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학교를 알아보러 소항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하현은 곧 슬기에게 소항에 대한 일을 사전에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예를 들어, 소항쪽 지사는 독립적으로 운영을 책임질 유능한 토박이를 찾아야 한다. 은아에게 소항에 일을 보러 간다고 얘기하자 은아는 깜짝 놀랐다.“너 정말 유아 학교를 알아보려고? 며칠 동안 가 있을 건데?”“기껏해야 3일, 5일 정도야.”하현은 속으로 궁리를 해보았다. 잘 되면 지사 일은 하루 이틀 정도면 잘 처리가 될 거고, 나머지는 소항 대학교 답사를 가보면 될 것이다. 사실 하현은 속으로 은아가 자기와 함께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은아는 최근에 너무 바쁘다. 어떻게 자신과 나갈 여유가 있겠는가?은아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네가 간다면 안 될 것도 없지. 근데 기왕 가는 김에 내 일 좀 도와주라.”“무슨 일?”하현은 거절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부탁이니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해야지. “내 가장 친한 친구 육해민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에서 유학을 하고 왔는데 소항에 가서 일을 하고 있대.”“여자 혼자 외지에 있으면 좀 안전하지가 않잖아. 그래서 네가 나 대신 가서 좀 살펴봐줘. 친구 회사나 또 사는 곳은 어떤 지도 좀 봐주고.”은아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문제 없지. 별거 아니네.”하현도 육해민을 알고 있었다. 듣기로 육씨 집안도 전에 서울에 있었다가 나중에 아마 해외로 이사를 갔다고 했던 것 같다. 육해민도 은아와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 귀국을 했다니 분명 의외였다. 근데 듣자 하니 이 여자가 상당히 대단하다고 한다. 그녀는 해가지지 않는 제국에서 검진대와 우교대를 다녔고 게다가 세계 최고의 두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직접 받았다. 듣기론 졸업 후에 미국과 해가지지 않은 제국의 대우 은행이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고 한다. 은아는 해민이에 대해 말하면서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해민이는 해외에서 잘 나
항성 국제 공항. 하민석과 하수진이 나란히 걷는 장면은 아마 전세계 일류 국제 대도시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VIP 게이트에 도착해서야 하민석은 걸음을 멈추고 냉랭하게 말했다.“소항쪽에서 나는 이미 준비를 마쳤으니 너는 가서 그냥 앉아 있기만 하면 돼. 다른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하수진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무서워?”하민석이 말없이 돌아서는 순간 눈동자에 음험한 빛이 스쳤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하수진은 살짝 외면한 채 잠시 후에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런 작은 수법들이 정말 쓸모가 있을까?”“만약 또 실패하면 할머니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소항 공항.하수진이 비행기에 오르고 있을 동안 하현은 이미 좀 지루해졌다. 약 30분 후 육해민이 나타났다. 그녀는 168cm의 키에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다 해바라기 같은 얼굴이라 전형적인 9등신 미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포스는 그냥 아름다움이 아니라 스타일상 기질적으로 패기 있는 여회장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거리감을 느끼게 하여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어느 대형기획사 톱스타가 여행을 가는줄 알고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하지만 육해민이라는 사람은 그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현을 알아본 그녀는 바로 하현 앞으로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캐리어를 그에게 던졌다. “이따가 저를 이곳으로 데려다 주세요. 급한 일이 있어요.”이 여자는 말을 마치고 하현에게 주소를 건네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앞장서 걸었다.하현은 어이가 없었다. 이 여자가 횡포를 부린다고 해야 할지, 거만하게 애교를 떤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은아를 생각해서 하현은 다른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고 육해민의 캐리어를 들고 따라갔다. 주차장에 도착한 육해민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
육해민은 역시 해외유학을 다녀온 터라 말솜씨가 유창하다 할 수 있겠다. 만약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쯤 땅굴을 찾아 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현은 이런 말들에 일찍이 익숙해져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현은 백미러를 통해 육해민을 쳐다보며 흥미롭게 말했다. “만약 내가 기둥서방이 되고 싶다면?”“그럼 내가 직접 처리를 해줘야죠.” 육해민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하현은 어깨를 으쓱했다.“아가씨, 해외 유학을 가서 사람 죽이는 걸 배워 왔나요? 나를 처리하게요? 여기는 법치사회에요!”“능글맞게 굴지 마세요. 때가 되면 내가 돈을 좀 줄 테니 자연스럽게 은아한테서 떨어지세요.”“걱정 마세요. 돈은 내가 평생 먹고 살기에 충분하게 챙겨 줄 테니까!”“당신이 은아랑 떨어지기만 한다면 가격은 협상하지 못할 것도 없죠.”육해민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하현이 반문했다. “아가씨, 왜 우리가 이혼을 한다는 전제로 그렇게 말 하는 거예요? 우리 좀 더 평화롭고 착하게 지내면 안돼요?” “무엇보다 우리 장인 장모님도 이제는 이 일에 신경도 안 쓰세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개가 쥐를 가지고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당신……”육해민은 하현 때문에 사레가 들렸다. 안색이 좀 안 좋아졌다. “이혼 하기 싫다고 하는 것도 안될 건 없죠. 하지만 당신은 남자니까 반드시 사업을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하현은 웃었다.“지금 은아에게 주어진 기회는 다 내가 준거고, 게다가 내가 계속 뒤에서 은아를 지지해 준건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하현의 뻔뻔한 말에 육해민의 얼굴은 순식간에 흉측하게 변했다.하현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기가 돌았다. “하현씨, 천일그룹은 당신 거고, 당신이 하 세자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죠?”하현은 깜짝 놀랐다.“어떻게 알았어요? 이 일은 천일그룹 내부에서도 몇 명밖에 모르는 극
침묵 속에서 차는 소항의 거리를 질주했고, 곧 비즈니스 중심지에 도착해 천일그룹 소항 지사 빌딩 앞에 멈춰 섰다. 육해민이 오려고 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내가 먼저 당신 쪽으로 입금하고 저녁에 연락할게요.”“또 이 차는 빨리 돌려주세요. 오늘 비용은 내가 낼 테니까.”말을 하면서 육해민은 지갑에서 돈다발을 꺼내 하현에게 던졌다. 게다가 그녀는 인심을 써서 하현에게 수고비를 주었다. 이 여자는 강하고 도도하면서도 약간의 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여자가 떠나자 하현은 조수석에 던져진 돈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강력한 미인이 그를 하인처럼 부려먹은 건가?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 흠모하는 걸 봐서 하현은 넓은 마음으로 그녀를 봐주기로 결정했다. 바로 이때 우윤식에게 전화가 왔다. “하 회장님, 소항 지사에 오셨습니까? 지사장 지원자가 왔습니다. 잠시 후 면접을 보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하현이 말했다.“나 이미 와있어. 바로 올라갈게.”지사장 인선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번 소항에 온 가장 첫 번째 큰 일이다. 하지만 방금 육해민과 얘기를 나누다 하현은 깜빡 잊을 뻔했다. ……회의실 안. 일찍 도착한 우윤식은 일찌감치 모든 것을 일사불란하게 정리했다. 사무실 전광판에는 면접장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잠시 후 지사장 지원자들이 이곳에 나타났다. 사무실에서는 우윤식이 주 감독관이었고 그 밖에 몇몇 지사의 고위층들이 있었다. 하현은 차를 한 잔 들고 한입을 막 마시려던 참이었다. 곧이어 그는 하이힐을 신고 면접장에 들어오는 여신급 여인을 보았다. “풉______”이 여자를 보았을 때 하현은 찻물을 한 모금 내뿜었다. 이 사람 육해민 아닌가?그녀가 이렇게 급하게 온 게 천일그룹 소항 지사장 면접을 보러 온 거였구나. 하현은 좀 어이가 없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천일그룹은 지금 강남의 하늘이라 알려져 있기에 지사장도 이미
육해민이 확실히 실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하현이 우윤식을 통해 차원 높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는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이 여자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이곳에 왔을 때 이미 자신은 소항 지사장이 되었다고 결정을 했다. 면접이 끝나자 하현은 책상을 치며 이번에는 우윤식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그녀에게 합격했다고 전해 줘.”우윤식은 어리둥절했지만 재빨리 말했다.“네!”그는 하현에 대해서는 자기의 입장이 전혀 없었고 복종할 뿐이었다. 전화를 내려 놓고 우윤식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가씨, 축하 드립니다. 방금 회장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우리 소항 지사장 자리에 아주 적합하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먼저 수속을 밟아 주세요. 내일부터 당신은 소항 지사의 모든 업무를 인수 할 수 있습니다!”“즐거운 협력이 되기를 바랍니다.”“이!”그 자리에 소항 지사의 원래 고위층이 몇 명 더 있었는데 지금은 좀 멍해졌다. 회장님이 뒤에서 직접 면접을 봤다고?그럼 이 여자는 회장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신 다는 건가?그렇다면 그들은 육해민이 불쾌감을 주더라도 노골적으로 방법을 쓸 수 없다는 거네. 육해민은 별 생각 없이 잠시 멍해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방금 하 세자가 저를 봤나요?”“네.”우윤식은 육해민에게 카메라를 보라고 손짓을 했다. 이 카메라를 보았을 때 육해민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하 세자가 자신의 면접을 보러 올 줄 진작에 알았으면 더 예쁘게 치장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천일그룹에 들어왔고 조만간 하 세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육해민은 또 싱글벙글 웃었다. 사무실에 있던 하현은 생방송 화면을 통해 육해민의 표정을 보고 할말을 잃었다. 남자가 빙그레 웃는 것은 좋은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자가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남편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이 계집애가 설마 발
하현은 이제 육해민의 성격을 대략 파악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렇지 않게 돈다발을 차 트렁크에 넣었다. 이 모습을 본 육해민의 눈에는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하현을 잘못 본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쓰레기는 나를 이용해 돈을 벌 수 있을 거 같아서 여기서 아첨을 떨고 있는 거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런 사람이 어디 은아와 어울릴 수 있겠는가?이때 하현은 농담하는 말로 말했다. “여기 일하러 온 거예요? 일은 잘 되가요? 돈 많이 벌면 나 잊지 마요!”하현이 이렇게 묻자 육해민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위에 써있지 않나? 천일그룹 소항 지사.” 하현이 말했다. “알면 됐어요. 천일그룹은 당신도 알다시피 하씨 집안이 자산을 통합한 후 지금은 이미 강남의 하늘이 됐어요. 미래 발전은 물론 이고 심지어 다국적 대기업이 될 수도 있어요!”“나는 방금 천일그룹 소항 지사의 사장이 됐어요. 회장이 앞으로 나보고 금정을 포함해 이남 전체를 책임지라고 했어요!”“일만 잘 되면 회사 주식도 챙길 수 있고 연봉도 20억 넘게 받을 수 있어요!”육해민에게는 이런 일들은 말할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들이었다. 어쨌든 그녀의 능력으로는 어디서든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녀가 천일그룹에 지원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소식통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그녀가 흠모하는 대상이자 살아있는 전설인 당도대의 대장일 가능성이 크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평소에 차가운 여신이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어린 소녀 같은 면이 있었다. 지원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남신을 위해서였다. “축하해요. 그럼 나 밥 사줘요.”하현은 웃으며 아무렇게나 말했다. 육해민은 하현을 보며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 밥 한끼 사줄게요.”하현도 사양하지 않고 바로 소항 센터로 차를 몰고 가 소항 센터의 가장 높은 곳에 있
결국 육해민은 아예 먹지를 못하고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셨다. “배불러요?”하현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육해민은 검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은 사양하지 않고 다른 것들까지 자기 앞으로 가져와 먹기 시작했다. 하현이 너더분하게 먹어 치운 후에야 육해민이 차갑게 말했다. “하현씨, 옛말에 사람 먹는 모습만 봐도 사람 성품을 알 수 있다고 했어요.”“나는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이 당신은 평소에 분명 이기적이고 염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지금 살고 있는 집들은 모두 은아가 세를 내서 살고 있을 거 같은데?” 육해민은 분명 은아가 스마트 밸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다 은아 이름으로 빌린 거죠!”“당신! 어떻게 이렇게 까지 뻔뻔하게 굴 수가 있어! 너는 네가 은아랑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육해민은 지금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은아랑 어울릴 거 같은데?”하현이 물었다. 하현이 묻는 말을 듣고 육해민은 흥얼거리며 말했다.“적어도 2천 억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격이 없어!”하현은 어이 없어하며 말했다.“육해민, 너 네가 은아의 절친이긴 하지만 관계는 나와 은아 둘 사이의 일이야.”“거기다 2천억이 있어야 은아랑 어울린다고 우기고 있는데.” “근데 전에 하 세자가 은아에게 청혼한 일은 알고 있지?”“하 세자의 신분이면 20조는 없어도 몇 조는 있지 않겠어?”“하지만 은아가 그를 거절했다는 것은 그녀가 좋은 여자라는 걸 말해주는 거야. 이런 것들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나랑 은아가 잘 어울리는 거야.”하현은 의기양양하게 말했고, 그도 세상에서 자신처럼 훌륭한 인재만이 은아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육해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현, 그만 해! 아직도 네가 은아랑 잘 어울린다니!”“은아가 하 세자를 거절한
잠시 생각하다 하현은 육해민을 단념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육해민, 내가 듣기로 하 세자는 그런 바람둥이가 아니야. 그에게 접근해봤자 소용없어.”“게다가 그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너, 기왕 취직했으니 출근이나 잘 해.”“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진지하게 말하는 하현의 말을 듣고 육해민의 입에서는 커피가 쏟아질 뻔했다. 이 남자는 따져보지도 않나?자기는 능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 잘 되는 건 차마 못 보겠다는 건가!그러자 육해민은 독설을 퍼부으며 말했다. “나랑 하 세자와의 일은 너랑은 상관 없는 일이야!”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육해민, 너 내가 꼭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야 되겠어?”“난 네가 마음에 안 들어.”“푸흡_____”육해민은 하마터면 노혈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 말은 네가 대장이고 하 세자라는 거야?”“응. 다 나야.”하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너!”이때 육해민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 남자는 정말 너무 뻔뻔스럽다. 어느 정도 뻔뻔한지도 모르는 정도다.자신의 이익을 위해 감히 자신을 대장, 하 세자라고 하다니?‘탁’하는 소리와 함께 육해민은 탁자 위에 돈다발을 내던지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이봐. 당신 짐은 아직 내 차에 있어!”하현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육해민은 흥분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식당 밖으로 나가 은아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아, 해민아. 하현이 너 마중 갔어? 내가 너 잘 대접하라고 했는데, 충분하지 않은 게 있으면 말해 봐! 내가 혼내줄게!”전화 맞은편에서 은아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은편 은아의 말투를 듣고 육해민은 안색이 변했지만 직설적으로 말했다. “은아야, 중요한 일을 얘기 하려고 전화했어!”“무슨 일이야?”은아는 궁금했다. “너 하현이랑 이혼해! 당장! 이혼 변호사는 내가 찾아줄게. 그를 맨몸으로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