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부는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진짜야?”박윤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짐짓 진짜 인척 꾸며댔다.“네. 그렇지 않으면 왜 부인도 없고, 아이도 없겠어요?”유남준은 올해 거의 서른이 되었다. 일반적인 남자들도 그 나이에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데 부잣집 남자면 말할 것도 없었다. 가정부는 박윤우를 치켜세우며 칭찬했다.“윤우 진짜 대단한데. 아는 게 어쩜 그렇게 많아?”두 사람이 웃고 떠드는 사이 유남준과 박민정이 도착했다.박민정은 오는 동안 길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었다. 그런 그녀를 유남준은 지켜보기만 할 뿐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곳을 안다고 해도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 차에서 내린 박민정은 바로 집안으로 향했다. 유남준이 예쁜 여자를 데리고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가정부는 이내 박윤우에게 알려줬다. 박윤우는 가장 처음 떠오른 사람이 이지원이었다. ‘티비에서만 봤는데 오늘은 실물을 볼 수 있겠군.'만반의 준비하고 이지원을 기다리던 박윤우는 박민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만 눈이 빨개진 채 울먹였다. 여기에 온 후로 한번 도 울어본 적이 없는 박윤우였다. “엄마...”창백한 얼굴에 작은 몸을 달려 자신한테 달려오는 아들을 보면서 박민정은 박윤우를 와락 품에 안았다. “윤우야.”“엄마. 보고 싶었어.”“엄마도 윤우가 많이 보고 싶었어.”유남준은 문에 기댄 채 모자의 상봉을 지켜봤다. 그러고는 가정부에게 손짓해서 내보낸 후 둘만 방에 남겨두고 나왔다. 박민정은 조심스레 박윤우의 몸을 살펴보면 물었다.“요즘 아픈 곳은 없어?”“아니. 없어. 나 여기서 아주 잘 지내.”박윤우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이내 목소리를 낮춰 박민정에게 속삭였다.“엄마, 여기 아저씨 진짜 바보야. 내가 달라는 걸 다 가져다줘.”“그리고 지난번에 내가 실수로 아저씨한테 오줌도 쌌어.”박민정은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뭐? 윤우야 엄마한테 천천히 말해줘.”박윤우는 왜 유남준에게 오줌을 싸게 되었는지 자세히 얘기해줬다.“다
박민정의 우울한 마음을 눈치챈 박윤우는 이내 애교를 부렸다.“엄마, 뭐 잊은 거 없어?”“뭐?”“뽀뽀.”박윤우는 자신의 볼을 가리켰다. 박민정은 피식 웃으며 아들의 볼에 입맞췄다.“됐지?”“응!”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박민정은 항상 따스한 마음이 들었다. 요 며칠의 서러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시간은 유난히 빨리 지나갔고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 떠나기 전 박민정은 박윤우에게 여러 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해외에 있을 때와 달리, 오늘 박윤우는 떼도 쓰지 않고 얌전히 박민정과 작별 인사를 했다.예전에 진주시에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박윤우는 울고불고 떼를 쓰면서 그녀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박민정은 한참 아들을 달래주곤 했었다. 박민정은 그동안 박윤우가 그저 지능이 또래 애들보다 조금 높을 뿐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돌아가는 차 안에서 박민정은 별장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돌아보았다.옆에 앉은 유남준은 생일 얘기를 하려 했지만 결국에 꺼내지 못했다. “이따 먹고 싶은 거 있어?”“아무거나 괜찮아요.”박민정은 입맛이 없었다. 유남준은 그가 항상 가던 가계로 향했다. 박민정은 저녁 내내 음식을 별로 입에 대지 않았다. 어떻게 생일을 보내야 할지 몰라 유남준은 돌아가는 길에 집으로 케익을 주문했다. 두원 별장에 돌아온 박민정은 테이블 위의 케익을 보고 의아했다. 유남준은 아무 말 없이 서재로 향했다. 박민정은 그제야 전화기를 꺼내 확인했다. 연지석과 조하랑이 부재중 전화가 여러 개 와있었다. 무음 모드로 해놔서 전화 온 줄도 몰랐었다. 두 사람이 걱정할까봐 박민정은 우선 조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정아, 왜 이제야 전화 받아? 어제는 왜 그냥 갔어?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어제는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랬어. 전화가 무음으로 되어서 받지 못했어.”조하랑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별일 없으면 됐어.”통화가 끝나고 박민정은 바로 연지석에게도 전화해서 오늘 정림원에 갔
유남준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박민정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녀는 연지석이 해외 신분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었다. 그저 가끔 그가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는 것만 알았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한테 피해 주는 게 당신 스타일은 아니잖아요?”박민정은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유남준의 넓은 어깨가 박민정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를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들리네. 나한테 손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박민정은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그렇게 큰 비용을 들여서 밑지는 장사를 하는데. 손해가 아닌가요?”유남준은 차갑게 비웃었다.“틀렸어. 난 한 번도 밑지는 장사를 해본 적이 없어.”“이 자리까지 오니깐, 돈이 다가 아닌 게 있더라고.”그가 몇 년 동안 국내에 있는 연지석의 회사들을 압박하여 힘들어지게 한 게 다 무엇 때문인데. 다 원한을 풀기 위해서 아닌가?"‘연지석이 아니면, 당신이 나한테 감히 이럴 수가 있을까?’유남준은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박민정은 점점 눈앞의 남자를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두 사람은 10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결혼 후에도, 지금도 그녀는 유남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도 그렇겠지...’두 사람이 헤어진 건 잘된 일이었다.“그러면 왜 이렇게까지 해요?:박민정이 물었다.“그 사람과 당신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어서.”유남준은 당당한 듯 말했다. 박민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 뺨을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가짜 결혼 말고 없잖아요!”유남준은 박민정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귀에 속삭였다.“당신, 도망가지 말았어야 했어. 나를 속이면 안 됐다고.”그녀가 가짜 사망을 꾸민 이 몇 년 동안, 유남준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박민정은 눈을 내리깐 채 물었다.“그래서 이렇게 나를 괴롭히고 반항도 못 하게 하는 건가요?”박민정의 어깨 올린 손이 움찔했다.“내가 언제 괴롭혔어?”결혼한 후 유남준은 그래도 그녀에게
자신의 몇 년간 순정이 한순간에 싸구려 취급을 받다니. 박민정도 정말 이 사랑이 부질없다고 느꼈다. “그러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유남준의 이마에 있는 핏줄이 튀어나올 듯했다. 그는 눈이 빨개진 채 그녀의 머리를 가슴팍에 눌렀다. 숨이 막혀왔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유남준은 사과의 말을 듣고 싶었지만 박민정도 숨이 막힐지언정 사과를 하지 않았다. 박민정은 한번 먹은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를 좋아할 때도 그랬고 떠날 때도 그랬다. 숨이 점점 가빠지는 박민정을 보면서 유남준은 황급히 손을 놓았다. 그러다 그녀가 정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그가 입맞췄다. 박민정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옷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차가운 벽에 기대며 박민정은 애원했다.“며칠만 더 기다려주면 안 돼요?”“왜 기다려야 해?”얼마 전 유남준은 그녀가 원한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또 거부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박민정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아직 생리 중이에요”유남준은 그제야 그녀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는 박민정을 안은 채 침대에 누웠다. 긴장해서 굳어있던 그녀의 몸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유남준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하루 동안 피곤했던 박민정은 그렇게 그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유남준은 박민정의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듣고서 보청기를 빼주었다. 유남준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마음이 변할 수가 있어?”그는 잠든 박민정을 보면서 속삭였다. 이튿날. 박민정이 깨어났을 때 유남준은 곁에 없었다. 씻으려고 거울 앞에선 박민정은 자기 목에 빨간 자국을 발견했다. 어제 유남준이 남긴 흔적이었다. 파운데이션으로 가려봤지만 가려지지 않았다. 박민정은 할 수 없이 목폴라 니트로 갈아입고 머리를 풀어 내렸다. 씻고 거실로 나가니 유남준이 거실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오늘은 회사에 나가.”그가 입을 열었다.“오늘은 쉬고 싶어요.”박민정은 오늘 병원에 가서 언제 임신하면 좋을지 알아
연지석도 유남준 뒤에 서있는 박민정을 발견하고는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는 손을 내밀에 유남준에게 악수를 청했다.“유 대표님, 안녕하세요.”생각보다 분위기는 살벌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유남준은 그의 악수에 응하면서 박민정을 소개했다.“여기는 제 아내 박민정입니다.”유남준은 보란 듯이 박민정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손을 떼어내려 하자 유남준은 더욱 세게 힘을 줬다. 박민정이 할퀴어 손등에서 피가 났지만 유남준은 여전히 태연했다. 이 모든 걸 지켜보면서 연지석이 입을 열었다.“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둘이 어릴 적 죽마고우였거든요. 제가 유 대표님보다 어쩌면 민정을 더 잘 알고 있을지도요.”‘죽마고우라... 진짜 애틋하네. 나보다 더 잘 안다고?’ 박민정에게 빤히 고정된 유남준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여보. 왜 이런 죽마고우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안 했지?”그는 손에 힘주어 그녀를 끌어당겼다. 박민정은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이럴 때만 자신을 아내라고 불렀다. 하긴 다른 남자한테 지고 싶어 하는 남자는 없으니까.“아마 잊었나 보죠.”박민정은 나직이 읊조렸다.예전의 유남준은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친구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연지석도 몰랐다. “그러면 이따 일 얘기가 끝나면 두 사람같이 얘기를 나누세요.”유남준이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그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아는 박민정은 단칼에 거절했다.유남준은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왜? 나중에 나 몰래 만나려고 그러는 거야?”박민정은 입술을 깨문 채 그를 노려봤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와 마주친 유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움찔거려 재빨리 눈길을 돌렸다.두 사람을 지켜보는 연지석의 가슴에는 분노가 타올랐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박민정은 아직 유남준의 아내이고 자신은 그저 이름대로 어렸을 적 친구일 뿐이었다.
서다희는 작은 도발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유남준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 계속 그러다간 두 사람은 결국 파국을 맞을까 걱정되었다. 박민정은 서다희의 말에 담긴 뜻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비서님은 결혼하셨나요? 아니면 여자 친구가 있으세요?”금색 테 안경에 가려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약혼녀가 있습니다.”약혼녀의 생각만 하면 그는 한숨이 나왔다. 선보고 만나서 연애까지 성공하였지만 여자 친구는 유치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만만치 않았다. 서다희가 일 때문에 그녀와의 약속에 나가지 못했을 뿐인데 여자는 이러면 결혼할 수 없다며 드러누웠다. ‘결혼이 애들 장난인가.’“그러면 그 여자분도 비서님을 아주 사랑하겠네요.” 박민정이 보기에 서다희도 제 상사처럼 남을 배려하지 않은 냉혈한으로 보였다. 약혼녀가 정말 서다희를 사랑하니까 결혼까지 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했다. “사랑까지는 아니고. 그냥 적당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거죠.”“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생각에 변함이 없길 바라요.”말을 마친 박민정은 고개 숙여 자기 업무를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다희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나온 서다희는 여자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였다. [또 야근이야? 맨날 야근, 야근. 그냥 회사랑 결혼하지 그랬어. 우리 헤어져.] 서다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또 시작이네. 계속 해 봐.]결혼 안 하면 말지.“내가 결혼 할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연애도 하지 말걸. 시간이 아깝게.”...유남준과 연지석은 정오가 되어서야 회의실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아무도 몰랐다. 박민정은 연지석이 걱정되었다. 국내에선 유남준이 안 닿은 곳이 없어 연지석의 대부분 프로젝트가 진행에 문제가 생겼다. 연지석은 회의실에서 나온 후 바로 박민정을 찾아갔다. “가자. 밥 먹으러.”어제 그녀같이 생일을 함께 하지 못해 그는 못내 아쉬웠다. 박민정은 연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레아 레스토랑 룸.연지석은 박민정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들로 주문했다.“요즘 너 살이 너무 많이 빠진 것 같아. 그러니까 오늘은 많이 먹어.”“그래.”하지만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음식을 앞에 두고도 박민정은 입맛이 돌지 않았다.“아까... 그 사람하고는 무슨 얘기했어?”연지석은 그녀에게 스테이크를 썰어주며 답했다.“그냥 일 얘기 좀 했어.”“혹시 그 사람이 너 괴롭히거나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았고?”박민정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그러자 연지석이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예쁜 반달 눈을 하고 그녀를 바라봤다.“유남준 그 사람이 뭐 사춘기 남자애라도 돼? 괴롭히긴 뭘 괴롭혀.”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박민정은 밖에서는 항상 진지한 얼굴이던 연지석이 자기 앞에만 서면 장난을 치지 못해 안달 난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나 지금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거니까 제대로 대답해.”“그럼 더 안 되겠네. 남자가 돼서 여자한테 쪼르르 이르면 안 되지.”연지석이 연신 웃으며 빨리 먹으라고 하는 바람에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그렇게 한창 식사를 이어가고 있을 때쯤, 연지석은 문득 박민정의 옷에 시선이 갔다. 무척이나 더운 날, 그녀가 목과 팔을 전부 다 가리는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혹시 요즘 또 몸이 안 좋아?”박민정이 추위를 탄다는 사실을 떠올린 연지석이 물었다.그러자 그녀는 조금 부자연스럽게 자신의 목 주위를 매만지며 머리를 저었다.“아니, 회사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해서 입은 것뿐이야.”“그런 거면 차라리 카디건을 입어. 목 답답할 거 아니야.”“응, 알겠어.”박민정은 자신의 목에 새겨진 키스 마크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두 사람은 이 모든 상황을 누군가가 감시카메라로 전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유남준은 다른 방에서 두 남녀가 식사하는 장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내 웨이트리스를 불러와 뭐라고 지시를 내렸다.그러자 몇 분 뒤, 해당 웨이트리스는 손에 와인을
그리고 그의 손은 천천히 그녀에게로 향했다.“밥만 먹은 건 아닌가 보지?”그의 말에 박민정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밥만 먹은 건 아닌 것 같다고?’그녀는 그의 손길을 피하며 말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당신의 그 더러운 상상에 날 끼워 넣지는 말아 줄래요?”유남준의 손은 허공에서 멈춰버렸다.“더러운 상상? 지금 더러운 꼴을 하고 있는 건 너야!”박민정이 왜 이런 꼴이 됐는지 그가 왜 모르겠는가. 유남준은 단지 그녀에게서 왜 이런 꼴이 됐는지에 대한 해명이 듣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해명을 채 듣기도 전에 그녀가 비아냥거리는 바람에 유남준도 그만 소리를 질러버렸다.“그럼 눈 더럽히지 말고 이만 나가는 게 어때요?”박민정의 말에 그는 그녀를 거칠게 품에 끌어안더니 한껏 비꼬았다.“이렇게 입으면 그 남자가 네 목에 새겨진 흔적들을 못 볼 줄 알았나 보지?”박민정은 그제야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아까는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라 몰랐는데 지금 보니 꼭꼭 잠가뒀던 단추가 다 풀어져 있었다.화장실로 달려오기 전 연지석의 눈빛이 조금 이상했던 이유가 이거였다.“그건 또 어떻게... 설마 나 또 감시한 거예요?”박민정의 눈이 금세 눈물로 가득 찼다.그녀의 상처받은 듯한 눈빛은 비수가 되어 유남준의 심장을 아프게 찔러왔다.그는 자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 따끔거리며 아픈지 알 길이 없었다.“감시 따위 안 해도 알 수 있어.”굳이 거짓말할 이유는 없었지만, 곧 울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그녀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갔다.하지만 그의 거짓말에도 박민정은 수치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상대가 연지석이 아닌 조하랑이었어도 아마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그녀는 키스 마크를 달고 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보기 좋지 않음을 떠나 불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런 행위는 사랑하는 남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던 그녀라서 더 이런듯싶다.물론 그녀도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