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났다. 만약 지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면, 도윤은 이미 마음을 접었을 것이었다.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고, 도윤이 지아에게 선물한 목걸이조차 바다에서 인양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단 하나의 실마리도 남기지 않았다는 건, 이 모든 게 철저히 계획된 일이라는 걸 의미해. 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인 걸까?’ 도윤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곧 설날이네.” 무무는 양손을 바닥에 짚고 발끝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설은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했는데... 지금쯤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한편, 설날이 가까워질수록 섬에 있던 지아는 점점 더 바빠졌다.며칠 전, 그녀는 섬에 있던 사람들에게 한지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한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붓을 들자 매끄럽게 흘려진 글씨가 종이 위에 생동감 있게 살아났다. ‘행복 가득한 집, 가족 모두 건강하길.’지아는 설날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복조리를 문 앞에 달기도 했다. 마치 혼자서도 설날 분위기를 내려는 듯했다.심지어 지아를 감시하던 사람들도 그녀의 부탁을 받아 섬 곳곳에 작은 복조리 장식을 걸어주었다. 그 덕에 섬은 마치 오색 비단옷을 입은 듯 아름답게 빛났다. 섣달그믐 밤.한대경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풍성한 음식 냄새를 맡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아가 오늘 밤 만두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돼지고기는 오늘 아침에 신선하게 공수되었고, 채소는 섬에서 직접 뽑았다. 파조차도 뒤뜰에서 갓 딴 것이었다. 비록 아무도 지아와 말을 섞을 수 없었지만, 모두가 자발적으로 그녀를 도왔다. 지아는 섬에서 함께 지내는 모든 사람을 위해 넉넉히 준비했다.‘설날에 집에도 가지 못하고 나를 지켜야 하다니, 모두 너무 안쓰러워.’ 주방에서는 반죽하다가 얼굴에 밀가루를 묻힌 지아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얇은 셔츠 아래로 능숙하고 빠른 손놀림이 이어졌다. 평소의 고고한 모습과는 달리, 평범한 주부처럼 정겹고
A시의 부씨 가문 저택.도윤은 원래 올해 설을 아이들과 함께, 과거 자신과 지아가 살던 신혼집에서 보낼 계획이었다.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지아가 사라지면서, 그는 아이들 모두를 부씨 가문 저택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부씨 가문 저택은 온통 화려한 장식으로 설맞이 준비를 마쳤지만, 그 분위기는 그야말로 적막함 그 자체였다.부남진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고, 민연주 역시 하루 종일 한숨만 내쉬었다. 화연은 말없이 마음속으로 지아를 위해 기도했다.‘지아야... 무사히 위기를 극복하고, 건강히 돌아와 줘.’식탁에는 푸짐한 음식이 가득 차 있었지만, 아무도 젓가락을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아주 무거웠다.부남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먹자. 배고프면 안 되잖니.”그가 아이들에게 직접 반찬을 집어 주자, 지윤이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감사합니다, 증조할아버지.” 쌍둥이 남매는 눈물을 머금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엄마...” 도윤이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먹자.” 짧은 보름 동안, 도윤의 몸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야위었고, 눈썹과 이마에는 지울 수 없는 피로가 묻어나 있었다. 그는 A시로 돌아왔지만, 수색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지아의 소지품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지아가 살아 있다면,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섣달그믐날 밤, 온 가족이 모여야 할 시간, 지아도 분명히 집이 그리울 것이었다.식사 자리에는 그저 그릇과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렸다. 웃음소리나 대화는 조금도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 부남진은 준비해 둔 세뱃돈을 하나씩 후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부장경이 시큰둥하게 말했다.“아버지, 저도 이제 서른이 넘었어요. 세뱃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네가 서른이 넘은 건 나도 알아. 그런데 아직도 며느리를 데려오지 못했잖니?”“기어코 나를 화나게 만들 셈이냐? 결혼하지 않는 이상, 너는 아직 어린애야!” 화연이 부장경을 찡그린 표정을 언
폭죽이 하늘로 솟구치며, 눈 내리는 밤하늘에 찬란한 빛을 수놓았다.아이들은 손에 천사봉을 들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아빠, 엄마도 하늘의 불빛을 보고 빨리 집으로 돌아오겠죠?” 해경이 목이 메인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는 너희를 아주 사랑하셔. 꼭 돌아오실 거니까 울지 마.” 지윤은 뜰 안에 활짝 핀 매화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조금만 더 있으면 벚꽃이 필 거예요. 엄마는 내년 벚나무 아래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셨으니,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으실 거예요.”아이들의 얼굴을 본 도윤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하늘도 알고 있을 것이다. 도윤이 누구보다도 간절히 지아를 찾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하지만 상대는 철저히 준비되어 있었고, 모든 흔적을 완벽히 지웠다.도윤은 그저 지아가 무사히 살아 있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그 시각, 섬.지아는 만두를 다 먹었지만, 배는 채워졌어도 마음은 허전하기만 했다. 밤하늘의 별은 그녀가 섬에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오락거리였다.‘아이들은 분명 부씨 가문에서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식사를 하고 있겠지?’ 지아는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여기를 떠나고 싶어?”그 순간, 등 뒤에서 한대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나랑 결혼하겠다고 약속만 하면, 당장 이 섬을 떠나게 해줄게.” “만약 그 제안을 거절한다면, 날 여기 평생 가둘 건가?”“그게 아니면, 억지로라도 그렇게 만들겠다는 거야?” 한대경은 부드럽게 웃었다.‘소지아는 독한 약에도 면역이 있는 사람이야. 일반적인 약물로는 절대 제압할 수 없겠지.’게다가 그는 지아를 강제로 굴복시키고 싶지 않았다. 한대경이 원하는 것은 그녀의 진심뿐이었으니...“난 기다릴 거야. 물이 바위를 뚫듯, 천천히.”“하늘은 내 편이야. 나는 언젠가 네가 마음을 열 날이 올 거라 믿어.” 지아가 몸을 일으켰다.“그럼 계속 기다려.” 그녀는 해변으로 걸어가 폭죽을 터뜨렸다. 그것이 그녀만의 조촐한 설날이었다. 자정이 된 섬은
이 한마디는 평지에 벼락이 떨어진 듯한 충격이었다. 도윤은 손에 들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번쩍 고개를 들었다.“뭐? 지아는 어디에 있어?!” “카리니에 계신 것으로 확인됩니다!” 도윤은 즉각 반응했다.“카리니? 거긴 한대경이 태어난 곳인데... 젠장, 역시 그 자식이었어. 진작에 생각했어야 했는데!” 만약 지아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는 이미 비행기 승무원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그녀의 흔적을 감추고, 가짜 죽음을 꾸밀 사람은 오직 한대경뿐이었다. ‘사랑을 얻지 못한다는 이유로, 지아를 납치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려 하다니!’ “한대경은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도 충분히 벌일 수 있는 사람이죠. 보스, 지금 당장 사모님을 데리러 갑시다!” 도윤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안 돼, 한대경은 분명이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거야. 우리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순간, 그 자식은 자극받을 거라고!”“보스의 말씀이 맞습니다만, 이젠 어쩌죠?”“사모님을 그냥 놔둘 순 없잖아요. 한대경이 사모님을 다른 곳으로 옮길 가능성도 있으니까요.”“움직여야 해. 하지만 내가 직접 나설 순 없어.” 도윤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는 계속 수색 작업을 진행하는 척해야겠어. 그래야 그 자식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나뿐만 아니라, 너희도 국경을 넘으면 안 돼.”“카리니는 한대경의 영토야. 우리가 들어가면 곧바로 들키고 말 거라고.” 진봉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누구를 보내야 마음이 놓이시겠습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지아가 한대경의 손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안심이 돼. 그 자식의 성격대로라면, 긴 시간을 들여 지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 할 거야. 즉, 당분간은 지아를 해치지 않을 거란 뜻이지.” “각하께는...”“당분간 알리지 마. 눈치 보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걱정돼.” “예, 보스.”“그런데 한대경은 왜 하필
카리니.지아는 ‘카리니’라는 도시의 이름을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특히 한대경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그가 이곳 출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카리니는 상상 이상이었다. 도로 위에는 차량이 끊임없이 오갔고, 교통은 매우 편리했으며, 곳곳에 연결된 고속도로는 도시의 번영을 보여주고 있었다.하지만 도시 한쪽 구석에 있는 슬럼가에 발을 들이자, ‘양극화’가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그것은 단순한 ‘양극화’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나는 천국이고, 다른 한쪽은 지옥이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여러 도시를 다녀보았고, 난민들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곳은 처음이었다. 도시 중심부는 번화하고, 공항 시설도 국내 주요 도시들을 능가할 정도로 현대적이었다. 하지만 한쪽의 이재민들은 도시 전체가 파괴되면서 나타난 피해자들이었다. 지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이렇게 번화한 곳에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고?’‘사람은 어디까지 가난할 수 있는 걸까?’ 다른 도시의 집이 없는 사람들은 고가도로 아래에서 살기 마련이지만, 카리니에서는 가족과 함께 공동묘지에서 사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은 먼지로 가득했고, 큰 눈만이 밝게 빛났다.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경계와 낯섦이 가득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는 열 살 남짓의 아이들이 맨발에 남루한 옷을 입고 도망치고 있었다. 손에는 방금 훔쳐 온 물건이 들려 있었고, 뒤에서는 어른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쫓아가고 있었다. “저 녀석들을 죽여! 때려죽이라고!” 지아가 이 장면에 놀라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한 아이가 그녀 옆을 스치며 부딪쳤다.작은 손이 지아의 주머니를 더듬던 순간,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곧장 손을 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지아가 아이의 손을 단단히 잡으며 말했다.“돈을 훔치려던 거야? 그런데 어쩌지? 요즘 같은 세상에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차라리 내가 좋은 방
배신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배이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배이혁이 그의 시선을 느끼고 험악한 표정으로 물었다.“뭘 봐? 내 말이 틀렸어?” “형, 전에는 소 선생님이 만든 만두를 아주 좋아하지 않았어? 만두를 먹을 땐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서... 난 요즘 들어 보스가 예전보다 훨씬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된 거 아니야?” “멍청하긴. ‘억지로 딴 과일은 달지 않다’라는 말 못 들어봤어? 보스가 사랑에 빠져 약해지기라도 하면, 예전부터 보스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칼로 난도질당할 게 뻔하다고.”“소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다른 여자가 나타날 거야. 형, 보스를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하려는 건 아니지?” 한편, 지아는 한대경의 안내를 받아 낡고 허름한 건물로 들어섰다. 만약 이곳이 해안 지대였다면, 태풍에 전부 쓸려나갔을 법한 구조였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에는 여러 겹으로 겹친 광고지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올라가는 동안 각종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한대경은 한 낡은 나무문 앞에 멈춰 섰고, 입구의 작은 화분 아래에서 여분의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지아는 그를 따라 들어가며 이곳이 그의 과거를 담은 집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따뜻한 분위기의 집을 마주한 지아는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아차렸다.아주 작은 집의 바닥에는 타일도, 나무 마루도 깔려 있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소파에는 손으로 짠 듯한 뜨개질 담요가 덮여 있었다. 집 안에는 고양이 몇 마리가 있었다. 품종묘는 아니었지만, 모두 포동포동 살이 올라 건강해 보였다.창가에는 향긋한 향기를 풍기는 치자꽃이 피어 있었고, 햇빛을 받으며 활짝 미소 짓는 해바라기 화분도 보였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에는 오래된 텔레비전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깔끔한 뜨개질 덮개가 덮여 있었다. 누가 봐도 손재주 좋은 사람이 정성 들여 꾸민 공간이었다. 비록 세상은 거칠고 낡았을지 몰라도, 이 집만큼은 그들의 노
“이모, 얘가 정확히 말하지 않은 거예요. 이미 이혼한 상태라고요.” 양정숙은 곧장 한대경의 귀를 잡아 비틀었다.“이 아가씨는 너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아직도 모르겠니?”“아이든 이혼이든 전부 핑계라고! 솔직히 말해, 억지로 이 아가씨를 끌고 온 거지?” 지아는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당돌하고 두려울 거 없어 보이던 한대경도 저렇게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의외인데?’ “이모, 이 손 놓으세요!” “아가씨, 솔직히 말해줘요. 이 녀석이 아가씨를 협박해서 데려온 거죠?”“내가 대신 혼내줄게요.” 지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한대경이 이 여자분을 존경하는 건 분명하지만, 진실이 밝혀져도 그저 훈계하는 정도에서 끝날 거야.’ ‘게다가 한대경 같은 사람이 이 여자분의 말을 들을 리 없잖아?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나를 이런 곳에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게다가 이 여자분... 마음속으로 한대경이 결혼하기를 바라셔서, 이 상황을 즐기시는 것 같은데?’‘그렇다면 굳이 눈치 없이 행동할 필요 없겠어.’지아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한 선생님께서는 제 의술이 뛰어난 걸 알고, 이모님의 건강을 봐달라고 부탁하신 거예요.” 한대경은 놀라서 멍해졌다.‘바로 진실을 말해버릴 줄 알았는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모양이네.’ ‘소지아, 정말 똑똑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여자야.’지아는 자연스럽게 자신과 한대경의 관계를 분리했고, 동시에 그를 난처한 상황에 빠뜨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양정숙은 실제로 건강에 문제가 있었으니, 한대경이 그녀를 데려온 이유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정말요? 꽤 어려 보이는데, 의사라고요?”양정숙이 한대경의 귀를 놓으며 물었다. 양정숙은 화장하지 않았지만, 지아는 그녀의 실루엣만으로도 그녀가 젊은 시절 아주 예쁘장한 사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성격이 불같고, 급했을 것 같기도 해.’지아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안색을 보니까 간과 폐 상태가 좋지
양정숙은 말투가 시원스러웠다. “그 전에 저 녀석이 데려왔던 의사들이죠.”“하나같이 절에서 나온 스님처럼 굴었어요. 잔소리만 해댔고요.”“오늘은 담배 끊어라, 내일은 술 끊어라... 정말 사람 짜증 나게.”지아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양정숙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간과 폐를 제외하면 건강은 매우 양호했다. 아마 꾸준히 건강 관리를 해온 결과일 것이었다. 게다가 이곳의 주변은 꽤 평화로웠고, 처음에 봤던 도둑이나 강도 같은 일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양정숙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지내는 이유는, 이 지역에서 그녀를 보호해 주는 더 강한 세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한 선생님께서 걱정하시는 건, 이모님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된 거예요. 제 말을 믿으신다면 건강을 더 잘 돌볼 수 있도록 한약을 지어드릴게요.”양정숙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착한 아가씨네요. 아주 훌륭한 집안에서 자란 모양인데, 이름이 뭐예요? 왠지 낯이 익어요.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지아가 태연하게 말했다.“소지아라고 합니다.” “혹시 제 할아버지와 아시는 사이일까요? 제 할아버지 성함은 ‘부남진’입니다.”지아는 양정숙이 혹시라도 환희와 아는 사이라면, 그 실마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부남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 A국의 그 유명한 분이죠? 아가씨, 아주 대단한 집안 출신이었네요.”지아는 약간 실망한 듯 말했다.“저는 이모님께서 저희 할아버지와 친구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저한테 낯익다고 하신 줄 알았거든요.” “아가씨 할아버지와는 아는 사이가 아니에요. 단지...” “단지 뭐요?”지아가 궁금해했다. 양정숙이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예전 일이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그냥 아가씨 얼굴이 왠지 낯이 익다 이거예요.”바로 이때, 부엌에서 한대경이 과일을 씻어 들고 나왔다. 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덧붙였다.“이모는 젊었을 때 머리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어. 그러고는 여기로 팔려
시월도 소영수의 침상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그러셨어요... 저희가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을 텐데요...” “아가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르신께서는 너무 갑작스럽게 가셨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마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시하가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집사님, 소식을 철저히 숨겼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알게 되신 거죠? 대체 누굽니까? 누가 전화를 한 겁니까?”“이미 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해외에서 걸려 온 가상번호였습니다. 발신자의 신원은커녕 구체적인 IP 주소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양준철의 두 주먹은 떨리듯 꽉 쥐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뼈까지 갈아버려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거라고요!” 40년 전만 해도 양준철의 수법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양준철은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렀다. 소영수가 양준철을 부하로 삼은 것도 그의 잔혹함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은 양준철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릴 정도였다.하지만 그런 양준철이 지켜야 할 은인이 눈앞에서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이는 양준철에게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오빠, 지금은 큰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결단을 내려야 해. 할아버지 장례는 어떻게 할 거야?” 시하는 피눈물을 머금은 듯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입관하고 조용히 묻어 드리자. 최소한... 할아버지께서 편히 잠들도록 해드려야지. 양 집사님, 장례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시하는 소영수의 시신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할아버지, 평생을 할머니 곁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제야 소원을 이루셨네요.”“하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시다니... 다 제 잘못입니다.
시월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아가씨, 멀리 떨어지세요. 감정 상태가 아주 불안정한 것 같아요. 아가씨까지 다칠 수도 있어요.”“우리 오빠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장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방금 어르신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비행기 사고로 연락이 안 되고, 시언 도련님은 이제 막 수술을 마친 터라, 지금 집안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시하 도련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시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할아버지가 왜요?” “집안에 닥친 변고를 들으신 순간 심장 발작으로...” “거짓말!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시하는 옆에 있던 신발을 장덕수에게 집어 던졌고, 깜짝 놀란 장덕수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다 끝났어요, 시하 도련님도 미쳐버리셨다고요!” 지아가 침착하게 말했다.“두 분은 나가 있으세요. 시하 오빠는 제가 돌볼게요. 지금은 큰 충격을 받아서 안정할 시간이 필요해요.”“안 됩니다, 소 선생님, 그건 너무 위험해요. 도련님이 정신을 잃고 선생님을 다치게 할지도 모릅니다.”“괜찮아요. 시하 오빠의 다리 상태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해칠 수 없을 거예요.” 지아가 무무를 불러 문을 잠그자, 방 안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고, 피리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장덕수가 안절부절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이걸 어쩌죠... 도련님께선 원래도 심신이 불안정하셨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무너지신 모양입니다. 이 와중에 어르신까지...”“본가로 갑시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시언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리자,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흉터를 감싼 붕대가 여기저기 엉성하게 드러났지만, 시언의 표정만큼은 이전과 다르게 단단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오빠...”시
그 순간, 지아의 말에 시하의 눈빛이 굳어졌다.“그러니까... 아직 우리 가문에 스파이가 있다는 거야?”“잘 생각해 보세요. 소명담의 부검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 사람이 죽은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즉, 심세호가 그 사람의 신분을 사용한 것도 몇 년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죠.”“하지만 소씨 가문의 불행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잖아요. 족히 십여 년은 되었다고요! 내부에서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지아의 지적에 시하는 마침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지아야, 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물론 오빠를 탓할 수는 없어요. 소씨 가문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원래 당사자는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없는 법이잖아요.”“상대는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판을 짰을 거예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란 뜻이죠.” 시하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스쳤다.“그럼 큰형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조경숙이 끌려간 것도 끝이 아닐 수 있었으며, 어쩌면 그게 시작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큰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지금 저렇게 나서는 건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라고!” 시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형한테 당장 알려야겠어. 그리고 이 일은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야 해. 요즘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어.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실 거야.” 지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하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울렸다. “누구야?!”시하의 얼굴에는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작은 소리조차 불길하게 들리는 듯했다.“도련님, 큰일 났습니다!”또 장덕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나가 볼게요.”지아가 시하의
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절대 오빠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오빠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그래.”시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나는 아버지 일부터 정리할게. 월아, 집안을 부탁해.”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떠나기 전, 시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그리고 월아, 소 선생님도 우리 사람이야. 무슨 일이든 소 선생님께 털어놓고 도움을 받도록 해.” “네, 알겠어요.”사람들 앞에서의 시월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시월의 얼굴은 감출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해졌다. “죽일 X! 그 X이 뭔데 나랑 같이 소씨 가문을 관리한다는 거야?” 심장후는 그런 시월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됐어, 우리 계획은 이미 반이나 성공했잖아. 이제 소씨 가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거야. 이미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 발버둥칠 여력도 없을 거라고.” “그래도 분하단 말이야. 지금이야말로 소씨 가문을 접수하기 가장 좋은 기회인데...” “소시후도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걸 거야. 네가 혼란에 휩싸일까 봐 두려운 거지. 여태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조급해할 거 없어. 조금만 진정해 봐.” 시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며 담배를 꺼내 들었는데, 심장후는 서둘러 그녀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빨간 입술 사이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월의 얼굴은 어느새 차분함을 되찾았다. “소씨 가문의 인간들 따위는 두렵지 않아. 이제 남은 건 그 노친네 하나뿐이야. 그 인간만 죽으면 소씨 가문은 완전히 끝장날 거라고. 한 명은 팔 하나를 잃었고, 하나는 절름발이가 됐잖아? 이제 별거 아닌 잡것들만 남았어.”“하지만 그 노친네는 만만치 않은 상대잖아.” “그래봤자 그 노친네의 시대는 가고, 우리의 시대가 왔어. 늙은 데다가 병까지 든 노친네가 무슨 힘을 쓰겠어? 내가 불쏘시개 하나만 더 던지면, 불길은
시후도 맞장구쳤다.“역시 우리 월이가 생각이 깊구나.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왜요, 오빠?”“상대의 목표는 우리 부모님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연이어 위기에 처했고,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야. 그 사람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월아, 앞으로는 외출할 때 늘 경호원을 대동하고, 출발 전에 차량도 철저히 점거해야 해. 그리고 당분간은 모든 공개 활동을 중단하도록 해.” 시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큰오빠, 저는 우리 소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우리 가문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아빠도 많은 걸 바치셨잖아요. 아빠가 심혈을 기울인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건 싫어요. 지금은 저만이 가문을 책임질 수 있는데,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복잡해질까 봐 걱정된다고요!”“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아. 월아, 넌 우리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야. 오빠들이 너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잖아. 게다가 아버지도 떠나시기 전에 시간을 벌 수 있는 준비를 해두셨을 테니까, 당분간은 집에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디든 나가면 안 돼, 알겠지?” 시후가 시월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너 자신을 꼭 돌봐야 해. 오빠들은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월이를 꼭 지킬 겁니다.” “그래.”시후가 고개를 돌려 심장후를 바라보았다.“장후야, 우리가 이 사건과 연관 있는 심세호라는 사람을 찾아냈는데, 혹시 심씨 가문의 사람일까?” 심장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심세호가 저희 할아버지의 사생아인지는 모르겠네요. 저희 아버지에게 큰아버지 이전에 사생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사람은 할아버지를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하찮은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어요.”“하지만 그 술집 여자와 사생아 모두 우리 심씨 가문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죠. 제 아버지조차 그 사람과 왕래가 거의 없었으니, 우리 같은 후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지아는 새로 등장한 인물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소시월과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 보였다. 지아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시후가 차분히 설명했다.“심씨 가문의 장남, 심장후예요. 월이의 약혼자이기도 하죠.” ‘심씨 가문?’지아는 순간 이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돌고 돌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온 셈이었으니 말이다. 도윤의 어머니인 심예지 역시 심씨 가문의 사람이었으나, 과거의 그녀는 사랑을 택하며 심씨 가문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런 심씨 가문의 후계자가 소시월의 약혼녀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심장후가 자연스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 “이분은...?”시월이 눈물을 훔치며 소개했다.“내가 얘기했던 뛰어난 의술을 갖춘 소 선생님이셔. 우리 시하 오빠가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 지아가 심장후의 손을 잡아끌며 지아 쪽으로 향했다.“소 선생님, 제 약혼자예요.” “안녕하세요.”지아가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인사했다. “소 선생님, 반갑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지아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장후 역시 지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시후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돌렸다.“소 대표님께서는...” 지아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살짝 굳어지자, 시월이 급히 설명했다.“미안해, 오빠, 내가 이야기했어. 장후 오빠랑 전화하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시후는 이런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시월과 장후의 사이를 알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원래 올해 두 가문이 결혼 문제를 상의할 계획이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모든 것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장후도 우리 소씨 가문의 사람인 셈이니까.” 이미 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으니, 시후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끝은 마음속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타신 비행기가 폭발했어. 아
시하는 시언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했다.“나도 잘못이 있어. 그동안 책임은커녕 모두에게 짐이 되었으니까.” “그만 좀 하세요!”지아가 탁자를 치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지금은 서로에게 사과할 때가 아니에요. 여러분이 이럴수록 심세호를 기쁘게 할 뿐이라고요. 아직 비행기 사고로 대표님의 사망을 확정할 수는 없어요.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요.” 지아는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내가 소씨 가문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여러분은 최악의 상황도 대비해야 해요. 만약 대표님께서 정말 돌아가셨다면, 여러분이 아들로서 소씨 가문을 지켜내야 한다고요. 가족을 슬프게 하고, 원수를 기쁘게 만드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사모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찾아내는 일이에요. 사모님은 최대한 빨리 눈을 치료해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회복이 불가능해질 거예요!” “게다가 소 대표님은 해외 사업을 접고 귀국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해요. 나라에는 왕이 하루도 없어선 안 되는 법이잖아요. 이런 상태라면, 소씨 가문은 곧 무너지고 말 거라고요!” 이어서 지아는 시언에게 조언했다.“건강을 반드시 회복하셔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아지셔야 가족 모두가 안정을 찾고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지아는 몇 마디로 어지러운 상황을 안정시켰다. 함께한 시간이 길지 않았고, 나이도 그들보다 어렸지만, 그녀의 말에는 이상할 정도의 신뢰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맞습니다. 우리는 절대 무너지면 안 돼요. 소 선생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지아가 시후를 부축해 앉혔는데, 사실 지아가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바로 소시후였다. 시후는 지아 다음으로 성공한 실험체였지만, 신장병은 여전히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고, 예전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 더 높아졌을 뿐이었다. 시후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 있었기에, 지아는 그가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지아는 이런 걱정을 안고 시후를 부드럽게
지금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은 소식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그 말이 전해지자 모두의 눈가가 떨리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장 집사님, 장 집사님은 집안의 어른이시잖아요. 어쩜 그렇게 경솔할 수 있으세요?” 지아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아는 처음 소씨 가문에 왔을 때 자신을 맞이하던 장덕수의 침착함과 신중함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당황하며 문턱에서 넘어질 정도로 급하게 들어왔다는 갓은, 사건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장 집사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시월이 다급히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장덕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께서 탑승하신 개인 비행기가... 비행 중에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비행기가... 폭발했다고요!” “뭐, 뭐라고요?!”시월은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월아!”시후는 곧장 시월을 안아 들었는데, 이는 혼란스러운 소씨 가문이 더욱 큰 혼란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지아는 빠르게 다가가 시월의 상태를 살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는 단지 충격으로 실시하신 것뿐이에요. 잠시 쉬면 곧 깨어나실 거예요.” “누가 월이 좀 방으로 옮겨주세요! 휴식이 필요합니다!” “예, 도련님!”고용인이 시월을 방으로 데려가자, 거실에 남은 사람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참혹해졌다. 시후는 아직 치료받지 않아 병약한 얼굴로 서 있었고, 시언은 수술을 막 끝낸 상태에서 시하와 마찬가지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시월은 너무 놀라 혼절하기까지.“형, 아버지는...”가장 강인하던 시언의 눈시울조차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장남인 시후였다. 그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누구보다 힘들었지만 지금은 더욱 강한 척해야만 했다. “괜찮을 거야. 단지 비행기 사고일 뿐이야. 기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시하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휠체어를 세게 내리쳤는데, 그의 눈가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분명 심세호가 한 짓이야! 사랑이 증오로 변한
다행히 지금은 60년 전처럼 정보가 부족한 시대가 아니어서, 원하기만 하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조경숙은 조씨 가문 출신으로, 이름 높은 명문가 자제였다.집안에는 여섯 명의 오빠가 있었고, 조경숙은 유일한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즉, 집안의 보석 같은 존재로, 아름다운 외모와 온화한 성품을 겸비한 인물이 된 것이었다.조경숙은 성인이 되기 전부터 이미 여러 집안에서 혼인을 청했고, 심지어 해외의 명문가들도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조경숙의 수많은 구혼자 중에서도 한 사람만이 유독 특별했다.그 시절 조경숙을 쫓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호들이었기에, 단순히 재산만으로는 그들의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하지만 그중 한 명은 천재 발명가로 불리며, 동시에 뛰어난 의술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었다. 그의 사랑은 그야말로 뜨겁고 격렬했으며, 조경숙을 얻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조경숙이 소임호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음에도, 그는 결코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임호가 무슨 방법을 썼는지, 그 천재 발명가는 갑작스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의학 미치광이의 소개서를 읽은 지아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지아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천하의 악당 같은 의학 천재는 루이스가 길러낸 첫 번째 제자였는데, 이미 사제 관계가 파탄 나긴 했으나, 지아는 그를 ‘선배’라고 불러야 했다. ‘이미 파문되었다던 그 사람이 사모님과 그렇게 깊은 연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래서 그 사람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피부에서 별다른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던 거구나.’그의 나이를 추정하면 이미 50세가 되었을 것이었다.얼굴은 가면으로 감출 수 있겠지만, 몸은 속일 수 없지 않겠는가?그 사람의 피부는 마치 20대나 30대처럼 매끄럽고 탱탱해, 지아는 그가 소명담이 아닐 거라고 의심하지 못했다. 루이스 역시 젊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