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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2화

Author: 윤지
“정 대표님.”

박민정이 병실로 들어서며 조용히 부르자 정수미의 눈빛이 순간 빛을 머금었다.

“민정아.”

그녀는 몸의 불편함을 억누르며 손짓했다.

“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 줘.”

박민정이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곁에 앉았다.

“몸 상태가... 왜 이렇게...”

무심코 내뱉은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정수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괜찮아. 아마 계절이 바뀌려는 탓인지 요즘 얼굴색이 좀 안 좋아 보일 뿐이야. 의사도 큰 문제는 없다고 했어.”

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정수미가 비서를 바라보자 비서는 눈치껏 자리를 비우며 문을 닫았다.

병실 안에는 이제 둘만 남았다.

정수미는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번번이 삼켜졌고 결국 차마 자신의 병세를 말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민정아, 아직도 나를 원망하니?”

박민정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오랜 망설임 끝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과거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원망하지 않아요.”

그 말에 정수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고맙구나... 정말 고맙다.”

정수미는 약해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한참을 망설이다 그녀는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민정아, 나를 한 번만... 엄마라고 불러 줄 수 있겠니?”

순간, 박민정은 굳어버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고 그 한마디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정수미는 그녀의 난처함을 알아차리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 지금 당장 아니어도 돼.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정수미 스스로도 그 ‘앞으로’가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딸을 조급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네.”

박민정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늘 널 부른 건 용건이 있어서야.”

정수미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박민정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데요?”

“내가 가진 자산 일부를 미리 너에게 넘겨주고 싶단다.”

박민정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고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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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안찾고 주변인물들 이야기로 질질끌고 있네요. 끝나려면 아직인가요. 지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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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방성원은 방문호와 한창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혹시나 자기 아내가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방성원의 모습에 안현자는 혀를 끌끌 차며 방문호에게 말했다.“여보, 애들도 쉬어야 하는데 우리도 그만 돌아갑시다.”그러자 방문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래.”그리고 돌아가기 전 그는 방성원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마치 어린아이에게 당부하듯 말했다.“인하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두 사람이 가자마자 방성원은 빠르게 설인하한테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엄마가 심한 말은 안 하셨어?”순간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있다는 걸 느낀 설인하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그저 시시콜콜한 얘기만 나눴어.”말을 마치자마자 설인하가 갑자기 방성원을 향해 양팔을 뻗으며 물었다.“나 좀 안아줄 수 있어?”사실 두 사람은 약혼 날 이후로 포옹해 본 적이 없었다.방성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그녀를 품에 안았고 설인하는 그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성원 씨...” 오늘따라 유난히 다정하게 들리는 그녀의 부름에 방성원이 대답했다.“응.”“앞으로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서로 숨기는 일 없이 솔직하게 말하기.”방성원은 갑자기 돌변한 그녀의 태도에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했다.“그래.”방성원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설인하는 눈을 꼭 감은 채 그의 온기를 느끼려 했지만 방성원은 자기 감정을 억제하느라 꽉 안아주지도 못했다.그렇게 두 사람이 애틋하게 안고 있을 무렵, 갑자기 도우미가 방은정을 데리고 들어오는 바람에 분위기가 깨져버리고 말았다.“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나갈게요.”그러자 설인하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아니에요. 괜찮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도우미에게 다가가더니 방은정을 자기 품에 안고 그녀의 귀여운 볼에 입을 맞췄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32화

    설인하는 안현자의 말을 도무지 믿기 힘들었다.여태껏 방성원은 자신을 너무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그저 미적지근한 태도로 대했다.특히 연애 초반에도 방성원은 달콤한 말 한마디나 그 어떤 사랑 고백, 하물며 그 흔한 선물조차 준 적이 없었다.‘그런데 꼭 나랑 결혼해야 한다고 매달렸다고?’안현자는 한눈에 봐도 눈앞의 설인하가 지금 자기 말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인하야, 이런 걸로 내가 너를 속이겠니? 너도 잘 생각해 봐. 너희 집이 그때 파산하고 네 부모님까지 돌아가셨으면 우리 방씨 가문에서는 충분히 그 결혼을 무를 수 있었어.”여기까지 들은 설인하는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진짜 그대로 파혼을 밀고 나갔다면 좀 창피했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 선택이 우리 방씨 가문에는 더 유리했을 거야. 그런데 우리 성원이가 무조건 너랑 결혼하겠다고 억지 부리는 바람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허락했어.”“그때 성원이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또 너를 위해 우리 앞에서 무릎 꿇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어.”그 무뚝뚝한 방성원이 자신을 위해 무릎까지 꿇었다는 소리에 설인하는 더 이상 고개를 들 수 없었다.“저는...”이때 안현자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솔직히 난 아직도 네가 내 며느리인 게 마음에 안 들어. 그런데 우리 아들이 죽고 못 산다고 하니 엄마로서 다른 방법이 없잖니.”안현자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설인하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그리고 그녀가 방금 했던 말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그런데 왜 여태껏 이런 말을 저한테 해주지 않으셨어요?”“난 네가 진심으로 우리 아들을 사랑하는 줄 알았으니까!”안현자가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넌 그저 겉으로만 우리 성원이를 사랑한다고 했고 우리 아들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그만큼 표현하지 않았던 거야.”“그 애는 자기 아빠를 닮아서 어릴 때부터 말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걸 잘 못 했어. 그렇다고 이게 너한테 상처받을 이유는 못 되잖아?”안현자는 어떻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31화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그렇게 두 사람은 약혼했고 설인하는 학교에 다닌 것 외에는 주로 방성원 만나러 성진그룹에 갔다. 그때의 방성원은 설인하에게 한없이 차갑고 무뚝뚝해서 남들의 눈에는 여자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졸업하고 난 뒤 양가 부모님의 허락하에 두 사람은 혼인을 맺었고 모든 게 탄탄대로 흘러갈 줄 알았다.그러나 결혼하기 얼마 전에 설씨 가문이 부도났고 동시에 설인하의 부모님도 돌아가게 되었다.그때 설인하는 큰 타격을 받고 한동안 말조차 하지 못했다.게다가 방성원은 설인하와의 결혼 첫날 밤에 그녀에게 상처 주는 말까지 해버렸다.그 이후로부터 설인하는 방성원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분명 두 사람은 부부였지만 어딘가 서먹서먹하고 어색했다.설인하는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오르자 빠르게 자기 손을 뺐다.그러자 방성원은 한껏 의아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왜 그래?”설인하는 주먹을 꽉 쥐고 답했다.“아니야.”그리고 지금의 방성원을 더 이상 보기 싫어 아예 등지고 앉았다. 혹시나 혼자 지낸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런지 방성원이 다정하게 대해주는 게 왠지 모르게 익숙지 않았고 오히려 불편했다.방성원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던 이때, 설인하가 다시 답했다.“천천히 하자, 천천히.”그제야 방성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알겠어.”설인하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많이 배려한 셈이다.집에 돌아와 보니 방성원의 부모님이 이미 와있었고 한창 방은정과 놀아주고 있었다.그리고 두 사람이 같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들에게 물었다.“왜 이렇게 늦게 와?”“퇴근하고 병원에 친구 보러 갔었어요.”“그래.”안현자는 방은정을 안고 설인아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녀에게 말했다.“인하야,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좀 나와 봐.”말을 마친 뒤 아이를 도우미에게 넘겨줬다.그러나 방성원은 본능적으로 자기 어머니가 설인하에게 못된 말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엄마, 그냥 여기서 얘기해요.”안현자는 자기 아들의 예민한 반응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30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혹시나 정수미와 박민정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 같아 하나둘씩 돌아가기 시작했다.갈 때도 모두 짝을 지어 돌아갔는데 그중 정민기와 진서연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서다희와 민수아도 팔짱을 끼고 가다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고 말하더니 그녀도 임신했다고 알렸다.세 커플 중 오직 방성원과 설인하 두 사람만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서로 떨어져서 걸었다.그리고 이런 상황을 진작에 눈치챈 방성원은 아까부터 마음이 불편했지만 사람이 많아서 애써 참고 있었다.하여 빠르게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 김인우가 그의 팔을 잡았다.“성원아, 나도 곧 아이가 태어날 것 같아.” 그러자 방성원이 뜬금없이 한마디를 내뱉었다.“우리 은정이는 이제 곧 두 살이야.”“어쩌라고? 우리 딸이 아마 네 딸보다 더 귀여울걸?”그의 말에 방성원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아직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르면서.”순간 김인우는 할 말을 잃었다.그의 말대로 아무리 자기가 딸은 원한다고 무조건 딸이 태어나는 것도 아니었다.그러고 보니 유남준도 딸을 간절히 원했지만 태어난 네 명의 아이는 모두 남자였다. 역시나 딸 복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그러다가 방성원은 문득 설인하와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걸 발견하고 재빨리 김인우에게 말했다.“그만하자.”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설인하를 쫓아갔다.“뭘 이리도 빨리 가?”설인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기다리란 소리도 없었잖아.”방성원은 그녀의 대답에 어이없다가 문득 앞에서 하하호호 즐겁게 걸어가고 있는 두 커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자신과 설인하는 비록 지금 이혼에 대한 얘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고 있었지만 여전히 냉랭한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방성원은 지난번 설인하와 연지석 사이를 오해한 게 미안한 것도 있어서 차에 올라탈 때 갑자기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남자의 돌발행동에 설인하는 온몸이 굳어진 채 고개를 돌리고 그에게 물었다.“뭐 하는 거야?”“손잡고 싶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9화

    정수미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만약 어느 날 네 마음이 변했더라도 민정이한테 상처 주지 말고 그냥 우리 정씨 가문으로 보내줘.”여태껏 살아오면서 이미 수많은 일을 겪어온 정수미는 약속이란 게 참 지켜내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유남준도 그녀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자기 말을 증명해 낼 수 있는 게 없었다.하여 허리를 숙이고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비록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말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아는데요. 꼭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전 이미 IM 그룹의 모든 지분을 민정이 명의로 변경했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저희 둘이 헤어지면 민정이가 평생 먹고 남을 돈은 있는 거잖아요.”사실 박민정은 이미 지엔 그룹을 소유하고 있기에 금전적인 면에서는 전혀 어려움이 없지만 그래도 유남준이 저렇게 말하니 마음이 든든했고 그의 말을 믿고 싶었다.하여 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래, 나도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줄게.”“네.”유남준의 입꼬리는 어느새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민정이 수술이 끝났는지 이만 가볼까요?”“그래.”그렇게 유남준은 정수미의 휠체어를 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사실 방금 정수미가 당부했던 말은 서주에 있을 때 정근우도 똑같이 말했었다.“만약 우리 민정이를 괴롭히는 날에는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때나 지금이나 유남준은 그들의 말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박민정을 지켜주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다.박민정의 수술은 점심이 되어서야 끝났고 김인우가 수술실에서 걸어 나오자마자 유남준이 빠르게 달려가 물었다.“어떻게 됐어?”김인우는 마스크를 벗으며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아마 큰 문제는 없을 텐데 회복되는 걸 지켜봐야 할 것 같아.”유남준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고 정수미와 다른 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들 배고프시죠? 얼른 가서 밥부터 먹고 옵시다.”김인우도 웃으며 답했다.“그래요. 밥부터 먹어요.”박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8화

    조하랑은 박민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너 오늘 수술한다고 해서 옆에 있어 주려고, 겸사겸사 정 대표님도 보려고 왔지.”박민정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안 깨어나셨어.”“괜찮아, 밖에서 기다릴게.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조하랑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후, 김인우는 그녀의 업무를 전부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고 조하랑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그녀는 박민정곁에 앉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되물었다.“맞다, 남준 씨는?”“예찬이 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올거야.”지금 정민기도 매우 바쁜 시기라 왠지 유남준이 직접 박예찬을 데려다줘야 안심될 것 같았다.“아, 그렇군.”그렇게 조하랑은 박민정의 손을 잡고 또 한동안 위로의 말을 건네는걸 그녀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박민정의 얼굴이 지금 괜찮아 보여도 속은 말이 아니란 걸 조하랑은 다 알고 있었다.“괜찮을 거야, 민정아.”그러고는 박민정을 꽉 안아줬다.김인우는 곁에서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넬지 몰라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어느 정도 얘기를 나누다가 조하랑은 정수미 보러 들어갔다.정수미는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는데 전혀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정 대표님, 오면서 과일 좀 사 왔어요.”조하랑은 혹시나 정수미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최대한 밝게 인사를 건넸다.“하랑 씨, 고마워요.”“저는 민정이 친구이고 민정이 엄마면 제 엄마나 마찬가지예요.”그리고 뒤에 서 있는 김인우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나중에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제 남편한테 말씀 주시면 되겠습니다.”그러자 김인우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와 정수미에게 말했다.“하랑 씨말대로 혹시나 병원에 불편한 게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시면 꼭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알겠어요. 그런데 여기 병원 너무 좋아요.”정수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박민정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정수미가 중병 환자란 사실마저 잊어버렸다.그리고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매일 슬픔 속에서 지내고 싶지 않았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7화

    그의 호들갑에 조하랑은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지금 여기서 어떻게 더 늦게 가란 소리예요? 전 그냥 임산부일 뿐이지 어디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제발 걷는 것까지 뭐라 하지 말고 좀 가만히 있어 줄래요?”조하랑이 임신한 사실을 안 뒤로부터 김인우는 조하랑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고 먹는 것도 철저하게 관리했다.그리고 지금은 혹시나 넘어질까 봐 걷는 것까지 걱정했다.조하랑은 이제 더 이상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하랑 씨는 제 아내이고 뱃속에는 제 아이가 있는데 제가 신경 쓰지 않으면 누가 신경 써줘요? 말 좀 들어요, 네?”김인우는 말하면서도 조하랑의 눈치를 힐끔힐끔 봤지만 조하랑은 그냥 못 들은 척 앞으로 직진했다.병원에는 당연히 사람도 많고 급히 걸어가는 의사나 환자, 그리고 병간호는 사람들도 많았다.그 보습을 지켜보던 김인우는 조하랑을 안쪽으로 세우더니 사람들에게 소리쳤다.“여기 임산부가 있는데 혹시나 부딪치지 않게 조심해주세요.”병원 관계자들은 그가 김인우란 사실을 알아차린 뒤 바로 벽 쪽에 붙다시피 지나다녔다.하지만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당연히 김인우가 누구인지, 그가 병원에서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있었기에 저마다 이상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조하랑은 순간 쥐구멍이 있으면 당장 기어들어 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는데 이렇게 과잉보호하는 남자를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지 문득 의심이 들었다.“그만해요. 인우 씨는 얼굴이 두꺼워서 잘 못 느끼겠지만 전 부끄러워 미치겠어요.”그러나 김인우는 지금 조하랑의 뱃속의 아이가 안전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역시나 빠르게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고작 임신한 거로 왜 저리 오버야?”“내 말이, 누가 보면 이 병원에서 혼자 임신한 줄?”“너무 저러면 오히려 위험한 일이 더 많이 발생하던데.”“그러니까요. 너무 몸을 사리는 것도 안 좋더라고요. 차라리 그냥 우리처럼 자연스레 행동하는 게 낫지.”“문제는 아직 배도 너무 불러온 게 아니던데요?”몇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6화

    어렵게 되찾은 친엄마의 사랑을 다시 잃는 게 두려워서일까?박민정은 그렇게 찬물로 여러 번 얼굴을 씻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아 다시 화장실에서 나왔다.저녁.박민정은 유남준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혼자 남아서 정수미 곁을 지키려 했다.그러나 정윤아도 남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정수미는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그렇게 밤이 되자 정수미는 또다시 통증이 밀려와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어 계속 뒤척거리기만 했다.그 모습을 발견한 박민정이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엄마, 잠이 안 오면 우리 수다나 떨어요. 어차피 저도 안 피곤하거든요.”정윤아도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모, 우리 얘기나 나눠요.”그러자 정수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래.”정윤아가 먼저 대화의 주제를 꺼냈다.“민정 언니, 언니 어렸을 때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전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데.”어렸을 때라...박민정은 그 시절 행복했던 부분만 말해줬다.“사실 별거 없어요. 그때 저는 한 가정부네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학교 끝나서 집에 돌아오니...”박민정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해주자 정윤아와 정수미는 모두 귀 기울이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특히 정수미는 아주 사소한 일인데도 그녀한테는 너무 소중한 시절이라 하나도 빠짐없이 새겨들었다.그러다가 중간중간에 정윤아는 궁금한 점도 박민정에게 물었다.그렇게 세 사람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나눴고 정수미의 통증도 어느새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저녁 10시.정수미는 시계를 보다가 문득 내일 박민정의 수술이 생각나 졸린 척 하품했다.“안 되겠다. 나 너무 피곤한데 우리 이만 자자.” “네? 한참 재밌는데 벌써 잔다고요?”정윤아는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전 아직 하나도 안 졸려요.”그러자 정수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나 같은 늙은이가 너희 젊은 사람들의 체력을 따라가기 쉬운 줄 알아? 자, 너희 둘은 옆에 칸에 가서 자. 민정이는 내일 수술도 해야 하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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