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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작가: 비화
심동현을 다시 만난 건 한 달이 지난 후였다.

먼저 나를 찾아온 사람은 고나연이었다.

그녀는 TV에서나 볼 법한 명품 옷을 차려입고 내 앞에 서서 거만하게 물었다.

“당신이 동현 씨를 1년 동안 돌봤다는 여자인가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동현 씨라뇨?”

고나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말했다.

“철수 말이에요.”

‘철수...'

겨우 가라앉았던 내 마음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하게 고나연의 팔을 붙잡고 심동현이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고나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두 경호원이 나를 붙잡아 끌어냈다.

고나연은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모래사장에 박힌 하이힐을 빼냈다.

“당신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동현 씨의 행방을 묻는 거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동현 씨의 여자친구예요.”

고나연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농담을 들은 듯 비웃으며, 뒤에 있는 차를 향해 교태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동현 씨, 이 여자가 당신 여자친구라네요.”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그 남자가 고급 차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정장 차림에 고급 가죽 구두를 신은 채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걸었다.

한때 햇볕에 그을렸던 피부는 점차 본래의 빛을 되찾았고, 타고난 귀족적인 분위기는 소박한 어촌과 어울리지 않았다.

심동현은 눈썹을 찌푸린 채 경호원들에게 붙잡힌 나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냄새나는 생선 장수에 불과한데, 어떻게 감히 나와 어울릴 수 있겠어?”

나는 순간 멍해졌다. 심동현의 말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 심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심동현이 나를 비린내 나는 생선 장수라고 했다. 누구라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심동현만큼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됐다.

바로 내가 할머니와 함께 그 생선을 팔아 번 돈으로 그의 병을 치료해줬기 때문이다.

그 돈 덕분에 심동현이 아무런 문제 없이 부귀영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심동현, 너가 어떻게 감히 내가 생선 장수라는 걸 비웃을 수 있지?’

경호원들이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모래사장에 주저앉았다. 바람과 모래가 얼굴을 때려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심동현은 쪼그려 앉아 초라해진 내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잔인했다.

심동현은 헛된 꿈은 접으라며, 우리는 결코 같은 세상의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나는 심동현의 말을 듣자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제 이 남자가 더 이상 내가 돌봐주던 그 철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 그 1년은 배은망덕한 사람을 돌봐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겠어.”

심동현의 몸이 흔들리더니 쪼그리고 앉아있던 자세가 앞으로 기울이자 급히 모래사장에 손을 짚어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살짝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하지만 없는 편이 서로 좋을 거야.”

나는 두 손가락으로 그 명함을 집어 들었다.

‘심성그룹 사장이라... 흥, 정말 대단한 자리네.’

나는 가볍게 손을 놓았고, 그 얇은 명함은 바닷바람에 휘날려 멀리 떨어졌다.

명함은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려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심동현의 짙은 눈썹이 찌푸려졌고, 주먹 쥔 두 손이 몸 옆에서 떨렸다.

나는 태연한 척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두 줄기 맑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심동현, 차라리 너를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일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절망적인 소식이 갑자기 찾아왔다.

할머니께서 갑작스럽게 심장병으로 입원하셨고, 나는 시급히 할머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심동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심동현이 나에게 진 빚은 단순한 감정의 빚이 아닌, 실제 3,000만 원이었다.

병상에 누워 점점 쇠약해져 가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그날의 도도했던 태도를 후회하며 자책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을 접고 S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밤낮으로 심성그룹 건물 앞을 지키며 기다렸다.

마침내 어느 날, 검은색 차가 조용히 내 앞에 멈춰 섰다.

심동현의 낯익은 얼굴이 차창 너머로 드러났다.

나는 지저분하고 헝클어진 모습으로,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심동현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도 심동현이 나를 알아보았기에, 경비원들은 나를 거지라고 여기며 끌고 가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듯이 심동현의 손을 붙잡았다. 이별할 때 보였던 오만한 태도는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사장님, 제발 당시 치료비로 썼던 3,000만 원만 돌려주세요.”

심동현은 양손을 정장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서수아, 네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그저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란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동현은 갑자기 내 손목을 붙잡고 사무실 건물 안으로 거칠게 끌고 들어갔다.

“넌 나와의 관계를 이렇게 급하게 정리하고 싶은 거야?”

나는 심동현의 갑작스러운 분노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동현의 현재 재력으로는 3,000만 원을 돌려주는 것이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나는 그저 작은 어촌의 어부일 뿐인데, 나와 이렇게까지 돈 계산을 따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심동현과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귀찮은 일을 가장 참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갑자기 찾아온 것을 보고 자신에게 계속 매달리려 한다고 오해한 듯했다.

그래서 나는 심동현에게 말했다.

“저는 제 돈 3,000만 원만 돌려받길 원해요. 돈을 받는 즉시 당신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게요.”

심동현은 오만한 태도로 나를 벽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서수아, 헛된 꿈은 꾸지도 마.”

“네가 내 병을 치료하려고 돈을 쓴 건 네 자발적인 선물이었어. 내가 너한테 진 빚이 아니라고.”

“지금 내가 돌려주기 싫다고 해도 네가 나한테 어떻게 할 수 없어.”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 순수하고 소박했던 철수가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옳고 그름을 따질 때가 아니었고, 자존심을 내세울 여유도 없었다.

할머니의 위독한 상태 때문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로비의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심동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장님, 제발 돈을 돌려주세요. 할머니의 병원비로 꼭 필요한 돈이에요.”

심동현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일으키려 했으나, 내 말을 듣자마자 그의 눈빛이 깊은 실망감으로 변했다.

“서수아, 내가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할머니에 대한 거짓말까지 지어내?”

나는 심동현의 바지 끝자락을 붙잡고 간절히 애원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믿지 못하시겠으면 직접 확인해 보세요. 할머니께서 정말 쓰러지셨어요.”

“그만!”

심동현이 갑자기 내 말을 가로막았다.

“우리 집 가정부로 일해줘. 월급은 300만 원이야. 선택은 네 몫이다.”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결국 심동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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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수아를 해친 장기 밀매 조직을 찾기 위해, 심동현은 막대한 자금을 아낌없이 투자했다.또한 다수의 탐정사를 고용하고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다.현상금 액수를 보며 나는 생각이 들었다.‘할머니 수술비가 필요했을 때 이만한 돈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전국적인 수색 덕분에 장기 밀매 조직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했고, 결국 검거되었다.그들은 5,6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즉시 집행되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사형이 집행된 날,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던 심동현은 갑자기 평온을 찾았다.심동현은 저택으로 돌아가 모든 가정부들을 해고했고, 내 방에 들어가 내가 쓰던 물건들을 전부 챙겼다. 심동현은 그 물건들을 가만히 안은 채 중얼거렸다.“수아야, 너 지금 나랑 숨바꼭질하는 거지?” “내가 이렇게 오래 널 찾았는데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니?”남자는 짐을 메고 별장 대문을 잠갔다. “괜찮아, 내가 집에 가서 기다릴게. 네 화가 풀리면 그때 나오면 돼.”심동현은 내 유품을 가지고 어촌으로 돌아왔다.할머니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되셨고, 끝까지 심동현을 만나주지 않으셨다.심동현은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할머니 앞으로 이전했다.여름의 서늘한 해변에서, 심동현은 매일 조개껍데기로 집을 지었다. 며칠 동안 몸치장을 하지 않아 마치 야인처럼 변해 있었다.해변의 아이들은 남자를 미친 사람이라며 놀리고 쓰레기를 던졌다.남자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볼 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낮과 밤이 몇 번이나 뒤바뀌었는지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었다.어느새 해변에는 사람 키의 절반 높이로 지어진 2층짜리 조개 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이 그 아담한 별장 주변을 뛰어다녔다.심동현은 뿌듯한 표정으로 집을 어루만지며 아이들에게 자랑했다. “예쁘지? 이게 나랑 수아의 집이야.”한 어린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근데 이렇게 작은 집에서 어떻게 살 수 있어요?” 남자

  • 죽은 후에 찾아온 복수와 사랑   제6화

    경찰은 고나연의 말을 더 듣지 않고 강제 연행했다. 떠나기 전, 고나연은 심동현을 향해 광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심동현, 넌 결국 모든 걸 잃게 될 거야!”심동현의 온화한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팔찌를 세게 움켜쥐자, 날카로운 조개껍데기가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하객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심동현은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비서가 심동현을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문득 비서의 소매를 붙잡았다.“수아가 날 용서해 줄 거예요, 그렇죠?”그리고는 비서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심동현은 차를 몰고 허겁지겁 어촌에 도착했다.길에서 이웃 아저씨를 만나자마자 흥분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아저씨, 제가 왔어요. 수아를 찾으러 왔어요.”아저씨는 나이가 들어 기억이 흐릿했다. 아저씨는 지친 심동현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철수야, 수아를 찾으러 왔구나. 하지만 그 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심동현의 표정이 굳어졌다.“괜찮아요. 기다리겠습니다. 수아는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심동현은 열쇠로 집에 들어가 예전 어부 시절 입었던 거친 천으로 만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작은 마당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했다.새로 꾸민 돌집을 지키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날카로운 벨소리가 울렸다.심동현은 핸드폰을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무의식적으로 거절하려다가 마침 기분이 좋아 전화를 받기로 했다.“춘자 할머니의 가족이신가요? 환자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손녀분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요. 다른 연락처에 남겨진 번호가 선생님 것이더군요.”심동현의 눈빛이 텅 비었다. 그는 멍하니 먼 바다를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의사 선생님, 분명 착오가 있으신 것 같네요. 우리 할머니는 항상 건강하셨고, 매일 소주 두 잔씩 드시던 분이셨거든요.”전화기 너머로 의사의 목소리가 화가 난 듯했다.“이런 무책임한 태도가 말이 됩니까? 환자가 방금 수술을 마치셨는데, 오기 싫으시다면 차라리 솔직히 말씀하시

  • 죽은 후에 찾아온 복수와 사랑   제5화

    나는 심동현의 뒤를 쫓아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어촌으로 돌아왔다.심동현이 우리의 돌집 문 앞에서 몇 번이고 문을 두드리려다 망설였다.이웃 아저씨가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심동현을 한참 바라보더니 말했다. “철수 왔구나.”평소 내 앞에서는 늘 차가운 표정을 지었던 심동현이 옛 이웃 아저씨를 만나자 예전처럼 온화한 미소를 보였다.아저씨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문 두드리지 마. 할매랑 손녀 둘 다 집에 없어.”심동현의 몸이 떨리더니 문을 두드리려던 오른손으로 벽을 세게 짚었다. “아저씨, 그분들은 어디로 가셨나요?”아저씨는 우리 할머니가 아프신 걸 모르고 계셨다.그날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구급차를 부르지 못하고 큰길에서 택시를 잡아탔기 때문이다.마을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한밤중에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아저씨도 사정을 모르는 듯했다. “아마 박씨네 노인장이랑 고기잡이 나간 거 아닐까? 그럼 보름은 걸려야 돌아올 텐데.”심동현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의 긴장이 순식간에 풀렸다.심동현은 아저씨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나기 전 돈을 건네며 우리 집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심동현은 이 모든 일을 마치고 길가에 세워둔 차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아저씨가 뒤에서 물었다.“철수야, 너 다시 올 거니?”강한 해풍이 모래를 일으켜 심동현의 모습을 흐릿하게 가렸다. 남자는 발걸음을 멈추고 아저씨를 향해 외쳤다.“꼭 돌아올게요.”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심동현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심동현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그의 세계도 나를 거부하듯이.심동현과 고나연의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가족석에는 신부 측 부모님과 낯선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이 남자는 심동현과 칠 분이나 닮았지만 더 젊어 보였다.심동현은 고나연과 함께 그에게 다가가 형이라고 불렀다.문득 심동현이 예전에 집에서 이 사람을 언급했던 게 떠올랐다.당시 심동현은 그 사람을 심도준이라 불렀다.결혼식이 절반쯤

  • 죽은 후에 찾아온 복수와 사랑   제4화

    고나연은 심동현이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하얀 손가락을 그의 눈앞에서 살며시 흔들었다. “동현 씨? 동현 씨?”심동현은 정신을 차리고 무의식적으로 조개 팔찌를 고나연의 손에 끼워주었다. “아, 괜찮아요. 나연 씨가 맘에 든다면 선물로 드릴게요.”고나연은 매우 기뻐했다. 그녀는 몸을 숙여 남자의 볼에 키스했다. “동현 씨, 역시 동현 씨가 나를 제일 사랑하는 게 맞나 봐요.”나는 이미 죽었지만 가슴이 여전히 아팠다. 심동현은 나를 향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잃어버렸다.이곳은 바다에서 너무나 멀어 고향이 늘 그리웠다. 그래서 고향의 조개를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힘들 때마다 조개를 꺼내보곤 했다. 그 은빛 불가사리는 할머니께서 은반지로 만들어 주신 소중한 것이다.할머니는 그 은반지가 혼수품이라고 하셨다. 그 불가사리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할머니가 늘 곁에 계신 것만 같았다.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내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할머니의 사랑도, 심동현은 망설임 없이 고나연에게 넘겨버렸다.고나연은 그것이 내 물건이란 걸 알면서도 가지고 싶어 했다. 마치 나한테서 철수를 빼앗아 간 것처럼 말이다.처음에 고나연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어촌에 찾아와 거만하게 나를 위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심동현이 나를 모욕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나중에 내가 심동현의 집 가정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일부러 매번 찾아와 나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시켰다.커피가 미지근하거나 뜨거우면 고나연은 웃는 얼굴로 위협하듯 다시 타오라고 했다. 30분 동안 열 번이나 커피를 새로 타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고나연은 심동현의 품에 기대며 교태를 부렸다.“동현 씨, 어떻게 이런 사람을 뽑으신 거예요? 커피 한 잔도 제대로 못 타네요.”심동현은 차갑게 말했다.“월급 300만 원을 주는 건 무능한 사람을 키우자고 주는 게 아니야.”고나연은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심동현 앞에서 너그러운 척했다. “됐어요. 더는 어려운 일 시키지 않을게요.”심동현은 날카로

  • 죽은 후에 찾아온 복수와 사랑   제3화

    정신이 현재로 돌아왔다. 나는 심동현과 고나연을 따라 너무나도 익숙한 집으로 들어갔다. 둘은 부드러운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다.“서수아, 커피 두 잔 부탁해.”한동안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서수아?”가정부 아줌마가 부엌에서 급히 나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따뜻한 커피 두 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심동현 앞으로 다가왔다.“사장님, 수아 씨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심동현은 몸을 살짝 일으키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3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심동현은 내가 혼자 S시에 와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3일 전,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긴급 수술이 필요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심동현에게 도움을 청했다.하지만 심동현은 분노하며 매달 300만 원씩 갚으라는 말만 내뱉었다. 3,000만 원을 전부 갚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나지도 말고 자신의 지시만 따르라고 했다.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심동현을 짐승이라고 욕했다.심동현은 나를 진정시키겠다며 예전 연애 시절처럼 내 얼굴을 감싸 쥐고 거칠게 내 입술을 물어뜯었다.입술에서 피 맛이 느껴졌고, 나는 심동현을 밀쳐내며 그의 뺨을 세게 때렸다.그리고 나는 온몸을 떨며 그 집에서 뛰쳐나왔다.가정부 아줌마가 쫓아가려 했지만, 심동현이 차갑게 말했다.“그냥 두세요.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두고 보죠.”물론 나는 돈을 구하러 갔다. 심동현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결국 나는 한쪽 신장을 팔아 돈을 마련했지만, 그 대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심동현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전화기를 꺼내 나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고나연이 교태를 부리며 그의 손을 저지했다.“동현 씨, 그냥 가정부일 뿐인데 왜 그렇게 신경 쓰세요?”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심동현의 전화기를 가로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전화를 걸어도 받을 사람은 없었다.장기 밀매업자들은 내 휴대폰을 시신과 함께 쓰레기처럼 버렸기 때문이다.게다가 3일이나 지

  • 죽은 후에 찾아온 복수와 사랑   제2화

    심동현을 다시 만난 건 한 달이 지난 후였다.먼저 나를 찾아온 사람은 고나연이었다. 그녀는 TV에서나 볼 법한 명품 옷을 차려입고 내 앞에 서서 거만하게 물었다.“당신이 동현 씨를 1년 동안 돌봤다는 여자인가요?”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동현 씨라뇨?”고나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말했다.“철수 말이에요.”‘철수...'겨우 가라앉았던 내 마음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나는 다급하게 고나연의 팔을 붙잡고 심동현이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애원했다.하지만 고나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두 경호원이 나를 붙잡아 끌어냈다.고나연은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모래사장에 박힌 하이힐을 빼냈다.“당신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동현 씨의 행방을 묻는 거죠?”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동현 씨의 여자친구예요.”고나연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농담을 들은 듯 비웃으며, 뒤에 있는 차를 향해 교태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동현 씨, 이 여자가 당신 여자친구라네요.”밤낮으로 그리워하던 그 남자가 고급 차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남자는 정장 차림에 고급 가죽 구두를 신은 채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걸었다.한때 햇볕에 그을렸던 피부는 점차 본래의 빛을 되찾았고, 타고난 귀족적인 분위기는 소박한 어촌과 어울리지 않았다.심동현은 눈썹을 찌푸린 채 경호원들에게 붙잡힌 나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냄새나는 생선 장수에 불과한데, 어떻게 감히 나와 어울릴 수 있겠어?”나는 순간 멍해졌다. 심동현의 말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 심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심동현이 나를 비린내 나는 생선 장수라고 했다. 누구라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심동현만큼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됐다.바로 내가 할머니와 함께 그 생선을 팔아 번 돈으로 그의 병을 치료해줬기 때문이다.그 돈 덕분에 심동현이 아무런 문제 없이 부귀영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심동현, 너가 어떻게 감히 내가 생선 장수

  • 죽은 후에 찾아온 복수와 사랑   제1화

    내가 죽은 지 이틀째 되던 날, 나는 황야에 버려졌다.원숭이상을 한 남자가 냉동 상자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이번 건 쏠쏠하겠는데. 이 여자의 장기가 전부 완벽한 상태야.”내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참혹한 모습을 힘없이 바라보았다.나도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신장 하나만 팔려고 했을 뿐인데. ‘할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이대로 사라질 줄 알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심동현의 곁으로 돌아왔다.그는 약혼녀와 함께 생일 파티에 참석 중이었다.고나연이 애교 섞인 미소로 심동현의 팔을 감싸 안은 채, 수줍게 남자의 어깨에 기대었다.심동현은 그녀를 대신하여 연이어 건배를 하며 손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누군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나연 씨와는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나요?”심동현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좋은 소식이 곧 있을 겁니다.”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시선이 불현듯 내 쪽으로 향했다.나는 몸을 떨며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살아있을 때 심동현은 내가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으니까.하지만 그것은 찰나였고, 그는 곧 시선을 돌려 다시 손님들을 접대하기 시작했다.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제는 누구도 나를 괴롭힐 수 없어. 난 이제 귀신이니까.’‘나를 봤을 리가 없지.’아마도 심동현이 아직 내게 진 빚을 갚지 않았기에, 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살아있을 때도 심동현에게 끊임없이 애원했는데, 이제는 죽어서까지 부탁할 일이 생기다니...’심동현이 나를 대신해 병원에 가서 할머니를 살펴봐 주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나도 심동현을 따라 할머니를 볼 수 있을 테니까.‘내가 신장을 팔기로 하기 전에 분명 돈을 먼저 보내줬을 거야. 지금쯤이면 할머니는 수술도 잘 마치시고 건강을 되찾으셨겠지.’하지만 심동현은 가지 않았다. 내 말을 한마디도 믿지 않았으니까. 심동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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