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도윤의 품에 안긴 채 모든 것이 꿈만 같다고 느꼈다. 그녀는 자신에게 행복과 동시에 끝없는 고통을 주었던 이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 초기, 이곳에서는 분명 달콤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매일 집에서 요리법을 배우며 하루 종일 도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정원에 있는 꽃과 식물을 다듬으며, 그가 갈아입은 옷을 깨끗이 세탁하고 다려서 옷장에 정리해 두었다.게다가 테이블 위에는 언제나 생기 넘치는 꽃다발을 두어 집 안에 생동감을 불어넣곤 했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후, 지아는 날마다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때의 그녀는 이 집이 그녀를 가두는 감옥처럼 느껴졌고, 더 이상 조금의 행복도 느낄 수 없었다. 특히 직접 꾸민 그 아기방은 지아에게 더 큰 아픔을 주었다. 바다에 빠진 후, 수많은 밤을 그 작디작은 아기 침대에서 웅크린 채, 조산으로 태어난 아들을 그리워하며 지냈다. 바로 그때, 아기방 안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장난감에서 나는 듯한 음악 소리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안방에서 고양이들과 놀고 있는데, 어찌 아기방에서 소리가 날 수 있겠는가. 지아는 곧장 방문을 열었다. 그녀는 떠나기 직전 이 방의 모든 가구와 장식을 망가뜨렸었다. 하지만 도윤이 방을 원래대로 복원해 놓은 듯했다. 아기침대 옆에는 키 큰 아이가 서 있었다. 사실, 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억지스러웠는데, 키가 크기 때문이었다. 비록 올해로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지만 말이다. 그 아이는 손에 작은 딸랑이를 들고 있었고, 침대 위의 모빌은 가볍게 흔들리며 부드럽고 순수한 음악 소리를 냈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도윤이 몸을 돌렸다. 지아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곧장 그 아이의 품으로 달려갔다. “지윤아.”“엄마.”두 모자는 서로를 꼭 껴안았다. 이날을 맞이하기까지 꼬박 9년이 걸렸다. 두 사람은 이제야 서로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지윤은 지난 몇 년간 많은 슬픔을 겪었다. 그 아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엄마인 지아
지윤은 옆에 서 있는 아이들을 보자마자 곧바로 알아차렸다.“네가 해경이야?” “맞아, 형.”해경은 지윤의 가슴 높이쯤밖에 오지 않았으며, 훨씬 작았다. 해경은 그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지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들 삼 형제는 모두 남자아이였으나, 해경은 지아를 더 닮은 반면, 지윤은 도윤과 판박이였다! 정말이지 하나의 틀에서 나온 것처럼 닮아 있었다. “큰오빠, 나는 소망이야. 오빠는 아빠랑 정말 닮았네.” 지윤은 무표정할 때 더욱 도윤과 닮았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눈빛은 강력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소망도 도윤을 닮았으나, 그 남성적인 얼굴에는 약간의 부드러움이 묻어 있었다. 방울 소리가 조용히 울리자, 지윤이 몸을 낮추고 무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무무, 맞지?” 무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오빠가 잘 돌봐줄게.”무무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가족 모두는 그 아이를 소홀히 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애틋하게 여겼다. 지아는 몸을 낮춰 덩치가 각기 다른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10년이 지나서야 그토록 기다려온 재회를 맞이한 것. 이것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나이가 든 가정부인 장미숙은 예전과 같은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닦았고, 잠시 후에야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대표님, 사모님, 아래층에서 ‘부’ 씨 성을 가진 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모님을 모시러 왔다고 하더군요.” 이토록 당당하게 이씨 가문을 찾아올 사람은 부장경밖에 없었다. 순간, 도윤의 눈동자에 불쾌감이 번뜩였다. ‘개라도 되는 건가? 지아는 겨우 어제야 집에 돌아왔는데, 벌써 냄새를 맡고 찾아오다니.’ 지아는 눈물을 닦고 무무를 안아서 들었다.“엄마랑 가서 인사드리자. 그 분은 엄마에게 잘해 주신 몇 안되는 친척이야. 작은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돼.” “네.”지윤은 쌍둥이와 함께 지아의 뒤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부장경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막 찻잔 뚜껑을
사실 부남진은 상상 이상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부남진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지만, 화연이 최근에야 되찾은 딸이었고, 그녀가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부장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모태 솔로였고, 마음에 드는 여자조차 없었으니, 자손을 번성시키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아가 무려 네 명의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니, 부남진의 얼굴에는 몇 살은 더 젊어진 것 같은 기쁨이 만연해졌다. “어서, 어서 나한테 와보렴.” 부남진은 너무나 기뻐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쏜살같이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증조할아버지!” “좋아, 아주 좋아.”부남진의 마음속에 꽃이 활짝 피었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아이들을 하나하나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전 같았으면 민연주가 지아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아이들조차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아와의 오해를 풀었으니 민연주도 아이들을 볼 때 아주 즐거웠다. “저 멀리서 어린 선녀들이 오는 줄 알았어. 지아가 이렇게 아이들과 돌아오다니, 하나같이 너와 도윤이를 쏙 빼닮았구나.” 며칠 못 본 사이, 산후조리를 마친 화연은 얼굴에 생기가 돌아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심지어 볼에도 살이 조금 오른 듯했다. “지아야, 모두 네 아이들이야?”화연이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나보다 어린 지아가 벌써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두고 있다니! 게다가 지윤이는 이미 아홉살이잖아?’ 지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말했다.“아, 결혼을 일찍 했어요.” A국의 여자는 열 여덟 살이면 혼인신고를 할 수 있었다. 지아는 대학에 일찍 입학했고, 임신도 비교적 빨랐다. 부남진 또한 아주 기뻐했는데, 지아가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데려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모든 아이가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래서 아예 그 아이들을 자신의 서재로 데려가, 소장한 보물들을 모두 나누어 주기로 했다. 그동안 눈엣가시로 보였던 도윤마
지아는 서류봉투를 만져 보았는데, 꽤 두꺼웠다. 아마 자료가 들어 있는 듯했다. “감사히 받을게요.”지아는 이전의 백호와의 거래를 떠올리며, 어쩌면 이 서류를 통해 자신이 알고 싶어하던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용이 돌아서 떠나자, 그녀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서류봉투를 열었다. 예상대로 그것은 H국과 관련된 자료였다. 예전에 H국은 부남진을 암살하려 했다.바로 그때, H국과 하씨 가문의 연관성을 생각한 하용이 미리 대비해 둔 듯했다. H국은 진심으로 부남진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고, 하용은 자신의 앞날을 위해 전효를 이용했다. 어쩌면 도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복잡한 일에 지아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진실은 거대한 나무와 같다.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그저 땅 위의 가지와 잎에 불과하지만, 그 나무의 뿌리는 깊고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지아가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모든 자료가 H국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마지막 몇 페이지를 넘기던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은 살인 청부 거래서였고, 그 대상에는 지아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다만, 이번에 상대가 찾은 조직은 블랙X가 아니라, 최근 국제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킬러 고용 조직, ‘올가미’였다.상대는 그녀의 목숨을 위해 무려 6억원을 지불하려 했다! 게다가 이 주문은 불과 2주 전에 내려진 것이었다. 다행히도 올가미는 아직 이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주문 목록 외에도, 뒷장에는 의뢰자의 정보가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다. 지아는 일찍이 하씨 가문이 다루는 거래가 그리 청렴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블랙 X뿐만 아니라, 올가미와 같은 악명 높은 조직까지 하씨 가문 세력의 아래에 있을 줄은 몰랐다. 하용이 준 선물을 꽤 컸다. 지아는 여태 배후의 손에 이끌려 다녔지만, 이번만큼은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이 의뢰인 또한 상대방에 내세운 대리인에 불과하겠지만, 이번에는
지아는 하용과의 일에 대해 굳이 도윤에게 말하지 않았다.도윤에게는 도윤의 세상이 있으니, 하용과의 청산은 그의 몫이었다. 지아는 남자들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별거 아니야. 그냥 저녁 메뉴가 궁금해서 주방에 좀 다녀왔어.” “여전히 세심하구나.”도윤은 그녀의 손을 자신의 코트 주머니 속으로 넣으며 허리 쪽에 밀착시켰다. 그러자 은은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선남선녀처럼 잘 어울렸다. 하지만 도윤은 알고 있었다. 지아가 하용과 함께 자리를 떠났던 것도, 그녀가 그 일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비록 지아가 이예린과의 일로 그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도윤은 여전히 그와 지아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토록 순진하게 자신만을 기다리며 집에 있던 어린 아내는 이제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지아는 원하는 것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고, 사랑은 이제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즉, 도윤은 단지 지아 삶의 일부일 뿐, 더 이상 유일한 존재가 아니란 뜻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도윤은 마음이 쓰라렸지만 그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오늘날의 지아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도윤이지 않은가. 그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지아가 가볍게 화제를 전환했다.“내가 떠나고 한대경은 어떻게 처리했어?” “스승님은 한대경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으셨고, 너는 A시에 없었잖아. 그래서 셋째 날에 바로 돌아갔어.” 도윤의 눈길이 지아의 얼굴을 스쳤다.“하지만 한대경은 너를 위해서 몇천억에 달하는 A국과의 무역을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은사님과 군사 협력까지 논의했어. 그만큼 진심이었다는 거지.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내가 아는 한대경은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도윤의 말은 단순한 설명이었으나, 지아는 그가 이를 갈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맞잡은 두 사람의 손, 지아가 그의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질투하는 거야?” 도윤은
지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오자, 부남진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해졌다. 이전의 부씨 가문은 아주 불안정했는데, 아이들의 등장이 새로운 희망을 가져와 부남진의 마음을 한결 밝게 해주었다. 덕분에 도윤에 대한 태도도 한층 너그러워졌다.부남진은 그동안 도윤이 저지른 일들을 마음속 깊이 원망해 왔지만, 그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화목한 모습을 보자, 그 감정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지 않은가.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젊었을 때는 명예와 이익을 좇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손주들을 품에 안은 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만이 남았다. 식사 자리에서 부남진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덜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특별히 도윤에게도 한 젓가락 덜어주었다. 이런 행동은 도윤이 놀라움과 기쁨이 섞인 표정을 짓게 했는데, 이전까지의 부남진은 그에게 직접적이고도 냉랭한 적대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한편, 화연은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부러움과 다정함이 가득했다. 하용은 화연이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고 있음을 알고,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접시에 담아주었다. 이전의 부씨 가문은 한산하고 썰렁한 분위기였다. 부장경은 먼 곳에 있었고, 미셸은 도윤을 쫓아다녔기에, 명절이 되어도 집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오직 부남진과 민연주만이 남겨진 상태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지아가 새로운 가족을 들여왔고, 도윤과 하용, 그리고 네 명의 아이들까지 더해져, 부남진은 마치 몇 년은 젊어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말이 가까워지자, 모두가 눈과 바람을 뚫고 집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부남진은 도윤과 하용을 불러 술잔을 기울였고, 평소 차분한 성격의 부장경까지도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지아는 무무를 목욕시킨 후, 무무와 소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오른쪽과 왼쪽에는 자그마한 머리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이야기가 절정에 다다르자, 침대 위에서 작은 머리가 거꾸로 내려오며 한 마디를 외
지아는 지윤이 도윤을 가장 많이 닮았으면서도, 마음이 섬세하고 다정하여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윤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가, 앞으로는 여기가 네 집이야. 우리는 모두 네 가족이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아무도 너를 탓하지 않을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경이 방 안으로 신나게 뛰어 들어와 침대 위로 폴짝 올라왔다.“형, 살려줘!”소망은 화가 난 얼굴로 지윤의 다른 팔을 꼭 붙잡았다.“오빠, 나를 도와줘야 해! 둘째 오빠가 나쁜 행동을 했어!” 지아는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장난치는 것을 보며 지윤이 조금씩 마음을 놓고 함께 어울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결국 지윤은 해경과 소망을 양쪽에 두고 한 침대에서 함께 잠들었다.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한 아이씩 끼고 누운 지윤은 지친 얼굴로 곧 깊은 잠에 빠졌고, 지아는 세 아이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무무의 옆에 누었고, 무무는 자연스럽게 몸을 말아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작은 아이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자, 지아의 마음에도 평온과 행복이 가득 차올랐다. 깊은 밤, 지아는 누군가의 손이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그녀는 누군가에 의해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졌다. 코끝에 퍼지는 은은한 술냄새,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 안겨 그가 자신을 안고 가는 것을 내버려두었다.“지금까지 마신 거야?”“응.”도윤은 막 샤워를 마친 상태였다. 술냄새와 비누의 상쾌한 향이 섞여, 밤의 분위기 속에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는 문을 닫고 무무를 위해 마련했던 침대 위에 그녀를 눕혔다. “지아야...”술을 마시면 도윤이 더욱 애정을 갈구하는 것을 알기에, 지아는 그가 자신의 품을 조르는 것을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그러고는 큰 개 한 마리를 달래듯 다정하게 그를 어루만졌다. “보아하니 할아버지와의 이야기가 잘 풀린 것 같네. 할아버지가 도윤 씨를 남겨두셨으니까.” 도윤은 지아를 남자들
연말이 다가오자 모두가 바빠졌지만, 지아는 오히려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그저 매일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채웠다. 화연은 지아의 보살핌으로 많이 회복되었고, 하씨 가문의 제약에서 벗어나면서 더 이상 별장에만 갇혀 있지 않아도 되었다. 지아는 마치 다섯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 같았는데, 화연은 그녀의 곁을 순진한 아이처럼 따라다녔다. “지아야, 이 드레스 말이야, 무무한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화연은 여전히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지만, 하씨 가문은 그녀를 물질적으로 크게 억압하지 않았고, 특히 하용은 언제나 아낌없는 재정 지원을 해주었다. 지아가 진봉을 비롯한 경호원들이 들고 있는 쇼핑백을 보며 말했다.“이미 충분해요. 저 옷들은 제가 열 명의 아이를 낳아도 다 입힐 수 없을 거예요.” 화연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참 좋겠다, 아직 열 명이나 더 낳을 수 있다니.” 지아는 이마를 짚었다. 화연은 아이를 갖는 것에 상당한 집착을 보였다. “고모님...”“괜찮아,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다 지나간 일이니까 더는 미련 두지 않을 거야. 나도 새로운 계획이 생겼거든.” “무슨 계획이요?”“대학교 졸업 전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서 하용 오빠가 나를 집으로 데려왔어. 그 후로는 몇 년간 집에서 할 일 없이 지냈지.”“이제 친부모님을 찾았고, 부모님도 내 결정을 지지해 주셔. 난 그림을 좋아하니까 해외로 유학하러 가서 공부해 보고 싶어.” 지아는 화연이 스스로 떠나기를 결심할 줄은 몰랐기에 약간 놀랐다. “그럼 하용 씨는요?”“아직 오빠한테 말하진 않았고, 그냥 내 생각일 뿐이야. 하지만 지금은 나도 조금 더 회복이 필요하지.” 화연이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아야, 난 네가 정말 부러워. 난 평생을 그 작은 세상 속에 갇혀 살 줄 알았거든. 하지만 네 덕분에 이 세상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깨달았어.”“여자는 남자의 부속품이 아니야. 하용 오빠가 나를 사랑하는 건 알지만, 나도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 오빠
시월도 소영수의 침상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그러셨어요... 저희가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을 텐데요...” “아가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르신께서는 너무 갑작스럽게 가셨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마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시하가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집사님, 소식을 철저히 숨겼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알게 되신 거죠? 대체 누굽니까? 누가 전화를 한 겁니까?”“이미 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해외에서 걸려 온 가상번호였습니다. 발신자의 신원은커녕 구체적인 IP 주소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양준철의 두 주먹은 떨리듯 꽉 쥐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뼈까지 갈아버려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거라고요!” 40년 전만 해도 양준철의 수법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양준철은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렀다. 소영수가 양준철을 부하로 삼은 것도 그의 잔혹함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은 양준철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릴 정도였다.하지만 그런 양준철이 지켜야 할 은인이 눈앞에서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이는 양준철에게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오빠, 지금은 큰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결단을 내려야 해. 할아버지 장례는 어떻게 할 거야?” 시하는 피눈물을 머금은 듯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입관하고 조용히 묻어 드리자. 최소한... 할아버지께서 편히 잠들도록 해드려야지. 양 집사님, 장례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시하는 소영수의 시신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할아버지, 평생을 할머니 곁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제야 소원을 이루셨네요.”“하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시다니... 다 제 잘못입니다.
시월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아가씨, 멀리 떨어지세요. 감정 상태가 아주 불안정한 것 같아요. 아가씨까지 다칠 수도 있어요.”“우리 오빠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장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방금 어르신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비행기 사고로 연락이 안 되고, 시언 도련님은 이제 막 수술을 마친 터라, 지금 집안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시하 도련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시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할아버지가 왜요?” “집안에 닥친 변고를 들으신 순간 심장 발작으로...” “거짓말!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시하는 옆에 있던 신발을 장덕수에게 집어 던졌고, 깜짝 놀란 장덕수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다 끝났어요, 시하 도련님도 미쳐버리셨다고요!” 지아가 침착하게 말했다.“두 분은 나가 있으세요. 시하 오빠는 제가 돌볼게요. 지금은 큰 충격을 받아서 안정할 시간이 필요해요.”“안 됩니다, 소 선생님, 그건 너무 위험해요. 도련님이 정신을 잃고 선생님을 다치게 할지도 모릅니다.”“괜찮아요. 시하 오빠의 다리 상태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해칠 수 없을 거예요.” 지아가 무무를 불러 문을 잠그자, 방 안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고, 피리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장덕수가 안절부절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이걸 어쩌죠... 도련님께선 원래도 심신이 불안정하셨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무너지신 모양입니다. 이 와중에 어르신까지...”“본가로 갑시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시언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리자,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흉터를 감싼 붕대가 여기저기 엉성하게 드러났지만, 시언의 표정만큼은 이전과 다르게 단단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오빠...”시
그 순간, 지아의 말에 시하의 눈빛이 굳어졌다.“그러니까... 아직 우리 가문에 스파이가 있다는 거야?”“잘 생각해 보세요. 소명담의 부검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 사람이 죽은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즉, 심세호가 그 사람의 신분을 사용한 것도 몇 년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죠.”“하지만 소씨 가문의 불행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잖아요. 족히 십여 년은 되었다고요! 내부에서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지아의 지적에 시하는 마침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지아야, 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물론 오빠를 탓할 수는 없어요. 소씨 가문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원래 당사자는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없는 법이잖아요.”“상대는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판을 짰을 거예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란 뜻이죠.” 시하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스쳤다.“그럼 큰형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조경숙이 끌려간 것도 끝이 아닐 수 있었으며, 어쩌면 그게 시작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큰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지금 저렇게 나서는 건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라고!” 시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형한테 당장 알려야겠어. 그리고 이 일은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야 해. 요즘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어.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실 거야.” 지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하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울렸다. “누구야?!”시하의 얼굴에는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작은 소리조차 불길하게 들리는 듯했다.“도련님, 큰일 났습니다!”또 장덕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나가 볼게요.”지아가 시하의
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절대 오빠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오빠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그래.”시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나는 아버지 일부터 정리할게. 월아, 집안을 부탁해.”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떠나기 전, 시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그리고 월아, 소 선생님도 우리 사람이야. 무슨 일이든 소 선생님께 털어놓고 도움을 받도록 해.” “네, 알겠어요.”사람들 앞에서의 시월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시월의 얼굴은 감출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해졌다. “죽일 X! 그 X이 뭔데 나랑 같이 소씨 가문을 관리한다는 거야?” 심장후는 그런 시월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됐어, 우리 계획은 이미 반이나 성공했잖아. 이제 소씨 가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거야. 이미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 발버둥칠 여력도 없을 거라고.” “그래도 분하단 말이야. 지금이야말로 소씨 가문을 접수하기 가장 좋은 기회인데...” “소시후도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걸 거야. 네가 혼란에 휩싸일까 봐 두려운 거지. 여태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조급해할 거 없어. 조금만 진정해 봐.” 시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며 담배를 꺼내 들었는데, 심장후는 서둘러 그녀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빨간 입술 사이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월의 얼굴은 어느새 차분함을 되찾았다. “소씨 가문의 인간들 따위는 두렵지 않아. 이제 남은 건 그 노친네 하나뿐이야. 그 인간만 죽으면 소씨 가문은 완전히 끝장날 거라고. 한 명은 팔 하나를 잃었고, 하나는 절름발이가 됐잖아? 이제 별거 아닌 잡것들만 남았어.”“하지만 그 노친네는 만만치 않은 상대잖아.” “그래봤자 그 노친네의 시대는 가고, 우리의 시대가 왔어. 늙은 데다가 병까지 든 노친네가 무슨 힘을 쓰겠어? 내가 불쏘시개 하나만 더 던지면, 불길은
시후도 맞장구쳤다.“역시 우리 월이가 생각이 깊구나.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왜요, 오빠?”“상대의 목표는 우리 부모님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연이어 위기에 처했고,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야. 그 사람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월아, 앞으로는 외출할 때 늘 경호원을 대동하고, 출발 전에 차량도 철저히 점거해야 해. 그리고 당분간은 모든 공개 활동을 중단하도록 해.” 시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큰오빠, 저는 우리 소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우리 가문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아빠도 많은 걸 바치셨잖아요. 아빠가 심혈을 기울인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건 싫어요. 지금은 저만이 가문을 책임질 수 있는데,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복잡해질까 봐 걱정된다고요!”“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아. 월아, 넌 우리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야. 오빠들이 너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잖아. 게다가 아버지도 떠나시기 전에 시간을 벌 수 있는 준비를 해두셨을 테니까, 당분간은 집에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디든 나가면 안 돼, 알겠지?” 시후가 시월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너 자신을 꼭 돌봐야 해. 오빠들은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월이를 꼭 지킬 겁니다.” “그래.”시후가 고개를 돌려 심장후를 바라보았다.“장후야, 우리가 이 사건과 연관 있는 심세호라는 사람을 찾아냈는데, 혹시 심씨 가문의 사람일까?” 심장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심세호가 저희 할아버지의 사생아인지는 모르겠네요. 저희 아버지에게 큰아버지 이전에 사생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사람은 할아버지를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하찮은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어요.”“하지만 그 술집 여자와 사생아 모두 우리 심씨 가문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죠. 제 아버지조차 그 사람과 왕래가 거의 없었으니, 우리 같은 후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지아는 새로 등장한 인물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소시월과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 보였다. 지아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시후가 차분히 설명했다.“심씨 가문의 장남, 심장후예요. 월이의 약혼자이기도 하죠.” ‘심씨 가문?’지아는 순간 이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돌고 돌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온 셈이었으니 말이다. 도윤의 어머니인 심예지 역시 심씨 가문의 사람이었으나, 과거의 그녀는 사랑을 택하며 심씨 가문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런 심씨 가문의 후계자가 소시월의 약혼녀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심장후가 자연스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 “이분은...?”시월이 눈물을 훔치며 소개했다.“내가 얘기했던 뛰어난 의술을 갖춘 소 선생님이셔. 우리 시하 오빠가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 지아가 심장후의 손을 잡아끌며 지아 쪽으로 향했다.“소 선생님, 제 약혼자예요.” “안녕하세요.”지아가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인사했다. “소 선생님, 반갑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지아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장후 역시 지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시후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돌렸다.“소 대표님께서는...” 지아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살짝 굳어지자, 시월이 급히 설명했다.“미안해, 오빠, 내가 이야기했어. 장후 오빠랑 전화하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시후는 이런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시월과 장후의 사이를 알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원래 올해 두 가문이 결혼 문제를 상의할 계획이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모든 것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장후도 우리 소씨 가문의 사람인 셈이니까.” 이미 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으니, 시후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끝은 마음속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타신 비행기가 폭발했어. 아
시하는 시언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했다.“나도 잘못이 있어. 그동안 책임은커녕 모두에게 짐이 되었으니까.” “그만 좀 하세요!”지아가 탁자를 치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지금은 서로에게 사과할 때가 아니에요. 여러분이 이럴수록 심세호를 기쁘게 할 뿐이라고요. 아직 비행기 사고로 대표님의 사망을 확정할 수는 없어요.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요.” 지아는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내가 소씨 가문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여러분은 최악의 상황도 대비해야 해요. 만약 대표님께서 정말 돌아가셨다면, 여러분이 아들로서 소씨 가문을 지켜내야 한다고요. 가족을 슬프게 하고, 원수를 기쁘게 만드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사모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찾아내는 일이에요. 사모님은 최대한 빨리 눈을 치료해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회복이 불가능해질 거예요!” “게다가 소 대표님은 해외 사업을 접고 귀국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해요. 나라에는 왕이 하루도 없어선 안 되는 법이잖아요. 이런 상태라면, 소씨 가문은 곧 무너지고 말 거라고요!” 이어서 지아는 시언에게 조언했다.“건강을 반드시 회복하셔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아지셔야 가족 모두가 안정을 찾고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지아는 몇 마디로 어지러운 상황을 안정시켰다. 함께한 시간이 길지 않았고, 나이도 그들보다 어렸지만, 그녀의 말에는 이상할 정도의 신뢰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맞습니다. 우리는 절대 무너지면 안 돼요. 소 선생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지아가 시후를 부축해 앉혔는데, 사실 지아가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바로 소시후였다. 시후는 지아 다음으로 성공한 실험체였지만, 신장병은 여전히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고, 예전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 더 높아졌을 뿐이었다. 시후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 있었기에, 지아는 그가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지아는 이런 걱정을 안고 시후를 부드럽게
지금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은 소식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그 말이 전해지자 모두의 눈가가 떨리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장 집사님, 장 집사님은 집안의 어른이시잖아요. 어쩜 그렇게 경솔할 수 있으세요?” 지아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아는 처음 소씨 가문에 왔을 때 자신을 맞이하던 장덕수의 침착함과 신중함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당황하며 문턱에서 넘어질 정도로 급하게 들어왔다는 갓은, 사건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장 집사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시월이 다급히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장덕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께서 탑승하신 개인 비행기가... 비행 중에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비행기가... 폭발했다고요!” “뭐, 뭐라고요?!”시월은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월아!”시후는 곧장 시월을 안아 들었는데, 이는 혼란스러운 소씨 가문이 더욱 큰 혼란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지아는 빠르게 다가가 시월의 상태를 살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는 단지 충격으로 실시하신 것뿐이에요. 잠시 쉬면 곧 깨어나실 거예요.” “누가 월이 좀 방으로 옮겨주세요! 휴식이 필요합니다!” “예, 도련님!”고용인이 시월을 방으로 데려가자, 거실에 남은 사람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참혹해졌다. 시후는 아직 치료받지 않아 병약한 얼굴로 서 있었고, 시언은 수술을 막 끝낸 상태에서 시하와 마찬가지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시월은 너무 놀라 혼절하기까지.“형, 아버지는...”가장 강인하던 시언의 눈시울조차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장남인 시후였다. 그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누구보다 힘들었지만 지금은 더욱 강한 척해야만 했다. “괜찮을 거야. 단지 비행기 사고일 뿐이야. 기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시하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휠체어를 세게 내리쳤는데, 그의 눈가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분명 심세호가 한 짓이야! 사랑이 증오로 변한
다행히 지금은 60년 전처럼 정보가 부족한 시대가 아니어서, 원하기만 하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조경숙은 조씨 가문 출신으로, 이름 높은 명문가 자제였다.집안에는 여섯 명의 오빠가 있었고, 조경숙은 유일한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즉, 집안의 보석 같은 존재로, 아름다운 외모와 온화한 성품을 겸비한 인물이 된 것이었다.조경숙은 성인이 되기 전부터 이미 여러 집안에서 혼인을 청했고, 심지어 해외의 명문가들도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조경숙의 수많은 구혼자 중에서도 한 사람만이 유독 특별했다.그 시절 조경숙을 쫓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호들이었기에, 단순히 재산만으로는 그들의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하지만 그중 한 명은 천재 발명가로 불리며, 동시에 뛰어난 의술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었다. 그의 사랑은 그야말로 뜨겁고 격렬했으며, 조경숙을 얻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조경숙이 소임호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음에도, 그는 결코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임호가 무슨 방법을 썼는지, 그 천재 발명가는 갑작스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의학 미치광이의 소개서를 읽은 지아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지아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천하의 악당 같은 의학 천재는 루이스가 길러낸 첫 번째 제자였는데, 이미 사제 관계가 파탄 나긴 했으나, 지아는 그를 ‘선배’라고 불러야 했다. ‘이미 파문되었다던 그 사람이 사모님과 그렇게 깊은 연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래서 그 사람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피부에서 별다른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던 거구나.’그의 나이를 추정하면 이미 50세가 되었을 것이었다.얼굴은 가면으로 감출 수 있겠지만, 몸은 속일 수 없지 않겠는가?그 사람의 피부는 마치 20대나 30대처럼 매끄럽고 탱탱해, 지아는 그가 소명담이 아닐 거라고 의심하지 못했다. 루이스 역시 젊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