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한숨을 쉬었다.여자는 결국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차를 몰고 교외의 별장으로 갔다.지아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갈림길에 숨어 하용의 차가 떠난 후에야 조용히 별장으로 들어갔다.“화연 씨, 문 앞에 있어요.”문이 열리자 윤화연은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보다 더 말랐다.지아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우리 들어가서 얘기해요.”“그래요.”윤화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지아를 끌고 들어갔고, 아주머니는 의심이 가득 차 그녀를 쳐다보았고, 지아는 자신이 온 이유를 밝혔다. “긴장하지 마세요, 단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왔어요. 따뜻한 물 한 잔과 따뜻한 수건을 가져오세요.”아주머니는 원래 가장 먼저 하용에게 알려야 했지만, 이 여자는 왠지 사람을 납득시키는 능력이 있다.그녀는 순순히 물수건을 가져다주었다.지아는 수건으로 윤화연의 얼굴을 닦아줬다.특히 눈에 더 오래 머물렀고 따뜻한 물을 윤화연에게 건네주었다.“물 좀 드세요.”“네.”윤화연은 물을 다 마신 후 지아에게 하소연하려 했는데 지아는 그녀에게 손짓을 했다.“급하지 마세요. 들을 시간이 많으니 우선 눈부터 감으세요.”윤화연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지만 얌전히 눈을 감았다.네 손가락은 관자놀이에 얹고서 지아는 부드럽게 그녀를 안마해 주었다.그녀의 손놀림은 매우 좋아서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진정하시고 충동적일 때 절대 결정하지 마세요. 머리가 똑똑해야 실수를 안 해요.”관자놀이에 이어 정수리까지 마치 마력이 있는 듯한 그녀의 손길이 윤화연으로 하여금 서서히 경계를 늦추고 팽팽해진 몸도 조금씩 풀어주었다.어느새 그녀의 기분은 가라앉았고, 심지어 편안하게 잠에 들었다.아주머니는 윤화연이 요즘 잘 못 먹고 잘 못 자는 것을 알고, 스스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신기할 정도로 지아가 오자마자 윤화연이 순순히 말을 듣기 시작했다.지아가 입 모양을 만들자, 아주
미셸의 배는 윤화연처럼 여전히 평평했고,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지만, 최근에 잠이 부쩍 많아졌고, 식사량도 크게 늘었다. 미셸은 원래 살이 잘 찌는 체질이었다. 예전에는 꾸준히 운동해서 몸매를 관리할 수 있었다.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의 방종으로 인해 10킬로 이상 살이 쪘고, 얼굴도 한층 둥글어졌다.그래도 다행히 미셸은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 좀 더 탄탄해 보였다. 원래도 미모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는데, 살이 찌고 나서는 미모가 더욱더 별로이게 되었다. 하용은 외모를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미셸의 둥글어진 얼굴을 보면 속이 불편해졌다.“며칠 동안 나한테 한 번도 안 와줬잖아.”미셸은 마치 본드처럼 하용에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하용은 미셸이 다가오는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꾹 참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 지금 온 거잖아. 요즘 일이 많아서 바빴어. 너는 얌전히 집에서 기다려. 이 일만 끝나면 바로 병원에 같이 가서 산부인과 검진 받을 거야.”미셸은 작은 배를 살짝 감싸며 말했다. “내 배 많이 커졌지? 우리 아들 엄청 건강할 거야.”그러나 이 시기의 태아는 불과 1.5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해 배가 나올 리 없었고, 이는 사실 전부 살이었다. 하용은 그 배를 보자마자 입맛이 떨어졌다. 예전에도 미셸이 날씬했던 시절조차, 하용은 불을 끄고 미셸을 윤화연이라고 상상해야만 겨우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미셸은 하용의 손을 끌어 자기 배를 만지려 했다. 임신 이후로 하용은 한 번도 미셸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항상 태아 발달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된다며 거절했다. 두 사람은 그 이후로 아무런 접촉조차 없었고, 미셸은 점점 불안해졌다.하용은 미셸의 손을 재빨리 빼내며 말했다. “미셸이야, 얌전하게 있어. 나 출근해야 해. 퇴근하고 나서 보러 올게.”미셸은 화가 난 듯이 아침을 먹고 가라고 졸랐다. 또한 하용은 그녀의 고집을 잘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아침을
이명란은 이미 말할 준비를 마쳤다.“하용 씨 대신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정순영은 모니터에 나타난 중년 여성의 얼굴을 보았다.그녀는 세련된 가정부 복장을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도시락 상자를 들고 있었다.‘아마 아가씨가 요즘 제대로 먹지 못한 걸 알고,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준 모양이구나.’정순영은 별다른 의심 없이 문을 열었고, 이명란이 부씨 집안 사람인 것을 알지 못했다.“저에게 주시면 돼요.”[그건 안 돼요. 반드시 직접 아가씨에게 전달하라고 하셨어요. 만약 소홀히 다루면 당신이 책임질 수 있겠어요?]이명란은 민연주 곁에서 오랜 세월 함께했기에, 하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조금만 강하게 나가면 상대를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정순영은 이명란이 들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태도가 워낙 단호해서 더 이상 가볍게 볼 수 없었다.“저희 아가씨는 지금 쉬고 있습니다. 물건을 내려놓으시면 깨어나면 제가 전해드릴게요.”[당신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하용 씨가 분명히 아가씨에게 직접 전하라고 하셨다고.]정순영은 상대의 매서운 눈빛에 점점 기가 눌려, 자신감이 사라졌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위층에 가서 아가씨께 여쭤보고 올 테니까.”[빨리하세요.]윤화연은 지아가 달래서 겨우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문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지아가 문을 열며 손짓했다.“조용히 좀 해요. 아가씨, 요즘 제대로 잠도 못 자는 거 알죠?”“네, 그런데 지금 좀 급한 일이 있어요.”“뭔 일인데 아가씨가 깨어나서 처리해야 하는 거죠?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잠이에요.”지아는 윤화연이 임신 후 입덧이 심하게 와서 몸과 마음이 모두 고통받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그녀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했다.하지만 정순영은 하용의 일이라 자칫 잘못 처리하면 안 될 것 같아 더 불안했다. 또, 윤화연과 하용의 관계가 지아에게 발각될까 봐 두려웠다.“일단 제가
미셸은 지아가 이곳에 있는 것을 보자마자 분노가 폭발했다. 원래 도윤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이제 겨우 하용과 잘 지내려는 자신을 방해하고 있으니 말이다.미셸은 체면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지아의 얼굴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지아가 가만히 당할 리 없었고, 바로 손을 들어 미셸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말을 분명히 해야죠. 내가 언제 하용을 유혹했다는 거죠?”밖에 있던 정순영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급히 하용에게 연락을 취했다.미셸의 큰 목소리에 잠을 자던 윤화연도 깨어났다. 그러고는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뜨며 말했다.“무슨 일이죠?”윤화연이 방에서 나왔는데, 그녀는 마치 북풍 속에서 흔들리는 백목련처럼 청초하고 연약한 모습이었다. 가녀린 허리, 크고 맑은 눈, 그리고 뾰족한 턱선까지, 윤화연의 모든 모습은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미셸은 윤화연을 보는 순간, 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바로 이 여자가 진짜 원인이구나.’ 그러고는 지아를 밀치고 말했다.“당신한테는 나중에 따질 거야.”그리고는 보디가드들을 데리고 윤화연에게 다가갔다.“바로 너야! 너 같은 하찮은 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용을 유혹했지?”윤화연은 세상일에 무관심하게 살아왔지만, 미셸은 그녀를 알고 있었다. 미셸이 이곳에 나타난 순간, 윤화연은 모든 게 끝났음을 직감했다. 미셸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버렸다는 사실을.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미셸은 윤화연보다 키도 크고, 이제는 살도 찌며 더욱 큰 덩치로 다가왔다. 그런 미셸이 팔을 크게 휘둘러 윤화연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지아는 이를 막으려 했지만, 이미 보디가드들에 둘러싸여 있어 제때 막을 수가 없었다. 윤화연의 여린 얼굴에 미셸의 손이 세차게 내리쳤고, 순백의 얼굴에 선명한 손자국이 그대로 남았다.한 대로는 부족했는지, 미셸은 두 번째 손을 휘둘렀으나, 이번에는 지아가 그녀의 손을 막아섰다.“오늘 일은 상관없으니까 비켜!”지아는 미셸의 손을 강하게 잡고 말했다.“정말
지아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는 것을 보고, 윤화연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미셸이 이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미셸은 언제나 진실보다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윤화연은 임신 중이라 이렇게 가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지아는 급히 부장경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와 위치 정보를 보냈다. 여동생 문제는 그가 해결해야 했고, 지아는 미셸과의 복잡한 관계로 직접적으로 개입하기가 불편했다.문자를 보내고 나서 지아는 그 보디가드가 윤화연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보고 재빨리 뒤에서 그를 공격했다.“힘도 없는 여자를 상대하는 게 그렇게 재밌나?”보디가드는 지아를 돌아보며 말했다.“다치기 싫으면 비키시지 말입니다. 주먹에는 자비가 없습니다.”그러나 지아는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보디가드 역시 망설임 없이 지아와 맞붙었다. 그는 지아를 제압해 그녀의 팔을 뒤로 꺾으려 했으나, 지아는 날렵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그 틈을 노려 그의 아랫배를 걷어찼다.그러나 그 남자는 빠르게 반응해 팔로 그녀의 공격을 막았고, 발목을 잡아챘다. 지아는 몸을 뒤집어 그를 바닥에 내리치고, 두 다리로 남자의 목을 강하게 조였다. 그렇게 둘은 서로 물러서지 않고 영역 다툼하는 늑대처럼 치열하게 싸웠다.그 사이 미셸은 방해받지 않고 윤화연에게 다가갔다.미셸은 덩치가 크고 골격이 큰 편이었기에, 지아나 윤화연 같은 여리고 가녀린 여자를 볼 때마다 질투심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 여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남자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미셸은 윤화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문득 말했다.“생각났다. 우리 병원에서 만난 적 있지.”그날 미셸과 윤화연은 병원에서 같이 초음파 검사를 받았고, 윤화연의 초췌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여자가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는다고? 설마 임신한 건가?’미셸의 시선이 윤화연의 배로 향하자, 윤화연은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자신의 배를 가리며 미셸의 시선을 피하려 했
“아가씨!” 정순은 절규하며 사람들 틈을 비집고 윤화연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거대한 보디가드들이 그녀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때 이명란이 정순영을 단단히 붙잡으며, 눈에 음흉한 빛을 띠고 말했다.“그 년이 멋대로 굴 때,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야지.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았어야지. 젊은 게 제멋대로면, 늙은 것도 여우짓을 했을 게 뻔해.”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명란은 정순영의 얼굴에 차례로 따귀를 날렸다. 이떄 지아가 이를 보고 크게 외쳤다.“그만해요! 이렇게 하는 건 악행을 돕는 거예요!”평소 민연주 곁에서 차분하게 행동하던 이명란은 항상 조용하고 성실해 보였다. 그러나 오늘 지아는 그녀의 숨겨진 면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명란은 분명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이명란은 평소 소지아에게 불만이 많았고, 지금 부씨 집안 사람들이 없는 이 틈에 그녀는 더욱 거만한 태도를 취했다.“소지아 씨, 내가 너라면 더 이상 나서지 않을 거예요. 어쨌든 부씨 집안 사람이잖아요.”“서열상으로 보면 아가씨께 고모라고 불러야 할 정도죠. 그런데 집안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다른 사람 편을 든다고요?”“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죠?”그 말에 지아는 차갑게 대답했다.“지금 당신들이 하는 건 불법 침입에다 고의적인 상해예요. 화연 씨가 고소하면, 당신들 다 법정에 서게 될 거예요.”“아가씨, 정말 순진하시네요. 고소? 그깟 고소가 뭘 어쩔 수 있겠어요? 이 나라의 주인은 부씨 집안이에요.”이명란의 태도는 그야말로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 사이, 윤화연은 벽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시야가 흐려졌다. 머리는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해졌으나, 그녀는 필사적으로 말했다.“들어봐 주세요. 저는 하용의 여동생이에요.”“하용? 그 남자를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다니, 네가 어떤 관계인지 뻔히 보이는군. 정말 역겨워.”미셸은 비웃으며 갑자기 윤화연의 배를 향해 발을 날렸다.지아는
미셸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지아, 네가 우리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 너희 같은 한통속의 거짓말을 믿을 것 같아? 너는 건드릴 수 없으니, 저 사람을 건드리는 거야. 잘 봐, 남의 남자를 뺏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상황이 여기까지 오자, 미셸은 지아에게 받은 모든 분풀이를 윤화연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미셸은 윤화연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채, 마치 죽은 개를 끌고 가듯 계단 아래로 질질 끌어내렸다.지아는 한 명의 보디가드를 밀쳐냈지만, 다른 보디가드들이 곧바로 그녀를 다시 둘러쌌다. 그리고 지아는 미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당신들은 저 아가씨가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만 있을 거예요? 당신들에게는 양심이 없어요? 그 여자는 무고하다고요!”보디가드 중 한 명이 딱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죄송합니다만 저희에게는 명령이 최우선입니다.” 그들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지아 앞을 가로막았다.지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지아는 보디가드들의 총을 뺏으려고 시도했다. 상대가 두세 명이라면 가능했겠지만, 여덟 명이나 되는 전직 특수부대원들과 싸우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모두 키가 190센티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체격을 가진 자들이었고, 하나같이 강력한 상대였다.지아는 윤화연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고,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미셸은 윤화연을 차가운 겨울 바깥으로 질질 끌고 갔고, 마당에 있는 분수대는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미셸은 이미 기절한 윤화연을 그 얼음 위로 거칠게 내동댕이쳤다.쿵! 쿵! 쿵! 윤화연은 고통에 몸부림쳤고, 차가움과 고통이 그녀를 동시에 엄습했다. 윤화연이 가장 걱정한 것은 여전히 뱃속의 아이였다. 윤화연은 요즘 하용에게 간절히 애원해 어떻게든 이 아이를 지키고 싶어 했다.그러나 윤화연의 하복부는 이미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아파온 걸로 보면, 아이를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이 망할 년아! 네가 감히 내 남자를 유혹해?”“내 남자를 건드렸으니 넌 죽어 마땅해!”
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하용은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그의 커다란 몸이 관성 때문에 눈 속에 쓰러질 뻔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윤화연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곧이어 부장경과 도윤도 차에서 내렸다.도윤은 지아의 얼굴에 피가 묻어 있고, 손에 날카로운 칼을 쥐고 있는 것을 보자았다. 그러고는 즉시 가까이 다가가 지아를 쫓던 거구의 남자에게 단숨에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진봉과 진환은 도윤 직접 나서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에 놀랐지만, 빠르게 사람들을 데리고 보디가드들 앞을 막아섰다.부장경은 현장을 둘러보며, 비록 자신의 여동생이 또다시 무슨 일을 벌였는지는 몰라도, 그 정도의 잘못으로 상대를 이렇게까지 때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갑게 소리쳤다.“임유혁!”이도윤에게 맞은 남자가 군인처럼 자세를 바로잡으며, 코에서 흐르는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장관님.”“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부장경이 물었다.도윤은 빠르게 지아에게 다가가 자기 외투를 벗어 지아의 어깨에 걸쳤다. 왜냐하면 지아는 얇은 니트 하나만 입고 있었다.“지아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거친 도윤의 손끝이 지아의 얼굴을 쓰다듬자. 다행히 피는 지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지아는 차분히 말했다.“나는 다치지 않았어. 하지만 하용 씨의 여동생이...”도윤은 이전에 윤화연과 하용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는 했다.하지만 도윤은 다른 여자는 어찌 된 건 상관없지만 지아만은 무사해야 했다.지아는 급히 윤화연 쪽으로 달려갔다. 부씨 집안과 하씨 집안, 그리고 하용과 미셸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원래도 미묘했다.그러나 오늘 미셸이 이런 짓을 벌임으로써 그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다. 지아는 그들의 문제에 휘말릴 생각이 없었고, 단지 윤화연을 지키고 싶었다.하용은 이미 윤화연에게 달려가 있었고, 미셸은 마치 승리한 자처럼 윤화연의 머리카락을 쥐고 비웃으며 말했다.“하용, 이게 네가 나를 배신한 결과야.”윤화연은 정신을 잃었다가도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
시월도 소영수의 침상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그러셨어요... 저희가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을 텐데요...” “아가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르신께서는 너무 갑작스럽게 가셨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마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시하가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집사님, 소식을 철저히 숨겼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알게 되신 거죠? 대체 누굽니까? 누가 전화를 한 겁니까?”“이미 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해외에서 걸려 온 가상번호였습니다. 발신자의 신원은커녕 구체적인 IP 주소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양준철의 두 주먹은 떨리듯 꽉 쥐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뼈까지 갈아버려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거라고요!” 40년 전만 해도 양준철의 수법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양준철은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렀다. 소영수가 양준철을 부하로 삼은 것도 그의 잔혹함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은 양준철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릴 정도였다.하지만 그런 양준철이 지켜야 할 은인이 눈앞에서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이는 양준철에게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오빠, 지금은 큰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결단을 내려야 해. 할아버지 장례는 어떻게 할 거야?” 시하는 피눈물을 머금은 듯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입관하고 조용히 묻어 드리자. 최소한... 할아버지께서 편히 잠들도록 해드려야지. 양 집사님, 장례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시하는 소영수의 시신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할아버지, 평생을 할머니 곁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제야 소원을 이루셨네요.”“하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시다니... 다 제 잘못입니다.
시월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아가씨, 멀리 떨어지세요. 감정 상태가 아주 불안정한 것 같아요. 아가씨까지 다칠 수도 있어요.”“우리 오빠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장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방금 어르신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비행기 사고로 연락이 안 되고, 시언 도련님은 이제 막 수술을 마친 터라, 지금 집안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시하 도련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시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할아버지가 왜요?” “집안에 닥친 변고를 들으신 순간 심장 발작으로...” “거짓말!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시하는 옆에 있던 신발을 장덕수에게 집어 던졌고, 깜짝 놀란 장덕수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다 끝났어요, 시하 도련님도 미쳐버리셨다고요!” 지아가 침착하게 말했다.“두 분은 나가 있으세요. 시하 오빠는 제가 돌볼게요. 지금은 큰 충격을 받아서 안정할 시간이 필요해요.”“안 됩니다, 소 선생님, 그건 너무 위험해요. 도련님이 정신을 잃고 선생님을 다치게 할지도 모릅니다.”“괜찮아요. 시하 오빠의 다리 상태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해칠 수 없을 거예요.” 지아가 무무를 불러 문을 잠그자, 방 안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고, 피리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장덕수가 안절부절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이걸 어쩌죠... 도련님께선 원래도 심신이 불안정하셨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무너지신 모양입니다. 이 와중에 어르신까지...”“본가로 갑시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시언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리자,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흉터를 감싼 붕대가 여기저기 엉성하게 드러났지만, 시언의 표정만큼은 이전과 다르게 단단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오빠...”시
그 순간, 지아의 말에 시하의 눈빛이 굳어졌다.“그러니까... 아직 우리 가문에 스파이가 있다는 거야?”“잘 생각해 보세요. 소명담의 부검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 사람이 죽은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즉, 심세호가 그 사람의 신분을 사용한 것도 몇 년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죠.”“하지만 소씨 가문의 불행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잖아요. 족히 십여 년은 되었다고요! 내부에서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지아의 지적에 시하는 마침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지아야, 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물론 오빠를 탓할 수는 없어요. 소씨 가문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원래 당사자는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없는 법이잖아요.”“상대는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판을 짰을 거예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란 뜻이죠.” 시하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스쳤다.“그럼 큰형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조경숙이 끌려간 것도 끝이 아닐 수 있었으며, 어쩌면 그게 시작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큰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지금 저렇게 나서는 건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라고!” 시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형한테 당장 알려야겠어. 그리고 이 일은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야 해. 요즘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어.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실 거야.” 지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하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울렸다. “누구야?!”시하의 얼굴에는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작은 소리조차 불길하게 들리는 듯했다.“도련님, 큰일 났습니다!”또 장덕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나가 볼게요.”지아가 시하의
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절대 오빠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오빠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그래.”시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나는 아버지 일부터 정리할게. 월아, 집안을 부탁해.”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떠나기 전, 시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그리고 월아, 소 선생님도 우리 사람이야. 무슨 일이든 소 선생님께 털어놓고 도움을 받도록 해.” “네, 알겠어요.”사람들 앞에서의 시월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시월의 얼굴은 감출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해졌다. “죽일 X! 그 X이 뭔데 나랑 같이 소씨 가문을 관리한다는 거야?” 심장후는 그런 시월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됐어, 우리 계획은 이미 반이나 성공했잖아. 이제 소씨 가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거야. 이미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 발버둥칠 여력도 없을 거라고.” “그래도 분하단 말이야. 지금이야말로 소씨 가문을 접수하기 가장 좋은 기회인데...” “소시후도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걸 거야. 네가 혼란에 휩싸일까 봐 두려운 거지. 여태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조급해할 거 없어. 조금만 진정해 봐.” 시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며 담배를 꺼내 들었는데, 심장후는 서둘러 그녀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빨간 입술 사이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월의 얼굴은 어느새 차분함을 되찾았다. “소씨 가문의 인간들 따위는 두렵지 않아. 이제 남은 건 그 노친네 하나뿐이야. 그 인간만 죽으면 소씨 가문은 완전히 끝장날 거라고. 한 명은 팔 하나를 잃었고, 하나는 절름발이가 됐잖아? 이제 별거 아닌 잡것들만 남았어.”“하지만 그 노친네는 만만치 않은 상대잖아.” “그래봤자 그 노친네의 시대는 가고, 우리의 시대가 왔어. 늙은 데다가 병까지 든 노친네가 무슨 힘을 쓰겠어? 내가 불쏘시개 하나만 더 던지면, 불길은
시후도 맞장구쳤다.“역시 우리 월이가 생각이 깊구나.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왜요, 오빠?”“상대의 목표는 우리 부모님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연이어 위기에 처했고,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야. 그 사람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월아, 앞으로는 외출할 때 늘 경호원을 대동하고, 출발 전에 차량도 철저히 점거해야 해. 그리고 당분간은 모든 공개 활동을 중단하도록 해.” 시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큰오빠, 저는 우리 소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우리 가문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아빠도 많은 걸 바치셨잖아요. 아빠가 심혈을 기울인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건 싫어요. 지금은 저만이 가문을 책임질 수 있는데,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복잡해질까 봐 걱정된다고요!”“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아. 월아, 넌 우리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야. 오빠들이 너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잖아. 게다가 아버지도 떠나시기 전에 시간을 벌 수 있는 준비를 해두셨을 테니까, 당분간은 집에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디든 나가면 안 돼, 알겠지?” 시후가 시월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너 자신을 꼭 돌봐야 해. 오빠들은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월이를 꼭 지킬 겁니다.” “그래.”시후가 고개를 돌려 심장후를 바라보았다.“장후야, 우리가 이 사건과 연관 있는 심세호라는 사람을 찾아냈는데, 혹시 심씨 가문의 사람일까?” 심장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심세호가 저희 할아버지의 사생아인지는 모르겠네요. 저희 아버지에게 큰아버지 이전에 사생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사람은 할아버지를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하찮은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어요.”“하지만 그 술집 여자와 사생아 모두 우리 심씨 가문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죠. 제 아버지조차 그 사람과 왕래가 거의 없었으니, 우리 같은 후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지아는 새로 등장한 인물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소시월과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 보였다. 지아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시후가 차분히 설명했다.“심씨 가문의 장남, 심장후예요. 월이의 약혼자이기도 하죠.” ‘심씨 가문?’지아는 순간 이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돌고 돌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온 셈이었으니 말이다. 도윤의 어머니인 심예지 역시 심씨 가문의 사람이었으나, 과거의 그녀는 사랑을 택하며 심씨 가문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런 심씨 가문의 후계자가 소시월의 약혼녀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심장후가 자연스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 “이분은...?”시월이 눈물을 훔치며 소개했다.“내가 얘기했던 뛰어난 의술을 갖춘 소 선생님이셔. 우리 시하 오빠가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 지아가 심장후의 손을 잡아끌며 지아 쪽으로 향했다.“소 선생님, 제 약혼자예요.” “안녕하세요.”지아가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인사했다. “소 선생님, 반갑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지아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장후 역시 지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시후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돌렸다.“소 대표님께서는...” 지아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살짝 굳어지자, 시월이 급히 설명했다.“미안해, 오빠, 내가 이야기했어. 장후 오빠랑 전화하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시후는 이런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시월과 장후의 사이를 알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원래 올해 두 가문이 결혼 문제를 상의할 계획이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모든 것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장후도 우리 소씨 가문의 사람인 셈이니까.” 이미 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으니, 시후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끝은 마음속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타신 비행기가 폭발했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