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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작가: 윤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3-20 19:23:59
달빛 아래, 박민정은 자신이 오랫동안 사랑해 온 남자의 얼굴을 보면서 목소리가 잠긴 채 물었다.

“유 대표님, 저랑 약속하셨잖아요.”

박민정의 얼굴을 만지던 유남준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그녀의 눈과 마주친 그는 마음이 아려왔다. 유남준은 침대에서 내려와 병실을 나왔다. 밖에 나온 유남준은 낯선 사람을 보는듯한 박민정의 눈길을 잊을 수가 없었다.

“유 대표라고?”

차에 탄 그는 바로 비서에게 전화 걸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지?”

새벽 두 시, 밑도 끝도 없는 전화에 서다희는 찾아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뭐지? 프로젝트 기간도 아니고. 행사 날짜도 아닌데.”

허둥대던 서다희는 그제야 컴퓨터를 보고 오늘이 박민정의 생일임을 알아챘다. 그는 바로 유남준에게 전화했다.

“대표님, 오늘 민정 씨 생일입니다.”

다행히 둘이 결혼할 때 서다희는 박민정의 정보를 조금 외우고 있었다. 유남준은 그녀의 생일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물었나?’

‘어쩐지 연지석이 어젯밤에 돌아오더라니.’

유남준이 말이 없자 서다희가 물었다.

“대표님, 선물 준비할까요?”

담배 재가 유남준의 손에 떨어지자 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전화를 끊은 뒤 유남준은 그렇게 차에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유남준은 병실에 들어섰다. 박민정은 아무 때나 퇴원할 수 있었다.

“가자. 같이 갈 데가 있어.”

“어디요?”

박민정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계속 그 아이 만나고 싶다고 했잖아.”

순간 박민정의 눈이 반짝거렸다.

“고마워요.”

“그래.”

차 안의 분위기가 어제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정림원.

병세가 안정된 박윤우는 매일 잘 먹고 잘 놀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저 언제쯤 쓰레기 아빠가 자기를 보러오는지 궁금했다.

‘오늘 엄마 생일인데. 쓰레기 아빠가 잘 챙겨주는지 모르겠네.’

“이모, 아저씨 언제 또 나 보러 와요?”

박윤우는 커다란 눈망울로 가정부를 쳐다봤다.

가정부도 사실 몰랐다. 지난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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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부는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진짜야?”박윤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짐짓 진짜 인척 꾸며댔다.“네. 그렇지 않으면 왜 부인도 없고, 아이도 없겠어요?”유남준은 올해 거의 서른이 되었다. 일반적인 남자들도 그 나이에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데 부잣집 남자면 말할 것도 없었다. 가정부는 박윤우를 치켜세우며 칭찬했다.“윤우 진짜 대단한데. 아는 게 어쩜 그렇게 많아?”두 사람이 웃고 떠드는 사이 유남준과 박민정이 도착했다.박민정은 오는 동안 길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었다. 그런 그녀를 유남준은 지켜보기만 할 뿐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곳을 안다고 해도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 차에서 내린 박민정은 바로 집안으로 향했다. 유남준이 예쁜 여자를 데리고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가정부는 이내 박윤우에게 알려줬다. 박윤우는 가장 처음 떠오른 사람이 이지원이었다. ‘티비에서만 봤는데 오늘은 실물을 볼 수 있겠군.'만반의 준비하고 이지원을 기다리던 박윤우는 박민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만 눈이 빨개진 채 울먹였다. 여기에 온 후로 한번 도 울어본 적이 없는 박윤우였다. “엄마...”창백한 얼굴에 작은 몸을 달려 자신한테 달려오는 아들을 보면서 박민정은 박윤우를 와락 품에 안았다. “윤우야.”“엄마. 보고 싶었어.”“엄마도 윤우가 많이 보고 싶었어.”유남준은 문에 기댄 채 모자의 상봉을 지켜봤다. 그러고는 가정부에게 손짓해서 내보낸 후 둘만 방에 남겨두고 나왔다. 박민정은 조심스레 박윤우의 몸을 살펴보면 물었다.“요즘 아픈 곳은 없어?”“아니. 없어. 나 여기서 아주 잘 지내.”박윤우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이내 목소리를 낮춰 박민정에게 속삭였다.“엄마, 여기 아저씨 진짜 바보야. 내가 달라는 걸 다 가져다줘.”“그리고 지난번에 내가 실수로 아저씨한테 오줌도 쌌어.”박민정은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뭐? 윤우야 엄마한테 천천히 말해줘.”박윤우는 왜 유남준에게 오줌을 싸게 되었는지 자세히 얘기해줬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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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6화

    박민정의 우울한 마음을 눈치챈 박윤우는 이내 애교를 부렸다.“엄마, 뭐 잊은 거 없어?”“뭐?”“뽀뽀.”박윤우는 자신의 볼을 가리켰다. 박민정은 피식 웃으며 아들의 볼에 입맞췄다.“됐지?”“응!”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박민정은 항상 따스한 마음이 들었다. 요 며칠의 서러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시간은 유난히 빨리 지나갔고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 떠나기 전 박민정은 박윤우에게 여러 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해외에 있을 때와 달리, 오늘 박윤우는 떼도 쓰지 않고 얌전히 박민정과 작별 인사를 했다.예전에 진주시에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박윤우는 울고불고 떼를 쓰면서 그녀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박민정은 한참 아들을 달래주곤 했었다. 박민정은 그동안 박윤우가 그저 지능이 또래 애들보다 조금 높을 뿐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돌아가는 차 안에서 박민정은 별장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돌아보았다.옆에 앉은 유남준은 생일 얘기를 하려 했지만 결국에 꺼내지 못했다. “이따 먹고 싶은 거 있어?”“아무거나 괜찮아요.”박민정은 입맛이 없었다. 유남준은 그가 항상 가던 가계로 향했다. 박민정은 저녁 내내 음식을 별로 입에 대지 않았다. 어떻게 생일을 보내야 할지 몰라 유남준은 돌아가는 길에 집으로 케익을 주문했다. 두원 별장에 돌아온 박민정은 테이블 위의 케익을 보고 의아했다. 유남준은 아무 말 없이 서재로 향했다. 박민정은 그제야 전화기를 꺼내 확인했다. 연지석과 조하랑이 부재중 전화가 여러 개 와있었다. 무음 모드로 해놔서 전화 온 줄도 몰랐었다. 두 사람이 걱정할까봐 박민정은 우선 조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정아, 왜 이제야 전화 받아? 어제는 왜 그냥 갔어?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어제는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랬어. 전화가 무음으로 되어서 받지 못했어.”조하랑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별일 없으면 됐어.”통화가 끝나고 박민정은 바로 연지석에게도 전화해서 오늘 정림원에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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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7화

    유남준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박민정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녀는 연지석이 해외 신분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었다. 그저 가끔 그가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는 것만 알았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한테 피해 주는 게 당신 스타일은 아니잖아요?”박민정은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유남준의 넓은 어깨가 박민정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를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들리네. 나한테 손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박민정은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그렇게 큰 비용을 들여서 밑지는 장사를 하는데. 손해가 아닌가요?”유남준은 차갑게 비웃었다.“틀렸어. 난 한 번도 밑지는 장사를 해본 적이 없어.”“이 자리까지 오니깐, 돈이 다가 아닌 게 있더라고.”그가 몇 년 동안 국내에 있는 연지석의 회사들을 압박하여 힘들어지게 한 게 다 무엇 때문인데. 다 원한을 풀기 위해서 아닌가?"‘연지석이 아니면, 당신이 나한테 감히 이럴 수가 있을까?’유남준은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박민정은 점점 눈앞의 남자를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두 사람은 10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결혼 후에도, 지금도 그녀는 유남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도 그렇겠지...’두 사람이 헤어진 건 잘된 일이었다.“그러면 왜 이렇게까지 해요?:박민정이 물었다.“그 사람과 당신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어서.”유남준은 당당한 듯 말했다. 박민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 뺨을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가짜 결혼 말고 없잖아요!”유남준은 박민정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귀에 속삭였다.“당신, 도망가지 말았어야 했어. 나를 속이면 안 됐다고.”그녀가 가짜 사망을 꾸민 이 몇 년 동안, 유남준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박민정은 눈을 내리깐 채 물었다.“그래서 이렇게 나를 괴롭히고 반항도 못 하게 하는 건가요?”박민정의 어깨 올린 손이 움찔했다.“내가 언제 괴롭혔어?”결혼한 후 유남준은 그래도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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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8화

    자신의 몇 년간 순정이 한순간에 싸구려 취급을 받다니. 박민정도 정말 이 사랑이 부질없다고 느꼈다. “그러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유남준의 이마에 있는 핏줄이 튀어나올 듯했다. 그는 눈이 빨개진 채 그녀의 머리를 가슴팍에 눌렀다. 숨이 막혀왔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유남준은 사과의 말을 듣고 싶었지만 박민정도 숨이 막힐지언정 사과를 하지 않았다. 박민정은 한번 먹은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를 좋아할 때도 그랬고 떠날 때도 그랬다. 숨이 점점 가빠지는 박민정을 보면서 유남준은 황급히 손을 놓았다. 그러다 그녀가 정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그가 입맞췄다. 박민정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옷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차가운 벽에 기대며 박민정은 애원했다.“며칠만 더 기다려주면 안 돼요?”“왜 기다려야 해?”얼마 전 유남준은 그녀가 원한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또 거부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박민정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아직 생리 중이에요”유남준은 그제야 그녀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는 박민정을 안은 채 침대에 누웠다. 긴장해서 굳어있던 그녀의 몸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유남준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하루 동안 피곤했던 박민정은 그렇게 그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유남준은 박민정의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듣고서 보청기를 빼주었다. 유남준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마음이 변할 수가 있어?”그는 잠든 박민정을 보면서 속삭였다. 이튿날. 박민정이 깨어났을 때 유남준은 곁에 없었다. 씻으려고 거울 앞에선 박민정은 자기 목에 빨간 자국을 발견했다. 어제 유남준이 남긴 흔적이었다. 파운데이션으로 가려봤지만 가려지지 않았다. 박민정은 할 수 없이 목폴라 니트로 갈아입고 머리를 풀어 내렸다. 씻고 거실로 나가니 유남준이 거실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오늘은 회사에 나가.”그가 입을 열었다.“오늘은 쉬고 싶어요.”박민정은 오늘 병원에 가서 언제 임신하면 좋을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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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9화

    연지석도 유남준 뒤에 서있는 박민정을 발견하고는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는 손을 내밀에 유남준에게 악수를 청했다.“유 대표님, 안녕하세요.”생각보다 분위기는 살벌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유남준은 그의 악수에 응하면서 박민정을 소개했다.“여기는 제 아내 박민정입니다.”유남준은 보란 듯이 박민정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손을 떼어내려 하자 유남준은 더욱 세게 힘을 줬다. 박민정이 할퀴어 손등에서 피가 났지만 유남준은 여전히 태연했다. 이 모든 걸 지켜보면서 연지석이 입을 열었다.“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둘이 어릴 적 죽마고우였거든요. 제가 유 대표님보다 어쩌면 민정을 더 잘 알고 있을지도요.”‘죽마고우라... 진짜 애틋하네. 나보다 더 잘 안다고?’ 박민정에게 빤히 고정된 유남준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여보. 왜 이런 죽마고우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안 했지?”그는 손에 힘주어 그녀를 끌어당겼다. 박민정은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이럴 때만 자신을 아내라고 불렀다. 하긴 다른 남자한테 지고 싶어 하는 남자는 없으니까.“아마 잊었나 보죠.”박민정은 나직이 읊조렸다.예전의 유남준은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친구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연지석도 몰랐다. “그러면 이따 일 얘기가 끝나면 두 사람같이 얘기를 나누세요.”유남준이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그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아는 박민정은 단칼에 거절했다.유남준은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왜? 나중에 나 몰래 만나려고 그러는 거야?”박민정은 입술을 깨문 채 그를 노려봤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와 마주친 유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움찔거려 재빨리 눈길을 돌렸다.두 사람을 지켜보는 연지석의 가슴에는 분노가 타올랐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박민정은 아직 유남준의 아내이고 자신은 그저 이름대로 어렸을 적 친구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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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다희는 작은 도발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유남준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 계속 그러다간 두 사람은 결국 파국을 맞을까 걱정되었다. 박민정은 서다희의 말에 담긴 뜻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비서님은 결혼하셨나요? 아니면 여자 친구가 있으세요?”금색 테 안경에 가려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약혼녀가 있습니다.”약혼녀의 생각만 하면 그는 한숨이 나왔다. 선보고 만나서 연애까지 성공하였지만 여자 친구는 유치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만만치 않았다. 서다희가 일 때문에 그녀와의 약속에 나가지 못했을 뿐인데 여자는 이러면 결혼할 수 없다며 드러누웠다. ‘결혼이 애들 장난인가.’“그러면 그 여자분도 비서님을 아주 사랑하겠네요.” 박민정이 보기에 서다희도 제 상사처럼 남을 배려하지 않은 냉혈한으로 보였다. 약혼녀가 정말 서다희를 사랑하니까 결혼까지 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했다. “사랑까지는 아니고. 그냥 적당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거죠.”“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생각에 변함이 없길 바라요.”말을 마친 박민정은 고개 숙여 자기 업무를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다희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나온 서다희는 여자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였다. [또 야근이야? 맨날 야근, 야근. 그냥 회사랑 결혼하지 그랬어. 우리 헤어져.] 서다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또 시작이네. 계속 해 봐.]결혼 안 하면 말지.“내가 결혼 할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연애도 하지 말걸. 시간이 아깝게.”...유남준과 연지석은 정오가 되어서야 회의실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아무도 몰랐다. 박민정은 연지석이 걱정되었다. 국내에선 유남준이 안 닿은 곳이 없어 연지석의 대부분 프로젝트가 진행에 문제가 생겼다. 연지석은 회의실에서 나온 후 바로 박민정을 찾아갔다. “가자. 밥 먹으러.”어제 그녀같이 생일을 함께 하지 못해 그는 못내 아쉬웠다. 박민정은 연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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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1화

    이레아 레스토랑 룸.연지석은 박민정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들로 주문했다.“요즘 너 살이 너무 많이 빠진 것 같아. 그러니까 오늘은 많이 먹어.”“그래.”하지만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음식을 앞에 두고도 박민정은 입맛이 돌지 않았다.“아까... 그 사람하고는 무슨 얘기했어?”연지석은 그녀에게 스테이크를 썰어주며 답했다.“그냥 일 얘기 좀 했어.”“혹시 그 사람이 너 괴롭히거나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았고?”박민정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그러자 연지석이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예쁜 반달 눈을 하고 그녀를 바라봤다.“유남준 그 사람이 뭐 사춘기 남자애라도 돼? 괴롭히긴 뭘 괴롭혀.”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박민정은 밖에서는 항상 진지한 얼굴이던 연지석이 자기 앞에만 서면 장난을 치지 못해 안달 난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나 지금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거니까 제대로 대답해.”“그럼 더 안 되겠네. 남자가 돼서 여자한테 쪼르르 이르면 안 되지.”연지석이 연신 웃으며 빨리 먹으라고 하는 바람에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그렇게 한창 식사를 이어가고 있을 때쯤, 연지석은 문득 박민정의 옷에 시선이 갔다. 무척이나 더운 날, 그녀가 목과 팔을 전부 다 가리는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혹시 요즘 또 몸이 안 좋아?”박민정이 추위를 탄다는 사실을 떠올린 연지석이 물었다.그러자 그녀는 조금 부자연스럽게 자신의 목 주위를 매만지며 머리를 저었다.“아니, 회사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해서 입은 것뿐이야.”“그런 거면 차라리 카디건을 입어. 목 답답할 거 아니야.”“응, 알겠어.”박민정은 자신의 목에 새겨진 키스 마크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두 사람은 이 모든 상황을 누군가가 감시카메라로 전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유남준은 다른 방에서 두 남녀가 식사하는 장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내 웨이트리스를 불러와 뭐라고 지시를 내렸다.그러자 몇 분 뒤, 해당 웨이트리스는 손에 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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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의 손은 천천히 그녀에게로 향했다.“밥만 먹은 건 아닌가 보지?”그의 말에 박민정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밥만 먹은 건 아닌 것 같다고?’그녀는 그의 손길을 피하며 말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당신의 그 더러운 상상에 날 끼워 넣지는 말아 줄래요?”유남준의 손은 허공에서 멈춰버렸다.“더러운 상상? 지금 더러운 꼴을 하고 있는 건 너야!”박민정이 왜 이런 꼴이 됐는지 그가 왜 모르겠는가. 유남준은 단지 그녀에게서 왜 이런 꼴이 됐는지에 대한 해명이 듣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해명을 채 듣기도 전에 그녀가 비아냥거리는 바람에 유남준도 그만 소리를 질러버렸다.“그럼 눈 더럽히지 말고 이만 나가는 게 어때요?”박민정의 말에 그는 그녀를 거칠게 품에 끌어안더니 한껏 비꼬았다.“이렇게 입으면 그 남자가 네 목에 새겨진 흔적들을 못 볼 줄 알았나 보지?”박민정은 그제야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아까는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라 몰랐는데 지금 보니 꼭꼭 잠가뒀던 단추가 다 풀어져 있었다.화장실로 달려오기 전 연지석의 눈빛이 조금 이상했던 이유가 이거였다.“그건 또 어떻게... 설마 나 또 감시한 거예요?”박민정의 눈이 금세 눈물로 가득 찼다.그녀의 상처받은 듯한 눈빛은 비수가 되어 유남준의 심장을 아프게 찔러왔다.그는 자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 따끔거리며 아픈지 알 길이 없었다.“감시 따위 안 해도 알 수 있어.”굳이 거짓말할 이유는 없었지만, 곧 울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그녀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갔다.하지만 그의 거짓말에도 박민정은 수치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상대가 연지석이 아닌 조하랑이었어도 아마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그녀는 키스 마크를 달고 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보기 좋지 않음을 떠나 불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런 행위는 사랑하는 남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던 그녀라서 더 이런듯싶다.물론 그녀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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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제가 직접 끓인 죽이에요.” 아침 일찍, 이지원은 정수미의 환심을 사려 했다. 만약 정수미가 그녀가 사기꾼이라는 걸 이미 알지 못했다면 아마도 진심으로 감동했을지도 모른다.정수미는 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거기 놓아.”“네.” 이지원은 죽을 내려놓고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녀는 정수미의 뒤로 가서 말했다. “엄마, 매일 일 하시느라 힘드실 텐데 제가 등 좀 마사지해 드릴까요?”“괜찮아. 집에서 심심하면 밖에 나가서 견문이나 넓히는 게 어떻겠니.”정수미가 말했다.또다시 차가운 대우를 받은 이지원은 정수미의 성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할 수 없이 나왔다.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거지? 왜 나한테 이렇게 차갑게 대하는 거야?”이지원이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 윤소현이 제멋대로인 모습으로 정수미를 찾아가는 걸 보았다.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그녀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자업자득이네. 당신은 이렇게 제멋대로이고 불효한 자식이 좋은가 보지!”오늘은 정수미의 환심을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괜한 수고를 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이지원의 손에는 쓰고도 남을 돈과, 많은 이들이 꿈꾸는 권력이 있었다.그녀가 제호에 가면 늘 최상층의 고급 룸을 썼다.예전에 그녀를 무시하던 그 귀족 아가씨들과 도련님들이 이제는 앞다투어 아첨을 했다.“지원아, 난 네가 예전부터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어. 알고 보니 정씨 가문의 공주였다니.”“그래, 넌 그렇게 예쁜걸. 한눈에 봐도 가난한 집 딸은 아니었지.”“난 예전부터 네가 나중에 크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이지원은 그들의 아부를 들으며 더 이상 얼굴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와인 잔을 들며 말했다. “하지만 너희들 예전엔 날 무시하지 않았나? 내가 고아라고 했지? 근데 그거 알아? 민정 씨가 진짜 고아야.”사람들은 잠시 멍해졌다. 박민정이 한수민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지원은 거리낌 없이 모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81화

    박민정은 대답 없이 천천히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완전히 혼란스러웠다.정민기는 그녀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다가, 유난히 창백한 안색을 보고 급히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아무것도 아니에요. 돌아가죠.” 박민정이 말했다.“네.”차에 탄 후. 박민정의 머릿속에는 함미현이 한 말들이 맴돌았다. 정수미가 자신의 친엄마라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자신의 친엄마가 과거에 자신과 아들의 목숨을 노렸다고?‘안 돼, 절대로 함미현의 일방적인 말만 믿을 순 없어.’“민기 씨,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그녀는 자신과 정수미가 정말 모녀 관계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정민기에게 이 일을 부탁한 후, 박민정은 윤우가 있는 병원으로 돌아왔다.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유남준이 아이 곁을 지키며 쉬지 않고 있다가 그녀를 보자 일어나 그녀를 부축했다. “어땠어?”“별일 없었어요.” 박민정은 아직 확실한 결과를 모르는 상황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오해였다면?유남준은 그녀에게 무슨 걱정거리가 있다는 걸 알아챘지만, 말하기 꺼려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피곤하지? 일찍 자.”“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간단히 씻은 후 옆방 간병인 방에서 잠들었다.깊은 밤, 박민정은 편히 잠들지 못했다.그녀는 또다시 어린 시절의 꿈을 꾸었다. 시골에서 박씨 가문으로 데려와졌을 때의 일, 한수민에게 아무리 잘 보이려 해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던 때를.한수민이 그녀를 무릎 꿇게 하며 말했다. “네가 감히 네 동생을 괴롭혀? 둘이 같을 줄 알아?”그때의 박민정은 아직 아무것도 몰랐기에 한수민에게 반박했다. “우리 모두 엄마의 자식인데, 왜 이렇게 차별하세요? 왜 저를 조금도 사랑해 주지 않으세요?”한수민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지었다.“너를 사랑하라고? 너무 바라는 거 아니니? 말해주마. 넌 그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쓰레기일 뿐이야. 내 딸이 될 자격도 없어!”과거의 장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80화

    이지원은 창밖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유남준이 날 좋아하지 않았으니, 나도 너희들을 망쳐놓을 거야.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박민정 너도 절대 가질 수 없어.’그녀는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깊게 파고들어 피가 맺혔다...한편, 박민정은 정민기의 차를 타고 정신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정신병원 내부.함미현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들이 병원에 있는지조차 모르겠으며 남편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그녀는 깊은 후회를 느꼈다. 왜 그때 욕심을 부렸을까.부유함에 대한 욕망만 없었어도, 지금처럼 이렇게 떨어져 있지는 않았을 텐데.함미현은 윤소현이 얼마나 끔찍한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그녀는 절대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녀를 죽인 후, 아들과 남편까지 해치려 할 수 있었다.그녀는 억울한 마음에 몇 번이고 이곳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매번 붙잡혀 돌아왔다.벽에 기대어 멍하니 있을 때,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구석으로 피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약을 주거나 주사를 놓으러 온 게 아닐까 두려워서였다.하지만 다가온 간호사는 우선 문을 닫았다.함미현은 그제야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민정 씨?”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그 후, 박민정은 병실을 둘러보았다. 낡고 좁은 병실, 겨우 1.5미터짜리 침대 하나가 놓여 있을 뿐, 책상이나 의자조차 없는 곳이었다.함미현은 그녀를 보고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그녀의 손을 잡았다.“민정 씨,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제 아들 동하를 찾아주세요. 동하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어요.”박민정은 그녀의 말을 듣고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제가 여기 온 이유는 물어볼 게 있어서예요.”함미현은 결심을 다졌다.“민정 씨, 질문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아는 것, 다 말할게요.”결국 함미현은 박민정에게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79화

    “지금 어디에 있어요?” 박민정이 급하게 물었다.“여기에서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개인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정민기가 답했다.정신병원?박민정은 이게 정수미가 함미현에 대한 복수 방식임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들어갈 방법은 없을까요?”“내부 사람들과 가까워졌어요. 만나고 싶다면 병원의 간호사나 의사로 변장하면 될 거예요.” 정민기가 말했다.“좋아요, 그럼 오늘 밤에 가죠.”“네.”박민정은 박윤우가 다친 걸 보고 점점 더 강해져야겠다고 느꼈다.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그날 밤, 박윤우가 잠든 후 박민정은 밖으로 나갈 계획이었다.하지만 두 걸음도 못 떼고, 유남준이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 가는 거야?”박민정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냥, 나가서 산책 좀 하려고요.”“같이 가자.”“괜찮아요.”박민정은 최근 몇 날 며칠 피로해 보였던 그를 생각하며 거절했다.“먼저 자요. 곧 돌아올게요.”하지만 유남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박민정은 그가 계속해서 추궁하자, 결국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민기 씨가 함미현이 지금 있는 곳을 찾았어요. 그때 일에 아직 궁금한 점이 많아서, 직접 만나서 물어보려 해요.”함미현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박민정은 가끔 꿈에서 함미현을 보곤 했다. 꿈속에서 함미현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유남준은 그녀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같이 가자.”“안 돼요. 병원에서 푹 쉬면서 윤우를 돌봐줘요. 민기 씨랑 갈 거예요. 당신이 여기서 윤우를 지켜야 제가 마음이 놓여요.”박민정은 유남준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바라보았다.유남준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끝으로 박민정의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었다. “알았어. 하지만 반드시 안전을 지켜.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나한테 연락하고.”박민정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알았어요.”두 사람의 따뜻한 순간을, 멀리서 한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78화

    윤소현은 최대한 감정을 누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어머니.”“정씨 가문으로 갈 테니, 우리 한번 보자.” “네.”윤소현은 여전히 고영란이 두려웠다. 다만 자신이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방패막이가 되어줄 거라 생각했다.고영란은 곧바로 정수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수미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해입니다. 제 사람들이 실수로 아이를 다치게 한 거예요.”하지만 고영란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정 대표, 우리 모두 똑똑한 사람이잖아요. 양녀 관리 제대로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서게 될 테니까요.”전화를 끊은 후에도 고영란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토록 애지중지 키운 똑똑하고 착한 손주들이 윤소현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정씨 가문 앞에 도착하자 윤소현이 이미 와있었다. “어머니...”윤소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임신 사실이 보호막이 되어줄 거라 믿었다.“몇 개월 됐지?”고영란이 물었다. 윤소현은 잠시 망설이다 미소 지으며 답했다. “다섯 달 정도요.” “다섯 달이라... 이제 안정기네.” 고영란은 중얼거리듯 말하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윤소현의 뺨을 세게 때렸다. 윤소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어머니, 어떻게 임신한 며느리를 때리실 수 있어요?” 윤소현이 뺨을 감싸며 항의했다. “임신했다고? 그럼 너는 왜 윤우를 그렇게 때릴 수 있었니? 너도 곧 애 엄마가 될 사람이면서!”고영란이 호통을 쳤다. 윤소현은 억울한 듯 물린 자국이 남은 손을 들어 보였다. “보세요, 예찬이랑 윤우가 먼저 절 물었다고요!” “그게 네 변명이야? 윤우가 다 말했어. 네가 먼저 때리려고 했고, 아이들은 자신을 지키려 했다는 걸!”“믿기지 않으면 조사해도 된다고 하더구나!” 윤소현은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먼저 손을 댄 건 사실이었으니까.“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보여줄 거야. 선 넘지 마!” 고영란은 말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77화

    그날 아침, 고영란은 박씨네 본가에 갔다가 손자의 병세가 재발해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윤우가 있는 앞에서 박민정은 그 사실을 직접 말할 수가 없었다.“괜찮아요. 의사 선생님이 더 쉬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곧 나을 거예요.”“그렇다면 다행이네.” 고영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박윤우의 곁으로 다가갔다.“윤우야, 왜 병이 또 도졌니? 약은 제때 먹었니?”박윤우는 고영란이 여기 왔다는 걸 알자, 이를 기회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는 먼저 박민정에게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 오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고영란 앞에서 금세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늘 말을 잘 들었죠? 그런데...”잠시 말을 멈추는 사이, 눈물방울이 마치 작은 구슬처럼 굴러떨어졌다.“누가 저를 괴롭혔어요.”“뭐라고?” 고영란은 즉시 화가 나서 물었다.“누가 널 괴롭혔니? 말해봐, 할머니가 대신 복수해 줄게!”그녀는 누가 감히 자기 손자를 괴롭혔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박윤우는 콧물을 훌쩍이며 말했다.“작은숙모요.”“작은숙모?”고영란은 잠시 그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며 물었다.“네 삼촌 아내, 소현이 말이니?”“네.” 박윤우는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이며 울먹이며 말했다.“작은숙모가 저를 때렸어요. 그뿐만 아니라 형도 때리려고 했어요.”고영란은 이 말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아이를 때릴 수가 있지?”“숙모는 저와 형을 죽이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유씨 집안에선 숙모 아들만 있어야 하고, 저랑 형은 없어야 한다고 했어요.” 박윤우는 하나하나 또박또박 말했다.이 말에 고영란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아이는 분명 이런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고영란은 박민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말을 가르칠 리 없었다.“어떻게 아이를 때릴 수 있지...”고영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윤우야, 울지 마. 할머니가 꼭 복수해 줄게.”고영란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윤소현이 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76화

    “사람을 시켜 준비하도록 하지.”정수미가 결심한 듯 말했다.윤소현과 이지원은 서로 마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수미의 도움이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박민정은 끝장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정수미는 단지 박민정에게 본때를 보여주어 다시는 정씨 가문과 윤소현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 했을 뿐인데, 자기 딸이 그들 모자의 목숨을 노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박예찬은 온라인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비록 이번 일이 정씨 가문과 PMJ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지만, 적어도 정씨 가문의 체면을 구기기에는 충분했다.정수미가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조사해 보았지만, 범인이 해외 가상 주소를 사용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병원에서 박윤우를 간호하느라 바쁜 박민정은 뉴스를 볼 겨를이 없었다. 진서연이 전화로 알려주기 전까지는.지금은 정씨 가문의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오직 박윤우의 병세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채웠다.박윤우가 잠들자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물었다.“우리... 조산을 하면 안 될까요?”박민정은 박윤우가 아이들이 태어날 때까지 버티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위험해.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면 안 돼.”유남준은 이성적으로 대답했다. 박윤우를 걱정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일수록 서두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박민정은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그럼 어떡하죠?”“괜찮을 거야.”유남준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박민정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그를 마주 안았다.둘이 서로를 껴안고 있을 때,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아 진서연과 함께 박윤우를 보러 온 에리가 그 모습을 목격했다.그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진서연은 상황을 보고 급히 그를 밖으로 이끌었다.약간의 소리가 나자 박민정은 유남준의 품에서 벗어나 문 쪽을 바라보았다.“어머, 왔었네.”진서연은 다소 어색한 듯 정신을 차리고는 들고 있던 과일바구니와 꽃바구니를 들어 보였다.“에리 씨가 윤우가 아프다는 걸 알고, 저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75화

    다음 날, 이른 아침.온라인상의 모든 뉴스가 폭발했다.정씨 가문의 사업 자료가 유출되었다는 소식이 각종 플랫폼에 퍼졌다.원래 정수미는 비서에게 이 소식을 절대 새어나가지 않게 하라고 했는데, 하루 만에 모든 사람이 알게 될 줄은 몰랐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비서도 모르는 일이라 겁에 질려 고개를 저었다. “어제 밤부터 네트워크를 감시하게 했고, 이 일은 저희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데...”“박민정!” 정수미는 모든 것을 박민정 탓으로 돌렸다.그녀는 책상을 세게 내리치며 말했다. “어제 밤에는 그 여자 아들이 입원한 것 때문에 약간 죄책감이 들었는데, 이제 보니 잘된 일이었어!”“맞습니다. 정말 가증스럽네요. 먼저는 아가씨의 남편을 유혹하더니, 이제는 감히 정씨 사업까지 겨냥하다니!” 비서도 거들었다.정수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이때 이지원과 윤소현도 도착했는데, 멀리서 소동을 듣고 즉시 다가와 부채질을 했다.“엄마, 온라인의 일 박민정이 한 거예요?”이지원이 물었다.“그 여자 말고 누가 있겠어?” 정수미가 대답했다.이지원은 분노한 척 연기했다. “정말 믿을 수 없어요. 이렇게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박민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네요.”정수미는 호기심이 생겨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지?”“박민정은 늘 독했어요. 예전에 제가 남준 오빠랑 만날 때도, 박민정은 자신이 박씨 집안의 딸이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저랑 오빠가 함께하는 것을 방해했어요. 나중에는 오빠한테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강요하기까지 했어요!”“제가 박씨 집안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사실은 박민정과 박민정 아버지 때문에 해외로 쫓겨났어요.”“돌아오면 박민정이 그나마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심해졌어요. 남준 오빠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저를 온갖 방법으로 괴롭히고, 많은 근거 없는 죄명을 씌웠죠. 전 딱히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는데 지금은 엄마랑 소현이까지 괴롭히려 한다니... 용서할 수 없어요.”이지원의 말은 진심이 느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74화

    분명 윤소현이 때린 건데 정수미는 부하 직원 하나를 매수해서 죄를 뒤집어씌우다니, 참으로 가소로웠다.유남준은 천천히 양손을 움켜쥐며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 “꺼져!”보안요원은 이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네, 네.”그가 떠나자 이곳은 마침내 조용해졌다.김인우가 욕설을 내뱉었다. “정씨 집안 놈들은 자기가 엄청 대단한 줄 아나 봐? 이렇게 멋대로 굴다니!”조하랑도 분노에 차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여자 딸이 유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으니...”이렇게 보면 사실상 두 시누이 간의 집안 문제가 된 셈이었다.“유남우는 제정신이야? 아이를 때리는 여자랑 결혼하겠다니!” 김인우가 또 한 번 분통을 터뜨렸다.지금 이런 말들은 소용없었다.마침내, 수술실 문이 열렸고, 의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왔다.박민정이 서둘러 일어나 다가갔다. “선생님, 제 아들은 지금 어때요?”“목숨은 건졌습니다만, 현재 체내의 백혈구가 너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서 가능하다면 빨리 수술하는 게 좋겠습니다.”의사가 말했다.박민정은 배를 감싸안으며 물었다. “다음 달에 해도 될까요?”“그건 저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일단 입원시켜 놓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네, 네, 알겠습니다.”박민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박윤우의 입원 수속을 마치고 박민정 일행은 병실로 가서 아이를 보았다.박윤우는 여전히 매우 허약해 보였고 지친 눈을 겨우 뜨며 말했다. “엄마, 아빠, 형... 아저씨, 하랑 이모... 걱, 걱정하지 마세요.”“이제 괜찮아요.”그는 자신이 너무 미웠다. 왜 이렇게 쓸모없는 걸까, 엄마의 원수를 갚으러 갔다가 오히려 엄마에게 걱정만 끼치게 된 걸까?“그래, 윤우야. 잘 쉬어. 다 나을 거야.” 박민정이 눈물을 참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네.”박윤우는 바로 대답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그는 다시 박민정의 손을 잡았다. “엄마, 제가 말씀드린 거 안 잊으셨죠?”박민정은 그가 정수미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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