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아는 절망에 빠졌다. 그녀는 이도윤이 착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이토록 모질고 악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이도윤에 대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민아야, 너 그거 알아? 우리 아빠 사고난 날 나는 심지어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어. 왜냐하면 그날은 이도윤의 생일이었거든…….”김민아는 티슈 몇 장을 뽑아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지만, 소지아의 눈물은 마치 샘구멍처럼 모든 휴지를 촉촉하게 적셨다.“이도윤은 종래로 생일을 보내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는 그의 여동생과 생일이 같은 날이거든. 그래서 매번 생일 때마다 그는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고, 그를 달래기 위해 나는 모든 방법을 생각했고. 난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그날 나는 정성껏 모든 것을 안배했지만 그가 집에 돌아오는 것 대신 우리 아빠가 교통사고로 위독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전화를 받았지 뭐야.”소지아는 자신의 가슴을 꼭 누르며 울음을 터뜨렸다.“난 전에 이도윤 사이의 악연을 죽음으로 해결해야 한다면 그 사람이 차라리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지금은 후회하고 있는걸. 왜 죽어야 하는 사람이 그 남자가 아닌 나여야만 하는데? 왜 내가 불치병에 걸렸을까! 하느님은 왜 이렇게 눈이 없는 것일까!”“지아야, 일단 좀 진정해. 그가 현장에 나타난 것은 그가 이 일을 계획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어. 이건 누가 너에게 보낸 문자지? 만약 다른 속셈을 가진 사람이라면?”“이건 내가 돈을 써서 우리 아빠의 일을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개인 탐정이 보낸 거야. 나는 그와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그는 날 해칠 이유가 없잖아? 그날은 이도윤 여동생의 생일이기 때문에, 그 남자는 이 또한 우리 아빠의 기일로 만들고 싶었던 거야! 아마 그도 그렇게 오래 지체됐으면서 우리 아빠가 여전히 살아있을 줄은 몰랐겠지.”소지아는 씁쓸하게 웃었다.“난 또 그가 나 때문에 소씨 집안을 궁지로 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그도 날 죽이고 싶었을 거야. 참, 아이도 있었
김민아의 마음속에 소지아는 줄곧 밝고 에너지가 넘쳤고, 또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 받아 올바른 인생관과 교양을 지니고 있었다.그녀는 여태껏 더러운 수단으로 남을 상대하는 것을 하찮게 여겼다. 비록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소지아는 일반인을 조금도 무시하지 않았고, 자신감이 있으면서도 존귀했으니, 이도윤이 그녀와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김민아 자신도 여자로서 소지아를 좋아했는데, 그녀의 깨끗하고 해맑은 모습은 자주 자신으로 하여금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그러나 지금 앞에 있는 여자는 그런 소지아의 그림자가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마치 망가진 인형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운 눈에는 감정이 조금도 없어 김민아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지아야, 너 지금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소지아는 마치 미친 듯이 울고 또 웃었다.이 몇 장의 사진은 그녀를 무너뜨렸고 또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소지아는 이제야 호의는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자신을 괴롭히는 기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또박또박 말했다.“그는 나를 도와 레오를 찾지 않을 거야. 그는 단지 나를 괴롭힐 이유를 찾고 싶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나는 단순하게 아빠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니.”“지아야.”“나는 그가 기르는 개와 같아. 그는 기분이 좋으면 가끔 나에게 선심을 베풀었고, 나는 또 그의 은혜에 감사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그에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웠지. 그의 눈에 난 아마 광대와 같은 존재일 거야. 분명히 그렇게 아픈데도 그를 기쁘게 해야 하다니. 그리고 그는 거리낌없이 나의 상처를 줄곧 짓밟고 있었어!”“지아야, 진정해.”“진정해? 민아야, 나더러 어떻게 진정하라는 거지? 내가 당한 불행은 모두 그들 때문인데, 왜 죽어야 하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나인 거지?”이런 소지아는 김민아를 두렵게 만들었다.“지아야, 너 절대로 무슨 바보 같은 짓 하지마. 그래, 그 백채원은 아주 꼴보기 싫은 년이지, 나도 인정해. 그러나 그녀의 아
김민아의 말을 듣고 소지아는 더욱 흥분해하며 보기 좋은 미간도 험상궂어졌다. 그녀는 크게 소리쳤다.“그는 당연히 죄가 없겠지, 그럼 내 죽은 아이는 죄가 있는 거야? 원래 죽어야 할 사람은 이지윤이었어야 했어!”소지아는 자신의 아픈 심장을 안고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만약 그가 이 세상에 오지 않았다면 내 아이도 죽지 않았을 거야.”“미쳤어, 너 어떻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야? 지아야, 내 말 잘 들어. 비록 내가 보기에는 덜렁대 보이지만, 난 정말 운명을 믿어.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다 정해진 일이니 너의 아기는 단지 미리 하늘로 돌아가는 천사로 됐을 뿐이야. 네가 고개를 들면 그는 아마도 너를 보고 있을 거야. 지아야, 그는 네가 잘 살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고 네가 평생 후회할 일을 하게 하고 싶지 않을 거야. 넌 착하니까 다른 사람도 이런 고통을 겪게 할 생각은 하지 않겠지.”소지아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늠름한 눈빛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말했다.“너 내가 요 1년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아니? 왜 우리 집안이 망했을 때, 백채원 일가족이 단란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왜 이도윤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거냐고?”“난, 정말 내가 겪은 고통을 천배만배로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지아야.” 김민아는 걱정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지아는 갑자기 웃었다.“날 그렇게 보지 마. 우리 아빠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지아야, 나도 네 고통을 겪은 적이 없으니 그 느낌을 이해한다고 말 못하지, 하지만 난 단지 네가 무사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 제발 진정 좀 해.”“안심해,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냉정하니까.”김민아는 매우 걱정했다. 소지아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에 그녀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다.떠날 때, 그녀는 소지아가 콧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는데, 그 콧노래가 바로 전에 부르던 자장가였다.그때 소지아는 배가 이미 나왔고, 아이의 장난감을
며칠 전에 이도윤은 이미 레오를 찾았지만 소지아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이번에 그는 출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는 직접 레오를 데리고 돌아오고 싶었다.”‘지아는 레오를 보면 엄청 기뻐할 거야.’저도 모르게 올라간 자신의 입꼬리를 보고 이도윤은 즉시 이 생각을 단념했다.“그녀가 즐거워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그가 레오를 찾아주는 건 순전히 그녀의 생사를 장악해서 더욱 쉽게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서였다.외국에서 며칠 더 머물다가 이도윤은 갑자기 레오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전에 그들은 이미 의사소통을 마쳤고, 심지어 그는 소계훈의 검사 보고서까지 봤는데, 아주 우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하고는 집도에 동의했다.그러나 이도윤이 정말 그를 찾으러 왔을 때, 레오는 영문도 모른 채 사라졌다.“대표님, 나는 이 레오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진환이 입을 열었다.이도윤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지만 눈빛은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였다.“우리가 당한 거야.”이 레오는 고의로 그에게 행방을 들킨 것이다. 전에 이도윤은 이미 직접 와서 레오를 데리러 가겠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착오가 생겨 상대방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이는 분명히 이도윤을 놀리고 있었다.“이 하늘아래에서 대표님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처음입니다.”진환은 이미 마음속으로 그의 명복을 빌었다.이도윤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이 소식을 블랙 넷에 퍼뜨려. 이씨 집안은 20억의 현상금을 걸고 레오의 행방을 찾을 거야. 산 사람을 데려오거나 죽은 시체를 내 앞으로 데려올 수 있지.”“예, 이 대표님, 하지만 사모님 쪽은…….”진환은 현재 소지아와 이도윤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계훈은 두 사람이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이도윤이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아마 두 사람의 사이는 더욱 나빠질 것이다.“그녀는…… 일단 먼저 돌아가지.”‘며칠 못 봤는데 그녀의 미간의 상처는 다 나았
교통사고로 소계훈을 죽이지 못했기 때문에 또 소계훈이 심장병으로 죽게 하고 싶었다니. 하지만 소계훈은 죽지 않고 식물인간이 되었다.소지아는 손가락을 조금씩 조였고, 눈빛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원한이 가득했다.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진봉은 그녀를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소지아는 공항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아버지가 깨어날 수 있을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고, 중요한 것은 그녀가 하루 살아있는 한, 그녀는 그들을 편안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어차피 그녀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몇 사람을 데리고 같이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소지아는 휴게실에서 잠시 있다가 착지하는 항공편표를 보고 5분 앞당겨 지나갔다. 이렇게 하면 이도윤은 그녀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멍청하게 줄곧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요 며칠 A시의 날씨는 매우 좋았고, 화창한 날씨에도 눈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기는 제시간에 도착했다.이도윤이 VIP통로에서 나왔을 때, 소지아는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그의 곁에 다른 한 사람이 서있는 것을 발견하였다.소지아는 비록 이 남자를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었다.백정일.그때 소씨 집안에 와서 변진희를 데려간 사람이 바로 그였는데, 그는 바로 백채원의 아버지였다.이도윤과 백정일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게 오랫동안 잊지 못하게 할 수 있고 또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그와 떠났으니, 백정일의 조건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솔직하게 말하면 소계훈과 그는 모두 잘생겼지만, 소계훈은 우아한 기질이고 그는 날카로운 칼에 가까웠다.바로 지금처럼,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이미 자신에게 떨어졌다.소지아는 심장이 조여오더니 등골이 오싹해졌고 마치 짐승에게 들킨 느낌이었다.그때 소지아는 무척 어렸는데, 그가 지금 자신을 알아보았는지 모르겠다.사실이 증명하다시피 그는 소지아를 알아보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녀 앞에 멈추었다. 이때 그의 두터운 목소리가 울렸다.“지아야,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소지아는 누군지 볼 필요가 없었다. 뒷좌석의 남자는 양복이 몸에 딱 맞아 그의 완벽한 어깨와 허리 라인을 그려냈다.셔츠 단추는 이 어두운 밤에 등불의 반사로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마치 남자의 그 날카로운 눈과 같았다.단지 실루엣만으로 이미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남자에게서 나는 설송 냄새는 그녀의 숨결을 통해 몸속으로 파고들어 이 좁은 뒷좌석에서 애매한 분위기를 풍기게 했다.그녀는 남자를 밀어내려는 생각을 억지로 참으며 자신의 다음 계획을 위해 준비했다.“어디 갔었어?” 소지아가 먼저 차 안의 적막을 깼다.한 사람을 내려놓은 좋은 점은 바로 그의 일상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sns를 주시하거나 또 그의 프로필 사진을 클릭해서 한 번 또 한 번 그의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만약 이도윤이 그녀를 공항으로 부르지 않았다면 소지아는 이도윤이 출국한 줄도 몰랐다.“출장.” 이도윤은 간단하게 대답했다.그는 레오의 일을 말하려고 했는데, 지금 이런 분위기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이상했다.지금 그녀는 자신의 품에 기대어 있었고, 허벅지에서 그는 그녀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이 좁은 공간에서 이런 친밀한 자세로 있으니 사람은 저도 모르게 목이 탔고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이도윤은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길쭉한 손끝은 소지아의 부드러운 목을 따라 위로 이동했고, 지나간 곳은 더 많은 열기를 띠었다.이도윤은 마지막에 그녀의 눈썹에 머물렀고, 그는 그녀의 뺨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목소리는 많이 부드러워졌다.“상처는 다 나았어?”바깥의 불빛을 빌어 그는 그녀의 눈썹에 작은 흉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는 거친 손가락으로 그녀의 상처를 가볍게 문지르며 얇은 입술에서 내뱉은 숨결은 그녀의 이마를 은은하게 떨어졌다.“그날 일, 고마워.”그녀가 이지윤을 구했기 때문에, 이도윤은 보기 드물게 그녀를 부드럽게 대한 것이다.소지아는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자
그녀의 눈빛은 이도윤의 그윽한 눈동자과 부딪쳤고, 어슴푸레한 빛이 그의 잘생긴 얼굴 위에서 흔들리며 그의 얼굴을 반은 밝게 반은 어둡게 만들었다.마치 이도윤 본인처럼, 때로는 천사와 같고 때로는 악마와 같았다.소지아는 이 조건을 제기할 때 마음속으로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그와 다른 여자가 낳은 아이를 위한 돌잔치였다.두 사람의 약혼식이 연기되자, 백채원은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돌잔치를 연다며 일찌감치 초청장을 널리 보내 명사들을 초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하려고 했다.소지아는 전처의 신분으로서 참가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비록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타고난 도도함은 시시각각 압력을 가하고 있어 소지아의 긴장감을 더욱 심화시켰다.그녀 자신조차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꽉 쥔 손바닥에서 이미 땀이 배어 나왔다.그는 그녀를 한참 동안 진지하게 쳐다본 후에야 비로소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좋아.”긍정적인 답을 듣고서야 소지아는 긴장을 슬쩍 풀었다.그녀는 이도윤 앞에서 너무 많은 표정을 드러내지 못했는데, 그의 깊은 눈은 마치 한눈에 그녀의 속셈을 간파할 수 있는 것 같았다.차는 곧 이씨 집안 본가에 도착했다. 소지아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진봉은 이미 그녀를 위해 차문을 열었는데, 오늘 저녁에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매우 세서 살을 에는 찬바람이 사방팔방에서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이도윤은 예전처럼 빨리 걷지 않고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소지아가 차에서 내린 후에야 그는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고, 소지아는 그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그녀는 본가에 대해 좋은 인상이 없었지만 다음 계획을 위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순종해야 했다.2층의 문이 열리자 소지아는 신발을 질질 끌며 무척 내키지 않고 따라갔다.그녀의 발끝이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몸은 누군가에 의해 벽으로 밀어붙였다.“이…….”말을 꺼내기도 전에 소지아는 남자의 강한 기운
이도윤은 두 손을 그녀의 양측에 받치고 훤칠한 몸을 약간 숙여 소지아를 자신의 품속에 가두었다.이도윤은 이런 높은 곳에서 사람을 조종하는 느낌을 가장 좋아했다.그리고 그녀는 마치 사냥감처럼 도망갈 곳이 없었다.그는 높은 곳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눈빛에 강한 욕망을 드러냈고,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올린 후 바로 키스했다.“의견 있어도 참아.”오만하고, 매정했으며 또 포악했다.소지아는 그의 질고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가볍게 들어올리더니 자신을 세면대 위로 올렸다.그녀가 허둥지둥할 때, 그의 어느 부위를 만졌는데, 이도윤은 멈추었다.소지아는 그제야 남자의 왼팔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새빨간 피는 눈밭에 핀 매화처럼 하얀 셔츠를 조금씩 물들였다.소지아는 마침내 핑계를 찾으며 이도윤을 밀어냈다.“당신 다쳤어.”이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려 했다.“별일 아니야.”“이렇게 많은 피를 흘렸는데 어떻게 별일이 아니겠어? 상처가 찢어진 게 틀림없으니 얼른 가서 다시 싸매.”그는 눈썹을 들며 말했다.“네가 해.”‘싸매면 싸매지 뭐, 이 남자에게 먹히는 것보다 낫지.’이 이유로, 이날 밤, 소지아는 결국 그에게 자신을 건드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이지윤의 돌잔치가 다가왔다.연회는 유람선에서 열리는데, 이는 백채원이 직접 선택한 장소로 아마 소지아에게 자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1년 전, 그녀는 유람선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지금도 그 푸른 바다를 보면, 소지아는 망설임 없이 백채원을 향해 헤엄쳐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그리고 자신이 조금씩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바닷물에 삼켜지는 그 느낌은 또 무척 무기력했다.밤이 곧 다가오자, 진봉은 약속대로 그녀를 데리러 왔고, 예전과 다름없이 말이 많았다.“사모님, 오늘 밤 유람선은 무척 떠들썩할 거예요. 불꽃 놀이도 있고요.”그의 본의는 소지아가 이번 해를 매우 고생스럽게 보냈으므로 잘 즐기라고 하고 싶
지아를 바라보는 장민호의 창백한 얼굴에 갈망이 스쳤다.“지아 씨, 나랑 함께했던 지난 2년 동안, 단 한 순간이라도 저를 좋아한 적 있었나요?” 차갑게 장민호를 응시하는 지아의 눈빛에는 얼음처럼 냉랭한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 “아니요, 늘 당신의 죽음만을 바랐어요.” 장민호가 쓸쓸히 웃었다. “그랬군요.” 모든 일은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법이었다. 탕!놀란 새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붉은 선혈이 땅에 흩뿌려졌다. 장민호는 무덤의 차가운 사진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미연아, 너한테 빚진 건 전부 갚았어...” 지아는 눈앞에서 연이어 죽어간 사람들을 보며 가슴속 깊은 곳이 조여오는 고통을 느꼈고, 천천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미연아, 우리의 복수가 이렇게 끝이 나네. 이젠 너도 편히 쉬어.” 지아는 이날을 너무도 오래 기다려왔지만, 복수를 끝낸 후에는 마음이 텅 빈 듯 허전하기만 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금, 따뜻한 봄바람 속에서 해경의 뒤를 쫓는 무무의 발목에서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해경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외쳤다.“어서 잡아봐!” 멀리서 꽃으로 화환을 엮던 소망이 지윤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허리 좀 숙여봐.” 지윤은 순순히 허리를 숙였고, 소망은 지윤에게 화환을 씌워주었다.“와, 정말 잘 어울린다! 아빠랑 똑같이 생겼어!” 지아는 어린 시절의 도윤을 보듯 따스한 눈길로 지윤을 바라보았다. “자기야.”바로 그때, 지아의 귓가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아가 고개를 돌리자, 한쪽 무릎을 꿇은 도윤의 모습이 보였다.도윤이 한 손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든 채 말했다.“나랑 다시 결혼해 줄래?” 아이들이 옆에서 환호하며 소리쳤다.“결혼해요! 결혼해요!” 지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도윤 씨...”도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지아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지아야, 다시는 너한테 상처 주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소망이 꽃으로 만든
사랑에 미친 장민호는 이 모든 것이 지아가 2년에 걸쳐 설계한 함정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지아가 도윤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순간에야 자신의 정체가 이미 드러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끝났구나...’비록 소씨 가문 사람들이 이겼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심세호와 조경선, 그리고 소시월이 힘을 합쳐 저지른 일들로 많은 이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으니, 소씨 가문 사람들이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닌 셈이었다. 심지어 소시영 또한 그들의 희생자가 되었고, 젊은 나이에 영면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지아가 시영의 무덤 앞에서 향을 올리며 말했다.“언니, 다음 생엔 꼭 행복하게 살자. 이번 생에는 내가 가족들을 잘 돌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바로 그때,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나뭇잎 한 장이 지아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마치 시영이 지아의 말에 응답하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소영수는 소씨 가문 사람들과 함께 강렬한 기세로 돌아왔고, 환희 역시 마침내 안식의 땅에 묻혔다. 환희의 장례식은 비밀리에 치러졌지만, 부남진은 몰래 그곳을 찾았다. 부남진과 소영수는 무덤 앞에서 서로를 마주했는데, 생전 환희에게 가장 중요했던 두 남자가 환희가 죽고 나서야 얼굴을 마주한 것이었다.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비추는 가운데, 눈가가 붉어진 부남진은 가지에서 가장 어린 복숭아꽃 한 송이를 꺾어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그 순간, 지아의 눈에 노인이 아닌 아침 햇살 속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낸 젊고 잘생긴 소년의 모습이 비쳤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던 조경숙의 눈도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지아는 장민호와 소시월을 데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다. 산속은 한창 따듯한 봄이었다. 산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강미연의 무덤 앞에는 형형색색의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소시월은 숨이 가쁜 상태로 강미연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장민호는 무덤에 새겨진 이름을 보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런 날이 올 줄
“오빠, 대체 무슨 일이에요?”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지아는 루이스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기에, 지아가 이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시후뿐이었다. “지아야, 가까이 오지 마. 여긴 너무 위험해!”시후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지자,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실험은 곧 성공할 거야. 저 아이는 환희의 후손이라, 몸속에 환희와 같은 피가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 순간, 지아의 얼굴빛이 달려졌다.‘스승님이 나한테 유독 신경 쓴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 예전의 지아는 그것이 자기 몸과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루이스는 처음부터 지아의 정체를 알고 있던 것이었다. 루이스가 말한 ‘생체 개조 계획’도 사실은 환희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저 사람...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할머니를 부활시키려고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다니!’ ‘하마터면 개조 계획이라는 거짓말에 깜빡 속을 뻔했어!’ 백발이 성성한 소영수가 아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루이스, 그만둬! 환희는 이미 죽은 지 오래야. 환희의 혼도 이미 윤회에 들었을 텐데 부활이라니, 그건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야!” “네가 그동안 저질러온 실험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는지 알아? 아,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네 과거 실험 데이터를 살펴봤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실패했더군. 그런데도 네가 저 아이를 건드리지 못한 이유는...”소영수가 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아이가 환희의 핏줄이고, 환희와 닮은 얼굴을 가졌기 때문이었어. 혹시라도 실험에 실패할까 봐 저 아이를 건들 수 없었던 거야, 그렇지?” 지아는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했고, 환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느꼈다.‘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몇 년 전에 목숨을 잃었을 거야.’ 루이스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내 최고의 실험 대상이야. 어서 스승인 나를 도와주렴.” 시후와 도윤이 동시에 지아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섬에 도착한 지아는 섬의 분위기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섬 곳곳에 있던 로봇들은 사라진 듯했는데, 원래라면 섬에 내리자마자 로봇들이 눈에 띄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섬 가장자리에 밀집한 수많은 군함이 눈에 띄었고, 그것들은 대부분 외국 민간 무장 단체와 용병들이 사용하는 군함 같았다. ‘대규모 인원이 섬에 상륙한 모양인데...’ ‘대체 무슨 일이지?’ ‘스승님은 괜찮으신 걸까?’ 루이스가 지아를 인체 개조 대상으로 삼으려 했음에도 지아는 루이스가 살아남길 바랐는데, 루이스처럼 뛰어난 과학자가 유명을 달리한다면 큰 손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스승님!”“자기야, 진정해. 이 섬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윤은 지아를 재빨리 진정시켰다. 이렇게 많은 군함이라면 분명 강력한 무기를 많이 실었을 테지만, 섬의 꽃과 나무, 건물들은 여전히 온전했다. “아니야, 이 섬에는 원래 사람이 많지 않았어. 대부분 로봇이었단 말이야! 그나저나 우리 오빠는 어디 있는 거지?” 지아는 며칠 전 시후가 치료를 계속하기 위해 여기에 왔던 것을 떠올린 후,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섬 안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잠시 후, 지아는 겨우 작동하고 있는 한 로봇을 마주했는데, 로봇에서는 전기 스파크가 튀고 있었고, 몸체에서는 쇠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이스 스승님은 어디 있어?” 지아가 다급히 물었지만, 이미 언어 기능을 상실한 로봇은 전자 화면에 두 글자를 표시할 뿐이었다. [뒷산.]‘뒷산이라니!’뒷산은 루이스가 지아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였다. ‘거기엔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야!’ 지아는 미친 듯이 뒷산으로 달려갔다.그곳에는 수많은 로봇과 인간들이 쓰러져 있었고, 원래 뒷산 입구를 막고 있던 기계 문도 강제로 파괴된 상태였다.‘큰일이네. 루이스 스승님은 괜찮으신 걸까?’ 루이스의 로봇도 많은 수를 자랑했는데, 상대는 그보다
그날, 부남진과 소임호는 단둘이 오랜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물론 소씨 가문 사람들은 그것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단지 가족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하지만 민연주는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갑자기 이렇게 많은 자손이 생기다니, 만약 저 사람들이 모두 부씨 가문 사람이 된다면, 내 아들과 딸에게 돌아갈 재산이 줄어들진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법이다. 정말 이런 상황에 닥친다면, 그 누가 자기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소임호와 부남진이 이야기한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것은 바로... 소씨 가문 사람들이 소임호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임호는 부씨 성으로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즉, 소임호의 어머니가 소영수와 결혼한 이상, 소임호를 비롯한 그 자손의 생에는 소씨 가문 사람들에 속했기에, 부씨 가문과는 친척 관계로 왕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부남진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소영수가 자기 자손들을 잘 대해준 것을 생각하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소임호의 자손들에게 잠시 부씨 가문에 머무르며 상처를 치료해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지아는 돌아온 이튿날 아이들을 데리고 묘지로 갔는데, 도윤과 함께 환희와 소계훈을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묘지는 산속에 있었고, 산에는 복숭아나무와 배나무가 활짝 꽃을 피워 푸른 신록이 빛나고 있었다. 소계훈의 묘 앞에는 이끼가 조금 늘어나 있었는데, 지아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은 채 오랫동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아빠, 드디어 제 가족을 찾았고, 배후의 손도 밝혀냈어요.” “유일하게 아쉬운 건... 그 여자를 데리고 와 아빠의 묘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도록 하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저는 이제 성장했고, 다른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도윤은 지아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소계훈의 묘비 앞에 담배 한 개비를 놓았다. “기대를 저버려서 정말 죄
지아 일행은 다시 소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시후가 관리 중인 소씨 가문은 이미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시하의 다리도 많이 회복되어 이제는 더 시아 장애를 가장할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시언의 건강은 단기간에 완전히 회복될 수는 없었지만 눈에 띄게 좋아졌고, 소임호 역시 지아가 떠나기 전보단 훨씬 건강해 보였다. 소시월이라는 사람 때문에 소씨 가문은 거의 전멸할 뻔했지만, 지금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아가 돌아오자 소임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지아야, 시후한테 네 몸에 독벌레가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은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다 나았으니까요. 그런데... 소시월은 아마 바닷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아요.” 소임호가 지아를 단단히 껴안으며 말했다.“괜찮다, 괜찮아. 난 그저 너희들만 무사하면 그만이야.” 짧디짧은 시간에도 몇 살은 더 늙어버린 듯한 소임호의 모습을 보며 지아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엄마 쪽 소식은 없는 거예요?”“시후가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는데, 아직 추적 중이란다. 참, 부씨 가문에서 우리가 한 번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최근 부남진은 신분상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소씨 가문 사람들이 본국으로 가야만 했다. 마침 지아도 다른 아이들이 그립던 터였다.“좋아요. 아이들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분명히 기뻐할 거예요.” 그렇게 가족들은 전용기를 타고 본국으로 향했다. 본국은 이미 초봄의 시기로 접어들어, 추운 겨울을 지난 후 생기가 넘치는 대지를 뽐내고 있었다. 나뭇가지엔 새싹이 돋았고, 벚꽃이 활짝 피는 계절이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었고, 무무는 연한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지아의 곁을 따랐다. 도윤도 모처럼 정장을 입지 않고 모녀와 함께 커플룩을 맞춘 듯한 연한 초록색 줄무늬 셔츠와 흰 바지를 입고 있었다. 도윤은 차 문을 열고 무무를 안아 내렸다. 세 사람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눈길을
배신혁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심규철은 말 그대로 충격에 휩싸였고, 머릿속엔 온통 한대경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에 대한 상상이 가득했다. ‘낡은 민간 보호시설에서 삼류, 사류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란 걸로도 모자라, 그 무엇도 가져본 적이 없으니 잃는 것도 두렵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이영화가 세상을 떠난 이후, 심규철은 심장후에 대해 그다지 마음을 쏟지 않았지만 물질적인 부분만큼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친아들을 찾은 지금, 심규철은 가슴 한편이 아려져 왔다. ‘그 결혼이 아들의 유일한 소망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주고 싶어.’ 한편, 지아는 바닷가에 서서 멀리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시월은 이미 바다 밑에 잠겼을 테지만, 지아의 마음은 조금도 평온하지 않았다. ‘죄의 근원이 사라지면 무슨 소용이야? 우리 소씨 가문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고, 엄마는 아직 행방불명 상태인데.’ 지아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아직 젊은데,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한대경이 물었다. 지아의 옆에 털썩 앉은 한대경은 바닥의 모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한대경은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앉아봐. 별건 아니고, 그냥 얘기나 좀 하자고.” 지아는 한대경을 한 번 흘긋 보고,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난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아니, 조선시대도 아니고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거야, 뭐야?”한대경은 지아가 자신을 뱀 보듯 피하는 모습이 못마땅한 듯 말했지만,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한대경, 우리가 친구로 지낼 순 있어도 그 이상은 불가능해.” 그 순간, 갑자기 다가온 한대경이 짙은 남성미로 지아를 압도했다. “소지아, 진짜 날 피하고 싶었다면, 애초에 나한테 희망을 주지도 말았어야지!” “정말 미안해, 한대경.” 지아는 그 임무에 한대경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터였다. “시도도 해볼 수 없다는 거야? 단 한 번이라도?”한대경
심규철은 약간 지친 듯했다.‘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 거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은 것 같군.’ ‘이 세상에 30년 동안 얼굴도 못 본 아들이 만나자마자 가족 걱정은커녕 결혼하겠다고 소리치는 경우가 또 있을까?’ ‘그리고 평범한 여자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상대는 이미 이혼한 데다 아이를 넷이나 데리고 있는 여자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가장 골치 아픈 건, 소지아의 전남편이 내 여동생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이야. 게다가 두 사람의 관계도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잖아?’ ‘손바닥도 손등도 모두 살인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심규철은 매우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한대경은 심규철의 곤란한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나는 끊었단다.”심규철이 손을 저으며 말하자, 한대경은 혼자 담배를 피우며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 모습은 공사장의 현장 소장과 같았는데, 도무지 한 나라의 군주다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심규철은 이마를 짚으며 생각했다.‘대체 그동안 어떻게 자란 거지?’ “되는지 안 되는지 확답이나 주시죠.”한대경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하자, 심규철은 아들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쉽지 않을 거라면 어쩔 셈이지? 그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야. 물론 두 집안의 사정을 따지는 건 아니란다.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면, 거지가 상대라 해도 바로 혼약을 허락해 줬을 거야. 하지만 상대는 소씨 가문 사람이라고.” “넌 모를 수도 있겠지만, 요즘 소씨 가문에 문제가 좀 생겼어. 그 집안은 이미 진정한 소씨 가문과 관계가 끊긴 상태인 데다,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단 말이지... 이 결혼은 정말 쉽지 않을 거야.”한대경이 담배꽁초를 던지며 말했다.“그럼 안된다는 겁니까? 아버지라는 호칭을 쓴 게 아까울 지경이군요.” 한대경은 기분이 상한 듯 몸을 돌려 떠났고, 심규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뭐야, 왜 저렇게 쉽게 포기
시름시름 앓던 심규철은 지금까지 자신이 낳은 친아들이 오랜 세월 동안 외지에 버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아들이 수많은 겪었음에도 거대한 나무처럼 성장했다는 사실에 아주 놀랐는데, 거대한 나무는 맞지만, 어쩐지 그 나무는 조금 삐딱하게 자란 것 같았다. 부자지간임에도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은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진실이 드러났다면,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동적이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대경은 아버지를 만난 기쁨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심씨 가문의 큰아들이라는 신분과 소씨 가문의 여섯째와의 혼약에 훨씬 더 관심을 보이는 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복잡하니, 천천히 논의해 보자꾸나...”“제가 친아들이라면서요?”한대경은 성격이 급하고 불같았으며, 그의 어머니와 똑같이 누군가의 설득 따윈 듣지 않았다. 한대경은 이미 심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관계를 철저히 파악했기에, 혼약의 존재를 알아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하마터면 혼약이라는 걸 전혀 몰랐을 뻔했잖아?’“그럼, 당연하지. 이미 친자 확인 결과도 나왔으니 말이야... 하지만 지금 소씨 가문 상황이 조금 복잡해서 지금은...”“어쨌든 저랑 결혼할 사람은 소씨 가문의 여섯째인 거죠?” “그래.”“그 혼약은 심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어른들이 정한 거고요?” “그래.”“그럼 됐으니, 어서 결혼부터 준비해 주세요. 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심규철은 아들이 아주 성급하다는 것을 느꼈다.‘기다리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잖아? 만약 이 상황이 올림픽이었다면 쟤는 분명히 부정 출발로 탈락했을 정도야.’ “결혼 같은 중대한 일보다는 네 아비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하지 않니? 그토록 오래 떨어져 지냈는데, 네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고 싶지 않냐는 말이야.” 한대경은 냉담하게 말했다.“전혀요, 아버지는 이미 반쯤 땅에 묻혀가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에 대해 제가 뭘 궁금해해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