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나올 때, 강태섭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 퍼졌다.“서지윤, 너 거기 서!”나는 대꾸할 생각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강태섭은 화가 나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너,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나는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뭘? 네가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유하늘을 사랑한다잖아? 그럼 나는 축하해 줄 수밖에. 사랑하는 사람과 잘되길 바란다. 딱 어울리네. 창X랑 개, 오래오래 행복해라.”나는 더 이상 강태섭과 신경전을 벌일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으니, 남자의 손을 매끄럽게 뿌리치고 차갑게 돌아섰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뒤에서 울려 퍼지는 강태섭의 고함이 공허하게 허공을 가르며 멀어져 갔다.“너 지금 누구한테 개라고 한 거야? 아니, 누구한테 창X라고 한 거냐고?!”통쾌하게 한 방 먹이고 난 뒤 기분 좋게 기숙사로 돌아왔다. 이제 강태섭도 감히 다시 오지는 못할 테니, 나도 드디어 조용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 예상은 반만 맞았다. 강태섭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 대신 아주 반갑지 않은 손님이 카페를 찾았다.유하늘이었다.어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청순한 이미지 대신, 여자의 날카로운 시선과 거만한 태도로 나를 훑어보았다.“우리, 얘기 좀 할까?” 유하늘의 목소리는 알 수 없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나는 유하늘을 상대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그녀의 속셈이 궁금해졌다. 기지를 발휘해 대답했다.“안쪽 자리로 가서 기다려. 곧 따라갈게.”유하늘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가장 안쪽의 은은한 조명이 드리워진, 눈에 잘 띄지 않는 테이블로 걸어가면서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스쳤다.나는 주문을 처리한 뒤 유하늘 앞에 앉았다.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천천히 컵을 내려놓고 조용히 입술을 닦았다.“조사해봤는데, 주씨 가문엔 너 같은 딸은 없더라. 너 가짜지?”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난 한 번도 주씨 가문의 딸이라고 인정한 적 없어.”내
나는 코웃음을 쳤다. ‘유하늘 이 여자, 머리에 뭐가 들어서 이러지?’ “내 연애의 원칙은 사귈 때는 모든 걸 받아들이지만 헤어지면 미련 없이 끝내는 거야. 지금의 강태섭은 나에게 채무를 이행해야 하는 단순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일 뿐이야.” 유하늘도 비웃으며 맞받아쳤다. “말은 그렇게 해도 너도 알잖아? 강씨 가문이 어떤 곳인지. 넌 평생 기어올라도 닿을 수 없는 높이야. 태섭이와 결혼만 하면 그 모든 걸 가질 수 있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네가 좋아하니까 남들도 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태섭이 너에겐 보물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그냥 빚도 안 갚는 사기꾼 전남친일 뿐이야.” “서지윤.” 방금까지도 우월한 표정을 짓던 유하늘이 갑자기 여린 얼굴을 했다. “태섭이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더 이상 유하늘과 설전을 벌일 필요도 못 느껴 뒤돌아 가려는데, 돌아서자마자 강태섭이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래서 방금까지의 그 환승 연기였군.’ 나는 다시 유하늘을 쳐다봤다. “서지윤.” 강태섭이 이를 악물었다. “나는 네가 그냥 얄미운 애인 줄 알았는데, 뒤에서 헛소문까지 퍼뜨리는 거였어?” “내가 무슨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거야?” 나는 바로 반박했다. “난 사실만 말했는데?” “너...!” 강태섭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했다. “아닌가?” 나는 집요하게 물었다. “그럼 오늘 여기 왜 온 거야? 나한테 돈 갚으려고?” “서지윤!” 강태섭이 마치 내 이름을 씹어 삼키듯 말했다. “지윤아, 왜 그래. 그래도 우리 한때는 연인이었잖아.” 그 순간, 진정한 ‘불여우’의 면모를 드러낸 유하늘이 중재자로 나섰다. “태섭이가 너한테 진 빚, 내가 대신 갚을게. 그러니까 제발 태섭이 좀 놔줘.” “좋아.” 나는 핸드폰을 꺼내 결제 코드를 내밀었다. “3,100만 원.” “31...” 유하늘은 예상보다 큰 금액에 숨이 턱 막힌 듯했다. “3,
“뭐가 ‘그게 다’라는 거야?” 유하늘을 바라보는 강태섭의 눈빛이 한층 더 애틋해졌다. “그냥 말만 했으면 모를까, 널 괴롭혔다면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어.”‘역시 3,100만 원의 위력은 대단하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데 말이야, 혹시 네가 들어오기 전까진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네가 들어온 이후에 갑자기 이렇게 변한 거라면?”“하늘이는 그런 애가 아니야.” 강태섭의 말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바로 그 순간, 내가 의도했던 일이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강태섭을 바라보며 ‘불쌍한 바보 같으니라고’ 하는 표정을 지었다.“그럼 CCTV를 확인해 볼까?” 나는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마침 여기에 CCTV가 있고, 소리까지 녹음되거든.”“네가 하늘이를 괴롭혀 놓고도 CCTV를 확인하겠다고?”“별것도 아닌 일인데 굳이 그럴 필요 없어.”두 사람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나왔다.강태섭은 정의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유하늘은 반대로 살짝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유하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걸 보니, 확실히 조급해진 모양이었다.“태섭아, 나 정말 괜찮아.” 유하늘이 강태섭의 팔짱을 끼며 나긋하게 말했다. “이제 가자. 어차피 이 카페는 지윤이가 일하는 곳인데, 지윤이가 일자리를 잃게 되면 곤란하잖아.”강태섭은 유하늘의 말을 듣고 더더욱 감동한 듯했다. “하늘아, 넌 정말 착해. 상처받았으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다니.”‘와, 저 둘은 드라마 찍냐?’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급격히 가까워지는 걸 보자, 나는 참다못해 손을 내밀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멈춰!”강태섭이 짜증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서지윤,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아무것도 안 바래. 그냥 CCTV 확인하자는 거야.” 나는 강태섭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나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 아니야, 알겠어?”그리고 나는 다시 유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내 이름을 니
“사람이 갑자기 친절하면 뭔가 속셈이 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늘이 나를 싫어하면서도 굳이 찾아오는 데는 틀림없이 뭔가 있을 거야.”“너, 며칠 쉬는 게 좋겠어.”노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일 카페 일은 내가 대신 가줄게, 어때?”나는 잠시 망설였다.“곧 시험인데, 서지윤, 너 공부 제대로 하고 있기는 해?” 노은서는 내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다 이번 시험 망치는 거 아냐?”나는 생각해 보니 노은서 말이 맞았다.“그리고 말이야, 내가 그냥 공짜로 너 대신 일해줄 거 같아?”단호한 모습 뒤에 노은서는 다시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오늘 받은 돈 있잖아? 본의 아니게 알게 됐으니 그 돈으로 나한테 밥 사.”“별것도 아니네, 두 번도 살게.” 나는 호탕하게 일어나며 말했다. “가자!”...다음 날, 노은서가 카페로 출근했고, 나는 기숙사에서 하루 종일 공부에 집중했다. 노은서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진 후였다.“지윤아! 서지윤!”노은서는 문을 열자마자 급히 달려와 내 팔을 흔들었다.나는 아직 공부에 집중하고 있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왜 그래?”노은서는 숨을 고르며 물을 벌컥벌컥 마신 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카페에 신입 직원이 들어왔어.”“그래서?” 나는 노은서가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해서 전혀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다.카페가 대학가 근처에 있어 신입이 자주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그런데 그 신입이 오늘 들어오자마자 나한테 친한 척하면서 너에 관해 물어보는 거야.” 노은서의 목소리가 낮아졌고,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뭐라고?”“처음 보는 사람들일 텐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서 ‘혹시 서지윤이라는 직원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고.”나는 놀라서 노은서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 신입이 나를 찾고 있다는 거야?”노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 이름은 지규현. 스물다섯 살, 대학원생. 내가 알아낸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치마를 집어 들고 맸다. “내 이름은 서지윤이야.”나는 일부러 무심한 듯 말하면서도 지규현의 반응을 살폈다. 내 이름을 듣는 순간, 그는 잠깐 나를 힐끗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안녕, 나는 지규현.”하루 종일 일하면서 느낀 것은, 지규현이 나에게 유독 친절하다는 것이었다.친절의 수준이 보통 이상이었다.“지윤아.” 소하민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지규현 걔도 너한테 빠져든 거 아니야?”나는 지규현의 등을 슬쩍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너는 진짜 그 예쁜 얼굴이 문제야.”소하민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카페에 왔다 갔다 하는 알바생들, 대부분 너 때문에 남아있는 거 몰라?”“농담 그만하고 진지하게 좀 굴어.”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우리 카페는 건전한 장소고, 손님과 직원이 머물러 있는 건 네가 운영을 잘해서 그런 거야.”“알겠어, 알겠어.” 소하민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아무튼 아부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니까.”나는 다시 지규현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는 단순히 나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마치 이성에 대한 호감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며 나에게 접근했다.그리고 매일 아침 간식, 오후에는 커피와 디저트, 그리고 퇴근 후에는 저녁까지 나한테 함께 하자고 계속 권했다.기숙사에 돌아오면, 노은서는 매번 나를 기다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오늘은 뭐 했어? 지규현이 또 뭐래?”그러다 한 번은 너무 웃겨서 배를 잡고 쓰러졌다. “야, 서지윤. 저 지규현, 꼭 옛날 첩보물에 나오는 스파이 같지 않아? 근데 너 절대 걔랑 밥 먹으러 가면 안 돼. 그리고 그가 주는 음식이나 음료도 절대 먹지 마!”“알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사람, 대체 뭘 노리는 걸까? 영 찜찜해.”“그러니까 말이야. 빨리 방법을 찾아서 제압하는 게 좋겠어.”노은서는 침대에 누워 책을 펼치더니 몇 장을 넘겼다. “지규현의
경호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그 깡패들은 새 떼처럼 흩어졌지만, 이미 늦었다. 다섯 모두 한 놈도 빠짐없이 주연경의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끌려왔다. “경찰서로 넘겨.” 주연경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나는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주연경은 내 팔을 잡고 차로 이끌어 조수석에 태웠다. “놀랐지?” 주연경은 드물게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휴지 한 장을 꺼내 내 얼굴에 묻은 얼룩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괜찮아, 다 끝났어.” 나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내가 무슨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찔한 위기까지 겹쳤다고 생각되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어떻게 여기 있는 거예요?” “흥!” 내가 진정한 걸 확인한 듯, 조금 전까지 다정했던 남자의 모습은 싹 사라졌다. “내가 왜 여기 있냐고?” 주연경은 비웃듯이 혀를 찼다. “내가 안 왔으면, 너 오늘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었을 것 같아?” “그건...” 나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대체 왜 그 남자를 미행한 거야?” 주연경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꾸짖음이 섞여 있었다. “설마 새 남자친구라도 생겼어? 또 부잣집 도련님한테 속을까 봐 직접 조사라도 해보려고?” “그게 아니라...” 나는 괜히 주눅이 들어 시선을 피했다. “결과적으로는 도둑 소굴에 발을 들여놓고도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있었다는 거지?” 주연경은 냉소적인 어투로 덧붙였다. “그냥... 동료일 뿐이에요.”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변명했다. 잠시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서지윤.” 주연경은 비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넌 무슨 일이 생겨도 도움 요청할 생각을 안 하지?”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무슨 말이죠?” 주연경은
‘뭐야, 대체? 분명 우리는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로 연애했는데, 강태섭은 왜 항상 자기 마음대로 날 판단하고 시험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속으로 비웃으며 커피숍 안을 힐끗 바라봤다. 지규현은 눈썹을 찌푸린 채 밖을 살피면서도,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빠르게 입력하고 있었다. ‘걸려들었네.’ “결과적으로 보면, 넌 그런 속물은 아니었어.” 강태섭은 내가 되묻자, 내가 마음을 돌린 줄 알고 금방이라도 얼굴에 꽃이라도 피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윤아, 너만 좋다면,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하자.” 그는 조심스레 반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완벽하게 컷팅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주변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강태섭을 바라보면서도 시선을 은근슬쩍 커피숍 안에 있는 지규현에게 두었다. 그 순간, 강태섭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지윤아, 나랑 결혼해 줘!” 그리고 동시에, 지규현이 마침내 핸드폰을 내려놓고, 빠르게 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어떤 신호를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결혼?” 나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너랑 결혼하면, 유하늘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강태섭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이내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널 평생 행복하게 해 줄게.”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그럼 네 계획은, 결혼은 나랑 하고, 연애는 유하늘과 계속하는 거야?”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태섭에게 집중됐다. “그게...” 강태섭은 주위의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 얼굴이 살짝 굳었다. “강태섭.” 나는 코웃음을 치며 팔짱을 꼈다. “지금이 고대사회도 아니고, 아직도 일부다처제를 꿈꾸는 거야? 넌 완전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야.” 나는 강태섭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나를 불렀다. “지윤아!!”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유하늘은 급하게 뛰어온 게 분명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였으면서도, 겉으로는 마치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른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유하늘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나 봐?’ 유하늘이 등장한 이후, 지규현의 시선이 슬쩍슬쩍 그녀에게로 향하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지규현, 역시, 유하늘이 사주해서 움직였군.’ 나는 속으로 비웃으며 지규현을 쳐다봤다. 지규현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살짝 눈을 피했다. ‘지규현, 그런 시선 회피로 나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태섭아, 지윤이에게 남자친구가 있잖아. 우리도 축하해 줘야지.” 유하늘은 강태섭 옆으로 다가와 그의 팔짱을 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그런 유하늘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말도 안 돼.” 강태섭은 이를 악물며 지규현을 노려봤다. “네가 무슨 수로 지윤이 남자친구야?” “왜 난 안 돼?” 지규현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네 여자친구는 예쁘고 품위 있어 보이는데, 넌 왜 지윤이가 나 같은 사람을 못 만나게 막는 거야?” 나는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 인간은 자기를 사주한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 떠는 건 알겠는데, 왜 굳이 날 깎아내리는 거야?’ ‘지윤이 같은 사람? 내가 이런 놈한테나 어울릴 법한 사람이란 뜻인가?’ 나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지규현이 다시 한번 내 어깨를 감싸려 하자, 나는 재빠르게 몸을 틀어 피했다. 동시에 손을 들어 힘껏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짝! 그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너무나 빠른 움직임이었기에, 지규현도 놀라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네가... 감히 나를 때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맞은 뺨을 감싸 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때릴 거면 미리 너에게 허락이라도 받아야 해?” 나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비웃었다. “나, 우리 사진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도 있어.” 지규현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핸드폰을 살짝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주연경이 나를 부른 이유가 이런 이야기일 줄은. 그래서 잠깐 당황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주연경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남자의 시선은 담담하고, 감정이 없었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아마 내가 무슨 사고라도 당해서 자기한테 불필요한 골칫거리가 될까 봐 그러는 거겠지.’ ‘어쨌든 주연경 같은 이런 대기업 대표이사니까 시간이 돈일 테고, 내 사소한 일들까지 계속 신경 쓸 여유는 없으니까.’“아니에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출퇴근 길 조심하면 돼요. 걱정 안 해도 돼요.” 그 순간, 주연경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정말 아주 잠깐. 내가 제대로 확인할 틈도 없이, 그는 곧바로 표정을 정리했다. “그럼 주 대표님은 왜 본가로 돌아가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돌아가기 싫어.” 내가 거절하자, 주연경의 표정은 한층 더 불쾌해졌다. 솔직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주연경 기분이 나쁘면, 전체 경제 규모의 절반이 휘청이는 수준의 거물인데, 그런 사람이 나 같은 별 볼 일 없는 인간에게 거절당했으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따라갈 이유도 없지만.’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지!’ “주 대표님이 굳이 밖에서 혼자 사는 이유, 저도 알 것 같아요.” 나는 최대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본가가 주 대표님의 직장과 더 가깝잖아요. 그런데도 그곳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그곳에도 주 대표님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 말에, 주연경은 대놓고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난 해야 해.’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주 회장님만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주연경이 몸을 살짝 긴장시켰다. “주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대립각을 세우면, 결국 회장님만 힘들어질 뿐이에요.”
나는 웃으며 노은서의 외투를 집어 들고 돌려주었다. 순간 내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렸다. 딩딩딩-나는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확인했다가,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순간 얼어붙었다. 주연경이었다. “누군데?” 노은서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목을 길게 빼더니, 화면을 보자마자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잠시 고민하며 노은서와 눈을 마주쳤다. “받아야지.” 노은서는 내 팔을 툭 치며 재촉했다. “얼른 받아.” “그냥 안 받을까 봐.” 나는 무겁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야, 무슨 소리야?” 노은서가 버럭 소리쳤다. “주연경이 이번에 얼마나 도와줬는데! 걔 없었으면 너 지금 여기 앉아 있기는커녕, 무슨 꼴을 당했을지 모르지!” 그 말에 나는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그래, 주연경이 없었으면, 이번 일 해결 못 했을 수도 있잖아.’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받자,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뭐야... 나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 상대방도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내 옆에서는 손짓, 발짓, 입 모양까지 하면서 온몸으로 말하라고 재촉하는 노은서가 있었다. 결국 나는 억지로 입을 뗐다. “여보세요.” [너 벙어리 된 줄 알았다.]주연경의 직설적인 말투가 들려왔다. 나는 옆에서 배를 잡고 웃는 노은서를 째려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우리 좀 따로 이야기할까?]여전히 담담하면서도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나 지금 네 학교 앞이야.] 그 한마디가, 천둥처럼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뭐라고요?” 나는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야기 좀 하자고.] 주연경은 여전히 차분했다. 나는 순간 거절하려고 했다. “저...” 하지만, 망설이는 동안 머릿속에 주 회장의 당부가 떠올랐다. 나는 결국 말을 삼키고, 이를 악물었다. “알겠어요. 금방 나갈게요.” ...밖으
노은서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았다. “야, 카페 알바는 이제 그만두자. 언니가 돈 벌어서 널 먹여 살릴게. 뭐하러 일하면서 이런 꼴을 당해?” 나는 순간 머릿속에 주씨 가문 본가에서 본 풍경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내가 본 현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다짐했던 것.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우리 엄마를 데리고 주씨 가문을 떠날 거야.’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카페 사장님은 되게 이해심 많고, 시급도 높고, 시간도 자유롭잖아. 은서야, 나 진짜 이 알바 필요해.”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노은서는 설득을 포기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나야 뭐 더 할 말 없네. 그럼 내일 하루는 내가 대신 일할게. 넌 좀 쉬어.” 나는 감동해서 그녀를 바라봤다. “은서야...” 그러더니 노은서의 어깨를 살짝 붙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진짜 고마워. 다음 월급 들어오면, 네가 먹고 싶은 거 제일 비싼 걸로 사 줄게!” “됐거든?” 노은서는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야, 너 생각해 봐. 지규현, 내일 출근할까?” 그녀의 얼굴에는 기대 반, 재미 반이 가득했다. 나도 그 질문에 살짝 고민하다가, 노은서와 눈을 맞췄다. “우리, 셋 셀 때 동시에 대답하자.” 노은서의 눈빛이 장난기 가득해졌다. “하나, 둘, 셋.” “온다.” “온다.” 우리는 동시에 같은 대답을 내뱉었고, 순간 서로를 보다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넌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노은서를 바라보며 핸드폰을 살짝 흔들었다. “난 그 녀석의 약점을 쥐고 있잖아?” “에이!” 노은서는 콧방귀를 뀌며 눈을 굴렸다. “네가 ‘배후를 밝히면 더는 추궁 안 하겠다’고 했으니까 걔는 더 이상 겁낼 필요 없잖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나는 눈을 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다들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지금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몸을 겨우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서자,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노은서가 보였다. 내가 풍기는 찌들어버린 불운한 기운이 너무나 강렬했던 걸까? 노은서는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 뭐야? 또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나는 침대에 털썩 누우며 눈을 감았다. ‘그냥 조용히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러나, 내게 조용한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야, 일어나!” 노은서는 성큼 다가오더니 내 팔을 붙잡아 강제로 일으켰다. “거짓말하지 마. 너한테서 풍기는 이 원한의 기운, 웬만한 귀신도 도로 되살릴 수 있을 정돈데?” 나는 친구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고 결국 삶의 끈을 놓는 것을 포기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고,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솔직히 나도 속에 쌓인 게 많았다. 화, 분노, 모욕감. 그 모든 걸 쏟아낼 창구가 필요했는데, 다행히 노은서가 내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노은서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뭐?!”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뭐야, 이 쓰레기들?! 지윤아, 넌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어?! 이번에도 주연경이 없었으면...!” 그녀는 말하다가 목이 멘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나는 노은서의 붉어진 눈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곁에 있던 휴지를 집어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됐어, 은서야. 나 멀쩡하게 돌아왔잖아?” 하지만 내 말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노은서는 오히려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흑, 으흑...!” 나는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진짜... 이 세상에서 이렇게까지 나 걱정해 주는 친구 하나라도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
“그래서, 누가 시킨 건데?” 나는 팔짱을 끼고 지규현을 바라보았다. 최대한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며 덧붙였다. “말했지? 원한이 있으면 제대로 된 상대를 찾아야지. 난 네 사과 따윈 필요 없어.” 지규현은 이를 악물더니, 결국 유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여자야. 이 여자가 나한테 돈을 주고 사진을 조작하라고 시켰어.” “뭐...?” 유하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무슨 소리야? 헛소리하지 마!” 그녀는 급히 부정하며 눈가에 눈물을 머금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간절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지윤아,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 둘이 짜고 나를 모함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뭐? 이제 내가 모함했다고?’ 나는 순간 황당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이미 예상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지규현을 바라봤다.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떠올랐다. “지규현.” 나는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며 말했다. “지금 유하늘 씨는 내가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고 하는데... 결국 그 말은 네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뜻이겠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가볍게 흔들었다. “네가 증거를 못 내면, 내가 이대로 그냥 넘어갈 거 같아?” 지규현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퇴로는 없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오히려 분노를 품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하늘, 처음부터 나를 이용하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전부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 그는 비꼬듯 웃으며 덧붙였다. “미안한데, 전 그렇게까지 호구는 아니야. 죄를 뒤집어쓸 생각도 없어.”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들이밀었다. “여기, 이게 내가 카페 출근하기 전 받은 이체 내역이고. 유하늘이 돈을 보냈다는 증거지.” 나는 지규현의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가려 했
유하늘은 급하게 뛰어온 게 분명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였으면서도, 겉으로는 마치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른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유하늘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나 봐?’ 유하늘이 등장한 이후, 지규현의 시선이 슬쩍슬쩍 그녀에게로 향하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지규현, 역시, 유하늘이 사주해서 움직였군.’ 나는 속으로 비웃으며 지규현을 쳐다봤다. 지규현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살짝 눈을 피했다. ‘지규현, 그런 시선 회피로 나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태섭아, 지윤이에게 남자친구가 있잖아. 우리도 축하해 줘야지.” 유하늘은 강태섭 옆으로 다가와 그의 팔짱을 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그런 유하늘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말도 안 돼.” 강태섭은 이를 악물며 지규현을 노려봤다. “네가 무슨 수로 지윤이 남자친구야?” “왜 난 안 돼?” 지규현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네 여자친구는 예쁘고 품위 있어 보이는데, 넌 왜 지윤이가 나 같은 사람을 못 만나게 막는 거야?” 나는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 인간은 자기를 사주한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 떠는 건 알겠는데, 왜 굳이 날 깎아내리는 거야?’ ‘지윤이 같은 사람? 내가 이런 놈한테나 어울릴 법한 사람이란 뜻인가?’ 나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지규현이 다시 한번 내 어깨를 감싸려 하자, 나는 재빠르게 몸을 틀어 피했다. 동시에 손을 들어 힘껏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짝! 그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너무나 빠른 움직임이었기에, 지규현도 놀라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네가... 감히 나를 때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맞은 뺨을 감싸 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때릴 거면 미리 너에게 허락이라도 받아야 해?” 나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비웃었다. “나, 우리 사진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도 있어.” 지규현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핸드폰을 살짝
‘뭐야, 대체? 분명 우리는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로 연애했는데, 강태섭은 왜 항상 자기 마음대로 날 판단하고 시험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속으로 비웃으며 커피숍 안을 힐끗 바라봤다. 지규현은 눈썹을 찌푸린 채 밖을 살피면서도,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빠르게 입력하고 있었다. ‘걸려들었네.’ “결과적으로 보면, 넌 그런 속물은 아니었어.” 강태섭은 내가 되묻자, 내가 마음을 돌린 줄 알고 금방이라도 얼굴에 꽃이라도 피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윤아, 너만 좋다면,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하자.” 그는 조심스레 반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완벽하게 컷팅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주변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강태섭을 바라보면서도 시선을 은근슬쩍 커피숍 안에 있는 지규현에게 두었다. 그 순간, 강태섭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지윤아, 나랑 결혼해 줘!” 그리고 동시에, 지규현이 마침내 핸드폰을 내려놓고, 빠르게 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어떤 신호를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결혼?” 나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너랑 결혼하면, 유하늘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강태섭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이내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널 평생 행복하게 해 줄게.”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그럼 네 계획은, 결혼은 나랑 하고, 연애는 유하늘과 계속하는 거야?”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태섭에게 집중됐다. “그게...” 강태섭은 주위의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 얼굴이 살짝 굳었다. “강태섭.” 나는 코웃음을 치며 팔짱을 꼈다. “지금이 고대사회도 아니고, 아직도 일부다처제를 꿈꾸는 거야? 넌 완전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야.” 나는 강태섭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나를 불렀다. “지윤아!!”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경호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그 깡패들은 새 떼처럼 흩어졌지만, 이미 늦었다. 다섯 모두 한 놈도 빠짐없이 주연경의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끌려왔다. “경찰서로 넘겨.” 주연경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나는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주연경은 내 팔을 잡고 차로 이끌어 조수석에 태웠다. “놀랐지?” 주연경은 드물게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휴지 한 장을 꺼내 내 얼굴에 묻은 얼룩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괜찮아, 다 끝났어.” 나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내가 무슨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찔한 위기까지 겹쳤다고 생각되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어떻게 여기 있는 거예요?” “흥!” 내가 진정한 걸 확인한 듯, 조금 전까지 다정했던 남자의 모습은 싹 사라졌다. “내가 왜 여기 있냐고?” 주연경은 비웃듯이 혀를 찼다. “내가 안 왔으면, 너 오늘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었을 것 같아?” “그건...” 나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대체 왜 그 남자를 미행한 거야?” 주연경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꾸짖음이 섞여 있었다. “설마 새 남자친구라도 생겼어? 또 부잣집 도련님한테 속을까 봐 직접 조사라도 해보려고?” “그게 아니라...” 나는 괜히 주눅이 들어 시선을 피했다. “결과적으로는 도둑 소굴에 발을 들여놓고도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있었다는 거지?” 주연경은 냉소적인 어투로 덧붙였다. “그냥... 동료일 뿐이에요.”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변명했다. 잠시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서지윤.” 주연경은 비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넌 무슨 일이 생겨도 도움 요청할 생각을 안 하지?”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무슨 말이죠?” 주연경은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치마를 집어 들고 맸다. “내 이름은 서지윤이야.”나는 일부러 무심한 듯 말하면서도 지규현의 반응을 살폈다. 내 이름을 듣는 순간, 그는 잠깐 나를 힐끗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안녕, 나는 지규현.”하루 종일 일하면서 느낀 것은, 지규현이 나에게 유독 친절하다는 것이었다.친절의 수준이 보통 이상이었다.“지윤아.” 소하민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지규현 걔도 너한테 빠져든 거 아니야?”나는 지규현의 등을 슬쩍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너는 진짜 그 예쁜 얼굴이 문제야.”소하민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카페에 왔다 갔다 하는 알바생들, 대부분 너 때문에 남아있는 거 몰라?”“농담 그만하고 진지하게 좀 굴어.”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우리 카페는 건전한 장소고, 손님과 직원이 머물러 있는 건 네가 운영을 잘해서 그런 거야.”“알겠어, 알겠어.” 소하민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아무튼 아부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니까.”나는 다시 지규현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는 단순히 나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마치 이성에 대한 호감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며 나에게 접근했다.그리고 매일 아침 간식, 오후에는 커피와 디저트, 그리고 퇴근 후에는 저녁까지 나한테 함께 하자고 계속 권했다.기숙사에 돌아오면, 노은서는 매번 나를 기다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오늘은 뭐 했어? 지규현이 또 뭐래?”그러다 한 번은 너무 웃겨서 배를 잡고 쓰러졌다. “야, 서지윤. 저 지규현, 꼭 옛날 첩보물에 나오는 스파이 같지 않아? 근데 너 절대 걔랑 밥 먹으러 가면 안 돼. 그리고 그가 주는 음식이나 음료도 절대 먹지 마!”“알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사람, 대체 뭘 노리는 걸까? 영 찜찜해.”“그러니까 말이야. 빨리 방법을 찾아서 제압하는 게 좋겠어.”노은서는 침대에 누워 책을 펼치더니 몇 장을 넘겼다. “지규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