌 삶을 두려워한다는 게 말이 돼요?” 시하는 창밖에 흔들리는 잔디밭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낮게 중얼거렸다.“맞아요,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뭐가 두렵겠어요? 단지...” 그는 손을 펴며 흐릿한 눈빛으로 말했다.“단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 수가 없잖아요. 소 선생님, 새벽부터 아침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는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저는 약에 휘둘려 산송장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런 삶은 단 1초도 버틸 수 없다고요.” 아니나 다를까, 지아의 예상이 맞았다.여자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시하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을지언정, 시간은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 흉터로 남게 했다.물론 그 흉터를 떠올릴 때마다 아픔은 느낄 수 있겠지만, 이미 몇 년이 지난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하를 진짜로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불면증이었다. 게다가 그는 매일 약을 먹는 것을 거부했기에 이런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지아는 정신 질환에 대한 전문
남자는 몸을 숙여 여자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거울 속에는 서로 뒤엉킨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쳤다.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소씨 가문의 여섯째 아가씨, 소시월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선 평소에 보여주던 단정하고 우아한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시월은 남자의 애정 어린 손길에도 휘말리지 않고, 되려 냉담한 시선으로 자신을 탐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시월의 머릿속엔 온통 지아의 평범해 보이는 얼굴만이 가득했다.‘그 여자... 정말 의심스럽단 말이지.’ ‘과거나 출신을 전혀 알아낼 수 없었어.’‘게다가... 아무리 겸손한 게 미덕이라지만, 그 여자는 지나치게 스스로를 폄하하고 있어.’ ‘소시하는 아주 심각한 상황인데, 어떻게 그런 의사를 찾게 된 걸까?’‘대체 누가 데려온 사람이냐고!’ 시월은 지아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지만, 끝내 유용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이것은 분명히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 ‘소씨 가문 내부에서 누군가 이미 조사를 시작했을 가능성이 커.’ 바로 그때, 남자가 시월의 귓불을 세게 깨물며 말했다.“이런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하다니. 대체 누굴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그를 밀쳐내며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집어 들었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재미없어.”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시월을 다시 품 안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도대체 왜 그래? 소시하한테 다녀온 뒤로 표정이 너무 어둡잖아. 대체 누가 널 화나게 한 거야?” 화장대로 다가간 시월이 서랍에서 여성용 담배 한 갑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불을 붙였다. 가늘고 늘씬한 몸매, 담배를 문 채 반쯤 감긴 눈, 차가우면서도 당당한 분위기.그녀는 마치 밤에 피어난 검붉은 장미와 같았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다재다능하고 매사에 능숙한 ‘시월 아가씨’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소시하한테 새로운 의사가 왔어.” “그냥 의사일 뿐이잖아. 그동안 소씨 가문에서 부른 의사가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서 그래?”
밤이 깊어지기 전에, 이화천은 예전에 시하가 먹던 약들을 가져왔다. “소 선생님, 도련님이 평소에 드시던 약입니다.” 지아는 약의 성분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평범한 신경과 약물들이었고,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혹시라도 지시할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도련님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소 선생님은 저희 가문의 은인이 되실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화천이 떠난 후, 지아는 멀찍이 서 있던 두 사람을 손짓해 불렀다. 원봉과 원설은 도윤이 그녀를 위해 특별히 고용한 경호원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손짓 하나에 순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소 선생님.” 지아가 약을 원봉에게 건네며 말했다.“약 성분을 좀 분석해 주시겠어요?” “예, 알겠습니다.”이 일을 마친 후, 지아는 걸음을 옮겨 시언의 임시 작업실로 들어갔다. 방안은 대낮처럼 밝았고, 곳곳에는 모델링 인형과 다양한 디자인 스케치, 팔레트, 바느질 도구, 가위 같은 것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바닥에는 한 명의 남자와 어린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시언은 방금 자신이 수놓은 자수를 들고 있었다.“이렇게 하면 좀 나아질까?”그들 옆에는 여러 개의 자수 견본이 놓여 있었다. 보아하니, 그날 오후 내내 바빴던 것 같았다. 지아의 시선이 시언의 진지한 표정에 머물렀다.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자신을 잊을 정도로 몰입한다고 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디자인만 있다는 것을 방 안의 광경이 증명하는 듯했다. 지아가 들어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득, 지아의 머릿속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소 선생님과 시하 도련님, 심지어 소시영까지 크고 작은 상처를 입거나 죽음을 맞이했는데, 왜 소시월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걸까?’ ‘설마 소시월이 소씨 가문의 사업에 관심이 없어서 운 좋게 무사했던 걸까?’ 소씨 가문은 항공 산업 외에도 의료와 보험 분야에서 Z국
지아는 전력을 해서 시하를 치료하고, 동시에 비밀스럽게 독소의 출처를 찾으려 했다. 이른 아침, 지아는 일어나자마자 아직 작업 중인 시언을 발견했다. 길고 가는 손가락에 연필을 쥔 채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던 그는, 때로는 여분의 천에 자수를 연습하며 열중하고 있었다. “혹시 밤새 한숨도 못 주무셨나요?” 시언은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듯 고개를 들었다. 창밖을 보니, 마침 해가 떠오르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벌써 날이 밝았네요.”시언은 작업을 시작하면 완전히 미쳐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지아는 그에게서 자신의 스승과 같은 모습을 떠올렸다. 한 사람은 의학 연구를 위해, 또 다른 한 사람은 디자인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 지아는 한때 시언을 의심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시언은 가족 중 무사한 생존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디자인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형제자매를 계산적으로 해치기 위한 복잡한 음모를 꾸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남, 차남, 삼남, 그리고 다섯째 아가씨를 제외하고 나니, 남은 건 넷째와 여섯째뿐이었다. 하지만 넷째는 지나치게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심지어 자료에도 몇 줄 정도의 언급만 있을 뿐, 그의 존재는 신비로 가득했다. 한편, 다른 갈래의 친척들은 동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수년에 걸쳐 이런 치밀한 계획을 실행할 만한 조건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드물어 보였다. 지아는 자신이 서스펜스 드라마 속에 빠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렇게 밤을 새우는 건 건강에 치명적이에요.” “어쩔 수 없습니다. 대형 패션쇼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이 작품들은 모두 대회에 올릴 것들이라서 대충 할 수가 없어요.” 시언은 소씨 가문의 도련님으로 태어나 무한한 부를 가졌지만, 소씨 가문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통해 독립적으로 성공을 이루었다. 그의 진지한 태도는 지아조차 감탄하게 했다. “그럼 더 이상 작품활동을 방해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건강도 신경 쓰세요.” 지아는
결과는 명백했다. 시월은 약재에서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아가 말한 대로, 시하의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시월은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큰오빠는 어디 있는지는 알아냈어요?”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희망봉에 있다가 모잠비크로 이동하셨죠. 아마 가망이 없으니, 죽기 전에 풍경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떠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시월이 섬세한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뭔가 이상해요. 정말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집에 머물면서 본인 일이나 자산을 정리했을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걸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여행은 눈속임이고, 실제로는 어딘가에서 치료받고 있는 거 아닐까요?” 상대는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아가씨도 의학에 대해서 잘 아시겠지만, 지금 도련님의 상태로는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와도 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요즘 들어 불안한 느낌이 가시질 않아서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요.”“내일 출장 가야 하니, 셋째 오빠를 좀 감시해 주세요. 자세한 건 다녀와서 이야기하시죠.”수년간 치밀하게 준비해 온 시월은 여기까지 오는 데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누군가가 그것을 망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하물며 그 사람이 평범한 의사일지라도 말이다. 지아는 별장에서 일주일을 머물렀고, 그 사이 시하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소 선생님, 정말 신의 손을 가지셨네요. 예전에는 몸이 피곤해도 잠이 안 와서 고생했는데, 요즘은 몸이 가볍고 편안해졌어요. 약 효과가 정말 대단하더군요.”지아는 그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피로는 만성 독이 장기의 곳곳을 서서히 잠식하면서 생긴 증상이었다. 물론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장기를 점차 마비시키고, 부담을 더하여 몸을 지치게 만드는 독이었으니 말이다. “과찬이세요. 하지만 아직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몇 달 동안의 치료가 더 필요하니까요.”
시하의 말을 들은 시월은 잠시 멍하니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녀의 짧은 멈칫은 지아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하지만 1초 뒤, 시월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생각하다니 정말 다행이야. 앞으로는 절대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마.” “지난번에는 정말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어.” “걱정하지 마. 이젠 오빠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어. 더는 그런 바보 같은 짓 안 할 거야.”“소 선생님, 제가 역시 사람을 잘 보는 것 같아요. 오빠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불과 일주일 만에 이런 변화를 끌어내셨으니까요!” “저는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도련님이 이렇게 좋아지신 건, 가족 여러분이 곁에서 힘이 되어 주신 덕분이고, 저는 그저 보조에 불과했을 뿐이에요.” “정말 변함없이 겸손하시네요.” 그 순간, 지아는 시월의 눈빛이 의미심장한 기색을 담고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시월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무무는 거의 지아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의 초록빛 눈동자는 은밀히 시월을 경계하고 있었다. 무무는 시월이 떠난 후에야 경계를 풀었다. 지아는 발코니에 서서 시월의 차가 별장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음날은 강세라의 기일이었다. 시하는 아무런 입맛도 없는 듯 오리바비큐를 한쪽에 밀어두었다. “소 선생님, 내일은 치료를 쉬고 싶어요. 고인을 추모하러 가야 하거든요.” 지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음 날은 시하가 교통사고를 당한 날이었다. 바로 그날, 그의 여자 친구가 응급 치료에 실패하여 세상을 떠나지 않았는가. ‘여자 친구의 묘에 가려는 건가 봐.’ 하지만 시하를 해치려는 배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지아가 제안했다.“치료는 가능하면 중단하지 않는 게 좋아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동행해도 될까요?” 그녀는 맡은 치료를 위한 명문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배후의 인물이 그 틈을 노릴까 걱정되었다. 얼마 전, 지아는 원봉에게 고용인의 배경을 조사하라고 지시했었다. 그 고용인은
지아는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농가들을 바라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녀가 이화천에게 물었다.“세라 씨는 가족이 없었나요?”“고향에 묻힌 거라면 가족들이 많이 올 것 같은데, 기일인데도 성묘나 헌화 같은 흔적이 전혀 보이질 않네요. 게다가 시하 도련님 같은 신분이라면,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세라 씨의 가족분들이 한 번쯤은 찾아왔어야 하지 않나요?” 시하가 도착한 지 벌써 30분가량이 흘렀다. 시골 마을처럼 작은 곳에서 이런 일은 금세 소문이 날 법했다. 이화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세라 아가씨도 참 불운한 사람입니다. 겨우 이 산골에서 벗어나 빛나는 미래를 얻으려던 찰나,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게다가 아가씨의 부모님은 딸의 죽음을 듣고 급히 시신을 수습하러 오다가, 아가씨의 남동생이 과속하는 바람에 가족 모두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어요. 정말 비참한 일이었죠...” “가족이 다 죽었다고요?”이화천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게다가 세라 아가씨의 형님은 임신 중이어서 집에서 안정을 취하느라 화를 피할 수 있었지만, 가족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놀란 나머지 바로 유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는 돌봐줄 사람이 없었고, 전화마저 끊겨 골든타임을 놓치셨죠. 후에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됐을 때는 그분과 배 속의 쌍둥이까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참으로 가엾은 일이죠.”듣기만 해도 끔찍한 비극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게 그럴싸하지만, 정말 모든 일이 우연이었을까?’ 세라는 시하의 사고 소식을 듣고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가족들은 그녀의 시신을 수습하려다 사고를 당했다. 게다가 형수마저 유산으로 생명을 잃었다.‘만약 누군가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라면? 정말 잔혹한 사람이잖아!’ 지아가 다시 물었다.“이 집사님,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요. 시하 도련님과 강세라 씨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잖아요. 그런데 세라 씨는 왜 갑자기 도련님과 헤어지고 외국으
시하는 시언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했다.“나도 잘못이 있어. 그동안 책임은커녕 모두에게 짐이 되었으니까.” “그만 좀 하세요!”지아가 탁자를 치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지금은 서로에게 사과할 때가 아니에요. 여러분이 이럴수록 심세호를 기쁘게 할 뿐이라고요. 아직 비행기 사고로 대표님의 사망을 확정할 수는 없어요.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요.” 지아는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내가 소씨 가문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여러분은 최악의 상황도 대비해야 해요. 만약 대표님께서 정말 돌아가셨다면, 여러분이 아들로서 소씨 가문을 지켜내야 한다고요. 가족을 슬프게 하고, 원수를 기쁘게 만드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사모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찾아내는 일이에요. 사모님은 최대한 빨리 눈을 치료해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회복이 불가능해질 거예요!” “게다가 소 대표님은 해외 사업을 접고 귀국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해요. 나라에는 왕이 하루도 없어선 안 되는 법이잖아요. 이런 상태라면, 소씨 가문은 곧 무너지고 말 거라고요!” 이어서 지아는 시언에게 조언했다.“건강을 반드시 회복하셔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아지셔야 가족 모두가 안정을 찾고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지아는 몇 마디로 어지러운 상황을 안정시켰다. 함께한 시간이 길지 않았고, 나이도 그들보다 어렸지만, 그녀의 말에는 이상할 정도의 신뢰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맞습니다. 우리는 절대 무너지면 안 돼요. 소 선생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지아가 시후를 부축해 앉혔는데, 사실 지아가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바로 소시후였다. 시후는 지아 다음으로 성공한 실험체였지만, 신장병은 여전히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고, 예전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 더 높아졌을 뿐이었다. 시후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 있었기에, 지아는 그가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지아는 이런 걱정을 안고 시후를 부드럽게
지금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은 소식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그 말이 전해지자 모두의 눈가가 떨리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장 집사님, 장 집사님은 집안의 어른이시잖아요. 어쩜 그렇게 경솔할 수 있으세요?” 지아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아는 처음 소씨 가문에 왔을 때 자신을 맞이하던 장덕수의 침착함과 신중함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당황하며 문턱에서 넘어질 정도로 급하게 들어왔다는 갓은, 사건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장 집사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시월이 다급히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장덕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께서 탑승하신 개인 비행기가... 비행 중에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비행기가... 폭발했다고요!” “뭐, 뭐라고요?!”시월은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월아!”시후는 곧장 시월을 안아 들었는데, 이는 혼란스러운 소씨 가문이 더욱 큰 혼란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지아는 빠르게 다가가 시월의 상태를 살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는 단지 충격으로 실시하신 것뿐이에요. 잠시 쉬면 곧 깨어나실 거예요.” “누가 월이 좀 방으로 옮겨주세요! 휴식이 필요합니다!” “예, 도련님!”고용인이 시월을 방으로 데려가자, 거실에 남은 사람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참혹해졌다. 시후는 아직 치료받지 않아 병약한 얼굴로 서 있었고, 시언은 수술을 막 끝낸 상태에서 시하와 마찬가지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시월은 너무 놀라 혼절하기까지.“형, 아버지는...”가장 강인하던 시언의 눈시울조차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장남인 시후였다. 그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누구보다 힘들었지만 지금은 더욱 강한 척해야만 했다. “괜찮을 거야. 단지 비행기 사고일 뿐이야. 기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시하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휠체어를 세게 내리쳤는데, 그의 눈가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분명 심세호가 한 짓이야! 사랑이 증오로 변한
다행히 지금은 60년 전처럼 정보가 부족한 시대가 아니어서, 원하기만 하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조경숙은 조씨 가문 출신으로, 이름 높은 명문가 자제였다.집안에는 여섯 명의 오빠가 있었고, 조경숙은 유일한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즉, 집안의 보석 같은 존재로, 아름다운 외모와 온화한 성품을 겸비한 인물이 된 것이었다.조경숙은 성인이 되기 전부터 이미 여러 집안에서 혼인을 청했고, 심지어 해외의 명문가들도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조경숙의 수많은 구혼자 중에서도 한 사람만이 유독 특별했다.그 시절 조경숙을 쫓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호들이었기에, 단순히 재산만으로는 그들의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하지만 그중 한 명은 천재 발명가로 불리며, 동시에 뛰어난 의술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었다. 그의 사랑은 그야말로 뜨겁고 격렬했으며, 조경숙을 얻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조경숙이 소임호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음에도, 그는 결코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임호가 무슨 방법을 썼는지, 그 천재 발명가는 갑작스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의학 미치광이의 소개서를 읽은 지아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지아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천하의 악당 같은 의학 천재는 루이스가 길러낸 첫 번째 제자였는데, 이미 사제 관계가 파탄 나긴 했으나, 지아는 그를 ‘선배’라고 불러야 했다. ‘이미 파문되었다던 그 사람이 사모님과 그렇게 깊은 연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래서 그 사람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피부에서 별다른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던 거구나.’그의 나이를 추정하면 이미 50세가 되었을 것이었다.얼굴은 가면으로 감출 수 있겠지만, 몸은 속일 수 없지 않겠는가?그 사람의 피부는 마치 20대나 30대처럼 매끄럽고 탱탱해, 지아는 그가 소명담이 아닐 거라고 의심하지 못했다. 루이스 역시 젊음을
조경숙이 갑자기 납치되면서 소씨 가문의 안팎은 큰 혼란에 빠졌다. 심지어 병상에 누워 있던 시언조차 몸을 일으키려 애썼으니 말이다. 시후는 곧장 소명담의 본가로 향했다.‘사람은 도망칠 수 있어도 근거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지.’ 하지만 소명담을 잡기도 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한편, 지아는 무무의 머리를 땋고 있었는데, 아이의 머릿결은 매끄럽고 윤기가 흘러, 까만 머리카락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도윤은 모녀의 곁에서 작은 수납 상자를 들고 서 있었고, 상자 안에는 아이들의 머리끈과 머리핀들이 가득했다. 도윤이 초록색 리본 모양의 머리핀을 건넸다.“이걸로 하자. 초록색이 예쁘잖아.” 지아는 그것을 받아 무무의 머리를 묶어주었고,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우리 딸, 정말 예쁘다.”무무의 초록색 눈동자에 웃음기가 만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한 손으로 지아를, 다른 손으로 도윤을 잡고 아주 행복해했다. 바로 이때, 진봉이 급히 들어왔다.“사모님, 나쁜 소식입니다!” 지아는 대충 짐작이 갔다.“소명담이 도망친 거야?” 이는 지아도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소명담이 그렇게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일을 소씨 가문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요, 죽었습니다.”지아가 빗을 들고 있던 손을 멈추며 물었다.“뭐라고? 죽었다고?” 이것은 지아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말도 안 돼!’“그게 말이 돼? 설마... 그 사람 뒤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걸까?” 지아는 과거 자신과 대면했던 소명담을 떠올렸다.‘그 사람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어.’‘그런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고?’ 그때 진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제가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진봉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 같네요.”“소명담은 죽은 게 맞습니다만, 죽은 지는 이미 수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본 소명담은 누군가가 변장했던 거야?” 지
아무도 소시월의 입가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를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옆에서 조용히 관찰하던 지아는 시월의 표정을 정확히 포착했다. 시월은 마치 자기 행동을 들킨 것처럼 고개를 돌려 지아와 눈을 마주쳤다. 곧이어 시월은 다시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소 선생님,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지아가 침착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아가씨께서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한 번 더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시월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지아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소 선생님, 오랫동안 고생하셨으니 잠시 옆 방에서 쉬는 게 어떠세요? 여긴 우리가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지아는 은근히 자기 손목을 향하는 시월의 시선을 감지했다.그 손목은 몇 년 전 도윤의 총에 맞았던 곳이었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피부가 정말 하얗고 매끄러우시네요. 정말 부러워요. 평소엔 어떻게 관리하세요?” 지아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사모님께서 갑자기 사라지셨는데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으시네요? 평소에 가족에게 효심이 지극하신 분이, 왜 이런 일엔 관심이 적으신 거죠?” 지아의 말은 정확히 급소를 찔렀고, 시월은 당황한 듯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우리 소씨 가문에 이렇게 많은 일이 연달아 터지는데, 제가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저 지금은 제가 조급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래서 오빠들을 도와 손님들을 챙기려 했던 거라고요.”“그런데 소 선생님께서 갑자기 저를 의심하는 듯한 질문을 하시니까 조금 속상하네요.” 두 사람은 몇 번의 수를 주고받았지만, 어느 쪽도 명확한 단서를 잡지 못했다.시월은 지아의 정체를 의심했다. 그녀는 지아의 손목에 총상 흉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지아는 매끈한 손목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혀 총알 자국이 없었다. 지아 역시 시월에게서 의심스러운 점을 느꼈다.하지만 모든 증거가 소명담을 가리키고 있었고, 시월과는 아무런 관련이
“세라야,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해줘.”시하가 부드럽게 설득했다. 시하와 강세라의 대화는 다른 방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시하 오빠의 미남계가 통한 모양이네요.” 시후는 책상을 세게 내리치며 분노했다.“역시 그 자식일 줄 알았어! 망할 자식 같으니라고!” 지아는 마음 한편이 실망스러웠다. 지아는 모든 일이 시월과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 순간, 양지운이 검사 결과를 들고 들어왔다. “소 선생님, 사모님께서 사용하시는 화장품과 약물을 검사했는데, 매일 사용하시는 안약에서 추가적인 약물이 발견됐습니다. 그 약물은 정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시력을 저하시켜 실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나쁜 새X!” 시후가 분노하며 벌떡 일어섰다.“드디어 증거를 잡았어! 양 비서, 당장 그 자식을 붙잡아! 우리 소씨 가문을 이렇게 망쳐놓다니, 여태까지의 모든 대가를 치르게 해주자고!”“예!”시하가 시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형, 너무 화내지 마. 화내다 몸 상하면 안 되잖아. 이제 그 능구렁이를 잡았으니, 나도 안심이야.”지아는 옆에서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았다.“지아야, 왜 아직도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 모든 게 네 계획대로 되고 있잖아. 혹시 뭔가 잘못된 거라도 있어?” 지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모든 게 계획대로라는 게 오히려 마음에 걸려요. 너무 순조롭잖아요.” “순조로운 게 어때서?” “그냥 좀 불안해요. 물론 제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요.”“이제 원인을 찾았으니, 사모님께선 약물을 끊은 후에 제대로 진찰받고 휴식까지 취하시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좋아, 나는 이 좋은 소식을 시언이한테 알려야겠어.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도록 말이야.”“저도 같이 갈게요.” 지아는 곧 동이 트려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모든 일이 해결되었으니, 남은 일은 소 선생님께 맡기면 될 거야.’ 하지만 그때 불길한 소식이 전해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양지운이 급히
강세라의 얼굴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왜 안 된다는 거야?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말해줘. 내가 전부 해결해 줄게.” 시하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에겐 아마 아이도 있었을 거야. 네가 그랬잖아, 너 닮은 아들이랑 나 닮은 딸 하나씩 낳고 오순도순 살자고. 세라야, 시간을 더 낭비하려는 건 아니지?” 강세라가 머뭇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미 큰 금기를 어겼어. 나는 한낱 바둑돌일 뿐인데, 바둑돌은 임무 대상에게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되는 법이잖아. 하지만 나는 이제 시하 씨의 따스함을 외면할 수가 없어.’ 강세라는 이미 시하를 해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수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단 하루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으며, 시하에 대한 사랑 또한 포기할 수 없었다.“세라야, 두려워하지 마. 네 배후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반드시 널 지켜줄 거야.” 강세라는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어 말했다.“하지만 내 가족이 아직 그 사람들의 손에 있어요. 내가 입을 열면, 내 가족들이 죽을 거라고요! 내 조카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에요. 이제야 인생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강세라는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가족이 위협받는 바람에, 나는 그동안 당신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원망스럽다면 내 목숨을 가져가도 좋아요. 나는 절대로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세라야, 소 선생님을 암살하려던 건 이미 실패했어. 우리가 너를 잡았다는 소식도 벌써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아. 네가 말하지 않아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야.” 강세라는 그제야 눈을 크게 떴고, 시하의 손목을 꽉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시하 씨, 나는...” “지금은 나를 믿어야 해. 나만이 진심으로 너를 도우려는 사람이니까. 가족이 걱정되는 거라면 안심해도 돼. 나는 이미 삼 일 전부터 네 가족들의 행방을 알아냈고, 사람을 보내 보호하고 있었어. 믿기 어렵다면 지금 바로 전화해서 확인해
직접 마주한 이 순간, 지아의 말이 진실임이 입증되었다. 처음부터 강세라가 그에게 접근한 이유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시하가 강세라의 입에 물린 천을 제거하자, 강세라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며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미안해요.”강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을 속였어요.” 시하는 강세라를 와락 끌어안았다.“세라야,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네가 살아 있다니 정말 다행이야.” 강세라는 시하가 진실을 알게 된 후 분노할 줄 알았지만, 그는 그녀를 꼭 안으며 뜨거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시하 씨, 당신을 속였는데도 날 원망하지 않는 거예요?” “원망해,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 하지만 네가 살아 있는 것에 비하면 그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야. 너도 알지? 난 수년 동안 밤낮으로 신께 기도했어. 왜 죽은 사람이 내가 아니고 너였어야 했냐고. 너만 살아 있다면 나는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고.” 시하는 곧장 강세라의 손발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강세라는 아직도 자신이 꿈을 꾸는 것 같았다.“그럼 소 선생님과는...” “소 선생님은 네가 살아 있다는 걸 내게 알려준 사람이야. 그때의 나는 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기회가 없어서 소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 이런 연극을 꾸몄던 거야.”“세라야, 내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랑한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 내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 없었어.” 세라의 몸을 묶고 있던 줄이 모두 풀리자, 두 사람은 재회한 기쁨에 망설임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알아요,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미안해요, 시하 씨, 내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거예요.” “세라야, 다시 나한테 돌아와 줄래? 난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 “나는...”강세라는 머뭇거리며 지난날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시하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리를 다쳐서 싫어진 거야?” “아니에요!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강세라가 시하의
“도윤 씨, 당신이랑 함께 떠날게. 하지만 강세라의 일을 마무리할 시간을 줘. 그 여자의 일이 끝나는 대로 떠나자, 응? 그리고 사모님의 눈 치료도 약속했단 말이야. 더 지체되면 사모님은 정말 시력을 잃게 될지도 몰라.” “지아야, 네가 의술에 뛰어난 건 알겠지만, 세상에는 너만큼 뛰어난 의사도 많아. 내가 두려운 건 네가 더 깊이 관여하다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거야... 여긴 A시가 아니야. 일이 더 크게 번지면 나도 널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 지아는 도윤의 단호한 결심을 느끼고 간절히 부탁했다.“3일, 3일만 더 있으면 안 될까?” 도윤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딱 3일이야. 3일 후에는 나랑 집으로 가야 해, 알았지?”두 사람은 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 지아에겐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강세라는 그들 뒤에 숨어 있는 진범을 잡을 중요한 열쇠였다. ‘강세라가 모든 걸 털어놓기만 하면, 삼 일도 걸리지 않아 모든 미스터리가 풀릴 거야.’ 지아는 이 소식을 소씨 가문 사람들에게 알렸고, 소식을 접한 시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잡았어? 나도 곧 갈게.][맞다, 지아야, 네가 말한 대로 어머니께서 최근에 사용하신 약과 화장품 샘플을 검사에 맡겼어. 곧 결과가 나올 거야.]“좋아요.”지아는 이 소식을 시하에게도 전하며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시하는 멍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진 듯했다. 시하는 수년 동안 강세라의 죽음에 얽매여 살아왔다. 이전에 지아가 강세라가 살아있을 가능성과 그 의도를 추측했을 때도, 그것은 단지 말뿐인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강세라가 실제로 잡혔다는 사실 앞에서, 시하의 마음은 복잡해졌다.강세라가 단순히 죽음에서 돌아온 것이라면 시하는 기뻤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증거는 강세라가 소씨 가문을 공격하는 계획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강세라를 향한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시하는 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