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후 임페리얼 본부 회의실 안. 진루안은 중앙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의 양 옆에도 사람들이 가득 앉았다. 모두 임페리얼 본부의 절대적인 고위 간부들이다.여기에는 4대 호법인 주한영과 응왕, 8대 주장, 그리고 각 부문의 책임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모두 대략 30여 명 정도였다.이 사람들은 바로 임페리얼 본부의 절대적인 고위 간부들이자 진루안이 신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물론 임페리얼 본부도 마냥 굳건한 것은 아니고, 전혀 문제가 없을 수도 없다. 적의 스파이들이 그 안에 잠복해 있을 수도 있다. 얼마 전에도 잠복해 있던 스파이 두 명을 제거하기도 했다.회의실은 조용했다. 진루안이 먼저 입을 열지 않자 그들도 당연히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 진루안을 바라보면서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진루안이 회의실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았지만 역시 위강유는 없었다.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하는 거야. 임페리얼은 위강유 한 사람의 곳이 아니야. 위강유 때문에 이렇게 큰 일을 지체할 수는 없어.’“오늘 회의를 소집한 것은 의논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다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임페리얼의 4대 호법을 교체할 겁니다.”“호법의 수장인 전광림 호법은 나이가 많아서 얼마전에 정식으로 명예퇴직을 하셨습니다.”“4대 호법 중 강조한은 지금 재상이 되었기에 임페리얼에 계속 남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응왕 선배님도 자리에서 물러나실 겁니다.” 응왕을 언급하면서 진루안은 자신의 왼쪽에 앉아 있는 응왕을 존경심을 담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응왕도 바로 답례했다. 자신이 앞으로 임페리얼의 사람이든 아니든 진루안의 예의를 갖춘 말에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저도 나이가 적지 않습니다. 또 개인적인 일도 있기 때문에 저도 퇴임할 것입니다.”진루안의 말이 떨어지자, 웃으면서 화답한 응왕은 이 고위 간부들을 바라보았다.사람들은 이미 진루안이 선포할 일을 추측하면서 4대 호법을 새로 선출한다는 것은 알고 았었다. 그러나 네 명의 호
이렇게 되자 그들은 정말 쉽게 펜을 들지 못했다. 자신들이 펜을 움직이면 전체 임페리얼의 구도를 바꿀 수도 있다.그러나 그들은 또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루안은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데 누가 감히 선택하지 않겠는가?이런 복잡한 마음이어서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모순인지 알 수 있었다.“투표를 시작합니다!”진루안의 명령에 30여 명의 임페리얼의 고위 간부들은 바로 고개를 숙이고 쪽지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는 각기 다른 모습들이 떠올랐다.조정에 싸움이 있듯이 임페리얼 본부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단지 진루안에게 발견될까 봐 두려워하면서 숨기고 있을 뿐이다.이제 그들이 각자 믿는 사람을 4대 호법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시간이 1분 1초가 지나자 회의실의 분위기는 아주 숙연했다. 심지어 마치 호흡에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마침내 10분이 지나자 30여 명 모두 4대 호법의 선택을 마쳤다.다만 조금 있다가 개표해서, 과연 누가 4대 호법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그러나 그들 모두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4대 호법이 되길 바라면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응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도 그의 마음속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고, 그의 쓸쓸한 기색을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결국 더 이상 임페리얼의 호법의 자리를 맡지 않는 것은 응왕에게 있어서는 큰 손실이다.그러나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가장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개의치 않았다.주한영도 평범한 표정으로 진루안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직 4대 호법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만약 조금 있다가 개표해서 호법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성실한 정보 책임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해.’‘물론 이럴 확률은 아주 적어. 이 30여 명 중 적어도 대여섯 명은 주한영의 심복이야.’‘거의 4분의 1이나 되는 표야. 주한영은 어쨌든 4대 호법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거야. 다만 과연4대 호법의 한 사람일지 아니면 수장이
표의 수를 기록하던 주한영은 펜을 잠시 멈추었다가 곧 계속 적었다.청년이 세 번째 표를 펼치자, 이번에는 마침내 주한영이 아닌 다른 이름이 나왔다.“위강유, 한 표!”“위강유, 한 표!”“위강유, 한 표!”“한성유, 한 표!”3표의 위강유 뒤에 갑자기 한성유의 이름이 나오자, 진루안은 테이블 왼쪽의 가냘픈 여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 여자가 바로 한성유로, 동시에 정규군의 지휘관이자 8대 주장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주한영, 한 표!”“주한영, 한 표!”“위강유 1표!”“한성유, 한 표!”“육영효 한 표!”“육영효 한 표!”교정대대의 대장인 육영효도 8대 주장의 한 명으로 4대 호법이 될 자격이 높았고, 진루안의 측근이기도 하다.투표지에 육영효의 이름이 있자, 진루안도 만족하면서 개표에 더욱 기대를 걸었다.“주한영, 한 표!”“하주영, 한 표!”“한성유 한 표!”연이어 개표되면서 주한영, 위강유, 하주영, 한성유, 그리고 육영효의 이름도 나왔다.4대 호법의 자리는 이들의 이미지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 것이다.“개표 끝입니다!”청년이 소리치며 텅 빈 상자를 바로 바닥에 내려놓았고, 테이블 위에는 펼쳐진 투표용지만 가득했다.“주한영, 11표!”“위강유, 8표!”“한성유, 6표!”“육영효, 5표!”청년은 4위까지만 발표했다. 이변이 없는 한 4위까지가 신임 4대 호법이기 때문이다.“주한영, 당신의 표가 가장 많아. 앞으로 호법의 수장 자리를 맡게 될 텐데, 당신 생각은 어때?” 활짝 미소지은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면서 물었다.주한영은 그다지 기뻐하는 기색 없이 진루안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모든 일은 궐주님의 뜻대로 합니다!”“좋아!”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웃으면서 일어섰다.진루안이 일어나자 임페리얼의 고위층 30여 명도 모두 바로 일어서서 진루안을 바라보았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호법이 된 것처럼 가쁜 숨을 내쉬기도 했다.“나는 주한영을 호법의 수장으로 선포합니다.”
“궐주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얼른 대답했지만 당연히 반응도 각기 달랐다. 기뻐하거나 마음을 놓는 사람도 있었고,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진루안은 이런 눈빛들을 남몰래 기억한 뒤 나중에 한번 조사하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임페리얼 고위층의 파벌에 대해 똑똑히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조사는 당연히 이 투표용지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백지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지문을 비롯한 많은 정보를 뽑을 수 있다. 투표를 한 사람들은 모두 이 투표용지를 만졌기에, 이 지문을 대조해 보면 그들이 누구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다.물론 개표를 한 청년의 지문도 있기 때문에 지문 판독은 정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투표용지는 제3자의 손을 거치지 않았기에, 검사하기도 간단해서 반나절이면 충분할 것이다.진루안이 청년에게 눈짓을 하자, 궐주의 뜻을 알아챈 청년은 이 투표용지를 상자에 다시 담은 뒤 상자를 들고 회의실에서 나갔다.“여러분, 위강유, 한성유와 육영효는 모두 8대 주장입니다. 이들이 4대 호법이 되었으니 8대 주장에서 세 자리가 공석이라는 뜻이지요.”“그래서 8대 주장의 세 사람도 선택해야 합니다!”미소를 지은 채 진루안은 회의실에 있는 30여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8대 주장 중 나머지 주장들을 제외하고, 다른 부서의 책임자들은 모두 매우 흥분하면서 간절한 표정이었다.각 부문의 책임자 위에 바로 8대 주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8대 주장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권한 역시 크게 늘어날 것이다.이런 유혹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그러나 마음은 이처럼 기대하면서도 결국 이런 흥분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일단 이런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면 진루안은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진루안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마치 이 일은 완전히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처럼 한눈을 팔지 않는 부하들의 모습을 보자, 진루안
진루안은 회의실 문에 부딪친 뒤 뒤로 벌렁 넘어졌다.진루안은 의식을 잃기 전에 주위에서 황망하게 외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지만, 곧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궐주님!!”“큰일났어, 빨리 와!”“궐주님이 기절하셨어!”주한영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진루안이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기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몹시 긴장하면서 얼른 진루안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도록 했다.경성병원, 응급실.응급실 문밖의 복도에는 경성의 유명한 거물들이 지금 분분히 모여들었다.지금은 의료진조차 감히 이 복도를 다닐 수 없었다.도대체 어떤 큰 인물이기에 응급실을 이렇게 긴박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로 만들고, 이렇게 많은 큰 인물들을 모이게 한 것일까?경성병원의 병원장조차도 지금은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었다.경성병원 병원장은 4급대신으로 절대 낮은 지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그러나 이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쥐새끼처럼 두려워하면서 설설 기어야 했다복도의 분위기는 침울하면서 심지어 좀 적막하기까지 했다.그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국왕 조의는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조의의 여섯 황자 중 공친왕에 봉해진 장남 조기를 제외한 나머지 황자들도 모두 왔고, 마치 진루안과 오랫동안 친분이 있었던 것처럼 초조하고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정사당의 재상 중에서는 양상연, 강조한, 고성용, 이천상과 하신문의 다섯 재상이 왔다.임페리얼의 4대 호법도 진루안이 이유 없이 쓰러졌다는 것을 알게 된 위강유까지 모두 제자리에 도착했다.백무소를 대신해서 칼자국 아저씨도 병원에 왔다.서경아와 진씨 가문에서도 소식을 듣자 바로 왔다.이 사람들 외에 진루안과 오랜 친분이 있던 여러 부문의 거물들도 모두 복도에 모였다.그래서 넓어야 할 복도가 지금 몹시 붐비고 있었다.탁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열리면서 흰 가운을 입은 70대 노교수 두 명이 나왔다가 눈앞의 장면을 보자 놀라서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그들이 평소에 거물들을 진료한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
이 일은 극히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데, 사건이 또 갑작스럽게 발생해서 막을 수가 없었다.그러나 병원에 온 뒤에 온갖 기기로 검사해서 얻은 결론은 병원의 고위층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병이 없는 것이다!‘이거 농담하는 거 아니야?’‘누구한테 농담하는 거야?’‘국왕, 재상에 궐주까지 있는데 말이야...’“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결론이 뭔지 바로 말해!”심란한 심정의 조의는 두 노교수의 수다를 듣지 않고 바로 물어보았다.두 노교수는 씁쓸하게 웃었고, 한 노교수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병이 없어서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도대체 병이 없는 거야, 아니면 알아낼 수 없는 거야?”“당신들 의사가 맞아? 응?”분노한 칼자국이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면서 고함을 쳤다.진루안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상전인 백무소가 미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주인은 이미 배신한 제자를 잃으면서 이미 비참할 정도로 타격을 받았어.’‘만약 또 이유 없이 막내 제자까지 잃는다면 아마 미쳐버릴 거야.’‘평생 결혼하지 않은 백무소에게, 지금 진루안과 이상건은 친아들과 같아.’칼자국은 이런 결과를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그런데 두 노교수가 우물쭈물하면서 병이 없어서 알아낼 수 없다고 하니,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눈살을 찌푸린 조의도 화가 났지만, 국왕이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었다.칼자국이 오히려 자신의 마음속 말을 대신 말해준 것이다.“나, 나으리, 저희도 모릅니다.” 놀란 두 노교수는 곧 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칼자국이 발산하는 혈기와 포악한 기운을 그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됐어. 칼자국!” 조의가 칼자국에게 소리쳤다.칼자국은 묵묵히 몇 걸음 물러선 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의 침울하게 있자,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했다.또각, 또각!이때 복도 반대편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이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았다.흰색 코트를 입은 차갑고 도도한 모습의 여자
서경아는 진루안이 아직 나오지 않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았지만 감히 들어가지는 못했다.복도에 서 있는 두 노교수는 더할 나위 없이 뻘쭘해져서 얼굴마저 새빨개졌다.그들도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지방의 고관들이 그들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모두 대기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전혀 말도 하지 못했고,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보지도 못했다.‘국왕에 재상, 그리고 황자들까지 정말 너무 무서워.’그들도 몹시 억울한 심정이었다. 어떤 증세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루안에게 아무 병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혼절해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의학적인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서로의 주름진 얼굴을 쳐다보면서, 난감해진 두 노교수는 답답해서 한숨을 쉬었다.국왕 조의의 표정은 음침했고 칼자국도 차디찬 모습이었다. 마치 기절한 사람이 자신들의 부왕 조의인 것처럼, 황자들도 모두 슬픈 기색을 띠고 있었다.황자들도 무슨 의도로 여기에 왔는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태자 조기가 폐위된 후, 그들은 모두 각자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진루안에 대한 포섭도 피할 수 없었다.진루안은 조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심지어 진루안 때문에 태자를 폐할 수 있었으니, 이 황자들은 당연히 진루안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모두 다 알다시피 진루안은 임페리얼과 거대한 자본을 손에 쥐고 있다. 또한 새 전신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임페리얼왕이다.이런 신분과 지위를 가지고 있기에 전혀 포기할 수 없었고, 심지어 대판 싸울 수도 있다.진루안이 어떤 경향을 드러내기만 하면 그들은 목숨을 걸고 쟁취하려고 할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진루안이 느닷없이 기절했기에, 포섭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진루안의 아내 서경아가 이 자리에 온 것을 보자,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러났다. 다만 이 미소는 모두 계획과 계산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당신들은 먼저 돌아가, 정사당은 비울 수 없어.”“진루안이
시간은 천천히 지나갔다. 응급실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어서, 어떤 상황이 발생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서경아의 마음은 유난히 긴장하고 조급했지만 응급실의 의료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어서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진봉교의 눈빛은 오히려 고요했다. 그는 진루안이 서른이 되면 요절한다는 저주를 생각했다.이 저주에 대해서 이전에 백무소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 일을 아는 사람도 자신과 백무소, 그리고 국왕 조의 이렇게 세 사람밖에 없었다. 사실 진루안이 혼절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진봉교는 바로 이 점을 추측했다.‘루안이의 체내의 저주로 인한 혈맥의 독이 아니라면, 이런 돌발 상황이 나타나지 않았을 거야.’‘그러나 그 저주를 해결하고 혈맥의 독을 해결하는 건 쉽지 않아.’‘소위 증상에 맞게 약을 쓴다고 하는데, 지금 어떤 저주, 어떤 혈맥의 독도 모르면서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있겠어?’‘이전엔 루안이에겐 이런 이상한 점도 없었고, 이런 상황이 발생한 적도 없었어. 하지만 지금 처음 실신했다는 건 앞으로 두 번, 세 번 계속 이어진다는 걸 의미해...’‘하루라도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루안이를 정상으로 회복시킬 수 없어.’‘그러면 루안이의 위험이 갑자기 엄청 커지게 돼. 만약 세계전신대회에 나간 날 갑자기 기절한다면, 위험이 얼마나 큰지 가히 알 수 있어. 그 외국인들은 루안이를 절대 그냥 봐주지 않을 거야.’‘루안이를 죽일 기회가 있다면 그들은 절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이렇게 생각하자, 진봉교의 마음은 더욱 당황스러웠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어 슬픔만 더했다.모든 사람이 침울함에 빠졌을 때, 응급실 문이 다시 열리더니 두 노교수가 다시 나왔다.“어떤가요?” 조의는 두 노교수를 보고 얼른 물었다.두 노교수의 표정은 온통 답답한 데다가 부끄러움도 많이 드러냈다.그러나 그들은 감히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국왕의 노여움을 살 것이다.“여전히 문제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