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린은 파란색 군복을 입은 공군 사령관을 보고 침울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공군에서는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설마 그냥 넘어가는 겁니까?”“이 일은 한 시간도 안 되어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주류 언론에 퍼질 겁니다. 그때가 되면, 당신은 또 어떤 해결 방법이 있어요?”“일단 우리 M국이 다른 나라의 조롱거리가 된다면,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만든 계획도 물거품이 될 겁니다.”“이 일의 중요도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세 명의 사령관이 진지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플로린은 지금 이 세 명의 장군에게, 그들이 각자 따로 플레이하지 말고 원 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좋은 말로 권고했다.그러나 이 세 사람은 하필 아무도 다른 쪽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해군 사령관은 육군은 이미 쓸모없는 분야라서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육군 사령관은 해군의 규모가 이미 적정선을 넘었지만, M국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고 오히려 국방 재정을 저해하고 있다고 여겼다.공군의 사령관은 육군과 해군 모두를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으로 비유하며, 그들의 공군이야말로 미래 발전의 방향이라고 여겼다.그래서 세 장군은 백궁 대통령 집무실의 플로린 앞에서 바로 말다툼을 벌였다.플로린은 자신의 세 참모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는 일찌감치 기대를 접었다.이들은 바로 그의 세 참모다. 당초에 세 사람은 그래도 피가 끓어오르게 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볼 수 없었다.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암투와 잔머리를 굴리는 것뿐이었다.“오 마이 갓, 하느님, 저들의 입을 다물게 해주세요!”어깨를 으쓱거리며 한숨을 쉰 플로린은, 어쩔 수 없이 세 사람의 상호 비하와 모욕적인 언사를 끊어야 했다.“당신들이 대응책이 없다면 백궁에서 나가세요. 저는 업무를 봐야겠어요!”플로린은 아주 좋지 않은 눈빛으로 세 장군을 노려보며 나지막히 말했다.각자 눈을 마주친 세 장군은 모두 플로린을 바라보았다.“플로린 대통령 각하, 저는 군함을 파견해서 용국의 해안을 순찰하
“진루안의 성격과 기질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는 용국의 새로운 전신으로, 전 세계에서 아주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지요. 나이도 어린 데다가, 일을 할 때는 더욱 상대에게 어떠한 방향을 돌릴 여지도 남기지 않습니다.”“얼마 전 용국과 Y국의 분쟁에서, 바로 진루안의 존재 때문에 결국 Y국의 국왕 탤리가 찌질해졌지요.”“이번에도 또 진루안인데, 이 녀석은 설마 우리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정말 두렵지 않은 건가요?”세 장군은 지금 서로 진루안에 대해 토론하면서, 약속이나 한 듯이 표정이 굳어졌다.그들은 진루안이 너무 강경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그들 국가에 있어서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보아하니 당신들은 이미 이 일이 진루안의 걸작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군요.”“그래서 당신들의 건의는 뭡니까? 괜찮으니 말해 보세요.” 플로린은 세 장군에게 진지하게 자문을 구했다. 그의 잘못된 결정을 피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세 참모의 건의는 대단히 중요했다.세 장군은 각자 눈을 마주쳤지만, 오히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만약 이 일의 배후에 진루안이 서 있다면, 그들 모두가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 군함을 파견하거나 바로 전쟁을 일으키자는 말들은 더 이상 제기할 수 없었다.‘이러한 대응책은 진루안을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진루안이 더 강경한 자세로 그들을 상대하게 만들 거야.’‘이렇게 되면, 완전히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협상을 통해서 이 일이 미친 영향을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결국 공군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이 일 자체가 그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며, 공군에서 발생한 모든 일은 M국 공군의 최고 사령관인 그가 책임져야 한다.이번에 초계기가 한 대 격추되고 조종사가 한 명 체포된 것은 이미 그를 매우 불리하게 만들었다. 특히 M국의 언론과 여론의 압력도 그에게 거대한 정신적 압력을 느끼게 할 것이다.만약 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이 공군 사령관은 M국의 유사 이
“이광정이라는 사람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용국의 한 지방을 장악하고 있는 실력자입니다. 30만 대군을 손에 쥐고 있고, 더욱이 젊고 유능합니다. 그의 강함은 진루안에 비해 지나치면 지나쳤지 부족한 것은 없습니다.”“서호왕 안무혁, 그도 우리의 오랜 친구입니다. 20년 전에 우리 M국이 동남쪽의 Y국을 지원했는데, 결국 우리 육군이 안무혁과 싸워서 패배했습니다. 이 일을 당신들은 잊지 않았을 겁니다.”“지금 진루안, 이광정, 안무혁, 이들은 이미 생각을 통일했어요. 일단 우리가 어떤 지나친 행동을 하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반격할 겁니다.”“이렇게 되면, 협상이 오히려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요.”플로린은 지금처럼 오늘처럼 억울한 적이 없었다. 당당한 M국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 협상해서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이것은 예전에는 정말 나타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해야 했다.“이렇게 된 이상 저는 협상에 동의합니다.”육군 사령관은 안무혁도 손을 댔다는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지만, 어떤 성질도 부리지 못한 채 이 제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20년 전, 그는 5만 명의 M국 병사들을 군함에 태우고 동남쪽 Y국으로 가서, 간접적으로 용국을 상대하는 것을 도왔기 때문이다.그러나 그의 그 적수인 안무혁은 30만 대군을 데리고 동남쪽 Y국을 때렸다. 연거푸 패전하면서 7개의 도시를 잃었고, 그가 데려온 5만 명의 병사들도 결국 절반 이하만 살아남았다.또한 그때의 쓰라린 교훈은 용국에 안무혁이라는 사나운 장군이 있다는 것을 깊이 각인시켰다.‘그 후 용국의 서호왕이 되어, 용국 서북쪽의 목강성을 장악했어.’‘이렇게 강한 인물이 지금도 참여하고 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담판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당신들이 모두 동의했으니, 누가 용국에 가서 담판을 짓는 대표가 되겠습니까?”플로린은 세 사령관을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그는 누군가가 나서서 이 임무를 맡아 주기를 바랐다.그러나 이 세 사령관은 지금 모두 기이하게
슬로이의 표정은 지금 아주 좋지 않았다. 특히 육군과 해군 사령관 두 사람은 그가 위대한 일을 하는 거라고 엄청 띄우고 있었다. 그는 이번 담판에 반드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 이 일이 그들 공군과 크게 관련된 이상 그는 당연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공군 내의 여론이 차가워져서 군대를 이끌 수 없을 것이다.“좋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슬로이의 표정은 이미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사령관급의 장군이니 이런 심리 자질은 당연히 갖추고 있었다.담판을 하기로 한 이상 그는 아무런 불만도 갖지 않고 재빨리 심리상태를 잘 조절해서 다음 도전을 맞이하기로 했다.슬로이가 이러는 것을 본 플로린은 대단히 만족했다.‘그들의 마음이 어떻든 적어도 그들의 직업 소양은 의심할 필요가 없어. 슬로이도 누구하고도 견줄 수 없는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공군 장군이야’‘이런 장군이 용국에 가서 담판한다면, 용국에 끌려 다니지 않고 더욱 유리한 조건과 요구를 얻을 수 있을 거야.’“당신들은 먼저 나가세요. 슬로이 사령관과 할 말이 있습니다.” 플로린은 다른 두 사령관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전혀 불만 없이 플로린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다른 두 장군은 대통령 집무실을 나온 뒤 백궁을 떠났다.집무실 안에는 플로린과 슬로이 두 사람만 남았다.플로린은 전형적인 서양 남자로서 올해 50여세의 나이에 족히 185cm나 되는 건장한 체격이었다.공군의 최고위급 장군인 슬로이는 신사처럼 기품이 있는 모습이었다. 올해 이미 60세가 넘었고, 175cm의 키에 여위고 날씬한 몸매였고 반백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그러나 서양인의 60대는 유난히 나이가 들어 보였다.지금 슬로이는 특히 피부의 탄력이 떨어져서 마치 70대처럼 나이가 들어 보였다.그러나 파란색 군복을 입은 그는 여전히 당당한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슬로이 장군, 이번 임무에서는 용국의 협상 술책에 빠지지 않도록 신중해야 합니다.”“우리 서방에서는 협상을 모욕으로 여
채경훈은 용국 군부의 1급장군이자 공군사령관이다. M국에서 슬로이 공군사령관을 파견한 이상 당연히 대등한 계급의 장성이 맞이해야 한다.그래서 채경훈이 자연스럽게 이번 영접의 대표가 되었다.용국 군부의 1급장군인 채경훈은 공군의 최고 장성일 뿐만 아니라 경도 채씨 가문의 가주이자, 친위대 통령 채영원의 아버지이다.50세가 넘어서 인생의 황금기를 맞은 채경훈은, 미래에 김한주를 잇는 원수가 되어 3군 총사령관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슬로이 장군, 용국 방문을 환영합니다!”슬로이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내려오자, 미소를 지은 채경훈이 걸어가서 손을 내밀면서 먼저 환영의 말을 했다.이는 외교에서의 당연한 예의로 슬로이에 대한 존중과 중시를 대표한다.슬로이 일행은 협상의 목적으로 용국에 왔지만, 외형상으로는 용국을 방문한 것이다.결국 이런 담판은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상층부만 알 수 있으며, 적어도 담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발표할 수 없다.당연히 협상단이 용국에 온 이유를 찾아야 했고, 공군사령관의 용국 방문이 가장 좋은 핑계였다.슬로이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우람한 채경훈을 바라보며 조금도 가볍게 대하지 못했다. 결국 공군의 최고 사령관들이니 당연히 상호 간에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했다.이번에는 M국의 요청으로 온 것이니, 이전과 마찬가지로 너무 강경하거나 거만한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M국의 초계기가 용국에 의해 격추되고 조종사도 아직 용국에 구금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일의 심각성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만약 거만을 떨다가 담판의 과정, 나아가 결과에 영향을 끼친다면, M국의 대통령은 절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채 장군, 오랜만입니다!”미소 띤 얼굴로 손을 내민 슬로이는 채경훈과 악수를 나누었다.채경훈은 통역의 말을 들은 채경훈이 말했다.“2년 만이니 확실히 오랜만이군요. 지난번에 M국과 용국의 연합훈련에서 만났지요!”“당시 나는 용국의 훈련 총책임자, 슬로이 사령관은 M국의
영빈관은 경도내에서 가장 배경이 있고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이다. 그러나 영빈관은 여태까지 개인 손님을 받지 않았다. 영빈관은 각국의 거물급 인사들을 접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유주는 당연히 용국의 국왕이다.채경훈의 말을 들은 슬로이는 후련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쉬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달려왔기에 어쨌든 숨만 돌릴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했다. 60이 넘은 그는 이런 장거리 이동에 시달리면서 이미 심신이 몹시 피곤했다. “그럼 우리는 먼저 호텔에 가서 쉬겠습니다!”슬로이가 채경훈에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이 말을 듣고 채경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저녁에 우리가 차를 보내 여러분을 영빈관의 연회에 모시러 가겠습니다. 국왕께서 연회석에서 여러분을 접견할 것입니다!”“채 장군의 이해에 감사드립니다!”슬로이는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돌렸다. 채경훈에게 감사를 표한 뒤 그의 팀 10여 명을 데리고 차량 대열에 올랐다.선두에 선 자동차가 출발하자 줄줄이 경도국제공항의 특수터미널을 떠났다.채경훈은 이 줄의 차량 행렬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후, 바로 옆에 있는 남자를 향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가서, 여기서 발생한 일을 조금도 빠짐없이 국왕에게 보고해.”“예, 장군.” 군복을 입은 남자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명령대로 출발했다.채경훈도 자신의 차에 올라 경도 국제공항을 떠났다.여기서는 특별한 이야기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곳은 외빈을 접대하는 특수한 터미널이기 때문이다.언론 매체도 소수의 주류 언론만 보도와 촬영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그리고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에야 취재 내용을 보도할 수 있다.보도의 권위도 없고 내용조차 틀린 채 함부로 발표해서 우스갯소리가 되는 유튜브 채널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슬로이가 이미 용국에 와서 담판을 진행하게 된다는 소식은 물론 각국의 고위층의 눈에는 비밀이 아니다.그들도 모두 이 일을 알 수 있고, 이 일을 통해 정세를 분석할 수 있다.일단 양국에 균열이 생기면 영향의 범위가
한 시간 후에 슬로이 일행은 그들이 머무를 호텔로 왔다. 이 호텔은 M국의 기업이 운영하고 있고, M국의 모든 고위층은 경도에 오면 반드시 머무르는 호텔이다.이번에는 M국에서 요청해서 왔기 때문에, 용국에서 숙박을 제공하지 않았다. 용국에서 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 슬로이가 오겠다고 부탁했다. 이는 큰 차이가 있다.용국에서 초대했다면 용국이 체류 비용을 모두 부담할 필요가 있다.그러나 이번에는 슬로이 그들이 청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왔기에 용국에서도 그들의 체류 비용을 책임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슬로이 각하, 오늘 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슬로이는 지금 호텔의 호화로운 스위트룸에 앉아 있지만 표정은 무척 복잡했다.옆에 있던 협상팀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물었다.그 말을 들은 슬로이는 고개를 들어 말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중년남자로 아주 신중한 모습이었다.물론 그는 팀 내의법률고문인데 좀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법을 알기에 법을 어길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사람이다.“대통령께서 우리에게 마지노선을 지키라고 했어요. 우리가 마지노선을 지키기만 하면, 다른 조건은 모두 용국에게 승낙할 수 있습니다.”“우리도 미리 어떤 준비를 할 필요가 없어요.”슬로이는 이에 대해 여전히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 M국이 불리한 처지에 처해 있고 비록 여론의 압력과 체면 손실이 있었지만,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마지노선은 무엇입니까?”법률 고문은 계속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알아야만 이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용국에게 사과 성명을 내게 하는 겁니다!” 슬로이는 갑자기 복잡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법률고문에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법률 고문은 이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멍해졌다.‘미친 거 아니야? 용국에 사과 성명까지 내라고 한다고? 이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야.’‘이번에 용국의 영공을 무단 침입한 것은 우리 M국의 초계기야. 연속 3차례나 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슬로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복잡해 보이는 법률고문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그는 이미 이 답안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의 견해를 듣고 싶었다.슬로이의 질문을 들은 법률고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슬로이 사령관님, 이미 알고 계시면서 또 저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까?”“아이고, 나도 이게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통령이 설정한 마지노선은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그래서 이번 협상은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쓴웃음을 지은 슬로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코를 어루만졌다.법률고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 마지노선은 용국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우리 M국에서 초계기를 파견해서 도발했는데, 결국 용국에게 사과 성명을 발표하라니, 이게 어디 진심으로 협상하자는 거야? 이건 그야말로 패권적인 처사라서 용국에서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대통령이 고의로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실제로 다른 계획이 있는 겁니까?”법률고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이 안의 일이 간단하지 않다고 느꼈다.법률고문의 질문을 들은 슬로이는 바로 표정이 진지해져서 나지막하게 말했다.“그것은 당신이 물어볼 사항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번 협상을 잘 책임지기만 하면 됩니다.”법률고문은 바로 유감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비록 자신이 이런 일들을 물어보거나 알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호기심을 금치 못했다.그러나 슬로이가 이렇게 강력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기에, 이 점이 오히려 그를 좀 놀라게 했다. 대통령은 필연적으로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알겠습니다, 슬로이 사령관님,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도 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겠습니다.”“오, 젠장, 왜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을 맡은 거지? 정말 기분이 나빠. 오, 지금 내 기분을 좀 풀어줄 샴페인을 한 잔 마셔야겠어.” 어깨를 으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